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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文學(문학) 出發(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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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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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연말 《창조》 잡지를 간행하기로 작정하고 그 창간호에 실으려고 소설을 쓰려 원고지 앞에 앉기 이전에는 명치학원 중학부 재학때 3학년생 회람 잡지에 일본글로 소설을 한편 써 본 경험밖에는 원고쓰기에 전력이 없었다.
 
2
우리가 간행하는 잡지이며, 틀림없이(몰수당할 근심 없이) 공개될 글이라 하고 보니 덜컥 겁이 앞선다.
 
3
과거에도 머리 속으로는 소설을 구상도 해보았고 대목대목 상세하게 꾸미어도 본 일이 있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붓을 잡고 원고지 앞에 앉아본 전력이 없느니만치 마음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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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과거에 혼자에 머리 속으로 구상하던 소설들은 모두 일본말로 상상하던 것이라, 조선말로 글을 쓰려고 막상 책상에 대하니 앞이 딱 막힌다.
 
5
‘가정교사 강엘리자벳은 가리킴을 끝내고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6
이것이 나의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의 첫머리인데 거기 계속되는 둘째 구에서부터 벌써 막혀 버렸다.
 
7
순‘구어체’로 ‘과거사’로― 이것은 기정 방침이라 ‘자기 방으로 돌아 온다’가 아니고 ‘왔다’로 할 것은 예정의 방침이지만 거기 계속될 말이 ‘かの女(여)(그녀)’인데 ‘머리 속 소설’일 적에는 ‘かの女(여)’로 되 었지만 조선말로 쓰자면 무엇이라 쓰나? 그 매번을 고유명사(김 모면, 김 모, 엘리자벳이면 엘리자벳)로 쓰기는 여간 군잡스런 일이 아니고 조선말에 적당한 어휘는 없고….
 
8
이전에도 막연히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일이 있다. 3인칭인 ‘저’ 라는 것이 옳을 것 같지만 조선말에 ‘그’라는 어휘가 어감으로건 관습으로건 도리어 근사하였다. 예수교의 성경에도 ‘그’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간간 사용되었다. 그래서 눈 꾹 감고 ‘그’라는 대명사를 써버렸다.
 
9
이때에 있어서 ‘일본’과 ‘일본글’‘일본말’의 존재는 꽤 큰 편리를 주었다. 그 어법이며 문장 변화며 문법 변화가 조선어와 공통되는 데가 많은 일본어는 따라서 선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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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일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소설가의 소설에 쓴 용어가 그 나라 국어에 작용하는 힘이 지대하여 소설에 쓰인 용어가 시민의 새에 ‘反語(반어)’로 화하는 것이 꽤 많은지라, 그러니만치 책임 없는 문장을 함부로 써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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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대 가장 먼저 봉착하여― 따라서 가장 먼저 고심하는 것이 用 語(용어)였다. 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 자니, 소설에 가장 많이 쓰이는 ‘ナツカシク’‘一(일)ヲ感(감)ヅタ’‘一 (일)二(이)違(위)ヒナカツタ’‘一(일)ヲ覺(각)エタ’같은 말을 ‘정답 게’‘을 느꼈다’‘틀림(혹은 다름)없었다.’‘느끼(혹 깨달)었다’등으로 ― 한 귀의 말에, 거기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하여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하였다. 그리고는 막상 써 놓고 보면 그럴듯하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해서 다시 읽어 보고 따져 보고 다른 말로 바꾸어 보고 무척 애를 썼다. 지금은 말들이 ‘회화체’에까지 쓰이어 완전히 조선어로 되었지만 처음 써 볼 때는 너무도 직역 같아서 매우 주저하였던 것이다. 더우기 나는 자라난 가정이 매우 엄격하여 집안의 하인배까지도 막말을 집안에서 못 쓰게 하여 어려서 배운 말이 아주 부족한 데다 열다섯 살에 외국에 건너가 공부하니만치 조선말의 기초 지식부터 부족하였고 게다가 표준어(경기말)의 지식은 예 수교 성경에서 배운 것뿐이라, 어휘에 막히면 그 난관을 뚫기는 아주 곤란하였다. 썩 뒤의 일이지만 그때 독신이던 나더러 염상섭이 경기도 마누라를 아내 삼으라 권고한 일이 있다. 조선어(표준어)를 좀더 능란하게 배울 필요상 스승으로 경기도 출신의 아내를 얻으라는 것이다. 지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맛보지 못하는 난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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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前人(전인)도 겪지 않은 고생이었다. 전인이 춘원이거나 菊初(국초)거나 다른 사람들도 다 그저 순화 못한 구어체로 과거사, 현재사의 무자각적 혼용으로 소설용어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심도 하지 않았다.
 
13
술어에 관해서도 한문 글자로 된 술어를 좀더 조선어화 해 볼 수 없을까 해서 ‘교수’를 ‘가르킴’이라는 등, 대합실을 ‘기다리는 방’(「약한 자의 슬픔」제1회 분에서는 ‘기다림 방’이라 했다가 제2회 분에서는 ‘기다리는 방’이라 고치었다)이라는 등 창작으로서의 고심과 아울러 그 고심에 못하지 않은‘용어의 고심’까지, 이 두 가지 고심의 결정인 처녀작「약한 자의 슬픔」을 써서 ‘4천 년 조선에 신문학 나간다’고 천하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충동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의 젊은 문학자들이 다만 창작욕이라든가 예술욕의 충동으로써 문학을 만드는 것과, 당시의 우리의 심정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당시의 우리는 4천 년 민족 역사 생긴 이래 아직 있어 보지 못하던 신문학을 창건한다는 포부와 자긍이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자취는 후인에 영향되는 ‘전철이 된다’하여, 우리의 겪음의 좌일보, 우일보가 조선 신문학의 운명의 바늘이라 하여 그 거취를 매우 신중히 하였다.
 
14
대중적 흥미에 치중하는 것은 문학을 통속화하는 것이요, 문학의 타락이라,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에 신문학 발달 興起期(흥기기)에 있어서 오자끼(尾崎(미기)) 도구 도미(德富(덕부)) 야나가와(柳川(유천)) 등의 흥미 치중 작가들이 지도권을 잡기 때문에 일본문학은 대정 초엽까지도 ‘답보로’상태에 있다 하여 조선 신문학 발아의 초기에 가장 피할 것이 ‘대중적 흥미 치중’이라 하여 이것을 몹시 꺼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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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각과 이런 주장을 가진 사람들의 손으로써 조선 신문학의 주춧돌은 놓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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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金東仁) [저자]
 
194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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