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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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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2
10
 
 
3
여옥이 싫어하는 바람에 피로연으로 이끌 수는 없었으나 윤주를 만날 것을 칭탁하고 민수는 차를 어떤 바 앞에 세웠다. 그것으로서 결혼식 행사에서는 온전히 벗어져 난 셈이었으나 그것이 도리어 민수의 처음부터의 작정이었지 명호에게서 결혼식 내빈의 뒷갈망을 맡은 법도 없었고 그 이상 더 식의 행사에 참례할 의무도 없었던 것이다.
 
4
영옥도 피로연에서 벗어져 나게 된 것을 크게 다행으로 여기며 그 바람에 민수가 권하는 대로 수월하게 바로 들어갔다.
 
5
민수는 차 대신이라고 하면서 큐라소의 병을 분부하였다. 한잔의 술이 아니라 한 병의 술이 탁자 위에 올랐다. 밑이 밭은 유리잔에 진득한 누른 술을 따라 놓고 민수는 전화를 걸러 안으로 들어갔다. 회사에 있는 윤주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6
차 대신이라는 바람에 영옥은 잔의 술을 입에 대었다가 단 바람에 한 모금 머금어 보았다. 단술과도 같아서 눅진하게 목을 눅이는 품이 만만 할 듯싶어서 한잔을 완전히 켜버리는 판에 민수는 마침 윤주가 잠깐 자리에 없다는 뜻을 전하면서 전화에서 돌아왔다.
 
7
“좀 있다 다시 걸기로 하구 ── 술맛이 아니라 홍차 맛쯤밖엔 안되죠.”
 
8
비인 영옥의 잔을 채우구 자기 몫을 단모금에 마시는 것이다. 기름한 질그릇병에서 나오는 감빛 술을 영옥은 짜장 홍차쯤으로 짐작하면서 그 단맛에 유혹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9
“병 채로 청했으니 얼마든지 드시죠. 그까짓 차쯤.”
 
10
농을 농으로 받으면서 영옥은 술잔을 사양하지 않았다.
 
11
“언제인가 아파트에서 실례가 많았으니 벌써 잊어 주셨겠죠.”
 
12
차차 누그러져 가는 영옥의 모양을 가늠보면서 민수는 묵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13
“그러나 불측한 소리 같지만 과히 노여하지 마실 것은 그만한 허물은 남자치고는 예사란 것요. 남자된 특권 ── 이야 무슨 특권이겠습니까만 일종의 숙명이라고두 할까요. 아마도 지금 이 거리의 사내치구 누구나 그만한 장면 겪지 않은 사람, 그만한 허물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게니요. 적어도 마음을 쪼개 보면 누구나 그만한 일 저지를 위험성은 다 가졌고 ── 결국 평생에 그런 기회가 닥쳐오나 안 오나가 문제일 뿐이라는 걸 알아주십시오.”
 
14
“…………”
 
15
“제 입으로 말하긴 변명 같아서 대단히 불리합니다만 알구 보면 남자란 ── 사람이란 그런 겝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세상의 남자를 대신해서이 비밀을 고자질한다구 내게 항의할 남자두 없겠거니와 그런 자격을 가진 사내라곤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겠죠.”
 
16
“…………”
 
17
“연희 말만 들으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사내인 셈이지만 피차에 이해만 어그러지면 사람이란 별말이래두 다 하는 법. 날더러 말하라면 내가 그다지 고약한 사내두 아니거니와 연희의 처지가 그렇게 불행할 것두 없구 실상은 현재두 될 수 있는 대로 정성껏 뒤를 보살펴 주는 처지인데 지나친 발악은 쓸데없는 센티멘탈리즘일 뿐.”
 
18
술잔을 거듭하면서 민수는 싱숭생숭 말이 많았으나 단술에 맛을 들인 영옥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불쾌한 말들은 아니었다. 별반 반감도 동감도 없이 한 귀로 흘릴 정도로 심드렁하게 듣고 있었다.
 
19
“여자를 두고 움직일 때의 사내의 마음이란 것이 원래 고약한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빗나갈 때에 고약하게 나타나는 수도 있겠죠. 결국 생각하면 항상 원인은 여자에게 있기 때문에 죄는 그 편이 더 많은 것 같은데 ── 가령 세상의 악마라는 것도……”
 
20
무엇을 생각하였던지 민수는 거기서 말을 멈추고 문득 다시 전화를 걸러 안으로 들어갔다. 노엽던 마음이 그만큼이라도 풀리는 것은 술의 덕일까 하고 영옥은 큐라소의 잔을 신기한 것으로 노려보았다. 마음은 별궁리없이 단순하게 가라앉아 갔다.
 
21
민수는 부리나케 전화에서 돌아오더니 부랴부랴 영옥을 재촉하였다. 윤주는 벌써 장소를 정하고 먼저 그리로 가서 두 사람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급스럽게 서두르는 바람에 영옥은 바를 나온 것이며 자동차에 오른 것이며 거나한 정신에 도무지 꿈속 일만 같았다. 벌써 불이 들어온 거리를 달리는 차가 하늘을 달리는 날개인 듯 유쾌하였다.
 
22
“좀 야단스런 것 같지만 오늘은 회사로서의 정식 초대라나요. 그래서 특별히 이런 장소를 골랐다는군요.”
 
23
어두워 가는 뒷골목에서 차가 섰을 때 민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딴은 조금 거추장스럽게 큰 요정이었다. 그런 길은 처음인 영옥이 문간에서 얼마간 주저는 하였으나 결국은 수월하게 들어서게 된 것은 역시 술김이 었을까. 사실 만만히 보고 잔을 거듭한 단술의 효과는 처음에는 몰랐던 것이 차차 그 효험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요정에 들어섰을 때의 그의 눈총은 벌써 바를 나올 때의 아직도 맑던 그 눈총은 아니었다. 다리의 맥도 어딘지 없어 허전거렸다. 복잡한 복도를 꼬부라져 구석 편 방에 들어갈 때까지 도무지 온전한 걸음은 아니었다. 방 가운데 도사리고 앉은 윤주를 보았을 때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나면 정신이 들었다.
 
24
“잘 오셨습니다. 장소가 좀 어떨까도 생각했으나 과히 허물 마시구 ──”
 
25
장소에 관한 설명을 윤주에게서까지 마저 듣게 되는 영옥은 비로서 섬찟한 생각이 나면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26
“제 마음대로는 했습니다만 입사는 이미 작정되신 게니 오늘은 축하를 위한 피로의 잔치를 저로서 드리고도 싶고 해서 ──”
 
27
사실 영옥은 교섭의 회담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잔치의 대접을 받으러 온 셈이었다. 넓은 식탁에는 야단스럽게 진미가 올랐다. 교섭이래야 문예부의 작곡 작사로 취입할 곡목이 작정되었다는 것과 그 연습을 하러 일차 사에 나와 달라는 것과의 통지와 분부이지 그 이상 별 내용도 없이 즉시 만찬이 시작되었다. 극히 어렵고 까다로워야 할 일이 왜 이리도 수월할꼬 생각하면서 영옥의 마음속은 그다지 편편한 것은 아니었다. 축배의 석잔 술이 의외에도 전신에 활짝 피기 시작하였다. 잡담을 건네면서 고래같이 술을 켜는 두 사나이를 영옥은 혼몽한 정신으로 바라보았다. 민수를 꾀바른 사냥꾼으로 친다면 육중한 윤주는 갈데없이 짐승이었다. 사물거리는 눈앞에서 망아지로 보였다가 산도야지로 어려웠다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실상은 얼마 안 지났겠건만 퍽도 오래된 듯이 생각되는 속에서 영옥은 문득 민수의 흐리멍덩한 한마디를 들었다.”
 
28
“취한걸―바람 좀 쐬고 오리다.”
 
29
비틀비틀 나가는 민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자태가 문밖으로 사라졌을 때 영옥은 문득 정신이 들며 새삼스럽게 고요하여진 방안 공기가 몸을 선뜻 스쳐오고 웅크리고 있는 윤주의 자태가 위험한 짐승으로 느껴지며 별안간 몸서리가 치는 것이었다.
 
 
30
복도에 나선 민수는 문밖에 장승같이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짜장 술도 취하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거나한 속으로 한 줄기 맑은 정신이 마치 곧은 철사같이 날카롭게 전신을 꿰뚫고 있었다.
 
31
── 어떻게 해야 옳을꼬.
 
32
짧은 순간의 일이었으나 이런 번개 같은 생각이 머리 속에 편적이고 있었다.
 
33
── 동무의 우의가 중할까, 정조가 중할까.
 
34
언제인가 윤주와 맺은 신사조약을 생각하고 있는 것 이었다. 문예부장의 지위와 사랑과의 교환을 걸었던 약속의 일건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내들끼리의 멋대로의 작정이었으나 윤주의 영옥에 대한 욕망과 민수의 영옥에게 대한 노염 ── 이 두 감정의 합류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윤주로서는 야욕이었고 민수로서는 일종의 분풀이요 복수의 심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불측한 농으로 시작된 것이었으나 일단 약속이 성립되었을 때에는 거기에는 스스로 사내로서의 배짱도 서고 위신도 보여야 되게 되었다 ── 민수의 마음의 괴롬은 그 점에서 있었던 것이다.
 
35
답답한 판에 창을 열고 어두운 뜰을 내다보면서 무더운 얼굴에 바람을 맞다가 민수는 문득 그러고만 있을 수도 없는 듯이 결의를 하고 창 기슭을 내려섰다.
 
36
── 결국 내 손가락 하나에 달린 일이다.
 
37
방문 옆벽 위 스위치를 눈 꾹 감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그만인 것을 안다. 방안의 불이 꺼질 것이요 민수의 앞에 어둠의 세상이 놓여질 것이오, 따라서 그와의 약속은 이행되는 것이다.
 
38
등불 아래에서 어둠을 기다리면서 웅크리고 앉았을 윤주의 꼴이 눈앞에 떠 오른다. 짐승 같은 꼴이라니! 뒤이어 우두커니 마주앉아 잠시 후에 올 운명도 모르고 있을 영옥의 자태가 떠오른다. 불한당들의 계책으로 그런 줄도 모르고 지금 막 희생의 단 위에 오르려는 가여운 양! 참으로 가여운 양! 숭한 불한당들! 가여운 양!
 
39
민수는 어지러운 생각에 삼삼거리던 방문 앞을 떠나 다시 창 기슭에 올라 가슴을 헤치고 바람을 맞았다. 맞은편 창에서 등불이 흘러 초목이 그 속에서 신선하게 빛났다. 복도에는 어른거리는 보이들의 그림자가 보이고 그 어디인지 방에서는 유흥의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고요한 속에서 시간이 무한히 흐르는 듯한 느낌이 불현듯이 솟으며 민수는 초조하게 창에서 내렸다.
 
40
── 악마가 되기가 이렇게도 어려운가.
 
41
고개를 흔들며 복도를 거니는 발이 떨린다. 아직까지도 할 바를 모르고 방안에 우두커니 웅크리고 앉았을 윤주의 꼴이 별안간 딱하게 생각되자 견딜 수 없이 몸이 숭숭거린다. 우의와 정조와 ── 우의가 반드시 정조보다 허름한 법은 없을 것이다. 약속은 약속이다. 한번 입밖에 낸 장부의 한마디가 그렇게 허수하게 버려질 법은 없다. 조약이란 이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리 주석에서 맺은 언약이기로 헌신짝같이 내버려질 법은 없는 것이다. 행할 뿐이다. 말은 행하여야 한다.
 
42
── 악마가 되려다가 미끄러진 팔동이는 악마보다 더 못난 것이다. 어차피 악마의 심정으로 시작된 것이니 차라리 악마가 되어 버리는 것이 편한 노릇이다 무엇을 주저하랴.
 
43
마음이 작정되자 민수는 더 뭉갤 필요는 없었다. 짜장 금시에 악마로 나 환생한 듯이 얼굴을 괴롭게 ── 가 아니라 무섭게 찡그리고 문밖 벽 앞으로 달려들었다. 운명의 골패쪽이 떨어지는 순간같이 엄숙하고 긴장된 순간이 있을까. 골패쪽을 쥐인 악마의 손 ── 스위치를 잡은 민수의 손은 나무같이 굳으면서 떨렸다. 항상 망설이는 동안이 길었지 떨어지는 시간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순간 ── 골패쪽은 떨어지고 말았다.
 
44
민수는 벽에서 번개같이 손을 떼고 장승같이 굳은 몸으로 문 앞에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가. 세상이 별안간 함정 속에 빠졌는가. 하늘의 별이 떨어졌는가……. 빙글빙글 돌던 지구덩이가 금방 문득 서버린 듯도 한 착각이 일어나며 정신이 아찔하여졌다. 문틈으로 들여다보이는 방안이 어두울 뿐 아니라 복도도 어둡고 세상 전체가 암흑으로 변한 듯싶었다.
 
45
── 흠, 대체 무엇을 저질렀노. 무엇이 일어났노.
 
46
현기증으로 금시 그 자리에 쓰러질 듯도 한 것을 간신히 몸을 곧추세우고 골을 흔들어 보았다. 골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음이 신기하였으나 눈앞이 핑핑 도는 판에 그 자리에서 발을 돌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저주받은 방문 앞에 한시도 더 머물러 있기가 괴로웠다. 거의 미칠듯이도 수선거리는 머리를 부둥켜안고 복도를 허둥허둥 뛰어가는 것이었다. 어디론지도 모르게 복도를 구부러져서는 대중없이 달았다. 그 무엇에 쫓기우는 듯도 한 참혹한 그 꼴은 자랑에 넘치는 악마의 꼴이 아니라 싸움에 짓 찢기우고 달아나는 광대의 꼴이었다.
【원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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