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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女人) ◈
◇ 金玉葉(김옥엽)과 黃瓊玉(황경옥) ◇
카탈로그   목차 (총 : 9권)   서문     이전 5권 다음
1929.12~
김동인
1
女人
2
5. 金玉葉과 黃瓊玉
 
 
3
1921년 봄,―그때에 스물두 살 난 나는, 어떤 회사의 발기인회에 참석키 위하여 상경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기생을 보았으며, 기생의 취미를 맛보았다.
 
4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 전에도 못 본 바는 아니었었다. 예수교식의 교육과, 도학적 교훈 아래서 길러난 나는, 아직껏 받은 교양의 결과로서, 기생이라 하는 인생을 더럽게 여기고, 기생과 노는 젊은이를 경멸하는 제이 천성은 가졌을망정,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호탕한 천성과 내가 스스로 의식적으로 지은 방분스런 성격과는, 그 제이 천성을 누르기에 넉넉하였다. 그리하여, 그 전 해 겨울에도 몰래 서너 번 요리집서 기생이라는 인생을 보기는 보았다. 그러나, 그 몰래 몇 번 본 것은, 나로 하여금 그 방면에 대하여 더욱 호기심을 일으키게 한 데 지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기생을 데리고 노는 젊은이들을 패자라 경멸하면서도, 가까운 장래에 얼굴을 감추지 않고 요리집에 드나들 나를 예상하고 있었다.
 
5
그러나, 극히 사소한 일이 남쪽 끝에서 생길지라도, 두 시간 이내에 그 소문이 북쪽 끝까지 퍼지느니만치 작은 평양서는, 한 번 마음놓고 놀 기회가 없었다. 예수교의 신앙은 잃었을망정, 얌전한 젊은이― 교양있는 신사― 깨끗한 청년, 이러한 부름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속에 화류계에 대한 비상한 호기심을 가지고도, 내놓고 그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었었다. 그때의 나의 성격에는, 아직 남의 말썽을 꺼리는 순된 점이 많이 남아 있었다.
 
6
발기인회의 일이 끝나고, 그 이튿날로 평양으로 내려온 나는, 다시 서울을 가고 싶은 생각에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조조한 며칠을 지낸 뒤에, 나는 핑계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또 서울로 올라갔다. 핑계로는, 그때 9호를 내고 정간 상태에 있던 <창조>의 장래 방책 강구였었다.
 
7
내가 올라간 날 밤으로, 질탕한 놀이는, 명월관에 열렸다. 그리고 그 때에 첫번 김옥엽(金玉葉)을 만났다. 그때에 사내로서는, 김억(金億) 김환(金煥) 김찬영(金瓚永) 고경상(高敬相) 군 등이 있었고, 기생으로는 죽은 강명화(康明花)와 안금향(安錦香)과 김옥엽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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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로 생겨서는 술을 먹을 줄 알아얀다는 이상야릇한 주의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하여, 술을 먹을 줄을 모르는 나는, 몇 잔 못한 술에 취하여, 상에서 좀 물러나고 말았다. 그때에 맞은편에 앉았던 기생 하나이 이편으로 돌아와서 친절히 간호하여 주었다. 그것이 옥엽이었었다.
 
9
그날 밤, 김환의 소개로써 나는 옥엽의 집에서 묵었다. 한잠을 못 이루고 날이 밝기까지 속살거림으로써 보낸 그 밤, ― 그 밤은, 나의 생애를 통하여 잊지 못할 저녁의 하나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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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까지는 서로 알지도 못하던 사람, 어젯저녁에 처음으로 안 여인, 그는 벌써 이 젊은이의 온 마음을 그러쥐었다. 이상하다면 이상하달 수도 있고, 기괴하다면 기괴하달 수도 있는, 사람의 마음이었었다.
 
11
쏠리기 시작하면 그 그칠 바를 모르고 쏠리고야 마는 이 열정의 젊은이는, 이튿날 저녁도, 불붙는 정열을 가슴에 간직하고, 몇 사람의 벗과 작반하여 청송관(靑松館)으로 놀러갔다.
 
12
왔소, 나여기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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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타향 나여기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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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불려를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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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길에 싸여를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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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여기 온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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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딤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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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에서 들리는 이 노랫가락의 소리에 나의 얼굴빛은 변하여졌다. 그때는, 무론 목소리뿐으로는 그것이 옥엽의 소리라 함을 분간 못할 때였었다. 그러나, 이 너른 세상에, ‘시어딤 보러’라고 노래를 부를 사람은, 옥엽이 한 사람 밖에는 없을 것이었었다. 보이를 불러서 옥엽의 온 것을 알아보고, 개평떼어 오기를 부탁할 때는, 나의 마음은 무거운 바위 아래 깔린 듯이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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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그에게 대한 나의 사랑의 불길은 더욱 맹렬히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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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이 지난 뒤에, 나는 평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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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착된 정열, 펴지 못하는 긴장, 발표할 수 없는 사랑, ―이러한 달고도 괴로운 감정 때문에, 그것은 마치 순교자와 같은 비창한 마음으로서, 나는 쓸쓸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쓸쓸한 새 날을 맞았다. 그가 나의 귀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부르던 노랫가락의 몇 구절은, 내 귀에 그냥 남아서 늘 쟁쟁히 울리었다. 나의 생애에 처음 맡아 본 동백기름의 내음새는, 이상히도 그냥 코에 남아서 그를 생각하는 재료가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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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으로 내려온 지 며칠 뒤에, 나는 그에게 알렉산델을 박은 반지를 하나 사서 보냈다. 반지라도 하나 사서 보내려고 어떤 귀금속점에를 갔다가, 우연히 조선서는 구하기 쉽지 않은 좋은 진품 알렉산델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서 보내기로 한 것이었었다. 보석상의 점두(店頭)에 흔히 장식되어 있는― 불빛에서와 햇빛에서의 광채가 그리 다르지 않은 그런 것이 아니고, 햇빛에서는 거짓말과 같이 농록색(濃錄色)으로 빛나며, 불 빛에서는 루비와 같이 새빨갛게 빛나는, 구하기 힘든 품질 좋은 돌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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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서 빛은 변하나, 보석인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는 이 돌로써 너에게 부치노니, 빛에는 변함이있을지라도, 마음 하나는 이 돌과 같이 변함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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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글이 그 반지와 함께 그에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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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와 편지, ―삼전짜리 우표 한 장씩이, 매일 없어졌다. 그에게서 도, 매일 편지가 왔다. 이렇게 서로 하고 싶은 말을 겨우 몇 글자의 편지로써 주고받던 한 달이 지난 뒤에, 그가 후덕덕 평양으로 뛰쳐내려왔다. 그의 본집은 진남포(鎭南浦)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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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작은 평양에서, 그가 숨어 있는 집을 남 모르게 다니느라고 쓴 그 애는, 여간이 아니었었다. 더구나 밤에 외출이라고는, 특별한 경우 밖에는 하여보지 못한 이 참한 젊은이가, 외출할 핑계를 제 안해에게 대느라고 고심하던 그 고심은,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우스운 일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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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며칠이 지난 뒤에, 나는 마침내 그를 진남포 제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한 주일에 두 번씩 진남포로 그를 만나러 갔다. 옥천대(玉泉臺)로 보림사(寶林寺)로, 진남포의 시가도 꺼리어서, 우리 둘은 늘 조용한 곳으로 찾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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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일이 발각 안 될 리가 없었다. 더구나, 정열로써 들뜬 나의 태도는, 그런 방면에 몹시 신경이 예민한 안해에게 발각 안 될 리가 없었다. 그를 진남포에 데려다 둔 지 한 달쯤 된 어떤 여름날이었었다. 그 전날을 보림사에서 묵고, 날이 어두운 뒤에 자동차로 진남포에 돌아 온 우리는, 평양행 막차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마주 앉아 화투를 하고 있었다. 그때에, 웬 여인이 쑥 그의 집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돈 좀 바꿔주 하면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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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여인의 정체를 알아보고, 얼굴빛이 변하였다. 간이 조막만 하여진 나는, 창황히 일어서서 옥엽에게 눈짓을 한 뒤에, 안해를 모시고, 그 집을 나와서 어떤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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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별 말을 다하여 사죄를 하였다. 본시, 그다지 능변이 되지 못하는 나는, 땀을 벌벌 흘리면서, 사죄를 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로서, 그와 나와의 새에는 아래와 같은 타협이 성립되었다. ―사내 된 자, 이제부터 옥엽과의 관계를 끊을 것. 그 대신에 마음의 상처를 위로키 위하여 한두 달 동안 여행을 하는 것은, 그의 자유에 맡길 것. 여인 된 자는, 장래 영구히, 이번의 이 불유쾌한 사건을 입밖에 내지 않아서, 장래의 공연한 충돌을 피할 것.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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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하는 것은, 과연 괴물이었었다. 본시 자기의 마음이나 몸을 구속하는 일이 있을 것에는, 어떤 일에든 맹서라는 것을 피해 오던, 이 순진하고 정직한 젊은이로 하여금 이렇듯 실행할 수 없는 맹서를 천연히 하게 하는 ‘사랑’이라 하는 것은 과연 괴물이었었다. 나는 옥엽이와 갑자기 떨어지지는 못할 줄을 번히 알았다. 그러나, 위에와 같은 맹서를, 안해에게 한 것이었었다. 그리고, 이튿날 안해와 함께 평양으로 돌아올 때는, 벌써 우리 부처 새에 성립된 조건을 옥엽에게 알리고, 사흘 뒤 밤 열두시 부산행 열차에서 만나자는 약속까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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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에, 나는 기차 안에서 옥엽을 만나 가지고 그 길로 상경하였다. 그리고 청진동(淸進洞) 어떠한 으슥한 집에 숨어서, 낮에는 나와서 친구들과 만나고, 밤에는 그 집으로 종적을 감추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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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친구들 새에는, 그것이 한 문제거리였었다. 밤에는 어디로 없어지느냐. 낮에 만나서 묻는 친구, 혹은 뒤를 밟는 친구까지 있었다. 이러한, 변변치 않은 일도, 그 당시에는 몹시도 유쾌하고 신비스러웠다. 값 모를 보배를 감추어 두고, 남몰래 간간 꺼내어 보는 것과 같은 괴상스럽고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나는 그들을 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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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불국사(佛國寺)로, 또는 석굴암(石窟庵), 냉천(冷泉)들로 돌아다니며 놀던 생활은, 나의 일생을 통하여, 가장 시적인 한 막이었었다. 실개천에서 마주 앉아 빨래를 하며, 혹은 재넘엣 마을에 가서 닭을 사다가 잡아 먹으며, 아무 구애 없이 그의 손을 잡고 희희히 돌아다니던 그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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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벌판은 그림이었었다. 아무 진기가 없는 평범한 벌판이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거기는 이천 년 전 고도의 풍모와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때때로, 그 아름다운 벌판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옛날의 우리의 조상의 위업을 생각하면서, 곁에 있는 옥엽의 존재까지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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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불국사에 묵어 있던 얼마 동안은, 지금 생각하여도 나의 마음을 뛰놀게 하는 것이었었다. 밝기도 전에 본당에서 외는 노승의 경소리, 이끼로 덮인 옥탑(玉塔), 기울어져 가는 층계,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의 생활을 비상한 호기심으로 때때로 엿보는 젊은 중은 더욱 정취를 돋구는것이었었다. 더구나, 불국사에 손으로 와 있던 어떤 젊은 중 하나는, 노골 이상의 노골로서, 옥엽의 뒤를 밟으며, 우리가 불국사를 떠날 때는, 멀리 떨어져서 뒤를 밟아서, 우리가 이튿날 기차를 탈 때에야 겨우 돌아 갔다.
 
37
경주서 우리는 사진을 찍혔다. 옥엽은 그때에 그것을 몹시 꺼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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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히면 새가 떨어진대요.”
 
39
이런 말을 하였다.
 
40
사실, 그때에 그는, 별별 수단을 다 써서,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였다. 나이 벌써 스물을 지나서, 자기의 장래라 하는 것을 때때로 바라볼 만한 철이 든 그는 겨우 붙든 이 순진한 젊은이를 결코 잃지 않으려 하였다. 그는 때때로 가정에 대한 제 지식을 자랑하였다. 바느질의 곱게 함을 암시하였다. 음식 만들 줄 아는 것도 자랑하였다. 그리고, 그 여행을 다니는 동안, 그는 남에게 할 수 있는 대로 기생인 제 본적을 감추려 하였다. 이전에 흔히 내 귀에 대고 부르던 노랫가락도, 다시 들을 수 없었다. 얼굴에 화장도 안하였다. 몸맵시도 할 수 있는 대로 여학생의 투를 흉내 내었다.
 
41
이런 일을 보며 생각할 때마다, 나의 그에게 대한 애착이 더욱 커지는 동시에, 거기 따르는 번민도 컸었다. 도저히 떨어지지 못할, 그러면서도 집안의 사정과 사위의 정태는, 또한 영구히 함께 지냄을 허락치 않는 그였었다. 기생과 접근한다 하는 것은, 나의 집안뿐 아니라, 온 평양에 절대로 비밀히 하지 않으면 안 될 만치, 우리 집안은 교회에 자리잡은 집안이었었다. 잔디밭에 누워서, 곁에서 바느질을 하는 그의 양을 번―히 바라보면서, 가까운 장래에 그와 헤어질 일을 생각하고는, 몰래 한숨을 쉬고 하였다.
 
42
한 달 뒤에,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가지고 떠났던 돈이 다 없어졌으므로였었다.
 
43
그때에, 광익서관(廣益書館)에 내게 와 있는 편지 가운데, 안해에게서 온 것이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보고, 처음에는 놀라고 그 뒤에 성을 내었다. 그 편지에는, 내가 기생과 같이 길을 떠났다는 것은 온 평양에 소문났으며, 그 때문에 어머니와 형이 몹시 나의 태도를 밉게 여긴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여자로서 마땅치 않은 불유쾌한 언구가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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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질투는, 그로 하여금 여자로서의 단아함과 행실을 잊게 한 것이었었다.
 
45
나는 전후를 불구하고 평양으로 내려가려 하였다. 그러나, 순간에 냉정함을 회복한 나는 이제 얼굴을 들고 차마 평양의 거리를 다니지 못하겠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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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대로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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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경성에 그냥 묵어 있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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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엽은 다시 한성 권번(漢城 券番)에 적(籍)을 두었다. 그리고 어떤 친구 기생의 집에 기류하면서 영업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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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여름,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심각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50
돈은 다 떨어졌다. 이제 집에 청구할 면목도 없었다. 잘 곳도 없고, 먹을 곳도 없는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거리거리를 헤맬 뿐이었었다.
 
51
처음 며칠은 이일(李一)의 집에서 묵었다. 그때 이일은, 신혼여행으로 금강산으로 가고, 그 빈 집을 김환이 맡아 있었다. 그러나, 밤에 들어가고 아침에 나오는 시간이 일정치 않은 그였으며, 술에 취하여, 들어가서는 쇠를 잠그고 자 버리며, 아침 나와서는 밖으로 쇠를 잠가 버리는 그 집은, 대문간에서 시간 맞추어 김환을 만나지 못하면, 도저히 들어가 잘 수 없는 집이었었다. 밤낮으로 술에 취하여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일정치 못한 그를 천 년 세월 하고 대문간에서 기다리고 있기에는 이 젊은이는 아직 너무 자존심이 많았다.
 
52
며칠 동안의 불유쾌한 ‘고대(苦待)’에 역정이 난 나는, 그 다음부터는 안서(岸曙)의 하숙집을 숙소로 정하였다. 안서는 역시 술꾼으로서, 그의 출입은 일정치 못하였지만, 집이 하숙집인지라, 언제든 들어가서 잘 수 가 있었다. 낮에는 거리거리 헤매며, 혹은 옥엽의 기류하고 있는 집에도 가 놀고 하다가, 밤이 되면 비슬비슬 안서의 하숙으로 찾아가고 하였다.
 
53
벗들도 싫었다. 나의 주머니에 돈이 떨어진 뒤부터는, 그들을 만나기가 싫었다. 그들이 나를 업수이 여기는 것 같아서, 나는 그들을 꺼리고 피하였다.
 
54
옥엽도 그때는 영업이 잘 안되는 모양이었었다. 화장을 한 뒤에는 눈이 멀진멀진 밤이 깊도록 구루마의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때가 흔히 있었다. 그리고, 그 잘 되지 않는 영업으로써 번 돈으로 그와 나 두 사람의 용처를 쓰던 것이었었다.
 
55
어떤날 낮, 나는 L이라는 벗과 함께 거리에서 거리로 일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몹시 내려쪼이는 볕에, 종로의 거리는 기운 빠진 듯이 고요히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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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꽤 고픈데.”
 
57
L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도 배가 안 고픈 바는 아니었었다. 그러나 주머니에 이십 전 밖에는 없는 것을 어찌하랴.
 
58
“이십 전으로 둘이서 먹을 게 뭘 없을까.”
 
59
“글쎄 호떡이나.”
 
60
벗은 적적히 웃었다. 나도 웃었다.
 
61
종로 네거리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발 아래 무엇이 번쩍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내가 허리를 굽혔다가 펴는 순간, 나의 손에는 이십전짜리 은전 한 닢이 집히었다.
 
62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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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64
“점심 먹으러.”
 
65
“호떡?”
 
66
벗은 풀없이 이렇게 반문하였다.
 
67
“왜! 비빔밥 먹지. 이것 보게.”
 
68
나는 장한 듯이 인제 얻은 그 이십 전을, 앞으로 높이 쳐들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 날의 점심을 맛있게 먹은 것이었었다.
 
69
지금도, 종로를 지날 때마다 뜻하지 않고 그 날의 그 자리를 본다. 보 도 장치가 되고, 길에는 아스팔트를 펴서, 옛날의 그 형태는 없어졌지만, 그 날의 그 이십 전의 그다지도 고마웠음은 지금도 나로 하여금 뜻하지 않고 그곳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었다.
 
70
어떤날 밤, 이 날도 하루 종일의 방황에 뇌곤한 몸을 쉬러, 비슬비슬 안서의 하숙을 찾아갔다. 예에 의지하여 안서는 하숙에 없었다. 나는 빈 방에 들어가서 몸을 커다랗게 내어던졌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다. 그러 나, 나의 곤한 잠은 조금 뒤에 다시 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둥둥둥둥 무슨 사람의 소리를, 처음에는 꿈결같이 듣다가, 마침내 정신이 들면서 들으니까, 그것은 안서의 목소리였었다. 밤이 깊어서 술이 취하여 돌아온 그는, 자기 방에 침입하여 정신 모르고 자는 나에게 자리가 좁다고 무슨 나무람을 하는 모양이었었다.
 
71
나는 몸을 떨었다. 사소한 일에라도 몹시 신경질이 된 나는, 그때 폭발하려는 성을 삭히기 위하여, 숨소리까지 죽였다. 그리고, 그냥 자는 체 하였다.
 
72
안서는 몇 마디 웅얼웅얼 나무람을 하다가, 그만 쓰러져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나, 자존심을 상한 노여움으로 흥분된 나는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이것을, 이것을, 나는 몇 번을 주먹을 부르쥐며 성을 내다가, 종내 참지 못하여, 몰래 저고리를 뒤집어쓰고, 그 집을 뛰쳐나왔다.
 
73
그러나, 갈 곳은 어디? 깊은 밤, 주머니에 한 푼의 돈도 없는 이 젊은이는 몸을 쉴 곳을 발견할 도리가 없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는, 마지막에 하릴없이 남산공원으로 갔다.
 
74
달밝은 밤이었었다. 거리는 죽은듯이 고요하였다. 대지까지 고스란히 잠이 들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나는 노여움과 흥분으로 몸을 떨면서, 등으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벤취에 걸어앉아서, 잠든 시가를 흘겨 보고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나의 집의 넓고 많은 빈 방도 생각 안 났 다. 옥엽의 일도 생각 안 났다. 안서에게 대한 커다란 노여움은 나로 하여금 온갖 다른 일을 잊어버리게 한 것이었다.
 
75
여름 밤이 그다지도 길었는지. 그 긴 밤이 밝기를 기다려서, 나는 청진동으로 향하여 직행하였다. 밤에는 다만 흥분과 노여움으로 다른 생각은 못하였지만, 날이 밝는 것을 볼 때에, 나는 겨우 내 정신을 수습한 것이었었다. 그리고, 안서와 어떻게든 결말을 내려 한 것이었었다. 나의 생애에 처음 받은 모욕의 앞에, 나의 프라우드한 성격은 마침내 본성을 드러낸 것이었었다.
 
76
그의 하숙 대문간에서, 나는 안서를 보았다.
 
77
“아, 자네 어젯밤, 어디 갔었나? 깨 보니까 없데그려. 자, 들어가세.”
 
78
안서는, 두 팔을 벌리며, 나를 맞았다. 그 안서를 나는 증오로 불붙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79
“이 자식, 생각해 봐라.”
 
80
“글쎄 말일세. 나는 취한 김에 무슨 나무람은 한 것 같은데, 소레데오 쯔따까네? 마아마, 사께노세이다요.(それで怒つたかね? まあま, 酒のせいだよ―그 때문에 화났나? 뭐, 술 탓일세). 조반 먹었나? 들어가세.”
 
81
그, 안서의 우정에 넘치는 솔직한 말에, 나는 고소로써 그의 말을 거절하고, 다시 발을 돌이켰다.
 
82
사실, 그때에 나의 신경은 여간 날카롭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라도 역정을 내었다. 친구들의 예사로이 하는 일도 모두 내게는 뜻있게 보였다.
 
83
“점심 먹었나?”
 
84
이러한 평범한 인사조차, 내게는, 그것이 모욕으로 들렸다. 그리고, 여기서 생겨나는 불유쾌와 모욕감을 피하기 위하여,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벗을 피하였다.
 
85
동시에 옥엽에게 대한 나의 감정도, 차차 야릇하게 되어 갔다. 기괴한 시기, 기괴한 시험감, 기괴한 증오, ―여기서 생겨나는 불유쾌, 반감, 이런 감정이 어느덧 나의 마음에 엄돋아서 자라났다. 그가 어찌하여 객석에라도 불리는 때는 나는 몹시 괴로웠다. 그것은, 자존심을 유린받은것과 같은 괴로움이었다.
 
86
“잘 놀다 오게.”
 
87
인력거를 타고 떠나는 그에게, 듣기 좋게 이런 말로 보내기는 하지만, 나의 마음은, 여간 괴롭고 쓰리지 않았다. 그가 만약 인력거에서 뛰어내려서, 나는 불리기 싫소, 하면서 내게로 뛰어온다 하면, 나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을까. 더구나, 이제 그가 요정에 가서, (주머니에 돈을 드북이 넣은) 사내들하고 놀 일을 생각하면, 나의 온몸의 피는 한꺼번에 얼굴로 모여드는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 기뻐서 가는 그를 밉게 여겼다.
 
88
어떤 날, 우리(친구 몇 사람과 나)는 어떤 기회로 문밖 노름으로 청량리(淸凉里)를 가게 되었다. 그때, 나의 맡은 책임으로서는, 옥엽을 데리고 M자동차부까지로 오는 것이었었다. 그래서, 옥엽에게 가서 그 뜻을 전하매, 그는 매우 기뻐서 곧 화장을 시작하였다. 그 화장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화장이 끝나는 즉시로 M자동차부로 오라고 부탁을 한 뒤에, 그 집을 나섰다.
 
89
그 집을 나선 나는, 자동차부로 갈까 하였으나, 이상한 충동으로, 곧 방침을 바꾸고, 압박골 약물터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금 느끼는 순교자와 같은 비창한 마음으로 별별 일을 생각하여 보았다. 오래간만에, 나와 유흥을 같이할 기회를 즐기려 달려갔던 옥엽이가, 급기야 거기서 나를 발견치 못할 때에 그는 과연 실망할까. 혹은 역시 기쁜 낯으로 그들(나의 벗)과 놀까. 나는, 여기서 외로이 혼자서 뒹굴 동안, 그는 청량리서 한창 자미있게 놀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없는 것을 불만히 생각하여, 도로 들어오지나 않았을까. 지금쯤은, 나를 찾느라고 돌아다니지나 않을까. 시기에도 가깝고 통쾌감에도 가까운 괴롭고도 무거운 망상은 나의 머리를 덮고, 나의 가슴을 눌렀다.
 
90
이러한 기괴한 감정에 지배되는 두 시간을 보낸 뒤에, 나는 옥엽의 집으로 가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벌써 돌아온 옥엽이를 발견할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뛰놀았다.
 
91
“벌써 다 놀았어?”
 
92
시치미를 떼고, 이렇게 묻는 나의 말에, 작다란 그의 눈은, 한층 더 쫑긋 하였다.
 
93
“난 먼저 왔지.”
 
94
“왜.”
 
95
“재미도 없구….”
 
96
세상의 모든 일이 ‘이론’대로만 진행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때에 두 팔을 벌리고, 그를 쓸어안았어야만 될 것이었었다. 그러나, 이상히도 비꼬아진 나의 마음은 옥엽의 그 대답의 앞에 문득 반항하였다.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찼다. 그러나,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반대엣 것이었었다. 나는 그를 나무랐다. 옥엽의 행동은 나의 친구를 무시함이라 하였다. 따라서 내 면목까지 더럽힘이라 하였다. 아아, 그러면서도 나는 그 때에 옥엽의 입에서 한 가지의 대답을 얼마나 바라고 기다렸으랴.
 
97
“온전히 모르는 손님이면이어이와, 당신의 친구들의 노는 좌석에, 당신 혼자만 빠졌으니 내가 어떻게 그 좌석에서 유쾌히 놀겠읍니까?”
 
98
이 한 마디의 대답을 나는 얼마나 기다렸으랴. 그러한 한 마디의 인정 깊은 말은, 그때의 쓸쓸코 외로운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양식에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귀한 양식을 가정에서 구할 수 없고, 친척에게서 구할 수 없는 경우에 있던 그때의 나에게는, 다만 옥엽에게서 그것을 구하여 보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99
그러나, 나의 취한 행동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옥엽에게서는, 내가 원하는 바의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는 변명치는 않았다. 그렇다고 수긍하지도 않았다. 나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여, 대적치 않는 것으로, 그는 유일의 대항책을 삼은 것이었었다.
 
100
이러한 논란의 한 시간이 지난 뒤에, 그는 마침 부르러 온 인력거를 다행히 여기고, 인력거에 몸을 실으러 나갔다.
 
101
나는 듣고자 하던 한 마디의 말을 종내 듣지 못하고 그 집에서 나섰다.
 
102
그때는, 여름날은 벌써 어두운 때였었다. 나는 광익서관으로 갔다. 그리고, 가가에 걸어앉아서, 야시에서 흐느적거리는 사람의 물결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는 여간 어지럽지 않았다. 천만 사람이 왕래하는 야시 앞에서도 나는 심산에 홀로 앉아 있는 것같이 적적함을 절실히 느꼈다.
 
103
나는 마침내 일어났다. 그리고, 광익서관의 주인 고 군(高君)에게, 돈 십 원만 취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것은, 그때까지의 나의 이십여 년 생애에 처음 입밖에 내어 본 부끄러운 말이었었다. 나는 아직껏 일 원의 돈을 남에게 취하여 본 적이 없었다. 아무러한 곤궁에 빠졌을지라도, 내 몸에 지니고 있는 값가는 장신구의 한 가지를 전당국에 가지고 가 본 일조차 없느니만치 프라우드한 나였었다.
 
104
이 뜻밖엣 청구를 받은 고 군은, 몹시 미안한 듯이, 자기에게도 돈이 없음을 고백하였다. 나는 두번째의 청구를 하였다. 즉, 소절수(小切手) (설혹 예금이 없는 것이라도)도 좋으니 두 시간만 취해 달라는 것이었었다.
 
105
고 군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절수를 찢어 주며, 예금이 없다는 것을 몇 번을 당부하였다. 나는 고 군에게 사례를 한 뒤에, 그것을 받아 가지고, 광익서관을 나서서, 그 길로 옥엽이 불려 간 식도원(食道園)으로 갔다. 그리고, 보이를 불러서, 옥엽이를 잠깐 현관까지 불러 주기를 부탁하였다.
 
106
이윽고, 그가 나왔다. 나는 그를 데리고 현관문 밖 어둑신한 데로 갔다.
 
107
“나하고 산보가세.”
 
108
이 나의 청구에, 그는 한참 뒤에야 대답하였다―.
 
109
“여보, 당신은 내 처질 아시겠구료.”
 
110
“글세, 잠깐만―. 이야기할 게 있어서 말야.”
 
111
“나는 여기 불린 몸이 아니요?”
 
112
나는 고즈너기 그리고 가장 극적 태도로 아까의 소절수를 꺼내었다.
 
113
“돈 말이냐? 엣다, 돈은 내게도 있다. 기생과 산보를 가려 온 이상에야 나도 돈은 준비했겠지.”
 
114
그는 내가 주는 소절수를 받아서, 등불에 비추어 본 뒤에 한 번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그것을 쪽쪽 찢어 버렸다.
 
115
“갑시다. 갑시다.”
 
116
“그럼, 사무실에 들어가서 말해야지?”
 
117
“말하면 보내 줄 것 같소? 몰래 가야지.”
 
118
하고는, 그는 나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총총걸음으로 앞서서 갔다. 나는 머리를 수그리고 그의 뒤를 따랐다.
 
119
청목당(靑木堂) 앞에까지 간 그는, 돌아서서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올라가서 맥주라도 먹기를 청하였다.
 
120
“난 돈이 없다.”
 
121
“내게 있어요.”
 
122
우리는 청목당에 올라갔다. 원래 술을 즐기지 않는 나는 안주만 몇 가지 시켜서 먹으면서, 그의 양을 보았다. 그는 단숨에 맥주 세 병을 먹었다. 그리고, 숨을 길게 내어쉬면서, 제 지갑을 꺼내어 내게 맡겼다. 우리는 한 마디의 말도 사괴지 않았다. 그리고, 셈을 치른 뒤에, 청목당을 나와서, 남산으로 올라갔다.
 
123
우리는 남산 꼭대기의 어떤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나란히하여 앉았다.몹시 어두운 밤이었었다. 시간은 벌써 열한시가 지난 때였었다. 남산 꼭대기에는 우리 두 사람 밖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다. 우리는 역시 아무 말도 사괴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124
문득, 저편 아래서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125
“요이꼬라쇼오(よ―いこ―らしょう― 영차 하는 소리).”
 
126
한 사람이 이렇게 부르면, 그 뒤를 따라서, 여러 사람이 같은 소리를 합창하고 한다. 그 뒤에는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편으로 머리를 돌려 보았다. 저편 아래, 소나무를 넘어서, 몹시도 밝게 빛나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무슨 집을 새로 건축하는 모양으로서, 밤을 새워 가면서 일을 하며, 노래는 그 일꾼들의 지나라시(地ならし―땅 고루기)를 할 때에 부르는 소리였었다.
 
127
요이꼬라쇼오(よ―いこ―らしょう―).
 
128
먼저 한 사람이 부르면, 여러 일꾼들이 같이 따라서 부르고, 그 뒤에는, 쿵 하는 소리가 울리고 하였다. 일꾼들의 모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부르는 노랫소리로써, 끊임 없이 일을 하는 그들의 모양을, 넉넉히 머리 로 볼 수가 있었다.
 
129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 동안, 나의 머리에는 차차 센티멘탈한 기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가, 차차 처량한 빛을 띠기 시작하였다.
 
130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문득 죽음을 생각하였다. 우리의 앉아 있는 곳은 낭떠러지의 곧 위로서, 세 걸음만 나가면 여남은 길이 넘는 벼랑이었었다. 일어서서 눈을 감고 세 걸음만 나가면, 그 다음 순간은 저편 아래 벌써 송장으로 되어 내려갈 것이었었다. 나는 힐긋 옥엽이를 보았다. 그때에 옥엽이로서 나를 죽음의 길로 인도할 무스 조그만 암시라도 있었을 것 같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눈을 감고 세 걸음을 앞으로 나갔을 것이었었다.
 
131
옥엽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132
“여보, 당신은 왜 그렇게 날 이지메루(いじめる―구박하다) 합니까?”
 
133
나는 대답치 않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134
“내가 왜 너를 이지메루하고 싶겠느냐. 내가 네게 향하여 하는 자미없는 언사는 모두 내 마음이 아프고 불편하기 때문이구나.’
 

 
135
이러한 반목과 질시, 그 가운데 숨어 있는 기괴한 애착으로 날을 보내고 날을 맞는 동안 나의 마음은 여간 피곤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여서든 그 피곤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때때로 나게 되었다. 그러나 옥엽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136
내가 먼저 꺾어져서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집에서도 마침내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었다.
 
137
어떤 날, 나의 동생 동평(東平)이가 어머니의 명령으로 상경하였다. 그리고 곧 내려오라는 어머니의 전갈을 하였다.
 
138
이튿날로 나는 평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나의 집으로는 가지 않고 어머니의 집으로 직행하였다. 어머니와 나의 새에는 마침내 타협이 되었다.
 
139
1. 평양 있을 것.
140
2. 안해와 소생을 버리지 않을 것.
141
3. 옥엽을 가정 안에 들이지 않을 것.
 
142
이러한 조건 아래서 첩을 삼아도 괜찮다는 허락이 났다. 그리고 그 밤으로 다시 상경할 때에 나의 마음은 터질 듯이 기뻤다.
 
143
옥엽도 올라뛰면서 기뻐하였다. 얼마의 준비금을 그의 손에 쥐어 주고 나는 그 밤으로 옥엽이를 이틀 뒤에 평양으로 내려오기를 작정한 뒤에 청송관에서 오래간만에 마주 앉아서 저녁을 같이할 때 우리들의 얼굴은 희망을 빛났다.
 
144
그 밤으로 평양에 돌아온 나는 이틀 뒤 새벽차에 그를 맞으러 정거장에 나갔다. 그러나 그의 그림자는 찾지 못하였다. 낮차에도 나가 보았다. 이튿날 새벽차에도 또 나가 보았다. 그러나 역시 그의 그림자는 찾지 못하였다.
 
145
그는 무얼 하나? 왜 안 내려오나? 나의 마음에는 무서운 의혹이 일어났다.
 
146
그 다음날 나는 서울 유지영(柳志永)에게서 이런 통지를 받았다―.
 
147
―자네가 내려간 날 밤 열두시쯤 우연히 옥엽의 집에를 갔더니, 그 집 대청에 웬 모를 사람이 앉아 있데. 운운―.
 
148
모반함을 받은 노여움과 자존심을 꺾인 불유쾌함은 나의 마음에 맹렬히 불타 올랐다. 나는 그 말의 진부를 알아볼 마음의 여유도 잃었다. 다시 한번 그 말을 음미하여 볼 냉정조차 잃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속에 박혀 있는 ‘옥엽’이라는 뿌리를 칼로 잘라 버렸다.
 
149
오륙 일 뒤에야 옥엽이 왔다. 그리고 사환 애를 집으로 보냈다. 마침 그 사환을 응대한 것은 나였었다.
 
150
“김동인 씨 계십니까.”
 
151
사환 애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152
“안 계시다. 어데서 왔냐?”
 
153
“아래서 왔는데 몇 시쯤이나 돌아오실까요?”
 
154
“모르겠다. 왜 찾냐?”
 
155
그는 똑똑히 대답치 않고 돌아갔다. 그 날 사환 애는 여섯 번인가 왔다. 그 매번을 내가 나가서 김동인 씨는 없다고 도로 보냈다. 이튿날도 같은 일이 또한 거듭되었다. 이렇게 사오 일이 지난 뒤에는 옥엽도 하릴없이 평양을 떠났는지, 다시 사환 애가 오지 않았다.
 
156
이렇게 옥엽을 보내기는 하였지만 마음의 아프고 쓰리고 분함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머―ㄴ산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앉았다가 안해에게 비웃 기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밤에도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고 잠을 들지를 못하였다.
 
157
번민과 고통, 게다가 아직 끊을 수 없는 옥엽에게 대한 미련 등으로 나의 몸과 마음은 극도로 쇠약하여졌다. 안해는 하릴이 없던지 나에게 어떤 온정(溫井)이라도 좀 가 있기를 권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용강(龍岡) 온정으로 가려고 몇 달 만에 진남포(鎭南浦)에 발을 들여놓았다.
 
158
그날 밤 흥분된 나는 한잠을 못 이루었다. 이 땅, 이 진남포는 더욱 나에게 아직 기억에 새로운 옥엽의 일을 생각나게 하였다. 옥천대(玉泉臺), 보림사, 오산 과원(五山果園), 옥엽의 집, 따마야(たまや—祠堂)등, 여름의 한때를 옥엽과 같이 보내던 즐거운 몇 곳의 장소가 나의 머리에 왔다갔다하였다. 그리고 그 각곳에서 그가 내귀에 대고 부르던 노랫가락의 한 구절이 귀에 쟁쟁 울리었다—.
 
159
용산 삼개 공덕치허에 늙는돌이 있답디다.
 
160
아희야, 거짓말말아 늙은돌이 어데있다.
 
161
옛노인 하시는 말씀, 노돌이라 하옵디다.
 
162
나는, 몇 번을 속으로 그 노랫가락을 읊어 보았다.
 
163
이튿날, K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나의 용강행을 막고, 자기와 같이 오룡배(五龍背) 온정을 가자고 권하였다.
 
164
“아무 곳이라도.”
 
165
특별히 용강에 마음이 있던 바가 아닌 나는 그 말을 좇아서 오룡배로 가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그날 저녁 K와 나는 진남포서 평양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 기차가 막 떠날 때에 우리가 탄 차의 문이 덜컥 열리며 거기 옥엽이 나타났다. 그는 숨을 씩씩거리며 달려와서,
 
166
“여보, 좀 내립시다.”
 
167
하면서 나를 끄을어당겼다.
 
168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뛰었다. 그러나 나는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거만한 눈을 잠깐 옥엽의 위에 부었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렸다.
 
169
차창의 호각 소리가 들렸다.
 
170
“여보, 어디 가시는지 하루만 연기해요.”
 
171
그는 안타까운 듯이 몸을 떨면서 나를 끄을었다. 나는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172
기차 소리가 났다. 그는 종알종알하면서 기차를 내렸다. 머리를 창밖으로 향하매 그는 원망스러운 듯이 울음 머금은 얼굴로 기차를 보내고 있었다.
 
173
이튿날, K와 나는 안동현서 내렸다. 그날 밤으로 마루꼬(まるこ)에서 질팡한 놀이는 열렸다. 이튿날은 유라노스께(ゆらのすけ)에서 놀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오룡배까지 가려던 우리의 본래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오늘은 마루꼬 내일은 유라노스께로 호탕한 놀이로써 날을 보내게 되었다.
 
174
나는 그때 처음 술맛을 알았다. 모든 괴로움과 번민도 술이 들어만 가면, —혹은 사라지거나 그러지 않으면 녹는 듯한 센티멘탈한 기분을 일으켜 주지 결코 아프고 쓰린 고통 그대로는 남아 있지 않았다. 술에서 술로, 옥엽에게 대한 끝없는 미련과 애착과 분노를 그냥 마음에 품은 채로 나는 취한 가운데서 날을 보냈다.
 
175
한 달이 지났다. 인젠 안동현의 놀이에도 염증이 생겼다. 어떤 날, 나는 갑자기 행장을 수습하여 가지고 평양은 들르지 않고 후덕덕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패밀리 호텔에 투숙을 하였다. 패밀리 호텔에는 김찬영이 묵어 있었다.
 
176
나의 놀이는 안동현을 떠나서 다시 서울서 시작되었다. 죽은 남궁벽(南宮壁), 김찬영, 유지영, 나 이러한 네 사람의 한패는 내가 상경한 이튿날부터 식도원(食道園)에 몸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77
이리하여 며칠을 질탕히 놀 동안에 우리는 어떤 날 갑자기 소요산(逍遙山) 단풍 구경을 가자는 의논이 생겼다. 그리고 갈 때에는 기생을 하나씩 데리고 가자는 의논이 생겼다.
 
178
그러나 내게는 기생이 없었다. 술에서 술로, 마음의 아픔을 속이기 위하여 질탕한 놀이는 즐겨 하지만 옥엽 밖에 다른 기생이 아직껏 내 눈에 기생으로 띄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의견에 적적히 웃을 뿐이었다. 그랬더니 K가 그때의 그의 애인이었던 김삼주(金三珠)와 의논한 결과 비교적 마음이 순진하고 어린 기생으로서 나에게 추천한 것이 황경옥(黃瓊玉)이었었다. 이리하여 나와 황경옥의 인연이 맺어졌다.
 
179
황경옥은 그때 열여섯 살 난 아직 어린 기생이었었다. 코 위에 두어 군데 얽은 자리가 있으며 눈초리며 몸맵시며 어디로 뜯어 보아도 아직 순진한 내음새가 풍부한 어린 기생이었었다.
 
180
그날 밤 우리는 다 패밀리 호텔에서 묵었다. 그리고 이튿날 청량리까지 나가서 거기서 기차를 타고 소요산으로 단풍을 따러 갔다.
 
181
소요산에서 이틀을 묵어 있는 동안 나는 아직껏 마음속에 ‘기생의 타입’이라고 정의하여 두었던 그런 종류의 여자와는 온전히 다른 새 타입의 기생을 황경옥에게 발견하였다. 그것은 무론 아직 나이가 어렸던 까닭이었겠지만 경옥이는 나를 보기를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밤에는 자리 를 같이 하지만, 날만 밝으면 그는 후덕덕 뛰어나가서 나를 피하였다. 내가 자기의 곁에라도 가 앉으면 그는 얼굴이 버—ㄹ겋게 되며 슬며시 자리를 피하고 하였다. 아직껏 배운 기생의 교육은 그로 하여금 나의 친구들과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놀게 하였지만 남이 보는 곳에서는 나를 몹시 피하였다. 무슨 말을 하여도 말대답조차 못하였다.
 
182
경옥이의 이런 태도는 나로 하여금 곧 옥엽이를 생각나게 하였다. 단둘이서 있을 때는 오히려 점잖았지만, 옥엽이는 곁에 나의 친구들이라도 있으면 견디지 못하도록 나에게 매달려서 시달리는 종류의 사람이었었다.
 
183
“이것은 내 사람.”
 
184
그는 몹시도 이런 것을 남에게 보이려는 종류의 사람이었었다. 체모 없이 달려들어서 쓸어안으며, 어떻게 하여 나의 친구들이 그의 몸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시원시원히 그곳을 털어 버리며 야단하곤 하였었다.
 
185
그러나 경옥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나의 친구들과는 손목을 잡고 놀았지만 내가 곁에 가기만 하여도 얼굴이 버—ㄹ겋게 되며 몸을 슬쩍 피하는 것이었었다.
 
186
이것이 나에게는 불만하였다. 그리고 그 불만은 불쾌조차 낳았다. 유쾌히 트럼프를 하며 노는 그들을 원망스러이 바라보며, 나는 홀로 나와서 불당 뒤 혹은 외딴 바위에 가서 쓸쓸히 걸터앉아서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었다. 그러면서도 혹은 경옥이 나를 찾으러 나오지나 않나? 설혹 그가 부끄러워서 못 나온다 할지라도 눈치빠른 삼주나 누구가 내 심사를 헤아리고 경옥이를 나를 찾으러 보내 주지나 않나? 아아, 옥엽아, 옥엽아, 너는 지금 어디 있니? 너만 있었더면 나는 이렇게 쓸쓸치는 않겠구나. —이리하여 옥엽에게 대한 생각은 경옥이의 태도 때문에 더욱 나의 마음에 강렬히 일어났다.
 
187
이틀 뒤에 우리는 소요산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전과 같이 우리는 매일 밤 식도원에서 놀이를 열었다. 그러나 황경옥은 부르는 일이 쉽지 않았다. K와 삼주가 혹은 남궁벽과 경패가, 마치 이전의 나와 옥엽이같이 농밀하게 서로 주고받는 사랑을 볼 때에, 나는 차디찬 경옥이를 부를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었다. 나는 언제든 외로히 혼자서 앉아서 그들의 재미있게 노는 모양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으로는 옥엽이만 있었다면 하였다.
 
188
이러한 쓸쓸한 가운데서도 내게는 역시 한 가지의 위안이 있었다. 그것은 역시 황경옥이었었다. 식도원에서 밤늦게 패밀리 호텔로 돌아가서 곤한 몸을 침대 위에 내어던지고 있노라면 새벽 한시나 두시쯤 하여서는 꼭 내게 전화가 오고 하였다. 그런 뒤 이삼십 분만 지나면 경옥이가 남모르게 호텔로 찾아오는 것이었었다. 그리고 올 때는 꼭 무슨 프레젠트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었다. 혹은 포도, 혹은 과자, 어떤 대는 손수건— 무엇이든 한 가지는 가지고 오는 것이었었다.
 
189
이러한 한 달이 지났다.
 
190
어떤날 밤, 그 밤도 경옥이가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기다리고 침대 위에 딩굴고 있을 때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문밖에는 뜻밖에 김옥엽이가 서 있는 것이었었다.
 
191
경악과 희열과 분노— 그때의 나의 마음을 어떻게 형용하였으면 좋을는지, 나는 똑똑히 모르겠다. 나는 눈이 멀거니 이게 꿈이 아닌가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192
“여보.”
 
193
그는 가지고 온 핸드백과 목도리를 침대 위에 휙 내어던지고, 딱 버티고 섰다. 나도 문을 닫은 뒤에 그 문을 등지고 마주 버티고 섰다.
 
194
조금 뒤에 그는 와락 내게 달려와서 매달렸다.
 
195
“이게 무슨 짓이오?”
 
196
그는 내 팔에 매달려서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잠자코 그의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뿌리치지도 않았다. 끄을어당기지도 않았다. 이리하여 옥엽이와의 두번째 인연은 맺어졌다.
 
197
경옥이는 새벽 아직 어두워서 늘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옥엽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튿날 해가 중천에 오른 뒤에야 겨우 침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보이를 불러서 두 사람의 조반을 명한 뒤에 저편 방에 있는 K와 삼주를 만나러 건너갔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제 집으로 돌아갔다.
 
198
그 뒤부터는 이상한 살림이 차차 전개되었다. 옥엽과 경옥이는 어느덧 서로 경쟁자의 지위에 섰다. 아직껏 수저워하던 경옥이도 차차로 제 태도를 선명히 하였다. 낮에는 일절 오는 일이 없던 경옥이가 낮에도 흔히 호텔로 찾아오게 되었다. 밤에 호텔에서 경옥이와 옥엽이가 마주칠 때도 흔히 있게 되었다.
 
199
이 두 사람의 경쟁의 틈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모든 일을 다만 되는 대로 버려 둘 뿐이었었다. 모란꽃과 같은 농후한 옥엽이의 사랑은 무론 나의 좋아하는 바였었다. 그러나 개나리꽃과 같은 청초한 경옥이의 사랑도 또한 버리지 못할 정취가 있었다.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취하여야 할지,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괴로운 자리에서 나는 옥엽이를 만나면 그에게 좋게, —경옥이를 만나면 또한 그에게 좋게, —소위 팔방미인 주의를 썼다.
 
200
“당신은 기생을 옳게 취급할 자격이 없세요.”
 
201
옥엽이는 흔히 나를 비웃었다. 나도 거기는 대답을 못하였다. 역시 좌우편에 다 명료치 못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202
경옥이는 아직 순진한 어린애였었다. 옥엽이는 노장이었었다. 나에게서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한 옥엽이는 수단의 뿌리를 경옥이에게 향하였다. 그리고 그 첫 착수로써, 옥엽이는 경옥이를 만나면 언제든 내 칭찬을 하였다. 그러나 그 칭찬 속에는 경옥이로 하여금 저절로 떨어져 나갈 독을 부웃기를 잊지 않았다. 그런 뒤에는 자기는 나의 어머니에게까지 허락을 받은 나의 안해라 선언하였다.
 
203
이러한 앞에서 어린 경옥이는 어찌하여야 할지 자기의 마음을 작정할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었다. 옥엽이는 내 앞에서 늘 경옥이의 칭찬을 하는 데 반하여, 경옥이는 내게 옥엽이에게 대한 시기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기를 주저치 않았다. 그리고 내가 옥엽이와 떠나기를 간청하였다.
 
204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나의 비위에 거슬리고 나의 감정을 더 사는 데 지나지 못하였다. 나의 마음은 차차 옥엽에게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205
이때에 옥엽의 발의(發議)로서 나와 옥엽이가 잠시 안동현을 여행을 가게 되었다.
 
206
그것은 잊히지도 않는 고경상(高敬相)의 엄친(嚴親)의 회갑연의 전날이었었다. 우리들은 역시 식도원에서 밤이 새도록 놀았다. 그날 남궁벽(南宮璧)은 몹시 몸이 불쾌하다 하며, 그러면서도 배가 주렸던지 음식을 많이 먹었다.
 
207
이튿날 어떤 요정에서 고경상의 엄친의 회갑 축연에 남궁은 몸이 불편하다고 참석치 못하였다. 그 연석에서 몰래 빠져나온 나와 옥엽은 잠깐 호텔에 들렀다가 그 밤차로 안동현으로 떠났다.
 
208
안동현에 도착한 이튿날 우리는 유지영에게서 남궁이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전보와 편지를 동시에 받았다.
 
209
그것은 청천에 벽력이었었다. 나는 옥엽의 얼굴을 바라볼 따름이었었다. 옥엽은 나의 얼굴을 바라본 따름이었었다. 그런 뒤에 둘은 한숨을 쉬었다.
 
210
“어, 훍.”
 
211
남달리 괴상한 소리로 깇던 남궁의 기침소리가 때때로 뜻하지 않고 귀에 들렸다. 이야기를 대개 일본말로 하며, 소레데(それで—그래서)라는 것을 “으—ㅁ, 소레데—”라고 유난히 점잖게 발음하던 남궁의 이야기 버릇까지 때때로 뜻하지 않고 귀에 들렸다. 칼날 같은 콧마루며, 무슨 꿈을 꾸는 듯한 눈은 언제든 나의 정신을 산란케 하였다.
 
212
“남궁이 죽었다. 친구 하나 잃었구나.”
 
213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옥엽과 나는 두번째 다시 단단히 결합되었다. 본시부터 그림자가 엷던 경옥이는 나의 머리에서 차차 없어지고 말았다. 서울로 올라올 때에 친구들을 위하여서는 몇 가지의 프레젠트를 사 가지고 왔지마는 경옥에게는 너절한 담배(그는 담배는 못 먹었으나) 한 갑조차 사 오지 않았다. 조금 생각 안 난 바는 아니었었지만, 옥엽에게 어려워서 중지한 것이었었다.
 
214
한 십여 일을 안동현서 지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옥엽이만 서울로 직행시키고 나는 평양서 내려서 나의 아들 일환(日 煥 )이의 무사히 자라는 것을 본 뒤에 이튿날 서울로 올라갔다. 그날 밤 식도원 칠호실에서는 또한 놀이가 열렸다.
 
215
이 날이 경옥이와 나와의 마지막 결말을 지은 날이었었다. 나는 무론 경옥이를 부르려고는 생각도 안하였다. 옥엽이가 내 앞에 두번째 나타난 뒤로부터는 경옥이는 요리집에서는 본 일이 없었던 것이었었다. 그런데 옥엽이가 유지영과 의논을 한 뒤에 내 명함에다가 오라는 편지를 써서 열한시가 지나서야 부른 것이었었다. 미상불, 이때는 옥엽이는 넉넉한 자신으로 경옥이에게 대하여 취하는 나의 행동을 보려던 모양이었었다.
 
216
결과는 옥엽의 상상하였던 바와 같았다. 나는 뜻밖에 나타난 경옥이에게 한 마디의 반가운 인사조차 아니하였다. 열흘 동안의 안동현 여행은 나의 마음으로 하여금 완전히 옥엽에게로 향하게 한 것이었었다.
 
217
한편 모퉁이에 앉아서 억지로 웃으며 노래하며 하던 경옥이는 어느 틈에 몰래 나가서 제 집으로 가 버렸다. 이리하여 이 날을 기회로 경옥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진 것이었었다.
 
218
그 뒤, 다시 그를 만날 기회가 없던 나는 그로부터 이 년이 지나서 어떤 여름날 유지영과 함께 멱을 감으러 한강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차에서 그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나를 모른 체하였다. 그리고 유지영과만 몇 마디의 말을 사괴었다.
 
219
그러나 나는 보았다. —그의 얼굴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220
그는 끝끝내 내게로는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종로까지 이르러서 전차를 버리고 내렸다. 전차를 버린 뒤에도 전차 쪽으로는 머리를 돌리지 않고 재판소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때에 그가 양산을 펼것도 잊어버리고 머리를 앞가슴에 묻은 뒤에 총총걸음으로 간 것을 보면, 그의 마음에도 커다란 격동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221
그로부터 얼마 뒤에 그가 애처로이도 난산으로 죽었다는 것을 나는 풍편으로 들었다. 그의 죽음을 알기 전부터 웬 까닭인지 그때에 그렇게도 무심히 내버린 경옥이에게 대하여 일종의 엷은 그리움을 느끼고 있던 나는 그의 죽음을 들을 때에 가슴이 섬뜩하였다.
 
222
그 뒤부터 나는 때때로 그를 생각하였다. 소요산에서 내가 곁에 가기만 해도 얼굴이 버—ㄹ겋게 되며 자리를 피하던 그, 밤마다 남모르게 찾아왔다는 새벽 밝기도 전에 돌아가던 그, 내 귀에 옥엽의 험구를 불어 넣던 그, 내가 옥엽과 함께 안동현을 다녀온 뒤에 만난 날 밤, 딴데만 보면서 억지의 웃음을 웃고 있던 그,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느해 여름 양산을 옆에 낀 채로 펴기도 잊고 머리를 수그리고 총총걸음으로 제 집으로 돌아가던 그. —이러한 여러가지의 그의 모양이 때대로 나의 기억에 살아나서 나로 하여금 한숨짓게 한다.
 
223
그도 한 박명한 인생이었다.
 

 
224
안동현서 돌아온 뒤부터는 옥엽이는 거의 패밀리 호텔에서 살았다. 저녁때 화장하러 잠시 집에 돌아갈 뿐, 밤에서 이튿날까지는 호텔에서 살았다.
 
225
그때의 나의 살림은 진실로 허탕하였다. 아침(?) 깬다는 것은 대개가 열두시를 지나서였었다. 그리고 해가 서편으로 기울어지기만 하면, 식도원으로 갔다. 식도원에서 돌아오는 것은 대개 세시나 네시쯤이었었다. 식도원에서 우리를 위하여(그때의) 칠호실 한 방뿐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지 않았다. 같이 술을 먹으러 다니는 벗들은 대개가 문우였었지만 글에 대하여는 한 마디의 이야기를 하여본 적이 없었다.
 
226
때때로 나는 조용한 기회를 타서 빅터를 틀어 놓았다. 그리고 그 정교한 기계 속에서 울려 나오는 카르조의 웅장한 소리며, 캘리 쿨치의 아름다운 소리에, 혹은 패데류스키의 영혼을 움직이는 피아노며, 하이페츠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비을롱에, 나의 예술적 양심과 예술적 혼을 뛰놀리는 것이었었다. 이런 생활을 버리자. 그리고 다시 예술의 길에 발을 들여 놓자. 나의 천분, 나의 양심을, 이 심신을 피곤케 하는 술과 놀이에서 구원하자. 황막한 조선의 벌에 예술의 아름다운 씨를 뿌리는 것이 내가 하늘에서 받은 명령이 아니냐. 조선의 거친 벌은 얼마나 이 예술의 씨를 기다리는가. 나의 할 일은 태산과 같이 많다. 이렇게 번번이 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의 천직으로! 나의 천직으로! 눈물겨운 이런 생각에 머리를 수그리고 시간가는 줄을 모르는 것이었었다.
 
227
그러나 그뿐이었었다. 저녁대만 되면, 어느덧 다시 식도원에 나타났다. 옥엽이가 얼른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었었다.
 
228
그때에 노춘성(盧春城)(당시에는 한 순진한 문학청년)이 ‘문인들의 연애서간집을 발행하려는데, 선생도 한 편 써 보내 주시면 고맙겠다’는 편지를 내게도 하였다. 그러나 원고지를 잡을 생각조차 안하였다. 그리고 ‘연인을 하나 구하여 주면 그 사람에게 편지를 할 테니, 그것을 얻어 쓰라’는 회답을 한 뿐이었었다. 남궁벽의 추도문을 쓴다 쓴다 하면서도 그것조차 못한 나였었다. 그리고 놀이에서 놀이로, 가따가나 피곤한 심신을 더욱 피곤케 하는 것이었었다.
 
229
옥엽에게 대한 나의 마음과 태도는 첫번엣 것과는 달랐다. 첫번에는 살림이라는 것을 앞에 그려 놓고 장래에 나의 마누라가 될 옥엽이를 늘 연상한 데 반하여, 두번째는 한 노리개로서 옥엽이를 사랑한 데 지나지 못하였다. 살림? 누가 그런 기생과 살림을 하랴. 나의 마음이 옥엽에게서 떠날 때까지 그를 한 마음의 위안품으로 이용할 따름이었었다.
 
230
이 나의 마음은 차차 옥엽이도 개달은 모양이었었다. 처음에는 암시로서 은근히 살림을 채근하던 그가 차차 노골적으로 살림을 채근하기 시작하였다.
 
231
“여보, 언제 살림을 할 테요.”
 
232
그는 때대로 이렇게 물었다.
 
233
“살림? 곧 하지. 그러나 좀더 놀고….”
 
234
나는 언제든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오히려 이렇게 대답하였다―.
 
235
‘살림이 다 뭐냐. 평양에 한 주군을 두고 그것을 둔 것조차 귀찮은데 기생을 또한 모셔다가 주군을 삼아? 당찮은 소리다.’
 
236
옥엽은 영리한 기생이었었다. 그는 어느덧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았다. 그리고 나를 더 성화시켰다―.
 
237
“여보, 당신은 살림을 하기가 싫은 모양이외다그려. 싫으면 싫다고 그래 줘요. 그러면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깐…. 당신이 나하고 살림을 하기가 싫다면 나는 당신을 떠나겠어요.”
 
238
그는 이런 협박조차 해보았다. 그러나 거기도 나는 대척치 않고 웃어 버렸다―.
 
239
“떠나고 싶으면 떠날 게지 선언까지 할 게 뭐야. 네가 떠나면 나는 마음놓고 다른 기생을 모셔 오겠다.”
 
240
하고는 천장을 쳐다보고는 웃을 따름이었었다.
 
241
나의 이 태도는 옥엽이로 하여금 낙망케 한 모양이었었다. 야―ㅇ양, 만날 살림을 어서 차리기만 조르던 그는 그해 섣달을 지나서 이듬해 정월이 되었을 때는 차차 내게서 떠나기 시작하였다. 호텔로 찾아오는 도수도 차차 줄었다. 그리고 요리집에서조차 다른 방에 질러서 개평을 떼우고 하였다. 이전에는 설혹 자기가 먼저 다른 요리집에 불렸을지라도 식도원에서 내가 오라기만 하면 어떻게 하여서든 삼십 분 이내로 달려오던 그가 차차 요리 핑계 조리 핑계 안 오는 일이 흔히 있게 되었다.
 
242
설혹 살림하려는 생각은 포기하였을망정, 내 마음에서 옥엽의 그림자가 사라진 바는 아니었었다. 옥엽의 차차 차게 되어 가는 태도는 나의 마음을 괴롭게 하였다. 그 가운데는 다분의 사내로서의 자존심이 섞이어 있었음도 감추지 못할 사실이었었다. 겉으로는 나도 심상히 내버려 두는체하면서도 속은 차차 안타까와함이 심하여 갔다.
 
243
이렇게 서로 어석버석 기괴한 감정으로 지내는 동안에 옥엽과 나의 마지막 파탄(破綻)이 마침내 이르렀다. 그것은 어떤날 밤이었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옥엽이를 분노가 섞인 희열로써 맞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나는 옥엽의 몸에서 수상한 편지를 한 장 발견하였다. 그것은 어떤 사내에게서 옥엽에게로 한 편지였었다.
 
244
나는 그것을 읽었다. 옥엽은 눈이 말뚱말뚱 나의 하는 양만 바라보고 있었다.
 
245
읽기를 끝낸 뒤에 나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246
“이게 뉘 편지야.”
 
247
“손님의 편지지.”
 
248
“보통 손님?”
 
249
“그럼.”
 
250
나는 문득 손을 들어서 옥엽이의 따귀를 때렸다. 이것은 이십 평생에 처음으로 하여본 나의 손질이었었다.
 
251
그는 울지도 않았다. 그리고 독을 품은 눈초리로 한참 나를 흘겨보다가 휠 제 외투를 들고 나가 버렸다.
 
252
이리하여 그와 나와의 인연은 끊어진 것이었었다. 그날 밤 분노로써 나는 잠을 못 이루었다.
 
253
“이년을! 이년을!”
 
254
나는 침대 위에서 혼자 딩굴면서 몇 번을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속으로 얼마나 바랐을까. 이제라도 옥엽이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내 앞에 와서 사죄하기를….
 
255
그러나 이튿날의 나의 태도는 천연하였다. 저녁때, 식도원에 가서 지영이가 옥엽이를 부르자 할 때에도 나는 웃으면서 거절한 뿐이었었다. 나의 프라우드한 성격은 비록 사랑의 앞에서도 머리를 수그림을 결코 허락치 않았다.
 
256
그러나 마음으로는 쓸쓸키가 짝이 없었다. 그의 그 요염히 굴던 온갖 자태는 늘 눈앞에 어릿거렸다. 식도원에서도 내 곁에 자리가 비어 있는것을 바라보고 늘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 미운 옥엽이를 생각하였다. 한 번은 술에 취하여 부끄럼도 잊고 울기까지 한 일도 있었다.
 
257
열흘쯤 지난 뒤, 나는 평양으로 내려왔다. 옥엽이가 없는 서울의 놀이는 인젠 아무 흥미도 없었던 것이었었다.
 
258
평양서도 쓸쓸히 술과 놀이로써 날을 보내던 나는 얼마 뒤에 평화박람회(平和博覽會)가 동경에 열린 것을 보기 위하여 동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서울에 잠시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 내가 서울 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옥엽이가 찾아왔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로서 두어 시간 친밀히 이야기를 한 뒤에 헤어진 뿐이었었다.
 
259
동경서 돌아와서 나는 옥엽이가 평북 어디 살림을 갔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다. 그 뒤 얼마 안하여 그가 계룡산(鷄龍山)에 갔단 말을 들었다.
 
260
그 뒤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일절 소식이 없었던 그에게서 그로부터 이태 뒤 어떤 늦은 봄날, 편지 한 장이 이르렀다. 그 편지에는 자기는 인젠 세상의 온갖 일을 잊고, 오로지 학업에 힘쓰며, 지금 자기의 아명 김××라는 이름으로 배화학당(培花學堂)에 다닌다는 이야기며, 언제 서울로 올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옛날의 친구로서 찾아 달란 말이 있었다.
 
261
그때 마침 미술전람회를 보러 서울로 가려던 나는 그 전람회를 며칠 앞하여 상경하여 체부동(體府洞) 어떤 하숙에 있는 그를 찾았다.
 
262
그는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같이 산보를 나섰다. 그때에 그는 자기의 몸을 보호하려는 뜻이었는지 어떤 자기의 친구 하나를 억지로 같이 데리고 나섰다. 산보를 끝내고 그와 작별을 한 뒤에 나의 머리에 남은 그의 인상은 몹시도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인상을 남긴 채로 나는 다시 그를 만나지 않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263
그 뒤 얼마 하지 않아서 홀연히 그의 자취는 이 너른 천하에서 없어졌다.
 
264
그때부터 나의 꿈은 시작된 것이었었다. 죽었나. 살았나. 살았으면 어디로 갔나. 무얼 하나. 동경 있다. 계룡산에 들어갔다. 강원도 어떤 촌에 있다. 중이 되었다. 남의 첩이 되었다. 무슨 연구를 한다. 그의 살림에 대한 여러가지의 풍설이 끊임없이 내 귀에 들어온다. 그러나 한 가지도 믿을 만한 것은 없었다. 이 여러가지의 풍설의 앞에 이상히도 그에게 대한 나의 인상은 나날이 더 아름다워 갔다. 그리고 때때로 그의 일을 생각하며 꿈꾸듯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약한 한숨도 흔히 입에서 새었다.
 
265
여전히 화류계의 길을 밟아 나아가면서도 나는 왜 그런지 그 뒤에는 많은 기생을 보고 많은 놀이를 하였지만 한 번도 옥엽이가 아닌 기생과 육체적의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화류계에서의 제일 첫번 사람인 김옥엽은 내게는 다른 모든 기생들과는 다르게만 보였다. 더구나 자기의 길을 화류계 이외에서 개척하려던 용감스러운 그를 생각할 때에는 일종의 존경의 염조차 일어나는 것이었었다.
 
266
“김동인이는 병신.”
 
267
“김동인이는 고자.”
 
268
이러한 소문조차 평양 화류계에서 떠돌기 시작하였다. 그런지라 그로부터 오륙 년 뒤에 노산홍(盧山紅)과 내가 가깝게 되었을 때에는 평양의 뭇 기생들은 거의 경이의 눈을 던진 것이었었다.
 

 
269
대단한 애상의 염이 섞인 회고로서 늘 생각하며 눈물짓던 김옥엽, 그 종적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던 수수께끼 같은 여인인 김옥엽,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도 귀엽게 내 머리에 깊이 인상박혀 있는 김옥엽, ―그가 어떤 해 겨울 갑자기 평양에 나타났다.
 
270
“김옥엽이가 평양 왔대요.”
 
271
나는 어떤 기생에게서 이 소식을 들은 것이었었다.
 
272
나는 그날 저녁으로 옥엽이를 찾아갔다. 떨리는 마음과 괴상히도 긴장 된 심사를 억누르고 그의 집 문간에서 그를 찾을 때는 나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다.
 
273
그러나 급기 들어가서 거기서 나는 무엇을 발견하였다.
 
274
인생이라 하는 커다란 물결에 닦이고 또 닦이어서 다 거칠고 더럽게 된 한 ‘인생의 껍질’을 발견하였다. 거기는 전형적 ‘기생의 말로’의 표본이 있었다. 인생이 마땅히 가져야 할 아무러한 ‘감정’도 다 잃어버린 한 허수아비를 발견하였다. 입 하나만 살아 있고 다른 온갖 양심이며 아름다움이며 흥분을 잊어버린 한 ‘사―ㄴ송장’을 발견하였다.
 
275
그 집에서 나올 때에 나는 기―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갔던 것을 후회하였다. 환멸의 비애를 그렇듯 통절히 느껴 본 적이 나의 일생에 아직껏 없었다.
 
276
나는 그 뒤에 그와 만날 기회를 할 수 있는 대로 피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만나게 되면 만날수록 그 불쾌한 인상은 더 늘어 갔다. 이리하여 피할 수 없는 연회에서 몇 번 그를 볼 동안 아직껏 그렇듯 아름답게 박혀있던 그의 인상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사라져 없어지고 지금은 그에게 대한 불쾌한 인상만 남아 있다.
 
277
지금, 그는 어떤 사람의 정실이 되어 가지고 자미있는 생활을 한다 한다. 아무리 지금은 불쾌한 인상이 남아 있다 하나, 그래도 내 생애의 중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의 장래를 나는 진심으로 축복하여 마지않는다.
【원문】金玉葉(김옥엽)과 黃瓊玉(황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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