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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그때는, 나는 아버지를 잃는다는 일과, 결혼이란 인생의 커다란 두 사건을 겪은 다음이었었다. 그해 가을, 나는 다시 동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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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소년기에서 겨우 청년기에 들어선, 이 숫젊은이는, 마음속에 예술에 대한 동경과 문학욕을 채워 가지고, 다시 학창엣 자기를 발견하려고 각 학교의 규칙서를 책상 위에 벌여 놓고 고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입학원서를 천단화학교(川端畵學校)에 들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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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교에는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신으로 F화백에게 미학에 대한 강술을 들으러 다녔다. 일본 양화단(洋畵壇)의 증진 F화백은, 후진을 인도키 위하여, 몇 사람의 문제(門弟)를 두고, 자기의 가지고 있는 온갖 지식을, 그 문제들에게 물려주려 하였다. 나도 그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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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목적한 바는 결코 그림을 배우고자 함이 아니었었다. 미학에 대한 기초 지식과, 그림에 대한 개념을 얻는 것, 이것이 나의 목적이었었다. 그런지라, 이 갸륵한 문제(門弟)눈, 석고상 한 번을 모사하여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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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F화백의 문제 가운데 아끼꼬(あき子)가 있었다. 눈이 크고 광채가 있으며, 뺨에 살이 풍부하고, 유난히 끝이 뾰족한 손가락 끝에는, 몹시 반짝거리는 연분홍빛 손톱이 박혀 있고, 언제든 즐겨 붉은빛이 많이 도는 옷과, 붉은 리본과, 붉은 신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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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격상 비교적 여자에게 냉담한 나는 그에게도 그다지 별한 느낌을 가져 보지를 못하였다. 길가의 풀떨기, 처음의 나의 눈에 비친 그는, 역시 여기 지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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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혈질의 여자였었다. 그리고 철학자와 같이 이론을 캐기를 좋아하였고, 참새와 같이 지절거리기를 좋아하였다. F화백이 한참 미학을 강술할 때에, 흔히 아끼꼬의 기상천외의 질문은, 문제들로 하여금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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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화백이 ‘단순미’와 ‘구성미’에 대하여 강술을 할 때였었다. 아끼꼬가 문득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면서 선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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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모두들 저를 미인이라 합니다. 치만, 제 얼굴에서 ‘표정’이라는 것이 없어져도 저는 그냥 미인이겠읍니까, 어떻겠읍니까. 감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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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도, 이 뜻밖엣 질문에, 그만 고소(苦笑)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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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쓰려는 아이와 같이 그의 눈은 별하게 쫑그러지며, 눈물이 그렁그렁 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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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있어도, 너는 미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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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은 그만 웃으면서 이렇게 단언을 내려 버렸다. 아끼꼬도 이 대답을 듣고야, 만족한 듯이 하하하하 웃어 버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러한 사람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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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강술이 다 끝나고 각기 돌아가렬 때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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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선생님은 나를 미인이 아니라고 그랬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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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를 싸고 있던 그는 화백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화백에게까지 들리게 이렇게 나무람하였다. 들어가려던 화백은 발을 멈추고 돌아보고 웃었다. 아끼꼬도 픽 하니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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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껏, 그에게 대하여 아무런 호기심도 가지고 있지 않던 나는, 왜 그런지, 이 날의 이 한 막뿐은, 마음속에 깊이 들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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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몇 번을 혼자서 뇌어 보고는, 빙그레 웃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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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은 지 한 십여 일 뒤였었다. 장래에 문학자가 되려는 커다란 야망을 품고 있는 이 젊은이는 어떤 날 저녁 신전(神田)의 낡은 책방에서 책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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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누구를 찾았다. 나는 책방의 마누라가 제 그 지아비를 찾는 소리로 알고, 그냥 책을 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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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내가 물컥 나며, 누가 내 옷소매를 잡아다니므로 돌아보매 거기 아끼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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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집애가 무슨 소릴 하나, 나는 갑자기 반항적 마음상이 되어서, 그렇소 한 뿐 또 다시 다른 책을 뽑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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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데스까?(何がですか? ―무엇이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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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따와 죠센진데세우? 헨쟈나이노?(あなたは朝鮮人でせう? 變ぢゃないの―당신은 조선인이죠? 이상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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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찌꾸린노, 다이헨찌꾸린. ―사아 오오끼마세우(へんちくりんの, 大へんちくりん.―さあ往きませう― 이상해 매우 이상해 ―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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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당연히 자기를 따라오리라는 굳은 신념을 가진 듯이, 휙 돌아서서 나가 버렸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나도 바삐 보던 책을 제자리에 곶아 버리고,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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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의 첫 교제는 이리하여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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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번 두 번 차차 전개된 그와 나의 교제는 이상하고도 기괴한 교제로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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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악의로서 찬 눈으로 마주 바라보다가는, 뜻하지 않고, 서로 탁 달려들어서는 제각기 비상한 열정으로 상대자의 입술을 찾는다. 이러다가 겨우 서로 만난 입술은, 마치 몇 해를 서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과 같이 맹렬히 서로 빨고 빨리운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의 순간에도, 그 다음 순간에 생겨날 불유쾌한 마음상을 서로 잊지 않고 있다. 누구든(나 혹은 그)가, 먼저 탁 상대자를 밀쳐 버리고, 더럽다는 듯이 침을 탁 배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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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욕설을 서로 퍼부은 뒤에, 몹시 불유쾌하여져서 사요오나라(さようなら)의 한 마디도 없이 작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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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피곤― 그와 헤어져서 집에 돌아온 때마다, 그것은 마치 아편의 꿈과 같이 간지럽고도 녹는 듯한 피곤에 잠겨서 아끼꼬의 일을 생각하며, 다시는 어떤 일이 있든 그와 만나지 않으려 굳은 결심을 몇 번이나 하였던가. 그러나, 밝는 날 화백의 집에서 다시 그를 만나고, 그곳서 헤어질 때에, 그가 내 곁으로 지나가면서, 작은 소리로, “따라와요”하고 가면은 나의 몸은 온갖 나의 이성에 반하여 그의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전개되는 것은 역시 기괴하고도 숨막히는 찰나― 그 다음에 계속되는 것은 권태와 증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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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의 집에서는 그는 나를 아는 체 안하였다. 하, 아, 아, 아, 마치 칠면조의 소리와 같은 센티멘탈한 그의 웃음소리가 돌발적으로 방 안을 울리어서, F화백이며 문제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나에게는 곁눈질을 하여보는 때조차 없었다. 간간, 오일을 부러 나 있는 쪽으로 뿌린 다음에는, 몹시, 정녕히, “실례했읍니다”고 사과를 하는 것이, 그와 나와의, 화실에서의 가장 가까운 교제였었다. 그런 때마다, 나도 정녕히 “천만엣 말씀”이라고 대꾸를 한 뒤에는, 속으로 흐흐 웃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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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들은 아끼꼬의 환심을 사려 하였다. 그리고 아끼꼬는 아끼꼬로서, 그들의 마음을 또한 다 만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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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얼굴은 참 좋아요. 한 번 그려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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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미인이라고 그랬지요. 언제 그 은혜를 갚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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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복스런 계집애가 당신의 마누라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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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 집 한 번 가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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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말로써, 온 문제들을 기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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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보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귀한 보배를 혼자 가졌다는 자랑과 거기 따르는 괴상한 시기를 느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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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아끼꼬와 만날 때는, 아끼꼬를 핀잔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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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또한 증오에 불붙는 눈과 눈. 다시 전개되면서는, 열정에 불타 오르는 입술, 숨막히는 긴장. 다시 떨어지면서, 증오, 욕설, 분, 작별. 그날 밤의 불유쾌한 기분.―이것이 그와 나와의 교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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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괴한 연애의 석 달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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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동경 유학생의 새에도, 몹시 이상한 기분이 충일된, 1919년 2월 그믐께 어떤 날이었었다. 당시에 일고(一高)에 다니던 주요한과 같이, 청년회관에서 어떤 일로 밤을 새운 뒤에, 우리 하숙 앞에서 요한과 작별하고, 나는 곧 F화백의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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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인체 묘사의 둘쨋날이었었다. 그런데, 모델로 말해 두었던 계집애가 고뿔이 들려서, 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욱적하고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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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이럴 때에, 뜻밖에 아끼꼬가 뛰쳐나왔다. 그리고, 선생님 내 모델이 되리까, 하더니, 대답도 나기 전에 옷을 훌훌 벗어 버리고, 모델대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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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벙벙하여졌다. 붓을 잡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F화백도 어망처망한지, 아무 말도 못하고 모델대를 바라볼 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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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성격을 잘 아는 나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뜻밖엣 일도 아니었었다. 아끼꼬의 성격으로는 넉넉히 할 일이었었다. 그래서 곁에 있는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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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돼지야. 햄을 만들면 맛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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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더니, 그 친구는 신성함을 모욕당한 것같이 눈으로 무섭게 나를 꾸짖고 얼른 머리를 돌이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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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말의 결과는 의외로 나타났다. 모델대 위에서 포즈를 하느라고 몸을 비꼬고 있던 아끼꼬가 쪽 발가벗은 채로 뛰어내려와서 내 앞에 딱 버티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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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가 너무 승승하므로 나는 미처 대답을 못하였다. 그리고 그의 진의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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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센진(朝鮮人)! 야마자루(やま猿―촌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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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또한 벌떡 일어섰다. 이때의 나의 분노는 나로 하여금 눈이 어두워지게 하였다. 성적 충동에 못이겨서 서로 주고받던 온갖 욕설은 아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민족적 차별이 낳은 욕설이 그에게서 나올 때에,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온갖 교양과 예의와 도덕을 잊어버리고 주먹을 들어서 벌거벗은 그의 젖가슴을 쥐어박았다. 그리고 미친 사람같이 허든허든 모자를 뒤집어쓰고 야만인, 조선인, 때려라, 두들겨라 하는 온갖 소리를 뒤로 남기고 그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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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다시 F화백의 집을 갈 기회가 없었다. 이리하여 삼월 초닷샛날, 급한 집의 전보로 귀국하였던 나는 삼월 스무엿샛날 마침내 출판법 위반이라는 명목 아래 경찰의 손에 붙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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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서 감옥으로, ―이러한 석 달 동안 나의 마음은 괴상히도 서로 싸우고 헤어진 그의 위에 헤매었다. 그의 풍부하던 살과 빛나던 눈,몹시도 기괴스럽던 그의 웃음소리, 육감적이던 그의 숨소리, 끝이 빠르던 그의 손가락, 이런 것을 생각하고는 성적 충동 때문에 몸을 소스라치고 한 때가 몇 번이었는지 알 수 없다. 풍만하던 그의 젖가슴을 꿈에 보고는 숨을 허덕이며 깨어서 긴 한숨을 쉰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유난스러이 끝이 뾰족하던 손가락과 반짝거리던 분홍빛 손톱 끝은 때를 가리지 않고 나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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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유월 스무엿샛날, ‘육 개월 징역, 이 개년 집행유예’라는 판결 아래 감옥에서 나온 나는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고를 물리치고 칠월 중순에 다시 동경으로 떠났다. 나의 유일의 목적은 다시 한번 아끼꼬를 보고 싶은 것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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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동경에 이른 나는 거기서 실망하였다. 아끼꼬의 집은 이사를 하였으며 F화백에게도 인젠 다니지 않는다 한다. 그러면 이 너른 동경 바닥에서 그의 집을 어찌 찾아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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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늘에서 타고난 무서운 자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어찌하여서든 그를 찾아 내려 하였다. 나의 마음은 극도로 주렸다. 양식을 요구하였다. 풍만한 육체― 얼마나 그때의 나의 마음을 끄으는 말이었으랴. 그래서 만조사(萬造寺)라는 성이 드문 것을 유일의 바람으로 각 우편국과 순사 파출소를 순례를 하기를 결심하였다. 그때 태령도(太靈道)에 적을 둔 나는 아침에 잠깐 국정(麴町)에 있는 태령도 본원에 몸을 나타내었다가는 낮부터 밤까지는 각 파출소와 우편국을 돌기에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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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레째 되는 날, 하삽곡(下澁谷) 어떤 곳에서 마침 그의 집을 찾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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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찾기는 찾았으나 찾지 못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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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조선 사람이지요. 나는 일본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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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그와 나와의 관계는 온전히 끊어졌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을 나는 때때로 그의 풍만하던 몸집을 꿈에 보고는 성적 흥분으로서 몸을 소스라치고 하였다. 그리고 길에서 때때로 풍부한 뺨을 가진 여인을 볼 때에는 언제든 아끼꼬를 생각하고는 다시 한번 만나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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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육 년이 지나서 1925년 여름, 그때에 두번째 방탕을 시작하여 술과 계집의 하루를 보내고는 다시 새로운 술과 계집의 날을 맞는 것으로써 그날그날을 보내던 나는 어떤 날 어젯밤의 술이 아직 깨이지 않은 상태로서 신시가 어떤 귀금속점에 볼 일이 있어서 내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일을 다 보고 다시 올라올 때였었다. 나는 맞은편으로부터 오는 어떤 풍부한 뺨을 가진 일본 여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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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마음으로서, 이렇게 놀랄 때에 그도 내 맞은편에 와서 딱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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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끼꼬였었다. 그와 동반하여 오던 어떤 일본 사내는 한 번 나를 유심히 본 뒤에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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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숨을 허덕이며 벌써 저편으로 지나간 아까의 동반자를 몰래 손가락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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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옥(柳屋) 호텔이요. 저녁때 혼자서 기다릴 때 꼭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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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낮차로 안동현을(安東縣)을 갑니다. 그러니깐 호텔로는 놀러 못 가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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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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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안동현 어느 여관에 묵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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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오늘 밤차로 안동으로 가는데 그럼 거기 먼저 가서 기다려 주세요. 꼭요. 꼭 이야기할 게 있세요. 꼭! 꼭!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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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그와 작별한 나는 그 날의 나머지를 어떻게 지냈는지 자기로도 알지를 못하였다. 내가 정신을 차린 때는 벌써 황혼이 지났으며 나는 대동교(大同橋) 위에 가서 정신없이 패수(浿水)의 흐름을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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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그를 보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그 풍만스럽던 육체와 괴상스럽던 웃음소리는 지금도 때때로 나의 숨을 막히게 하며, 나로 하여금 성적 흥분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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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또한 나의 생애에는 잊지 못할 여인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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