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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서울 生活(생활) ◇

해설목차  서문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1948.3~
김동인
1
새해 봄에 나는 불면증을 정식으로 치료하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2
작년부터 원고료라는 것으로 생활의 기본을 삼은 이래 나의 창작에 대한 태도는 달라졌다. 아직껏은 고답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차차 꺾이어 나갔다.
 
3
열 장 쓴 것, 열한 장 쓴 것이 그 들어오는 금액이 다른지라 간격을 위주하면 작품이 변하여졌다. 그리고 어디서든 글 주문만 들어오면 응하였다.
 
4
불면증 치료에 매일 다대한 비용이 걸리는 나는 그 비용을 구하기 위하여 수없는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5
그 3월에 안해가 서울로 나를 찾아왔다. 안해와 협의하여 서울로 이사오기로 작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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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조선에서 원고료로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더우기 지방에서는 못할 노릇이다.
 
7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울에 자리잡기로 한 것이었다.
 
8
서울 살림의 준비ㅡ 우선 집을 한 채 월부로 사기로 하였다. 그리고 가족 다섯 사람의 서울 살림은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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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글의 발표기관이란 순전히 신문이었다. 그런데 신문 가운데서는 조선일보가 그 대표자였었고, 조선일보가 그 발행은 그냥 유지하여 오나 아주 위태로운 형편이었고, 《중외일보》는 中央日報(중앙일보)로 변하여 가지고 나다 말다 하는 형편이었고, 《매일신보》가 동아일보와 대항하여 꾸준히 나오는 단 하나의 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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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문은 대체로 창작소설은 싣지 않는 편이라, 신생 소설문단은 그 발표기관을 전혀 못 가졌다. 《동광》 혹은 《別乾坤(별건곤)》(《개벽》의 변형물) 등에 간신히 지면 몇 페이지가 창작을 위하여 제공되는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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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상태 아래서 집을 월부로 사며 새살림을 시작하자니 고생은 여지없이 컸다. 게다가 원고료는 저절로 정확히 지불하는 데는 적고 필자의 수효는 늘고 보니 원고료는 저절로 차차 내려서 예전 《조선문단》이나 《개벽》에서 내주던 액수의 4분지 1로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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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문사의 생활이 얼마나 고단하였는지는 안서(김억)의 시 添削料(첨삭료) 문제로 보아도 알 수 있다. 고깃데상의 호화로운 시절의 뒤에 안서의 생활은 지극히 영락되어 그날그날의 담배 용돈에도 딸리고 있었는데 그 안서가 한 가지의 기책을 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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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가 안출했는지 주요한이 안출했는지는 모르지만 요한이 주간하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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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에 ‘신시 첨삭료’를 두어서 신시 한 편에 50전(30전이든가) 우표를 동봉해 보내면 안서가 첨삭하여 준다는 말하자면 일종의 잡지 선전책에 지나지 못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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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수입된 첨삭료인 우표를 안서는 또한 《동광사》에 몇 할인가 하여 팔아서 술값 담배값에 쓰던 것이었다. 이것은 《별건곤》 잡지에서 ‘新時(신시) 땜장이’라고 험구한 덕에 안서는 ‘시 땜장이’로 한 때 이름이 높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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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안서라는 친구는 그 성질이 몹시 단순하니만치 한 번 누구를 밉게 보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고칠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서 춘원(이광수)이 오산중학 교원 노릇을 할 때 춘원의 문하에 공부를 하여 말하자면 춘원과 師弟(사제)의 분이었지만, 무슨 까닭으로 춘원과 틀렸는지 춘원과는 아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춘원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안서에게 글을 써달라는 부탁도 안한 것이 안서의 노염을 저버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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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땜장이’로까지 타락을 하면서도 동아일보에 글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때 춘원더러 안서의 글을 좀 사라고 권고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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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원고면 얼마이고 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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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춘원과 의논하여 동아일보 가정난에 「名婦列傳」(명부열전)을 한동안 계속해서 쓰기로 하고, 안서에게 그 뜻을 말했더니 안서는 동아일보에는 쓰지 않는다고 고집한다. 그것을 가까스로 얼려서 쓰여 가지고 그 원고를 춘원에게 갖다 맡겼다.
 
20
몇 회나 계속했는지 모른다. 몇 회 계속하다가는 뚝 끊어지고 말았다. 동아일보에 가서 알아보니 續稿(속고)가 오지 않아서 중단하였다는 것이다.
 
21
그래서 안서에게 속고를 채근하였더니 안서 대답은 속고 찾으러 오지 않아서 안 주었다는 것이다.
 
22
짐작컨대 안서의 생각으로는 속고를 연해 졸리어서 부득이 집필하고 싶었을 것이요, 동아일보 쪽에서는 안서가 자진하여 가져오면 내주거나 할 마음 보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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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명부열전」은 몇 번 나가다가 끊어지고 말았다. 이 일을 가지고 누가 잘 했다 못 했다 할 것은 없지만, 결국 손해를 본 것은 안서였다.
 
24
당시에 안서는 여러가지 의미로서 불행의 대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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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소절수를 떼며 놀아날 때도 선술집이 아니면 과즉 카페였다.
 
26
그가 서울의 살림을 걷어치우고 가족은 모두 시골로 내려보내고, 낙원동 어떤 여관에 몸을 잠근 때는 경제적으로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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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에게 애인이 하나 생겼다. 진남포 어느 소학교 여훈도로서 좌우간 안서의 손에 걸려들었으니 엔간히 만만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28
성씨가 제각기 다른 前夫(전부)의 소생이 몇 남매 있었다 하니 그 여인의 품행 가히 짐작할 것이리라.
 
29
안서는 그 여인을 서울로 불러 올렸다. 여인은 사내가 부르니 온 것이요, 안서는 여인이 생활비를 대려니 기대하였던 것이다.
 
30
경제적으로 서로 상대쪽을 믿었으니만치 덜컥 서로 만나면 그 새에 여러가지의 델리케잇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
 
31
여인은 안서를 믿고 서울로 왔다가 그간 다시 티각태각 진남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32
그 서울서 살림할 때의 상황을 염상섭이 상섭 독특의 차근차근한 필치로 소설화한 것이었다.
 
33
나는 그때의 외로운 살림에 동정하였다. 그래서 내가 힘써서 그 여인을 도로 안서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기로 약속하였다.
 
34
약속에 의지하여 진남포로 가서 그 여인을 만나 보았다.
 
35
벌써 남편을 경험하고 그 뒤 또 남편 아닌 사내를 몇 경유한 그 여인의 다변성에 적지 않게 압도되면서 안서의 그 새의 고적한 생활을 들어 호소해서 그 여인에게 다시 상경해서 안서를 위로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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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女(미녀)(그의 성이 강씨였다)는 그런다고 약속하였다.
 
37
그러면서도 나도 내심 걱정하였다. 이 여인의 성격은 안서와 결코 서로 맞지 않을 터인데 안서는 무엇 때문에 이 여인에게 그렇게도 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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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金東仁) [저자]
 
194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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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