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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開拓者) ◈
◇ 7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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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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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7.1

 
3
함사과의 집에는 내외에 등촉이 휘황하였고, 사랑에서는 어두운 후에 새로운 연락이 시작되엇다. 주식도 이제는 취차포(醉且飽)하고 명창(名唱) 이 동백(李東伯)이가 장구 소리에 맞춰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한 걸음 들어섰다 나섰다 하면서 춘향이 타령이 한참이다. 함사과는 여전히 아가 그 안석에 기대어 한 팔로 강점(江點)이라는 기생을 안고 앉았고, 낮에는 소송건(訴訟件)으로 미참(未參)하였던 이변호사도 술로 붉은 얼굴에 금안경을 번쩍거리며 무릎에 기댄 기생의 등을 어루만지고 앉았다.
 
4
'아이구 이게 웬 일이야'하는 춘향 모의 엄살을 고개를 흔들어 가며 할 때에 일동은 '좋다─' '응, 그렇지'를 연발하며 무릎을 툭툭 친다. 그러면 광대는 더욱 익살을 부려가며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하는 데를 가장 구슬프게 내려 엮는다.
 
5
슬픔이 그 극에 달하여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을 때에 일동은 '좋다─' '얼씨구!'하고 소리를 내어 웃는다. 기생들은 어디서 배운 것인지 조그마한 손뼉을 딱딱 치며 기쁨을 못 이겨 하는 듯이 앉은 춤을 춘다.
 
6
아 때에 어떤 노인이,
 
7
"얘, 그만하고 이제는 어사 출도나 하여라."
 
8
"응, 그게 좋다. 어사 출도 해라."
 
9
기생들 중에 몇 사람의 반대가 있었으나 마침내 중간을 약하고 어사 출도 막이 나온다.
 
10
'금준 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天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인고(萬人膏)라'가 지나고 광대는 고개를 번쩍 들며 일단 소리를 높여, '쿵쿵쿵쿵, 삼문을 열어라. 암행어사 출도야─'하고 길게 소리를 뽑을 때에 대문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뛰어 들어오면서 '암행어사 출도야'를 연호(連呼)하고 연석에 올라선다. 어느 개천에 빠졌는지 옷에서는 흙물이 흐르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갈랐던 머리카락이 되는 대로 이마를 가렸고, 손에는 다 떨어진 흙 묻은 미투리 짝을 들었다. 일동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 이 괴물을 주시하였다.
 
11
"오냐, 이놈, 네가 운봉(雲峰)이냐?"
 
12
하고 곁에 섰는 노인의 코를 잡아 흔들며,
 
13
"네가 운봉이지! 나는 이도령이다. 암행어사다."
 
14
하더니 하하하하...... 하고 웃는다.
 
15
함사과는 위의를 갖추어,
 
16
"이놈, 어떤 미친 놈이냐. 이리 오너라. 이놈 끌어 내려라."
 
17
하고 분김에 벌벌 떤다.
 
18
괴물은 '히히'하고 떤다.
 
19
"오냐, 네가 남원부사(南原府使)로구나, 나는 누군고 하니 사또 자제(使道子弟) 이도령이야...... 하하하."
 
20
하고 흙 묻은 미투리로 함사과의 뺨을 때린다.
 
21
"아이쿠, 이놈 잡아내어라."
 
22
하는 소리에 일동이 달려들어 그 괴물을 붙들고, 망건 쓴 하인들이 뛰어 올라온다. 그러나 그 괴물은 어떻게나 힘이 센지 손과 발과 흙 묻은 미투리로 되는 대로 둘러치더니 마침내 여러 하인들에게 붙들려 꽁꽁 결박을 지었다. 일동의 옷과 뺨에는 온통 흙이 묻고, 기생들은 벽에 착 달라붙어서 발발 떨기만 하다가 그 괴물이 결박된 뒤에야,
 
23
"아이고마."
 
24
하고 한숨을 내어 쉰다. 일동은 흙 묻은 것을 툭툭 털면서 결박진 괴물을 노려본다.
 
25
괴물은 결박이 되어 마당으로 끌려 내려가면서,
 
26
"하하,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괘심한 놈들. 내가 암행어사인데, 이놈들. 모조리 모가지를 자를 놈들!"
 
27
하고 한참 호령을 하다가 깔깔 웃고 나서는 갑자기 태도가 변하여,
 
28
"여보게 함사과, 내가 자네한테 좀 할 말이 있어서 왔네."
 
29
"이놈 가만 있거라."
 
30
하고 하인이 손뼉으로 괴물의 뺨을 때린다.
 
31
"이놈, 내가 누군데. 나는 김참서이다. 내가 아까 죽었는데 함사과 너를 잡으러 왔다. 나하고 같이 가자. 내가 김참서인데 자네를 두고 혼자 갈 수가 있나, 자 염라대왕한테로 같이 가세."
 
32
함사과는 쭈볏쭈볏 하늘로 솟는 듯하였다.
 
33
"어찌해? 무엇이 어째?
 
34
"하하, 자 어서 갓 쓰고 나오게. 지금 대문 밖에 사자가 와서 기다려."
 
35
하고 고개를 돌려 대문을 향하며,
 
36
"여보 사자들, 함사과 여기 있소. 옳지 저기 저 뚱뚱한 것이 함사과요, 내 좋은 친구지."
 
37
하인들은 괴물을 대문 밖으로 끌고 나아갔다. 함사과의 얼굴은 회색이 되어 벌벌 떨었다. 그 괴물은 성재의 집에서 뛰어나온 전경이었다.
 
 
 

7.2

 
39
그날 밤에 함사과는 극히 무서운 꿈을 꾸었다. 꿈에 김참서가 꼭 아까 보던 괴물 모양으로 차리고 와서 지팡이로 자기의 머리를 무수히 때리며,
 
40
"이 배은망덕하고 의리를 모르는 놈아."
 
41
하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자기는 그 앞에 끓어 엎드려 무수히 사죄하였다. 그래도 김참서는 듣지 아니하고 더욱 성을 내어 지팡이로 자기의 머리를 때렸다.
 
42
그는 견디지 못하여,
 
43
"사람 살리오!"
 
44
하고 소리를 쳤다. 그 때에 한 자리에서 자던 기생이,
 
45
"영감, 영감!"
 
46
하고 함사과를 흔들어 깨우며,
 
47
"웬 잠꼬대를 그리 하셔요?"
 
48
하였다.
 
49
"응"
 
50
하고 입을 쩝쩝하다가,
 
51
"내가 무슨 소리를 치더냐?"
 
52
"그게 무엇이야요. '아이구 사람 살리로'하시면서 내 가슴을 이렇게 때리지 않았어요."
 
53
하고 함사과의 가슴을 때리고 깔깔 웃더니,
 
54
"아이구, 나는 영감 모시고 자기 싫소."
 
55
하고 이불 속에서 뛰어나온다.
 
56
"왜? 왜, 응"
 
57
하고 잡아당기려는 것을 피하여서 원숭이 모양으로 방 한편 구석에 쪼그리고 앉으면서,
 
58
"무서워서 어떻게 모시고 자요. 자다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사람의 복장을 때리니."
 
59
"다시는 안 그러지, 이리 오너라."
 
60
이 모양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가 또 한번 아까와 같은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김참서가 소복을 입고 가만히 자기의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소복을 입고 가만히 자기의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자기의 가슴을 발로 툭툭 차며, 아무 말도 없이 빙긋빙긋 웃기만 하였다. 함사과에게는 그것이 더 무서웠다. 그러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지를 때 마다 기생은,
 
61
"나는 영감 모시고 자기 싫소!"
 
62
하고 이불 밖으로 뛰어나왔고, 그러할 때마다,
 
63
"다시는 아니 그리마."
 
64
하고 빌었다.
 
65
그 이튿날 김참서가 별세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무서운 생각이 났다. 전은 날마다 밤마다 함사과의 집 근방을 돌면서 흉한 말을 하고, 함사과는 밤마다 그러한 무서운 꿈을 꾸었다.
 
66
김참서의 장례를 지낸 이튿날 저녁, 자정이 지나서 함사과 근래에 새로 정한 기생 첩으로 더불어 자리에 들어가려 할 때에 담 밖에서 그 괴물의 소리가 들렸다.
 
67
"얘, 함사과야, 내가 오는 동짓날 저녁에 와서 너를 잡아 갈테다. 처음에는 머리가 아프고, 담엔 죽는단 말야. 히히히......"
 
68
이 말을 듣고 첩은 두 손으로 낯을 가리고 '으악' 소리를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함사과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눈만 끔벅끔벅 하였다.
 
69
"정말 영감 모시고 못 자겠소."
 
70
하고 첩이 낯을 찌푸린다.
 
71
"어째서?"
 
72
"무서워서!"
 
73
"그러면 어쩔 테냐?"
 
74
"나는 갈래요."
 
75
"어디로?"
 
76
"집으로."
 
77
함사과는 성을 내어 벌떡 일어나면서,
 
78
"이년, 그게 무슨 소리냐?"
 
79
"아무래도 싫어요. 밤마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무서운 소리를 지르니 누가 영감을 모시고 자요."
 
80
함사과는 더욱 성을 내어 눈을 부릅뜨면서,
 
81
"이년, 어디 딴 서방이 생긴 게로구나!"
 
82
"서방 없을까?"
 
83
"어째? 또 말해 보아라."
 
84
"다 죽어가는 영감장이 아닌들 서방 없을까요."
 
85
하고 깔깔 웃는다.
 
86
함사과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벌떡 일어나서 때릴 듯이 주먹을 둘러메며,
 
87
"이년, 냉큼 기어 나가거라. 내가 해준 옷 다 두고, 미텨, 반지, 다 두고!"
 
88
"네, 그러지요─ 에그 좋아!"
 
89
하고 문을 열려 하는 것을 함사과는 문을 막아서며,
 
90
"어디로 가니?"
 
91
"가라면서요!"
 
92
"이놈, 함사과야, 오는 동짓날 잡아 갈 테야! 하하하하."
 
93
"에그머니나! 아이구 무서워라."
 
94
하며 문에 가까이 가면서,
 
95
"비키시오. 갈랍니다. 옛소, 가락지 받으오."
 
 
 

7.3

 
97
"글쎄, 집안 다 망하겠구려. 늙은 것이 젊은 계집들을 끼고 밤낮 야단이요?"
 
98
하고 안방에서 함부인의 호령이 나온다.
 
99
"이놈의 집이 망할라나. 웬 미친 놈이 여우 모양으로 밤낮 흉조만 부려!"
 
100
하고 소리를 빽 지른다.
 
101
함부인은 돈 모으기에 매우 유력하던 원훈(元勳)이므로 함사과도 좀처럼 박대를 하지 못하고 가끔 겁겁하니 부인의 책망을 받는다. 부인도 벌써 육십이 가까웠으니까 질투의 정도 없어질 만한 때인마는, 그래도 여자란 생명이 있는 날까지는 질투를 떼어 버리지 못하는 양(樣)하여 지금도 함사과가 기생이나 첩을 끼고 자는 줄만 알면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끔 이러한 호령을 한다.
 
102
그러나 함사과는 이 호령도 무섭건마는 잠시도 미색을 떠날 수는 없었다. 젊어서 모든 쾌락을 다 억제하고 돈 모으기만 목적을 삼다가 돈 만원이나 자기의 소유가 되고, 또 자기의 여년이 얼마 아니 되는 것을 생각하매 술과 미색은 자기가 당연히 취할 권리가 있는 것 같이 생각되어서다. 그의 일생의 이상은 돈이었었다. 그러다가 이상하였던 돈을 모으고 나니, 이제 남은 이상은 쾌락일 것이다. 그는 생래(生來) 에 돈과 주색 외에 사회에 무슨 고상한 추구물이 있는 줄을 모른다. 그는 금전 거래부 외에 서적이라고 들어 본 것이 없었고, 금전 거래 외에 사람과 교제하여 본 적이 없었다.
 
103
그러니까 그가 사업이라면 돈 모으는 것 이외에 없는 줄 알고, 쾌락이라면 동물의 본능적 욕망 이외 없는 줄 안다고 반드시 책망도 못할 것이다. 실로 종교라든지, 문학이라든지, 사교라든지, 미순이라든지─ 이러한 것을 쾌락으로 알게 되려먼 십수년간 문명적 교양이 필요한 것이다.
 
104
만일 김참서와 함사과와의 사이에 무슨 차별이 있다하면 그것은 전자는 사서 삼경(四書三經)과 ≪고문진보전후집권(古文眞寶前後集權)≫이나 읽었고, 후자는 그만한 교양이 없는 까닭이다. 김참서의 아들되는 성재와 함사과의 아들과는 차이는 실로 유전과, 가정의 위화(威化) 및 교양의 삼자에 돌릴 것이다.
 
105
이러한 설교를 오래 하면 독자가 염증을 낼 것이니까, 그만하고.
 
106
그로부터 함사과는 밤마다 그러한 무서운 꿈을 꾸어서 낮에도 항상 신색이 좋지 못하고, 그뿐더러 신경이 과민하여져서 공연한 일에 성을 잘 내어 부인과의 논쟁도 전보다 번번하여지고, 그 아들과의 논쟁도 전보다 격렬하게 되었으며, 하인들이며 내객들도 항상 그의 비식(鼻息)을 엿보게 되엇다. 더구나 전(全)이 와서 흉한 소리를 부르짖고 간 낮에는 더욱 마음이 불편하여 외딴 방에 기생을 불러 가지고 술만 마셨다. 광인의 섬어(?語)인 줄은 알건마는 '동짓날에는 잡 아 갈테야'하는 말이 염두를 떠나지 아니하며, 그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107
그래서 잘 때에는 반드시 기생을 곁에 눕히고야 잠이 들지마는, 함사과가 자다가 발광한다는 소문이 기생들 간에 퍼져서, 좀 깨끗하고 인망있는 아이들은 오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므로, 돈을 빚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손님을 볼 수 없는 기생들을 택하게 되었다. 그러한 기생들도 오래야 삼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루만에,
 
108
"나는 싫어요."
 
109
하고 달아나고 말았다.
 
110
그래서 함사과가 부리는 서기 중에 한 사람이 함사과의 기생 선택 사무를 전문으로 보게 되엇다. 이 사무는 실로 용이치 아니하니, 우선 함사과를 모시기를 싫어하지 않는 자, 다음에는 화채(花債) 그리 비싸지 아니한 자, 다음에는 함사과의 마음에 드는 자, 화류병이 없는 자, 그 다음에 또 한 조건은 함사과의 아들이 관계하지 아니한 자, 이 최후의 조건이 제일 어려운 것이었다. 깨끗한 젊은 기생은 태반이나 아 들이 손을 대었으므로 함사과는 그 아들이 택하고 남은 찌꺼기 중에서 다시 택해야 하였었다.
 
111
어떤 때에는 한 기생을 가지고 부자가 동시에 경쟁하는 때도 있으니 이러한 때는 아들도 한사코 그것을 부친께 빼앗기지 아니할 양으로 전력을 다하여 운동하므로 대개는 그 부친이 패배에 돌아가고 만다.
 
112
나는 결코 함사과 부자를 훼방하려고 이러한 말을 쓰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러한 것이 목적일진대 더 유력한 재료가 산같이 많다. 그러나 나는 고결하신 여러 독자에게 그러한 불결한 말을 차마 쓰지 못하여 이만하고 말련다.
【원문】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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