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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開拓者) ◈
◇ 5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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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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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5.1

 
3
성재의 실험실 문 밖에 어떤 여행 양복 입고 가방 든 청년이 인력거에서 내려 문을 두드린다.
 
4
"선생 계시우?"
 
5
하고는 유리창으로 엿본다.
 
6
'웬 일인가?' 하면서 또 두드린다. 얼마 만에 안에서 통통통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에 청년은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그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시월 해가 짧아서 벌써 가등에 불이 켜지고 오싹오싹하는 찬바람이 휙휙 불어 지나간다.
 
7
딸랑 하고 문고리 벗기는 소리가 나더니 실험실 밖 대문으로 통한 문이 열리며 성순의 얼굴이 보인다. 그 청년은 검은 중절모를 벗어 들고 공순히 인사하고 성선도 잠간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에,
 
8
"들어오시지요."
 
9
하였다.
 
10
그 사람도 반갑지마는 이렇게 근심 많고 고적한 때에는 더욱 반가왔다. 그 청년은 한 결음 문안에 들어서면서,
 
11
"선생, 안계셔요?"
 
12
"네, 아침 아홉 시에 나가셔서 아직 아니 오십니다. 어디를 갔는지......"
 
13
"오늘은 노는 날도 아닌데 용하게 출타를 하셨군."
 
14
하고 주저하는 모양이더니,
 
15
"올라가 기다릴까. 괜찮습니까?"
 
16
하고 허가를 기다리는 듯이 성순을 본다.
 
17
"네, 올라오셔요. 지금 오시는 길이야요?"
 
18
"그저께 금강산 떠나서 석왕사(釋王寺) 구경하고 지금 남대문 와 내렸어요. 단풍이 어찌 좋은지."
 
19
하면서 구두를 벗는다.
 
20
성순은 곁에 놓인 무거운 가방을 들고 앞서 방으로 들어가고 그 청년도 성순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한번 실내를 쭉 둘러보더니 탁자 위에 황갈색 액체의 시험관을 들어 보면서,
 
21
"어때요, 그동안 좀 성공이 되었읍니까?"
 
22
"네, 매우 성적이 좋다고 그러던데요."
 
23
"그것, 참 기쁜 말이올시다. 저도 이번 금강산 가서 어떻게 그림도 많이 그리고 글도 많이 지었는지...... 그림은 화물로 부쳤지요. 이따가 찾아 오겠읍니다. 보시거든 잘 그렸다고 칭찬이나 해 줍시오."
 
24
하고 성재의 의자에 앉으려다가 다시 일어나면서,
 
25
"아차! 성순씨한테 좋은 선물을 가져왔는데요."
 
26
하고 즈꾸로 싼 가방을 열더니 화구 상자, 원고지, 후건, 치분같은 것을 집어 내고 맨 밑에서 백지로 싼 네모난 뭉텅이를 하나 내어 성순에게 주면서,
 
27
"이것이 선물이야요."
 
28
하고 웃는다. 성순은 그 중량을 보는 듯이 두어 번 들었다놓았다 한다.
 
29
"펴보리까?"
 
30
한다.
 
31
"보셔요. 이리 줍시오, 제가 펴지요."
 
32
하고 성순의 손에서 그 뭉텅이를 빼앗아서 탁자 위에 놓고 얽어맨 끈을 끄른다. 서너 겹 싼 것을 제치니 그 속에서는 단풍 잎사귀, 고산 식물, 동해에서 나는 조개, 회엽서(繪葉書), 자기가 그린 폭포와 산의 스케치 같은 것이 나오고 맨 나중에는 역시 백지로 꽁꽁 싼 것이 하나이 나온다. 청년이 일일이 설명하기를 시작한다.
 
33
처음에 단풍 잎사귀를 들고,
 
34
"이것은 바로 유점사(楡岾寺) 뒤에서 딴 것이외다. 하루 아침에 나아가 보니까 저편 절벽 위에 단풍이 어떻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사방이 다 단풍이지마는 그 중에 그 절벽 위의 단풍은 특별히 좋아요. 그런데 길이 있읍니까. 천신 만고로 위험을 무릅쓰고 이걸 따 왔지요. 한움큼 땄다가 다 내어버리고 꼭 이것두 잎사귀만 가져왔지요.
 
35
하고 핏밫 같은 단풍 잎사귀를 들어 성순에게 주며,
 
36
"평지에는 도저히 이러한 단풍은 없읍니다. 이것은 꼭 심산에 가야만 구경하는 것이야요."
 
37
성순은 그것을 받아 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재미있게 본다.
 
38
다음에는 고산 식물에 앉은뱅이 같은 것을 들고,
 
39
"이것은 해발 팔천 킬로 이상에서 난 것이야요. 오월에야 봄을 만났다가 팔월에 가을 만나는 불쌍한 식물이야요. 이 놈은 여름의 더움이라고는 구경을 못하지요. 찬바람 속에 났다가 찬바람 속에 죽는 가엾은 신세지요.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운 꽃을 피웁니다그려."
 
40
하고 자색 꽃을 만지면서,
 
41
"자─ 어떻습니까. 꽤 곱지요!"
 
42
"네, 참 고와요."
 
43
하고 코에 대어 본다.
 
44
"향기는 없어요. 향기는 없어요."
 
45
하고 성순을 본다.
 
 
 

5.2

 
47
과연 그 꽃에는 향기가 없었다. 그 다음에 그 청년은 조그마한 백지 뭉텅이를 들고 풀려 하더니,
 
48
"아니, 이것은 보실 필요가 없어요."
 
49
하고 양복 호주머니에다가 집어 넣는다. 성순은 호기심이 나서,
 
50
"그게 무엇입니까? 보여 주셔요......"
 
51
"아니─"
 
52
"자, 보여 주셔요."
 
53
"보여 드릴까, 웬걸 일후에 드리지요."
 
54
"내게 보낸 선물을 왜 안 주셔요─"
 
55
하고 어리광을 부린다. 서로 부끄러워서 피하던 눈과 눈이 가끔 서로 마주친다.
 
56
"그러면 보여 드릴까."
 
57
"자─ 내십시오."
 
58
하고 성순은 그 청년의 양복 소매를 조금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그 청년은 성순이가 그 처럼 대담하게 자기의 소매를 당기는 것을 보고 놀랐다.
 
59
"그러면 보여 드리지요."
 
60
하고 그것을 내어 성순에게 준다. 성순은 그것을 받아들고 반쯤 몸을 돌리면서 분주히 종이를 편다. 그 청년은 곁눈으로 슬슬 성순의 손을 보면서 담배를 피운다. 꽁꽁 산 것을 다 풀고 나니 나오는 것이 도토리 한 통, 그 청년은
 
61
"하하, 속으셨지요. 그것이야요, 그것."
 
62
성순은 그것을 들고 어쩔 줄 모르는 듯,
 
63
"이게 무엇이야요?"
 
64
"이게 상수리나무라는 크고 굳은 나무의 열매야요. 도토리라는 것이야요. 하하하."
 
65
하고 쾌활하게 웃지마는, 성순은 웬 심펑을 모르고 그것을 손바닥에 굴려 본다.
 
66
"자세히 설명을 해 드려요?"
 
67
"네, 무엇이야요?"
 
68
"그것은 땅에다 심으면 명년 봄에는 노란 움이 나오지요."
 
69
"그러고는?"
 
70
"나와 가지곤 조금씩 조금씩 자라지요."
 
71
"또 그다음에는?"
 
72
"자꾸 자라지요!"
 
73
"또, 그 다음에는?"
 
74
"또 자꾸 자라지요."
 
75
"에그, 그만두십시오. 나는 정말 무슨 뜻이 있다고."
 
76
하고 그것을 내어 던지련다. 그 청년은 큰 변이나 나는 것처럼 두 팔을 번쩍 들면서,
 
77
"아니, 아니, 아니, 뜻이 있지요. 뜻이 있지요."
 
78
"글세 자꾸 자라서는 어떻게 되어요?"
 
79
"자꾸 자라서는 커다란 나무가 되지요. 내가 이번 금강산에서 보았는데."
 
80
하고 팔을 벌리면서, 이렇게 세 아름 되는 나무가 있어요─ 이것이 자라면 그러한 큰 나무가 되지요."
 
81
"그 다음에는?"
 
82
"그다음에는? 이러한 도토리를 많이 맺지요."
 
83
"또, 그 다음에는?"
 
84
"그다음에는 그 도토리들이 다 땅에 들어가서 움이 나서, 자라서, 자라서 자꾸 자라서 또 그와 같은 큰 나무가 되지요."
 
85
"또, 그 다음에는?"
 
86
"그다음에는 또 그렇지요."
 
87
"이제는 그뿐이야요?"
 
88
"네, 그뿐이지요. 그게 재밌지 않아요."
 
89
"그것 참 재미 있읍니다."
 
90
"과연, 재미 있지요? 우리가 꼭 그 재미로 사는데─ 선생이나 제나 성순씨께서도."
 
91
"어째 그 재미로 살아요?"
 
92
"그것을 모르셔요?"
 
93
하고 이윽히 성순의 눈을 보더니,
 
94
"제가 지금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95
"그렇지요."
 
96
"왜 제가 그림을 그리나요?"
 
97
"그리고 싶어서."
 
98
"또?"
 
99
"전람회에 출품하려고."
 
100
"또?"
 
101
"에그 모르겠읍니다."
 
102
"그러니깐 아직 유치하시단 말이야요."
 
103
"물론 제야 유치합지요."
 
104
"아차! 실례했읍니다. 세상에는 성순씨보다 더 유치한 사람도 많은데."
 
105
성순은 좀 격분해서 입술을 깨문다.
 
 
 

5.3

 
107
그것은 다 농담이올시다마는."
 
108
하고 점잖은 어조로,
 
109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미술 없는 조선 사람에게 미술을 주려고 하는 것이야요. 즉 제가 이 도토리가 되어서 움이 나서 자라서, 자꾸자꾸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서 이러한 도토리를 많이 맺잔 말이야요.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지금 그림 그리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지마는 장차는 수백 명 수십 명 있게 하자는 말이지요─ 알아들으십니까. 선생도 그렇지요. 자기 혼자서 아무리 큰 발명을 한다 하면 그것이 무엇이 귀합니까. 선생 같은 화학자가 수백 인 수천 인 나게 해야 비로소 뜻이 있는 것이지요. 안그렇습니까?"
 
110
듣고 보면 그럴 듯도 하다.
 
111
"그러면 이것은 제게다가 선물로 주심 뜻은?"
 
112
"그것까지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113
"그런데 무슨 뜻이 있기는 있어요?"
 
114
"그러면 제가 알아맞혀요?"
 
115
"응, 알아맞혀 보시오."
 
116
하며 벽에 걸린 팔각종을 보더니,
 
117
"벌서 다섯점이올시다. 그런데 왜 아니 오시나. 아, 어디 가신지 모르셔요?"
 
118
잠간 그 청년의 이야기에 취하였던 성순은 문득 자기가 슬픈 경우에 있는 것을 깨달아서 안색이 변하여 지며 한숨을 쉰다. 발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손으로 머리도 만져 보고 턱도 쓸어 보고 제가 제 입술도 빨아 보고 하던 그 청년은 성순의 불쾌한 안색을 보고, 놀란 듯이,
 
119
"왜 어디가 편치 않으셔요?"
 
120
"아니요."
 
121
"그러면 제가 다해서 노염을 품으셔요?"
 
122
"아니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123
"네, 그렇다면 안심이지마는......"
 
124
하고 또 발로 방바닥을 울리기 시작한다. 성순은 한참 주저하다가,
 
125
"집이 가차압을 당했읍니다."
 
126
"가차압?"
 
127
"채권자가 우리 집을 가차압했어요."
 
128
"에? 집행을 했어요? 누가?"
 
129
"함사과라는 이가."
 
130
"함사과?"
 
131
"그런 사람이 있읍니다. 이전에는 우리 집 은혜도 많이 졌다는데 돈 한 삼천 원에 차압을 하다니......"
 
132
그 청년은 눈이 둥그래지더니
 
133
"그래 선생은 무어라고 하셔요?"
 
134
"아까 가차압을 당하고서는 아무 말도 없이 밖에 나가셨지요."
 
135
하고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그 청년은 쾌활하던 빛이 없어지고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았다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136
"그래, 갚아 줄 돈이 없나요?"
 
137
"한푼이나 있읍니까. 토지 문권도 말짱 은행에 들어가고...... 아버지께서는 아까 술만 잡수시고 심화를 내면서 어머니만 못 견디게 조르시고."
 
138
"어머니는 왜? 어떡하란 말이야요?"
 
139
"심화가 나니 그러시지요. 문권을 잡힐 때에는 늘 어머니께서 권하셨다고......"
 
140
하고 치맛자락을 눈에 대고 돌아서며 운다.
 
141
이 때에 안마당에서 두어 마디 큰소리가 나더니,
 
142
"어이구, 참으셔요. 그러면 어찌해요."
 
143
"놓아라, 이것 놓아. 집 다 망했다."
 
144
하는 소리가 나며 실험실 문이 발칵 열리자 미친 듯한 김참서가 옷고름을 풀어 헤치고 뛰어 들어오더니 앞에섰는 성순을 보고,
 
145
"이 계집애 무엇 하러 여기 섰느냐."
 
146
하고 성순의 팔을 잡아당긴다. 그 청년은 황망히 일어나서 김참서에게 인사를 한다.
 
147
김참서는 그 청년의 팔을 잡으며,
 
148
"여보게 내 집이 망했네그려. 육십이나 되도록 죽을 고생을 다하고 집간이나 잡았던 것이 오늘에 와서는 그것조차 다 빼앗기고 말았네. 우리 성재라는 놈은 무엇을 하노라고 제 부모 누워 죽을 자리도 없게 하나, 응."
 
149
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 청년도 아니 울 수가 없었다.
 
150
"너무 염려 말으셔요. 무슨 도리가 생기겠지요."
 
151
"말 말어, 이 실험실인가 무엇인가를 온통 두들겨 부수고 말아야지."
 
152
하고 탁자를 향하여 달려들련다.
 
153
세 사람은 울며 만류한다.
 
 
 

5.4

 
155
"놓아라, 아니 놓을 테냐."
 
156
"글쎄, 참으셔요. 이러면 성재가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157
"성재가 슬퍼해! 제 부모의 누워 죽을 집 한간까지 팔아 먹는 놈이, 그 불효한 놈이, 으흐!"
 
158
하고 몸부림을 한다.
 
159
"어서 놓아. 저게 다 무엇이냐. 저 번쩍번쩍하는 것이 다 무엇이어. 저것이 내 돈을 다 먹었구나. 내가 손발이 다 닳도록 빌어 놓은 돈을 저것이 다 먹었어! 내 저 원수. 엣, 저것을 말짱 깨물어서 먹고 말란다. 먹고 죽을란다─"
 
160
"아버지, 좀 참으셔요."
 
161
"이년, 가만 있거라. 자식도 다 귀찮다."
 
162
"여보, 이러면 정말 집이 망하고 말겠소."
 
163
하고 부인은 참서를 껴안아 앉히려 한다.
 
164
참서는 원래 건강치 못한 데다가 오랫동안 심화로 늙었고 또 소주를 과음하여서 기운이 지쳤던 터이라 그만 기운 없이 펄썩 주저앉는다. 그 청년이,
 
165
"너무 염려 말으셔요. 제희가 다 무사하게 하겠습니다. 어서 들어가 누워 계십시오."
 
166
그러나, 이 말에는 대답이 없고 참서는, '응'하면서 앞으로 푹 쓰러진다. 부인이 깜짝 놀라서 쳐들 적에는 벌써 눈을 뒤집고 숨이 끊어졌다. 청년은 참서를 반듯이 눕히면서,
 
167
"여보, 냉수, 냉수."
 
168
하였다.
 
169
부인은.
 
170
"이게 웬 일이요─"
 
171
하고 푹 쓰러질 뿐이다. 성순은 울면서 대야에 냉수를 떠 들고 나온다.
 
172
청년은 입에 냉수를 물어 참서의 얼굴과 가슴에 뿜고, 성순을 시켜 옆구리를 비비게 하였다. 그러나 성순은 눈물이 가리워 잡히지 못하는 것을 보고,
 
173
"여보시오, 성순씨, 지금 여자가 그처럼 정신이 약해서 무엇한단 말이요. 눈물을 거두고 힘껏 하시오."
 
174
하고 명령을 한다.
 
175
청년은 입으로 뿜는 것이 부족한 듯하여 나중에는 대야에 남은 냉수를 얼굴과 가슴에 푹 쏟았다. 양장판 위에는 사방으로 길을 지어 물이 흘러간다.
 
176
그래도 듣지 아니하므로, 그 청년은 저고리를 벗어 버리고 참서의 배 위에 올라 앉아서 중학교 생리학 시간에 어렴풋이 들어 두었던 인공 호흡법을 실행하였다. 손을 제일 늑골에 대어서 쇄골(鎖骨)까지 올려 흔들 때에 살 없는 참서의 흉부는 마치 해골을 만지는 것 같다.
 
177
부인은 정신 없이 쓰러졌다가 벌떡 일어나서 참서의 창백한 얼굴을 보더니 그 얼굴에 자기 얼굴을 대고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한다. 그 울음 소리를 따라 성순은 소리 없던 울음도 차차 소리를 낸다. 그 청년도 가끔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열심히 인공 호흡을 실행하였다. 그러나, 심장이 이미 마비하여 버린 참서의 몸은 식어가고 점점 굳어 갈 뿐이였다.
 
178
그 청년은,
 
179
"하인 불러서 곧 가서 광교 백의사 오라고 이르시오."
 
180
성순이가 나간 뒤에야 그 청년도 비로소 실내의 어두움을 깨닫고 전등의 나사를 틀었다. 방안에 전광이 가득 차차 창백한 김참서의 얼굴이 눈을 부릅뜨고 볼 때에 그 청년은 소름이 쪽 끼쳤다. 부인은 눈물을 거두고 하염없이 앉았다. 그 청년이 참서의 곁에 가서 손으로 눈을 감기려 할 때에 부인은 청년의 팔을 물리치며,
 
181
"그냥 두시오. 성재나 들어오거든 한번 보기나 하게. 이제 보면 다시는 못 볼 터이니깐."
 
182
"성훈(性勳)은 어디 갔어요?"
 
183
"어디 집에 붙어 있답디까. 어디를 다니는지 밤낮 밖에만 나아가지. 그것도 아버지 애를 끝끝내 태우다가 임종도 못 보고. 맏며느리는 가난한 살림이 싫다고 친정에만 가 있고, 작은 며느리는 철없는 성훈이가 친정으로 쫓아 보내고. 그러다가 이렇게 되니 이것이 웬 일이요. 전생에 무슨 죄악이 과분하여서 이렇게도 팔자가 기구하겠소."
 
184
하고 다시 울기를 시작한다. 청년도 다시 위로할 말이 없었다. 일생을 고생으로만 지내다가 노경에나 좀 낙을 볼까 하였던 것이 운명은 그것도 허하지 아니하였다. 전반생을 돈을 모으기 위하여 살았고, 후반생은 자녀에게 안락을 주기 위하여 살았다. 그는 돈을 모으려 하여 성공하였다. 자녀를 기르려 하여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녀에게 안락을 주고 자기의 여생도 안락 속에 보내기로 성공할 줄을 확신하였으나 그것이 실패되매 그는 이 귀찮은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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