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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女人) ◈
◇ 中島芳江 (나까지마 요시에) ◇
카탈로그   목차 (총 : 9권)   서문     이전 2권 다음
1929.12~
김동인
1
女人
2
2. 中島芳江
 
 
3
나는 그가 미인인지 아닌지를 모른다. 내가 그에게 손톱눈만치라도 사랑을 가졌었는지 이것조차 의문이다.
 
4
나는 그의 얼굴도 잊었다. 자태도 잊었다. 목소리도 잊었다. 다만 나의 기억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주홍빛 바탕에 붉은빛과 초록빛으로 당초(唐草) 모양으로 무늬놓은 그의 하오리(はおり―일본 옷의 위에 입는 짧은 겉옷)와 창백하던 얼굴빛과, 동글납작하던 윤곽과, ―그리고 마지 막으로 1916년 7월 16일에 백금대정 전차 정류장에서 본 그의 두 눈알이었다.
 

 
5
소년의 물과 같이 맑은 마음에 메리라는 블론드의 아름다운 컴마가 찍히기 비롯할 때부터, 나의 동거자 R은 우리 하숙 곁에 있는 어떤 일본 계집애에게 호기심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나는 열여섯 살이요, R은 나보다 한두 해 위였었다.
 
6
그 계집애 ― 고바야시 끼미꼬(小林君子)는 아직 심상소학교에 다니는 열 서넛에 난, 천민 가운데 흔히 있는 가련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계집애였었다. 입술이 보이지 않도록 얇았으며, 웃을 때에는 눈이 반원형의 선이 되어 버리며 웃음소리조차 갈린 듯한 소프라노로서, 더러운 개울창 가에 몰래 조그맣게 피었다가 져 버리는 꽃과 같은 인상을 주는 계집애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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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상, 이뻐. 그렇지?”
 
8
끼미꼬(君子)가 제 벗들과 함께 우리 집 앞에서 공을 받으며 혹은 조악질을 하며 노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면서, R은 몸을 고민하듯이 떨면서, 때떄로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그러나 메리라는 아름다운 대상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그러한 말이 아무 뜻도 없는 말이었었다. 응, 이뻐, 이러한 입술엣 대답을 할 뿐 그 뒤에는 눈앞에 메리의 그림자를 그려 보고는 혼자서 빙그레 웃고 하였다.
 
9
사랑하는 소년은 소담하였다. 그 계집애들이 우리 집 앞에서 놀고 있을 때는, R은 볼 일이 있을지라도, 문밖에를 나가지를 못하였다. 부득이 나갈 일이 생길 때면, 그는, 문안에서 한참 허든허든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문을 열고는 달음박질하여 뛰어나가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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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계집애며 그 계집애의 동무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게는 다만 한낱 길옆에 풀떨기에 지나지 못하였다. 더구나 메리라 하는 둘도 없는 귀한 보배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다른 계집애들은 모두 다만 ‘사람’이지, ‘이성’이라는 명칭으로서 생각하여 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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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미쨩, 오햐요오(君ちゃん, お早う―끼미 양, 잘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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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미쨩 곤니찌와(君ちゃん, 今日は―끼미 양,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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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슴지 않고 쾌활한 인사가 끼미꼬를 만날 때마다 나의 입에서 솟았다. 이러한 모든 일이 R에게는 불쾌한 듯하였다. 내가 끼미꼬며 그의 동무들과 함께 까루타(カルタ―화투)를 하며 혹은 그림책을 구경하며 놀때에도 소담한 R은 멀리 떨어져서 읽지도 않는 책을 뒤적이며 있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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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랑’이라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어둡게 하는 동시에 또한 그 ‘길’에는 뜻밖에 지혜가 생기게 하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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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미꼬에게는 미쯔꼬(みつこ: 滿子)라 하는 팔구 살 난 어린 동생이있었다. R은 어떤 날 색연필 한 더즌을 사다가 그 미쯔꼬에게 주었다. 삼사 일 뒤에는 공책 몇 권을 사 주었다. 그날 저녁, 끼미꼬는 정식으로 그 색연필이며 공책에 대한 사례를 R에게 하였다. 이리하여 R과 끼미꼬의 새에 첫 말은 사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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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R은 흥분으로 잠을 못드는 모양이었었다. 우두커니 누워 있다가는 헛소리같이 긴상, 끼미꼬가 아까 여사여사하는데 참 이쁘거든 하고는 가슴을 두드리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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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아름다운 세계의 그림이었었다. 아직 사랑이라 하는 것을 모르는 소녀와 사랑은 커녕 성에 대하여서도 얼마간 눈이 뜬 소년 R과의 교제는 세상에 기묘한 아름다운 비극이었었다. 게다가 그 사회를 온전히 초월한 듯이 중립하여 있는 소년 김동인이가 있었다. 메리에게 대한 애끓는 사랑을 가슴 속에 깊이 감추고, 눈을 감고는 메리를 생각하고 눈을 뜨고는 R과 끼미꼬의 사랑(?)을 냉시하는 나도, 그 아름다운 비극을 국외로 장식하는 한 광대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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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때의 R의 번민은 컸었다. 아직 사랑이라는 것에 눈이 뜨지 못한 끼미꼬의 R에 대한 태도는 R로써 더욱 더 번민케 하였다. R이 무엇을 선물로 사다 주면 끼미꼬는 가느다란 눈을 올려뜨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만 ― 혹은, 자기의 마음이 돌아지면 R과도 희희히 놀지만 부러 R을 찾아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으며 더구나 자기가 동무들과 즐겁게 놀 때에는 R이 그 곁을 지날지라도 무시하여 버리기는 커녕, 냉대하는 태도도 보였다. 이러한 모든 일이, R에게는 번민의 재료이었다. 때때로 계집애들이 길에서 조악질을 하는 것을 R은 문틈으로 내다보다가는 번듯 자빠지며 가슴을 두드리고 하였다. 긴상, 일본 마누라를 얻으면 남들이 욕 안 할까 이런 근심까지 하였다. 이런 태도를 보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나 나는 속으로 메리를 생각하며 혹은 내가 메리에게 대한 사랑이 R이 끼미꼬에게 대한 사랑보다 적지나 않은가 부러워하며 혼자 분해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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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끼미꼬와 만날 같이 노는 동무 가운데 나까지마 요시에(中島芳江)가 있었다. 주홍 바탕에 당초 무늬 모양의 하오리(はおり) 겨드랑이 구녕에 늘 손을 찌르고 있는 창백하고 동글납작한 얼굴의 주인으로서 학교가 하학한 뒤에는 늘 끼미꼬와 함께 우리 집 앞길에서 놀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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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R은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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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상, 요시쨩을 긴상 애인으로 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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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발의를 하였다. 나는 그래 둘까 하여버리고는 또한 속으로 메리를 생각한 뒤에 남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랬더니, R은 그 뒤부터는 요시에(芳江)를 나의 애인으로 정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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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겨울이 이르면서, 메리의 종적이 없어지고 말았다. 잠못 드는 밤마다, 남몰래 이불 속에서 쉬는 어린 동인의 한숨은 얼마나 컷던가. 나까지마 요시에? 그 따윗 계집애 백만을 모을지라도, 메리의 머리터럭 한 올에도 비기지 못할 것이었다. 밤마다, 낮마다, 메리의 있던 집을 바라보고는, 열릴 길이 없는 덧문의 열리는 날을 기다리면서 애타하던 나는 마침내 병석에 넘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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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상 애인이 이 앞에 노는데, 내 데리고 올라올까? R은 나를 위로하느라고, 때때로 이런 말을 하였다. 차를 따라서 요시에의 손으로 나의 방에 보내어 준 일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일어난 불길을 조금이라도 꺼 줄 수는 없었다. 요시에의 노란 머리털(그는 머리털이 꽤 노랬다)을 바라보면서 네가 메리였다면 얼마나 이 마음이 기쁘겠느냐, 혼자서 한숨을 쉬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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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은 뒤에, 나의 병도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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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 어떤 날, 나는 메리의 있던 집 근처로 혼자서 산보를 나섰다. 그리하여, 굳게 닫긴 덧문에 원망의 눈을 던진 뒤에, 성심여학원 쪽으로 좀더 갔을 때에, 어떤 줄행랑 달린 커단 집 대문간에서 그 집에서 뛰어나오는 요시에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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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집이 여기냐고 물으니까, 그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며 숨을 허덕이며 그러하노라고 하면서, 집에 들어가서 놀자고 나를 끄을었다. 문패를 쳐다보니, 커다란 대리석에 ‘中島×××’이라 한 문패가 걸려 있었다. 나는 아리가도오(有難ふ―고맙다)한 뿐, 그냥 산보를 계속하였다. 그의 적적한 눈이 나의 등을 따라오는 것을 똑똑히 의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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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어떤 날, R과 함께 야시 구경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었다. 돌아오는 길에 방정(芳町)이라는 조그만 골목이 있었는데, 그 골목으로 오면 얼마간 지름길이 되므로, 나는 그 방정을 꿰어서 가기를 주장하였다. 그러니까 R은 정색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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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상은 요시에(芳江)가 애인이니까 방정(芳町)으로 가구료. 군자(君子)는 대로행(大路行)이야, 난 큰길로 갈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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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돌림길을 하여서 돌아왔다. 그 뒤부터, 나는 끼미꼬를 다이로꼬오(だいろこう)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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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로꼬오상(大路行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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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요!(いやよ―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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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로꼬오! 다이로꼬오!(大路行! 大路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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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시 조센노 가와쟈 나이와(あたし, 朝鮮の川ぢゃないわ―저는 조선의 강이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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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불, 끼미꼬는 다이로꼬오(だいろこう)를 다이도꼬오(だいどこう―大同江)로, 그릇 듣고 자기를 대동강이라고 부르는 줄 안 모양이었다. 내가, 끼미꼬를 대로행이라 부를 때마다, R도 같이 그렇게 부르면서, 불쾌한 듯이 낯을 찡그리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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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다 가고, 여름방학이 가까운 학기시험 때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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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R은 머리가 아프다고 학교는 그만두고 누워 있었다. 내가 학교를 끝내고 막 돌아오려는데, 주인 노파가 씩씩거리며 나를 맞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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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읍니다. 야기상(やぎさん‧주인은 R을 이렇게 불렀다)이 목을 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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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집으로 달려와서 보니까, R은 충혈된 눈을 미친 사람같이 휘번득거리며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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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음에 과한 사랑은, 그로써 정신에 이상이 생기게 한 것이었다. R은 그 날로 조도전(早稻田)에 있는 자기 형에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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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시험도 끝나고, 오래 기다리던 귀국하는 날이 이르렀다. 1916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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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꾸려서 구루마로 정거장으로 보내고, 나는 주인과 작별을 하고, 전차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좀 가다가, 나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다보니까, 여름 옷을 살핏이 입은 요시에가 할딱거리며 쫏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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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귀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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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들었세요.”
 
45
이 말뿐 말없이 전차 정류장까지 이르렀다. 역시, 아무 말 없이 그는 나의 뒤에 꼭 붙어 서 있었다. 전차가 이르렀다. ‘귀국’이라 하는 즐거운 일을 앞에 놓은 소년은 사요오나라(さようなら―작별인사) 한 마디로 쾌활히 전차에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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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니네(秋にね―가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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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 마디의 조그만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흐를 뿐이었었다. 땡땡 소리와 함께 전차는 떠났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떠나는 전차를 바로 보았다. 약간 눈물이 고인 듯한 그의 눈은, 마치 진주와 같이 우아하였다. 거리의 멀어짐을 따라, 차차 그의 그림자는 작아 가지만, 그의 그 두 눈알뿐은, 마치 암야의 바다의 등대와 같이 뚜렷이 그의 몸을 벗어나서, 전차의 뒤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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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십수 개년, 많은 눈을 보고, 많은 이별을 보았지만, 그러나 아직껏 그렇듯 맑고 아름답고 근심으로 찬 눈을 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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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사랑한 일이 없었다. 그가 내 곁에 있는 것이 유쾌하다고 생각하여 본 일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 날의 그 두 눈알뿐은 나의 일생을 통하여, 나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의 하나이다.
【원문】中島芳江 (나까지마 요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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