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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중상과 모략 ◇
해설   목차 (총 : 42권)     이전 22권 다음
1932년
염상섭
1
삼대(三代)
 
2
22. 중상과 모략
 
 
3
조 의관은 사랑에 누워서는 모든 것이 불편하고 안심이 아니 되고 누가 자기에게 약사발이라도 안겨서 죽일 것만 같아서 야단야단 치고 안으로 옮아 들어왔다. 아들이 있고 손자가 있고 증손자까지 두었건마는 그래도 수원집만은 모두 못하였다. 수원집이 옆에서 앉았기만 하면 병은 저절로 나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절대로 안정을 시키라는 늙은이를 떼메어 들여왔으니 아무리 네 각을 떠서 들여온 것은 아니지마는 늙은이의 노끈 같은 허리가 아무래도 추슬렸을 것이다. 막 날 고비쯤 되었던 허리가 다시 물러났는지 옮아 온 며칠 동안은 허리뼈가 여전히 시큰거리고 쑤시고 부기가 더 성하여 갔다.
 
4
게다가 불질이 아무래도 심하니까 병실의 온도가 알맞지 못하여 조급한 성미에 이불을 시시로 벗기라고 야단이요 그러는 대로 방문은 여닫고 하니까 감기 기운도 나을 만하다가는 다시 도지고도지고 하여 이제는 시들부들 쇠하여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 제일 무서워하던 폐렴이 곁들었다. 한의 양의가 번갈아 들며 집안은 약 시중에 꼭두식전부터 오밤중까지 잔칫집같이 법석이었다. 수원집은 어쨌든 살이 더럭더럭 내렷다. 이목은 번다한데 귀찮은 내색을 보이지 않으려니만큼 속은 더 썩는 것이다.
 
5
꼴 보니 병은 오래 끌 모양인데 앓는 어린애처럼 한시 한때 곁을 떠나지 못하게는 하고 밤이나 낮이나 똥오줌은 받아내야 하니 낮에는 남의 손을 빌리지만 밤에는 제 손으로 치워야 한다. 그럴 때마다 단잠을 깨우는 것도 죽겠지마는, 마음대로 문도 못 열어놓으니 방 안에 냄새가 탕진을 하여 몰래 향수 뿌린 비단수건으로 코를 막고야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이불 속에 넣은 수건은 눈에 안 보이고 냄새는 맡히니까 영감은 웬 향내가 이렇게 나느냐고 군소리를 중얼중얼하는 것이었다. 향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니까 그게 싫어서 향수로 소독을 하거니 하고 짜증을 내는 것이다.
 
6
그래도 수원집은 영감 앞에서는 입의 혀같이 살랑거렸다. 이번 판에 공을 들여 놓아야 100석이 200석 될 것이 아닌가? 그것도 그렇지마는 이번에는 손주며느리도 먹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들 내외와 그만큼 버스러졌으니까 죽을 때에도 손자 내외에게 많이 몫을 지어줄지 모를 일이니 손자 식구마저 떼어 놓으면 항 뙈기라도 그리 붙일 것을 이리로 더 붙이게 될 것은 인정의 어쩌는 수 없는 약점이겠기에 말이다.
 
7
"젊은것이 걀러 빠져 못쓰겠어요."
 
8
조금만 영감의 눈살이 아드득 찌푸려지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을 손주며느리에게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9
"아직 어린것이 자식이 딸렸으니까 그럴 수밖에! 또 무에 들지는 않았나?"
 
10
영감은 그런 중에도 손주며느리는 물오른 기지에 달린 봉오리처럼 귀엽게 보는 것이었다.
 
11
"게다가 또 있으면 어째요. 하나를 가지고 헤나지를 못하는 치신에..."
 
12
수원집의 입은 샐록하였다.
 
13
"그래두 있을 때가 되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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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손자가 이번에 다녀갔으니까 있으려니 하는 것이다. 수원집 몸에 있는 것만은 못하여도 계계승승하여 억만대에 뻗칠 xx조씨의 손이 놀까보아 이 영감은 병중에도 걱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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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편치 않으신데 별걱정을 다 하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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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는 있어도 걱정이자만 시기가 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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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시어미란 게 버려놓았어요. 네것 내것을 그렇게도 야멸치게 싹싹 가르고 요강 하나라도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은 무슨 병이 붙어 나가는지 제 방 것을 부시면서도 건드리기는 고사하고 보기만 하여도 더러더러 하고 눈살을 찌푸리니 절더러 부시라는 건 아니건마는 그게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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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초벌로 헐어놓는 것이다.
 
19
"그야 부실 사람이 없어 그애더러 하랄까."
 
20
영감은 그만만 해도 자기에게 피침한 일이니 듣기에 좋을 것은 없으나 이렇게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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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말씀이죠. 한 일을 보면 열 일을 안다고 약 달이는 것도 꼭 아랫것들에게만 맡겨 두고 모른 척하니 그래 지날 결에라도 들여다보면 못쓸게 무어예요. 아아니, 약은 그만두고라도 어른 잡숫는 찌개 한 그릇이고 숭늉 하나라도 정성이 있으면 더운가 찬가 애가 쓰이고 들여다보는 게 옳지 않아요..."
 
22
영감은 여기 와서는 잠자코 귀가 솔깃해지는 눈치다. 영감이 잠자코 말면 이제는 귀가 뚫렸구나 하고 수원집의 입은 신이 나서 입술이 더 나불거리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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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좋다 할 사람 없고 더구나 긴 병에 효자 없다 하지마는 자여손이 남부럽지 않고, 그래도 경향간에 누구라도 손꼽을 만한 천량을 가지고 앉아서도 늙게 의탁할 사람이라곤 뜨내기로 들어온 거나 다름없는 수원집 하나요, 세상에 없는 신약을 구하여 와도 하인년의 손에 달여 먹으니 졸아붙으면 그래도 괴롭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고분고분히 시중을 드는 것이 신통하고 가상하다. 처음에 수원집을 끌어들일 때 말썽이 많고 온 집안이 반대하였지마는, 지금 생각하면 수원집이나마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꼬? 죽을 때 물 한 모금이라도 떠넣어줄 사람은 그래도 수원집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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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만 하더라도 제 처한테 편지를 하면서 떠나간 뒤에 이때까지 영감께 상서는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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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집은 덕기까지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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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도착하는 길로 한 번 오긴 왔지, 한데 언제 또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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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손주며느리를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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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아비에게서 편지가 왔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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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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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날 좀 보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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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젊은 애가 내외끼리 한 편지를 보자고 한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런 생각 없는 소리를 아니하였겠지마는, 병석에 누운 뒤로는 신경이 흥분하여 망령난 늙은이처럼 불관한 일에까지 총찰이 하고 싶고, 앓는 어린애처럼 노염을 잘 타는데다가 수원집의 그 말을 들으니 화가 발칵 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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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 없어요. 책을 한 권 건넌방에 빠뜨린 것하고 넥타이 두고 간 걸 보내 달라는 거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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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색시는 남편에게서 온 편지를 시조부 앞에 내놓기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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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리 가져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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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말소리는 좀 역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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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며느리는 웬 영문인지?- 모른다느니보다도 또 수원집의 농간이려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하는 수없이 제 방으로 가서 편지를 가져다 바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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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사실 그 말밖에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님 병환은 좀 차도가 계시냐고 한마디 물었을 뿐인데 어린 아이에게 대하여는 감기 들리지 않게 주의를 하라는 둥, 잘 때에 젖은 물리지 말라는 둥 부인 잡지권에서 얻어들었는지 하는 주의를 자질구레히 쓴 것이 영감에게는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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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어린것이 자식 귀한 줄은 아는 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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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각을 하며
 
40
"그래 부쳐달라는 것 부쳤니?"
 
41
하고 물었다. 무슨 난데없는 호령이 내리지나 않는가 하고 조심하여 시조부의 낯빛만 내려다보고 섰던 손주며느리는 마음이 죄면서,
 
42
"아직 못 부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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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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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편지 쓸 새가 없고 하니 자세한 답장을 해주어라. 내 병 이야기도 하고 나는 이번엔 아마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라고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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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는 이렇게 이르고서 소포 부칠 것을 어서 싸서 사랑으로 내보내어지는 주사에게 부치라고 할 것과, 집안 일에 네가 주장을 해서 잘 거두라는 것을 한 참 잔소리한 뒤에는,
 
46
"약 같은 것도 그렇지 않느냐? 네가 전력을 해서 달이지 않고 부엌데기나 어린 계집애년들에게만 내맡겨 두면 어쩌란 말이냐? 약은 어쨌든지 간에 네 도리로라도 그러는 게 옳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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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좀더 단단히 말이 하고 싶으나 어린것을 그럴 수도 없어서 참는 것이었다.
 
48
그러나 손주며느리로서는 억울하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약 달이는 데에 자기같이 정성을 쓰는 사람이 이 집안 속에서 누굴까. 그렇게 말하면 수원집이야말로 공연히 떠들고만 다녔지 이때껏 약 한 첩 자기 손으로 달이는 것을 본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분하여도 하는 수 없다. 친정 부모밖에는 이 집 속에서 하소연 한마디 할 데조차 없다.
 
49
"하느라고 합니다마는..."
 
50
겨우 이렇게 한마디밖에는 말대답이 될까보아 입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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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러니까 더 주의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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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이렇게만 일러 내보내 놓고도 손자의 편지에 자기 병 걱정은 한 마디도 없이 어린 자식 조심시키란 말만 한 것이 아무래도 못 마땅하였다.
 
53
아침 후에 상훈이 문안을 왔다. 영감이 누운 뒤로 아침저녁 문안만은 신통히도 궐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안이라고는 병인의 방에 들어와서 잠깐 섰다가 나가는 것이건마는 그 2분이나 3분 동안이 피차에 지리한 것 같고 성이 났다.
 
54
"너 날마다 아침술을 먹고 다니니?"
 
55
부친은 앓는 아비를 주기 있는 얼굴로 와서 보나 싶어서 말하자면 공연한 트집이다. 실상은 어제 청목당으로 매당집으로 돌아다니며 술상이 벌어졌어야 모두 몇 잔 먹지는 않았다. 원체 폭음은 하는 것도 아니지마는 근자에는 그리 받지도 않은 터이다. 다만 늦게 자서 잠이 부족하여 눈알이 붉을 뿐이다.
 
56
"...너는 지금 앓는 아비를 보러 온 게 아니라, 해정을 하려고 술친구를 찾아다니는 거냐?"
 
57
영감은 돌아누워 버렸다. 상훈은 먹먹히 섰다가 나오려니까,
 
58
"다시는 오지도 말고 죽어도 알릴 리도 없으니 어서 가서 술집에고 계집의 집에고 틀어박혀 있거라."
 
59
나가는 아들의 등덜미에 찬물을 끼어얹듯이 이런 소리를 꽥 질렀다.
 
60
부친의 호령은 언제나 박박 할퀴는 것 같았다. 심장 밑이 찌르르하였다. 그럴 때마다 하속배나 어린 며느리자식 보기에도 창피한 증이 들었다. 여생이 얼마 안 남은 부친이니 그야말로 양지는 못할망정 자식된 자기로서 제 속마음으로라도 향의만은 정성껏 하리라고 생각하다가도 주책없는 어린애처럼 배심이 드는 것이었다.
 
61
-내가 잘한 것이야 없지마는 효도 윗사람이 받아주셔야 할 것이 아닌가?
 
62
상훈은 이런 생각도 하였다. 언제라도 부자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 주고받은 것은 아니로되, 수원집이 들어온 후로 한층 더 심한 것을 생각하면 밤낮으로 으르렁대는 자기 마누라만 나무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어제 매당집에 왔던 생각을 하면 도저히 이 집 속에 붙여둘 수 없겠건마는 부친의 일이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부친만 돌아가면 자식이야 있든 없든 남 될 사람이요, 또 벌서부터 뒷셈 차리느라고 그런 데를 드나드는 것이겠지마는 큰 걱정은 까닭 없이 몇백 석이고 빼앗길 일이다. 그것도 잘 지니고 자식이나 기른다면 모르겠지만 어떤 놈 좋은 일이나 시키고 말 것을 생각하면 아까운 일이다. 그것을 장을 대고 벌써 어떤 놈이 뒤에 달렸는지도 모를 일- 달렸기에 병인을 내버려 두고 틈틈이 매당집에를 다니는 것이다. 수원집도 제 밑 들어 남 보이기니까 어제 매당집에서 피차 만났다는 말이야 영감님께 하고 싶어도 못 하였겠지마는 오늘에 한하여 별안간 계집의 집에나 술집에 가서 틀어박혀 있으라고 부친이 역정을 내는 것은 웬일일꼬. 저는 발을 빼고 또 무어라고 헐어냈나? 정말 그렇다면 이편에서도 가만히는 안 있으련다!
 
63
상훈은 혼잣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년이 업은 손자새끼를 얼러 주다가 사랑으로 나가려니까 안에서는 눈에 안 띄던 수원집이 사랑문 앞에서 들어오다가 마주쳤다.
 
64
"매당집은 언제부터 알았습디까?"
 
65
상훈은 지나쳐 들어가려는 수원집에서 순탄한 낯빛으로 물어봤다. 어제 보았다는 표시를 해서 발등을 디디고 다시는 못 다니게 하려는 생가으로이었으나 마당에 섰는 사람에게나 방 안에 들릴까보아 사폐 보아주어서 말소리만은 나직이 하였다.
 
66
"매당집요? 요전에 사귀었어요. 어제 종로까지 잠깐 무얼 사러 나갔다가 길에서 만나서 어찌 끄는지 잠깐 들렀었죠마는 나으리께서도, 아셔요?"
 
67
상훈은 유산태평으로 목소리를 크게 지르는 데 우선 놀랐다. 남은 일껏 사정 보아 주어서 은근히 묻는데, 저편은 한층 더 뛰어서 모두 들으라는 듯이 떠들어 놓는다. 더구나 어제 마주친 것은 시치미 딱 떼어버리고 나으리께서도 아느냐고 묻는 그 담찬 소리에 귓구멍이 막힐 노릇이다.
 
68
"알고 모르고가 없이 어제 거기서 만나지 않았소?"
 
69
상훈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올라왔으니 눈에는 꾸짖고 위험하다는 빛이 어리었다.
 
70
수원집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깜짝 놀란 듯이,
 
71
"예에, 난 설마 했더니! 그런데 나으리께서 어떻게 거기서 약주를 잡숫고 계셨어요? 그 집 주인 사내 양반하고 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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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스럽게 딴청이다.
 
73
"예에, 그럭저럭 알지만..."
 
74
상훈 역시 어름어름하면서,
 
75
"그건 고사하고 매당을 언제 알았습니까?"
 
76
하고 다시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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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요전에 알게 되었어요. 조선극장엘 갔더니 그이두 왔는데, 데리고 온 계집애년이 예전에 우리집에서 자란 종년의 딸이겠지요. 그년하고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차차 알게 되었는데 어제는 한사코 자기 집을 알아두고 가라고 끄는군요. 영감님은 저러시고 한가로이 놀러 갈 새는 없지만 뿌리치다 못해 잠깐 들러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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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혀끝에서 나발나발 힘 안 들이고 청산유수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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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그렇다면 몰라도 가까이 다니지는 마우. 남자들이 모여서 술이나 먹는, 말하자면 내외주점 비슷한 데니까..."
 
80
상훈은 수원집의 말을 열 마디를 다 곧이들을 수는 없으나 혹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면서 이렇게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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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런 데예요? 그럼 공연히 갔군요... 퍽 잘사는 모양이요, 살림두 얌전한가보던데 왜 그런 영업을 할까요... 주인 영감도 퍽 점잖은 영감이라던데요?"
 
82
수원집은 천만 뜻밖의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연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83
"어쨌든 나는 남자니까 상관없지마는 다시는 가지 마우."
 
84
하고 상훈이 헤어져 사랑문에 발을 들여놓으려니까 최 참봉이 뒷짐을 지고 담 밑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85
상훈은 최 참봉을 보자 저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담 밑이 양지라 해서 거기서 어른거리는 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자기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 싫기도 하고 날마다 대령하는 축이 아직 안 모여서 스라소니 같은 지 주사만 지키고 들어 앉았는 이 사랑에 수원집이 나왔으면 최 참봉밖에 만날 사람이 누굴까. 최 참봉이란 늙은 오입쟁이다. 파고다 공원에 가서 천냥만냥하는 축이나 다름없으나 어디서 생기는지 인조견으로 질질 감고 번지르르한 노랑 구두도 언제 보나 올이 성하다. 또 그만큼 차리고 다니기에 파고다 공원에는 안가는 것이다.
 
86
어쨌든 이 사람은 수원집을 이 집에 들여앉힌 사람이니 주인 영감에게는 유공한 병정이다. 천냥 만냥이 본업이요 그런 일이 부업인지, 뚜쟁이 계집 기간이 전업이요 땅 중개가 부업인지 그것은 닥치는 대로니까 당자도 분간하기가 좀 어려우리라.
 
87
하여간 요전에 들어온 이 댁 어멈인가 안잠자기인가도 이 사람의 진권이라 하니 자기 말마따나 이 세 사람이 한 통속은 한통속일 것이라고 상훈도 짐작은 없는 바 아니다 일전 파제삿날에 수원집과 싸우고 온 마누라를 나무랄 때 마누라 입에서 들은 말이지마는, 제삿날도 문간에서 최 참봉과 쑤군거리다가 어진지 갔다 왔다 하지 않는가. 소문에는 원체 최 참봉과 그렇지 않은 새이나 살 수가 없어서 일 들여앉힌 것이라는 말도 귓결에 떠들어온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쨌든지 상훈은 최 참봉만 보면 달라는 것 없이 미웠다. 미운 사람에는 또 한사람 있다. 제삿날 저녁에 말다툼하던 재종형인 창훈이다. 이 두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놓아야 하겠다고 벼르는 것이나 아편이 싫어서 저편도 좋아할 리 없다.
 
88
상훈이 밖에 나가서 하는 일거일동을 영감에게 아뢰어 바치는 사람은 이 두 사람이다.
 
89
"요새 어떠슈? 살살 혼자만 다니지 말고, 어떻게 나 같은 놈도 데리고 다녀 보구려? 과히 해로울 건 없으리다."
 
90
최 참봉은 이런 소리를 하고 껄껄 웃는다. 나이는 상훈보다 6,7 년 위나 말은 좀 더 높인다.
 
91
"어디를 가잔 말요?"
 
92
상훈은 핀잔을 주며 냉소한다.
 
93
어젯밤 일이 벌서 이 놈팽이에게 보고가 들어갔구나 하니 더욱 불쾌하다,
 
94
"매당집에 자주 간답니다그려? 거기나 가볼까?"
 
95
상훈은 고쳐 생각하고 앞질러 떠보았다.
 
96
"그거 좋지! 매당이란 말은 들었어도 이때껏 가보지는 못했어."
 
97
"수원집이 다 가는 데를 못 가봤어? 퍽 고루하군! 서울 오입쟁이 아니로군!"
 
98
"이 늙은 놈을 가지고 그 무슨 말씀요. 허허허... 그런데 수원집이 그런 데를 가다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99
하며 최 참봉은 자기 딸의 말이나 나온 듯이 놀란다.
 
100
"지금 못 들었소?"
 
101
상훈은 여전히 코웃음을 친다.
 
102
"무얼 들었단 말씀이요?"
 
103
이 사람도 딴전이다.
 
104
"모르면 모르고..."
 
105
상훈은 툭 뿌리치는 소리를 하고 휘죽 나가려니까 최 참봉은 헤헤 웃고 바라보다가,
 
106
"이따 만납시다요. 나는 약조를 어기는 법은 없으니까."
 
107
하고 소리를 친다.
 
108
안방에서는 영감이 들어와 앉은 수원집더러 상훈과 무슨 이야기를 하였느냐고 묻는다.
 
109
"어제 갔던 집 이야기예요. 나으리도 그 집 영감하고 친하다나요. 어쩌면 벌써 이야기를 해두었던 것이다.
 
110
"그 집 주인은 무엇하는 사람인데?"
 
111
영감은 의심쩍어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의심쩍은 일이 있으면야 당자가 애초에 알려 바칠 리도 없으려니 하는 생각이거니와 다만 아들과 친한 사람의 집이라니까 자기도 혹 짐작할 사람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112
"모르겠어요. 아마 같은 교회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113
수원집은 영감에게 매당이란 매 자도 입밖에 아니 내었지마는, 매당에게 영감이 있다면 죽으로 있을지 몰라도 웬놈의 그런 남편이 있으랴. 그러나 상훈에게나 영감에게나 아무렇게나 이렇게 발라맞추는 것이다.
 
114
"상훈이 친구면야 모두 그따위들이겠지마는 아무튼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여편네가 요새 세상에 까딱하면 타락하는 것은 모두 못된 년의 꾐에 넘어가는 것이니까... 저만 봉변을 하는 게 아니라 남편의 얼굴에 똥칠을 하게 되고 가문을 더럽히고..."
 
115
영감이 또 잔소리를 꺼내리까 수원집은,
 
116
"염려 마세요. 한두 살 먹은 어린애니 걱정이십니까? 누구고 누구고 안 사귀면 그만 아닙니까?"
 
117
하고 말을 막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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