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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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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2
12
 
 
3
공원의 아침은 맑다.
 
4
순도와 영옥의 마음속도 연못의 물같이 고요하고 맑은 것이었다.
 
5
영옥의 마음이 한결 개운한 것은 그날 아침 순도가 먼저 자기를 찾아 주고 공원까지 끌어내준 까닭이다. 사랑의 고집은 마지막까지도 끈끈스럽게 마음으로 지배하는 모양이었다.
 
6
영옥에게는 그 변이 있은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에 무서운 번민의 날과 밤이 있었다. 봉욕의 순간을 생각하면 살이라도 에우고 싶은 듯한 지옥의 괴롬이었으나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에 상처도 사라져 가고 무엇보다도 순도가 그것을 허물하지 않고 용서하여 줌이 그에게는 더없는 구원이었던 것이다. 어디론지 사라져버린 윤주에게 대하여서는 징계의 길이 없었으나 짐승이 아닌 이상 제 스스로의 뉘우침에 맡겨 두기로 하였고 ── 그보다도 영옥과 순도 두 사람에게는 어느결엔지 큰 깨달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 깨달음 앞에 지난날의 흠쯤은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다.
 
7
공원에서 그렇게 두 사람이 조용히 만나기는 언제인가 서글프게 싸우고 헤어진 후 여러 달만에 처음이었다. 몇 날의 시간이 많은 마음의 변천을 가지고 와서 그때와 오늘과의 두 사람의 처지는 같은 것이 아니었고 마음과 표정 또한 퍽도 다른 것이었다. 험한 한 고패를 지난 후의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8
“생각할수록에 사람이란 어리석고 앞 눈이 어두운 것이 한되는구료.”
 
9
순도는 나뭇잎을 뜯어 입술에 물면서 나무그림자 사이로 영옥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10
“── 첨부터 이날이 올 것을 알았다면 무엇을 즐겨 굳이 파란곡절을 꾸며 놓고 그 속을 괴롭게 헤매 왔단 말요. 단걸음에 순순하게 결말을 잡았더면 될 것을.”
 
11
“제 생각엔 꼭 무슨 조물주 같은 것이 있어서 사람의 길을 심술궂게 요리조리 틀어놓고 사람의 걸어가는 등뒤에서 농간을 부리는 것만 같애요. 마치 소설가 모양으로 부질없이 인생을 기구하게만 꾸며 놓구 ── 조물주란 꼭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심술궂은 것인 듯해요.”
 
12
“소설가 ── 소설가는 걸작인데. 그러나 나같은 소설가야 그런 꾀를 부릴 줄이나 아우. 그러게 당초부터 소설가두 아니요 그런 의미의 소설가라면 되구 싶지두 않구.”
 
13
“애매한 소설가를 걸어서 ── 말이 빗나갔어요. 용서하세요. 어떻든 결국은 되돌아오게 되는 첫길인 것을 공연히 장황하게 빙 돌다가 전신에 상처투성이를 해가지구 다 저녁때 어슬어슬 돌아오게 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군 해두 생각하면 원통해요. 같은 값이면 첨부터 순조로웠으면 오죽 좋겠어요.”
 
14
“조물주의 농간으로만 돌리지 말구 피차의 마음에두 비쳐 봅시다 ── 터놓구 말이지 영옥씨가 당초부터 괜한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면 그렇게 빗이야 나갔겠소.”
 
15
어느덧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걸었다. 나뭇잎의 그림자가 두 사람의 얼굴과 몸에 아롱아롱 무늬를 놓으면서 지나간다.
 
16
“고집이라니요. 아니 누가 먼저 고집을 피셨어요. 생판 고집 없는 양반이.”
 
17
영옥은 거의 펄쩍 뛸 듯이 발을 멈추고는 순도를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다. 순도는 웃음을 머금으면서 부드러운 낯으로 그의 시선을 받는다.
 
18
“그렇게 정색할 게야 있소.”
 
19
“정색하구 말구요. 고집을 누가 먼저 피웠게.”
 
20
귀엽게 짜증을 내면서 영옥은 벤치에 가서 덜석 앉는다.
 
21
“그럼 말할까. ── 명호들에게 지도를 받느니 뭐니 하구 서두른 것두 고집. 강남회사에 들어가느니 뭐니 하구 법석을 한 것두 고집……”
 
22
영옥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발을 톡 구르고 일어나서 순도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23
“당초에 길을 옳게 잡아줄 생각은 하잖구 그렇게 되도록 부러 꾸민 것은 대체 누구의 고집이었어요. 누구의 고집이었어요. 얼른 말씀하세요.”
 
24
목이 메이는 듯 잠깐 숨을 돌려 가지고는,
 
25
“── 늘 뿌루퉁하구 빼지구 쌀쌀하구 심술궂구 화만 지르구 ── 그 고집엔 그만 지쳤어요.”
 
26
“한마디 더하지 ── 공연한 일에 이렇게 쓸데없이 법석을 하는 것두 고집이 아니오.”
 
27
그 말에는 영옥도 대꾸를 몰라 입을 다문 채 두 사람은 다시 나무그늘을 걷기 시작하였다.
 
28
“어떻든 생각하면 결국 고집의 비극이었었소. 앞으론 고집을 버립시다.”
 
29
“제발요,”
 
30
“정말 ──”
 
31
순도는 발을 머무르고 마치 미친 사람 모양으로 영옥의 두 어깨를 억세게 붙들었다. 타는 눈이 녹일 듯이 그를 쏜다.
 
32
“── 고집을 버리겠소. 그리구 내 시키는 대로만 하겠소. 내 명령대로만 ── 일절 거역 없이.”
 
33
“아무렴요. 무엇이든지 분부하세요. ── 땅속에래두 들어가죠.”
 
34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순도는 열광적으로 영옥을 안으면서 숙인 그의 얼굴을 찾았다. 바로 머리 위 나뭇가지가 새의 짓인지 바람의 짓인지 별안간 나부끼며 두 사람의 자태를 어른어른 싸고도는 것이 마치 그들과 농을 하자는 것과도 같다.
 
35
“그럼 우선 오늘부터 내 분부대로 움직이시오 ── 자, 먼저 하숙으로 갑시다.”
 
36
영옥은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같이 온전히 순도의 의지대로 발을 떼어 놓았다.
 
37
“물론 오늘 문득 작정한 것이 아니라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이지만 ‒‒‒‒”
 
38
영옥의 하숙에 이르렀을 때에 순도는 침착한 어조로 분부 ── 가 아니라 선언을 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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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른 짐을 싸시오. 오늘루 서울을 떠납시다. 불결한 분위기를 시원하게 떠나서 고요한 속에서 장래의 계책을 다시 세웁시다.”
 
40
듣고 싶던 말이 바로 그 말이었던 듯이 영옥은 한마디 거역은새로 눈 한번 깜박거리는 법없이 침착하게 짐을 싸기 시작하였다. 그 억센 고집도 어디로 갔는지 사랑의 말을 쫓는 그의 양은 어른 말에 순종하는 어린아이의 바로 그 양이었다.
 
41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시오. 고향으로 가든 어디로 가든 내게 맡기구 내 뒤만 따르시오. ── 모든 준비 벌써부터 다 해 가지구 있었던 것요.”
 
42
서울 그것이 싫증이 난 영옥에게 초라한 하숙방에 도대체 미련이 남을 것이 없었다. 마치 잠깐 걸어앉았던 대합실 벤치를 떠나는 정도의 심사로 하숙을 나왔다. 두 짝의 트렁크가 양편 손에 들렸을 뿐인 ── 개운한 나그네의 자태였다.
 
43
순도의 숙소에 들려 짐을 꾸려 가지고 차시간을 살펴 역까지 나온 것은 오후를 훨씬 지나서였다. 거리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도 요행으로 생각되었다.
 
44
어디까지가 한정인지 목적지 모를 두 장의 차표 ── 그것이 순도의 손에 쥐인 것을 볼 뿐 굳이 물어볼 것도 없이 영옥은 순도의 뒤를 따라 기차 속에 몸을 던졌다. 하루 동안에 차례차례로 급스럽게 일어난 모든 거동이 꿈속 일 같이만 생각되었다. 행여나 거짓말이나 아닌가 하고 영옥은 손으로 차장을 만져 보았다 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하면서 신기한 생각에 가슴을 떨었다.
 
45
아직 해는 길었으나 이미 준비되어 있는 침대차를 올랐던 까닭에 그다지 번잡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두 사람은 수월하게 자리에 마주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말로 속임 없이 바라던 세상이 눈앞에 닥쳐오는 것을 느끼며 영옥은 알 수 없이 마음속이 그득 차지는 것이었다.
 
46
“이때까지 명령만 들어왔으니 이번에 제가 명령할 차례예요 ── 제 질문에 꼭 대답해 주세요.”
 
47
막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을 때 영옥은 응석을 하는 어린아이 양으로 다가가 순도의 손을 잡았다.
 
48
“절 얼마나 생각하세요.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49
“하늘만큼. 구슬이라면 그대로 입에 삼키고 싶소.”
 
50
시원스런 이 대답을 비록 짧기는 하건만 하늘 아래에서 가장 행복스런 말로 느끼면서 영옥은 얼굴만이 아니라 전신에다 함빡 미소를 머금었다.
 
51
“또 한 가지 분부 ──”
 
52
별안간 정색을 하고 눈으로 창을 가리키면서,
 
53
“── 창을 닫혀 주세요. 그리고 휘장을 내리구.”
 
54
그러나 그 어여쁜 분부를 쫓기 전에 순도는 그저 영옥의 상기된 볼을 마치 꽈리를 주무르듯 손가락 사이에 징긋이 집어 보는 것이었다.
 
 
55
* 여성 1937. 10. ~ 38. 4
【원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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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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