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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레종(鐘) ◈
◇ 제2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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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3
함세덕
1
어밀레 鐘[종]
2
제 2 막
 
 
3
혜공왕 6년 경술(庚戌) 5월.
4
신종주조성전 집무실.
5
성덕대왕 신종주조성전이란 현판. 문갑, 책갑(冊匣), 의자, 탁자, 종 모형, 화병 등 적당히 벽에는 주종 설계도.
6
마루 뒤로 창고가 보인다. 좌변에 유기(鍮器)를 넣은 가마니[叭[팔]]가 산적해 있다. 뜰에는 작약, 모란(牧丹), 석죽 등 오월의 화원.
 
7
판관 충봉(忠封)과 녹사 일상(一桑) 재주자재(再鑄資材) 견적서를 부르고 받어적고 한다.
 
8
판 관   일, 숙동(熟銅) 12만 근. (부른다)
9
녹 사   일, 숙동 12만 근. (받아적는다)
10
판 관   일, 순금 2천 근.
11
일, 주석 500근.
12
일, 아연 100근.
13
일, 점토 500석.
14
일, 사토(砂土) 300석.
15
일, 각재(角材) 500본(本).
16
일, 편재(扁材) 300매.
17
일, 단목탄(檀木炭) 4천 표(俵).
18
녹 사   경을 칠, 웨 해필 박달나무 숯이야?
19
판 관   참나무나 밤나무는 화력이 여려 못 쓴다네.
20
녹 사   대관절 적기는 적지만 구리가 12만 근이나 있을까요?
21
판 관   그러게 전국에서 모으고 있지 않나. 사기를 사용하고 유기는 국가에 바치자는 방을 고을마다 붙였으니까. 상당히 헌납이 있겠지.
22
녹 사   주석을 넣야만 소리가 난다 하니 이번엔 좀 많이 넣면 될 게 아닙니까.
23
판 관   그러면 속이 깨지기가 쉽다오. 박사께서 어련히 잘 배합하실라구.
24
녹 사   그렇게 배합을 잘 하시어서 또 실패를 하셨군요?
25
판 관   시중 말씀대로 당나라에서 명공을 초빙하면 단번에 되는 것을…….
26
녹 사   꼴에다 눈은 높고 교만해서 당나라 사람은 절대로 만들 수 없다고 큰 소릴 탕탕 하지 않었습니까?
27
판 관   이번 실패야 전번처럼 종이 깨지거나, 소리가 안 나거나 했나 어디? 종명에 쥐며누리 죽은 게 끼어서 글자 한 자가 뭉그러져서 그랬지.
28
녹 사   한 자쯤 뭉그러지면 어때요?
29
판 관   쉬, 검교사님 들으시면 단박에 파직일세.
 
30
이때 마제 소리와 차륜 소리, 뒤에서 정지한다. 시위부감 들어온다.
 
31
시위부감  공주마마의 행차이시오.
 
32
판관, 집무실 본관쪽으로 급히 나간다.
33
이윽고 부사와 같이 나온다. 일동 부복한다. 공주와 무라사키히메 들어온다. 뒤따라 시녀들.
 
34
시무나   유기가 더러 모였지요?
35
부 사   염려해주신 보람으로 백성들이 서로 다투어가며 헌납해옵니다. 저 - 기 쌓인 섬들이 모두 유깁니다.
36
무라사키  상당히 많이 모였군요.
37
시무나   화랑의 소년들이 솔선해서 전국에 유기 헌납운동을 일으켰대.
38
부 사   양푼 ․ 대야 ․ 식기로부터 숟가락 ․ 젓가락까지 공양(供養)을 합니다.
39
시무나   도사들도 일제히 동냥을 나갔다지요.
40
부 사   네. 봉덕사 지조승님께서 주장이 돼가지고 장안 888사의 도사들이 총출동을 해서 전국으로 탁발(托鉢)을 나갔습니다. 아마 오늘쯤 귀경들 할 것입니다.
41
시무나   우리도 멫 점 가지고 왔지요.
42
부 사   공주마마께서요?
43
시무나   네. 무라사키히메하구 둘이서 궁내에서 쓰는 것을 뫘지요. 한 200점 될까말까 하지만……. (시녀들에게) 이리 날러라.
 
44
부사 ․ 판관 ․ 녹사와 시녀들, 유기가 들은 포대를 창고로 날른다.
 
45
무라사키  이번엔 실패치 않으실까요?
46
시무나   그럼.
47
무라사키  그렇게 공주님이 장담하실 수 있으서요? 호호호.
48
시무나   자결한 스승의 원한을 풀어줄려는 그 갸륵한 마음도 믿엄직하거니와 신라의 전통 우에 고유한 문화를 쌓을려는 식견과 함께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신뢰해도 괜찮지 않겠어?
49
무라사키  공주님은 박사님의 절대 지지자시어! 호호호.
50
시무나   (변명하며) 그, 그런 게 아니구…….
 
51
녹사, 창고에서 나와 헌납장에 기입한다. 부사, 판관도 나온다. 녹사, 감사장을 공주에게 드린다.
 
52
시무나   (받으며) 이게 무어요?
53
부 사   헌납해주신 감사장입니다.
54
시무나   (종이를 말며) 박사는?
55
부 사   토형(土型)에다 관세음이 승천하는 그림을 새기고 있습니다.
56
무라사키  우리 가서 좀 구경할까요.
57
시무나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겠어? 도사들이 왔는가 절에나 가봅시다. 희사 받은 것 구경도 할 겸.
58
무라사키  공주님의 청이시라면.
 
59
양인 미소하고 나간다. 시위부감 뒤따르고, 부사, 전송차로 나간다.
60
녹 사   저거 좀 보십쇼. 공주님과 부사님이 나란히 서서 가시니까 아주 어울리는데요.
 
61
판 관   참, 신라 천지에 미남호걸이 많다 해도 공주님 부마될 만한 사람은 저 김체신 장군밖에 없지, 없어.
62
녹 사   그런데 웨 당 황실(唐皇室)하고 정혼을 하셨을까요?
63
판 관   돌아가신 선대왕께서는 부사님을 부마로 삼을라구 하셨대.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이번 일은 순전히 김시중이 우기셔서 하신 일이야.
64
녹 사   그래서 요새 부사님 안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65
판 관   국책상 궁중에서 하신 일이니까 부사님으로선 물러서서 바라다 보시는 수밖에 없게 됐지. (인기척이 나므로) 쉬 -
 
66
부사 들어온다. 모란을 한 송이 꺾어 향기를 맡는다. 흥미가 없는지 내버린다. 이때 김옹 들어온다. 일동 절한다.
 
67
판 관   자재예산서에 서결(署決)을!
 
68
김옹, 검분(檢分)한 후 서명하고 날인한다. 판관, 녹사, 견적을 들고 나간다.
 
69
판 관   그래두 구리가 모자라지?
70
부 사   누계(累計)가 3만 5천 근밖에 안 됩니다.
71
김 옹   당나라에서는 운반이 어렵고 해서 가까운 일본 태재부(太宰府)에 금을 가지고 가서 교환해오기로 했어.
72
부 사   그것 잘됐습니다. 태재부에서도 종에다 쓸 구리라면 기뻐하고 바꿔줄 것입니다.
73
김 옹   사람은 자네가 그 중 적임이지만 역사에 지장이 있을테니 안되겠군. 그래서 급찬 김초정(金初正)이를 보내기로 했어.
74
부 사   적임입니다.
75
김 옹   가서 급찬한테 이 이야기를 하고 밤에 우리 집으로 좀 나오라고 하게.
76
부 사   네.
 
77
부사, 밖으로 나간다. 말 울음 소리, 마제 소리, 멀 - 리 사라진다.
78
봉덕사 주지 지조대사(智照大師) 들어온다. 포낭(布囊)을 메고 지팽이를 짚은 순례의 행장.
 
79
김 옹   (반가이 맞으며) 아니 언제 오셨소?
80
지조대사  지금 막 서울에 닿은 길이오.
81
김 옹   떠나신 지 벌써 한 달쯤 되겠군요.
82
지조대사  40일이나 된답니다.
83
김 옹   그래 희사는 많이 얻으셨소?
84
지조대사  가는 곳마다 유기를 미리 마련해두었다가 대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내줍디다.
85
김 옹   그게 다 승님의 덕이 높으신 까닭이오.
86
지조대사  천만에요. 그것은 그렇고 기실은 지금 사량부(沙梁部) 댁으로 갔다가 안 계셔서 이리로 오는 길이오.
87
김 옹   무슨 긴한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88
지조대사  네. 그 전자에 우리가 의논한 어린애 희생을 바칠 이야기는 아이를 내놓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 같지가 않고, 또 궁중과 중신들의 의향도 어떨지를 몰라서 그냥있었지만…….
89
김 옹   궁중과 중신들의 내락은 그동안 받었지요.
90
지조대사  그러면 잘됐군요. 지금 이 국가의 난사를 걱정하고 자기 딸을 바치겠다는 갸륵한 여인이 있소.
91
김 옹   그게 사실이요?
92
지조대사  네, 그래서 댁으로 갔었지요. 우리 절 도사가 동냥을 얻으러 갔다가 그런 여인을 만났다 하오.
93
김 옹   그럼 그 도사를 좀 부를 수 없을까요.
94
지조대사  아주 데리고 왔소. (밖을 향하야) 원각(圓覺)이 거기 있느냐? 이리 들어오너라.
 
95
탁발승 들어온다. 꼬깔을 쓰고 목에 염주를 걸고 꽹매기를 들었다.
 
96
김 옹   가까이 오너라.
97
탁발승   네!
98
김 옹   어린애를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지?
99
탁발승   네.
100
김 옹   어데 사는 사람인데?
101
탁발승   명활산(明活山) 밑에 사는 아낙네입니다.
102
김 옹   남편은 뭣 하는 사람인데?
103
탁발승   동리 사람들 말이 선부대사(船府大舍)로 칙사를 모시고 당나라로 가다가 파선하야 세상을 떠났다 합니다. 집 안팎으로 배나무를 쭉 - 심어 삼월이면 동내가 환할 만치 배꽃이 피므로 이화녀(梨花女)라고 부른다 합니다.
104
김 옹   어린애가 많든?
105
탁발승   무남독녀라 합니다.
106
김 옹   그래, 어린애를 주겠다든?
107
탁발승   소승이 문간에서 동냥을 청한즉, ‘놋그릇이라군 한 점도 없구 또 쌀 한 숟갈도 드릴 것이 없으니 어린애나 드릴까요?’ 하기에 ‘어린앨 데려다 무엇에 쓰겠습니까’ 하고 그대로 나왔습니다.
 
108
이때 김체신의 말이 문간에 와 정지한 소리. 부사 들어온다.
 
109
부 사   다녀왔습니다.
110
김 옹   그래 급찬이 뭐라든고?
111
부 사   미력하나마 전력을 다하야 대임을 봉행하겠다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밤에 댁으로 가서 듣기로 하고 그동안 곧 떠날 차비를 해놓라고 했습니다.
112
김 옹   그건 그러기로 하고 지금 아이를 내놓겠다는 여인이 있대!
113
부 사   박사는 어린애 희생 바치는 것을 반대하든데요.
114
김 옹   반대라니 그럴 수가 있나. 하여튼 자넨 판관 보고 곧 이 도사를 따라가서 그 어린앨 더리고 오라고 하게.
115
부 사   네.
116
김 옹   애 어머니가 섭섭지 않도록 화려한 가마와 새 옷을 준비해 가지고 가라고 하게. 그리고 악부(樂部)에 말해서 행렬에 풍악을 울리도록 하고.
117
부 사   네.
118
김 옹   그리구 자넨 이 길로 예궐하야 궁중에 이 말씀을 아뢰게. 그러고 전사서(典祀署)에 들러서 신궁에게 사준비를 하도록 일르고 ―. 난 어린애가 오는 대로 곧 더리고 갈 터이니.
119
부 사   네.
120
김 옹   나가는 길에 박사를 좀 오라게.
121
부 사   네.
 
122
부사 ․ 탁발승, 나간다.
 
123
지조대사  각간 어른, 박사가 끝끝내 반대하면 어떡하오.
124
김 옹   염려마시오. 박사가 반대한다고 희생을 못 바치겠소.
 
125
미추홀, 들어와 절한다.
 
126
김 옹   (위엄을 돋우어) 지금 어린애를 바치겠다는 여인이 있어 판관이 아이를 더리러 갔으니 내일 아침 신궁에 제사를 드린 후 구리를 끓일 때에 가마에 넣도록 해라.
127
미추홀   (단호히) 그건 안 됩니다.
128
김 옹   (노기[怒氣]를 띠어) 뭐랐다? 그건 안 된다구?
129
미추홀   네. 어린애 생령은 바칠 수 없습니다.
130
김 옹   어째서 못 바치겠다는 거냐?
131
미추홀   바쳐야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그런 이치에 닿지 않는 미신으로 말미암아 상감마마의 적자인 한 사람의 생령을 희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132
김 옹   미신이라구? 그렇게 이치를 잘 아는데 웨 실패를 했노? 웨 실패는 했어? 못 하겠다면 사람을 바꾸면 그만이야. 신라 천지에 주종사가 너밖에 없어? 미취홀이밖에 없어?
133
지조대사  각간 어른 진정하시오.
134
김 옹   (나가며) 난 이 길로 절에 가서 선대왕의 영전에 희생 바친다는 말씀을 아뢰고 올 테야.
 
135
김옹 나간다.
136
지조대사  박사, 희생 바치는 것을 미신으로 생각지 마오. 그렇게 되면 돌과 구리로 만든 부처에게 죄를 사하고 영생복락을 기도하는 것도 미신이 아니겠소?
137
미추홀   …….
138
지조대사  검교사님껜 내가 가서 잘 말씀 여쭙겠소. 단순한 생각을 떠나 잘 생각해보시오.
 
139
지조대사, 김옹을 쫓아나간다.
 
140
미추홀   (땅에 엎더져) 스승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141
(느껴 운다)
 
142
시무나 들어온다.
 
143
시무나   박사님!
144
미추홀   공주님, 저는 이 대임을 사임하고 당나라에 들어가서 몇 해 더 공부를 하겠습니다.
145
시무나   지금 상대등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물러나시겠다는 건 안될 말씀입니다.
146
미추홀   저는 도모지 자신을 잃어서 못 하겠습니다. 몸부림치면 몸부림 칠수록 실패만 거듭하게 됩니다. 더우기 내 기술 부족으로 말미암아 비겁하게 어린 아이를 희생한다는 것은 죄악입니다.
147
시무나   그럼 이 일을 누가 하게 되겠습니까!
148
미추홀   당나라 기공이 하면 될 것 같습니다.
149
시무나   그러니 결국은 박사가 지셨군요.
150
미추홀   …….
151
시무나   난 박사께서 그렇게 의지가 박약한 줄은 몰랐습니다.
152
미추홀   그렇지만 어린애만은…….
153
시무나   나도 그것은 허황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시다시 생각해보면 단순히 그렇게도 생각되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의 힘과 능력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가 미치지 못할 더 큰 힘과 능력이 요구될 때 어느 보이지 않는 크나큰 힘을 믿을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 아닐까요. 저도 이제는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이 생각돼요. 그것은 박사님 말씀 말마따나 비겁한 짓일지 모르나 또한 가장 순수한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154
미추홀   …….
155
시무나   어린 아이를 넜다구 그 살과 뼈에서 소리가 울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은 상대등께선들 모르시겠습니까? 신라 개국 이래로 굴지한 학자요, 정치가요, 병법가이시라는 상대등께서 그걸 모르시겠어요. 하다하다 못 하시니까 근거도 없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믿어보실려는 것일 줄 압니다.
156
미추홀   …….
157
시무나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깨끗한 희생입니다. 자기를 죽여남의 행복을 빈다는 이 우에 더 깨끗한 일이 있을까요? 어린애의 영혼을 헛되이 않겠다는 신념을 굳게 가지면 저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습니다.
158
미추홀   공주님, 정말로 반드시 이루어질까요?
159
시무나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더우기 박사는 천품의 재질을 타고 나신 분이 아닙니까.
160
미추홀   …….
161
시무나   (손에 끼었든 가락지를 빼어주며) 이것은 제가 오랫동안 끼고 있든 가락지입니다. 구리를 끓일 때 한데 넣주십시요.
 
162
이때 금오산(金鰲山) 중턱에 있는 신궁(神宮) 쪽에서 북이 둥둥 운다. 무라사키히메 “공주님” 하고 부르며 들어온다. 시무나와 미추홀이 같이 서있는 것을 보고 주춤한다.
 
163
무라사키  (못 본 척하고) 공주님! 지금 울리는 북소리가 무슨 소리예요?
164
시무나   신궁에 제사를 드린대요.
165
무라사키  제사라니 무슨 제사요?
166
시무나   종에다 어린애 생령을 희생하기로 됐대요.
167
무라사키  그럼 우리도 가서 구경하십시다.
 
168
무라사키히메, 시무나를 재촉해가지고 나간다. 이때 김옹, 탁발승에게 노호하며 격분해가지고 들어온다.
 
169
김 옹   아 - 니 이제 와서 무슨 딴소리야?
170
탁발승   글쎄올시다. 어린앨 절대로 못 내놓겠다니 이를 어쨉니까?
171
김 옹   그래 어째서 못 바치겠다드냐.
172
탁발승   먼저 소승한테 이야기할 때 어린애가 하도 울어싸서 구찮게 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했다 합니다.
173
김 옹   그럼 농담으로 그랬단 말이야?
174
탁발승   농담이야 아니지만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그랬다 합니다.
175
김 옹   일국의 역사를 우습게 여겨도 유만부동이지 그런 경솔한 여인이 어데 있어?
176
탁발승   판관께서 어린앨 가마에 태우시니까 가마문에 가 매달려서 그 앨 더리고 갈랴거든 나를 죽이고 더리고 가라고 펄펄 뛰고 야단입니다.
177
김 옹   벌써 궁중엔 상주를 하였고, 신궁에서도 제물을 바칠 준비가 다 됐어. 그뿐인가. 선대왕의 영전에도 어린애를 바쳐서 주조한다는 것을 지금 아뢰었는데 이제 와서 취소할 수는 없어. 빨리 가서 끌고 오느라.
 
178
이때 가마꾼들의 “어 - 어 -” 소리와 풍악 소리가 들려온다. 어덴지 모르게 애운(哀韻)이 섞였다. 가마가 문전에 닿은 소요.
 
179
탁발승   기여쿠 더리고 오시나 봅니다.
 
180
판관, 하 - 얀 옷을 입힌 어린 여아를 더리고 들어온다. 그 뒤에 울면서 따라온 이화녀, 청초하고 귀품이 흐르는 25, 6세의 과부다.
 
181
이화녀   (김옹에게) 어린앨 돌려보내 주십쇼. 어린애를 돌려보내 주십쇼.
182
김 옹   울지 마오. 이 나라의 크나큰 행복을 위하야 희생이 필요하다오.
183
이화녀   하눌 따에 자식이라곤 저것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자식 가진 사람이 나밖에 없겠습니까? 5남매, 6남매씩 가진 사람이 허다한데 웨 해필 저것을 데려가십니까?
184
김 옹   많은 어린애 중에 하나를 바친다는 건 진실한 제물이 못 되오. 당신의 어린애로 우리나라의 잊었던 기쁨이 찾어올 수 있소. 그 대신 상감마마께 아뢰어 양미 500석을 하사하고 어린애 영혼은 종이 완성되면 효녀문을 세워 푸른 솔밭에 영생토록 하여주겠소.
185
이화녀   전 양미도, 효녀문도 싫습니다.
186
김 옹   사내를 났으면 어떡헐 뻔했소? 화랑에 넣어 호패를 채우고 나라를 막으러 보내지 않었을까? 백성의 목숨은 언제든지 상감마마와 나라에 바친 것이어늘 너무 애통치 마라.
187
이화녀   (체념한 듯이 밖으로 나가다 미추홀을 흘겨보며) 당신이구료. 종을 일곱 번이나 실패했다는 이가……. 자기 힘에 부치면 못한다구 내놓는 게 떳떳하지 않소. 입때 안 나던 소리가 내 자식 집어넜다고 날 줄 아오……. 내 자식 집어넜다고 날 줄 알아?!
 
188
미추홀, 찔린 듯이 몸을 떤다. 신궁 쪽에서는 북 소리가 더 한층 요란하다. 부사, 들어온다.
 
189
부 사   다녀왔습니다.
190
김 옹   뭐라고 하시든고?
191
부 사   상감마마와 섭정마마께선 크게 기뻐하시고 곧 신궁으로 가셔서 손수 제사를 바치신다고 하셨습니다.
192
김 옹   행렬의 선두를 돌려라. 곧 신궁으로 가자.
193
이화녀   정말 가십니까?
194
김 옹   울지 말고 나를 따러오시오.
 
195
김옹, 어린애 손을 붙들고 나간다.
 
196
이화녀의 딸  엄마 - 엄마 -.
 
197
이화녀, 울며 뒤따른다. “엄마 -” 소리 멀리 가도록 들린다. 이어서 가마꾼의 소리. 미추홀, 설움이 북받쳐 기둥에 얼골을 묻고 운다.
 
 
198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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