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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분(花粉) ◈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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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이효석
 

1. 7

 
2
단주는 한 가지를 계획하면 낙자가 없다. 세란과의 경우가 그랬고 미란과 의 경우가 그랬고 옥녀와의 경우 또한 그랬다. 하기는 그중에서 옥녀와의 경우가 가장 헐하고 수월했던지는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성공했던 것은 옥녀 자신이 발을 맞추어 주고 스스로 걸어와서 그 계획에 참가해 주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옥녀는 그 하루를 한계로 사람이 변한 듯 지저거리고 날뛰고 새장 속에서 놓여난 듯 히히덕거렸다. 단주가 전과는 달라서 은인이라는 생각이 나면서 그 앞에서 자기는 노예인 듯 그를 위하고 받들었다. 푸른 집은 두 사람을 위해서 생긴 보금자리, 그 속에서 시원스럽게 휘 돌아치고 단주를 실컷 보고 농탕치고 하는 것이 다시 없을 행복이었다.
 
3
실속으로는 피서지 별장보다는 나아서 살림살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흡족했다. 별장에서처럼 의자가 부족할 리도 없고 레코드를 탄식할 것도 없고 부엌의 양식을 걱정할 것도 없었다. 가게 차인꾼에게 단주는 얼마든지 먹을 것을 분부했고 음악도 시들해서는 걸어논 레코드를 바늘이 갈리는 대로 언제가지든지 버려 두었고 미란이 오면 핀잔을 맞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피아노를 밤낮으로 울리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면서 목청을 놓아 노래를 부르며 두 사람만의 집안이 전보다는 한층 요란하고 수선스러웠다. 피서 못 간 화풀이로 목욕통에는 철철 넘치게 수돗물을 대놓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철벅거리고 단주는 수영복을 입고 옥녀에게도 새빨간 한 벌을 사 입혀서 뜰을 해변으로 벌거벗은 채로 나서서는 수도의 호스를 끌어 나무, 꽃밭, 풀 숲, 할 것 없이 물줄기를 대서 비온 뒤같이 뜰을 온통 질펀하게 적셔 놓고는 무지개 돋은 그 속에서 꽃을 밟고 숲 속에 숨기며 날을 지웠다. 옥녀에게는 주인들 떠난 것이 자기의 팔자를 고쳐준 듯 기쁜 날이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있도록 축수하고도 싶었다. 자기를 생각하는 단주의 마음도 길이길이 변하지 말고 언제까지든지 같도록 원했다.
 
4
"가짜로 사람을 농락해 보구는 이제들 돌아오면 되루 본체만체하려구."
 
5
"난 이 집에서 너같은 아이는 없다구 생각하는데."
 
6
"정말. 미란이보다두."
 
7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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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란 이보다두."
 
9
"그럼."
 
10
"요……. 생판 거짓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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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집는 바람에,
 
12
"아야야얏."
 
13
비명을 올리면서 단주는 풀숲으로 나뒹굴며 쓰러진다.
 
14
"미란이보다 낫다면 세상에 원할 것이 없게. 열두 번 죽어서 그렇게 태어날 수 있다면 열두 번이래두 죽겠다. 바른말을 해달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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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났으니까 그따워 소리지."
 
16
"밀려나긴 누가 밀려나. 괜히 칭찬해 줘두 그러는구나."
 
17
"정말 미란이보다 낫단 말야. 그럴까. 해가 서에서 돋는 셈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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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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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속으로 얼른 피서를 가게 됐으면 해. 그 눈치 누가 모를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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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는 누가. 그까짓 피서를 누가 가. 여기 이렇게 있는 게 얼마나 낫게."
 
21
여자의 앞에서는 마술에 걸린 것같이 어디까지가 본심이고 어디까지가 가 짜인지 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참으로 미란을 옥녀보다 못하다고 생 각하는지 어쩐지 피서지로 가기를 속으로 원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미란과 옥녀는 비교할 것이 아님이 사실이었고 피서지로 가고 싶다고 원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옥녀의 앞에서 꼬집히면서 대답한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는 제 마음조차 알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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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이 어리둥절하면서도 눈앞에 다구지게 맞붙어 앉은 옥녀를 역시 고 운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만은 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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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말해봐.---피서 안가구, 내가 미란이보다 낫구. 또 한번 말해 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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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 안가구 미란이보다 낫구."
 
25
"왜 이리 수다스럽게 묻는구 하면---그것이 여자루서 제일 듣구 싶은 말 이거든. 누구보다두 잘 생겼다는 것. 옆을 떠나 주지 않겠다는 것. 누구나 여자의 맘을 뒤집어보지 겉으로는 점잖은 체해두 이 원을 품구 있기는 일반일 테니. 여왕으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누구 한 사람 빼놓지 않구 죄다 그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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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부지런히 지껄이고는 옥녀는 벌컥 단주의 팔을 끌어 일으켜 손목을 끌고는 뜰을 내닫는 것이다. 단주는 완전히 허수아비였다. 소녀의 열정의 포로가 되고 있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별수없이 지시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 위치의 바뀌어진 것을 사실 속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그것이 있을 때부터 두 사람의 자리는 정반대로---단주가 아래로 옥녀가 위로 바뀌어진 것이었다. 분화산같이 터져 나오는 소녀의 열정에 눈을 휘둥그렇게 굴리면서 어느 결엔지 거기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청으로 들어 가면 창으로 나무 그림자가 그대로 들어와서 푸른 그늘을 지은 그 아래에서 옥녀는 단주를 위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냉장고 속에 흐붓하게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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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 더위는 유난스럽게도 심해서 줄곧 찬물 속에나 얼음 속에 있기전에는 대청에서도 견디기 어려워서 크림을 먹어도 그때뿐 더위가 확확치트려 와서 단주는 주제스런 수영복까지 벗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늘속에 가려진 집안은 밖 세상과는 떨어진 별천지여서 그 속에서는 옥녀도 단주를 본받았다. 기발하고도 자연스런 의욕 원시로 환원하려는 것이다. 그 야릇한 세상 속에서 원시인의 자웅은 멀거니 서 있기가 거북해서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28
옥녀가 내달으면 단주는 뒤를 좇아서 방에서 방으로 기어코 옥녀를 잡아 버 린다. 구석에 쓰러진 것을 윽받아 대고 항복을 받으면서 원시의 풍속을 모 방했다. 정복이요 점령인 것이다. 그렇게 처녀지를 한 곳 두 곳 점령해서 영토가 점점 늘어가는 것이 단주에게는 둘도 없는 인생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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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른 체만 하는 날이면 난 죽을 테야."
 
30
"모른체는 왜. 누구보다두 널 제일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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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내가 눈에 들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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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내가 이 집에 온 첫날부터."
 
33
"미란이른 좋아한 건 좋아한 거구 너두 맘에 들더구나."
 
34
"한꺼번에 두 사람씩을 좋아한단 말이야. 사람이 아니구……"
 
35
"두 사람을 왜 못 좋아해. 넌 꽃밭의 꽃을 꼭 한 가지만 좋아하니. 달리 아 좋구 애스터두 좋구 카카리아두 좋구 해바라기도 좋구 봉선화 패랭이 꽃 다 좋지 한 가지나 싫은 것이 있다더냐. 꽃을 가지구 먼 좋구먼 싫다구 태를 티우는 녀석같이 거짓말쟁이는 없더라. 꽃이란 다 좋은 게란다. 널 꽃이라는 건 아니나 미란이를 좋아하면서 너까지 좋아하는 게 거짓말이란 법이 더디 있다더냐. 미란이를 보는 한편 눈으로는 너를 뱀같이 노려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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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맘에 들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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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두 좋구 코두 좋구 입두 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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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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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두 복스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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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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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두 맘에 들구 살결두 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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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만은 미란에게두 밑지지 않는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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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그 다리. 다리두 곱구 발두 자그마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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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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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두 전얌하구 가슴두 탐스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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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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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군. 그리군 모두가 곱지 한 가지 나빠지는 데가 있다더냐. 손가락에서 발가락까지가 어깨 허리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렇게 맘을 뒤흔드는구나."
 
48
단주는 몸을 던지면서 말 이상의 설명을 몸으로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49
옥녀를 한층 부채질해 주는 결과가 되어서 찰거머리같이 엉겨들게 될 때 단 주는 자기가 시작한 그 열정의 도가니 속에서 도리어 숨이 막히고 기가 지쳐서 낙지다리같이 휘줄그레해지고는 말았다. 세란과의 때와도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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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에서 걸어 오는 열정이 처음에는 단술이어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 차차 진해지면서 모르는 결에 흠뻑 취해 와서 기진맥진한 끝에 혼몽상태에 이르게 되는---그런 눅진한 열정을 욕심스럽게 요구하는 점에서 옥녀는 세란과 흡사했다. 조그만 몸 속 어느 구석에 그런 무진장의 열정이 숨어 있나를 의심하면서 단주는 깜빡 취해버리고야 말았다. 탁하고 혼몽한 속에서는 한 모금의 찬물을 원하게 되듯 단주에게는 으레히 한 줄기의 깨끗하고 맑은 것 미란을 생각하게 되는 --- 것이 버릇이었다. 세란과의 때에도 번번이 미란의 자태가 날카롭게 솟던 것이 이제 옥녀와의 불더미 속에서도 역시 미란의 초초한 환영이---그만이 세상에서 귀하고 신성한 것인 듯 눈부시게 떠오른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미는 것이나 환영은 손가락에 닿지 않고 깜박 꺼지고 자기의 몸만이 추접한 불더미 속에 남는다. 불더미 속이 답답해지고 구역이 치밀면서 좀 더 맑은 정신으로 사라진 환영을 찾고 높은 것을 구하려는 마음에 벌컥 자리를 일어서려면 옥녀의 손이 놓아주지 않는다. 옥녀를 벅차고 나가서 맑은 바람을 쏘여야겠다는 의욕이 솟으면서도 눈앞의 바오리 에 묶여 꼼짝달싹 못하면서 번민 속에서 헐떡거리게 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이 여겨지면서 자기가 파놓은 함정 속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하 고 언제까지나 신음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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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가 그리워하고 꿈꾸는 미란에게는 영훈과의 맑은 사랑이 날로 덥게 피어 가는 중 푸른 집의 혼탁한 열정이 반드시 전염되었을 법은 없으나 별장에도 돌개바람같이 혼란이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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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시들해지고 춤들도 단주로워져서 다른 신기한 소일거리는 없나 하고 고심들 하게 되어 유다른 것이 있으면 정신을 쏟게 되었다. 피서로서는 역시 도회 가까운 바닷가가 변화 많고 번화해서 낫다는 것을 깨달으며 세란은 한시를 무료히 여기게 되었다. 미란과 영훈의 무료해 하지 않는 자태들을 바라보면서 그 향기를 자기도 한몫 맡고는 싶으나 영훈은 단주와는 애초에 인금이 다른 것이요, 손가락 하나 범하는 수 없어서 아쉬운 대로 단주나 속히 왔으면 원하면서 현마와 만의 단조한 풍습에 싫증이 났다. 하루는 등산의 제의가 나 자세란도 무거운 몸에 잠방이를 입고 륙색을 짊어지고 따라 나섰다. 영훈까지 끼어서 일가 총출동으로 앞 개울을 건너 물줄기를 따라 올라갔다. 일대에는 싸리꽃이 흔해 그꿀이 풍미가 훌륭하다는 바람에 수나 좋으면 벌집을 만나 꿀을 뺏어 오자는 것이었으나 벌은 눈에도 띠이지 않고 험한 숲 속을 헤치노라고 결국 반날의 노독을 얻어 가지고 돌아왔을 뿐이나 날을 지우자는 것이 목적인 그들에게 그 하루의 원족으로서는 흡족한 것이었다. 유쾌한 소득이 있다면 개울가를 더듬어 내려올 때 눈에 띠인 한 자웅 의 사슴의 아름다운 정경을 보았음이다. 깊은 골짝에서 물을 마시러 내려온 모양인 듯 반석 위에 서서 긴 목을 뽑고 유유하게 물을 마시는 알록 자웅의 광경이 속세의 것 아닌 고결한 것으로 보였다. 그 산골짝의 인상적인 그림 이 가슴속에 배면서 골짝을 더듬어 내려오는 것이 미란에게는 여간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부락까지 돌아왔을 때에는 피곤한 김에 해는 길게 남았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온천으로들 내려가 목욕을 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는 늦어서야 별장으로 돌아왔다. 피곤은 했어도 긴 날어어서 초저녁부터 침실로 들어가기도 멋쩍은 판에 객실에 불을 켜놓고 이곳저곳에 앉아 소설책에 정신을 팔기 시작했다. 다 각각 몇 권씩의 소설책들을 지니고 왔던 것이 다행이어서 산속에서는 영훈이 날마다 온천에서 갖다 주는 신문과 함께 오락물의 하나가 되었다. 평소에 책읽기를 싫어하고 잔 한줄 한 줄을 어떻게 꼼꼼스럽게 읽어 가노하고 글과는 담을 쌓고 있던 세란이나 죽석도 별수없이 무료한 속에서는 그 한 줄 한 줄을 꼼꼼스럽게 읽을 수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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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가지고 왔다는 소설들이 「데카메론」이니 모파상의 장편소설이니 슈니츨러의 단편들이니 하는 것들이어서 그런 소설들을 차례로 읽으면서 세란은 자기 비위에 맞는 대문만을 이해하고 감동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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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무슨 책들을 논아 쥐었던지 번히 서로들 아는 책이면서도 진진한 대문을 읽을 때에는 일종의 비밀을 느끼면서 자기만이 그것을 알고 있는 듯 숨은 기쁨을 입속에 가만히들 감추었다. 현마가 읽고 있었던 것은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의 번역이었다. ‘방앗간 집’의 요절을 할 이야기에 눈초리의 주름을 잡으면서 술잔으로 한 모금 한 모금 목ㅇㄹ 축이고 있노라니 세란과 미란이 뛰어와서 조롱을 하면서 위스키의 병을 번갈아 빼앗아서는 한잔씩들 기울이는 것이다. 술을 먹는 버릇도 별장에 와서 익힌 것인데 심심한 판에 맛보게 된 것이 이제 와서는 제법 쓸쓸한 때의 술 먹는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석의 허물인지도 모르기는 하다. 떠날 때에 가게에서 순수한 외국치라고 자랑삼아 포도주니 큐라소니 진이니 위스키니를 여러 병씩 짐 속에 넣었던 것이다. 현마 혼자로서는 그 많은 것을 다 제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옆에서 거들기 시작한 것이 먹게 된 시초였고 현마는 양코 스키의 아들 왈리엘군과 어느 결엔지 친하게 되어 위스키 병이나 들고 가면 워카를 몇 병이든지 바꾸어 올 수 있어서 별장에는 술만은 삘 세기 없었다.
 
55
세란과 미란이 현마에게 매달려 술들을 뺏는 것을 보고 죽석도 식성이 동하 지 않는 것이 아니어서 슬그머니 일어나서 포도주 한 병을 들고 나온다. 여자들 비위에는 그것이 맞는다는 듯이 세란과 미란은 즉시 그리로 몰려가서 세 사람이 한패가 되어서 현마와 대거리나 하는 듯 불란서에서 왔다는 떫은 포도주를 벌떡벌떡켜는 동안에 접시 위에 햄을 배어 놓고 치즈를 저며 놓고 완전히 술추렴이 되고 말았다. 피곤한 판에 자옥하게 저물어가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한잔 두 잔 기울이는 것이 제법 홍취가 도도해지면서 도회에서 맛보지 못하던 홍취를 숨은 산속이기 때문에 맛볼 수 있게 되었음을 행복스럽게 여기는 동안에 흠뻑들 취해 갔다. 어른 앞에서 못하던 장난들을 어른이 없는 새어 숨어서 살며시들 해보는 아이들의 놀음과도 같은 것이 여자들의 술타령인지도 모른다 읽던 . 책들도 던져 버리고 수군덕수군덕 이야기들을 하다가 거나한 김에 축음기를 틀어놓고 춤을 추다가는 흔들거린다 쓰러진다 하는 것이었다. 현마도 혼자서 조금씩 머금을 때에는 모르던 것이 눈앞에 어릿거리는 여자들의 자태를 바라볼 때 눈이 흔들거리면서 까빡 취했음을 깨달았다. 건들건들 춤추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전신이 휘뚱휘뚱 기울어지면서 들고 있는 책의 활자가 요술같이 커졌다 작아졌다 해갔다. 미란이 와서 책을 차버리고는 손목을 끄는 바람에 허전허전 일어서서 그 숲에 한몫 끼이게 되었다. 미란은 유쾌한 마음 갈아서는 뛰어가서 영휸을 끌고도 오고 싶었으나 취한 꼴로 발길은 위태할 것 같아서 내일도 날이거니 하고 섭섭한 생각을 억제할 수밖에는 없었다. 춤이 아니라 쓰러지고 붙들고 난판들이었다. 현마는 닥치는 대로 세 사람을 붙들어서는 팔목을 쥐고 발등을 밟고 하 는 통에 나중에는 그에게 붙들리지 않으려다가 그대로 까막잡기가 되어 버렸다. 현마는 손수건으로 두눈을 싸매고 방구석으로 몰려다니는 세 사람을 잡으려고 팔을 벌리고 어둠 속을 더듬게 되었다.
 
56
"두 눈을 싸매고 내 찾으랴는 것 그 무엇이냐……"
 
57
소리를 높여 타령을 시작하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떼 놓는다.
 
58
"…… 눈은 어둡구 앞 음액히구 날은 저물구 길은 먼데 내 찾으랴는 것 무엇이며 내 원하는 것 무엇이냐 꼭 한 가지 원하는 것 무엇이냐 자나깨나 원하는 것 무엇이냐 자내깨나 원하는 것 무엇이냐 하늘에두 말 못 하구 땅에다 두 말 못 하구 달에다 두 말 못 하구 새에게두 말 못하구 맘 속에만 파묻어 두구 내일상 바라는 것 무엇이냐……"
 
59
"취했어 취했어 잠꼬대를 하나 성주풀이를 하는 셈인가 경상도 안동 땅에……"
 
60
세란 자신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벽에 면상을 부딪치고 비틀비틀 되밀려나 오는 것이었다. 뒤를 따르는 현마도 같은 벽에 호되게 맞치면서 쓰러지더니 털고 일어나 여전히 중얼거린다.
 
61
"……황금이야 아니로다 권력 아냐 아니로다 부귀 두 아니요 영화두 아니요 내일생원하는 것 아무게두 말 못할 내 맘 속에만 감돌구 있는 것 생각만 해두 무안하구 무섭구 그러나 내 목숨 있는 동안 자나깨나 뗄수 없는 생각이 몸이 멸망하기 전에는 어쩔 수 없는 생각성인군자의 맘 내 모르고 석가 예수의 속내 모라 두 범부의 이 내 마음 거짓없는 이내 마음 어쩌는 도리 없도다……"
 
62
"수수꺼낀 가장 타령인가. 그럼 난 여자의 맘을 일러 주지.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원하는 게 무엇인데. 어디 어디 알아 보면 용하지……"
 
63
휘젓거리다가 세란은 의자를 차면서 쓰러진다. 현마 또한 밀리는 의자에 다리가 걸려서 쓰러지면서 세란을 잡아 버렸다.
 
64
"여자가 제일 원하는 것 그까짓 걸 모를까바. 사내를--쵸-서가 머랬드라---옳지 사내를 깔랴는 것, 내주장해 보랴는 것, 에잇 싫다 세상에서 여편네 같이 시들한 게 있을까 늘 신는 구두 식성없는 아침 상 빛 낡은 옥편책 중한지는 모르나 시들하고 김빠진 것 내 원하는 것 그것 아니다 물러가라 내 앞을 막지 마라 내 찾는 건 아직 멀다……"
 
65
밀쳐 버리는 바람에 세란은 마루에 코를 박고 넘어졌으나 혼몽한 속에서 무엇이 무엇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며 세상이 돌아가는지 섰는지 자기를 밀친 것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아물아물하는 의식 속에서 두 눈을 가슴츠레 뜨고 있을 뿐이었다. 고기떼같이 함께 몰려다니고 있던 죽석은 의식이 혼몽한 속 에서도 온전히 정신들을 잃은 미친 짓들에 겁이 나면서 그만 침실로 숨어 버릴 양으로 세란의 팔을 끄는 것이었다. 떼에서 밀려난 외마리 고기같이 아직도 의자 좌우로 빙빙 도는 미란을 쫓으면서 현마는 여전히 웅얼거린다.
 
66
"솔로몬이 부럽다면 그의 왕위 아니요 그의 보물 아니요 그의 지혜원할소냐 내 탐내구 부러워하는 건 그의 사랑 수많은 사랑이로다 내 솔로몬 되기를 원하나 원하는 사랑한가지두 얻지 못했도다 그를 생각할 때 내 맘 뛰구 내 속 타다 흡사 내 고향인 듯 그걸 생각할 때 슬퍼지구 눈물지다 고향 떠나 살 수 없는 듯 근심에 차서 가슴 쓰리도 다 밤중에나 새벽에 나 아이 같이 눈물지으며 먼 하늘 바라 보구먼 별 생각하며 고향을 얻을날 원하도다……"
 
67
죽석은 세란을 데려다 눕히고 자기도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린 뒤였다. 그제서야 미란도 자기 혼자만이 남아서 쫓기고 있는 것을 깨닫고 멋도 없거니와 지치기도 한 판에 현마에게 항복을 하고 화평을 구하려고 했다.
 
68
"우리두 그만들 두어요. 밤두 깊었으니 어서들 쉬세요."
 
69
"나는 항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 평생을 걸려서두 찾을 건 찾구야 말 걸."
 
70
달려드는 현마의 기세에 미란은 웬일인지 덜컥 겁을 먹으면서 허둥허둥 뛰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갈 때 현마도 뒤를 쫓아 그를 문간에서 잡아버린 것이다.
 
71
"내 원하는 건 그대 내 잡으려는 건 그대---"
 
72
죽석과 세란들은 침대에들 쓰러져서 눈들을 감았을 뒤이라 강감한 속에서 미란은 취기가 사라지고 정신이 띄었다.
 
73
"얼른 방에 가 주무세요."
 
74
"애써 잡은걸 그렇게 호락호락 놓을 줄 알구."
 
75
눈을 싸맸던 손수건을 풀어버리고 현마는 앞으로 다가선다. 그와 함께 여러 해를 살았고 그의 아래에서 철이 들다시피 했건마는---함께 동경을 여행 했을 때에는 같은 여관에 들고 피아노를 사준다기에 입술까지를 허락했던 그였마는 그날 밤 그 순간같이 무섭고 험상궂게 바라보인 적은 없었다. 동 경 여행 때에는 자기의 지각이 덜나고 그의 태도도 부드러웠던 탓일까. 오늘의 그는 부드럽기는커녕 세상에서도 사납고 진저리나는 것으로 바라보인다.
 
76
"들어오면 소릴 지를 테예요. 모두들 깨나서 집안이 빨근 뒤집히게."
 
77
"어디 질러 보지. 내일로 세상이 뒤집히구 내 한 몸이 멸망한 대두…… 날 아저씨로 여기지두 말구 악마로 여기든지 무엇으로 여기든지 소원대로 ---"
 
78
"정말 지를 테예요."
 
79
"이러거든."
 
80
방문이 덜컥 닫기면서 두 사람은 바람에나 불린 듯 한꺼번에 방안으로 밀려들어가고 말았다. 순간 미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찢어진 듯도 했으나 금 시 자갈을 머금은 말같이 목소리는 끊어졌고 도수장으로 끌려들어간 후의 무서운 침묵만이 남는 것이었다.
 
81
두 눈을 싸매고 두 팔로 더듬으면서 내섬긴 현마의 장황한 성주풀이는 취한 바람에 나온 헛소리였던가 진정에서 나온 참소리였던가. 현마 자신에게 물어도 모를는지 모른다. 그는 사실 자신의 마음조차도 똑바로 헤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82
온전히 악마의 변신이었다. 만약 도회의 집이었던들 그래도 거기까지 이르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늘 살던 집, 늘 살던 습관과 질서 속에서는 아무리 마력을 빌린다고 해도 수월하게 인습과 질서를 깨트릴 수는 없다. 달라진 주위환경과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는 개 힘이 나고 부락용기가 솟는 법으로 산속의 익숙하지 않은 공기와 허수한 풍속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틈을 주어 허랑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현마의 음모와 불법은 확실히 땅의 궁벽함에도 말미암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83
얼마 후 미란이 문을 박차고 내달아 왔을 때에는 넋을 잃은 것같이 기맥이 빠져 보였다. 어쩔 줄 모르고 미쳐서 날뛰는 고패를 지난 후 실망과 낙담 속에 가라앉은 그때의 고요한 자태였다. 어깨가 떨리는 것은 느끼는 까 닭인 듯하다. 기어코 목소리를 놓으면서 울음이 터지는 것이었으나 즉시 목을 누르고 입을 막는 까닭에 울음소리는 뚝 뚝 끊어지면서 그 대신 전신이 파도같이 흔들렸다 현마가. 따라 나와 잠자코 고요한 속에서 미란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허물을 진 직후의 사람의 마음같이 착하고 어질어지는 때는 없다. 현마의 평생으로도 그 순간같이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동정이 솟은 때는 없었으리라. 미란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에는 거짓도 음모도 없었던 것이요, 다만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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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이 생각엔 지금 내가 오죽이나 미울까. 밉거든 어떻게든지 마음대 루 속 시원할 대루 해두 좋아. 원수를 갚든지 어쩌든지. 어떤 괴롬이든지 달게 받을게."
 
85
그러나 미란은 어깨를 다치는 그의 손을 물리쳐 버리면서 잠자코 넓은 객실을 걸어간다. 세란과 죽석은 아마도 지금쯤은 단꿈속을 헤매이고 있을 듯한 지붕 아래에 망간 일어난 비극을 알 도리 없이 집안은 더없이 고요하다.
 
86
"어떻게 하면 미란이 맘이 시원할꾸.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쓰러져 보일 까. 내 손으로 내 몸을 죽여 보일까. 소원이라면 내 무엇이든지 하지."
 
87
미란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 현마는 처녀의 고집에 겁이 났다.
 
88
"야밤중에 어디루. 이 어둡구 늦은데."
 
89
따라 나갔으나 미란은 밖으로 나가자 놓인 말같이 어둠 속을 쏜살같이 내 달음 돌아다보지도 않는다.
 
90
"미란. 미란이……"
 
91
부르면서 몇 걸음 따라 내려가도 헛일이어서 미란의 자태는 볼 동안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92
"미란. 미란이……"
 
93
목소리조차 없다. 야밤중이라고는 해도 그 주제로 뒤를 쫓는 것이 수상하고 우스울 것 같았고 미란의 달아나는 방향이 온천 쪽임을 안 까닭에 영훈에게로 가는 것임이 틀림없을 듯해서 현마는 그대로 발을 돌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94
"내 진 죄가 그렇게두 큰가. 무슨 벌어든지 달게 받을 테다. 무슨 벌이 든지……"
 
95
그것을 원할 때에는 그 원만이 세상에서 가장 바르고 떳떳하고 귀한 것인 줄 알았던 것이 지금 와 보면 그 귀한 원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 자기 한 사람의 욕심이었던 것을 안 것이다. 남의 뜻을 뺏고 희생해서 손에 넣게 되었을 때 그것은 벌T 원이 아니고 죄였다. 그 허물을 덜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빌고 싶은 마음조차 솟았다. 방으로 들어와 의자에 주저앉았을 때 던져진 소설책들이며 쓰러진 술병들이며 까막잡기를 한 뒤의 어지러운 모양이 밝아가는 현마의 눈에는 여러 해 전에 지나간 옛일의 장면같이 먼 것으로 어리우면서 무거운 생각이 가슴속에 꽉차고 들어앉는 것이었다.
 
96
이튿날 아침 별장에서는 북새가 일어났다. 간밤 까막잡기 이후의 일을 모 르는 세란과 죽석에게는 미란의 자태가 안보임이 수상도 하고 걱정도 되었 다. 산보를 나간 것이면 얼마 안가 돌아오려니만 짐작한 것이 아침이 훨씬 넘었고 아무리 영훈에게는 눌러간다고 해도 때를 빠진 일은 없었는데 하고 근심을 할 때 현마도 겉으로는 시침을 떼고 있으나 걱정되지 않는 바 아니 어서 스적스적 온천으로 내려가 보았다. 놀란 것은 온천에도 미란의 자태가 없는 것이다. 영훈은 현마의 설명을 듣고 걱정을 하면서 근처의 수풀 속과 개울가를 찾아보나 종시 눈에 띠이지 않는다. 그 길로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미란이 돌아왔을 리는 없었고 별장 안은 발끈 뒤집혔던 것이다.
 
97
미란은 간밤 무서운 절망 속에서 영훈을 찾재도 마음이 허락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여관에 밤중에 투숙할 수도 없어서 겁도 잊어버리고 시오리나 되는 밤길을 역까지 걸어나갔다. 걷는 동안에 눈물도 말라 버려서 처음에는 캄캄하던 마음속에 차차 영훈의 자태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내내 마음을 위로하고 채워 주는 것이었다. 막차 시간을 대어서 서울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 줄을 꿈에도 알 리가 없어서 현마들은 혹시 철없는 짓이나 저지르지 않았을까 하고 종일토록 산속과 물속을 헤매이다가 저녁때가 되었을 때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현마는 미란을 찾아 한 걸음 먼저 고향으로 가기로 했다. 단주에게 전보를 쳐서 자기와 교대로 떠나도록 분부해 놓고 역으로 향해 저녁차로 떠난 것이었다.
 
98
단주는 전보를 칭탁해서 옥녀를 간신히 떼 놓고 구미양행과 만태와 함께 후반기의 늦은 피서를 떠나게 되어 역시 그날 밤차를 탔다. 그런 까닭에 이 들 일향과 현마와는 타고 있는 차 속에서 길이 어긋나서 남북으로 각각 다른 목적들을 품고 모르는 속에서 어깨들을 스치고 지난 것이었다.
 
99
현마는 서울 거쳐 일주일 만에 고향인 도회를 찾은 것이나 그다지도 마음을 죄이게 한 미란의 자태가 집에도 없는 것이다. 옥녀는 눈을 멀뚱하게 뜨고 대체 웬일들인가 필연코 무슨 일이 있었지 하면서 현마를 바라보았다.
 
100
집으로 안 들어온 이상 고향으로 돌아왔을 리는 만무하다고 현마는 회사 사무실도 보고 영훈의 연구소도 기웃거린 후에 크게 실망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뉘우침이 커가고 근심이 늘었다. 집에 들어가 대청에 앉을 때에는 주인 없는 피아노의 검은 자태가 유난스럽게 눈을 끌면서 원래의 시초는 저것이 아니었던가 그까짓 피아노쯤이 , 미란에게 비기면 무엇인가, 나라를 가졌다 면 그 반이라도 끊어 주고 싶은 미란이 아닌가 싶으면 저지른 허물을 생각 할수록에 미란을 고결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도 커졌다. 사무소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미란의 자태여서 몸이 무겁게 그 무엇에 끌리우곤 했다.
 
101
미란의 자태가 영훈의 연구소 방 속에 숨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도착하는 즉시로 그곳에 숨은 것이 두문불출 낮이나 밤이나 올빼미같이 그 속에서 혼자 지내왔다. 상처를 입은 그 몸으로는 완전한 것밖에는 생각할 것이 없었고 영훈에게 대한 사모는 날로 간절해 갔다. 좁은 한 간방이 그에게는 편안한 안식처였다. 바로 영훈의 자기에서 영훈이 하던것같이 잠자고 일어나고 하는 속에서 몸의 허물을 생각하고 허물 속에서 깨끗한 심정을 돋우면서 수녀가 수도원에서 기도생활을 하는 것같이 꼭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102
영훈을 생각하는 것은 별것 아니라 수녀가 주를 원하는 바로 그 마음이었다. 상처 있는 몸으로 그를 생각하고 사랑하지 못할 법은 없을 것이며 상처 가 있으므로 더욱 그를 바라고 붙잡을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주인 없는 방을 독차지하고 문을 걸고 오는 사람들을 따버리는 것이 그로서는 불측한 짓으로 여겨지지 않고 차차 당연한 것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103
별장에서는 단주와 만태를 맞이하게 되자 두 사람씩이나 인물들이 변한 까닭에 기분들이 일신되고 기풍이 새로워졌다. 죽석에게는 만태로 해서 비로소 피서의 의미와 생활의 기쁨이 생겼고 세란에게는 단주는 처음부터 원 하던 인물이어서 두 사람은 함께 새날을 맞이한 것 같았다. 피서가 시들해 지던 것이 다시흥을 띠어가고 만태가 풍족하게 가지고 온 양식이니 술이니 하는 것으로 핍박해 가던 살림도 풍성해 갔다. 죽석이 흡사 가 제 시집온 신부같이 만태를 대할 때 세란도 전에 없던 기쁨으로 단주를 맞은 것은 사실 이었다. 두 쌍의 부부같이 이야기하고 웃고 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세란과 단주 역시 죽석들 부부의 형식을 본받았다. 세란은 단주를 꼬집으면서 집에서 성하게 지냈느냐고 옥녀를 다치지 않고 제대로 점잖게 지냈느냐고 족치면 단주는 아우성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정말, 정말이지, 만약 건드렸다면 그대로는 안 둘 테야, 둘 다 내쫓을걸. 더욱 족치면 단주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가면서, 그까짓 옥녀가 무어게 누가 그까짓, 펄펄펄 뛰면서 무릎을 쥐고 도는 것이었다. 요란한 소리에 만태들은 방문을 비끔히 열고 세란들의 방 쪽을 건너다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일은 났어 집에다 공연한 족제비들을 기르다 현마 망신할 날두 멀지 않았지, 쓸데없이 첩은 왜 두구미소년은 왜 사랑하는 거야, 아무리 지각없는 것들이기루 환장을 한 셈이지 자기들을 길러주는 주인의 눈을 속여 그래 저렇게까지 농탕을 칠 법이 있단 말인가 하면서 아내 죽석에게 몸서리를 쳐 보였다. 세란의 열정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서 단주는 무더운 정염에 둘러싸이고 있을 때에는 일신의 뼈끝에서 푸른 불꽃이 날리는 듯한 피로감이 나고 문득 독약 냄새를 코 끝에 맡은 것 같은 착각이 생겼다. 옥녀에게서도 같은 것을 느끼던 판에 이번의 피서는 일종의 도피행인 것이었으나 세란에게서 또다시 전날의 연속을 당하고 날 때 생각나는 것은 미란뿐이었다. 이번 걸음도 미란을 만나자는 것이 큰 목적이던 것이 와 보니 그의 자태는 어디론지 빠져 버렸던 것이다. 세란들의 불충분한 설명으로는 그가 대체 집으로 간 것인지 어쩐지 조차도 추측할 수 없어서 도리어 근심을 산 셈으로 날마다 생각나는 것이 그였다. 그렇다고 세란의 체면 앞에서는 오던 길로 다시 돌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우울한 시간이 많았다. 수선스런 별장안의 공기를 떠나서는 홀로 길을 거닐고 개울가에 나가는 때가 늘었다.
 
104
미란에게 대해서 같은 회포를 가지고 역시 홀로 온천 길을 거닐고 바람을 쏘이려 개울가에 나가는 것이 영훈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어디로 별안간 종적을 감춘 것인가. 하기는 별장의 공기라는 것이 온전한 것이 아니고 병든 데가 있어서 모르는 결에 자기도 눈썹을 찌푸리는 때가 있었던 것이요, 도대체 그 집안 식구들의 기풍이 밖에서는 엿볼 수 없는 그 무슨 숨은 그림자와 으늑한 그늘을 감추고 있기는 했으나 미란의 일신상에 대체 어떤 불측한 일이 있었기에 나에게까지 말이 없이 사라진단 말인가. 언제인 가 일신상의 상처를 암시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에우는지를 말한 일이 있었으니 아무리 그에게 상처가 있단들 전신이 피투성이라고 한 들 내 마음이야 변함이 있을 것인가. 왜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인가---곰곰이 생각하면서 회포는 진하지를 않았다. 음악에 대한 생각도 요새 와서는 미란보다 지위가 떨어져 작곡의 계획도 흐지부지 헤트러지기가 일쑤였다.
 
105
사랑이 없을 때 ‘아름다운 것’의 노래도 나오지를 않으며 개울물 소리를 들어도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를 들어도 악보 위에 적어야 할 아름다운 감흥이 솟지를 않는다. 넓은 반석위에서 단주를 만나면 그 야릇한 집안의 한 식구인 그의 꼴이 불유쾌한 것으로 보이면서 번번이 머리 속이 혼란해 갔다.
 
106
내가 모르는 비밀을 도리어 저 녀석이 알고 있지나 않을까, 나를 돌려 놓고 저 녀석도 그 비밀속에 한몫 참가해 있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미란에게 대해서 나보다 한층 위에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이 생길 때에는 견딜수 없이 몸이 수물거리면서 한동안 행복스럽던 것이 왜 금시에 이렇게 불행하게 된 것인가, 행복이라는 건 비늘구름같이 왜 그리 속히 꺼지는 것인가, 복잡한 괴롬이 솟으면서 마음이 어지러워 갔다.
 
107
그런 의혹을 품고 있음은 단주도 일반이다. 가까워 오는 영훈을 바라볼 때 저 녀석이야말로 모든 일의 화근이 아니던가, 이번의 미란의 실종에도 속에 숨어서 계책을 꾸미고 농간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피아노를 가르치러 온 때부터 미란의 마음을 한꺼번에 뺏어간 것이요, 그 후부터 미란의 마음 속에서는 내가 떠나고 저 녀석이 들어앉게 된 것이다. 비록 미란의 처녀지에 첫발자국을 낸 것은 나라고 해도 미란이 그것을 뉘우치고 있음을 알 때 내 사랑은 여지없이 부서져 버렸다. 마음의 굴복이 첫째지 토지의 점령은 뜻 없는 일이다. 나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요, 진짜 행복을 차지 한 것은 저 녀석인 것이다. 나 없는 동안에 이 깊은 산속에서 둘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며 저 녀석은 모든 것을 뺏어간 엉뚱한 침입자요, 도적이 아닌가. 결혼이니 무어니 단말로 나를 꼬이고 달래더니 집안 사람들도 요새는 까딱 그런 소리도 없이 나는 완전히 빼돌리고 말았다. 차라리 언제든가 그 첫 봄날 미란과 함께 도망을 쳤던들 일이 이렇게는 되지 않고 좀 더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을 그만 실책을 했던 까닭에 이렇게 빗나가고 뒤틀리고 헛물을 켜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에 원통하고 애닯고…….---하는 생각이 들며 영훈의 자태가 세상에서도 원망스러운 것으로 어리었다.
 
108
"저놈을 그대로 두어야 옳단 말인가."
 
109
물소리도 바람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으며 주의가 영훈에게로만 옮겨가는 것이다. 버드나무 포기를 헤치고 조약돌을 밟으며 반석 위로 껑층뛰어 올라 갈 때 피가 수물거리며 분이 치밀어 올랐다. 이 저주스러운 존재를 왜 하필 이날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인가---자기 스스로도 그날의 흥분을 의아해 하리만치 마음의 동요를 이기는 재주 없었다.
 
110
"미란이 간 곳을 그래 자네두 모른단 말인가."
 
111
싸움을 걸러 그 자리로 그렇게 그를 찾아온 것인 듯 단주는 영훈의 앞으 로 나선다.
 
112
"내가 물으려던 말을 자네가 먼저 물은 셈이네."
 
113
영훈의 마음도 그 순간단주와 똑같은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사랑이나 미움이나는 모르는 결에 서로 교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쪽에서 사랑하면 저 편에서도 직각적으로 느끼는 것이요, 이편에서 미워하면 고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닫게 된다. 단주의 미움은 번개같이 영훈의 마음속으로 전염해 갔다.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같이 퉁명스런 대답에 단주는 벌컥 화가 치밀었다.
 
114
반달 장간을 한 곳에 " 있으면서두 간 곳을 모른다면 거짓말이거나 그렇 지 않으면 팔불용이지."
 
115
"자네가 계책이나 쓴 것이 아닌가 하구 있었는데 이렇게 안달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두 않은 것 같아 안심은 되네만 사실 나두 몰라 딱해 하구 있는 중이네."
 
116
"그동안에 미란에게 무례를 한 것은 아니겠지."
 
117
하고 싶던 말을 그 기회를 이용해서 물어 보고 마음의 안정을 얻자는 것이 영훈을 노엽힌 결과가 되었다.
 
118
"아무렇게 지냈든간에 자네에겐 무슨 아랑곳인데."
 
119
"아랑곳이 아니구. 미란이 누군 줄 똑바로 알구나 말인가. 나와 결혼한다는걸 알구나 말인가."
 
120
"결혼---."
 
121
"자네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분수를 넘었다가는 코 다치리."
 
122
몸이 떨리는 것을 영훈은 참으면서 그의 태도를 될 수 있는 대로 대수롭지 않게 받으려는 생각이었다.
 
123
"결혼을 하든 무엇을 하든 뉘 알랴만 대체 미란이 자네를 얼마나 사랑하구 있는 셈인가, 어디 들어 보세나."
 
124
"사랑이구 무엇이구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 사랑 다음엔 무엇이 오겠나.
 
125
자네에겐 말할 필요두 없지만 벌써 사랑 여부쯤 문제가 아니야."
 
126
"무엇이 어째 또 또 한번……"
 
127
피가 화끈 달면서 영훈의 눈에 불꽃이 피어올랐을 때 단주는 의기가 도도 해서 한 번 더 입을 놀리는 것이다.
 
128
"모든 것을 점령해 버린 이제 사랑 여부의 문제가 아니란 말야. 세상에서 미란을 제일 첨으로 알아버린 것이 나란 말이네."
 
129
말이 끊어져 버린 것은 영훈의 주먹이 그의 입을 막아 버린 까닭이다.
 
130
"그것이 네 자랑이냐."
 
131
영훈에게는 언제인가 미란이 은근히 암시한 그의 상처의 출처가 바로 단 주임을 직각하고 그에게 대한 노여움이 불길같이 뻗쳐 올랐다. 얼굴에 진흙을 끼얹힌 듯 모욕을 느끼면서 분노와 괴롬이 한데 합쳐서 단주에게로 향했다. 영훈에게 비기면 단주는 아직도 격년의 차가 있어서 아이인 셈이었으나 와락 달겨들게 될 때 호락호락 눌러 버릴 수는 없어서 기어코 두 사람은 달라붙은 채로 얼리게 되었다.
 
132
"화평한 집안에 엉뚱하게 뛰어들어선 모든 것을 문란하게 해놓구 남의 맘까지 뺏으려는 도적 같으니."
 
133
씨름이나 하듯이 뻗디디다가 결국 그 자리에 쓰러져서는 엎치락뒤치락 어울린 채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시원스럽게 때리고 눕히는 것이 아니라 끈적끈적 붙어 두 마리의 게같이 넓은 반석 위를 조금씩 밀린다. 반석 아래는 깊은 웅덩이가져서 길이 넘는 물이 푸르게 고여 있는 속으로 헤엄치는 물고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반석 높이래야 한 길 장간밖에는 안되는 것이나 고기떼는 그 바위 위에서 겨루고 있는 두 마리의 미끼를 바라고 있는 듯 좀체 허어지지 않는다.
 
134
"간특한 계교를 미끼삼아 얼마나 남의 맘속에 괴롬을 주구 있는지를 생 각하면 너같은 죄인은 없는 줄 알아라."
 
135
"연구소니 무어니 하구 음악을 미끼삼아 여자들을 농락하는 부랑자 같으 니……"
 
136
가야 때문에 연구소에서 싸우다가 그의 약혼자 갑재에게서 들은 똑같은 말을 단주의 입에서 들을 때 영훈은 무지한 것에 대한 분이 한결 솟으면서 단주를 발길로 밀어서 모질게 돌 위에 던지고야 말았다. 단주가 일어설 때 다시 발길로 차려다가 또 한데 어울리고 말았다. 갑재에게 변을 당하던 때와는 반대로 단주에게 대해서는 영훈의 힘이 윗길이어서 물인지 불인지를 헤아리지 않는 언제 끝날지를 모르는 싸움이었다. 게같이 이 구석 저 구석 밀려다니다가 바위 아래 물 위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날이 맞도록 두 사람은 갈라지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속히 결말을 지으려는 듯 두 몸은 바윗까지 밀려나갔고 기슭에서 지긋들 거리다가 물속에 텀벙 빠지게 된 것은 한 사람의 뜻이 아니라 두 사람 공동의 의사인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결머리 가 다 물속에 빠지는 것쯤은 대단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바위 위에서 겨루던 두 사람은 물속에서는 갈라질 밖에는 없어서 바위를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내 약혼자다 손가락 하나 건드려봐라 하고 고함을 치던 단주도 물속에 잠기게 되니 그뿐 말을 뺏기어 버렸다. 물 위에 뜨면서 숨이 막혀 입을 버 끔버끔하고 두 팔을 휘저으면서 별수없이 이제는 물과 싸우게 되었다. 웅덩이를 헤어나면 얕은 여울이져서 흰 돌만 붙들면 고생은 면하는 것이나 단주에게는 그만한 재주도 없었다.
 
137
"약혼자나 무어니---물속에서나 구해 보지."
 
138
영훈은 헤엄의 연습이 있었던 까닭에 물을 먹으면서도 웅덩이를 밀려나와 여울의 돌을 붙들었다. 물에 빠진 쥐여서 몸이 무거운데다가 기맥이 쇠진해서 돌에다 몸을 의지하고 정신없이 하늘을 우러러본다. 하늘빛이 푸른지 흰 지도 분간할 수 없고 미란의 자태도 적어도 그 순간만은 의식 속에서 잊혀져 버렸다 웅덩이 속에서. 허비적거리는 단주의 꼴이 가여웠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의 꼴도 역시 가여운 것을 깨달으면서 영훈은 이긴 것도 아니요, 진 것도 아닌 그 속에서 갑재와 싸웠을 때와도 같은 비참한 꼴을 느낄 뿐이었다.
【원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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