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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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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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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
시험연주가 있은 지 며칠 안되어 방송연주의 날이 왔으나 이미 몇 차례의 시험으로 배짱을 든든히 다진 후였만 영옥은 그날 유독히 설레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시험연주 때에 벌써 충분한 실력을 보였고 그것이 단지 발라 맞춤이든 무엇이든 간에 관계자들의 지나친 칭찬의 소리를 들어왔건만 막상 목적의 날을 당하였을 때 그날은 그날로서의 불안과 초조가 있었던 것이다.
 
4
자기에만 유독히 과한 대접이라고 생각하면서 방송국에서 온 자동차에 남구들과 같이 올라 거리를 달릴 때에 가슴과 머리 속에 금시에 그 무엇이 가득 차지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할수록 육신은 더한층 굳어 갔다.
 
5
자랑스러운 것보다도 근심스러운 것이 앞서며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도리어 수난의 자리로 끌려가는 듯한 생각이 들며 차의 요동과 창밖에 흐르는 거리의 풍경의 심상한 한 폭이 유난스럽게도 순간순간의 마음을 잡는 것이었다. 한자리에 앉은 남구와 민수의 격려의 말은 도리어 뜻없이 한편 귀로 흘려 버렸다.
 
6
다 각각 이런 마음으로 모여들었을 신인들로 하여 방송국의 응접실은 방송의 시간을 앞두고 수선거리고 설렜다. 안타까운 꿈들은 가슴에 품고 닥쳐올 운명의 고패를 바라들 보며 어두운 초조의 빛이 얼굴들을 한 빛으로 칠하였다.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하고 웃고들 할 때 그것은 모두 억지로 꾸민 표정이요 거짓자세에 지나지 못하는 듯이 보였다. 남자들 속에 섞인 몇 사람의 여자 ── 별수없이 영옥과 비슷한 길을 걷는 처지가 아닐까. 재주조차 팔기 어려운 세상 ── 이라는 느낌이 그 안타까운 분위기 속에 그 어디인지 들여다보였다.
 
7
설레는 속을 떠나 영옥은 휴게실 소파에서 피아노 반주자와 몇 가지의 곡목에 대한 주의를 타협하고 있었다. 타협이라는 것보다는 차라리 침착한 태도를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어느덧 방송이 시작되어 응접실 확성기에서는 노래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방안의 공기도 가라앉은 듯한 고요한 속에서 누구인지 신인의 목소리가 제법 유창하게 들려옴이 영옥에게는 일종 신기한 느낌조차 주었다. 가슴이 한층 달떠가는 속에서 악보에 적힌 노래의 마디를 외우려고 애쓰는 동안에 확성기에서 흐르는 연주의 인물도 몇 차례나 갈렸건만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는지 흥분된 마음에 꿈결같이만 생각되는 판에 문득 눈앞에 남구의 자태를 발견하고 영옥은 암시나 받은 듯이 제물에 자리를 일어섰다. 연주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반주자와 함께 또렷한 정신없이 복도를 걸어가 방송실에 들어가는 걸음걸이 조차 약간 떨리는 듯하였다.
 
8
“정성껏 ── 믿습니다.”
 
9
한마디 귀띔하고는 이어서 방송 소개를 하는 남구의 말소리가 먼 바다 속에서 오는 것과도 같이 아련하게 들렸다. 눈앞의 마이크로폰이 꿈속의 괴물같이 이쪽을 노리고 있는 것을 볼 때 전신이 화끈 달며 머리끝이 솟았다. 그 괴물 앞에 수많은 사람이 ── 명호가 옥주가 민수가 남구가 애란이 인실이 그 외 수천 혹은 수만의 낯모를 사람이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 생각되자 몸은 불덩이같이 달았다.
 
10
피아노 소리가 떨어지자 또 한 사람 문득 마지막으로 마이크로폰 앞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순도였다. 공원에서 헤어진 후 다시 만나지 않은 순도가 그 순간 거리의 어느 구석에 묻혀 있을까가 돌연히 생각나며 그가 부르려는 노래가 결국 모두 단 한 사람 순도에게 바치려고 한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닫자 그의 그림자가 금시에 눈앞에 활짝 다가오는 듯도 하여 상기된 몸에다 마음의 열성까지를 부어 여옥은 사랑의 노래의 첫마디를 대담하게 불러냈다. 첫마디가 떨어지자 생각은 생각을 잇고 곡조는 곡조를 낳아 노래는 줄줄이 흘렀다.
 
 
11
순도는 그때 거리의 찻집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반드시 우연이 아니라 실상인즉 그날 밤의 신인의 밤 방송의 예정을 알아듣고 그렇다고 영옥에게 펴보일 수도 없는 은밀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식어가는 찻잔을 앞에 놓고 맞은편 벽에서 흘러오는 라디오의 소리에 정신을 쏠리고 영옥의 차례를 조릿조릿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12
공원에서 영옥의 태도를 나무라고 유행가와 소설의 구별을 엄격하게 판단하고 서글프게 헤어진 후 다시의 영옥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면서도 실상 그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복잡한 순도의 마음이었다. 유행가를 비웃고 소설의 값을 한층 치하하였건만 아직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고 있는 순도의 심경이었다.
 
13
소설을 생각할수록에 소설을 쓰게 되지는 않았다. 참된 소설은 마음속에 있을 수 있는 것 같이만 생각되었고 참된 괴롬은 가슴속 깊이 묻어 두어야만 옳을 것 같이만 생각되었다. 한번 입밖에 나오면 글자로 나타나면 그것은 벌써 괴롬이 아니요, 소설도 아니요, 김빠진 허수아비일 듯이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소설은 모두 마음속에 고여 있을 때만이 참된 것이요 한번 소설로 나타나면 거짓말인 것이다. 차라리 붓을 꺾어버릴지언정 거짓말을 써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곳에 그가 소설을 못쓰는 이유가 있었다.
 
14
그러나 한 자도 쓰지는 못하고 허구한 날 궁싯거리고만 있는 괴롬은 더한층 큰 것이었다. 쓰다가는 꾸기고 쓰다가는 버리고 하여 휴지된 원고지만이 책상 앞에 늘어갔다. 화를 내고는 거리에 나와 한잔 차에 분풀이를 하고 하는 요사이의 그였다. 안타까운 심정에 영옥의 생각만이 늘어갔다. 냉정하게 비웃기는 하였으나 소설 못쓰는 자기가 유행가를 부르려는 영옥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이 생각되었다. 쌀쌀하게 그를 떨쳐버린 것이 마음에 저리게 뉘우쳐졌다. 부질없이 냉정하게 군 것은 결국 완고한 고집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영옥에게 대한 질투가 아니었던가를 짐작할 때 마음속에 숨어 있는 것이 결국 그에게 대한 사랑이었던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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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은 이러한 마음의 고패를 겪은 후이라 영옥의 자태를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애달픈 마음으로 라디오 앞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찻잔에서 깊이 피어오르듯 마음속에서는 잡을 수 없는 애수가 피어올랐다.
 
16
한 사람의 노래가 끝나고 영옥의 소개의 말소리가 들려올 때 순도는 모르는 결에 허리를 세우고 정신을 차렸다. 반사적으로 라디오를 우러러 보고는 시선을 탁자 위로 떨어트렸을 때 슈베르트의 사랑의 노래가 고요히 흐르기 시작하였다. 바로 귀밑에서 부르는 듯도 한 영옥의 목소리를 연연한 노래의 구절구절을 그 모두가 자기 한 사람에게 보내진 것으로 생각하면서 순도는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하였다. 듣고 있는 동안에 피가 수물거리고 얼굴이 빛나 갔다.
 
 
17
내 노래 사붓이
18
밤새도록 그대에게 구하노라
19
고요한 숲을 내려와
20
임이여 내게 옵소사고.
 
21
그대도 떨리는 가슴으로
22
임이여 내 노래 들으소서
23
내 떨면서 기다리니
24
오소서 내게 사랑 주소서……
 
 
25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마쳤을 때 영옥은 눈물이 핑 돌며 피아노 앞에 그대로 쓰러질 듯도 하였다. 마이크로폰 앞에 그때까지 귀를 기울이고 있던 순도가 금시에 먼 곳으로 쏜살같이 달아난 듯한 착각이 눈을 후려갈겼던 까닭이다.
 
26
반주자가 일어나서 그를 붙드는 동안 남구가 달려오고 민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하여 다음 순간에도 칭찬의 소리가 그의 귀를 덮을 지경이었다.
 
27
“대성공이오.”
 
28
“오늘밤 으뜸의 성적이오.”
 
29
“방송국 총출동으로 함빡들 취하였었소.”
 
30
방송실을 나가 응접실에 이르렀을 때 신인들과 등대하고 있던 국원들 속에 영옥은 둘러싸였다. 수다스러운 말소리에 마음이 현혹할 뿐이었다. 어안이 벙벙하고 얼굴이 달았다. 성공 여부를 자기로 알 수는 없었으며 결국 성적보다는 사람들이 요란히 떠드는 속에 성공이라는 것이 있음을 깨달을 때 수선스러운 자리를 속히 피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31
“반가운 손님이 두 분 있는데 ── 감격해서 기다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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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가 전하는 말소리에 영옥은 문득 귀가 뜨이며 반가운 손님이라니 ── 행여나 순도가 아닐까 하는 순간의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더물을 여가도 없이 그를 따라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33
눈앞에서 실망의 빛을 보일 수도 없이 웃음을 띠우기는 하였으나 기쁘던 마음은 금시에 움츠러드는 듯도 하였다. 부인란 기자로 있는 한 고향 동무 애란과 또 한 사람 모를 사나이었다.
 
34
“뛰어오니까 벌써 방송이 시작됐더구나. 오늘밤같이 감격한 때도 적었다. 그만하면 큰 성공이지.”
 
35
애란이 속임 없이 던져 주는 칭찬의 말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도 한층 기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런 때 순도의 한마디를 듣는다면 얼마나 기쁠까를 생각할수록에 마음 한편으로는 섭섭함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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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말씀 드린 강남레코드회사 문예부장 윤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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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소개를 따라 맞은편에 앉았던 사나이는 허리를 엉거주춤 일으키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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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에 뵙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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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름하고 비대한 그 사나이가 소문에 익은 윤주임을 듣고 영옥은 덩달아 허리를 굽히고 애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지러운 마음속을 정리도 못한 채 딴 사람을 차례차례로 만나기가 본의는 아니었으나 현재 놓여 있는 처지상 하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새삼스럽고 마음을 먹었다.
 
40
“오늘밤 노래는 재미있게 들었을 뿐 아니라 침착한 천분에 실상은 놀라고 있습니다.”
 
41
윤주의 말을 민수가 괴덕스럽게 채어서,
 
42
“내 말이 헛말이 아니지요. 칭찬은 천천히 하시구 어서 사무부터 시작하시지.”
 
43
윤주도 본색을 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44
“직업이 직업인만큼 무엇보다도 먼저 늘 상담이 앞서는데 ──”
 
45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46
“민수씨에게서 들어서 희망하시는 바를 대강 짐작해서 말씀인데 이번 기회에 우리 회사에 나와 주실 의향은 없으신지. 전속가수로 승낙만 하신다면 계속해서 작품은 얼마든지 맨들 작정이고 ──”
 
47
다따가의 청이 영옥에게는 웬일인지 거짓말 같이만 생각되어서 대답하기조차 얼얼하였다.
 
48
“승낙 여부가 있나요. 물론 좋으시겠지요.”
 
49
민수의 말을 이어 애란조차가 추서드는 것이다.
 
50
“하룻밤 동안에 출세의 길을 잡았구나. 기회로 생각하고 해보렴.”
 
51
한번 목표를 정하기는 한 영옥이언만 갈피갈피 복잡한 심정을 가진 그로서 그 자리에서 선뜻 단마디의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마음이 산란하였고 무엇보다도 말이 너무도 수월하고 조건이 너무도 좋았다. 영옥은 우선 겸양의 말을 한마디 보냈을 뿐이었다.
 
52
“천천히 생각해 보지요.”
【원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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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기본
  # 거리의 목가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7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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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