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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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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8.9~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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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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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주가 자기의 가정과 남편 및 소생 자식 남매를 버리고 집을 뛰쳐나온 것은 해방1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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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고광호와 내외가 된 지 10년, 일본 정치의 제약 많은 생활을 내외가 서로 돕고 격려하며 잘 겪어왔다. 이리하여 1945년 8월 15일 국가 해방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국가 해방으로 과거의 권력자요, 세도자이던 일본이 이 땅에서 물러가자,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모두 이 땅 본토인에게 개방되었다. 보통 사원은 과장이나 혹은 껑충 뛰어서 사장으로, 관리는 부장으로, 중학 교원은 대학교 수나 중학 교장으로…… 이렇듯 과거에는 이 땅 본토인(주인)에게는 폐쇄되어 있던 지위가 모두 주인에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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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가 광호와 결혼할 때는 광호는 갓 대학을 나와서 어느 중학교원이 되어 있던 때였다. 그 이래 10년, 정치적 구속과 경제적 부자유의 아래서 젊은 내외는 용히 싸우며 겪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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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국가 해방의 날을 맞은 것인데, 한 10년 중학 교원을 지낸 사람은 모두 교장이나 대학교수로 쑥쑥 자리가 변동되는 이 경기 좋은 시기를 만나서도 남편 광호는 마치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움직일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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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동창 동무들의 남편은 모두 활발하게 움직여 혹은 고관 혹은 신흥 부호로 전환하여 그들의 아내인 은주의 동무들은 모두 출입에는 자동차요 손가락에는 반지를 번쩍이는 호화로운 신분으로 승차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꽁하고 주변성 없는 남편의 아내인 은주는 여전히 이 호화로운 날에도 한 가난한 중학 교원의 아내로 밤낮 가난에 시달리며 놀랍게 올라가는 물가에 위협되며 움직임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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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자존심이 세고 남보다 야심이 많고 남보다 호화욕이 센 은주는 참기 힘든 노릇이었다. 그래서 은주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고 격려하고 충동하고 별별 수단을 다 써보았다. 그러나 원래 주변성 없고 꽁한 선비의 타입인 남편 광호는 10년 일색인 중학 교원 생활을 싫어할 줄도 모르고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양대로 주저앉아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은주는 그의 결심을 한 것이었다. 자립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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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동창 동무로 과부 혹은 노처녀로 있는 사람들도 그래도 무슨 활동을 하여 무슨 회의 회장이거나 간사로 활약하여 신문지상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고 실업계에 활동하여 성공한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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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황을 볼 때에 비교적 야심 많고 욕심 많은 은주는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남편을 충동하고 격려하고 하다못해서 종내 이 무능한 남편의 집에서 뛰쳐나와 스스로 제 길을 개척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야심과 허영심의 앞에는 남편과의 10년간의 성애도, 한 쌍 소생에게 대한 모성애도 그림자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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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해방과 동시에 나도 부부 관계에서 해방된다는 일종의 비장한 결심으로써 은주는 ‘가정’이라는 사슬을 끊어버리고 집을 뛰쳐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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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는 남편의 집을 뛰쳐나와서 당분간(장래 방침이 확립될 때까지)의 몸을 고녀 시절의 가장 가깝게 지내던 헤라의 집에 의지하기로 하였다. 해방 후 수천만 원의 재산을 쌓아올린 새 부자 남편을 가진 행복된 동무 헤라는 손가락에 몇 캐럿이라는 커다란 금강석 반지를 낀 손을 두르며 반가이 은주를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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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이래 10년, 단 하루를 남편과 아이 없이 자본 일이 없는 은주는 첫날 밤은 헤라의 집 널따란 방에서 홀로 지내기가 무한 고적하고 괴로웠다. 고적하고 가지가지의 생각 때문에 잠 못 드는 한밤을 은주는 헤라의 행복된 생활을 부러워 여기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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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대에는 같은 계급의 딸로 똑 같은 지위로 지내던 헤라가 오늘날은 은주와는 천양의 차이로 식모라 침모라 찻집이라 찬모라 별별 명색의 하인을 턱으로 부리며 호화스러운 양옥의 여왕으로 호강하는 모양을 볼 때에 남편 광호의 10년이 하루 같은 꾀죄죄한 꼴과 그것을 개척해보려는 아무 노력이나 활동도 없는 무력한 꼴과 대조되어 은주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자기도 장차 무슨 활동을 하여서 무슨 성공을 하여, 성공의 호화로운 날에, 자랑스러운 얼굴로 예전 버렸던 남편을 다시 품에 불러, 그때 다시 이룰 가지가지의 공상을 해가면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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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광호는 역시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아내가 자기를 버리고 간 것을 안 뒤에 한두 번 스스로 아내를 찾아와서 같이 돌아가기를 종용해보았고 함께 가자고 조르기도 해 보았다. 사람을 보내서 권고도 해보았다. 그러고는 그만 은주에게 거절당하고는 그만 단념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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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로도 10년 산 정이 있고 지금도 남편이 미운 사람은 아닌지라, 만약 남편이 와서 적극적으로 데려가면 마지못하는 체하고 끌려갈 은주의 배짱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몇 번 소극적으로 권고해보다가 단념해버릴 때에 은주는 도리어 내심 통곡하면서 자기도 아주 단념해버리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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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자기의 장래 방침이 확립될 때까지 헤라의 집에 기류하고 있는 동안 은주는 표면 몹시 호화롭고 아무 부족 없는 헤라의 속살림에 커다란 결함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생활에는 아무 부족없고 호화롭고 자유로운 헤라였다. 그러나 은주가 묵고 있던 두석 달 헤라의 남편 되는 사람을 본 적이 댓 번 못 되었다. 헤라는 자기의 자존심과 체면상 그런 내색은 보이기를 피하였지만 헤라의 남편은 첩을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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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생김이며 지식이며 모양이며 아무 나무랄 데가 없는 헤라는, 아내를 두고 따로 첩을 둔 헤라의 남편의 심리도 은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남편을 두고도 과부 생활을 하는 헤라의 사정도 동정할 만하였다. 남편을 버리고 나온 은주와 남편을 두고 그러면서도 첩에게 빼앗긴 헤라의 두 여인은 좋은 대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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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명 남녀 비복에게 둘러싸여 매우 호화스러운 여성 헤라였지만 헤라에게는 아내로서의 불만이 있었다. 헤라의 불구적인 생활을 볼 때에 은주는 자기가 벅찬 가정의 옛 남편, 결혼 이래 단 하루를 아내와 따로이 지낸 일이 없는 남편을 회상하고는 일종의 긍지를 느끼는 일도 간간 있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행복(경제상의)은 헤라가 나을지 모르나 아내로서의 행복은 지난날의 자기가 훨씬 나았음을 때때로 흥분 섞인 마음으로 느꼈다. 그것은 비록 초라한(경제적으로)생활이요 초라한 의식주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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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헤라가 어떤 날 은주에게 조용히 무슨 의논을 하기를 요구했다. 그사이 수십 일 헤라의 얼굴에는 분명 무슨 당황한 기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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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의 남편 되는 사람이 무슨 혐의로 형무소에 수감되었다는 것이었다. 헤라는 누차 무슨 오해에서 생긴 일이라고 변명했지만 소위 악질 모리배로 인정되어 악질 모리 사건으로 기소가 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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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와 은주의 동창 동무의 남편 되는 사람이 그 모리 사건을 맡아보는 고관이었다. 헤라는 은주더러 그 동창 동무(고관 부인)를 찾아서 사정을 잘 말하고 돈은 몇 천만 원이 들고 간에 사건이 무사히 결말짓도록 해주기를 부탁해달라고 당부하였다. 헤라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처지라 더욱이 장차의 재생 출발을 위해서는 여러 방면에 교제가 있어야 할 은주는 이 책임을 지고 옛날 동창의 남편인 고관의 집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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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가 찾아간 그 집에도 한 비극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고관도 어떤 수희 사건으로 그사이 문초를 받다가 오늘 아침 수감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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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는 곳곳에 냉철한 태도를 유지하였지만 헤라와 성격이 다른 그 집 주부는 당황 낭패하여 은주를 맞아 울며불며 하소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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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사오천 원으로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며 더욱이 고관으로서의 체면과 체재를 유지하느냐. 현 정부의 고관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하여 월급 이외의 수입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모리 배의 돈 좀 먹었으면 어떠냐는 것이 그 동무의 하소연의 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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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박봉 생활자답지 않은 그 집 굉장한 저택이며 호화로운 가구며 그 동무의 차림차림을 보며, 해방 이래 얼마나 먹었으면 옛날 가난하고 가난하던 이 집이 이다지 굉장하고 우렁차게 되었을까 속으로 혀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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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는 비로소 느꼈다. 해방 이후 갑작양반(고관) 갑작부자들이, 그것이 부럽다 볼 때에는 다만 부럽기만 하더니 그들의 속살을 들여다 보니 그것은 바늘방석에 앉은 살림이요 모래 위에 세운 집의 살림으로서 늘 전전긍긍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살림이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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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은주 자기의 지난 생활(부부 시절의)을 회고하건대 그것은 비록 가난하여 금강석 반지에 자동차 생활은 못 되나마 누구에게든 버젓하고 어디를 내놓아도 부끄럼 없는 살림이었던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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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옛날 살림의 고결한 인격이 새삼스레 그리워졌다. 무능하고 주변성 없다고 한때 경멸하고 박차기는 하였지만 10년을 하루같이 교육에만 전념하고 다른 데 눈 거들떠보지 않는 그 신념과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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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는 아내와 자식밖에 모르고, 사회에서는 충실한 교육자로, 국가에서는 바른 국민으로 오직 내 길에만 충실하던 남편의 고결한 인격은 금강석으로 바꿀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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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롭게 호강하던 동무들이 혹은 몰락의 비경에 떨어지고, 혹은 몰락을 전전긍긍히 겁내며 겁내는 동안, 자기는 그 남편 앞에 서면 비록 물질상의 부자유는 있을지나 마음만은 언제까지든 여유와 긍지를 느끼며 지낼 수가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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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에게는 대강의 사정을 편지로 알리고 은주는 어떤 여관에 투숙하여 20여 일간 생각한 뒤에, 머리를 숙이고 남편에게 사죄하고 다시 새 가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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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이 센 은주로서는 좀 괴로운 일이었으나 정의와 진리 앞에 숙이는 머리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결의로써 남편의 집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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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무 나무람 없이 한때 자기를 박찼던 아내를 달가이 다시 받았다.
【원문】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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