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소년(少年)은 자란다 ◈
◇ 훌륭한 사람의 세계(世界) ◇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이전 14권 다음
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훌륭한 사람의 世界[ 세계]
 
 
3
6호실이라면 이 여관에서는 제일 깨끗하고 조용한 방이었다.
 
4
그 6호실에 사날 전부터 입이 메기주둥이같이 쭉 째진 눈딱부리와 박통이라는 빈대머리가 들었다.
 
5
메기주둥이니, 눈딱부리니, 박통이니 하는 것은 강서방이 진 별명이었다.
 
6
이 눈딱부리와 그리고 그 짝패로 머리가 박통처럼 훌러덩 벗어진 빈대 머리는 이 여관의 특별 손님에서도 상가는 특별 손님이었다.
 
7
이 손님들은 밥상이 남모르게 다르고, 안주인이 나와 밥상머리에 앉아서 반주 시중을 들었다.
 
8
밤에 술자리가 벌어지면, 안주인이 반드시 참예를 하여, 같이 술을 먹고같이 노래도 부르고 하였다.
 
9
이부자리는 안방의 이불장에서 깨끗한 비단 이부자리가 나오고 하였다.
 
10
이 손님들은 이리를 중심으로, 서울과 부산과 전주를 뻔찔나게 다니면서, 크게 사업이라고 하는 것을 하였다.
 
11
그 사업이라고 하는 것을 영호는 잘은 모르겠어도, 더러 안주인과 술을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음들음이 들은다치면, 굉장한 것인 것 같았다.
 
12
일본정치 때에, 조선 사람에게서 공출로 걷어들인 놋그릇이, 부서뜨리지도 않고 녹만 슬었을 뿐 성한 채로 수천 관이 서울 무엇이라더냐 하는 창고에가 들이쌓여 있는데, 그것을 불하를 맡으면, 돈이나 한 백만원 남겨 먹기는 팔 짚고 헤엄치기라고 하였다.
 
13
그것을 관계하고 있는 무어라드냐의 미국 사람이, 이리의 군정장관과 대단히 절친한 사이라고 하여서, 그동안 술을 먹이고 선사를 하고 색시를 떠안 기도 돈을 쥐어 주고 하며 적공을 들여, 우선 그의 소개장을 얻어놓았고.
 
14
그 소개장을 가지고 서울로 가, 일변 누구라더냐 하는 군정청의 조선 사람 관리와, 또 누구라더냐 하는 미군의 통역을 끼고서, 그 무어라드냐의 미국 사람을 사귀어, 술과 선사와 색시와 돈을 퍼 안긴다치면, 염려 없이 불하의 싸인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었었다.
 
15
그리고, 그렇게 해서 불하를 맡아놓게 되면 물건이 녹만 슬었지 성한 채로 있은즉, 녹여서 고쳐 만들 필요도 없고 한 것이라, 교제하느라고 들인 밑천에다 백만 원이나 얹어서 잇권만 팔기로 하더라도 대가리를 싸고 덤빌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었었다.
 
16
이 손님들이 하는 수작은 노상이 허황한 천냥만냥인 것도 아니었다.
 
17
바로 요 앞번에는 부산에 가서, 일본군에게서 압수한 낙하산이 몇 덩 치가 있는 것을 역시 같은 법식으로 불하받을 운동을 하노라고 서울로 부산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마지막 부산엘 갔다 오면서는 일이 잘 되었노라고, 이건 아주머니한테 선사로 가지고 왔노라면서, 가방에 어리어리한 비단을 여러 끝을 꺼내놓았다.
 
18
생기기는 아무렇게나 생겼으면서도, 이렇게 그들은 굉장한 사업이라고 하는 것을 하는 손님들이었고, 그러느라고 돈을 백만 원씩, 몇십만 원씩 한 목에 버는 모양이었고 하였다.
 
19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돈을 쓰는 데도 여간만 많이씩 그리고 잘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느라고 영호를 한꺼번에 백 원이나 행하를 준 일도 있었다.
 
20
영호는 그동안 넉 달 이 여관에서 있으면서 많은 것이 늘고, 배워지고, 깨쳐지고 하였다.
 
21
학교는 다니지 못하나마,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겠어서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놀지를 않고, 여관에서 받는 몇가지 신문을 다 읽었다. 손님이 사서보다 가 버리는 잡지도 얻어서 읽었다.
 
22
영호에게는 태반이, 글자가 어렵고, 말이 어렵고, 뜻은 더구나 어렵고 하였다. 그래도 영호는 열심히 읽었다. 한가한 손님이 있으면 묻기도 하였다. 영 아쉰 때면 안주인더러도 물었다. 안주인은 그러나 묻는 다치면, 잘 아는듯이 척척 대답은 하던 것이지만, 모르는 영호가 듣기에도 하나도 바른 대답이 아닌 것 같았다.
 
23
어느 글이든지, 민주주의라는 말이 안 나오는 데가 없이 많이 나왔다.
 
24
이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영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25
몇 손님더러 연해 물어보았다.
 
26
어떤 손님은, 여러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민주주의니라고 대답을 하였다.
 
27
어떤 손님은, 상하의 귀천이 없이 평등으로 지내자는 것이 민주주의 니라고 대답을 하였다.
 
28
어떤 손님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니라고 대답하였다.
 
29
6호실의 눈딱부리더러는 물었더니
 
30
"아 이 녀석아, 그것두 여태 몰라? …… 남의 시비나 참견 안 받구, 제 자유, 저 하구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민주주의지 무어여?" 하고 고함을 질렀다.
 
31
개개 그럴 듯도 하였으나, 어쩐지 달리 무슨 뜻이 있어야 할 것같이 영호는 생각되었었다.
 
32
물어도 모르는 것은 할 수 없겠지만, 몰라서 애를 쓰다 쓰다, 손님이든지 가 가르쳐 주어서 안 글자면 글자, 말이면 말, 뜻이면 뜻을 마치 맛있는 음 식을 처음으로 먹어본 기억처럼, 머리속에 가 언제까지고 뚜렷이 박혀 있고 잊어버리지 아니하였다.
 
33
느는 품이 더디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차차로 조금씩 늘기는 늘어갔었다.
 
34
영호는 이 여관에 와서 있으면서, 그 훌륭하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떠한 세상인지를 비로소 저의 눈으로 보고 알고 할 수가 있었다.
 
35
이 여관에 드는 손님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가 그 훌륭하다는 사람 들이었다.
 
36
영호가 막연하게'훌륭한 사람……’으로 치던, 가령 언제든가 정거장의 나오는 목에서 짐을 들어다 주마고 하는 영호더러, 짐이 대떡이나 김밥 한 개보다는 무겁다고 재담을 하고는 스스로 재미있어 하던, 그 양복신사와 마찬가지의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서울서 삼청동으로 오선생을 찾아가던 맨 첫날, 좋은 양복에 좋은 옷으로 차리고, 좋은 구두 신고, 금반지 보석 반 지 끼고, 아이를 털로 싸고 하여 손목 잡고 나오던, 그런 훌륭한 사람이나, 그 뒤에도 영호가 서울 거리에서 얼마든지 구경을 할 수가 있던, 역시 훌륭한 사람들 이나와 마찬가지로, 이 여관에 드는 손님들은 죄다가 그 훌륭한 사람 들이었다.
 
37
따뜻하고 흉허물 없고, 임의롭고 구수한 맛이 나는 대신, 차갑고 붙임성 없고, 데데하고, 남의 곤경을 알아줄 줄을 모르고 하는 사람들이었었다.
 
38
어쩐지 딴 세상 사람들인 것만 같은 사람들이었다.
 
39
그와 같이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 훌륭한 사람들의 세상을, 영호는 비로소 자상하게 보고 알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었다.
 
40
가령 6호실의 눈딱부리와 빈대머리를 놓고 보기로 하더라도…… 일본 정치 때에 일본 사람들이 조선 사람에게서 공출입네 하고 강제로 뺏 어간 놋그릇을, 뇌물을 쓰고 나서서 불하를 받아서 백만 원이니 하는 이문을 남겨먹는다고 하는데, 영호가 보기에는 어린 소견에도 도무지 사리에 어그러지는 짓인 것 같았다.
 
41
그 놋그릇으로 말하면, 조선 사람들이 일본 사람의 강제에 부대껴 내논 것이나, 임자인즉은 그것을 내논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일본 사람들이 물러 갔고, 물건은 그대로 성하게 처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당초의 임자들 이 도로 다 찾아가야 마땅한 일이었었다.
 
42
혹시, 그릇에다 저마다 이름을 써둔 바 아니면, 그 많은 것을, 임자를 찾아 일일이 돌려주기가 곤란한 일이라고 할는지도 모른다.
 
43
정히 그렇다면, 그것을 나라에서 맡아 가지고 적당한 값에 팔든지 하여서, 그 돈으로 나라 백성들에게 유익한 것을 무엇이 되었던 실시를 함으로써, 억울하게 물건을 뺏긴 사람들 전체에게 간접으로나마 고루 생색이 있도록 하는 수가 있어야 할 것이었었다. 이를테면, 학교를 세운다든지 길을 고친다든지 찻간의 유리창을 해 박는다든지……
 
44
그런 것을, 눈딱부리와 빈대머리 단 두 사람이, 군정청의 관리네 미군의 통역이네 를 끼고, 미국 사람에게 술과 선사와 색시와 돈을 처안기고는 은밀 히 불하를 받아, 백만 원이면 백만 원을 이익을 따먹고 있으니, 그들에게 조선 사람 전체가 낸 놋그릇에 대하여 무슨 권리가 있어서 그러는 것 이 냔말 이었다. 그것은 멀쩡한 도적질이 아니냔 말이었다.
 
45
이런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영호가 본즉, 그 훌륭하던 사람 들이었다.
 
46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많이 버는 돈을 가지고 쓰기는 무엇에다 쓰느냐 하면, 좋은 양복 입고 고기 반찬에 좋은 음식 먹고, 요리집 다니며 밤낮으로 술 뚜드려 먹고 색시 데려다 장난하고, 이것이었다.
 
47
이 여관의 단골 손님에, 고무신과 광목을 쳐 이북으로 넘기고, 이북에서 다른 물자를 넘겨오고 하는 세 사람 한패의 잠상(潜商)이 있었다.
 
48
역시 돈을 굉장하게 잘 버는 모양이었고, 그래서 돈을 쓰기도 물쓰듯 하였다.
 
49
같은 조선 사람끼리니, 물건을 이북으로 가져가고 이북 물건을 이남으로 가져오고 하는 것이야 상관이 없을 것이었었다.
 
50
그런데 이 사람들이 노상 입버릇같이 하는 소리가 무엇이냐 하면, 38 선이 터지지 말고 십 년만 이대로 있어 달라는 것이었었다.
 
51
조선 사람이라고 생긴 사람은 누구나 다 38선이 터지기를 바라고, 터뜨릴 공력을 들이고, 하루바삐 터져야만 하겠고 하다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네 들 장사 해먹자고, 38선일 십 년만 터지지 말아다고 하고 있으니, 세상에 그런 불측한 맘보가 있을 데가 없었다.
 
52
이것이 역시 그 훌륭하다는 사람들의 맘보였다.
 
53
영호가 실지로 보고 알고 한, 그 훌륭하던 사람들의 세상은 무릇 이러하였었다.
 
54
영호는 일찌기 저도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 훌륭히라고 하는 것은 막연하였었다.
 
55
그러다가, 막상 실지로 그 훌륭하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본 즉, 그와 같이 하나도 훌륭할 것이 없는 세상이었다. 추앙할 것도 없고, 보잘 것 없는 세상이었다. 도무지 이치에 어그러지고, 경우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상 이었다.
 
56
그런 훌륭해 보이면서도 실상은 아무것도 훌륭할 것이 없는 세상에다 대면, 차라리 누더기를 걸치고 지저분하고 좀 무례하고 하기는 할망정, 정거장 앞에서 대떡을 파는 할머니며, 여러 음식장수들과 지겟벌이꾼이랑, 아버지를 잃어버리던 그날 밤 찻간에서 만난 촌 영감, 그리고 양복 입은 사람이며, 오 선생님 이런 사람들이 비록 훌륭한 사람이든 못하겠지만 얼마나 사람 스럽고 고지식하고, 그래서 따뜻한 맛 구수한 맛이 풍기는 사람들인지 몰랐다.
 
57
그러나 훌륭함은 정말로 훌륭한 훌륭함이어야 하지, 눈딱부리 같은 훌륭이어서 는 안될 것을 깨달았다.
 
58
그럼, 어떤 것이 정말로 훌륭한 것이냐?……
 
59
이것은 영호는 아직은 몰랐다.
 
60
그렇지만, 공부를 하면서 자라노라면 저절로 알아질 것으로 영호는 믿고있었다.
 
61
그러나, 우선부터라도 훌륭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는 삼가함이 있어야 하는것을 깨달았다.
 
62
그러자면 영호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여관집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63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지내자면, 차라리 언제까지고 이 여관집에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좋을 편이 많았다.
 
64
배고플 염려가 없었다.
 
65
잘 곳을 걱정 아니하여도 좋았다.
 
66
돈 생기는 것이 쑬쑬하였다.
 
67
묵다 떠나는 손님이 10원, 20원 행하로 집어 주는 것이 한달이면 3,4백 원씩은 되었다. 그것으로 영호는 옷도 사 입고, 신발도 사 신고 하였다.
 
68
땟국만 묻지 않았으면 깁고 꿰메고 하였을망정 가지고 있는 헌 옷을 그대로 입어도 좋았으나, 안주인의 말이, 옷 주제가 저래, 손님이 기분 나빠 어떡하느냐고 옷을 사 입게 하라고 하여서 할 수 없이 사 입었었다.
 
69
온종일 서서 달리다시피 하기 때문에, 식발이 쉬 해져서 넉 달 동안에 운동화 두 켤레와 고무신 한 켤레를 사 신었고, 옷은 아주 겨우살이로 학생복한 벌을 사 입었다. 그러고도 시방, 돈 천 원이나 남은 것이 있었다.
 
70
영자를 위하여는 돈이 들 일이 없었다. 그 주인집에서 밥 배불리 먹고, 옷 해 입혀 주고 신발 사 신기고, 깨끗이 해 내놓았다.
 
71
영호는 그러므로, 돈이나 좀 벌고 할 생각이라고 한다면, 딴 마음 먹지 말고 이 여관집에 눌러 있으면서 일변 강서방 본을 따, 색시 천거도 하고 하게 되면, 한 달에 돈 천 원씩이나 밀려가기는 수월한 일이었었다.
 
72
영호는 그러나 돈은 탐이 나는 것이 없었다.
 
73
공부를 하고,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로 나아가기만이 원이었다.
 
74
신문이나 육장 들여다보고, 와락 아는 것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만 모여 들끓는, 이 여관집에서는 만날 있었자 큰 공부는 되어질 싹수가 없었다.
 
75
겉으로만 훤치레하였지 속내로는 하나도 훌륭할 것이 없고, 잡스럽기만 한 그 훌륭하다는 사람들의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좋지 못한 물이나 들었지, 이로울 것이라고는 생길 여지가 없었다.
 
76
또 영자만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그렇게 두어둘 수는 없었다.
 
77
밥 배불리 먹고, 깨끔하게 옷 입고 하면서 있기는 있어도, 만나는족족 명랑한 얼굴을 지닌 적이 없었다. 언제고 추레하니 슬픈 얼굴이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고 한 영자가, 단 하나 오빠마저 떨어져 있기가 혼자서 외롭고 슬퍼 그러던 것은 묻지 않아도 번연한 일이었었다.
 
78
어떻게 하여서든 영호는 영자를 데리고 있어야 하였고, 영자를 데리고 있자면 역시 이 여관집을 나가 다른 도리를 차려야 하였다.
【원문】훌륭한 사람의 세계(世界)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38
- 전체 순위 : 539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84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6) 삼대(三代)
• (23) 적도(赤道)
• (21) 어머니
• (20) 탁류(濁流)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소년은 자란다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49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이전 14권 다음 한글 
◈ 소년(少年)은 자란다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