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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女人) ◈
◇ 金白玉 (김백옥) ◇
카탈로그   목차 (총 : 9권)   서문     이전 9권 ▶마지막
1929.12~
김동인
1
女人
2
9. 金白玉
 
 
3
백옥(白玉)이라 쓰고, 배옥이라 부르는 것이 그의 이름이었었다. 일인도 하꾸교꾸(はくぎょく―白玉)라 하지 않고 바이교꾸(ばいぎょく―梅玉)라 하였다.
 
4
1927년의 겨울부터 1928년의 겨울까지― 만 일 개년을 나는 두문불출 하였다. 파산, 실퍼, 거기 따르는 불편, 빈곤, 고통,― 이런 현실고에 부대끼어, 할 수 없는 그날그날을 보내는 동안, 나는 막연하나마 이대로 지내다는 나의 귀한 혼까지 타락을 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자포적(自暴的 ) 타락경에 빠져들어 가려는 혼을 붙잡기에 온 힘을 다 썼다. 만약, 그때에 나로서 한 걸음만 길을 헛디디어서 그 출발을 그릇하였다 하면, 지금쯤은 소위 세상에서 이르는 바의 한 개의 부랑자― 그렇지 않으면 헌놈이 되어 버렸을 것이었다. 멋은 알고 돈 없고 직업 없고 생활 방책도 모르는 한 전형적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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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으로 자포적 타락경으로 빠져들어 가려는 자기의 마음과 맹렬한 싸움을 한 지 일 년 뒤 나는 마침내 자기를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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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기기는 이겼다. 그러나 이 전쟁 뒤의 나는 전쟁 전의 나와는 전연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혈기와 용기와 행복감으로 찼던 나는, 쓰고 쓴 세태를 겪고 나 피곤한 늙은이로 변하였다. 세상을 즐겁게 보려던 한 쾌할한 청년은 ‘되는대로’를 표방하는 중년 사나이로 변하였다.
 

 
7
나의 동생 동평(東平)이가 ‘춘희(椿姬)’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을 평양서 흥행할 때에, 잠시 엿본 나는 문득 흥행이라는 데 대하여 흥미를 느꼈다. 그것은 흥행 그것보다도 흥행을 위하여 돌아다니는 그 여행의 취미에 더욱 흥미를 느낀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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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양행을 경영하던 K를 찾아가서 영화를 하나 빌려 가지고 진남포로 내려가, 항좌(港座)에서 첫 여행을 하였다. 미나미 도시오(南敏夫)라는 일본 변사를 평양서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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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일(初日)이었었다. 그 날의 ‘첨물(添物)’도 끝나고 ‘도리(とり― 흥행에서 마지막에 하는 인기 프로)’도 벌써 시작된 때쯤이었었다. 나는 들어오는 손님을 보느라고 문간에 앉아 있었다. 그때에 하녀가 장내로 들어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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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바이교꾸상, 오덴와.(きんばいぎょくさん,お電話―김매옥 양 전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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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도로 나왔다. 그 뒤를 따라서 웬 기생 하나이 나와서 사무실로 갔다. 전화를 받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러더니, 그 기생이 제 신발을 들고 와서 홱 하니 문밖으로 내어던졌다. 그리고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나가서 그 신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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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기생이 짜증을 부리는 것이 우스워서 미소하였다. 그 기생도 나를 보고 그만 픽 하니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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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생이 짜증을 내며 돌아간 뒤에, 나는 하녀를 불러서 누구냐고 물었다. 그리고 하녀에게서 긴바이교꾸(きんばいぎょく)라는 기생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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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덴바다네(お轉婆だね―말괄량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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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시까시 나까나까 우렛꼬데스요(ええ、倂し、中中賣っ子ですよ―네, 하지만 제법 인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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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배옥이를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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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동안을 일본인 측 흥행을 한 뒤에 나흘째 되는 날은 평양서 방모(方某)라는 변사를 불러다가 조선 측 흥행을 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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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흥행이 시작된 뒤에, 사무실에 앉아 항좌 주인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사흘 전에 짜증을 부리며 돌아가던 기생이 또 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알았고 저편 객석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양을 가리키면서 주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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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바이교꾸(きんばいぎょく)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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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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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로시이 간샤꾸모찌데스네. (恐しいかんしゃく持ちですね―대단 한 불뚱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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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루기세이데스요.(流行る妓生ですよ―인기있는 기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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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하녀에게서, 오늘은 주인에게서, 잘 불리는 기생이란 찬사를 들은 긴바이교꾸에 대하여 나의 호기심은 약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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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이 끝난 뒤에, 나는 방 변사를 데리고 어떤 중화 요리집으로 갔다. 그리고, 무엇을 먹고 무슨 술을 마시며 기생을 누구를 부르겠느냐는 보이에게, 음식을 지시한 뒤에, 곧 김매옥(金梅玉)이라는 기생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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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옥이? 매옥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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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애교없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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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방금 흥행이 끝난 뒤에 돌아가는 그를 보면서 항좌를 나섰는지라, 벌써 다른 데 불렸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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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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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요. 매월(梅月)이라고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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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매옥이라는 이름 가진 기생이 없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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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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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를 기울였다. 매월이면 바이게쯔(ばいげつ)지, 바이교꾸(ばいぎょく)가 아닐 게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한 번도 아니요 두 번을, 바이교꾸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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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명부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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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져온 명부를 뒤져 보았지만 매(梅)자를 가진 기생은, 김가 가운데는 매월이 하나 밖에는 없었다. 나는 다시 명부를 보았다. 이번은 옥(玉)자를 표준삼아 가지고. 그리고, 거기서 김산옥(金山玉)이와 김백옥(金白玉)이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발견한 두 가지가 다 하나는 긴상교꾸(きんさんぎょく)요, 하나는 긴하꾸교꾸(きんはくきょく)로서 바이교꾸(ばいぎょく)와는 비슷도 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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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보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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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매옥이라는 기생이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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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삼년째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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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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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에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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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키는 중키나 되고, 몸이 간얇고, 눈 크고, 웃을 때는 입에 각이 없어지고, 뾰롱뾰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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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을 따라서 그 기생의 모습을 설명하여 보려고 이만치 말할 때에, 보이가 탁 제 손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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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김배옥이 아니오?”
 
43
“그래, 김매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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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매옥이가 아니요, 배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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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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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명부를 보았다. 내가 명부를 들여다보는 뜻은 안 보이가, 먼저 손가락으로 어떤 이름을 가리켰다. 그것은 김백옥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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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야 백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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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옥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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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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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바이교꾸(きんばいぎょ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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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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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부른 기생이 들어오는 것을 보매, 그것은 항좌에서 본 그 기생이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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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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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침과 함께 보이가 여는 문으로 들어온 배옥이는, 먼저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그런 뒤에 인사도 하지 않고 상 맞은편에 덥석 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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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좌에서 바로 오섯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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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묻는 그에게 그렇다고 대답을 한 뒤에, 이름을 몰라서 부르기에 고심한 그 이야기를 하니깐 그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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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좌에서 같이 가자구 그러시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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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랬더면 좋을껄, 하마터면 김매월이를 부를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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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사진을 즐겨 하고 연극을 즐겨 한다는 배옥이는, 또한 이야기를 즐겨 하는 기생이었었다. 대수롭지 않은 사건을 가지고도, 그는 한 토막의 이야기를 만들고 하였다. 그리고 거기다가 고기를 붙이고 뼈를 넣어서, 재미있는 듯한 일석화(一席話)를 만들고 하였다. 본시 눕기를 좋아하는 나는 퇴침을 베고 누워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라고 나르럭이 노는 그의 입술을 바라보면서, 그가 며칠 전에 항좌 문밖에 제 신을 내어던지며 짜증을 부리던 일을 생각하고, 뜻하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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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기생이다. 게다가 저만치 이야기를 즐겨 하고 이야기를 만들 줄을 알고 그 만든 이야기를 순서있게 토로(吐露)할 줄 아는 이 기생이, 만약 계통적 교육만 받았더면 소설 작가는 되지 못하였을까고. 그리고 만약 그로서 소설 작가가 될 소질을 가졌다 하면 그 아까운 소질이 못된 환경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헛되이 썩어지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운명을 탄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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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때에 그는 부러 우리를 데리고 자기 집 앞에까지 가서 자기 집을 알려 주고 내일부터 놀러 오라는 부탁을 하였다. 거기 대하여 놀러 가마고 단단히 약속한 나는, 이튿날은 오래 못 만났던 친구 R을 만나서 반가운 회구담에 그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그날 밤으로 남포의 흥행을 끝내고 또 그 이튿날은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를 그의 집으로 찾아가마 하였던 약속은 종내 실행하지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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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정월의 첫 여행을 평양 금천대좌(金千代座)와 계약을 하고 ‘2번 흥행’을 항좌에 계약하기 위하여, 나는 양력 연말이 다 된 어느 날 진남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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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좌와의 계약은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여관으로 돌아온 나는 저녁차까지의 시간을 배옥이의 집에라도 찾아가 볼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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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내 나이, 스물여덟, 배옥이는 열입고, 십여 년이라는 나이의 차를 가지고 있는 나는 내가 배옥이에게 가지고 있는 이상한 애착을 스스로 시인하기가 부끄러웠다. 문학자로서의 자기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비판안을 끊이없이 부웃고 있는 나는, 자기가 배옥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상한 애정의 위에도, 엄정한 비판을 부웃기를 사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내가 그에게 가진 바는, 어버이가 자식에게, 맏동생이 아랫동생에게, 또는 어른이 어린 사람에게 가지는 그런 종류의 애정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이성이 이성에게 대하여만 가지는 이상한 가정을 또한 스스로 묵살할 수 없는 나는, 그 때문에 선뜻 배옥이의 집으로 발을 떼지를 못한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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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으냐. 놀러 간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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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렇게 격려는 하여보았지만 일어설 용기는 없었다. ‘조금 더 있다가’ ‘조금 더 있다가’ 나는 스스로 변명을 하면서 뜨뜻한 여관 아랫목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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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배옥이의 집으로 가기를 결심은 하고도, 그냥 번번히 앉아서 그날 신문의 일면 이면으로 하여 심지어 경제란이며 광고들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자세히 검분하고 있을 때에 문득 뜰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아직껏 나는 목소리뿐으로는 배옥인 줄을 알지 못할 때였지만)분명한 배옥이의 목소리라 감정하였다. 동시에 내 감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기 위하여 벌떡 일어나면서 방싯이 문에 틈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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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싯이 틈을 내고 몰래 내다보려던 나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여관문이 필요 이상 넓게 열리는 때문에, 그 여인과 얼굴을 딱 마주쳤다. 그리고 그것은 배옥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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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언제 오셋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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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떻게 여길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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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만 할 말 없이 일어서서 문밖으로 나와서, 이 집 주인 마누라의 동생(역시 기생)을 만나러 오노라는 그의 대답에 머리를 끄덕이며 필요도 없는 변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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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에서 돌아와서 또 다시 신문을 펴고 몇 번씩 본 데를 또 보고 또 보고 할 때에 안에서 배옥이가 주인 기생과 작별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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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그의 발소리는 나의 문밖에서 멎었다. 그리고, 잠시 주저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런 뒤에 성큼 마루 위로 올라서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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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두 괜찮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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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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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들어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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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들어왔다. 들어서자마자 서슴지 않고 아랫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추운 듯이 어깨를 웅그리며, 양손을 내 무릎 아래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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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내 소리인줄 알구 문을 열어 보셨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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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질문을 하였다. 나는 하릴없이 정직하게 그랬노라고 대답치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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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변소루 가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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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그만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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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볼려던 노릇이 들켜 놓으니깐 부끄럽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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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즐겨 하는 그는, 여기서도 나브럭이 그의 입술을 놀리면서, 연하여 무슨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 집안의 복잡한 사정을 들어서 호소하였다. 자기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뭇 사내들을 그 이름을 들어 가면서 따라다니는 모양을 설명하고 일일이 그 인물에 비평을 가하면서 이런 가운데서도 자기의 자랑을 말하였다. 진남포 화류계의 내막을 폭로시켰다.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진남포 지명인(知名人)들의 비화를 말하였다.
 
84
그는 전등불이 온 뒤에야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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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노리개 노릇 하러 가자, 속상해. 그럼 내년에나 다시 오시갔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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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사를 하면서 돌아가는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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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동안 아들이나 하나 벌어라.”
 
88
하니깐, 일단 돌아섰던 그가, 다시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 놀랍게 커다란 눈으로 나를 흘겼다.
 
89
나는 그 흘기는 눈에서 무서운 매력을 보고, 뜻하지 않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 어버이가 자식에게, 혹은 윗동생이 아랫동생에게 가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애정을 그에게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내가, 그 매력에 취하여, 그의 그림자가 저편으로 사라지기까지, 마치 얼빠진 사람과 같이 문지방을 붙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90
정월의 금천대좌 흥행이 끝난 뒤에, 나는 L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즉시 진남포로 갔다. 배옥이는 첫날로 구경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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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흥행을 끝낸 뒤에, L과 함께 어떤 중화요리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배옥이와 및 L이 잘 안다는 다른 기생 하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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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의 평양 흥행 때문에 지극히 몸이 곤하게 된 나는 깜빡 하면 그곳서 잠이 들고 하였다. 배옥이는 역시 입술을 나브럭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깜빡 잠이 들면, 흔들어서 깨우고 하였다. 잠과 깸의 중간에서 지낸 나는 그때 배옥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꿈결같이 들은 가운데, 밤의 비발도와 그 근처의 해안의 무시무시하도고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말과, 이 밤에 비발도 구경을 가자던 제의를 하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극도로 몸이 피곤한 나는, 그가 흔들어 깨울 때마다, “응, 응”의 잠소리로 응대한 뿐, 다시 잠의 나라로 빠져들어 가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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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한 번, 굉장히 흔들면서 꼬집는 바람에, 펄덕 일어나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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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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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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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부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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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몇 살이시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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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잠에서 아직 완전히 깨지 못한 나는, 연하여 눈을 부볐다―.
 
99
“올해, 스물― 스물― 새해에 스물아홉.”
 
100
“그러기에 말이야요.”
 
101
“그러기에 어떻단 말이야.”
 
102
“속상해. 그 새 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들으셨군.”
 
103
“아니, 듣기는 들었는데 잊었어. 무슨 말이더라?”
 
104
“글쎄 말이야요. 스물아홉이면 아직 청년이신데, 왜 그렇게 노인 같애요?”
 
105
나는 힐긋 그를 보았다. 그리고 탄식하였다―.
 
106
“벌써 반회갑이 아니냐. 너도 내 나이가 돼 봐라.”
 
107
나를 쳐다보는 그의 커다란 눈을 피하면서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다시 곤한 몸을 벽에 기대었다.
 
108
여관으로 돌아온 뒤에, 나는 잠들기 전에 몇 번을,
 
109
“내가 벌써 그렇게 늙었던가.”
 
110
하고는 탄식하고 하였다.
 
111
연장자가 어린이에게 가지는 애정과 비슷하면서도, 그 가운데 또한 다른 감정을 부인할 수 없는 배옥이에게 대한 나의 이상야릇한 마음은 나날이 자랐다.
 
112
음력 세말이 가까왔다. 음력 정월 흥행을 나는 또한 항좌에서 하려고 그 교섭차로 진남포로 갔다. 그러나 흥행 그것보다도 배옥이를 만나고 그의 나브럭이 노는 입술을 바라보조가 하는 욕망이 더욱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때 배옥이는 이 정월은 제 언니와 함께 서울에 가서 놀겠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적적히 웃었다.
 
113
“그럼 정월에는 너를 못 보겠구나.”
 
114
“곧 당겨 오디오.”
 
115
그만한 말로써 그때는 작별하고, 마침내 정월 흥행이 열렸다.
 
116
초하루, 이틀, 사흘은, 배옥이를 볼 생각도 안하였다. 그는 물론 서울가 있을 것이다. 나흗날이 되었다.
 
117
인젠 돌아왔을까. 나의 마음은 차차 흥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괴상하게도 마음이 수저운 나는, 몇 번을 배옥이의 집에 가서, 그가 돌아왔는지를 알아보려 하면서도, 선뜻 발을 내어놓지를 못하였다. 그날 저녁의 흥행 시간을 나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배옥이로서 만약 진남포에 돌아오기만 하였으면, 그 밤으로 항좌에 올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겠으므로…. 그러나, 그는 항좌에 오지 않았다. 구력 명절이라 요리집이 모두 쉬므로 간단히 알아볼 길도 없었다.
 
118
닷샛날도 헛되이 지냈다. 엿샛날(요리집이 흥정을 시작하는 날)밤, 흥행을 끝낸 뒤에, 요리집으로 달려갔던 나는, 쓸쓸한 중로(中老)의 그림자를 헛되이 다시 여관으로 돌이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옥이는 아직 안 돌아온 것이었었다.
 
119
쓸쓸한 정월의 흥행이었다. 배옥이가 진남포에 없다 하는 것이, 나의 위에 이렇듯 커단 영향을 줄 줄은 뜻도 안하였다. 밤마다, 밤마다, 쓸쓸한 흥행을 끝내고(따뜻한 제 가정으로 돌아가는 손님들의 뒷등을 바라보면서)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독신의 중로는 통곡하고 싶은 고적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120
그것은 괴상한 애착이었다. 나는 배옥이를 만나면 언제든 농담으로써 나의 마음을 감추고 하였다. 그도 거기 적응한 농담으로 대하고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서, 이 어린애에게 대한 나의 괴상한 애착은 나날이 커 간 것이었었다.
 
121
그 뒤에도 진남포의 흥행은 연하여 하였다. 그러나, 그 어느때든, 흥행 그것에보다 배옥이라 하는 어린애에게 관심이 더 컸던 것은 거듭 말 할 필요도 없다.
 

 
122
이 진남포의 흥행도 드디어 종언의 날이 이르렀다.
 
123
그것은 양력 4월 초승이었었다. 그때 나는 다섯 프로를 짜 가지고 진남포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직껏 하여오던 분홍행(分興行―수입을 관주<館主>와 분배하는 흥행 방식)을 그만두고, 단연히 ‘데우찌(てうち―관을 세얻어 자신이 흥행하는 것)’로 하기로 하였다. 흥행에 대하여, 인제는 꽤 대담하게 된 셈이었었다.
 
124
그러나, 이것은 나의 큰 오산이었다. 사진은 모두 특선의 명화이었는데, 웬일인지 손님은 오지를 않았다. 이런 흥행에는 늘 그 수입이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그날그날의 집세도 들어오지 않았다.
 
125
매일매일의 집세를 어쩌나. 그날그날의 비용을 어쩌나. 사진세를 어쩌나. 수입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거기 걸리는 비용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거의 자포적 기미가 된 나는, 매일 요리집에서 배옥이를 보았다. 그리고, 배옥이를 보는 것으로, 흥행의 실패 때문에 산란하게 된 마음을 얼마라도 위로코자 하였다. 이때의 흥행의 실패로써 몇몇 친구에게 개인적으로 폐를 끼친 것은, 아직껏 나의 마음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126
“진남포서는, 좋은 사진을 알아보지 못해요.”
 
127
배옥이는 나의 마음을 위로코자 이런 말을 하였다. 그리고, 나의 수입에 조금이라도 더 보태게 하려고 매일 손님을 몇이씩 몰고 구경을 오고 하였다. 손님이 구경을 응하지 않을 때는 자기가 동무 기생 몇을 데리고 자기의 비용을 써 가면서 오고 하였다. 선전도 꾸준히 하였다.
 
128
나는 이 마음을 감사하게 여겼다. 그러나 배옥이의 조그만 노력이 큰 도움이 될 수가 없었다. 흥행은 나날이 안 되어 갔다. 이리하여, 나는 항좌와 여관에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커다란 빚을 지고, 예정하였던 날짜에서 며칠 앞하여 도망하듯이 진남포를 나오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129
진남포서 나온 나는, 얼마간의 회복이라도 하고자 그길로 정주(定州)로 갔다. 그러나, 정주서도 실패하였다. 정주서는 선천(宣川)으로 갔다. 그러나 선천서도 역시 실패하였다. 신천서는 다시 해주(海州)로 갔다가 거기서도 역시 실패하고 그만 신이 없이 평양 집으로 돌아와서 넘어졌다. 그 새의 실패에 연한 또 실패에 마음과 몸은 여지 없이 피곤하였다.
 
130
간 곳마다 실패하였다. 그러나 다른 곳의 실패는 그다지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았지만, 진남포의 실패뿐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마음에서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항좌와 여관(나, 나의 아우, 변사, 세 사람의 반달 숙박비 기타)의 빚은 내게는 좀 과한 집이었다. 이제 다시 진남포에서 흥행을 하여 그 흥행이 파천황(破天荒)으로 굉장히 된다 하여도 그 빚은 도저히 갚을 수가 없었다. 그런지라, 진남포의 흥행은 단념치 않을 수가 없었다. 뿐더러 지극히 소심한 나는 당분간 다시 진남포에 발을 들여놓을 수조차 없었다.
 
131
그러면 배옥이는 다시 못 보나. 그 나브럭이 놀던 입술, 이상한 매력을 띠고 흘기고 하던 눈, 이런 것을 생각할 때는 나의 마음은 진남포로 진남포로 달아나고 하였다. 그러나 다시 진남포에 발을 못 들여놓을 사정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가 짝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진남포에 발을 못 들여놓을 나이면서도, 언제 다시 권토중래할 계획을 늘 속으로 세우고 있었다.
 

 
132
그해 여름이었다.
 
133
어떤 날, 어떤 친구의 병원에 놀러 갔던 나는, 그곳서 일문(日文) 지방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어떤 기사에 눈을 딱 멈추었다.
 
134
그것은 나에게는 놀랄 만한 기사였다. 그 신문은, 배옥이의 죽음을 보도하였다. 그 전날 밤도 항좌에 구경을 갔던 배옥이는, 돌아와서 갑자기 병이 나서 이튿날로 죽었다 하는 것이었다.
 
135
나의 가슴은 쾅 하는 소리를 내었다.
 
136
‘죽었구나.’
 
137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다시 한번 본단들 무엇하랴마는, 살았을 적에 다시 한번 만나서, 나브럭이 노는 그의 입술과 흘기는 눈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그에게 대하여 괴상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 나의 마음을 아무에게도(배옥이 자신에게까지도) 알리어 보지 못하고 영원히 그를 잃어버렸다. 신문의 의외의 기사에 부읏고 있는 이 외로운 중년 사나이의 눈에는 엷게 눈물이 어리었다.
 
138
―어린 혼아. 평안히 고요히 잠자거라.
 

 
139
그 이듬해 봄이었다.
 
140
파산 실처 등으로 말미암아 생겼던 마음의 커다란 상처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힘에 씻기어서 거의 나았다. 나는 다시 붓을 잡았다. 붓으로써 병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때 마침 동아일보의 장편의 부탁을 받은 나는 그것을 쓰기 겸하여 손상된 건강도 회복할 겸, 용강 온정으로 향하였다. 그 도중 진남포서 이삼 일 묵었다.
 
141
그때 어떤 친구의 사랑하는 딸이 불행히 타계하였으므로 그 장식(葬 式)을 따라서 진남포 공동묘지에 가게 되었다. 일행에는 안서도 있엇고 한정동(韓晶東) 군도 있었다.
 
142
진남포 공동묘지에는, 안서의 어떤 어린 혈속이 묻혀 있다. 공동묘지에 간 안서는, 그 자기의 혈족의 무덤을 찾아 보겠다고 저편 아래로 묘패를 일일이 검분하면서 내려갔다. 나와 일반으로 진남포 공동묘지에 첫길인 안서는, 자기의 혈족의 무덤이 어디 붙었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143
“나도 조력해서 찾세.”
 
144
나는 머리를 커다랗게 끄덕이고, 안서와 같이 일일이 묘패를 검분하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145
그러나, 나의 목적은 결코 안서의 혈족의 무덤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었었다. 십중팔구는 이곳에 묻혀 있을 배옥이의 무덤― 이것이 나의 찾으려는 목적물이었었다.
 
146
무덤을 찾아서 무얼 하랴. 벌써 저 세상으로 간 지 거의 일 년이 되는 그의 무덤― 찾는대야 한 더미의 흙 밖에 볼 것이 없을 것이되, 어린 배옥이의 몸을 덮은 그 흙더미를 한 번 보고 싶었다. 나브럭이 놀던 그의 입술과 이상한 매력을 띠고 흘기던 그의 눈을, 이 세상에서 온전히 가리어 버린 그 흙더미나마 한 번 보고 싶었다.
 
147
나는 천이 넘는 많은 새로운 무덤을, 일일이 검분하고 묘패를 들여다 보았다. 해토(解土)때로서 겨울에 묻은 새로운 무덤은 모두 흙이 무너져서 거의 관곽이 나타날 만한 참혹한 형태였다. 이런 것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배옥이의 무덤을 보려는 오로지 한 길의 마음은, 그런 모든 것을 잊고(한 발을 옮겨 짚을 때마다 오륙 촌씩 쑥쑥 빠지는)많은 끔찍한 무덤을 밟으면서 공동묘지를 동서남북으로 헤매었다.
 
148
그러나 그것은 헛길이었다. 내 힘이 및는껏, 내 주의가 자라는껏 찾아 보았지만 그 넓은 공동묘지에서 한 개의 조그만 흙더미를 찾아 낼 수는 없었다.
 
149
안서도 헛길을 걷고 돌아왔다.
 
150
“못 찾았나?”
 
151
“못 찾았네.”
 
152
적적한 문답은 사괴어졌다. 그러나, 내 적적함의 의의는 안서는 알 리가 없었다.
 
153
공동묘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비록 무덤은 못 보았지만 그의 어린 혼이 땅 속에서 평안히 잠자기를 한없이 한없이 빌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외로운 중년 사나이의 축복은 끊임없이 그의 어린 혼 위에 부어진다.
 
 
154
(<別乾坤>, 1929.12~1930.8)
155
(<彗星>, 1931.3~11)
【원문】金白玉 (김백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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