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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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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2
6
 
 
3
방송이 끝난 후 신인을 망라한 피로연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도 영옥은 국원들에게 남달리 혀끝에 걸리는 값싼 칭찬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으로부터 즐길 수는 없었다. 우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4
이날 밤의 연속으로 다음날 하는 수 없이 민수에게 끌려 그의 아파트를 찾게 되었을 때 우울은 절정에 달하였다. 독신주의자의 방을 찾기가 어색하고 싫었으나 연주 비평에 관한 타협이 있다고 하여 거의 끌리다시피 되었다.
 
5
북쪽으로 창이 난 어두운 방에 침대가 놓이고 어지러운 품이 애란이 처음 소개할 때에 하던 말이 생각나며 영옥은 두려운 느낌만이 솟았다.
 
6
별반 긴한 타협도 아니건만 이번 그가 쓸 원고에 대한 몇 가지의 의논이 끝났을 때 민수는 어조를 변하였다.
 
7
“왜 이렇게 잠자코만 계십니까. 좀더 적극적으로 절 이용하려고 하시지 못합니까. 실상은 전 그것을 원하는데 ──”
 
8
정신을 차리라는 듯이 별안간 와서 어깨를 흔드는 것이다. 잠깐 침묵을 지켰다가 어조는 다시 변하였다.
 
9
“사내가 여자에게 할말이 있다고 할 때에는 늘 뻔한 속 같지만 ──”
 
10
“무슨 말씀이세요.”
 
11
“……남녀가 처음 만날 때의 인상이란 대개 거의 결정적인 것인데 영옥씨를 처음 뵈올 때의 인상도 역시 그런 것이었었지요…… 저같이 사생활이 복잡하고 불행한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예요. 그 한가지 예가 아시다시피 연회 ── 일전 남구군이 지껄인 그 연회의 일건인데, 세상에서는 저 혼자만이 비난의 목표가 되어 있으나 그런 경우 애정문제에 있어서 대체 옳고 그른 편이 있을까요. 옳고 그르다느니보다는 일종의 건질 수 없는 숙명의 있을 뿐이지요. 이 숙명에서부터 시작되는 비극이 옛날부터 얼마나 많습니까…… 저같이 불행한 사람도 없을 것예요. 밤에 혼자 고요히 자리에 누우면 세상에는 꼭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 어둡고 바람부는 지구 꼭대기에 나 혼자만이 우뚝 서 있는 듯도 한 쓸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요. 금방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도 싶은 그런 외로운 마음, 공부도 음악도 다 귀찮아지는 마음, 그저 그 자리에서 살며시 없어지고 싶은 마음……”
 
12
“…………”
 
13
“……영옥씨는 늘 즐겁고 유쾌하고 희망만이 있습니까. 쓸쓸한 때는 없습니까…… 문득 가슴이 쓰라려지고 모르는 결에 눈물이 징긋이 고여지고 ‒‒‒‒ 어린애같이 몸부림쳐 보고 싶은 ── 그런 쓸쓸한 때 없습니까……허구한 날 무엇을 생각하시며 댁에 계실 때 무엇을 하시는지가 알고 싶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저도 실상은 모르겠어요.”
 
14
민수의 표정은 전에 없이 부드럽고 그의 태도는 애잔하였다. 듣고 보니 결국 마음의 하소연이었으나 하소연을 할 때의 사람의 마음이란 예외없이 다 아름다운 것이다. 그의 말속에는 반드시 거짓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가 절실한 실감에서 나온, 듣는 가슴에 울려오는 말임에 틀림없었다. 애란이 말한 민수의 인금과는 또 다른 그의 일면에 접한 듯도 한 느낌조차 생겼다. 그러나 물론 그의 하소연은 영옥으로 서는 귀로 들을 것이지 마음으로 들은 것은 아니었다. 부드러운 발음이 한 구절 한 구절 즐겁게 귀를 간지를 뿐이었다.
 
15
“제 청이 그다지 불측한 것 같지는 않은데 영옥씨는 어떻게 ──”
 
16
“사람을 잘못 고르셨어요. ── 저로서는 들을 취지가 못 되는걸요.”
 
17
“오해는 하시지 않으시는지.”
 
18
“오해가 아니라 ─ 근본문제로요.”
 
19
“……근본문제라면 ─ 애정 말씀이지요. 즉 제가 영옥씨에게 느낀 인상과는 반대 인상을 제게 느끼셨단 말이지요 ── 아픈 곳을 쏘으셨습니다. 상당히 대담하셔요.”
 
20
민수는 저윽이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21
“……반드시 대담해서가 아니라.”
 
22
“알만 합니다. ── 순도 말씀이지요. 순도는 저도 압니다만 순직한 청년이지요. 비록 소설은 못 써도 누구보다도 무서운 소설가라고 할 수 있구요. 고집쟁이구 변통이 없구 ── 그러나 믿음직한 삼. 순도와 겨루면 저도 한 수 꺾이우겠는걸요.”
 
23
“그런 줄 아신다면 아까 같은 말씀 더 마시지요.”
 
24
민수는 무안한 듯이 한참이나 말을 잊었었으나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다시 자리를 일어나서 이번에는 영옥에게로 가까이 왔다.
 
25
“아무리 그러기로서니 말을 그렇게 문덕문덕 막 하세요. ……영옥씨의 마음이 순도에게로 기운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사내의 마음이란 그렇게 수월하게 벗겨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 저를 아무리 따보셔도 제 마음은 떨어지지 않는 걸요. 원래 끈끈한 것이 사내의 마음인지는 몰라도.”
 
26
몸이 가까이 오면서 영옥은 목덜미에 더운 숨결을 느꼈다. 황겁결에 벌떡 일어나려 할 때 그의 몸은 완전히 민수의 품안에 있었다.
 
27
“오늘만 뵈올 것이 아닌데 왜 이리 무례한 짓을 하세요.”
 
28
몸을 잡아 낚우고 몇 걸음 떠났으나 민수는 즉시 와서 팔을 붙들었다.
 
29
“아무리 노여하셔도 전 저대로 제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요. 특별히 저를 원망하실 것이 없는 것은 사내의 마음이란 한번 벗겨만 보면 다 일반인 걸요. 순도에게서 기어코 영옥씨를 뺏어 보고야 말걸요.”
 
30
어쩌는 수 없이 몸은 다시 그의 팔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부치는 힘에 영옥은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부끄러운 마음에 그러지도 못하고 몸을 요동할 뿐이었다. 우러러보던 민수였만 그 순간 한 마리의 짐승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분이 머리끝까지 치받치며 전신이 화끈 달았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수록에 굳세게 붙들릴 뿐이었다. 손에 장기가 있다면 그 자리로 그를 해하고도 싶은 심정이었다.
 
31
짜장 고함이라도 치려고 하던 순간 그 겸연한 장면에 별안간 공교롭게도 방문이 열린 것은 영옥에게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열어젖힌 문으로 나타나자 순간 놀라는 표정을 지닌 것은 영옥에게는 모를 한 사람의 여인이었다.
 
32
민수는 기급을 할 듯이 물러서며 상기된 눈으로 그 돌연한 침입자를 노려 보았다. 영옥이 이지러진 몸을 수습하면서 영문을 몰라 한편에 서 있는 동안에 민수와 여인은 한참 동안이나 앙칼진 눈으로 서로 바라만 보고 있더니 이윽고 여인의 입에서는 불이라도 불듯이 모진 어세가 쏟아져 나왔다.
 
33
“어떤 순둥이를 끌어들이구 또 이 짓야. 그놈의 버릇 언제나 고치누, 악마 같으니.”
 
34
민수도 펄펄 뛸 듯이 별안간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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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원수로 허구한 날 나타나 이 발광인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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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광? 누가 발광이야. 사람을 요 모양을 맨들어 놓고도 누굴 발광이래. 하루를 살아도 아내겠지. 신신이 일보고 있는 사람을 꼬여내다간 짓밟아 망쳐 놓고 자식까지 버리게 하고도 그래도 부족해서 허구한 날 이 꼴이야. 악마가 아니고 무엇인고.”
 
37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는 분김에 손에 닥치는 대로 책상 위 것을 집어 민수의 면상에 던지는 것이었다. 마개 열린 잉크병이었다. 쏟아져서 그의 얼굴과 옷자락에 한바탕 엉키고도 오히려 똑똑 떨어졌다. 바로 바라보기 어려운 꼴이었다.
 
38
“오늘은 어떤 일이 있든지 결단을 내고야 말걸.”
 
39
“미쳤구나.”
 
40
민수의 짧은 한마디를 여인은 그대로 푹 씌워 엎으며,
 
41
“미치고 말고 마지막 판에 헤아릴 것이 무엇인데. 자, 어떻게 해줄 테야. 죽이든지 살리든지 ── 살자고두 하잖는다. 눈앞에서 시원하게 죽어버리면 그만일께니, 누가 죽음을 두려워할까.”
 
42
문득 치마 틈에서 집아낸 것이 조그만 약병인 것을 보고 영옥은 무서운 생각에 뜨끔하면서 모르는 결에 몸을 쏠렸다. 발악을 들으면서 눈치로 헤아려보니 수척한 그 여인이 바로 언제인가 남구가 지껄인 연희 ── 백화점에 있다가 민수에게 발견되고 그와 지낸 지 해를 못 넘어 버림을 받았다는 연희임을 알았다. 두 사람 사이의 자세한 곡절은 물론 알 바 없었으나 그 살기를 띠인 어지러운 여인의 꼴이 영옥에게는 가엾다느니보다도 두렵게만 생각되었다.
 
43
마지막으로 약병을 집어낸 것을 보았을 때에는 벌써 그 자리에 더 서있을 수 없으리만치 몸이 떨리고 마음이 수선거렸다. 책상 위에 놓인 핸드백을 찾아 쥐는 손도 유난스럽게는 떨렸다.
 
44
“같이 먹기 싫으면 나 혼자라도 먹을 테야. 사내라는 건 비겁하구 야비하구……”
 
45
연희의 고함소리에 영옥은 더 참을 수 없어 그만 열려진 문밖으로 쏜살같이 나와 버렸다.
 
46
앞으로 몇 시간 동안에 방안의 비극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고 머리끝이 으쓱해지는 것이었다.
 
47
벌써 민수 개인에 대한 판단의 힘조차 없어지고 한결같이 두려운 생각만이 들어 하필 그날 그 시간에 민수를 찾게 된 것을 아무리 뉘우쳐도 한이 없었다.
 
48
지난날부터 계속하여 오는 우울한 생각이 한껏 절정에 이른 것이었다. 목표의 가수의 길이 새삼스럽게 가시덤불같이 험하게 내다보였다.
【원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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