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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물고기가 사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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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14. 물고기가 사는 세상
 
 
3
영호가 이불솜을 팔아 주림을 면하면서 아버지를 기다리기 또다시 보름……
 
4
6월도 그믐이 다 되어, 제법 여름다운 따가운 햇볕이 쨍쨍히 내리 쪼이는오 정이 겨워서의 한낮이었다.
 
5
영호는 영자와 함께 그늘 짙은 정거장 집(建物[건물]) 동편쪽 벽 밑으로 와서 앉았다.
 
6
영호는 마주 앞에 앉았는 영자의 얼굴을 한참을 건너다본다.
 
7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슬픔과 주린 빛…… 이 두 가지가 그림으로 그려 논 것처럼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8
영호는 영자가 어머니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배가 고파하고 하는 것을 오늘에야 새삼스럽게 안 것은 아니었지만, 새삼스럽게 오늘은 그것이 더 눈에 뜨이던 것이었다.
 
9
'영자가, 우리 영자가 이렇게 배가 고파 쓸 것인가?…… 어머니가 그리워서, 아버지가 그리워서 슬픈 영자를 배조차 이렇게 고프게 해서 쓸 것인가?’
 
10
영호는 어디선지 모르게 이런 생각이 우러나고, 그 끝에 고개를 저 으 면서
 
11
'못 쓰지……’ 하고 속으로 힘있는 대답이 또한 절로 나와졌다.
 
12
어머니는 이미 여읜 어머니니, 아무리 그리워하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3
아버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머니 그리움이 가뜩이나 더한 것은, 영호 제 마음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지당한 노릇이었다.
 
14
그러니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찾아야 하였다. 아버지만 찾으면 슬픔도 엔간히 가실 것이요, 아버지와 영호 제가 벌이를 하든지 하면, 이다지 영자를 배고프게 하지는 않을 터이었었다.
 
15
영호는 그런데, 천천히는 몰라도 당장 오늘 내일 그렇게는 아버지를 찾지못 할 것으로, 이윽고 생각을 돌려 하였었다.
 
16
그 양복 입은 사람이 말한 대로, 아버지가 서울차를 타고 가다, 이내 대전 으로 돌이켜 와가지고 대전서부터 정거장 정거장 더듬어 왔다고 하면, 그동안이 이미 한 달인데, 그새 벌써 이리에까지 오고도 남았을 것이었었다.
 
17
대전서 이리까지 열 정거장이라고 하는데, 한 정거장에 이틀씩 걸린다고 잡더라도, 스무날 만이면, 이리에 와 내릴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18
아버지가 대전서 시작하여 정거장 정거장 더듬고 내려온다는 것은 그러므로 잘못 짐작한 것으로 돌려야 하였다.
 
19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된 것일까?
 
20
서울차를 타고 그렇게 가다가, 차를 잘못 탄 줄을 알고 놀래어 달리는 차로부터 뛰어내린 것이나 아닌가? 뛰어내리다가 아차 그만, 차바퀴 밑으로……
 
21
여기까지 생각할 때는 영호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22
그러나 몸이 남달리 굼뜬 아버지가, 잽싸게 달리는 차에서 더우기 깜깜 어둔 밤에 함부로 뛰어내렸다면, 십상 그런 변을 당하였기가 쉬울 일이었다.
 
23
그리고 불행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아버지는 영영 찾아지지 않는 아버지이고 만 것이었었다.
 
24
뛰어내리다 천행으로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몸을 단단히 상 하였을 것을 번연하였다.
 
25
몸을 상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병이 났거나…… 아버지는 집에서도 가끔 담이 붙어 꼼짝을 못하고 누워 송진을 구해다 붙이고는 열흘 보름, 어떤 때는 한 달 넘겨씩 일지 못하고 하였었다.
 
26
간도서 떠나기 전에 심화를 많이 하였고, 서울서 와서는 추운 삼동을 간도에서보다 더 춥게 고생으로 지냈고, 그래서 몸이 많이 약해진 것은 영 호도 알았었다.
 
27
그런 끝에, 차를 잘못 타고는, 보나마나 영호와 영자를 잃어버렸다고 기절 할 만큼 놀랐을 것이고, 그렇다면 병이 남직도 할 노릇이었다.
 
28
병이 나서거나 혹은 뛰어내리다 몸이 상하여서거나, 하옇든 중로에 어디서 누워 앓는 것이라면, 아버지는 그 양복 입은 사람의 말대로 정거장 정거장 더듬어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이 앞으로 얼마 후에 이 이리에 당도 할는지 짐작 키 어려운 일이었다.
 
29
적실히 그렇기만 하다면, 영호는 여기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영호 제가 아버지를 찾아 이리에서부터 대전을 거쳐 서울까지 한하고, 정거장 정거장 더듬어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었다. 낯모르는 고장에서 혼자 병들어 앓고 누웠을 아버지를 가서 병시중을 하여 드리기 위 해서라도 말이었다.
 
30
그러나 적실히 아버지가 그렇게 병으로 어디에선지 앓고 누워 있다는 것을 믿을 길은 없었다. 무엇을 가지고 그것이 적실하다는 것을 믿을 근거가 없는 것이었었다.
 
31
또, 정거장 정거장 대전을 향해 더듬어 올라간다고 하지만, 대전서 다시 서울을 향해 더듬어 올라간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영호 저희들처럼, 정거장에 나와서 찾으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요, 어디 모를 집에 가 앓고 누웠을 터인데, 그것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다니자면 한 정거장에 하루나 이틀로는 안될 말이었다. 그러니 하루 한 끼 요기라도 하여가면서 그럴 돈이라도 있다면 혹시 모르지만, 그렇지가 못한 이상 그것은 생심도 못할 일 이었다.
 
32
이것저것 상관 않고, 아버지의 몸과 거취에만 애가 쓰여, 돈이 없으면 안 할 말로 밥을 빌어먹어 가면서라도 영자를 데리고 나선다고 한다…… 나서서 영호 저는 이리에서 시작하여 그렇게 대전을 바라고 정거장 정거장 더듬어 올라가고 있는데, 만약 아버지가 그동안 요행히 병이 쾌하여 이 쪽으로 더듬어 내려오기를 시작하였다면? …… 그때는 도리어 아버지와는 중간 어디에 선지 휙 엇갈리어 버리고 마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남쪽으로 영호 저희는 북쪽으로, 다시는 만날 길이 없이 갈라지고 마는 날이었다.
 
33
남들이 말하기를, 아버지는 사람이 변통성이 적다고 하였었다.
 
34
영호 제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의사가 와락 좋은 이는 아니었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지 두루 궁리를 하며 묘한 꾀를 낼 줄을 모르는 이였었다. 그러고서, 다급하다치면 괜히 허둥거리고 납뛰기나 하는 이였었다.
 
35
그러는 아버지를, 어떡하자고 당신은 그렇게 주변이 없고 사람이 갑갑하기만 하느냐고 어머니가 곧잘 구박을 하곤 하였었다.
 
36
그런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시방 목숨이 불행하였거나 몸이 상하든지 병이 나든지 해서, 중로에서 앓고 누웠거나 하는 것도 다 아니요, 차표가 목포 차표인 것만 여겨, 목포까지 주욱 그대로 내려간 것이 아닌지…… 그 양복 입은 사람이 말한 대로 대전서부터 시작하여 정거장 정거장 더듬어 내려올 의견은 내지를 못하고서 차표가 목포 차표인 것을 영호도 알던줄은 아버지도 알고 있으므로, 쯧, 가도 목포에서 더는 안 갔겠지 하는 생각으로 곧장 목포로 내려간 것인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37
목포로 가서는 가지도 아니한 영호 저희들은 헛되이 찾아 헤매고 다닐 것이고…… 실컷 그렇게 찾아 헤매다가, 팡져서야 그럼 목포에는 오지 않았나보다 고, 도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영호야 영자야 하고 찾을 것이고…… 이렇게 생각을 하자면, 또한 그럴 성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역시 꼭이 그 렇다고 믿어야 할 근거는 없었다.
 
38
영호로는 그런데, 그 어느 편이 되었는지 아버지가 불행히 목숨을 잃어버리지만 아니한 것이라고 한다면, 영호는 차라리 이 이리에서 움직이지를 말고 언제까지고 있어 보는 것이 지금 와서는 가장 좋은 도리인 것이 확실하였다. 그동안 한 달, 영호가 이리 정거장에서 아버지를 찾으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제풀로 널리 소문이 퍼진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39
'이리 정거장에서는 어떤 아이가 서울차, 목포차, 차가 들어올 적마다 아버지 아버지 부르면서, 영호 여기 있어요, 영호 여기 있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
 
40
이런 소문이 차를 타고 이리를 지나가는 찻손님의 입으로부터 대전으로, 서울로, 목포로 퍼져나갔을 것은 자연한 일이었다. 영호는 아버지가 곧장 목포로 갔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부터는, 목포차에다 대고도 아버지를 불러보곤 하였었다.
 
41
소문이 그렇게 퍼지는 동안, 어디에서든지 아버지의 귀로 그 소문이 들어갈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러는 날이면 아버지는 영락없이 이 이리로 쫓아올 것으로 생각하였다.
 
42
따라서, 영호는 더디기는 하여도 이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아버지를 만나기에 가장 여망이 있는 도리였었다.
 
43
아뭏든 그러므로, 아버지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혹은 그 이상이고, 훨씬 후에는 만나게 될는지 막시 몰라도 오늘 내일, 그렇게 당장 시급히는 가망이 없는 것으로 치는 것이 옳았다.
 
44
답답하여도 안타까와도 소용이 없고 사실이 그러하였다. 한 것을 당장은 오지 않는 아버지만 기다리자고 영자를 생배를 곯려 저 꼴을 시키고 있다니, 생각하면 이런 애차랄 데라고는 없었다.
 
45
그러나마 지금 남은 돈이 졸략히 하여 단 한 달이라도 부지할 수 있는 것 이 라면 또 몰랐다.
 
46
하루 두 때씩 입맛만 다시고 말기로 하여도 한 대엿새면 그만이었다.
 
47
그 대엿새가 지나면, 아뭏든지 무슨 변통이 있어야만 하는 것…… 차라리 지금부터 서둘기만 못한 것이었었다.
 
48
간도에서 떠날 때까지도 영자는 살이 포동포동 쪘었다.
 
49
서울서 떠날 때만 하여도, 저다지 볼이 훌쭉 패이고 눈이 십리나 들어가고하지는 않았었다.
 
50
'가엾은 영자!’
 
51
'저, 귀여운 우리 영자를!…… 어머니가 보셨다면, 얼마나 질색을 하고 슬퍼하시리?’
 
52
영호는 속으로 이렇게, 일변 애처롭고 일변 뉘우쳤다.
 
53
그러면서 영호는 생각하였다.
 
54
영자도 시방,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오빠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오빠가 무어든지 다 해주어야 한다. 배도 고프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55
아버지를 찾는 것도 물론 큰일이다. 아버지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영자를 잘 거천하는 것도 아버지를 찾는 일만큼 큰일이다. 아니, 당장 급하기로는 영자를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다.
 
56
아버지는 살아만 있다면, 이 다음이라도 일 년이나 십 년 후에라도 만 날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자의 배고픈 것은 하루라도 뒤로 밀 수도 없거니와, 밀어서는 아니 된다. 영자는 지금 저렇게 배가 고프지 않으냐…… 영호는 결심을 하였다.
 
57
벌떡 일어서면서, 가만히 영자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58
영자는 잠자코 따라 일어서서 영호가 이끄는 대로 걷는다.
 
59
"영자야?"
 
60
"응?"
 
61
"무어 사주까?"
 
62
"………"
 
63
영자는 말없이 도리질만 한다.
 
64
영호는 돌아다보던 얼굴을 도로 돌리면서
 
65
"돈, 걱정 말구…… 영자야."
 
66
"응?"
 
67
"지끔버틈은 오빠가, 영자, 하나두 배 안 고푸게 해주께, 응?"
 
68
"돈, 죄꼼 남었잖어?"
 
69
"오빠가 일하믄 돼."
 
70
"어떻게?"
 
71
"그건 인제 보믄 알아…… 국밥? 국밥 사주까?"
 
72
"응."
 
73
영자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얼른 대답을 한다.
 
74
나팔통에다 유성기를 틀어놓고, 밤낮 그 전라도 소리를 정거장에 떠나가도록 시끄럽게 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75
구수한 고깃국물 냄새가 우선 회가 동하였다.
 
76
10원짜리 국밥을 한목 두 그릇을 시켜놓고, 영자와 한 그릇씩 먹었다.
 
77
영호 저도 맛이 있고 좋았으려니와 영자의 좋아하는 얼굴과 맛있이 먹는 입을 건너다보기의 즐거움이라니, 영호는 이다지도 즐거운 일은 일찌기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78
영자는 영호가 몇 숟갈을 덜어 주었어도 다 먹고는 아예 나쁜 수저를 놓는다.
 
79
"더 먹어?"
 
80
영호가 그렇게 묻는 것을, 영자는 도리질은 하면서도 배깃이 웃는다.
 
81
국밥을 다시 한 그릇 시켜다 놓았다.
 
82
영자는 혼자서는 먹으려고 않고, 영호가 같이 먹어서야 저도 먹었다.
 
83
그만하여도 기운이 나는지, 영자는 식당을 나와 영호에게 손목 잡혀 걸으면서, 깡쫑깡쫑,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84
영호는 정거장 앞 큰거리의 앙편으로 있는 여관을 차례로 들렀다.
 
85
영호는 진작부터 여관이라는 것이 뜻이 있었다.
 
86
영호는 달리도 여러가지 것을 생각하여 보았었다.
 
87
회사나 관청 같은 곳에 사동(使童)으로 들어간다면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 상점의 심부름꾼으로 들어가는 것도 마땅할 것 같았다.
 
88
그러나, 회사나 관청이나 상점에를 들어가자면 때를 타야 하고 반연이 있어야 하였다. 저편에서 사동이면 사동을 뽑는 때라야 하고, 시험을 보든지잘 아는 사람의 천거를 있든지 해야 하는 것이지, 덮어놓고 아무때나 그리고 제 주장대로 들어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89
시험은 보라면 보겠지만, 언제 어떤 회사며 관청이며 상점에서, 사동이든 심부름꾼을 들이는지를, 영호는 아는 수도 없으려니와, 남의 천거 또한 받을 길이 없었다.
 
90
회사나 관청이라면 무엇보다도 단 한 자라도 공부를 할 기회를 있는 것이어서, 제일 마음이 당기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들어가기가 만만치를 않았다.
 
91
그럴 뿐만 아니라, 그런 데를 들어가 있노라면 이 정거장에서는 아주 떠나 버려야 하니, 아버지는 어떻게 하느냔 말이었다.
 
92
어떻게 하여서는 정거장은 떠나지 말고 아버지를 기다려야 하는 것 이었었다.
 
93
정거장을 떠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첫째 다른 아이들처럼 손 쉬운 담배장사가 있었다. 그러나, 영호는 담배장사나마 할 만한 밑천이 있지도 않았고, 또 담배장사나 하여가지고는 영자를 배고프지 않게 하는 수는 없어 보였다.
 
94
둘째로, 차표 야미 장사가 있었다.
 
95
정거장엣 사람더러 하루 한 장이고 두 장이고, 서울차표 같은 것을 달라 고하면, 괄시는 않고 줄 성부르기도 하였다.
 
96
그것을 차표를 사지 못해하는 찻손님에게 한 갑절이고 붙여서 팔면, 이문도 쑬쑬하여 해봄직은 한 것이었다.
 
97
이 소위 야미 차표 장사는, 그러나 영호가 보기에는 대단히 떳떳치 못 한 짓인 것 같았다. 본다치면, 연방 남의 눈을 기여쌓고, 그러다가 종종 순 사 랄지 혹은 그런 것을 밝히는 정거장엣 사람이랄지에게 들키어 뺨을 맞고, 붙들려가고 하였었다.
 
98
영호는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 되거나, 속 검은 짓을 하는 사람이 되고싶지는 않았다.
 
99
지겟벌이는, 지게도 없으려니와 보매 신통한 벌이도 없는 것 같았다.
 
100
더구나 어느 날 그 양복신사에게 무렴을 당하던 일이 생각이 나, 하나도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101
그 다음, 여관의 끌이꾼인데 이것이 그중 알맞을 듯싶었다.
 
102
어떤 여관이든지 두어 주기만 하였으면, 여느때는 심부름을 하고, 찻 시간 맞추어 정거장에 나가서 손님을 끌고, 그리고 그 길에 아버지도 기다리고 두루 좋겠었다.
 
103
이렇게 여관이 알맞을 듯싶기는 싶었으나, 막상 영자까지 입만이라도 먹여주기로 하고서 두어 줄 여관이 당장에 있을는지, 실지로 알아보기 전에는 물론 모를 일이었었다.
 
104
정거장 앞 큰 거리에 있는 여관에서는 깡그리 첫 한마디에 거절을 당하고 거절을 당하고 하였다.
 
105
그러고 나서, 큰 거리를 비껴, 여기도 행길은 행길이나 훨씬 사람의 통래 가 적고 한 겉이 헙수룩한 여관집에서야 겨우 이야기가 아뭏든 어울릴 수가 있었다.
 
106
나이 한 30이나 되었을까, 곱살하기는 곱살하여도 퍽 건방지게 생기게, 쬐 끄만 눈에 사남이 들고 한 여자가, 행주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나오는 양이 얼른 보아도 안주인인 것 같았다.
 
107
"저어, 댁에 심부림할 아이 안 두세요?"
 
108
영호는 고개를 꾸벅 하고는, 그동안 몇 집에서 하던 대로 그렇게 말을 내었다.
 
109
주인 여자는, 영호와 영호에게 손목을 잡혀 나란히 섰는 영자를 짯짯이 번갈아 보다가
 
110
"느이는 누구냐?" 하고 묻는다.
 
111
"만주서 왔에요…… 둬 주시믄 심부림 잘 해 드릴께요. 정거장 나가서 손님도 모세 오구요."
 
112
"정거장에서, 부몰 잃어버리군 찾는 아이들이 있다더니 느이가 그 애들인가 보구나?"
 
113
"내애…… 둬 주시믄, 다른 건 일 없구 우리 영자허구 입만 멕여 주 시 믄 해요."
 
114
"글쎄…… 두기루서니, 만주서 왔다면서, 속내두 모르는 아일 어떻게 두니? 손님들은 육장, 방을 벼놓구 나가 다니구 하는데…… "
 
115
박절한 말이 영호는 뼈가 아팠다. 그러나 한갓 생각하면, 주인으로는 그런 의심을 내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겠다고 하였다.
 
116
"전 그런 아이 아녜요, 두구 보세두 아실 테지만…… "
 
117
"너야 그렇게 말을 할 테지만서두, 세상 인심을 뉘 아느냐?…… 나인 몇 살이냐?"
 
118
"열네살예요."
 
119
"숙성하구나!…… 학교 댕겼니?"
 
120
"내애. 우급 1학년꺼정 댕겼어요. 여기루 치믄, 5 학년이래요."
 
121
"그럼 객도기두 하겠구나?"
 
122
"객도기가 무어예요?"
 
123
"손님 들믄, 주소랑 성명이랑 적는 거 말야."
 
124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125
"강 서방인지 막걸린진, 깡깜눈이 돼, 객도기 하날 하나? 심부름 하날 션션 히 하나…… 발상한 아이라두 있으면, 둬두 하긴 하겠는데…… "하다가 영자를 얼굴로 가리키면서
 
126
"그 앤 몇 살이냐?" 하고 묻는다.
 
127
"아홉 살예요."
 
128
"남매, 다 숙성하구나!"
 
129
"우리 영자두 심부림 곧잘 해요. 그러니까 두구서 멕여만 주시면…… "
 
130
"심부름야 하나마나, 그애 하난 더 멕이기가 큰 거가 아니라…… 너, 이 이 리에 혹시 아는 이 없니?"
 
131
"없어요, 첨예요."
 
132
"고향은?"
 
133
"아버지 고향은 충청북도 청주래요, 즈인 간도서 났어요."
 
134
마악 그럴 때에, 앞뒷문이 환히 열려 있는 안방 뒷마루에 가 누웠던 웬 여자가 푸스스 일어나더니, 단속곳 바람에 젖가슴을 풀어헤친 채 부채는 손에 들고 앞마루로 나오고 있었다. 나이만 조금 더해 보이지, 주인 여자와 한 모습 이었다.
 
135
"언니, 나 이애들 둬 볼까?"
 
136
주인 여자가 상의하듯 그렇게 묻는다.
 
137
그 여인은 앞문 문턱에 가 퍼근히 걸터앉아, 영호 남매를 번갈아 보면서
 
138
"속낼 몰라 께름하지만 둬보지, 순탄하게 생겼구먼그래." 하는 것이, 뒷마루에 누워서 여태 하던 이야기를 다 들었던 모양이었다.
 
139
"그리게 말유. 젤 순탄하게 생겨서…… "
 
140
"참! 존 수가 있군!"
 
141
단속곳은 깜빡 그러면서
 
142
"넌 몇살? 아홉 살?" 하고 영자더러 묻는다.
 
143
"내애."
 
144
영자는 눈을 내리면서, 가만히 대답을 한다.
 
145
"너, 애기 업어 주겠니?"
 
146
"우리 영자, 애기 잘 업어 줘요. 작년버틈, 우리 영수 업어 주군 했어요."
 
147
영호는, 이내 곧 후회를 할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영자를 들이 ' 선전’을 하던 것이었었다.
 
148
"그럼 됐구나!……"
 
149
단속곳은 붙임성 있이 마룻전으로 나앉으면서
 
150
"넌 이 집에 있구, 네 동생은 우리 집에 가 있구, 어떠냐?"
 
151
"………"
 
152
영호는 대답이 막혔다. 영자를 떼어, 혼자서 다른 집에 가 있도록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여본 적이 없었다.
 
153
"데려다 무얼 하시게? 숙(淑)이 업혀 놓시게? 너무 어리잖어?"
 
154
주인 여자의 묻는 말이었다.
 
155
단속곳은 고개를 저 으 면서
 
156
"넉넉해…… 그리고, 즈이 집에서두 앨 업어 줬대잖아?"
 
157
"그래두 온…… "
 
158
"아냐, 그리구, 아무래도 숙이, 말을 하나 장만을 하자던 참이니깐, 마침 잘 됐어…… 젤에, 아이가 순탄해 뵈는 게 해룹잖아. 표독스런 건 어린 애못 맡겨나요."
 
159
단속곳은 다시 영호더러
 
160
"어떡헐련? 그럭헐련?" 하고 묻는다.
 
161
영호는 역시 대답을 하지 못한다.
 
162
"그럭허긴 싫으냐?"
 
163
"우리 영자가 저허구 떨어져 있을 영으로 아니해요."
 
164
"그 앤 호강스런 소리두 다 하네. 올데갈데없이 여관집에 와, 입이라 두 얻어먹으면서 있겠다는 아이가, 남매 꼭같이 있길 어떻게 바라니?"
 
165
단속곳은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옆에 섰는 주인 여자의 너벅다리를 꾹꾹 찔렀다.
 
166
영호는 그것을 물론 못 보았고. 주인 여자는 얼른 알아채고서
 
167
"그 럭 허렴, 이인 우리 형님야…… 가 애기나 봐주구 있으믄 무어 여기서 있기 같겠니? 잘 먹고, 옷두 해 주실 거구…… 우리 집은 저애 하나 더 멕이는 것이야 글쎄 쉽다면 쉽겠지만, 또 어디 그렇니? 말이 그렇지…… 그리고 참, 생각하니깐 잠자리 때문에 젤에 안 되겠다. 넌 사무실 방에서 잔다지만, 저앤 어린애라지만, 계집아이가 저만치나 자란 것이 강서방두 같이 자구 하는 사무실 방에서야 자는 수가 있니? 그렇다구 저 애 하나 때문에 방 하날 낼 수 없구, 가뜩이나 방이 모자라 오는 손님두 퇴할 적이 많은데…… 그러니깐 느이가 남매 영 떨어져 있기가 싫다면, 우리 집에단 못 둘 까보다."
 
168
영호는, 곧 돌아서서 나와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였다.
 
169
영자를 따로 떼어보낼 수는 차마 없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잃어버리고,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그리워 슬픈 영자였다. 그런 영자가, 단 하나뿐이 오빠를 떨어져 어떻게 혼자만 가 있는단 말인고. 시방은 영 자가오빠를 떨어지는 것이 어머니를 여의었을 때보다도, 아버지를 잃어버렸을 때보다도, 오빠밖에는 없는 오빠를 떨어지는 시방이 더 외롭고 슬픈 것 이었었다.
 
170
그뿐만이 아니었다.
 
171
영호는 이 여자들이 무엇인지 모를 차갑고 데데한 것이 마음이 들지 아니하였다.
 
172
붙임성이 없고, 그러면서 말속은 어쩌면 그리도 좋으며 수다한지 모르겠다.
 
173
일을 자기네 좋을 대로만 얼마든지 뒤집었다 엎었다 하기를 물 마시듯 하였다. 무엇 한가지 그래서 비위에 맞는 것이 없었다.
 
174
이 여자들에게서는 그 떡장수 할머니를 비롯하여 정거장 너른 마당에 널려 있는 수많은 여러 가지 장사 사람들이며, 지겟벌이꾼이며, 또 아버지를 잃어버리던 그날 밤에 만난 촌 영감이며, 그 양복 입은 사람이며, 돈을 보태어 주던 사람들이며, 목단강서 온다던 전재민 내외며, 더는 대이수구의 동네 사람들이며, 오선생이며…… 이런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맛이나, 무례하고 지저분한 흠은 있어도, 흉허물 없고 임의롭고, 그래서 저절로 우러나는 구수한 맛이나 이런 것은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175
이 여자들은, 어느 날인가, 짐을 들어다 주마고 하는 영호더러, 짐이 대 떡이나 김밥 한 개보다는 무겁다고 대답을 하고는 스스로 재미있어 하던, 그 양복 신사라든지, 서울서 많이 보던 양복과 옷을 잘 입고 신수가 훤하고 한 훌륭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자들도 도저히 영호와는 한 조선 사람인 것 같지가 않았다.
 
176
그래도 조선 사람은 역시 조선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세상이 판연하게 서로 다른 조선 사람끼리일 것이었다. 저쪽 사람들이 이쪽으로 올 수도 없고, 이쪽 사람들이 저쪽으로 갈 수도 없고, 그래서 마치 물고기가 살고있는 물속과 사람이 살고 있는 육지와가 다른 것처럼, 서로 오고가고 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이요, 그렇기 때문에 물고기와 사람이 서로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요 한 것이었다.
 
177
물고기가 살고 있는 물속…… 물속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 과연 그랬다. 그들은 물고기를 만지기 같은 적실히 차가운 것이 있는 사람 들이었었다.
 
178
이렇게 생각을 하자면 영호는, 다만 며칠이라도 이 집에서 이 사람들과 더불어 부지를 할까 싶지는 않았다.
 
179
그러나 영호 저는 참고 견딘다고 하더라도, 영자가 오빠마저 떨어져 저 차가운 물고기 ── 단속곳을 따라가 살리라고는 싶지 않았다.
 
180
그렇지만 영호는 또 둘러서도 생각을 하여야 되었다.
 
181
영호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고도 할 수가 있었다.
 
182
이 집에서 파의를 하고 돌아서서 나간다고 하면, 다시 이만한 자리라도 수월하게 생겨질지가 시방의 영호로는 대단히 의심스러웠다.
 
183
정거장 앞 큰 거리를, 여관집이라는 여관집은 깡그리 들렀고, 그 깡그리 거절을 당한 나머지가 아니던가.
 
184
그러니, 달리 영자와 같이 있을 수가 있고, 이렇게 물고기처럼 차갑지 않 고 한 거리가 요행 있을 터라면 모르거니와, 그는 고사요, 이만한 거리라도 다시는 영영 없을 터라면?……
 
185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어, 영호는 추렷이 영자의 고개 떨어뜨리고 섰는 양만 보고 있었다.
 
186
"너두 무척 답답은 하다! 보매 생기긴 살갑게 생긴 아이가, 어쩌문 그러니?"
 
187
단속곳이, 뒷마루로 가더니, 담배를 가지고 와 피워 물고 앉으면서 하는 수작 이었다.
 
188
"아니 글쎄, 멀리 타관으루 데리구 가는 것두 아니구, 다 같은 이리 부내서 살 걸 가지구, 마댈 게 무어 있니?"
 
189
"………"
 
190
"쯧, 모르겠다…… 난 보매, 느이가 느이 복을 터는 것 같다…… 우리 야머, 그 밥 멕이구, 그 옷 입히구 하면, 속내두 잘 모르구 하는 느이 아니라 두 사람 없겠니?"
 
191
"여기서 먼가요?"
 
192
"멀 게 어딨니? 남중정(南中町) 이라구, 5분두 못 가는걸."
 
193
"전 무어 상관 없어요. 우리 영자가, 어머닌 돌아가시고 아버진 잃어버리구, 그래 저마저 떨어져 있은다치면…… "
 
194
"그거야 느이가 안직두 고생을, 눈물 빠지는 고생을 못해봐 호강스러 그리는 거래두!…… 아니, 어머니 아버지 다 없구, 의지가지 없는 아이들 이 남매 꼭 함끼만 있자구 드니, 그런 입에 맞인 떡이 어디 가 있다드냐? 느 이집, 느이 부모 댐에야…… ""……… ""오빠아?"
 
195
영자가 가만히 그렇게 부른다.
 
196
그러고는, 숙인 얼굴을 드는 영호를 마주 보면서
 
197
"나, 가서 있으께, 오빠."
 
198
"………"
 
199
영호는 무어라고도 대답을 못하고 눈에 눈물만 가득 고인다.
 
200
영자도 눈물이 글썽거린다.
【원문】물고기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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