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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女人) ◈
◇ 盧山紅 (노산홍) ◇
카탈로그   목차 (총 : 9권)   서문     이전 8권 다음
1929.12~
김동인
1
女人
2
8. 盧山紅
 
 
3
1925년의 봄과 여름은, 나의 젊은 과거를 통하여 가장 심신이 피곤하여 본 시기였었다. 정오부터 그 이튿날의 새벽 너덧시까지는 대개 요리 집에서 보냈다. 짧은 잠을 집에서 잔 뒤에는, 다시 술벗을 찾아 가지고, 요리집으로 갔다.
 
4
그 해에는, 나도 술을 먹는 척하였다. 비록 술맛은 모른다 하나 못 먹는 것이 수치같이 생각되어, 쓴 술을 쓴 체 아니하고 먹었다. 김산월(金山月), 원산월(元山月), 소금련화(小金蓮花) 등, 등, 몇 개의 미기(美妓)는 마치 나의 전속물과 같이, 하루도 나의 곁에서 발견 안 되는 날이 없었다.
 
5
그러나, 옥엽에게 대하여 아직 많은 미련과, 부지거처가 된 그에게 대한 신비적 동경을 가지고 있던 나는, 다른 기생들과 육체적으로까지 결합되기를 꺼리었다. 한 개의 노리개, 한 개의 완상품, ―나는 그들을 이렇게 보고 사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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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사 아끼꼬(萬造寺 あき子)를 거리에서 만난 것도, 그 여름이었었다.
 
7
그해 여름이 절반이나 지나서, 나는 후덕덕 평양을 떠나서 석왕사로 갔다. 비록, 모진 술과 거친 놀이에 세월 가는 줄을 몰랐다 하나,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나의 경건한 양심은, 끊임없이 나의 심령을 채찍질하였다. 마지막에 정 할 수 없이 되어 나는 그 술에서 피하기 위하여, 석왕사로 달아난 것이었었다.
 
8
서울서 이촌동(二村洞)의 탕수를 구경하고, 석왕사로 혹은 명사십리로 호탕한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본시 여행을 즐겨 하는 나는 평양의 술을 잊었다. 눈만 뜨면 한없이 그립던 유흥 정취를 잊었다. 칠야의 대동강의 뱃놀이를 잊었다. 녹발의 미기들을 잊었다. 한 달의 여행을 끝내고 평양으로 돌아올 때는, 그 새의 술과 놀이에 피곤하였던 나의 심신은 다시 상쾌한 기분을 회복하였다. 젋음과 행복감으로 충일된 나의 심령은, 세상의 온갖 곳에 흩어져 있는 젊음과 행복을 한없이 축복하면서, 고요히 고요히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양에 돌아와서, 또 다시 건전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9
그래 가을 춘원 부처(春園 夫妻)가 평양을 왔다. 병으로 인하여 강서 약수(江西藥水)에서 여름을 보내고 귀경하던 길에 평양에 들른 것이었었다.
 
10
그날 저녁, 춘원 부인은 부인 자기의 친구와 함께 놀러 나가고, 춘원은 K와 나의 인도로써 하루 저녁을 평양의 놀이를 즐기려, 장춘관(長春館)으로 갔다, 그날 저녁에 부른 기생 가운데 노산홍(盧山紅)이 있었다.
 
11
산홍은 비교적 어린 기생이었었다. 그의 얼굴은 이쁘다기보다 엇구수하였고, 늘씬하게 자란 키는 마치 옥토에서 잘 자란 화초와 같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며 몸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인이었었다.
 
12
“간지노요로시이온나다라우?(感じの宜い女だらう―분위기가 좋은 여자지)”
 
13
아직껏 여름의 놀이에, 큰 기생만 데리고 놀아서, 어린 기생을 모르는 나에게 노산홍을 소개하며, K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 말에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이고, 겹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14
그러나 그때 잠시 첫 대면을 한 뿐, 그 뒤에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동안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이르렀다. 여름과 가을을 보내는 동안, 다시 요리집에 발을 들여놓을 기회를 못 가진 나는, 산홍에게 대하여 ‘간지노요로시이온나(感じの宜い女―분위기가 좋은 여자)’라는 인상을 가진 뿐,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15
그해 첫겨울 어떤 날, 우연히 길에서 옛날의 술벗을 만난 나는, 오래간만에 저녁을 같이 하려, 어떤 요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 기생을 부를 때에, 나는 노산홍을 선택하였다.
 
16
“산홍이가 누구―ㄴ가?”
 
17
벗들이 이렇게 물을 때에,
 
18
“아직 어린 기생.”
 
19
이라고 대답한 나는, 미상불 얼굴을 약간 붉혔을 것이었었다. ‘어린 기생’ ‘오입장이에게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기생’―이런 기생을 지명하였다 하는 것은, 그때의 나의 노는 방식을 알던 그들에게는 의외인 만치, 나역 또한 속으로 얼굴을 붉힌 것이었었다.
 
20
“노산월이 동생 말이야. 언제 보니깐, 아주 서잰 것이 활발하구 재미있두먼.”
 
21
이러한 변명을 붙이기조차 나는 잊지 않았다.
 
22
그 저녁, 산홍이는 몹시 말괄량이를 부렸다. 마치 어린애가 어버이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그는 내게 매달려서 가진 어리광을 다 부렸다.
 
23
“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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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쓰는 어린애와 같이, 내 팔죽지에 매달리며, 몸을 비꼬면서, 이런 어리광까지 부렸다.
 
25
“배고프면 냉면이라두 시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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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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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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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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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커다란 어린애였었다. 그리고, 이러한 어리광이 그에게는 능글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럴듯이 보였다. 그의 태도며 행동에서, 극적 분자라는 것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30
놀이를 끝낸 뒤에, 우리는 모두 산홍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벗들은 산홍과 화투를 하기 시작하였다. 몇 잔 술에 얼근히 취한 나는, 처음에는 같이 화투를 하려 섞이어 보았으나, 화투장이 두 장 석 장으로 보여서, 도저히 할 수가 없으므로, 화투장을 내어던지고, 그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31
술에 노곤히 취한 나는, 어느덧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문소리가 나는 바람에, 번쩍 깨었다. 깨어 보니, 방 안에는 산홍이 혼자 밖에는 없고, 벗들의 돌아가는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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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들 갔어?”
 
33
“돌아들 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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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두 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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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덕 일어나서, 외투와 모자를 움켜쥐고, 문을 열었다. 벗들의 소리는, 벌써 대문 밖에서 들렸다. 나는 내 신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신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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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 못 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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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없어요?”
 
38
산홍이도 나와서 신을 찾아 보았다.
 
39
“아이구머니, 없다. 그이들이 가지구 가신 모양이군.”
 
40
벗들은 갈 때에, ‘밤참을 먹고 다시 올 테니, 올 때까지 붙들어 두라’고 산홍에게 단단히 부탁을 하였다 한다. 그러나, 나는 혼자서 그곳에 있기가 싫었다. 더구나, 벗들이 갔다는 것은, 밤참을 먹으러 간 것이라고는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는 나는, 산홍을 채근하여 곧 따라가서 신을 찾아오기를 부탁하였다.
 
41
산홍이는 신을 끄을면서 뛰어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대문 밖에서 또한 저편으로 사라지는 산홍이 발소리를 들은 뒤에,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서, 산홍의 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한참을 혼자서 기다리다 못하여, 나도 또한 버선발로 대문 밖까지 나었다. 대문 밖까지 나선 나는 그들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면서 저척저척 큰거리까지 나왔다. 큰거리에 나와서는 버선발로 큰거리를 건너섰다. 큰거리까지 건너 보았으나, 산홍의 그림자도 벗들의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전차길을 건너선 나는, 또 그들을 찾으면서 골목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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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까지 온 이상에는.”
 
43
이리하여, 나는 좁은 길로 골라서 버선발로 집까지 돌아왔다.
 
44
집에 돌아와서, 옷을 끄르고, 방금 자리에 들어가려 할 때에, 행랑 사람이 들어와서, 누가 찾아온 것을 알게 하였다. 나의 대신으로 나갔던 안해가, 눈에 칼을 세워 가지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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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기생이 당신을 만나잡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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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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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인지 하는 사람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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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가서 내 구두나 찾아 오. 필시 구두를 가져왔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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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둔 웬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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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나가 찾아만 오지.”
 
51
그리고, 나갔던 안해가 구두를 찾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52
“노산홍이라는 기생이야.”
 
53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변명하며, 나는 자리 속으로 들어갔다.
 

 
54
그 뒤 이삼 일 지나서다. 어떤 상가에 밤경을 갔던 나는, 거기서 또 다시 술벗들을 만났다. 새벽 두시쯤 그들이 나를 끄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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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해서 돈 땄네. 밤참이나 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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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행운의 날로서, 술벗들과 내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화투에 승리를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딴 돈을 죄 C에게 맡긴 뒤에, 밤참을 먹으러 상가를 나섰다. 우리의 의논은 장국집에서 양식점으로, 양식점에서 카페로, 카페에서 요리집으로 올라갔다. 같이 술을 먹는다 할지라도, 카페나 다른 음식점에서 먹는 것을, 우리는 옳다 여길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불로관(不老館)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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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다시 산홍이를 보았다. 시간이 넘어서 정식으로 기생을 부를 수가 없는 우리들은, 각각 친한 기생을 명함을 보내서 데려오기로 하였다. 나는 기연가 미연가 하면서 산홍에게 명함을 보냈다. 산홍은 내 이름을 알지 모를지 이것부터가 의문이었다. 설사 안다 할지라도, 명함을 보내서 올지 안 올지는 도저히 판단을 허락치 않는 문제였었다. 그러나 산홍이를 안 이상에는 다른 기생은 부르고 싶지 않았다.
 
58
산홍이가 제일순으로 도착되었다.
 
59
“산홍이 일등! 어찌나 바쁜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냥 왔구나. 동인이 한턱 하게.”
 
60
이렇게 놀려 대는 말을 귓등으로 넘기면서, 그는 번번 누워 있는 내 곁으로 와서, 내게 몸을 기대어 앉았다.
 
61
“너한테 보낸 게 뉘 명함인지 아니?”
 
62
“알잖구요.”
 
63
“그래 뉘 명함?”
 
64
“듣기 싫어. 엉야, 일어나라우.”
 
65
그 날 나는 몹시 취하였다. 공복에 독한 소주를 먹은 나는 정신이 아뜩아뜩 하였다. 때때로 깜박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누웠다가는, 남한테 흔들리워서 일어나고 하였다. 세상은 혹은 꺼꾸로, 혹은 바로, 순서없이 뒤집혔다.
 
66
나는 어떻게 산홍의 집까지 갔는지 알 수 없다. 산홍의 집에서 나를 두고 돌아가려는 친구들을 향하여,
 
67
“오늘은 마음대로 내 신을 가지고 가라.”
 
68
고 고함을 치는 자기를 나는 발견하였다.
 
69
이리하여 산홍과 인연이 맺어졌다.
 

 
70
이튿날, 친구들은 나더러 한턱을 하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산홍과의 관계를 절대로 부인하였다. 한턱 하라면 하기는 하지만, 산홍과 관계는 없노라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은 친구들의 신용을 사기에 넉넉하였다. 몇 해를 연하여 그만치 맹렬히 놀았지만, 기생과의 육체적 관계를 피하여 오던 나는 어젯밤 비록 산홍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하나, 그만 신용은 사기에 넉넉하였다.
 
71
그날 밤, 우춘관(又春館)에서 놀이는 또 열렸다. 그러나, 나는 산홍이를 피하고 김산월을 불렀다.
 
72
그 날같이 섭섭한 놀이를 한 것이 내 기억에 다시 없다. 비록 육체적 관계까지는 없었다 하나, 여름에는 하루를 보지를 못하면 견디기 힘들도록 생각나던 김산월이, 이때에는 조금도 나의 마음을 위로하지를 못하였다.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그의 갸름한 얼굴과 기다란 눈을 쳐다보면서, 나는 속으로 산홍아, 산홍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로 미루어서(언제 움돋았는지 모르는) 산홍에 대한 나의 사랑이 작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느끼고 오히려 의외로 생각하였다.
 
73
나는 몰래 빠져나가서 보이에게, 산홍이 어느 요리집에 불렸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산홍이 아직 불리지 못하고 제 집에 있다는 것을 들을때에, 그런(가련한) 산홍을 부르지를 않고 딴 기생을 불러 가지고 노는 자기가 미안스럽기까지 하였다.
 
74
우춘관에서 그들과 작별을 한 뒤에, 혼자서 몰래 좁은 골로 들어선 나는 또 다시 산홍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75
한때 요정에서 발을 끊었던 나는, 산홍이를 안 뒤부터 다시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기생이라기보다 오히려 한 커단 계집애라고 하고 싶은 산홍이는 이상히도 나의 마음을 끄을었다. 그와 사괸 지 얼마 지나지 못하여, 어느덧 나의 심신은 그에게 빠져 버리고 말았다.
 
76
그 겨울, 나는 산홍이를 위하여 별 일을 다 하여주었다. 편도선 때문에 감기를 잘 걸리고 목소리가 늘 갈린 듯한 그를 고쳐 주기 위하여, 편도선적출 수술을 한 것도 그 겨울이었었다. 불리지를 잘 못하는 그를 어떻게든 좀 잘 불리게 하느라고 매일 요리집을 갈아서 그를 부르고, 기회만 있는 연회마다 그를 불러서, 엇구수한 그의 맛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 준 것도 그 겨울이었었다. 미처 주우(酒友)들을 만나지를 못하여 요리집에 갈 기회가 없으면, 따로이 그의 표지를 내어다가 그를 주어서, 그로 하여금 영업에 그다지 축박히지 않도록 노력하여 준 것도 그 겨울이었었다. 나는 산홍이를 어떻게 하여서든 다른 기생들보다 그리 지지 않는 기생이 되도록 하여보려고 별 애를 다 썼다. 심지어 화장에까지 간섭하였다. 그때 벌써 재산 상태에 현저히 흔들림을 보기 시작한 나는, 마음대로 그의 뒤를 돌아보아 주지는 못하였을망정, 권번에 전화를 걸어서 저녁 아홉시까지도 그가 불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알면, 곧 요리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그를 위하여 오륙 시간의 시간을 잡아 주고 하였다.
 
77
“아이구 어린 기생하구…….”
 
78
여름에 같이 놀던 큰 기생들은, 나를 보면 꼭 이렇게 놀려 대었다. 나는 이 소리가 가장 듣기 싫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여서든 산홍이를 큰 기생을 만들려 힘쓴 것이다.
 
79
안해(惠仁)는, 이런 방면에는 특별히 신경이 날카로웠다. 여름에 김산월, 원산월 등과 그렇게 모지게 놀 때에 무관심히 지낸 그였었지만, 일찌기 구두를 가지고 왔을 때에 내 입에서 나온 ‘노산홍’이라는 이름뿐은, 아무리 하여도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그는 나와 산홍이의 새를 알아 내었다.
 
80
그는 어떤날 저녁, 갑자기 나에게 노산홍의 일을 캐어묻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그의 얼굴에 나타난 기괴한 표정을 본 나는, 인제 그 일을 그냥 감추려는 것이 결코 득책이 아님을 직각하고, 솔직히 다 이야기해 버렸다. 그랬더니, 본시 말괄량이의 성질이 있는 그는, 노산홍과 한 번 만나서 이야기라도 할 기회를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81
“우리 첩을 좀 보아야지.”
 
82
그는 기괴한 웃음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리하여 음력 정월 초승께 어떤 날, 어떤 일본 요정에서 소연(小宴)을 열게 되었다.
 
83
그것은 기괴한 장면이었었다. 나는 멍멍히 앉아 있었다. 일찌기 김옥엽과 황경옥의 틈에 끼여서, 갈피를 차리지 못하고 쩔쩔맨 나는, 그로부터 사오 년 뒤에 또 다시 여기서 안해와 기생의 틈에 앉아서 쩔쩔매는 자기를 발견치 않을 수가 없었다.
 
84
나는 싱겁에 웃고 있는 혜인(惠仁)을 보았다. 그리고, 싱겁에 웃고 산홍을 보았다. 그런 뒤에는 유난히 점잖이, 음식에 대한 비평도 시험하며, 음력 양력에 대한 강화도 하였다.
 
85
그 자리의 혜인은, 연전의 김옥엽이었다. 노산홍은 연전의 황경옥이었었다. 산홍이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 머리를 수그리고 음식조차 마음대로 못 먹었다. 혜인에게 권고를 받고 한두 젓가락씩 떠 보는 뿐이었었다.
 
86
혜인의 말괄량이는 거기서도 충분히 발휘되었다. 가장 자기의 소유권을 자랑하듯이 그는 내 곁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산홍에게 대하여는 별별 내 흉을 다 이야기하며 웃었다. 본시 눕기를 즐겨 하는 내가 드러누울때는 자기의 무릎까지 내게 제공하였다.
 
87
“이이는 성질이 강짜가 세니까, 딴 서방을 했다가는 큰일난다.”
 
88
이런 소리까지 하며 웃었다.
 
89
연을 파하고 문밖에 나와서 어떻더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90
“촌년.”
 
91
그는 간단히 이렇게 결론하여 버렸다. 그리고 그것뿐으로는 시원치 않은지,
 
92
“퍼러둥둥한 게.”
 
93
하고 한 마디 더 보태었다. 나는 힐끗 그를 보았다. 그리고 어두운 가운데서도 그의 눈자위가 곱지 못함을 보고,
 
94
“아직 어린애거든.”
 
95
이렇게 변명 비슷이 말하였다.
 
96
며칠 뒤에 산홍이는 그 날의 사례로서, 혜인에게서 빈사저고리를 한 채 받았노라고 내게 보여 주었다. 그것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까, 혜인이는 무슨 비단으로 속옷을 짓고 있었다. 본시 그런 데 무관심한 나는 본 체 안하고 무슨 책을 읽고 있노라니깐, 혜인이는 몇 번을 나의 주의를 끄을려 하다가 하릴없던지, 마침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97
“기생년 저고리 해주는 걸로, 내 속옷은 못 지어 입을까.”
 
98
나는 그 말에 대답치 않았다. 그는 또 말을 계속하였다―.
 
99
“이건 아깝디요? 수태 아까울걸…….”
 
100
나는 싱겁게 웃었다. 그도 웃었다. 가장 천진스런 웃음을…….
 
101
나는 아직껏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머리를 기울인다. 그때의 나의 눈에 비친 바의 웃음에는 털끝 만치도 사적(邪的) 분자가 없었다. 그러나 과연 그의 마음이 그로 하여금 그렇듯 호호히 웃게 하였을까. 그의 마음에는 쓰린 그림자가 없었을까?
 
102
이리하여 혜인이는 표면적으로나마 산홍이에게 대한 호의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상식으로 판단하든 이치로 생각하든, 그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여인 가운데도 특별히 시기가 센 그가, 결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을 것이다. 어떤 괴상한 마음으로서 한 번 산홍에게 호의는 보였지만, 그 뒤부터의 나에게 대한 감시가 매우 엄하였다. 무시로 행랑 사람을 산홍의 집으로 보내서, 거기 내 신발이 있는지 없는지를 엿보았다. 요리집으로도 하인을 때때로 보냈다. 전화도 흔히 걸었다.
 
103
“누구요?”
 
104
“누구요?”
 
105
“당신 누구요?”
 
106
“당신 김동인 씨요?”
 
107
“아 C인가?”
 
108
“여보, 정신을 좀 차려요, 내가 누구야요?”
 
109
수화기를 통하여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놀라서 전화통을 내던진 일도 여러번 있었다.
 
110
나는 마침내 다른 방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엄중한 감시 아래서도, 산홍이를 만나고 싶은 나의 정열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거기 대한 대착을 산홍이와 토의하였다. 그 뒤부터는 우리는 요리집을 피하였다. 동승루나 동화루 같은 청요리집에 가서, 시간을 잡아 가지고 둘에서는 산홍의 집 건너편에 있는 그의 동무 기생의 집을 밀회 장소로 하였다. 때때로 우리는, 건녀편 산홍의 집 대문에서 들리는 산홍이를 찾는 손님의 소리를 들었다.
 
111
“손님 왔다.”
 
112
“×××로군.”
 
113
“너의 새서방이지?”
 
114
“듣기 싫여.”
 
115
“가 보렴.”
 
116
“싫구나. 엉야, 그런 소린 이젠 하디 말라우요.”
 
117
요리집을 피하고 산홍의 집을 피하여, 이리저리 밀려 다니면서 만나는 것이, 내게는 더 자미스럽고 신비스러웠다. 더구나, 어떤 때는 갈 곳이 없어서 어두운 골목골목을 해여 이 집이나 행여 이 집이나 하고 산홍의 안내로써 헤매는 재미도 여간이 아니었었다.
 
118
산홍에게는 나보다 먼저 관계된 H라는 사내가 있었다. H는 첫번부터도 보기가 싫었으며, 나와 접근된 뒤부터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노라는 것이 산홍의 변명이었었다. 그리고, 한 번은 나를 방 안에 앉히어 둔 채 대문에서 찾는 H에게 항하여, ‘왜 기신기신 찾아다니느냐’고 발악까지 하였다. 그러나 H는 그냥 끊임없이 산홍의 뒤를 따라다녔다. 산홍과 같이 건너편 집에 있노라면, 어떤 때는 등이 달아서 네다섯 번씩 찾아다니는 일도 있었다.
 
119
“산홍이, 산홍이.”
 
120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산홍이를, 등이 달아서 찾아다니면서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산홍의 대문에서 부르고 하는 H의 소리는 고요한 밤 공기를 흔들어서, 비통하다고 형용하고 싶게까지 들렸다.
 
121
“산홍이, 산홍이.”
 
122
그것은, 마치 고기에 주린 이리의 부르짖음이었었다. 등이 달아서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역 가정을 내어버리고 처자를 내어 버리고 이곳에 산홍이와 마주 앉아 있는 처지였지만, 인생의 추악한 한 면과 직면한 느낌을 받고, 뜻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고 하였다.
 
123
“아이구, 저더러 누구 찾아다니라나.”
 
124
내게 듣기 좋게 이런 소리를 하는 산홍이를,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바라보는 내 얼굴에는, 어떤 때는 증오의 표정도 있었을 것이었었다.
 
125
그해 겨울이 거의 가서, 나의 생애를 통하여 가장 불유쾌하고 창피한 사건이 생겼다. 어떤 날 대성관(大成館)에서 논 나는, 놀이를 파한 뒤에 사소한 일로 곁방 취객들과 충돌이 되었다. 한 마디가 가고 한 마디가 오는 동안에, 충돌은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큰 격투가 일어났다.
 
126
저편은 팔구 인, 이편은 나 한 사람, 더구나 어렸을 때부터 농을 할 때라도 손질은 못하도록 엄하게 길러난 나는, 싸움에는 완전한 무능자였었다. 나는 무수히 두들겨맞았다. 이가 모두 부러지고, 사면이 터지고 찢어지고 하였다. 이튿날은 나는 병석에 넘어갔다. 미리부터 있던 폐첨가다아(肺尖加多兒―폐첨 카다르)의 기미에 겸하여 그간 얼마 동안의 폭음의 결과와 이 날의 격동은 나로 하여금 병석에 넘어지게 하였다. 혈압이 놀랍게 낮아졌다. 폐에서는 잡음이 들렸다. 각혈까지 하였다. 게다가 이번에 당한 창피 때문에 생겨난 심적 고통은 더욱 나를 괴롭게 하였다.
 
127
그 일을 기회로 나의 발은 다시 조선 요리집에서 끊어졌다. 한 반 삭뒤에 병석에서는 일어났지만, 다시 요정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128
그러나 산홍에게 대한 집착은 그 일 때문에도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 요리집에는 발을 끊었다 하나 다른 곳에서라도 산홍이를 만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를 따라서 장소를 바꾸면서, 나는 산홍이와 밀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129
그 봄에 나는 토지관개 사업(土地灌漑事業)을 시작하였다. 기울어져 가는 재산 상태를 바로잡아 보기 위하여, 무엇이든 시작하려던 나는, 어떤 사람의 권고를 들어서, 토지관개 사업을 시작하였다. 본시 이런 방면에 아무 지식도 없는 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두고 때때로 심심하면 현장에 나가 보고 하였다. 장소는 나의 집에서 자전차로 이십 분쯤 걸리는 평양부외, 전력으로 보통강(普通江) 물을 끄을어올려 풀 수 있는 백여 정보쯤 되는 땅이었었다.
 
130
이 공사가 거의 끝난 어떤 날 서울서 안서와 그 밖 이삼의 벗이 평양을 왔다. 그들은 신의주로 놀러 가는 길에 평양에 들른 것이었었다. 그들과 산보를 나갔던 나는, 그 길로 집에는 아무 말도 없이 함께 신의주로 떠났다. 신의주서 안동현의 아편굴이며 서관 등의 탐험에 여념이 없다가, 한주일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서는 그 새 나의 거처를 찾느라고 욱적하였다.
 
131
떠날 때는 본시 이틀의 예산으로 떠났으며, 그런지라, 곧 돌아올 예산으로 그때 관개 사업에 필요한 전기회사와의 계약금으로 준비하였던 천원의 돈뭉치를 아무 말 없이 책 틈에 끼워 둔 채 떠났으매, 집에서는 그 것 때문에 큰 야단을 한 모양이었었다. 시기는 절박하였는데 계약은 내어버리고 돈까지 가지고(집에서는 내가 그 돈을 가지고 나간 줄 알았다)나간 나를 찾느라고 큰 야단을 하였다.
 
132
그때, 마침 진남포에 군함이 와서 정박하였다. 평양서도 그것을 구경하러 많이들 갔다. 내가 없어진 뒤에, 그의 의혹을 산홍이에게밖에는 부을 수 없는 혜인이는, 산홍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산홍이는 진남포 군함 구경을 갔다는 말을 들은 혜인이는 눈이 벌겋게 되어 곧 진남포로 달려갔다. 그는 산홍이가 진남포에 간 것은 정녕코 나와 동반하여서 갔음이라 하였다. 시기와 분노로 불타 오른 그는, 진남포로 달려가서 각 여관을 찾았다. 그리하여 대정 여관(大正旅館) 숙박기에서 노산월이와 노산홍이는 발견하였지만, 김동인이는 발견하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그 노산홍이조차 군함을 구경하러 가서 여관에는 없었다.
 
133
저녁때 다시 여관으로 갔을 때는 노산홍이는 벌써 평양으로 돌아온 때였었다. 여기서 그의 의혹은 더욱 커졌다. 여관 사환에게 물은 결과, 사오 인의 손님과 같이 왔더란 것은 알았으나, 그 손님 가운데 김동인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극도로 결이 오른 혜인이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서, 그 길로 산홍의 집으로 갔다. 그러나 산홍이는 아직 제 집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134
여기서, 그는 한바탕의 싸움을 하였다. 극도의 시기와 억분함은 그로하여금 제 이성을 잃게까지 하였다. 김동인이를 내어놓으라고 서로 악구를 퍼부으며 싸운 뒤에, 거기서 받은 모욕 때문에 더욱 흥분이 된 그는, 반미치광이와 같이 되어서 그 집에서 달려나오는 길로 하인들을 시켜서 각 요리집을 찾았다.
 
135
따마야에서 노산홍이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김동인이는 그곳에도 없었다.
 
136
“없지 않아. 있어, 있어. 숨었디.”
 
137
따마야에서 헛손으로 돌라온 하이엔게, 이렇게 야단을 하며, 자기가 직접 가서 보겠노라고 야단을 할 적에, 안동현서 돌아온 내가 집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었었다.
 
138
시기와 흥분으로 미칠 듯이 된 그에게는 이성이며 양심이 없었다. 그는 내가 안동현서 사 온 바의 몇 가지의 물건을 눈으로 보면서도, 나의 안동현행을 부인하였다. 그런 것은 진남포서도 돈만 주면 넉넉히 사 올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안동현 세관을 통과한 도장을 보고도, 그냥 제 말을 고집하였다. 그리고 울며 불며 야단하였다. 여인의 히스테리의 어 (御)키 힘듦을 나는 여기서 통절히 느꼈다.
 
139
이 사건은 가따가나 새가 좋지 못하던 혜인이와 나와의 새를 더욱 벌어지게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은 나로 하여금 산홍이와도 한동안 만나지 않게 하였다.
 
140
왜? 첫째로는 혜인이에게 그렇게 대접한 산홍이의 집안을 괘씸히 본 때문이었다. 둘째로는 그 사건 때문에 산홍이와 만나기가 열적게 된 때문이었었다. 세째로는 아네게 한 마디의 의논도 없이 진남포를 갔던 산홍이의 태도를 좋지 못하게 본 때문이었었다. 이 세가지가 다 극히 박약한 이유였었다. 그리고, 안동현서 산홍이를 위하여 사 온 몇가지의 프레젠트를 다른 기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41
그러는 동안에 나의 귀에는 때때로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그것은 나의 친구 K라는 사람과 산홍과의 새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는 것이었었다.
 
142
“?”
 
143
반신반의로써 나는 그 말을 들어 두었다. 거기 대하여 산홍에게 캐어 물어 보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지어 먹었던 마음이 차차 사라짐을 따라서, 산홍이와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왜 그런지 그 뒤부터는 만난다 할지라도 어석버석 서로 새가 이상하여졌다.
 
144
그때에 또 한 가지의 사건이 생겼다. 그것은 어떤 첫여름이었었다. 집안 누구를 보내려 정거장에 나갈 일이 생긴 나는, 방금 따마야에 불리어가는 산홍에게 열두시쯤 동승루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뒤에, 집으로 돌아와서 짐 꾸리는 것을 보고 정거장까지 전송을 하고 그 길로 돌아서서 동승루로 갔다. 그러나 뜻밖에 동승루 보이의 대답은, 산홍이가 거기 없다는 것이었었다. 나는 보이에게 다시 물었다. 이런 일을 약속한 뒤에 어기어 본 일이 없는 산홍인지라, 나는 보이의 말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보이의 대답은 여일하였다. 나는 다른 보이를 불러서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그 보이의 대답은, 다른 손님과 자동차를 타고 나갔는데 곧 들어올테니 내가 오거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한다. 이 대답에 불유쾌하게 된 나는 보이에게 이렇다 저렇다 캐어서 물을 때에, 이층에서 사람의 발소리가 나면서 산홍이가 내려왔다.
 
145
“자, 올라가십시다.”
 
146
그는 마치 나를 기다리듯이 나를 끄을었다.
 
147
“자동차 타고 어디 나갔다더니?”
 
148
“아니, 보이가 모르고 그랬디.”
 
149
“보이가 모르단?”
 
150
“자, 어서 올라나 가요. K시도 와 계세요.”
 
151
K? 나의 의혹은 여기서 와락 일어났다. 올라가 보니, K와 산홍 단둘이서 술을 먹고 있었다.
 
152
“자네가 온다기에, 기다리고 있었네.”
 
153
이것이 K가 나를 볼 때의 인사였었다.
 
154
“그런가.”
 
155
나는 불유쾌함을 감추고 이렇게 대답하여 두었다.
 
156
잠시 더 앉았던 K는, 잘 놀다 가라는 인사로써 먼저 일어나서 갔다.
 
157
K와는 왜 같이 들어왔느냐. 왜 나를 따려 했느냐. K가 돌아간 뒤에, 산홍이와 나 사이에 이런 논란이 생겼다. 그는 꾸준히 한가지로 대답하였다. 따마야에서 인력거로 동승루로 오는 길에 K를 만나서, 밤참이라도 같이 먹자기에 동승루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었다. 그리고, 왜 나를 따려 했느냐는 질문에 ‘따려 했으면 땄을 게지 자기가 왜 나와서 나를 맞았겠느냐’는 이론으로서 나의 말을 막았다.
 
158
산홍의 말은 이론이 서기는 섰다. 그러나 산홍과 K의 새가 수상하다는 일을 미리부터 듣고 있던 내게는, 그만 말로써 온전히 의심이 풀릴 리가 없었다. 헤어질 때마다 나를 억지로라도 자기의 집까지 끄을고 가던 그였었지만, 이 날은 나를 끄을지도 않았다.
 
159
이리하여, 그와 불유쾌하게 헤어진 뒤에 나는 그 뒤부터는 나의 사업에 취미를 붙여 보려 하였다. 처음에는 몹시 몰취미하던 그 사업이었었지만, 차차 겪고 나면서부터는, 나는 어느덧 그 사업에 취미를 느꼈다. 놀라운 전기의 힘으로 빨리어 올라온 보통강 물이 아래로 퍼진 백여 정보의 땅을 적셔서, 겨울까지는 밭〔田〕이던 그 일대가 어느덧 논으로 화하여 버린 것은 시원한 노릇이었었다. 한 번 취미를 느낀 뒤에는 끝이 없는 나의 성미는, 여기서도 충분히 발휘되었다. 나는 나날이 아침에 자행거를 타고는 관개 장소에 나갔다. 그리고 저녁 어두워서야 돌아왔다. 매일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씩 동리 구역 내를 편답하면서 동이 무너진데며 물이 잘 가지 않는 데를 검분하였다.
 
160
벼는 나날이 자랐다. 물을 충분히 받은 벼는 눈에 보이게 컸다. 그 무연한 벼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나는 때때로 만족의 웃음을 웃었다. 백여평의 땅을 잡아서 나는 자농(自農)까지 하였다. 더럽다고 곁에도 가지 않던 거름을 손으로 만지면서 스스로 지은 농사가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도 유쾌한 노릇이었었다. 농립모에 삽이나 호미를 들고 논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자기를 스스로 보고는 나는 때때로 빙그레 웃었다.
 
161
농촌에는 놀이가 많았다. 복놀이라 무슨 놀이라, 우리로서는 이름조차 기억키 힘든 놀이가 많았다. 그런 날마다 농민들은 술과 송아지 고기를 받아 가지고 찾아왔다. 소박한 농민들과 마주 앉아서, 술추렴을 하는 취미도 나는 어느덧 배웠다.
 
162
그 여름 동안, 나는 온갖 세상의 다른 군잡스런 문제를 잊었다. 그리고, 분망한 틈에도 한가한 여가가 있는 농촌 생활에 온 정력과 흥미를 부었다.
 
163
그러나, 이 사업에도 종언(終焉)의 날이 이르렀다. 이 관개 사업을 조사하러 나왔던 어떤 소관리(小官吏)와 변변치 않은 일로 언쟁을 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이 사업도 실패에 돌아갔다.
 
164
나는 관개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경유를 상세히 쓸 자유가 없다. 여기 대한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모지(某紙)에 기고하였더니 그 전문(全文)이 당국의 뜻에 맞지 않아 삭제를 당하였다.
 
165
관개 사업이 실패에 돌아간 뒤의 나의 생활은 순전한 자포적 생활이었었다. 어제는 군산, 오늘은 대구, 내일은 신의주, 이와같이 방향 없이 지향 없이 헤매었다. 파산― 눈앞에 당도한 이런 무서운 그림자에 위협되어, 잠시도 한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아아, 나는 그때 아편이 얼마나 그리웠으랴, 이전에 병고(病苦) 시대에 경험하여 본 아편의 꿈, ―그것은 이 세상의 온갖 괴롭고 쓰린 자취를 잊어버리는 거짓말 같은 도취경이었었다. 불안과 공포에 얼뜬 나의 마음은 그것을 속이기 위하여 아편으로 아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방면의 길을 모르는 나는, 아편을 구할 길이 없었다. 둘째 방책으로 나는 그 괴로운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기회를 할 수 있는껏 적게 하기 위하여, 이곳저곳으로 낯선 땅을 방황하였다.
 
166
이런 때에 받는 공포와 불안을, 무인 고도에 혼자 버리움을 받은 사람의 느끼는 공포와 불안에 비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그때의 공포와 불안은 그 따위에는 비길 종류가 아니었었다. 자활책(自活策)과 처세술이라는 것을 아직 배우지 못한 내가, 당연한 결과로서 그때에 나의 앞에서 발견한 커다란 두 가지의 그림자는 ‘죽음이냐’ ‘거렁뱅이냐’ 하는 것이었었다. 이런 때에 당연히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구직(求職)’이겠거늘, 나는 그때 그런 것을 생각하여 본 적이 없었다. 재산이 없으면 거렁뱅이거니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앞길이 답답하고 막막하였다. 인제 삼십 년이 될지 사십 년이 될지 모르는 장래라는 것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하였다. 정신없이 그 생각을 하고 앉아 있다가,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여 혀를 깨물었던 그 자리도 아직 남아 있다. 길에서 때때로 여남은 살쯤 난 걸아(乞兒)라도 보면, 문득 집에 남긴 나의 어린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직 쓴 것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이 가까운 장래에 저 꼴을 하고 나서려니 하면, 그 꼴을 보기 전에 미리 칵 죽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나고 하였다.
 
167
그것은 분명히 대구서 본 일이라고 기억한다. 저녁때 좁은 골목을 헤매던 나는, 어떤 골목에서 길로 향한 문을 열어 놓은 어떤 방 안을 발견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행랑인지 셋방인지는 알 수 없으나, 초라한 단간방이었었다. 그 안에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젊은 부부(사내는 노동자)는 등불 아래서 마주 앉아서 밥을 나누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광경이었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순간 나의 온 신경은 흠칫 하였다.
 
168
‘그대에게는 밥이 있다. 가까운 장래에, 그대보다도 더 아래층으로 떨어 질 것이 나의 운명이다.’
 
169
그날 밤, 나는 한잠을 못 이루었다. 행랑살이를 하면서라도 밥을 달게 먹고 있는 그들이 내게는 부러웠다.
 
170
한 달을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거의 단식하다시피 하였다. 한 가지도 입에 들어오라는 것이 없었다. 의리로 할 수 없이 맛없는 여관 밥에 젓가락을 대어 보는 뿐, 목구멍을 넘겨 보지를 않았다. 벌컥벌컥 냉수만 먹었다. 온갖 것이 쓰고 시고 떫고 역하기만 하였다.
 
171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와서, 나는 거울을 보고 놀랐다. 그때에 나의 나이가 스물일곱이라 하나, 아직껏 아무도 스물 두셋으로 보던 새파란 젊은이가, 한 달 동안에 삼십이 넘은 중년으로 변하였다. 혜인이도 나의 얼굴을 보고 탄식하였다.
 
172
나는 집에 돌아와서 혜인이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다시 행장을 수습하여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남아 있는 부동산을 죄 팔아서 관개 사업의 자금으로 차입하였던 돈을 갚을 것, 부동산을 아무리 헐가로 팔지라도, 빚을 갚은 뒤에도 수삼천 원은 남을 테니, 이것은 잘 보관하였다가 장래의 생활의 기초를 세울 것, ―이것이 혜인에게 대한 부탁이었었다. 나는 내 손으로 차마 이 정리를 할 수가 없었다.
 
173
서울서 나는 마작(麻雀)을 시작하였다. 지금은 놀랍게도 온 조선에 유행하는 마작도 그때는 그다지 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작의 꾼을 모으기에 늘 고심하였다.
 
174
아편과 함께 중국의 이대 병근(二大 病根)의 하나이라는 일컬음을 듣는 마작은, 과연 사람의 마음을 고혹하였다. 거기는 바둑이나 장기와 같이 골치를 쏘게 하는 깊은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트럼프 같은 ‘건조미’도 없었다. 단순하도고 비교적 복잡한 마작은 시간을 보내기에는 가장 편리한 유희였었다.
 
175
펑(碰)과 츠(吃) 가운데서 1926년도 갔다. 27년의 이른봄도 갔다. 그동안에도, 여러가지의 희비극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 또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니 여기는 약(略)하여 버리고, 봄날도 얼마만치 무르익은 어떤 날 나는 혜인이에게서 편지를 받고,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다. 관개 사업인허에 대하여 마지막 운동을 하여보려 함이었었다.
 
176
나는 마지막 노력을 하였다. 어떻게 하여서든지 인허를 얻어 보려고 온갖 애를 다 썼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헛된 노력이었었다. 이미 넘어진 것을 다시 세울 수는 없었다. 이리하여, 나는 마침내 파산을 하였다.
 

 
177
나는, 그 마지막 운동을 하느라고 숱한 사람과 숱한 요정 출입을 하였다. 아직껏 처세술이라는 것을 모르고 요정이라는 곳은 개인유흥소거니 하고 있던 나는 어떤 친구에게 요정이란 곳은 교제― 그 가운데서도 더욱 어떤 운동을 위한 교제에 없지 못할 곳이라는 것을 듣고, 그 뒤부터 처음으로 ‘교제를 위한 요정 출입’을 하여본 것이었었다. 따라서 교제에 능한 기생이 필요한 그 좌석인지라, 말괄량이와 같은 노산홍이를 부를 기회가 없었다. 있다 할지라도 내가 피하였다. 산홍이는 나의 좋아하는 타입의 여인― 인제 다시 접근하였다가는 안 되겠다는 일종의 방비책으로 보지를 않은 것이었다.
 
178
그 산홍이를 오래간만에 오월 단오날 제이차회에서 만났다. 그 날도 낮에는 다른 기생을 데리고 뱃놀이를 하였지만, 제이차회로 대성관에서 놀 때에 뒷간에 갔다 오는 길에 복도에서 산홍이를 보고 취한 김에 끄을어온 것이었었다.
 
179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가소고레.”
 
180
이차회가 끝난 뒤에 산홍이가 이렇게 말하였다. 꽤 취한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그와 함께 대성관을 나섰다.
 
181
좀 가다가, 우리는 한떼의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산홍이의 손을 놓고 그리로 가까이 갔다. 그리고 장구(長軀)를 이용하여 발 뒤축을 들고 넘겨다보았다. 가운데는 웬 거지가 하나 앉아서 작은 소리로 육자배기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었다. 한 번 둘러보아서 그 밖에 다른 것은 발견치를 못한 나는 그냥 발을 돌이키려 하였다. 그때에 내 귀에는 결코 그저 넘기지 못할 말이 구경꾼들의 수근거림의 새에서 들렸다. 그것은, 즉 이 거지는 P라 하는 사람으로서 오륙 년 전까지도 오입장이로 소문났던 사람이라 하는 것이었었다. 그것을 변모(邊某)라는 기생에게 홀작 부어 넣고, 지금은 아편장이가 되어서 이렇게 빌어 먹고 다닌다는 것이었었다.
 
182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이 P가 그의 재산을 홀작 부어 넣었다는 변모는, 아까 우리가 뱃놀이를 갈 때에 같이 나갔던 기생의 하나이었었다. 산홍이에게 끄을리어서 그 자리에서 발을 뗀 뒤에도 나는 머리를 푹 가슴에 묻은 채 들지를 못하였다.
 
183
“내가 만약 이다―ㅁ에 거지가 되면 어떡헐 테냐.”
 
184
하고 물을 때에, 산홍이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185
“나는 변××이같이 당신 곁으로 인력걸 타고 지나가지.”
 
186
나는 탄식하였다. 그리고 자기 집에 잠깐 들렀다 가라는 산홍이를 거절하고, 창황히 집으로 돌아왔다.
 

 
187
그해 늦은 여름, 산홍이는 서울로 이사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188
초겨울에 내가 낚시질을 나다니는 동안 혜인이가 종적이 없어졌다. 남겨 두었던 현금 전부 및 팔 수 있는 물건 전부를 팔아 가지고…….
 
189
이리하여, 나는 두뇌와 견문(見聞)과 몇 권의 저작물과 서적과 및 두아이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가 되고 말았다.
 
190
겨울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서울을 갔던 나는, 오래간만에 만난 어떤 친구에게서 노산홍이라는 기생네 집에 놀러 가보자는 말을 듣고, 모른체하고 같이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나올 때는 저번 단오날 저녁 대성관 문 앞에서 본 바의 거지 P씨의 모양을 서언히 눈앞에 그려 보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191
그때에 내 얼굴에 떠오른 고소(苦笑)를 미소로 본 벗은 내게 왜 웃느냐 물었다. 그때에 나는,
 
192
“온나와 부가요이(女は分が宜い―여자는 유리해).”
 
193
자기로도 뜻을 똑똑히 알 수 없는 이런 대답을 하고, 또 한번 고소를 하였다.
【원문】盧山紅 (노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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