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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제2 충돌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제2 충돌

1
파제삿날 아침에도 간밤 2시에나 취침한 영감이 첫새벽에 일어나서(이날은 사랑에서 자는 사람이 많아서 영감은 안방에서 잤다) 아침 술 석 잔을 마시고 사랑으로 나갔다. 밤을 새다시피 한 젊은 사람들을 들쑤셔 깨우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감이 사랑으로 막 나가자 사랑 편에서 방문을 우당탕퉁탕 여닫는 소리가 나고 지껄지껄하는 소리가 안방에 앉았는 수원집의 귀에까지 들렸다. 부엌에서 어제 휩쓸어두었던 그릇을 설거지하던 손주며느리가 깜짝 놀라서 귀를 기울이다가 옆에서 쌀을 일고 섰는 어멈더러 나가보고 들어오라고 재촉을 하려니까 안방에서도,
 
2
"어멈, 사랑에 좀 나가보고 들어오게."
 
3
하고 소리를 친다. 사랑으로 내닫던 어멈은 단걸음에 되짚어 뛰어들어오면서,
 
4
"에구 안방마님! 어서 나가보세요. 큰일났에요. 영감마님께서 댓돌에 미끄러져서 넘어지셨에요."
 
5
하고 소리를 친다.
 
6
"무어?..."
 
7
안방에서는 수원집이 경풍을 해서 뛰어나와서 고무신짝을 거꾸로 꿸 듯이 하고 사랑으로 내달았다. 손주며느리도 뒤따르고 어멈도 다시 줄달음 쳐서 나갔다. 안방 계집애년도 뛰어나왔다. 그 바람에 안방에서는 어린애가 잠을 깨어 킹킹대며 울기 시작한다.
 
8
건넌방에서 아침잠이 뭉긋이 들었던 덕기는 그제야 눈이 뜨여서,
 
9
"왜들 그러니?"
 
10
하고 미닫이를 여니까 아랫방에서 모친이,
 
11
"어서 사랑에 나가봐라. 할아버니께서 넘어지셨단다."
 
12
하고 소리를 친다. 모친은 어제 와서 같이 잔 딸이 학교에 가느라고 머리를 빗는데 일어나는 길로 뒷머리를 땋아주고 앉았었기 때문에 얼른 일어서지 못하였다. 한방에 자던 여편네들도 이제야들 일어나 앉아 씩둑거리고 있다가 매무시도 채 못해서 곧 나오지들을 못하였던 것이다.
 
13
덕기가 바지저고리만 꿰고 뛰어나간 뒤에야 비로소 모친과 덕기 누이 덕희가 사랑으로 나갔다.
 
14
덕기 모친은 먼저 나갔단 사람들과 사랑 문간에서 마주쳤다. 수원집은 암상이 나서 못 본 척하고 지나쳐버린다. 늦게 나온다고 못마땅해서 그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덕기 모친도 심사가 났다.
 
15
"좀 어떠시냐? 다치시지는 않으셨니?"
 
16
그래도 노인이 빙판에 넘어졌다니 애가 씌어서 시서모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며느리더러 물어보았다.
 
17
"다치신 데는 없에요. 들어가 누웠에요."
 
18
사랑방에 누운 영감도 며느리가 늦게 나와 보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래도 며느리는 아들보다 낫게 생각하는 터이라 내색은 보이지 않고 며느리가 문안 겸 인사를 하니까,
 
19
"응, 허리가 좀 아프지만 별일 있겠니?"
 
20
하고 너서 손주딸을 쳐다보고 온유한 낯빛으로,
 
21
"학교 가기 곤하겠구나? 그저 잤던?"
 
22
하고 말을 붙인다. 그저 자리 속에 있어서 이제야 나왔나 하고 묻는 것이었다.
 
23
"아녜요. 머리 빗느라고 어머니가 막 땋는데 넘어지셨다죠."
 
24
하고 덕희는 어리광삼아 생글 웃고 옆에 섰는 오라비를 돌려다보고,
 
25
"오빠 같은 게름뱅이나 이때까지 자지요."
 
26
하고 놀린다.
 
27
"예끼 년! 이때까지 머리를 제 손으로 못 땋는단 말이냐?"
 
28
할아버지는 이런 소리를 하고 웃었다.
 
29
"저두 땋는답니다. 하지만 숱이 많아서... 그리고 제 손으로 땋으면 하이칼라가 못 돼서요."
 
30
하고 덕희는 또 색색 웃는다.
 
31
"조년 벌써 하이칼라만 하려 들고... 그럼 학교 안 보낸다."
 
32
조부는 재롱을 보느라고 연해 웃으며 대거리를 하여준다. 방 안에는 웃음소리와 화가가 가득하였다. 사실 이런 때의 이 노인은 천진한 어린아이와 같이 백발 동안이 온화하였다.
 
33
조부가 몸을 추스르다가 허리가 아픈 듯이 에구구하며 눈살을 찌푸리니까,
 
34
"너 좀 주물러 드려라."
 
35
하고 모친이 시키는 대로 덕희가 가까이 가려니까,
 
36
"그만 두어라. 학교 갈 시간 늦는다. 의사를 부르러 갔으니까 이제 올게다."
 
37
고 하며 안으로 쫓아 들여보내고 어서 수원집을 나오라고 불러내었다. 바지와 마고자에 흙이 묻어서 수원집은 가림것을 가지고 사랑으로 나왔다.
 
38
"어쩌면 집안이 그렇게 떠드는데 모른 척하고 들어앉았드람..."
 
39
수원집은 영감 들어보라고 혼잣말처럼 며느리 모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40
"계집애년 머리를 땋아주느라고 그랬다지만 아무러면 상관 있나."
 
41
영감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수원집은 싫었다. 맞장단을 쳐주어야 좋을 것인데 며느리 역성을 들어주는 것 같은 말눈치가 싫은 것이다.
 
42
"내일 모레면 시집갈 년의 머리를 일일이 빗겨주다니 공연한 소리지. 아까부터 약주상을 들여가고 해야 모른 척하고 들어앉어서..."
 
43
수원집은 아까부터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44
"그야 어제 늦게 자고 또 새애기가 없으면 모르거니와 그애가 나와서 일을 하니까 그렇겠지."
 
45
영감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수원집은 점점 더 뾰롱통하여졌다.
 
46
영감은 허리가 아파서 옷은 이따가 갈아입는다 하여 수원집은 마지못해 잠자코 영감의 허리만 주무르고 앉았다.
 
47
며느리가 늦게 나왔다고 시비를 하면서도 허리를 주무르기는 귀찮았다. 더구나 한통이 돼서 며느리 흉하적을 하지 않는 것이 못마땅하니까 더욱이 싫증이 났다. 그건 고사하고 영감이 넘어졌다 할 제 그렇게 허겁을 해서 뛰어나오면서 얼마나 애가 키었던가? 지금 이 당장에는 제 생각이 어떠한가? 이보다 좀더 몹시 다쳐더면 생각이 어떠하였을꼬... 모를 일이다.
 
48
의사가 오니까 수원집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의사나 누구나 내외를 하는 것이 아니니 진찰하는 것을 보고 들어가도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영감에게도 없지 않았다.
 
49
의사는 그리 대단치는 않으나 혹시 삐었는지 모르니까 반듯이 누워 있는 것이 좋겠다 하며 약을 바르고 찜질을 해놓고 갔다.
 
50
안방에서 아침밥을 먹을 제 여편네들은 영감님 넘어지신 것으로 떠들어댔다.
 
51
"그래두 그만하시니 다행이지, 노래에 빙판에 넘어지셨으니 속으로 골탕을 잡숫거나 하였더면 어쩔 뻔했어?"
 
52
한 여편네가 이런 소리를 하니까,
 
53
"저기서 누구도, 최사천 영감 말야, 그 영감은 빙판도 아니고 댓돌에서 내려서다가 허리를 뼈서 석 달을 꼼짝 못하고 누웠었대..."
 
54
하고 침모가 대꾸를 한다.
 
55
"음 참 최사천 영감?...어디 댓돌에서 넘어졌나? 젊은댁을 너무 바치다가 어느 날은 자리 속에서 그렇게 되어서 이내 못 일어났는데."
 
56
하고 돌아간 마님의 친구 마누라가 웃었다.
 
57
"마님두- 무에 그렇게 되었단 말씀예요."
 
58
하고 침모도 따라 웃는다. 방 안에서는 수원집과 주인 고식만 빼놓고 모두 웃었다. 수원집은 얼굴이 빨개졌다.
 
59
"그래도 퍽 정정하신 셈야. 십년은 넉넉히 더 사실걸."
 
60
당숙모 마님이 이런 소리를 한다.
 
61
"하지만 마님의 주의를 해드려야지."
 
62
침모가 또 짓궂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수원집은 점점 더 듣기 싫었다.
 
63
"강기로 버티시기는 하시지만 이제는 아주 그전만 못하세요. 연치도 연치시지만..."
 
64
덕기 모친은 별 뜻 없이 이런 소리를 하였지만 수원집은 귀에 예사로이 들리지 않았다.
 
65
"그래두 더 사셔야지 첼량 많것다, 저런 귀한 마님과 따님이 있것다..."
 
66
또 누군지 이런 소리를 한다. 그러나 '저런 귀한 마님'이란 말이 또 수원집의 귀를 거슬렸다. 아까부터 모두들 자기만을 놀리는 것 같아서 점점 더 심사가 좋지 못한 것이다.
 
67
"더 사시기로 무얼 시원한 꼴을 보시겠에요. 아무튼 노인네는 언제나 돌아가실 때 되건 편안히 주무시듯이 돌아가시는 게 상팔자겠에요."
 
68
덕기 모친은 또 이런 소리를 하였다. 물론 무슨 생각이 있어 한 말은 아닐 것이요, 자기가 세상이 상상하니까 무심코 한 말일 것이나 수원집은 매섭게 눈을 뜨고 쳐다본다.
 
69
"말을 해두 왜 그렇게 해!"
 
70
수원집은 손위 며느리의 밥술이 들어가는 입을 노려보다가 한 마디 툭 쏘았다.
 
71
"무엇을 말인가?"
 
72
덕기 모친에게는 당숙모요, 수원집에게는 사촌 동서 뻘인 노마님이 영문을 모르는 듯이 탄한다.
 
73
"아니, 글쎄, 말예요. 어서 돌아가셨으면 좋을 것같이 말을 하니 말씀이죠."
 
74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돌아가시라고 했단 말야?"
 
75
하고 덕기 모친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76
"사람 잡겠네!"
 
77
하며 코웃음을 치고 먹던 것을 먹는다. 두 암상이 마주쳤으니까 그대로 우물쭈물하고 싱겁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다른 여편네들은 말리려고도 아니하고 물계만 보고 있으나 손주며느리는 애가 부덩부덩 탔었다.
 
78
"그래 내 말이 틀리단 말이야? 그야말로 참 사람 잡을 소리 하네. 나만 들었으면 모르겠지마는 다른 사람은 고만두고 쟤(손자며느리를 가리키며)더러 물어봐요. 죽을 때가 되건 어서 죽어야 한다고 당장 한 소리를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
 
79
수원집은 밥술도 짓고 아주 시비판을 차리는 모양이다.
 
80
"그래 내가 아버니께 돌아가시라고 그랬어? 아버니께서 더 사신대야 시원한 꼴을 못 보실 테니까 그게 가엾으시다는 말이지."
 
81
덕기 모친은 말끝이 잡힌 것이 분하기도 하거니와 해혹하기가 좀처럼 어렵게 된 것이 더 분하였다.
 
82
"왜 시원한 꼴을 못 보신단 말이야? 누구 대문이기에?"
 
83
"누구 때문이기에라니? 나 때문이란 말이야?"
 
84
덕기 모친도 발끈하였다.
 
85
"자기 입으로도 그리데. 아드님을 잘 두었다고,."
 
86
"아드님을 잘 두었든 자기가 나놓았으니 걱정인가! 누구나 내 똥 구린 줄은 모르구!"
 
87
수원집은 얼굴이 파래지며 달려든다. 아닌게아니라 덕기의 모친은 급한 성미에 감잡힐 소리를 또 무심코 하여 놓고 보니 말문이 꼭 막히고 말았다.
 
88
"왜 이 집 안방차지가 하고 싶어서 사람을 잡는 거야? 안방에 들고 싶거든 순순히 내놓으라지, 왜 사람을 잡아흔들어서 내쫓지를 못해서 야단이야!..."
 
89
"누가 안방 내놓으랬어?"
 
90
"그럼 무어야? 무에 구립다는 거야?"
 
91
수원집은 점점 악을 쓰고 덤비나 덕기 모친은 잠자코 않았을 뿐이다.
 
92
"어디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런 말인가, 처음에 한 말도 무심코 한 말이요 말다툼이 되니까 자여 그런 말이 나온 것이지 잡자면 모두 시비가 되는 것이지."
 
93
당숙모가 이렇게 변명을 해주었다.
 
94
"그러기로 무슨 까닭이 있어서 그러는 게지? 응! 내가 소년 과부가 되어 판자를 고쳤다고 깔보고 그러는 것이지?..."
 
95
수원집은 바르르 떨다가 그만 울음이 확 쏟아지고 말았다.
 
96
"팔자가 사나워 이렇게 와 있기로 나중에는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다 듣고..."
 
97
울음 섞인 푸념을 하려니까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새며느리가 내다보니 시아버지다. 여편네들은 우우 나와서 인사를 하였으나 싸우던 두 사람만은 앉은 채 있었다.
 
98
상훈은 딸이 학교에 가는 길에 기별을 해서 급히 병문안을 왔으나 부친이 잠깐 눈을 떠보고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자는 척하기 때문에 곧 나와서 안에 들른 것이었다.
 
99
"추운데 어서 들어오게."
 
100
하며 당숙모가 권하는 데는 대꾸도 아니하고,
 
101
"왜들 그러니?"
 
102
하며 축대에 내려섰는 며느리를 바라본다.
 
103
"아녜요..."
 
104
안방에서는 한층 더 섧게 운다.
 
105
상훈은 벌써 알아차렸다.
 
106
"왜 지각없이 그 모양이야? 이집 저집으로 다니면서!"
 
107
안방에다 대고 자기 마누라를 꾸짖고 다시 며느리더러,
 
108
"어서 너 어머니 집으로 가시라고 해라."
 
109
하고 상훈은 훌쩍 나가버렸다.
 
110
덕기 모친은 영감이 가는 기척을 듣고 건넌방으로 건너가 버린다.
 
111
수원집은 손님들이 가도 변변히 인사 한마디 없이 입을 봉하고 있다가 다 가기를 기다려서 사랑으로 나갔다.
 
112
영감은 운 눈이 벌겋고 눈등이 통통히 부은 것을 보고 놀랐다.
 
113
말이 없이 옆에 족치고 앉은 것을 한참 보다가,
 
114
"왜 그래?"
 
115
하고 물으니까,
 
116
"저는 여기 있을 수 없어요. 여관 구석으로든지 어디로든지 나갈 테야요."
 
117
하고 눈물이 글썽글썽하여진다.
 
118
영감은 놀라면서도 화가 났다.
 
119
"무슨 주책없는 소리야! 왜 그러는 거야? 말을 시원히 해야지?"
 
120
하고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다.
 
121
"나중에 차차 아세요. 전 어쨌든지 나가요."
 
122
하고 수원집은 참 정말 당장 나갈 듯이 막 잘라 말을 하고 일어선다.
 
123
영감은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 없는 몸이다. 성한 몸 같으면 급한 성미에 벌떡 일어나서 머리채라도 휘어잡을지 모르나 꿈쩍할 수 없다.
 
124
"거기 앉어! 사람이 왜 그 모양이야?"
 
125
하고 몸을 놀리지 못하는니만큼 소리만 고래고래 높아간다. 수원집은 잠자코 반간통이나 떨어져 앉았다.
 
126
"누구하고 싸운 거야? 싸웠기로, 아무리 화가 나기로 내가 이러고 누웠는데 빈말인들 나간다는 소리가 어떻게 나오느냐 말야?"
 
127
며느리와 평시부터 맞지 않는 것은 알지만 며느리와 싸웠느냐고 묻기는 싫었다.
 
128
"제가 아무리 이렇게 이 댁에 들어와 있기로 어쨌든 아랫사람인데 아랫사람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먹고서야 어떻게 한신들 붙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129
"누가 무어라기에?"
 
130
"덕기 어멈이 영감님은 어서 돌아가셔야 하고 저는 제 똥이 구린 줄을 모른다고 제멋대로 야단이니 이 댁은 며느리만 사람입니까?..."
 
131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럴 법이 있나? 그 애가 그런 애는 아닐 텐데..."
 
132
영감은 노기를 감추고 도리어 나무라는 어조이다.
 
133
영감은 그렇게밖에 할말이 없었다.
 
134
"그래도 영감께서는 그런 소리를 하시죠. 내 말씀은 또 못 믿으셔도 며느님 말은 믿으시겠다는 말씀이죠?"
 
135
또 발끈하며 대들었다.
 
136
"잔소리 마라. 이 집안에는 그래 어른도 없고 예절도 없다는 말이냐? 그래 그런 소리를 좀 들었다기로 나간다는 것은 무슨 당치않은 소린가. 이 집안에는 덕기 모만 있고 덕기 모를 바라고 이 집안에 와서 사는 거란 말인가? 생각을 좀 해 보아! 그만 요량은 들었을 게 아닌가?"
 
137
영감은 천천히 나무랐다. 수원집은 당신 말씀이 옳소이다 하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새삼스럽게 이 영감의 말에 감동이 되어서 마음을 돌렸으랴. 처음부터 나간다는 것은 한번 트집을 잡고 말썽을 만들어 보자는 것인 거야 영감도 짐작 못하는 것이 아니다.
 
138
"그리고 아무러면 나더러 어서 죽어라고야 할까. 설사 그런 악독한 생각이 있기로서니 제 속에 넣어둘 게지 입 밖으로 낼 리야 있나. 그래 당장에 내 귀에 들어울 것을 알면서 자네 듣는데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이 있단 말인가?..."
 
139
역시 며느리 두둔만 하는 것같이 들렸다.
 
140
"그런 생각이 노상 마음속에 있으니까 무심중에 나오는 것이지요. 암상 많은 사람이 발끈하면 무슨 말은 아니할까요."
 
141
그렇게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하다. 영감은 잠자코 눈만 껌벅거리고 누웠다.
 
142
"그래 무엇 때문에 그 애가 나 죽기를 바란다던가?"
 
143
하고 말을 시켜보려 한다.
 
144
"무엇 때문은 무에 무엇 때문예요. 영감 돌아가시면 나는 자연히 밀려 나갈 테니까 그러면 제가 안방차지를 하고 아들 내외와 재밌다랗게 살자는 것이죠."
 
145
듣고 보니 역시 그럴 듯도 하다. 영감은 잠자코 화를 참는다.
 
146
"그래 자네한테는 무에 구립다던가?"
 
147
영감의 입에서 또다시 그런 말은 말라고 달래는 듯 나무라는 듯하는 소리가 나오지 앉는 것을 보니 영감의 마음이 차차 돌아서는 기미다. 수원집은 좋아라고 얼굴을 쳐든다.
 
148
"누가 압니까. 제가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본 게지요!"
 
149
하고 아랫입술을 악물다가,
 
150
"그런 소리를 내놓아서 내쫓자는 게지요!"
 
151
하고 치를 떤다.
 
152
이 말도 또한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다.
 
153
"그것두 아무도 없는 데면 모르겠지만 손님들이 열좌를 하고 어린 며느리가 있는 앞에서..."
 
154
수원집은 말을 맺지도 못하고 울어버린다. 영감은 첩이 볶이는 것이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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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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