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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없어진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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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12. 없어진 아버지
 
 
3
영호가 어떡하다 잠이 깼을 때는 차는 쿵쿵거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4
잠이 덜 깬 결에도 영호는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알았다. 곧잘 찻 손님들 이초를 사서 깜깜한 찻간 안에 켰었고, 지금도 영호가 앉았는 통풍 창( 通風窓) 턱에 촛불이 켜져 있던 것이나 영호는 미처 그것은 보지 못하였다.
 
5
영호는 다음 순간,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다.
 
6
'웬일일까?’
 
7
영자는 영호에게 머리를 기대고 잘 자고 있었다. 이 영자와 영호가 나란히 앉았는 바싹 앞에다 이불 보퉁이를 놓고, 아버지는 일러로 향하여 그 위에가 걸터앉아 있었다.
 
8
그렇게 세 식구가 앉아서 이야기도 얼마를 하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버지가 거기에 없고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대신 어떤 양복 입은 사람이 걸터 돌아 앉아 있었다.
 
9
어디로 밀리어 갔을 리는 없고 참 이상하였다.
 
10
"아버지?"
 
11
가만히 불러보았다.
 
12
아무데서도 대답이 없었다.
 
13
조금 크게 불러보았다.
 
14
아버지의 대답은 역시 없고, 옆에서 고개를 처박고 졸던 시꺼멓게 생긴 젊은 사람이, 얼굴을 들고 짯짯이 영호를 보다가 묻는다. 영호는 들어보지 못한 사투리였다.
 
15
"그이가 느갑씨냐?"
 
16
너의 아버지냔 뜻인 것 같아 영호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였다.
 
17
"아까 물 묵으러 나간다꼬 나갔지? 아메?"
 
18
"그리군 안 왔어요?"
 
19
"안 왔응게로 없을 티지야."
 
20
그렇다면 차를 타지 못한 것인지도 몰랐다. 큰일이었다.
 
21
"비좁아서 비비떨쿠 둘오덜 못히서, 저, 그 어디가 백여 섰는지 아냐? 일어서서 불러보렴?"
 
22
늙수그레하고 특특한 무명 두루마기나마 두루마기까지 입고 한 촌 영감이, 또 다른 사투리로 할아버지처럼 상냥하게 옆에서 말하여 주었다.
 
23
그럴 때 마침 차도 어떤 정가장에 닿았다.
 
24
영호는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를 질러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불렀다.
 
25
대답은 그러나 없고 영자만 놀라 깨었다.
 
26
"아버지 없어? 오빠?"
 
27
"응!"
 
28
"어디 가구?"
 
29
영호는 대답 대신 소리를 더 크게 하여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30
어떤 실없는 사람인지가 저편 구석에서
 
31
"느이 아버지 없다!" 하는 소리만 한마디 일 뿐 아버지는 영영 없었다.
 
32
아버지는 어떡하다 차를 타지 못하고 대전에 쳐져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33
그렇다면 여기서 내려서 대전으로 도로 가야만 하였다.
 
34
울먹거리고 있는 영자의 손목을 잡아 이끌면서 일변 보퉁이를 집으면서 그러나 보퉁이가 세 개나 되는 것을 어떻게 할 줄을 몰라 허둥거리기만 하였다.
 
35
"내랠래?"
 
36
촌 영감이 물었다.
 
37
"내애…… 내려서 대전으루 가요."
 
38
"대전으로 가다니, 예가 어딘 종 알고 그러냐?…… 예가 두게( 豆溪) 닝개루, 대전까지 백리가 되는디, 이 밤중으 차가 있냐 걸어를 가냐? 짐은 이렇게 많구, 어린아 덜이…… "
 
39
"…… "
 
40
그도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덮어놓고 가기만 하면 아버지가 있을 대전과는 갈수록 멀어만지는 것이 아닌가.
 
41
"그럴 건 무어 있니?"
 
42
지금까지 그 이불보퉁이에 가 걸터앉았던 양복 입은 사람이 처음으로 이편으로 돌아앉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이 사람은 귀에 익은 서울말 같았다.
 
43
"이대루 타고 가서, 느이 내릴 정거장에서 내려 기대리면 될 것 가지구…… 그럭허면 느이 아버진 이 댐 차루 올 테니깐, 거기서 만나게 될게 아냐?"
 
44
이치는 그러하였다.
 
45
그러나 내릴 정거장이 어떤 정거장인지를 모르는 영호였다.
 
46
영호의 아버지도, 서울서 떠나면서까지도 향방이 작정이 없었다. 그래서 영호더러 도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한 것이 없었다.
 
47
"그 양반 말이 옳다…… 또 그러구, 급히서 그냥 아무 칸으나 올라타구, 시방 같이 가구 있는지두 몰르는디, 느가 예서 내리면 증말 느 아버지 잃어뻬리게?"
 
48
촌 영감이 양복 입은 사람의 한 말을 받아 그렇게 거들던 것이었었다.
 
49
양복 입은 사람은 그러나 고개를 꺄웃하였다.
 
50
"이 차의 다른 칸에 탔다면, 그새 벌써 몇 정거장을 지났다구, 여지껏 찾아오지 않았을 리가 있나요?"
 
51
"참, 그렇기두 허구만이라우!"
 
52
"가긴 어디까지 가니?"
 
53
양복 입은 사람이 영호더러 물었다.
 
54
"전라도, 요."
 
55
영호는 전라도라고밖에는 대답을 할 것이 없었다.
 
56
"전라도 어디?"
 
57
"……"
 
58
"모르니?"
 
59
"내애."
 
60
"저만이나 자란 녀석이 어디루 가는 것두 모르구 찰 타? 학교두 5,6 학년은 다니는 나인데."
 
61
"우리 아버지두 몰라요…… 거저 전라도루 농사하러 가는 길예요. 우린 전재민예요."
 
62
영호는 경황이 없는 중에도, 저만이나 자란 녀석이니 학교두 5,6 학년은 다니는 나이니 하면서, 변변치 못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 비위에 거슬리었다. 그래서 활활 그렇게 내쏘아 말을 한 것이었었다.
 
63
양복 입은 사람은 고개를 커다랗게 끄덕이면서
 
64
"오오! 전재민!…… 그렇다면, 그럴 수두 있지…… 이 사람 내 모루구 실수 했네, 허허허." 하고 미안한 듯이 웃었다.
 
65
영호는 그 사람이 얼른 그러는 것이 싫지 않고 좋았다.
 
66
그렇거니 하고 다시금 보면, 얼굴이랑 웃는 눈이 퍽 마음씨 착한 사람이 어보이기도 하였다. 나이는 한 서른이나 먹었을까 하고, 양복은 입었다지만 훌륭하게 차린 신사는 아니요, 헌 것이나마 단정하게 입었을 뿐이었었다.
 
67
영호는 이 사람이 그렇게 사람이 좋아보이고 웃기를 잘 하고 하는 것이 어쩌면 오선생님과도 같다고 생각하였다. 나이랑 얼굴 생김새랑은 물론 아무 데도 같은 데가 없지만.
 
68
그 끝에 영호는, 오선생님이 불현듯이 생각이 나기도 하였다.
 
69
"그래서 어디서 오니?"
 
70
"만주 간도서 살다 왔어요…… 작년 가을에 서울루 왔다 지 끔…… "
 
71
"그래, 이렇게 가다가 어디구 마땅한 데서 내릴 양으루 한 것인데 아버 질 잃어버렸군?"
 
72
"내애."
 
73
영호는 속이 풀어져 종알종알 대답을 하다가 그만 울먹울먹하면서 영자를 돌아다 본다. 영호는 저도 모르게 영자의 목을 끌어안아 주고 있었다.
 
74
영자는 큰 눈에 눈물만 글썽거리면서 울지도 못하고 오빠와 어른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75
"허허!"
 
76
양복 입은 사람은 고옴곰 생각을 하다가
 
77
"느이 아버지가 혹시 잘못 그만 서울루 가는 찰 도루 타잖었나 모르겠다?" 하더니 맨먼저의 그 시꺼먼 젊은 사람더러 묻는다.
 
78
"이애 아버지가 물을 먹으러 나가구 나서 얼마나 있다 차가 떠났소?"
 
79
"한 30 분 더 있다 떠났지라오."
 
80
"그럼, 물은 먹구두 넉넉했어…… 그런데 그게 이애 아버지가 물을 먹으러 나간 것이 서울차가 떠나가기 전인가요? 떠난 댐인가요?"
 
81
"나가고 나서, 죄매 있다 서울차가 뜨는갑습디다."
 
82
"틀림없어! 틀림없어!"
 
83
"그 말이 옳은가부요!"
 
84
"요새 그 대전 정거장이 아주 고약합넨다. 한 것이, 서울루 가는 차나 전라 도루 가는 차나 대가릴 한 방향으루 두루구 섰거든요! 그러나마 오늘 같은 날은 홈 하나의 양편에 가서…… 그런데 또 거진 같은 시간에 떠난다! …… 그래, 늘 다니는 사람두 일쑤 전라도루 갈 사람이 서울 찰 타는가 하면, 서울로 갈 사람이 전라도 찰 타군, 오던 길루 도루가군 하거든요!"
 
85
"나두 한번 당했고만이라우."
 
86
"거 보시우!…… 속내 아는 사람두 그럴세라, 이애 아버지는 전재민 으루, 첨 길인데다, 어둡긴 해, 그래 잘 분간을 못하겠는데 물을 먹구 오다 보니깐 차가 떠나 이 차가 그 차거니 하구서 그대루 올라탄 게야!"
 
87
"노형 말이 근리허우. 기맀기가 십상이지!"
 
88
촌 영감이 그렇게 맞장구를 쳤다.
 
89
"어버지, 어떡허니 오빠아?"
 
90
영자가 그러면서 필경 울음을 내었다.
 
91
영호도 따라 울음이 ── 참고 참던 울음이 터졌다.
 
92
양복 입은 사람은 입맛만 쩝쩝 다시고 앉아서 잠시는 무어라고 달랠 줄을 몰라 한다.
 
93
차는 그동안, 정거장을 떠 달리고 있었고.
 
94
얼마를 울고 있는데, 양복 입은 사람이 이애야 이애야 하면서 어깨를 흔들었다.
 
95
영호는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들었다. 그러나 자꾸만 느껴졌다.
 
96
흑흑 느끼면서도 일변 영자야 울지 마라, 아버지 인제 곧 만나지 하고 달래었다.
 
97
"일이 대단히 맹랑하게 됐다만, 하는 수 없구…… 너, 이럭허두룩 하렴?"
 
98
영호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양복 입은 사람의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99
"그래두 혹시 모르는 노릇이니, 이번 서는 정거장에서버틈 이 칸에서 내려가지구, 차칸마다 대구 느이 아버질 불러보아라, 알겠니?"
 
100
"내애."
 
101
"내래 서서, 차칸에다 대구 아버지 아버지 불러보란 말야…… 그러다가 차가 뜰 양으루 하거들랑 얼핏 이 칸이 됐던지 어떤 칸이 됐던지 얼핏 붙잡아 타구…… 날쌔게 타야 한다? 이 칸두 보아라만, 입씨까지 저렇게 꽉 차 놔서, 잘못 덤성거렸단 차 놓쳐요."
 
102
"내애."
 
103
"그러는 동안 네 동생은 우리가 데리구 있어 줄게시니."
 
104
"내애."
 
105
"그래, 차칸에 올라가지군, 그 칸을 찾아보는 거야…… 그러다가 차가 또 정거하 거들랑 냉큼 내려서 칸칸이 쫓아다니면서, 불러보구…… 알겠지?"
 
106
"내애."
 
107
"요행 그래서 느이 아버지가 이 차에 타구 있으면 다시 말할 것이 없구. 무어 십상 타지 않았기 쉬울 거 다만 서두…… ""……… ""강경( 江景)을 지나면 함열(咸悅) 버틈이 전라도니라, 함열, 황등( 黃登), 이리( 裡里) 그런데, 전라도루 들어서 이리가 젤 크니라. 클 뿐 아니라 전 라남 도루 가는 것이 아니구, 전라북도루 가서 농사할 고장을 찾는다면 누가 됐던, 이리서 내리는 게 순설 거다."
 
108
"그렇지라우 !……"
 
109
촌 영감이 옳은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들던 것이었었다.
 
110
"내라두 이리서 내리지라우, 조매 더 가서 징게(金堤[금제])나 증업( 井邑[ 정읍]) 두 있기사 허지만, 장차루 농사질 땅을 구하기루 하든지, 당장 지게 품팔이를 하기루 하든지 이리가 낫구말구!"
 
111
"노인은 아디 기시죠?"
 
112
"나는, 저, 전주 못미처, 삼리(參禮[삼례]) 사우."
 
113
"오오, 그러니깐 속낼 자상히 아시는군!…… 삼례두 농사 고장으루야 썩 좋죠…… "양복 입은 사람은 그러고는 다시 영호더러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114
"느이 아버지는 서울 찰 탔더래두, 서울루 가진 않는다. 가다가 찰 잘 못 탄 줄 알구서 이내 내려서 기대렸다 서울서 내려오는 찰 붙잡아 타구 대전 으루 다시 온다……와 가지군, 그땐, 전라도 찰 옳게 타구서 오면서 정거장 정거장 내려선 느일 찾아보구 찾아보구 할 께야, 이치가 그렇잖으냐?"
 
115
"내애."
 
116
"그렇게 더듬어오는 동안에, 이리에두 내려서, 느일 찾을 게 아냐? 그러니깐, 느이가 이리쯤서 내려서 정거장에서 기대리구 있어보는 거란 말이지. 알겠니?"
 
117
"내애."
 
118
"그리구 또 한가지는, 나두 이리서 군산 찰 갈아탈 테니깐, 내려서 느 일 데리 구 역장이라두 만나 느이가 당한 사실 이야길 하구서, 대전 정거장 으 루 전 활 걸어달라구 부탁을 하거든. 대전 정거장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아이들을 잃구서 찾는 사람이 없느냐구. 이 댐이라두 그런 사람이 있거들랑, 그 아이들은 이리 정거장에 와 기대리니, 곧 이리루 보내달라구…… 그 럭 허면 될 거 아냐."
 
119
"내애, 내애."
 
120
영호는 반갑고, 고만 하여도 마음이 조금은 뇌는 것 같았다.
 
121
"날짜가 좀 걸리는지 모르겠다…… 더디더래두 그렇게 해서, 느이 아버 질다시 만나기만 한다면야, 이를 말이겠느냐만서두, 느이 어린 오 누가…… "
 
122
그러다가 비로소 생각이 났던지
 
123
"아버지는 그렇거니와, 어머니는 어떻게 돼, 느이 둘이뿐이냐?"
 
124
"……"
 
125
영호는 새로이 눈물이 핑 돌면서,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 목멘 소리로
 
126
"돌아가 셌어요 간도서…… 떠날 양으로 하다가…… "
 
127
"온 절!"
 
128
양복 입은 사람은 안타까이 혀를 차쌌는다.
 
129
촌 여감도, 거 안 되었다면서, 영자의 머리를 쓸어준다.
 
130
영호는 몸부림이라도 치면서 울고 싶게, 어머니를 잃은 것이 안타깝고 원 통한 생각이 새로왔다. 이런 때에 더구나…… 어머니가 있었으면 그런 중에도 작히나 덜하랴 싶으면서……
 
131
"그러니, 글쎄, 하루 이틀이 걸릴지 열흘이나 그 이상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노릇을, 느이 어린 남매가 그동안을 어떻게 지낸단 말이냐?…… 돈인들 느이가 지녔을 까닭이 없구. 지녔기루서니 몇푼 되며…… "
 
132
양복 입은 사람은 저고리 속주머니를 더듬더니, 10원짜리 석 장을 꺼내어 영 호의 손에 쥐어 준다. 30원인다치면 10원어치 김밥 다섯 개씩을 사 두 아이가 한 때씩 요기를 하면서 하루를 살기에 넉넉한 돈이었다.
 
133
영호가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양복 입은 사람은 억지로 쥐어 주면서, 넉 넉 치 못한 처지라 약소하다는 말을 거듭하여쌌는다.
 
134
영호는 한 다른 눈물이 솟아올랐다.
 
135
맨 먼저의 시꺼먼 젊은 사람이 부스럭부스럭 돈을 꺼내어 10원짜리로 한장이나 내놓는다.
 
136
촌 영감이 주머니를 풀더니, 5 원 두 장을 꺼내서 영자의 주먹에 꼬옥 쥐어 준다.
 
137
촌 영감은 그러고는 가까이 서고 앉고 한 여러 사람들더러 커다랗게 연설하 듯 하는 말이었다.
 
138
"여보시요, 여러 손님네덜…… 시방 이 얘기를 듣고 아는 이두 있을 터지만, 야덜이 만주서 온 전재민이라우. 즈 어머니는 죽고, 즈 어버지 허구 오 다가 대전서 즈 아버지를 잃어빼렸대여. 어린 것덜이 어디루 갈디두 모르구, 옆으서 보자닝개 참 정상이 가긍히여 볼 수가 없소그려…… 거, 막걸리 한잔 받아 자신 폭 대구서, 멫푼씩덜 동정 좀 보태 주시요. 많이 히여서 적선이요? 단 한푼이라두 인심 나름이지."
 
139
말이 떨어지자 여기서 저기서 돈이 들어왔다.
 
140
대개는 10 원 한 장이었으나 간혹 두 장 석 장짜리도 있었다.
 
141
못 들은 척하고, 애먼 데를 보고 섰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좁은 속을 일부러 비벼 뚫고, 가까이 와 들여다보면서 돈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142
"자 옜주…… 그 어떤 애들이길래, 부모를 잃어버리구 그래 어떡허우 ?…… 나는 돈이라야, 노자 쓰구서, 우리 손자놈, 엿 사다 줄 영으로 했던거 이것뿐이우."
 
143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입 합죽한 할머니의 그런 소리가 들려오면서 중간 사람의 손을 거쳐 꼬기작꼬기작한 백원 한 장이 들어왔다.
 
144
거리의 동정심과 뱃간이나 찻간의 동정심은 판이히 다른 것이 있었다.
 
145
뜻도 아니하였던 이 감격스러움에 영호는 그만 가슴이 벅차 영자의 목을 얼싸안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146
사람들은 영호가 보기에도 결코 부자 사람들이나 훌륭하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옷 차림차림이랑, 거친 살결이랑, 다같이 가난하고 명색도 없고 한 사람 들이었다.
 
147
서울서 삼청동으로 오선생을 찾아가던 맨 첫날, 좋은 양복에 좋은 옷으로 차리고, 좋은 구두 신고, 금반지 보석반지 끼고, 어린 아이를 털로 싸고 하여 손목 잡고 나오던 그런 훤치르하고 훌륭하여 보이는 사람…… 그래서 이상히도 조선 사람으로 여겨지지를 않던 사람…… 그리고 그 뒤로도 서울 거리에서 얼마든지 많이 보았고, 볼 적마다 종시 조선 사람으로 여겨지지를 않던 사람…… 그런 사람들은 이 찻간에는 한 사람도 있지 않았다. 앉지도 서지고 못하게시리 비좁고 냄새 나고 더럽고 한 이 곳간차에, 그런 사람들이 타고 있으리라는 것은 생각조차도 못한 일이었다.
 
148
부자나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서 다같이 가난하고 하잘것없고 한 사람 들이면서, 마음들은 그와 같이 연하고도 따뜻한 것이 영호는 더욱 가슴에 저리었다.
 
149
옆에서 세시가 다 되었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지 얼마 아니하여 차는 정거장에 닿았다.
 
150
연산(連山)이었다.
 
151
영호는 영자를 달래어 놓고 차에서 내렸다.
 
152
짧은 초여름 밤이라지만 세시는 아직도 깜깜하였다.
 
153
영호는 찻간으로 대고 아버지 아버지 소리껏 부르면서 홈을 달렸다.
 
154
영자는 큰 눈을 벙하니 뜨고 앉아 귀를 기울인다.
 
155
"아버지이! 아버지이!"
 
156
부르는 오빠의 목소리가 가암감 멀어간다.
 
157
조금 있다, 가암감한 소리는 차차로 커지면서 가까와왔다. 그러다가 다시 또 차차로 멀어갔다.
【원문】없어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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