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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2~
김동인
1
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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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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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年度)조차 잊었다.
 
4
어떤 해 봄 그때 모란봉에 새벽 산보를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던 나는 역시 전례에 의지하여 어떤 날 새벽에 산보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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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든지 산보를 다닐 때에 남들이 다니지 않는 곳을 즐겨서 다녔다. 길 없는 골짜기 혹은 가다란 벼랑― 이런 곳을 즐겨서 다니던 나는 그 날도 모란봉 뒤를 썩 지나서 간간 초부들이나 다니지 보통 산보객은 다니지 않는 곳까지 찾아가서 피곤한 다리를 기다랗게 내어던지고 앉았다.
 
6
좋은 봄날이었었다. 벌에는 안개가 꼈다. 넓은 벌 하늘 끝닿는 곳에는 검은 산과 자짓빛 산이 겹겹이 둘러 있었다. 그리고 그 산 위에는 벌건 놀 틈으로 커다란 해가 절반만치 모양을 나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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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앉아 있는 곳은 땅에서 백삼십 도쯤의 각도로 되어 있는 뫼 중턱이었었다. 청류벽에서 모란봉까지는 영에서 거의 직각으로 서 있는 바위들이 모란봉을 지나서부터는 차차 엇비슷이 경사가 되어 내가 있는 곳은 산 아래서 마루까지가 백삼십 도쯤 되는 평면의 잔디밭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산 아래는 두 간쯤 되는 길이 있고 그 길을 건너서는 곧 대동강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지라 어떤 대담한 사람이 호기심으로서 다만 두세 걸음이라도 산마루에서 아래로 향하여 뛰어내려오기 시작만 하면 도저히 중도에서는 어찌 못할 것이며 산 아래까지를 뛰어내려만 가면 그 타력으로서 대동강 물에까지 텀벙 뛰어들어가고야 말 것이었었다.
 
8
앉았다고도 할 수 없고 누웠다고도 할 수 없고 섰다고도 할 수 없는 백삼십 도의 이상한 모양으로 등을 땅에 대고 반짝반짝 차차 커져 가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꿈 아닌 꿈을 꾸면서 여러가지의 공상에 잠겨 있던 나는 뒤에서 나는 괴상한 소리에 펄덕 정신을 차리며 본능적으로 벌덕 일어나 앉았다. 동시에 무슨 몹시 가볍고도 무겁고 부드러운 물건이 내 무릎 위에 덜컥 와 앉았다. 그것은 웬 여자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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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껏 해를 바라보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진 내게는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다만 허옇고 똑똑치 않은 안개 속에 ‘여자의 얼굴’이라고밖에는 형용할 수가 없는 어떤 창백한 윤곽이 있을 따름이었었다. 그는 손으로 나의 어깨를 잡고 숨을 허덕이고 있었다. 나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사오 초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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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올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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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에서 아래로 향하여 이렇게 고함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정신을 차리듯이 머리를 한 번 저어서 머리털들을 뒤로 젖히고 내 무릎에서 내렸다. 그런 뒤에 벌벌 기어서 산마루로 향하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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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루에서 자기의 친구를 만난 그는 무엇이 어떻다고 큰소리로 천박스럽다고 형용하고 싶을 만치 웃었다. 그리고는 저편으로 그림자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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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문을 모르고 정신없이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도 모른다. 고향도 모른다. 그의 얼굴조차 보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왜 그런지 그의 그림자뿐은 그 뒤 오랫동안 나의 머리에 남아서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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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녈까, 색시―ㄹ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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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때로 혼자서 이렇게 스스로 물어본 뒤에는 귀한 보배를 잃은 것 같은 적적함을 느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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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기어올라갈 때에 본 바 커다란 엉덩이와 그 큰 엉덩이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비교적 가느다란 다리가 내게 남아 있는 그에게 대한 기억의 전부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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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뒤 때때로 길에서 혹은 어떤 집회장에서 커다란 엉덩이와 가는 다리를 가진 여자를 보면 그 사람이 혹은 전에 모란봉에서 내 어깨를 잡고 숨을 허덕이고 있던 그가 아닌가고 혼자서 인생의 쓸쓸한 인연에 한숨을 쉬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조차 똑똑히 본 적이 없는지라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그 사람이 혹은 그때의 그가 아닌가 하고 엉덩이와 다리를 보는 것이 나의 한 가지의 습관으로까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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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컨대 지금 그의 나이는 스물하나 혹은 둘쯤― 그는 지금도 살아 있나, 살아 있으면 무얼 하고 지내나, 처녀―ㄴ가 색시―ㄴ가. 판단을 허락치 않는 이러한 모든 문제 앞에 나는 늘 인생의 만나고 헤어지는 쓸쓸한 인연을 생각하며 산숨을 쉬고 한다. 인생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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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1929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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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