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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레종(鐘) ◈
◇ 제3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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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3
함세덕
1
어밀레 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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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막
 
 
3
혜공왕 6년 경술(庚戌) 8월, 가배절(嘉俳節) 전야.
 
4
내전. 선미(善美)를 다한 공주 시무나의 거처.
5
주홍의 주열(柱列), 홍량원와(虹梁鴛瓦), 날아갈 듯한 추녀의 곡선, 금은을 장식한 책갑, 걸어 올린 섬세한 주렴(珠簾), 현판, 석계(石階) 등. 현란(絢爛), 굉장(宏壯)한 신라 건축미는 이것으로 능히 규지(窺知)케 한다. 석계 앞에는 궁전의 어데나 마찬가지로 홍엽(紅葉). 중앙은 마루. 좌변이 2층의 누각, 우변은 회랑(廻廊)을 지나 모후가 계신 영명궁(永明宮)으로 연(連)한다. 전(殿)의 주위는 영화를 자랑하는 단청의 난간이 둘려 있다. 마루 뒤를 내려서면 조원술(造園術)의 극치를 보인 원정(苑庭), 목서(木犀), 국화, 수련(睡蓮)이 한창 만발했다. 안압지(雁鴨池)에는 조산(造山)과 정자와 석교(石橋). 후면은 울창한 숲과 성벽. 마루 일우(一隅)에 약탕관과 화로. 성벽 너머로 수려한 토함산과 추석을 앞둔 청명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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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대청에서 공주 시무나를 우장(右將)으로 한 6부의 처녀 일군(一群)과 무라사키히메를 좌장(左將)으로 받든 일군이 길쌈을 하며 〈회소곡〉(會蘇曲)을 부른다. 이어 춤춘다. 노래와 춤 중에 무라사키히메, 난간에 기대서서 달을 바라본다. 처녀들 헤어져 나가고 무라사키히메, 회향(懷鄕)의 정에 잠겨 〈만엽가〉(萬葉歌)를 조용히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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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하늘을 바라보니 가스가(春日[춘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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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사산(三笠山[삼립산])에서 나왔던 달이 뜨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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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노나카마로(阿部仲麻呂[아부중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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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익숙한 일본어로) 지금 노래, 어떤 분이 읊은 노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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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아베노나카마로(阿部仲麻呂[아부중마려])님이예요. 아버님과 함께 일본에서 제일 먼저 당나라에 유학하신 분이세요. 서울인 장안에서 달을 바라보며 미카사산(三笠山[삼립산])을 그리면서 읊으셨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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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그러면 무라사키, 너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졌니?
13
무라사키  네, 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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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락(寧樂)에 피어 있는 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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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향기를 토하듯이 지금 만개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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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노로조신(小野老朝臣[소야노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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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무라사키, 넌 무언가에 홀려 있는 거야. 지금 돌아가게 되면 아버님과 대신들에게 꾸중 듣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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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어째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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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너는 아직 임무가 남아 있지 않아? 3년 동안에 신라말을 배우도록 조정에서 분부한 것을 잊어버렸니? 앞으로 남은 넉 달만 참아. 이제 한 고비만 넘기면 돼. 네 신라말은 아직까지 어설프다고 느껴지는걸. 향가를 읊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고.
20
무라사키  공주마마 탓이예요. 뱃놀이 하자, 가야금을 타자 하니까 시중을 드느라 어디책 볼 겨를이 있어야지요. 그리고 공주마마는 하루종일 그 종 이야기만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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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내 탓이 아니야. 박사의 강의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넌 엉뚱한 생각만 하는 것 같은걸.
22
무라사키  어머, 공주님은 자기 일은 덮어두고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거지요?
23
시무나   틀림없이 네겐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 있을 거야. 이젠 들어야겠어. 어떤 분이니? 아름다운 구계(公卿)야? 아니면 씩씩한 무사(武士)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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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어머, 공주마마답지 않게……. 저보다 공주마마의 사랑스러운 황자(皇子)님은 대단한 마음을 가지셨어요.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는 것 같아요. 공주님을 마중하려고 일부러 먼 당나라에서 바다를 건너오셨으니……. 마치 이야기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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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쓴 웃음을 지으며) 넌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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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그러니까 명주를 100필, 자포선(紫袍線)이 100필, 연소(練素)가 2천 필, 금은동기(金銀銅器)가 5천 개, 서문금오색나채(瑞紋錦五色羅彩) 300필, 금 항아리에는 큰 돈이 가득, 은 항아리에는 작은 돈이 가득, 이게 지금 당장의 선물이 아니예요? 정말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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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그렇게까지 부럽거든 네가 날 대신해서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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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멀리서 바다를 건너오신 황자님을 냉대하시면 안 돼요. 황자님은 공주마마께 아주 집착하고 있는 눈치세요. 오늘 임해전(臨海殿)에서의 잔치 때도, 어제 숭례전(崇禮殿)의 인견연(引見宴) 때도 황자님께서는 공주마마 얼굴만 쳐다보고 계셨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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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그래서 너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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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말리셔도 소용 없어요. 공주님은 머지 않아서 500인이 탈 수 있는, 새로 만든 견당선(遣唐船)을 네 척이나 거느리고 당나라로 시집가시고, 저는 홀로 영락(寧樂)으로 돌아갈 거예요. 공주마마를 살아 생전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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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매달려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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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공주마마의 자비심 덕택으로 3년이라는 세월을 무사히 보냈어요. 이 난간에 기대어 공주마마와 함께 이렇게 나란히 추석의 명월(明月)을 바라보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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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무라사키, 울음이 나오려고 하니까 그런 슬픈 말은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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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兩人), 서로 안고 조용히 운다. 시비(侍婢) 한 사람, 보통이를 들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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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   공주님, 수문장이 밤 출입은 절대로 안 된다고 문을 아니 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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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짜증 비슷하게) 에구, 그 녀석은 말썽도 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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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어델 보내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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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박사한테……. 동정하구 소매 끝이 새까매서 옷이 너무도 남루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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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그럼, 홀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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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그렇대. 내일이 추석인데두 누가 옷 한 벌 해주는 사람 있겠어? 여늬 사람이면 모를까, 적어두 일국의 큰 일을 맡어서 헌신하는 분이 한가윗날 그 옷을 입고 신궁 제사엘 어떻게 참례하겠어? 그래서 내가 몰 - 래 진솔로 한 벌을 져 보낼려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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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그런데 공주님은 박사님이 홀몸인지 아닌지, 그런 것까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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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당황해 하며) 검교사님께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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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의미심장히 공주를 쳐다보고 웃으며) ……그럼 제가 전해주구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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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무라사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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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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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정말 무라사키가 갔다 와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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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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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그럼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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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염려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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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시비한테 옷을 들려가지고 나간다. 엇갈려 당 황자(唐皇子) 범지(范知)를 안내하고 만월부인과 김은거, 이야기하며 들어온다. 시무나 목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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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내일은 우리 신라의 가장 큰 명절인 한가위라 상감께서 검산[金鰲山[금오산]] 신궁에 제사를 올리시니 같이 구경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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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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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낮엔 신궁 앞 넓은 마당에서 화랑들이 호반을 겨루고 밤엔 6부의 처녀들이 두패로 갈리어 대궐 마당에서 길쌈짜기 뒤풀이들을 하니 그건 볼 만하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밤 여기서 아까까지 처녀들이 노래와 춤을 연습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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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양편의 대장은 누가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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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유리왕(儒理王) 때부터 딸 형제가 한 편씩 맡는 법인데, 금대엔 저 애가 형제가 없으므로 무라사키를 대신 시키기로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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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무라사키라니, 일본 여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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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네. 기비노마비(吉備眞備[길비진비])라는 학자의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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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기비노마비? 그 사람 저 잘 압니다. 우리 당나라에 유학생으로 들어와서 17년 있었습니다. 그럼 요새도 일본과 사신의 왕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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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거   한동안 통 파견치를 않다가 금번 구리를 좀 구하려고 지난 5월에 급찬 김초정이를 보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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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그거 재미 없습니다. 이런 얘기 황제께서 들으시면 대단 언짢어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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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시녀들, 얼음에 챈 수박을 날러다 놓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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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왕자의 기분을 돌리려고) 맛은 없으나 이 수박 좀 드시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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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받아먹으며) 지금도 신라엔 얼음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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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겨울에 석빙고에 채워 두었다가 여름내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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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수박씨를 씹으며) 아주 맛이 훌륭합니다. (하고 껍질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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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웃음이 터진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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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약간 위엄을 상한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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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시무나! (황자에게) 그저 아즉도 철이 없어서……. 덩치만 컸지 아주 어린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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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천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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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시집을 보내면서도 가서 또 무슨 실수를 할까 도무지 맘이 놓이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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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거   더구나 대국은 예절이 놀라운 나라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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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그러니까 공주가 허물이 있드라도 그저 덮어주시고 눌러보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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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염려마십시오. 전 공주같이 솔직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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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시위부감 들어와 계하(階下)에 부복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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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부감  섭정마마께 아뢰오. 상감마마께옵서 시중어른과 함께 잠깐 듭시사는 분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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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편전에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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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부감  대학감(大學監)에서 국학대박사에게 강의를 들으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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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곧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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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학문에 대단 진심하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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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상서》(尙書), 《모시》(毛詩), 《예기》(禮記)를 벌써 떼우시고 요새는 《좌씨전》(左氏傳)을 시작하셨답니다. 그럼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81
만월부인, 김은거와 함께 나간다. 뒤따라 시위부감 나간다.
 
82
시무나   (모후와 시중이 나간 후의 그의 대사는 전부가 야유요, 농조[弄調]다) 당나라엔 양귀비 같은 미인 가녀가 허다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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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그래도 다 공주만 못합니다. 작약도 모란도 공주만 못한데, 하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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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웨 해필 그런 꽃에다 저를 비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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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작약과 모란을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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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그런 살찐 음탕한 여인 같은 꽃을 누가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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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그럼 공주는 무슨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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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웃으며)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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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얼골을 찡그리며) 옥수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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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네. 그 후리후리한 키와 강냉이에 달린, 신선의 수염 같이 복스런 털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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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공주님이 사랑하는 꽃이라면 저도 좋아지겠지요. 궁전엔 작약과 모란은 모조리 뽑아버리고 앞뜰 뒤뜰에 뺑둘러 옥수수를 심게 하겠습니다.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삼신산 불로촌들 못 구해오겠습니까. (점점 흥분하여) 나는 신라의 반월성보다 더 큰 사방 10리의 궁을 짓겠습니다. 아닙니다. 벌써 낙성이 됐을 것입니다. 뜰에다 간 연못을 파고…… 연못 속엔 축산을 하고…… 축산에다간 기화요초를 심고…… 아니 기화요초가 아니라 옥수수를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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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고소[苦笑]를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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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목욕은 우유로 하고…… 우유에다간 금가루를 타서 공주님 전신이 밤이면 야광주같이 번쩍번쩍 비치도록 할 작정입니다. 순금으로 사륜마차를 만들고 비취와 청석과 홍보석을 아로사긴 걸상에 공주님을 태워가지고 명절날마다 시조묘(始祖墓)와 왕릉을 돌겠습니다. (석계[石階]를 내려서며) 공주님, 배 안 타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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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입때 무라사키하고 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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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그럼 호숫가를 한바퀴 도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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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매일 도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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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그럼 저 누각에나 안내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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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할 수 없이 범지를 따라 석계로 내려간다. 만월부인과 혜공왕, 이야기하며 들어온다.
 
99
혜공왕   (흥분한 어조로) 어마마마, 누님은 꼭 당나라로 시집을 가야만 되오?
100
만월부인  그렇다오. 꼭 가야만 된다오. 내야 남과 같이 그렇게 아들 딸이 많기나 하오? 자식이라고는 상감하구 공주하구 둘밖에 더 있소? 딸 하나 있는 것을 말을 타고 육로로 몇 천 리, 배를 타고 수로로 몇 달을 간다는 만리 타국에 보낼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소마는, 지금 우리나라는 국력은 피폐하고 상감은 어리고해서 밖으로서는 외적이 강토를 기웃거리고 안에서는 권신들이 보위를 넘보고 있으니, 사직을 안보할려면 큰 당나라의 힘을 빌지 않을 수가 없다오. 그래서 결국 시무나가 당나라로 시집을 가게 되는 게지요.
101
혜공왕   그렇지만 속국이 되는 것도 억울한데, 더구나 누님까지 …….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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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따라 울며) 그러니까 상감이 어서어서 자라서 국위를 떨치게 하오. 그때가 되면 이 모후도 번잡한 섭정의 자리를 떠나 저 영명궁(永明宮)에서 편히 좀 쉬겠소. (유왕[幼王]의 눈에 눈물을 닦어준다)
103
혜공왕   어마마마, 알겠습니다. 어마마마 말씀 명심하야 신라로 하여곰 어느 나라에도 굽히지 않고 두려워 안할 강국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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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부인  (왕을 세차게 안으며) 오, 착하신 우리 님군! (자기의 눈물을 닦고) 야기를 너무 쏘이시는게 좋지 않으니 그만 입전하시어 쉬시지요.
 
105
만월부인, 못마땅한 듯한 왕을 모시고 다시 나간다. 뒤를 이어 무라사키히메 급히 들어온다. 공주가 없으므로 “공주님, 공주님” 부르며 이쪽저쪽 찾는다. 시무나, 원정(苑庭)에서 달려온다.
 
106
시무나   무라사키, 갔다 왔어?
107
무라사키  네, 그런데 박사께서 일에 골몰하셔 그런지 신색이 아주 안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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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놀라며) 박사께서?
109
무라사키  네, 사닥다리 우에 스셔서 구리가마를 들여다보구 계시는데, 까딱하다간 화염속으로 쓰러지실 것 같겠지요. 어떻게 맘이 조마조마했는지.
110
시무나   (애가 타는 듯) 어데가 편찮으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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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꼭 실성하신 양반 같어요. 허공만 멀거니 쳐다보시군 걸음도 허청허청 걸으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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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그래, 옷은 받으시어?
113
무라사키  네, 고맙단 말도, 좋다 나뿌단 말도 없이 그냥 두고 가라고 하시겠지요. 속으론 딴 생각을 하고 계시나 봐요.
 
114
이때 범지, 후원에서 나온다. 무라사키, 자리를 피해 나간다.
 
115
시무나   (공방에 갈 방도를 찾고저) 저 궁 밖으러 바람 쐬러 안가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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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지   (흔희작약[欣喜雀躍]하며) 바람 쐬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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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나   달이 이렇게 밝은데.
118
범 지   어데로 가실까요.
119
시무나   문(蚊)냇가로 거닐어서 일정교(日精橋), 월정교(月精橋)로 가지요. 그러고 오는 길에 봉덕사 주종공방에 들러 밤일하는 것도 구경하실 겸.
120
범 지   그까짓거야 뭐 볼 게 있습니까.
121
시무나   지나오는 길이니까요.
122
범 지   그럼 곧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123
시무나   저 -, 제가 가시자구 했다지 마시구 동궁께서 더리고 가시는 것처럼 어마마마께 말씀하세요.
124
범 지   네, 염려마십쇼.
 
125
범지, 만족하야 달려간다. 이때 뒤에서 가느란 무라사키의 비명. 이윽고 쿵하고 무엇이 담에서 떨어지는 소리. 공주, 그곳을 응시한다.
 
126
무라사키  (달려오며) 공주님.
127
시무나   무라사키, 진정해! 무슨 일이 있었어?
128
무라사키  김체신 장군께서…….
129
시무나   뭐, 급찬께서?
 
130
무라사키  담을 넘어오셨습니다.
 
131
부 사   (들어오며) 놀라지 마십쇼.
132
시무나   (쏘는 듯) 웨 정문으로 아니 들어스고……. 더구나 야밤에…….
133
부 사   미취홀 박사가 구리물에 눈이 멀었습니다.
134
시무나   눈이요? (쓰러질 듯, 억지로 몸을 버티며) 그런데 어떡하다…….
135
부 사   열도를 듸려다 보다가 현기증을 일으켜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136
시무나   아주 멀었습니까.
137
부 사   네.
138
시무나   다른 데는 상하지 않으시구요?
139
부 사   천행으로 뒤로 자빠졌기 때문에 허리를 좀 다쳤을 뿐 데운 곳은 없습니다. 궁장 밖에 말을 매어놨으니 빨리 저를 따라오십쇼.
140
시무나   섭정마마껜?
141
부 사   보시다시피 궁장을 넘어왔습니다. 자세한 말씀은 검교사님께서 아뢰시겠지요. 우선 빨리 저를 따라오십쇼.
 
142
시무나, 옷을 챙겨 입고 나오다 뚝 발을 멈춘다. 자기의 심중을 이 젊은이에게 다 듸려다뵌 것을 깨닫자 속옷이 흘러내리는 듯 수치(羞恥)에 얼골이 확확 단다.
 
143
시무나   그런데 부사께선 어째서 비밀로 박사의 불상사를 저에게 알리십니까.
144
부 사   이유는 다음에 물으시고…….
145
시무나   그 분이 눈이 멀었으면 멀었지, 저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저를 부르러 오셨습니까.
146
부 사   공주님의 마음이 한결같이 박사를 딸코 있으시다는 걸 저는 잘 압니다.
147
시무나   네?
148
부 사   공주님을 먼 발치로 흠모하고 동경하든 저는 누구보다 그것을 먼점 알었습니다. 질투심도 없지 않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주님이 나종에 박사의 눈 먼 것을 알고 슬퍼하실 것을 생각하니 저는 가슴이 아펐습니다.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149
시무나   (격하야) 부사님!
 
150
김체신, 시무나를 안어 담을 넘긴 후, 비호같이 자기도 넘어간다. 과연 화랑의 대표에 부끄럽지 않은 쾌걸(快傑)이다. 무라사키는 자기 처소로 간다. 만월부인과 범지 들어온다.
 
151
만월부인  밤길이란 언제 무슨 변이 있을지 모르니 시위부에서 기운 센 장수를 열 명만 딸케 했습니다.
152
범 지   잠깐 갱변을 한바퀴 돌고 돌아올 테니까요.
153
만월부인  그런데 애긴…….
154
범 지   아마 옷을 갈아입나 봅니다.
 
155
이때 수문장 들어와 부복한다.
 
156
수문장   섭정마마께 아뢰오. 대각간(大角干) 상대등 어른의 입궐이시오.
157
만월부인  상대등께서?
158
수문장   네?
159
만월부인  빨리 들어오시래라.
 
160
수문장과 엇갈리어 김옹 들어온다.
 
161
만월부인  (불안하야) 또 무슨 변이 있었소.
162
김 옹   변이 아니옵고……. 주공이 현기증을 일으켜 가마의 증기에 안력을 잃었소이다.
163
만월부인  (경악하며) 아 - 니, 어떡하다?
164
김 옹   어린앨 바친 어미가 매일같이 미취홀더러 ‘눈이 멀어 종을 못 만들게 내가 고사를 지낼 테다’구 방자를 하고 단겼다 하오.
165
만월부인  저런 악독한 것이 있나.
166
김 옹   구리의 열도를 들여다 볼 때마다 가마 속에서 ‘엄마’ 하고 어린애 우는 소리가 난다구 나에게 누차 말했었소. 그런데다 요새는 그 애 어미의 방자 소리까지 등 뒤에서 들리는 것 같다구 하드니 오늘은 기어쿠 현기증을 일으키구 말었나 보오.
167
만월부인  쯧쯧, 가엾어라. 그래 어떡하셨소?
168
김 옹   우선 승방에다 눕혀놓고 의(醫)박사를 불렀으나 눈만은 고칠 길이 없다 하오. 모두가 이 각간의 불찰이오.
169
만월부인  운수 불길해 그렇게 됐지, 각간에게야 무슨 과실이 있겠소.
170
김 옹   제가 어린애 희생안을 제의치 않었든들 이런 일은 없었을 줄 아오. 처음부터 그는 반대를 했었던 것을 제가 우기어서 그만…….
171
만월부인  해필 가배절 전날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꼬?
172
김 옹   한 해에 한 번인 명절이 파흥이 되겠소이다.
173
만월부인  (범지에게) 나도 어째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외출 마시고 그대로 쉬시는게 어떻겠소.
174
범 지   그럼 공주님에게 섭정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십쇼.
175
만월부인  아가. (대답이 없으므로) 어델 갔나. 아가, 아가.
176
범 지   없습니까.
177
만월부인  거기 누구 없니.
 
178
시비, “네 -” 하고 들어온다.
 
179
만월부인  공주 어디 가셨니?
180
시 비   지금 금새 계셨는데?!
181
범 지   먼저 나가시지 않었을까요?
182
만월부인  그럴 리가 있겠어요. (시비에게) 수문장 불러라.
 
183
시비 나간다. 이어서 수문장 들어와 부복한다. 김옹과 범지는 전(殿) 내외 이쪽저쪽 찾는다.
 
184
만월부인  공주 안 나가셨냐?
185
수문장   지금 각간 어른이 들으신 외엔 아무도 출입한 분이 없습니다.
186
만월부인  (수문장에게) 빨리 시위부에 알려라. 경종을 치고 시위졸(卒)을 풀어 찾으라구.
187
수문장   네.
 
188
수문장, 급히 나간다. 범지, 후원을 향해 “공주님, 공주님” 부르며 나간다.
 
189
만월부인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190
김 옹   글쎄요.
 
191
이쪽저쪽에서 “공주님”, “공주마마” 하는 시녀들과 시위졸들의 소리. 정적에 싸였든 후궁이 돌연 소란해진다. 요란한 경종.
 
192
김 옹   공주가 혹시? (섭정을 살펴본다)
193
만월부인  글쎄요. 그 애가 속이 넓어서 말은 안하지만 황자한테 시집가는 것을 여간 싫어하지 않으니까요.
 
194
무라사키, 읽던 책을 든 채 들어온다.
 
195
만월부인  무라사키, 공주가 감직한 곳 어덴지 몰르겠어?
196
무라사키  글쎄요, 전들…….
 
197
김은거, 노기등등하야 들어온다.
 
198
김은거   공주를 찾었다 하오.
199
만월부인  (기뻐서 울듯하며) 어디 있드래요?
200
김은거   급찬 김체신과 나란히 말을 달려 공방엘 갔었다 하오.
201
김 옹 - 
202
만월부인 - 
203
공방엘?
204
김은거   그렇소. 뿐만 아니라 미취홀을 붙들고 공주가 울었다 하오. 마치 자기 지아비나 정혼한 사람이 눈이 먼 것처럼 슬퍼하며 의원에게도 눈을 뜨게 해달라고 부끄럼도 없이 애걸했다 하오.
205
김 옹 - 
206
만월부인 - 
207
(아연하야 망연히 듣고만 있을 뿐)
208
김은거   그들은 벌써부터 상통했든 것이 분명하오. 일국의 공주로서 만인의 눈을 속이고 하천한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것은 국가의 치욕이오. 더구나 각간의 지휘하에 있는 공방 안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이 책임을 누가 질 것이오? (아연히 김옹을 쏘아본다)
209
김 옹   …….
210
만월부인  국운이 이뿐인가. 전생에 죄가 많어 이런가. 이게 어찌된 노릇일꼬?
211
김은거   특히 용서할 수 없는 자는 김체신이오. 염치를 귀히 여길 신라의 화랑으로서, 주종검교의 직책은 제쳐놓고 공주와 주공의 중매를 하고 단기니 이는 국적이오. 내일 조회에 국문하기 전에 각간께서 선후책을 강구하시오.
212
김 옹   …….
213
만월부인  좌우간 정전으로 나갑시다.
 
214
만월부인, 김옹, 김은거, 밖으로 나간다. 무대에는 무라사키 뿐. 시무나, 창백한 얼골로 초연(悄然)히 들어온다. 무라사키를 발견하고 “무라사키” 하고 달려들어 안고 운다.
 
215
무라사키  공주님, 이렇게 부들부들 떠시구…….
216
시무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무라사키, 박사를 구할 길이 없을까? 박사님의 눈을 뜨게 할 길이 없을까?
217
무라사키  공주님, 진정하세요.
218
시무나   무라사키, 박사를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줘요. ……무라사키한테만……고백하지만……나는 그분을 사모하고 있어요. 그분을 내 몸보다 애끼게 됐어요. (운다)
219
무라사키  공주님, 그렇지만 내게 무슨 힘이 있어야지요? 내가 의박사라면 모를까…….
220
시무나   눈 잘 고치는 의박사 누구 아는 사람 없어? 일본에는 의술이 여기보다 발달했다지 않어?
221
무라사키  공주님, 의박사라면 제가 아는 분이 있어요. 아주 신통한 의박사를 제가 아는 분이 있어요.
222
시무나   정말?
223
무라사키  네. 오노히로토시(小野博臣[소야박신])라구 안과에는 첫손 꼽는 박삽니다.
224
시무나   그렇지만 일본까지 모시러 가려면 두 달은 걸릴 테니…….
225
무라사키  아니에요. 지금 서랏벌에 와 계셔요.
226
시무나   서랏벌에?
227
무라사키  네. 나라(寧樂[영락])에서 사다이징(佐大臣[좌대신]) 후지하라나카마로(藤原仲麻呂[등원중마려]) 가(家)의 시의(侍醫)로 계셨어요. 사정이 있어 쓰쿠시(筑紫[축자])로 내려가 있다드니 작년부터 서랏벌에 와서 개업을 하구 계신다는군요.
228
시무나   무라사키, 그럼 그분을 지금 곧 좀 불러줄 수 없겠어?
229
무라사키  네, 가보지요. 그렇지만 어명이 없이 가봤다가 나종에 책망듣지 않을는지.
230
시무나   아 -, 괴로워. 차라리 시골 기집애로 태어났으면 이런 고통은 안 받지…….
231
무라사키  공주님으로 태어났으면 다 그런가요? 얼골이 너무도 아름다운 탓이에요.
232
시무나   내 얼골이?
233
무라사키  그러믄요. 밝은 눈동자(明眸[명모])에 화(禍)가 있듯이 아름답지 않으면 슬프지도 않을 거예요. 공주님이 너무도 아름다우시기 때문에 멀 - 리 당나라에서까지 청혼을 하구, 아래로는 주공까지가 흠모를 하지 않어요.
234
시무나   무라사키, 그건 그렇구 어서 그 의박사한테로 좀 가봐주어!
235
무라사키  네.
 
236
무라사키, 나가려 할 때 뒤에서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오는 벅적한 소요.
 
237
무라사키  (공주를 안으로 떠다밀며) 공주님, 빨리 숨으십쇼. 상감마마와 섭정마마께서 시중 어른과 이리로 오십니다. 그리고 왕자께서도…….
 
238
시무나   (떠밀려 들어가다가 발을 멈추고) 그게 옳아. 내가 이뿐 게 사실이야. 내가 이뿌기 때문이야.
 
239
시무나 “얼골을, 얼골을” 절규하며 화로에 화저(火箸)를 집어들고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무라사키, “공주님” 하고 쫓아간다. 찰나, 가느단 비명. ‘쿵’ 하구 쓰러지는 소리.
 
240
무라사키  공주님, 뭐하시는 거예요?
241
시무나   놓아요.
242
무라사키  아, (비명) 누가 좀 와주세요.
 
243
이 소리에 만월부인, 혜공왕, 김은거, 당 황자, 달려와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244
무라사키  빨리 전의(典醫)를, 전의를……. 공주님이 화젓깔로 얼골을 지지셨습니다.
 
245
김은거, 급히 밖으로 나간다. 만월부인의 “어지여 내일이여”, “어지여 내일이여” 하며 우는 오열(嗚咽) 소리.
 
 
246
― 막 ―
【원문】제3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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