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개척자(開拓者) ◈
◇ 13 장 ◇
카탈로그   목차 (총 : 21권)     이전 13권 다음
1917년
이광수
목   차
[숨기기]
 

13장

 

13.1

 
3
서울의 겨울 달은 남산의 동단(東端)에서 올라 남산 마루를 지나, 남산의 서쪽으로 떨어진다. 백설과 청송으로 묵화(墨畵)와 같은 반문(斑紋)을 성(宬)한 남산을 떼어 놓고는 서울의 동월을 말할 수가 없다.
 
4
이 의미로 보아 남산 수(壽)를 빌기에는 응용할 수 없이 되었다 하더라도 남산은 역시 서울의 자랑이다. 남상과 북악 두 틈에 장구 모양으로 벌여 있는 서울은 북악에서 위압을 받고, 남산에서 자애를 받는다.
 
5
이 특징은 지금과 같은 동질에, 그 중에 월명야(月明夜)에 더욱 분명하다. 옥으로 깍아 세운 듯한 구배(勾配)가 급하고 끝이 뾰족한 북악이 심청한 겨울 하늘의 북두성(北斗星) 자루를 찌르려 하는 모양과 그 끝이 하늘을 푹 찔러서 하늘에 새었던 찬바람을 쏟쳐다가 서울에 내려 솓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암만하여도 북악에 대하여서 일종의 외경과 공포와 위압을 받는다. 그러나 수구문 근방에서부터 원원히 복잡한 파상(波狀)을 정(呈)하며 올라가다가 국사당(國祠堂)의 뭉툭 한 꼭대기를 이루고 원원히 내려간 남산의 우미한 곡선은 우리에게 정다움을 준다.
 
6
그런지 아닌지 서울은 북악을 등에 지고 남산과 낯을 대하여 울고 웃고 한다. 아마도 웃을 때에 남산을 대하면 같은 미소를 얻고, 울 때에 남산을 대하면 부드러운 위안을 얻는 모양이다. 과거 몇 천년 간에, 가깝게 잡고 오백여 년 간에 몇 천만의 생령이 남산을 보고 웃고 울고 하였는고. 그러나, 한하건대 과거의 남산은 아직도 큰 웃음과 큰 울음을 당하여 보지 못하였다. 웃을 일도 한두 번은 없지도 아니하였고, 울 일도 한두 번은 없지도 아니하였다. 서울은 그것을 감각 할 줄을 몰랐었다. 음력 십 일월 중순 달이 바로 남산 마루 에 걸려서 서울을 내려다본다. 삼십 만의 인굴라 가진 큰 서울에는 등불이 반짝거리고 전차 소리와 인마의 왕래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편에는 비록 늙고 쓰러져 가는, 다 썩어진 더럽고 초라한 왜옥(矮屋)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에서는 확실히 새로운 반공(半空)에 우뚝 솟은 번쩍하고 깨끗한 고루가 있다. 수로 보아 그 더럽고 늙어 쓰려져 가는 버릴 운명을 가진 많음이며, 새롭고 번쩍한 집도 수로 보아 적다 하더라도, 그 적음은 차차 많아감, 마침내 온 서울을 덮고야 말 운명을 가진 적음이다.
 
7
서울에는 확실히 생명이 있다. 북악의 바람이 아무리 차게 내려 쏜다 하더라도 길과 지붕과 마당이 아무리 얼음 같은 눈으로 내려 눌렸다 하더라도, 그 밑에는 봄철에 움돋고 잎새 필 생명이 있는 것과 같이, 서울에는 확실히 생명이 있다. 아직 의식이 발동하지 아니하고, 감각과 이성의 맹아(萌芽)가 모양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확실히 서울에는 생명이 있다. 비록 그것이 아직 원시 동물 모양으로 머리도 없고, 사지도 없고, 물론 신경 계통도 없는 단세포에 불과하다 하더라고, 아직 호흡도 영양도 없는, 얼른 보기에 무생물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생명이 있기는 확실히 있다.
 
8
오늘밤 달빛에 비추인 서울은 비록 사해(死骸)의 서울이라 하더라도 장래 어느 날 밤에 이 갈은 달이 반드시 생명의 서울을 비칠 날이 있따고 누가 이것을 의심하랴. 하물며 부정라햐? 아무도 이 생명을 부정하지 못한다!
 
9
아아, 누누(累累)한 사해! 사대문, 종로, 북악, 및 남산 어느 것이 사해가 아니랴. 백년 묵은 사해, 이백년 묵은 사해, 간혹 일전에 죽은 사해, 온통 사해다. 지금 이 달빛에 가로로 다니는 것도 사해, 혹 실내에 앉았는 것, 누웠는 것, 떠드는 것, 어느것이 사해가 아니랴? 소리면 귀추(鬼?), 빛이면 귀화(鬼火), 무엇이 도약(跳躍)한다면 망량(??)의 도약, 그러나 서울에는 생명이 있다.
 
10
이 생명은 묵은 사해와 새로운 공기아 광선으로 생장할 것이다. 묵은 사체는 사해, 그 물건으로는 무용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생명적으로 분해한 화학적 원소는 넉넉히 신생명의 영양될 수가 있다. 될 수가 있을뿐더러 그것은 영양으로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그리고 공기와 광선은 무한하다. 암만이라도 자유로 취할 수가 있다. 지구에 생물이 생식할 수 있는 한에는 공기의 부족을 탄할 수가 없을 것이요, 태양이 그 열과 광(光)의 생명을 보전하는 한에서는 광선의 부족을 탓할 리가 없다. 서울의 생명은 생장하지 아니치 못할 운명을 가졌다. 그런데, 서울에는 생명이 있다. 서울을 보고 우는 자는 자기의 잘못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울? 낡은 주검 위에 새호 설 새 서울? 제군은 북악의 열풍 속에, 남산의 월광 속에 탄생 축하의 기쁜 곡조를 알아 들어야 한다.
 
 
 

13.2

 
12
그것은 모르지. 그 생명이라는 것이 하동(何洞) 하통(何統) 하호(何戶)에 있는지 또는 하가(何街) 하천(何川)에 있는지.
 
13
'과연 M은 동정이 많은 어른이다. 나도 전씨의 불행을 생각하고 눈물이 흘렀다......'
 
14
'...... 오늘 아니 오셨다. 왜 아니 오시나. 나는 기다리다 못하여 화를 내어서 <퍼피>를 때렸다. 왜 아니오시나...... 아차, 웬 일일까? 내가 왜 이렇게 M을 보고 싶어하나. 어젯 저녁에는 M과 키스하는 꿈을 꾸었다. 웬 일인가? 왜 오늘은 아니 오셨나? 내가 왜 이렇게 M을 보고 싶어하나?'
 
15
'...... 언제 만나도 반가운 M이 오늘은 더욱 반가왔다. 오늘은 그 <도토리>의 이유를 가르쳐 주시마 하더니 후일에, 후일에...... 하고 그냥 두고 말았다. 대체 그 <도토리>에 무슨 뜻이 있는고?......'
 
16
'......M이 왜 날마다 올까? 오빠를 보러 오는 것일까? 내가 보고 싶어서 오는 것일까? M이 날마다 오는 줄을 알면 오빠께서 무어라고 아니 하실까? 무일! M이 아니 오면 나는 어쩌게! 오오, M! 내M! ! 좋은 글자다.'
 
17
'......아이구머니 내 가슴에 왜 이다지 울렁울렁할까?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플까? 일기 쓰기도 싫다! M, M......'
 
 
18
성재가 시험관을 들고 앉았다가 주정등에 불을 켜놓고 거기다가 시험관을 쬐인다. 제군은 이것을 다만 성재의 화학 실험으로만 알아서는 못 쓴다. 만일 제군이 총명할진대 성재의 시험관이 끓어 나는 소리 중에서 새 생명의 심장의 고동을 들어야 하고, 주정등의 화염 중에서 새 생명의 섬광을 보아야 한다. 그와 같이 민의 유치한 화필, 그것으로 그려진 금강산의 스케치 중에서 총명하신 제군은 새 생명의 부동을 보아야 한다. 제군은 어린애들이 강보(襁褓)에 누워서 함부로 사지를 내어두르고 함부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아느뇨. 또 어린애들이 모친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고, 창과 벽을 뚫는 것을 무의미한 장난으로 아느뇨. 또 그들이 조그마한 손가락 끝으로 마당의 부드러운 흙에 가로 세로 여러가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무의미한 장난으로 아느뇨. 그런 것이 아니다. 그네는 그러한 무의미한 듯한 장난 중에서 장차 어른이 되어 활동할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함부로 내어 두르면, 그 팔은, 혹은 의정 단상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팔도 되고, 혹은 만세(萬歲) 대경전(大經典), 대예품(大藝品)을 작(作)하는 팔도 되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는 신발명을 작성하는 팔도 되는 것이다. 그네가 함부로 지르는 듯한 소리를 무의미하게 들을 줄이 있으랴. 그렇게 연습 하는 그 소리가 장차 세계의 만민을 각성케하는 예언자의 큰소리도 되고, 천군 만마(千軍萬馬)를 호령하는 대장군의 큰소리도 될 것이다.
 
19
제군은 무엇을 볼 때든지, 그것이 영(盈)하는 것인지 휴(虧)(waxing or waning)하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20
그리하여서 그것이 영하는 것일진대 현재의 소(小)와 약(弱)을 장래의 대(大)와 강(强)을 약속함인 줄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휴하는 것일진댄 현재의 대와 강이 장래 소와 약을 약속함인 줄을 알아야 한다. 명칠지 못한 사람은 휴하는 대와 강을 보고 기뻐하고, 영하는 소와 약을 보고 도리어 슬퍼하나니, 명철한 제군은 이러한 미련을 배워서리 되지 아니한다. 낡은 것, 썩은 것, 죽은 것이 비록 현재에는 강하고 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하는 강과 대요, 새 생명의 소리와 빛이 비록 현재에는 소하고 약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하는 것인 줄을 알아야 한다.
 
21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서울의 여러 가지 소리 중에, 여러 가지 빛 중에, 여러 가지 움직임 중에는 반드시 영하려는 새 생명의 부동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볼 때에 슬퍼하고 실망하기 쉽지마는 희망의 눈으로 미래를 볼 때에야 비로소 더할 수 없는 기쁨을 깨닫는 것이다.
 
22
북악과 남산 새에 생장하려는 새 서울의 모양을 제군은 마음대로 그려 보는 것이 좋다. 혹은 황금이 넘치는 부(富)한 서울이든지, 학술이 은성(殷盛)하고 문학 예술이 꽃을 피우는 문화의 서울이든지, 또 혹은 그려 보는 것이 좋다. 대게 제군은 제군의 마음대로, 그런 대로 새 서울을 이룩할 수가 있으니까.
 
23
종소리가 들린다. 각 회당(會堂)에서 야소기독(耶蘇基督)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다. 사방으로 모여드는 남녀 신도들의 경건한 머리 위에는 명월광이 비취었고, 발밑에서는 새로 온 눈이 빠각빠각 소리를 낸다. 적적한 제동 골목으로서도 새옷을 입고 성경 찬미를 든 남녀가 칠팔 인 말없이 내려온다. 검은 두루마기에 흰 동정 달고 모자를 꾹 눌러 쓴 학생 수인이 떼를 지어 쾌활하게 웃고 떠들며 이전 사관 학교 앞으로 내려오고, 그 뒤에는 서양 머리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여학생 하나이 사뿐사뿐 걸어온다.
 
 
 

13.3

 
25
"성순씨!"
 
26
하고 뒤에서 부르는 남자의 소리는 떨렸다.
 
27
성순은 깜짝 놀라는 듯이 우뚝 서며 고개를 들었다.
 
28
그는 민이었다. 그러나 성순은 인사도 하려고 아니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29
"성순씨! 저는 아까부터 대문 밖에 서서 나오시기를 기다렸읍니다. 혹 크리스마스에나 아니 가시는가 하고...... 그러나 성순씨께서 나오시는 것을 뵈올 때에는 말을 할까말까 하고 오래 주저하였읍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왔읍니다."
 
30
하고 한 걸음 가까이 온다.
 
31
성순은 고개를 들어 달빛에 비치인 민의 해쓱한 얼굴을 보았다. 그리하는 성순의 얼굴도 역시 헤쓱하였다.
 
32
성순은,
 
33
"왜 그동안 한번도 아니 오셨어요?"
 
34
"제가 오기를 바라셨읍니까? 올까 하여 무섭지 아니하였읍니까? 여기서 뵈옵는 것도 무서워하지 아니합니까?"
 
35
민의 어조는 자못 격(檄)하였다. 분노한 듯까지 하였다. 성순은 그 말을 들을 때에 몸이 오싹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대담하게 말할 용기를 얻었다.
 
36
"그렇게 생각하셔요? 제가 그러리라고 생각하셔요?"
 
37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읍니까? 성재형께서 편지가 왔읍니다. 성순씨와 변군과의 약혼은 확정되었다고. 그러니까 너는 내 집에 오지 말고, 성순씨와 교제도 말아 달라고...... 그런데도 댁에 찾아갈 수가 있겠읍니까? 좋습니다.
 
38
축하합니다. 변 부인이지요? 근일에 결혼식을 하시고 동경으로 신혼 여행을 가신다지요? 그것을 축하할 양으로 추운데 여기서 기다렸읍니다. 댁에는 갈 수가 없으니까요."
 
39
"왜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40
"그러면 어떻게 말씀을 드리리까?"
 
41
"제 뜻으로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42
"흥, 누구나 그런 말을 하는 법입니다. 성순씨가 만일 남의 위력에 못 이기어서 그러한 작정을 한 것이라면 성순이는 못난이거나 어린애지요......"
 
43
"네- 못난이야요."
 
44
"과연 그렇습니까? 과연 못난입니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45
"그러면 제가 이 경우에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46
"꼭 한 가지 밖에 없지요. 즉 자기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따라서 행한다 - 그것뿐이지요. 성순씨는 성순씨의 성순이지요. 어머님의 성순입니까, 오라버니의 성순입니까?"
 
47
"저는 저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행할 힘이 없어요."
 
48
민은 물끄러미 성순을 모로 보았다. 과연 성순의 말은 진리라 하겠다.
 
49
"그렇게 행할 힘은 없다 하더라도 행하였으면 좋겠다는 요구는 있읍니까?"
 
50
"네."
 
51
"진정 그렇습니까? 될 수만 있으면 나는 나대로 내 이성을 따라서 행하겠다 하는 요구가 있읍니까? 될 수만 있다면 아무의 속박도 견제도 받지 아니하고 내 인격의 권위와 자유를 어디까지든지 발휘하였으면 하는 요구는 있읍니?. 과연 그렇습니까?"
 
52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겠읍니까?"
 
53
"가능하지요. 그러나, 평화의 수단으로는 아니 되지요. 오직 전쟁이라는 방법으로야만 되지요."
 
54
"전쟁!"
 
55
"암, 전쟁이지요. 첫째 부모의 권력에 대하여, 둘째 사회 인습의 권력에 대하여 전쟁을 해야지요."
 
56
"그것이 옳겠읍니까?"
 
57
"전쟁이니까 이기면 옳고, 지면 죄지요."
 
58
"이길 수가 있겠읍니까?"
 
59
"전쟁이니까 내가 강하면 이기고 내가 약하면 지지요."
 
60
"제가 강하겠읍니까?"
 
61
"그거야 남이 압니까?"
 
62
"만일 지면 어찌 될까요?"
 
63
"항복하여 노예가 되든지, 쾌(快)하게 전사를 하든지-"
 
64
"일천만의 여성을 위하여 희생이 되든지-"
 
65
"선봉장이 되든지-"
 
66
양인은 자연히 마음이 솔깃하여짐과 알 수 없는 용기와 프라이드를 깨달았다. 한참 침묵하다가 성순이가,
 
67
"싸워 보지요, 싸워 보지요."
 
68
"싸워 보서요?"
 
69
"네, 싸워 보지요. 저를 도와 주십시오."
 
70
양인은 굳게 악수하였다. 그리고 삼사 보의 거리를 두고 쓸쓸한 겨울밤의 서울 거리를 걸어 숭동 예배당으로 향한다.
【원문】13 장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222
- 전체 순위 : 373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57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개척자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17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21권)     이전 13권 다음 한글 
◈ 개척자(開拓者)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4년 0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