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이런 어마어마한 표제를 내놓으니까 무슨 굉장한 논진(論陳)이나 펴는가 해서 눈을 홉뜰 사람도 있겠지만 실은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쥐 한마리가 뛰어나올 동 말 동이다.
4
동경에서 한바탕 우당퉁탕 야단 법석이가 나더니 정승판서들이 싹 갈리었다.
5
거기 새로 들어선 당세 영의정이 누군고 하니 전에 나는 새도 떨어트리던 큰 외교관이요 '붉은 러시아‘에 대사로 가서 있었고 그러고 돌아와서 외무대신을 하더니 '공작 공작‘하고 불온한 적색숙어(赤色熟語)를 냅다 내두르던 광전(廣田)대감이다.
6
그래 조금 있더니 계엄령이 그대로 있는 채 일비곡좌(日比谷座)라든가 하는 아호(雅號)가 붙은 제69특별의회가 열렸다.
7
나에게는 천하에 싱겁기로 의회 덮어먹을 것은 없다. 의회가사가 많이 실린 신문을 보면 원외단(院外團)이 유도로 누구를 메어꽂았다든가 뱀을 집어던졌다든가 하는 그런 것이나 있나 하고 찾을 뿐이지 그저 보통거라면 하품이 나고 보기가 싫다.
8
“무산당(無産黨) 대의사(代議士)가 열여덟이나 나왔다고?”
9
그래 다른 거야 흥미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터인데 이번 의회에서 주거니받거니 한 것 가운데 ‘뱀 던진 사건’만큼이나 내 눈에 띈 것이 하나 있어 그것을 뇌살거리느라고 이 덜씬 큰 표제를 장만한 것이다.
11
어느 대의사가(이름은 잊어버렸다) “왜 금년의 메이데이를 금지하였느냐?”고 질문을 하니까 광전대감이 답변한 가운데 “그런 서양 흉내는 아니 내도 좋다”고 했다 한다.
12
요즘 비상시(非常時) 일본의 비상시 내각의 비상(非常識) 총리대신다운 대답일 법하다. 그리고 퍽 재미스러운 대답이다.
13
그런데 이번 의회에는 한 독특한 제한이 있었으니 그새까지는 '하오리‘에 '하까마’를 입은 그런 예복으로도 출석케 하던 것을 일체 금하고 반드시 서양예복을 입게 한 것이다.
14
그래서 무산당패의 대의사들은 여간만 쩔쩔맨 게 아니고 여간만 광전 태감의 '서양흉내‘ 내기 좋아하는 것을 빈정댄 게 아니었다고 한다.
15
그런 판에 “메이데이는 서양 흉내”라고 답변을 했으니 재미가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더 재미가 있는 수수께끼다.
16
무엇이냐 하면 광전대감이 그렇게 의젓이 서서 “메이데이 같은 그런 서양 흉내는 아니 내도 좋다“고 답변을 하는 것을 그 대의사나 혹은 다른 대의사가 얼핏 “우리가 시방 이러고 있는 의회는? 이것은 서양 흉내가 아니고 무엇이냐?” 이렇게 물었다면? 아주 재미있었을 것이다.
17
이 아주 재미있는 질문에 광진대사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꼬?
18
이게 궁금해서 나는 생각을 해본다. 설마한들 “아이 똔 노!”라고는 아니했을 것이고 혹 대감은 외교관에서 올라온 분이니까 척 외교사령을 써서 “그러니까 ‘기가이’(의회)라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답변을 했을까?
19
내 하숙이 바로 그 대감의 집 옆이라면 시방이라도 가서 물어보겠는데 여기는 너무 멀어서 안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