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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開拓者) ◈
◇ 4 장 ◇
카탈로그   목차 (총 : 21권)     이전 4권 다음
1917년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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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4.1

 
3
성재는 그 걸음으로 이변호사의 집에 갔다. 이씨는 이전 동경유학 시대에 같이 있던 사람이며, 그 때에는 학비에 궁하여 흔히 성재한테 일 원, 이 원을 취하려 왔다. 성재는 혹 청구에 응하기도 하고 아니 응하기도 하였다. 성재에게 취하여 간 돈은 갚아 본 일이 없었다. 그는 학비는 군색하다고 하면서도 의복과 거처는 학비가 풍족한 사람보다도 낫게 하고 있었다. 그는 동복과 하복이 있고 외투가 둘이나 되고 비옷까지 있었다. 그의 구두는 항상 청결하고 머리에는 늘 향수 냄새가 났다. 어디를 가든지 반드시 가올이나 인단을 지녔다. 그는 생활하여 가는 데 무슨 큰 재주가 있었다.
 
4
그가 법과 이년 적에, 꽤 값나가는 세비로 양복 한 벌을 신조(新造)하였을 때에는 입빠른 친구들은 그를 정탐이라고 한 일도 있었다. 아무려나, 성재는 그를 좋아하지 아니하였고 그도 성재를 물론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한가지 재주가 있으니, 그렇게 남의 시비를 들으면서도 자기를 존경하는 사람을 많이 얻었다. 그리고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대개 그보다 나이 어린 부자집 자제들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5
그 자제들은 그를 선생 모양으로 애경하여, 그를 위하여서는 무엇이나 아끼지 않았다. 아마 그의 비옷과 세비로도 그네의 손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줄업 귀국한 후에는 그네와의 교정은 대개 다 끊어지고 말았다.
 
6
그가 귀국하였을 땐 아직도 옛날이라 곧 어느 지방 법원의 서기가 되고, 그 후 이 년이 못 넘어서 판사가 되고 판사된 지 일년 못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가 될 때에도 어떻게 주선을 하였던지, 대구 본정(大邱本町) 거리에 큼직한 사무소를 두고, 전화를 매고, 사무원을 이삼 인이나 부렸고, 그 후에도 어떻게 수완을 부렸던지 사오 년이 못하여 몇 백 추수나 할 재산을 얻고, 작년부터는 경성 대사동(大寺洞)에 꽤 굉장한 가옥을 사고, 그것을 주택 겸 사무소로 쓰며, 대문 안에는 전용 인력거까지 세워 두게 되었다.
 
7
내가 그의 시비를 말하려 함은 아니지만, 그의 명예는 그리 좋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일 년 이상 가는 친구가 없었고 그의 친구도 결코 그를 칭찬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는 칭찬을 못 받으면서도 두려워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를 미워하는 사람도 능히 그를 대적할 생각은 내지 못하였다. 그는 모든 것의 해결을 법률에 구한다. 누가 자기를 훼방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고소한다고 하고 명예 손해 배상을 청구한다고 위협하여서 마침내 저편의 사죄를 받고야 만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그가 송운(訟運)이 좋은 것이니, 그가 맡는 사건은 대개가 승소가 된다. 그렇게 학식이 많은 것 같지도 아니하고, 변설이 능한 것 같지도 아니하고, 더욱이 일어의 발음조차 그다지 좋지도 못하여, 변론 중에 흔히 재판장을 웃기는 수도 많건마는 그래도 소송이 이기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동업자되는 여러 변호사들이 웃음거리 삼아 감탄한다.
 
8
동업자간에도 인심을 잃었다. 혹 사정을 보아서 연기 신처의 의논을 받는 수도 있건마는 결코 응하지 아니하고, 개정 시간에 삼십 분만 대수방(對手方) 변호사가 출석치 아니하여도 사정없이 결석 판결을 청한다.
 
9
그러므로 동업자들은 좀 몸이 불편하더라도,
 
10
"오늘은 이변호산데─"
 
11
하고 빙긋 웃으며 반드시 출석한다.
 
12
좀 분명치 못한 사건이라든지 정당치 못한 하건이라든지 한 것으로, 다른 변호사에게 거절을 당한 사건은 죄다 대사동 이변호사 집 대문으로 들어간다.
 
13
그는 아무러한 사건이나 사양치 아니한다.
 
14
"변호사는 의사와 같아서 의사가 환자 가리지 아니함과 같이 변호사는 사건을 가리지 아니할 것이다."
 
15
고 이전 어느 석상에서 취중에 어느 동업자의 조롱을 반반한 일이 있다. 과연 그는 이런 주의를 취하는 모양이다.
 
16
"그러나, 아무리 의사라도 처녀의 낙태 청구에 응하면 범죄가 되지."
 
17
하고 그 곁에 있던 어느 청년 변호사가 푹 찔렀으나, 그 말에는 아무 대답이 없고 다만 차후에 한번 만나자 하는 듯이 한번 노려볼 뿐이다.
 
18
상승 변호사 이 일우(李一宇) 군은 매우 함사과의 신앙하는 바 되어 함사과 집 대소 사건은 이씨에게 전임하는 것이다.
 
19
그래서 이번 김참서 가옥 차압 사건도 이씨가 맡은 것이요, 성재는 이씨에게 사정을 하여 볼 양으로 지금 찾아온 것이다.
 
 
 

4.2

 
21
대문을 들어서면 네모난 마당이 있고 마당 한편 구석에는 국화가 수십 떨기 심겼으며 그 중에 다섯 여섯 떨기는 황금색 꽃을 발하였다.
 
22
이전 행랑이던 것을 뒷간을 만들고, 뒷간 앞에는 새로운 목재로 일본식 손 씻는 물그릇 올려 놓는 돌을 만들었으나, 물그릇은 반이나 깨어져서 그 밑에 굴러있다.
 
23
깨끗이 쓸어 놓은 마당 건너편에는 툇마루 달린 남향 방이 있고, 그 곁에 사간방이나 되는 대청이 있다. 대청에는 새로 유리문을 하여 달고, 양식으로 탁자와 의자를 놓았으며, 어약해중천(魚躍海中天) 이라든지 추성각(秋聲閣) 이라든지 하는 고물전에 나오는 액(額)이 무수히 걸렸고, 그 중에는 위백제운운(爲栢齊云云)이라 한 당시 명가의 액도 걸렸다. 백제(佰薺)는 아마 그의 당호(堂號)인가 보다.
 
24
성재는 이 응접실에 들어가 의자 하나를 점령하고 사환 아이에게 명함을 들여보냈다. 응접실 서쪽에 있는 사무원실에는 오륙 인 시골 사람인 듯한 자가 근심스러운 듯이 물러앉았고 벽에 걸린 전화가 연이어 운다. '네, 그래요' 하는 말과, '영감께서는 지금 안에 계십니다'하는 말이 들린다.
 
25
성재는 '영감께서는'하는 말에 이 일우 군의 금일의 득의(得意)와 칠팔 년 전 동경 유학 시대와를 비교 아니할 수 없었다.
 
26
'돈 있거든 한 일 원'하던 이 이일우군과 해강(海岡)이니 소호(小湖)니 하고, 당대 명성이 쟁쟁한 양반네가 '위백제 인형'이라 하고 서한을 하여 주는 이 일우 군을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는 참 어렵다.
 
27
이군뿐 아니라 성재의 동기생들은 대개는 훌륭한 신사가 되었다. 혹은 중등 정도 학교의 교장이 되며, 혹은 은행의 지배인이니 취체역이니 하고 서슬이 푸르며, 혹은 판검사, 혹은 변호사 하고 조선에 있어서는 일류 인물로 자기 임하고 남도 허하게 되었다. 길에 나서면 반드시 인력거를 타고, 차를 타면 반드시 백표는 실로 성재 밖에 없을 것이다. 동경서 학교에 다닐 때는 최연소자되는 자기에게 수학 문제도 묻고, 화문 영역(和文英譯)이며 작문 같은 것도 의뢰하던 그네들은 지금 와서는 모두 다 번쩍하는 신사가 되었다.
 
28
성재는 평생 자기를 비(飛)하면 충전하려 하여 불비(不飛) 하고 명(鳴)하면 경인(驚人)하려 하여 불명(不鳴)하는 자로 자임(自任)하고 도리어 한때의 영화에 현혹하려 하는 그네를 홍곡(鴻鵠)을 모르는 연작(燕雀)으로 여겨 일종 경멸하는 뜻을 품고 있었다.
 
29
그러나, 칠 년간이나 연하여 실패 또 실패를 당하고 금일에 와서는 마침내 노부모와 어린 처자 있는 집까지 가차압을 당하고 나니 미상불 기운이 꺽이기도 한다.
 
30
성재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31
"얘, 인력거 불러라."
 
32
하며 나오는 주인의 소리가 들린다. 확실히 그것은 이일우 군의 음성이언마는 못 만난 지 육칠 년에 그 음성조차 변하였다. '돈 있거든 한 일 원'하던 음성과 '얘, 인력거 불러라' 하는 음성과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연석에 기대어 앉아서 소화 불량한 배를 슬슬 내려 쓸면서 길게 '이리 오너라'하는 음성이다. 문이 열리며 순흑색 세비로에 줄 있는 넥타이를 맨 일우가,
 
33
"아, 이거 누구요?"
 
34
하며 들어와 손을 내민다. 성재도 웃고 일어나면서 일우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손은 손바닥을 마주 대었을 뿐이요 꼭 쥐지는 아니하였다.
 
35
"그런데, 이게 얼마 만이요?"
 
36
하고 일우가 의자에 앉으며 궐련갑의 뚜껑을 열며,
 
37
"자, 한 대 피우시오."
 
38
"내가 담배를 먹나요."
 
39
"아 참, 안 잡수셨지. 그렇지마는 학생 시대에는 아니 먹어도 지금도 안 자셔요. 하하하."
 
40
하고 자기만 부도(敷島) 한 개를 골라 물고 불을 붙여 길게 한모금 빨아서 휘 내뿜는다. 성재는 전보다 뚱뚱 하여진 몸과 과음한 듯한 일우의 눈을 보면서,
 
41
"참, 많이 축하합니다. 이처럼 성공을 하셔서."
 
42
"성공이 무슨 성공이요. 내야 버린 사람이지요."
 
43
"천만에......"
 
44
"직업이 직업이니까 그저 술 먹고, 가끔 계집도 희롱하고...... 내 생활이 이러하외다. 그런데 김형께서는 무슨 발명을 하신다는데 어찌 되었지요."
 
45
"발명! 발명이 무슨 발명이요."
 
46
하고 픽 웃는다.
 
47
"어디 한번 큰 발명을 하시오."
 
48
하고 초인종을 누른다.
 
 
 

4.3

 
50
사환에게 차와 과자를 명하고,
 
51
"왜 어느 학교 일이나 좀 보시지요. 몇 학교에 화학 시간이나 가르치면 돈 십 원이나 수입이 될 터이데."
 
52
성재는 이 말이 매우 불쾌하였다. 그러나 안색엔 내지도 아니하고,
 
53
"어디서 오라는 데도 있지마는 갈 마음도 없고, 또 붙든 일이 있으니까 그것을 버릴 수도 없고......"
 
54
"그러면 모르겠소마는 만일 어느 학교에 가실 생각이 있으시거든 저라도 힘껏은 주선하여 드리지요."
 
55
하고 불쌍한 듯이 성재를 본다. 성재는 그 말이 더욱 불쾌하였다. 자기는 상당한 자기의 실력을 믿을 대에 남이 자기를 한 무능력자로 인정하여 주는 것보다 불쾌한 것이 더 없을 것이다.
 
56
진실로 일우는 성재를 불쌍히 여긴다. 될 수 있으면 건져주리라 하는 정성도 있다. 그뿐더러 자기의 권력을 보이기 위하여서라도 성재에게 어느 중학교 화학 교사의 직업이나 얻어 주고 싶었다. 만일 성재가 법률 지식이 좀 있었던들 자기의 사무원으로 써 주겠노라고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성재는 한번 더 불쾌감을 참고,
 
57
"고맙소이다마는 이제 다시 교사되기도 무엇하고, 그냥 지나갈랍니다."
 
58
일우도 성재의 안색에 좀 듣기 싫어하는 빛이 있음을 보고 다시 권하려고도 아니 하였으나 속으로는 '주제 넘은 것,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보자'하고 비웃었다.
 
59
사환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하얀 고뿌에 가배차(枷排茶)를 넣고 집시에는 각사탕(角砂糖) 두 개씩을 놓았으며 칠한 과자분에는 일본 과자가 담기고 과자 위에는 이쑤시개 두 개를 꽂았다. 조선 집에 양식 탁자, 의자도 우습지마는 가배차에 일본 과자도 우습고, 그것보다도 미투리 신은 화학자와 세비로 입은 변호사와의 대조가 더욱 우스웠다. 성재는 차를 두어 모금 마신 뒤에,
 
60
"그런데 좀 청할 말이 있어서 왔지요."
 
61
"네. 무슨 말이요."
 
62
하고 일우는 한 손으로 차를 저으며 한 손으로 시계를 내어본다.
 
63
"노형이 저 함사과의 가차압 사건을 맡으셨어요?"
 
64
"응, 응, 네. 그랬지요. 그런데?"
 
65
"그런데 좀 연기하여 주실 수 없겠소?"
 
66
"응?"
 
67
"얼마 동안 좀 연기하여 주셨으면 좋겠단 말이요."
 
68
"응, 그러나 그것은 나는 모르지요. 나는 함사과의 대리니까."
 
69
"그런들 좀 변통이 없겠어요."
 
70
"그것은 함사과한테 가서 말씀을 하시지요."
 
71
"그래, 함사과한테를 갔더니 노형께 가서 말을 해보라고, 이 사건은 노형께 전임을 하였노라고 그럽디다그려. 그래서......"
 
72
"그것은 어려운 걸요. 대관절 기한이 벌써 일삭이나 지났다던데요."
 
73
"네, 한 이십여 일 지났지요."
 
74
"그러니, 채권자가 가만히 있겠읍니까."
 
75
"그러나, 함사과는 우리 세의(世誼)......"
 
76
"허허. 지금 세의가 어디 있소."
 
77
"그러면 노형은 친구의 정이고 채권은 채권이요."
 
78
"그러니까, 내 청을 못 듣겠단 말씀이구려."
 
79
"아니 그런 것도 아니지마는...... 나는 대리인이니까."
 
80
하고 이쑤시개에 과자를 꿰어 주며,
 
81
"자 과자나 자시오─"
 
82
성재는 좀 분격하여,
 
83
"과자 먹을 생각도 없소. 그러니까, 내 청은 못 들으신단 말씀이구려."
 
84
하고 재차 묻는다.
 
85
"아직도 가차압이요. 강제 집행은 아니니까 어떻게 힘을 써보시구려. 함사과뿐 아니라 다른 채권자들도 이번 가차압한 것을 보면 가만히 있는지 아니하리다. 속히 손을 쓰셔야 할거요."
 
86
이 때에 사무원이 공손이 들어와서,
 
87
"재판소에서 전화가 왔읍니다."
 
88
"응, 나오라고?"
 
89
"네, 송변호사께서 개정 시간이 되었다고."
 
90
"응, 지금 간다고 그러오. 그리고 인력거 왔소."
 
91
"네, 벌써 와 기다립니다."
 
92
"그러면 김형, 나는 재판소에 일이 있으니까...... 가끔 놀러 오시지요."
 
93
하고 사환에게 모자를 받아 들고 휙 나간다.
【원문】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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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17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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