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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레종(鐘) ◈
◇ 제5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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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3
함세덕
1
어밀레 鐘[종]
2
제 5 막
 
 
3
혜공왕 6년 12월 14일.
4
봉덕사(奉德寺) 전정(前庭).
5
대업이 완성되어 신종(神鐘)의 극성(克成) 축하식이 성대히 개최됐다. 가설(假設)의 종각. 그 속에 신라 최고기술의 집중인 화려, 전아(典雅), 웅대한 신종이 달려 있다. 척룡(隻龍)과 기삽(旗揷)이 달린 종정(鐘頂)으로부터 무수히 오색의 술이 늘어져 있다.
6
중앙에 일단 높이 옥좌, 좌변에 섭정이 앉으셨고, 그 옆에 시무라와 무라사키가 앉었다. 그 아래로 관위순서(官位順序)로 김옹 ․ 김은거를 필두로 중신 원로들. 우변에 외국사신석, 좌변에 악인(樂人)들과 궁녀들. 하수(下手) 일우에 미추홀과 판관 ․ 녹사가 보인다.
 
7
지심(地心)이 흔들리는 듯한 장중한 낭독 소리에 막이 오른다. 검교사 김옹이 어전에 한걸음 나아가 조산대부 전 태자사의랑(朝散大夫 前 太子司議郞) 김필해(金弼奚)의 찬(撰)한 종명(鐘銘)을 읽는 것이다.
 
8
김 옹   (종명 낭독) ……신 필(弼)이 문(文)은 졸(拙)하고 재(才)는 없으되 감히 성조(聖詔)를 봉(奉)하야 반초(班超)의 필(筆)을 빌리고 육좌(陸佐)의 언(言)을 좇아 원지(願旨)를 구(逑)하야 명(銘)을 종(鐘)에 기(記)하노라.
 
9
김옹, 종명을 낭독하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10
김은거   (식순 낭독) 논공행상(論功行賞). 주종검교정사 상대등 겸 병부령(鑄鐘檢校正使 上大等 兼 兵部令), 대각간(大角干) 김옹.
 
11
김옹, 어전으로 한걸음 나아가 부복한다.
 
12
만월부인  상대등 수고했소. 오날 신종의 완성을 보아 상감이 선대왕께 효성을 다하게 되는 게 오 - 즉 각간의 덕이오. 헌데 각간이 신하로 최고의 벼슬에 있으매 신라의 관직으로는 표창할 관위가 없구료. 국록으로 500석을 추가 하사하니 상감의 뜻을 받으시오.
13
김 옹   망극하옵신 성은을 무엇으로 갚사오리이까?
14
혜공왕   무엇이든지 소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말하오. 신라의 주권으로 짐이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리다.
15
김 옹   신의 소원을 들어주시겠소니까.
16
혜공왕   들어주고 말고. 무엇이든지 말하오.
17
김 옹   부사 김체신과 차박사 미취홀의 죄를…….
18
혜공왕   (미리 말을 제[制]하시며) 벌써 경의 뜻대로 했노라.
19
김 옹   (다시 이마를 조아리며) 망극하오이다.
 
20
김옹,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21
김은거   주종검교부사 집사부시랑(鑄鐘檢校副使 執事部侍郞) 아찬(阿湌) 김체신.
 
22
김체신, 꿈이 아닌가 두려운 듯이 어전에 나아가 부복한다.
 
23
만월부인  아찬이 공주 시무나를 공방에 인도한 죄로 파직을 시켰었으나 부사가 상대등을 도와 신기화성(神寄化成)에 끼친 혁혁한 공로는 그 사소한 죄를 씻고도 넉넉히 남음이 있는지라, 이제 복직을 허하고 다시 위계 일등을 올려 대아찬에 서(敍)하노라.
24
김체신   망극하오이다.
 
25
김옹은 기쁨을 감출 길이 없나 보다. 김체신, 제자리에 돌아온다.
 
26
김은거   신기화성 도중에 있어 실패를 죽음으로 사한 주종 대박사 대나마(大奈麻) 하전(下典)과, 신종을 위하야 희생이 된 어린애의 영전에 합장기도를 바치오.
 
27
일동, 합장묵도(合掌默禱)를 한다.
 
28
김은거   주종차박사(鑄鐘次博士) 나마(奈麻) 미추홀(彌鄒忽).
 
29
미추홀, 보이지 않는 앞을 더듬어 어전에 나와 부복한다.
 
30
만월부인  공주를 연모한 박사의 죄는 신라의 국법으로는 용서할 바가 없어 종만 완성되는 날이면 욕지도(欲知島)로 귀양을 보내기로 했었으나 오날의 경사가 오로지 박사의 공이어늘, 박사를 귀양보내고 어찌 홀로 극성을 즐기리. 그러매로 죄를 용서하고 다시 일등을 올려 대나마에 서(敍)하노라.
31
미추홀   망극하옵신 성은으로 아뢰오.
32
혜공왕   들은즉, 박사는 미치노쿠 나라로 가려고 한다지.
33
미추홀   네.
34
혜공왕   무슨 소원은 없느냐.
35
미추홀   소원은……. 소원은 없삽고 다만 아뢰올 것은 공주님의 격려와 후원이 없었던들 저 종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36
혜공왕   공주가?
37
미추홀   네. 소신은 몇 번이고 절망과 공포 속에 스승을 따라 자결할려고 했삽고, 더우기 눈이 이렇게 된 후로 몇 번이고 사임할려고 했었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공주님은 소신을 격려하여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시고 자신을 갖게 해주시고 희망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38
혜공왕   (고개를 끄덕이신다)
 
39
미추홀, 어전을 물러나와 자리에 온다.
 
40
혜공왕   (시중에게) 논공행상(論功行賞)에 공주 시무나를 가(加)하시오.
41
김은거   공주 시무나마마.
 
42
시무나, 태후의 옆에서 내려와 왕의 어전에 엎대인다.
 
43
혜공왕   누님, 누님에게야 부귀를 상한대야 무엇하겠소.
44
시무나   상감마마, 이 공주도 공로자의 한 사람에 들어가나이까.
45
혜공왕   그렇소. 그러나 짐은 무엇으로 누님을 표창해야 할지 몰르오.
46
시무나   상감마마, 저에겐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47
혜공왕   소원이라니 무어요?
48
시무나   저를 평민으로 만들어주옵소서. (비장히 왕을 바라본다)
49
혜공왕   평민으로?
50
만월부인  (펄적 뛰며) 시무나야, 네가 환장을 했냐? 그게 무슨 소리냐?
51
시무나   어마마마, 공주는 평민이 되어 미추홀을 따라가겠습니다.
52
만월부인  무엇이?
53
시무나   얼골도 이렇게 흉하게 된 몸, 궁중에 있은들 무엇하오리까. 더우기 미추홀은 앞을 못 보는 몸이 아니오니까. 눈을 뜰 수 있었는데도 저를 위해서 다시 눈을 멀게 한 그 분! 일가가 있는 게 아니오, 친지가 있는 게 아니오, 앙천부지에 몸 부칠 곳이 없다 합니다. 저도 기왕 버린 몸이니 그를 따라가, 산간 초옥에서나마 그의 팔이 되고 그의 눈이 되어 나머지 일생을 같이하고저 하옵니다.
 
54
좌우에 있든 궁녀들 속에서는 울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만월부인도 얼골을 돌리고 눈물을 닦는다.
 
55
김은거   상감마마께 아뢰오. 일즉이 이런 일은 신라의 국법에 없었고…….
56
혜공왕   (추상같이 말을 막으시며) 고만두오. 말 안 해도 짐도 그만한건 아오. (공주에게) 누님, 따라가오. 짐이 허락하니 따라가오.
57
시무나   상감마마. (격하야 운다)
 
58
시무나, 제자리로 간다.
 
59
김은거   (왕의 역정을 화[和]케 하려고 한층 크게) 봉덕사 주지 지조대사(智照大師), 견일본사(遣日本使) 급찬(級飡) 김초정, 주종판관 충봉(忠封), 녹사 일상(一桑), 공노에 의하여 각각 상사(賞賜)함.
 
 
60
間[간]
 
 
61
김은거   신종시당 주종 차박사(神鐘始撞 鑄鐘 次博士) 대나마 미추홀.
62
미추홀   (멀 - 리서) 네 -.
 
63
좌중의 시선이 하수 일우로 쏠린다. 이윽고 미추홀, 앞을 더듬어 문무백관이 기라성렬(綺羅星列)로 늘어 앉은 앞으로 나타난다. 방향을 몰라 발을 멈추고 잠시 서 있다.
 
64
혜공왕   (그가 황감하야 서 있는 줄로 아시고) 어려워 말고 앞으로 나오라. 그리하야 박사가 심혈을 경주한 그 신종을 신라 천지가 진동하도록 힘껏 치라.
65
미추홀   (방향을 잘못 잡아 김옹 앞으로 간다)
66
혜공왕   (시무나에게) 가서 손을 붙들어주오.
67
시무나   네.
 
68
시무나, 미추홀을 부액하야 종 앞에까지 이끌어준다. 미추홀, 손을 더듬어 당목(撞木)을 잡는다. 가슴이 벅찬 모양이다. 한번 훅 숨을 내리쉬며 설레이는 감격을 진정한다. 좌중의 호흡은 미추홀과 똑같이 흘러간다.
 
69
혜공왕   빨리 치라. 답답하다. 알천(閼川) 냇물이 멈추고 봉덕사 청기와 홍들보가 흔들리도록 힘껏 치라.
 
70
미추홀, 활시위를 캥기듯이 당목을 힘껏 뒤로 잡아당겼다가 전신의 힘을 쏟아 내리친다. 그러나 의외로 소리가 아니 난다. 청천벽력을 맞은 듯 좌중은 망연히 입만 벌리고 있을 뿐. 미추홀, 황급히 다시 당목을 내리친다. 소리는 나되 울림[響]이 없다. 불안과 초조 속에 소리만 기대리고 있든 김옹은 절망과 분격 속에 칼을 빼어 “에이, 해망한 녀석” 일갈(一喝)하고 미추홀을 내리친다. 미추홀은 보지는 못 하되 찬 기에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김옹, 다시 치려 할 때 공주가 비명을 발하며 미추홀을 막아선다. 김옹은 지조대사와 김은거에게 두 팔을 붙들리고 몸부림친다.
 
71
김 옹   (노기충천하야) 시중, 나를 붙잡지 마오. 저 눔을, 저 눔을 하날을 대신하야 내가 벌하겠소.
72
김은거   상대등, 어전이오. 그 칼 놓시오. 일국의 재상으로 황감하게도 성상의 어전에서 이 무슨 망동이오.
73
김 옹   (미칠 듯이 절규한다) 나를 붙잡지 마오.
74
지조대사  검교사님, 어전이외다. 어전이외다.
75
김 옹   스님, 이 팔 놓시오.
76
김은거   상대등, 이 무슨 무엄한 행동이오. 더욱이 외국 사신들까지 빈대한 이 자리에서 이 무슨 망동이오.
77
만월부인  (격앙하야) 시중, 상대등을 붙들지 마오. 스님, 그 칼을 붙잡지마오. (다시 김옹에게) 빨리 그 칼로 저 맹인을 치시오. 어서 치시오.
 
78
김옹, 쥐었든 칼을 툭 떨어트린다. “상감마마” 한마디 부르고 그 자리에 부복한다. 일국의 재상으로 자기 자신을 걷잡지 못하고 이처럼 어즈러운 행동을 한 김옹이 좌중에겐 오히려 측은했다.
 
79
만월부인  (추상같이) 웨 못 치오. 어째서 못 치오. 상감이 보시는 눈앞에서 당장 치시오. 주공의 목을 버힘으로써 상대등의 직책은 다하게 되오? 사감은 고사하고 신라의 억조 창생에게 면목이 스오? (다시 마루를 발로 굴르며) 물러가오. 소리도 나지않는 종을 놓고 극성식이 무슨 극성식이요? 허새비를 세워놓고 나라의 상하를 들어 제사를 드린 것과 무엇이 달르오? 만조백관 앞에서 나를 우세를 시킨 것도 용서할 수 없거늘, 칼부림이 무어요? 그러고도 신하의 으뜸으로 능히 창생을 거느릴 수 있겠소?
80
혜공왕   상대등, 대관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81
김 옹   …….
82
만월부인  그 칼로 저 종을 깨트리시오. 나로서는 벙어리 종을 선왕께 바칠 수는 없소. 상감에게 유언을 남기신 채 편안히 승하하시지도 못한 선대왕의 영전에 저 폐물을 바치란 말이오?
83
김 옹   상감마마, 신에게 죽음을 주옵소서.
84
혜공왕   경이 죽는다니 국사는 어떻게 하란 말이오? 경은 하날이 몇 백 년만에 한번 나리신 인물이거늘, 이 일로 죽는다면 신라가 가엾지 않소?
85
김 옹   상감마마. (느껴 운다)
86
혜공왕   (미추홀에게) 다시 한번 쳐보라.
87
만월부인  당장 안 나든 종이 쉈다 친다고 나겠소니까. (미추홀에게) 바른 대로 아뢰라. 죄가 두려워 검교사와 부동하고 거짓을 아뢴게 아닌가?
88
미추홀   천지신명께 맹서하되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사옵니다.
89
만월부인  정말로 소리가 났단 말이지.
90
미추홀   네. 선대왕께서 바라시고 또한 소신이 내고저 하든 그 종소리가 분명히 났었습니다.
91
김은거   금방 쳐서 안 나는 소리가 언제 났었다고 그런 허위의 소릴 하느냐.
92
미추홀   아닙니다. 이번에도 만일 실패를 하면 소인은 돌아가신 스승을 따라 갈 결심을 하고 틀을 뜯었든 것입니다. 또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날까 두려워서 소인은 쳐보지도 못하고 우선 검교사님께 아룄드니 검교사님께서 달려오셔서 종을 쳐보셨습니다. 지금도 소인은 노래의 곡조를 외우듯 이 종의 울림소리를 외울 수 있습니다. 밑에서부터 또아리처럼 돌아서 우이로 퍼져가는 이 종소리를 들을 때 소인과 같이 5년동안 공방에서 고생한 여러 사람들은 너무도 느꺼워서 종을 붙들고 목놓아 울기까지 했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칼을 쥔 채 소리를 들었삽거늘 버러지 같은 목숨이 무엇이 두려워서 거짓을 아뢰겠나이까.
93
만월부인  그럼 밤 사이에 마귀가 들어갔단 말인가?
94
미추홀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나이다.
95
혜공왕   두 달 동안 다듬고 가꾸는 사이에 혹 실수한 게 아닐까.
96
미추홀   어젯밤 이 종각에 매달 때도 분명히 울었습니다.
97
시무나   어마마마, 종소리는 이 시무나도 분명히 들었습니다.
98
김은거   그럼, 공주께선 근자에도 공방엘 드나드시었소.
99
시무나   제 침실에서 야밤에 들었습니다.
100
김은거   침실에서?
101
시무나   네, 자다가 어렴풋이 슬픈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그것은 꿈이 아니고 종소리였습니다. 분명코 이 봉덕사 쪽에서 은은히 들려왔었습니다.
102
만월부인  이러구 앉었으면 무엇하는 건고.
 
103
만월부인, 자리에서 일어선다. 김은거, 외국 사신들도 따라서 일어선다.
 
104
시무나   (한걸음 앞으로 나가 막으며) 어마마마, 종을 한번 조사해 봄이 어떻소니까?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누가 훼방을 놨나 봅니다.
105
혜공왕   참말 한번 조사해보는 게 좋겠소. (미추홀에게) 박사가 세세히 조사해보라. 혹 금이 갔거나 깨진 데는 없나?
 
106
미추홀, 종체(鐘體)를 만져보며 한바퀴 돈다. 아무데도 상한 곳은 없나보다. 설움이 복받쳐 종 앞에서 엎더져 운다. 이때 무라사키히메의, 비단을 찢는 듯한 비명.
 
107
무라사키  어머나…… 박사님, 여자가……. 여자가…….
108
미추홀   (영문을 몰라) 네?
109
시무나   무라사키, 무슨 일이에요?
110
무라사키  공주님, 여자의 옷자락이, 옷자락이…….
111
시무나   예?
112
무라사키  저기에, 저 종 속에서 여자의 옷자락이 살짝 보였어요.
113
김은거   무어 말이요?
114
무라사키  저 종 속에 여인네가 들어 있나 봐요. 치마 끝이 뵜었어요. 제가 소리를 치니까 냉큼 끌어들이겠지요.
115
김은거   (종 앞에 가서 대갈[大喝]한다) 누구냐, 그 안에 숨은게. (칼을 빼며) 이리 나오느라. 냉큼 나오지 못하겠느냐.
116
혜공왕   그대로 잡아 끌어내오.
 
117
김은거, 밑으로 손을 넣어 치맛자락을 잡아끈다. 안 나오므로 기어들어가 여인을 끌고 나온다. 하얀 소복한 이화녀다. 좌중은 이양(異樣)한 흥분과 경악에 싸였다.
 
118
혜공왕   네가 누구냐?
119
이화녀   (말없이 운다)
120
김 옹   (경악하야) 너 이화녀가 아니냐?
121
이화녀   검교사님.
122
만월부인  상대등, 이화녀라니?
123
김 옹   검님께 바친 어린애의 어머니외다.
124
미추홀   (이화녀라는 소리에 악연[愕然]한다. 그의 앞으로 가드니 격앙에 떨리는 소리로) 거긴 웨 들어갔소? 무엇하러 거긴 들어갔소?
125
이화녀   ………. (울 뿐)
126
김 옹   그만큼 했으면 살인을 했어도 용서할 거다. 벌써 몇 달을 두고 이러는 거냐. 나랏일을 위하여 자식을 바친게 그렇게도 원통하냐.
127
이화녀   검교사님…….
128
미추홀   아니, 당신은 날더러 어린애 목소리가 듣구 싶으니 하로바삐 종을 완성해달라고 간청하지 않었소? 그래서 나는 어서 종을 만들어서 당신을 위로할려고 했었소. 그런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짓이오? 더우기 어전에서…….
129
이화녀   박사님, 용서해주세요.
130
미추홀   대관절 무엇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갔었소?
131
이화녀   종이 울지 못하게 종에다 몸을 대고 있었어요. 종이 안 울면 저 종을 바서버릴실 줄 알구요.
132
만월부인  오, 요망한 계집 같으니. 지금 박사의 말을 들으니, 하로 바삐 종소리가 듣구 싶다고 했다지 않냐?
133
이화녀   네.
134
만월부인  그런데 이제 와서 울지 못하게 할려는 건 무슨 이윤고?
135
이화녀   섭정마마. 소녀는 종이 그렇게 울 줄은 몰랐었습니다.
136
만월부인  무어랐다? 그래, 어떻게 울었기에 깨트리기를 바랐노?
137
이화녀   ‘어밀레, 어밀레’ 하고 청승스럽게 웁니다.
138
만월부인  무어? ‘어밀레’하구 울어?
139
이화녀   네, 소녀는 종 속에 딸자식이 부처님 보호 아래 편안히 쉬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종소리도 그 애 숨결같이 부드럽고 가끔 밖에 나갔다 노인네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듯 귀엽고 정다울 줄 알았었습니다. (돌연 미칠 듯이 고함을 친다) 그년은 저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 에미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 에미 때문에 죽었다구 어밀레 어밀레 우는 겁니다. 그것은 종소리가 아닙니다. 저를 저주하는 소립니다. 섭정마마, 저 종을 깨트려주옵소서. (운다)
140
혜공왕   (미추홀에게) 종이 정말로 ‘어밀레, 어밀레’ 우는고?
141
미추홀   절대로 그렇게 울진 않습니다. 아마 애기 어머니한테만 그렇게 들리나 봅니다.
142
혜공왕   박사, 어데 다시 한번 쳐보오.
 
143
미추홀, 당목을 잡으니, 이화녀, 귀를 막고 미친 듯 밖으로 나가버린다. 미추홀, 당목을 내리치니 신라 천년 푸른 하날에 웅대, 장엄, 화평한 종소리 흘러간다. 식장에는 이쪽 저쪽에서 환성과 함께 감격의 울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악부(樂部)에서 풍악이 운다. 궁녀들은 일제히 종각 앞으로 몰려와 늘어진 술을 한가닥씩 붙잡고 송가(頌歌)를 부르며 종각을 빙빙 돈다.
 
144
혜공왕   5년 만에 국업이 완성됐도다. 마음껏 기꺼이 오늘을 즐기라.
 
145
시무나, 어전으로 나아가 조용히 관(冠)을 벗어 왕에게 바친 후 미추홀의 손을 잡고 어전을 나온다. 무라사키히메, 달려가 “공주님” 부르며 석별의 회(懷)를 금치 못한다. 궁녀들의 송가는 공주와 박사의 전도(前途)를 축복하는 송별가로 변해간다.
146
만월부인, 무라사키, 돌아서서 조용히 운다. 단 한 분의 누님을 이처럼 슬프게 보내는 유왕(幼王)의 옥흉(玉胸)은 신하들이 차마 우러를 수 없을 만치 비장(悲壯)했다.
 
 
147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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