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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하숙집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하숙집

1
진고개로 올라가서 무어나 사 볼까?- 꼭 무엇이 살 게 있는 것이 아니라 돈푼 있는 사람의 버릇으로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하다가,
 
2
'오늘 떠날 줄 아는데 병화가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3
하는 생각을 하니 어제 취중에 병화더러 밥값을 해 가지고 하숙으로 가마고 약속을 한 듯도 싶으나 기억이 몽롱하다.
 
4
덕기는 지나가는 전차에 뛰어올랐다. 서대문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물어 홍파동에까지 와 가지고 수첩을 꺼내 보고, 이 골목을 꼬불꼬불 뺑뺑이 돌아야 양의 창자다. 서울서 20여 년을 자랐지만 이런 동네에는 처음 와보았다. 반시간 턱이나 휘더듬어서 짧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나 되어서 바위 위에 대롱 매달린 일각대문 앞에 와서 딱 서게 되었다. 이 동네를 휘더듬는 동안에는 이런 집도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하숙이라 하니 의연만한 집인 줄 알았다.
 
5
덕기는 참 정말 이런 집은 처음 본 것 같았다. 쓰러져가는 일각대문이라도 명색이 문이 있으니 물론 움은 아니다. 그러나 마치 김칫독을 거적으로 싸듯이 꺼멓게 썩은 거적으로 뺑 둘러싼 집이다.
 
6
'이놈이 여기 들어엎대서 게다가 외상밥을 먹어!'
 
7
이런 생각을 하니 병화가 불쌍하다는니보다도 너무 무능한 것 같고 밉살맞은 생각이 났다.
 
8
세 번 네 번 불러도 대답이 없다. 기웃이 들여다보니 고양이 이마만한 마당인데 안이 무엇이 멀다고 안 들릴 리는 없다.
 
9
얼마만에 발소리도 없이,
 
10
"어디서 오셨에요?"
 
11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틈으로 보니 머리는 부엌방석 같고 해끄무레한 얼굴만 없었더면 굴뚝에서 빼놓은 족제비다. 아니, 그보다도 깜장 토시짝 같다. 이 아낙네는 그렇게 가냘프고 키가 작았다. 목소리도 그렇지만 얼른 보기에도 30이 넘어 보인다.
 
12
"김 선생요? 편찮어 누셨에요."
 
13
대번에 뛰어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혹시 자기 집에나 갔는 것을 길이 어긋나서 못 만나 보는 게다 하였더니 그래도 집에 있다는 데에 덕기는 반색을 하였다.
 
14
"못 나오면 좀 들어가보아도 좋을까요?"
 
15
덕기는 조금 문을 밀치며 이렇게 물었다.
 
16
주부는 사나운 꼴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 찔끔하면서도 손님의 얼굴을 보려는 듯이 말끔히 내다보다가,
 
17
"잠깐 가만히 계셔요."
 
18
하고 들어가려니까 안에서 창문 열리는 소리가 나며,
 
19
"조군인가? 들어오게!"
 
20
하고 병화의 목쉰 소리가 난다.
 
21
덕기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들어섰다.
 
22
주부는 안방 문을 열면서도 손님을 또 한 번 돌아다보았다. 덕기도 무심하고 마주 쳐다보며 얌전한 아낙네라고 생각하면서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23
'딸을 지금 없나? 어머니가 저럴 제야 딸도 예쁘장하고 얌전하겠다.!'
 
24
하고 생각을 하면서 병화를 쳐다보고,
 
25
"웬일인가? 이태백도 술병 날 때가 있나?"
 
26
하고 웃고만 섰다. 마루 꼴하고 움속 같은 방 안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 났다.
 
27
"어서 들어오게. 에 추워!"
 
28
하며 병화는 입고 자던 양복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어깨통을 흔든다. 입고 자던 양복이 아니라 출입벌이고 무어고 단벌이다. 덕기는 먼지가 뿌옇게 앉은 그 양복 바지를 비참하다는 눈으로 한참 바라보고 섰다.
 
29
"왜 이렇게 얼이 빠져 섰나? 모든 것이 너무 비참한가?"
 
30
병화는 막걸리에 결은 사람 같은 거센 목소리로 이런 수작을 하였다.
 
31
"나가세..."
 
32
"나가더라도 좀 들어오게. 난 게다가 감기가 들고 허기가 져서 꼼짝할 수 없네."
 
33
병화는 떼를 쓰듯이 이런 소리를 한다.
 
34
덕기는 망단하였다. 더구나 안방 영창에 붙은 유리 구멍으로 누가 내다보는 것이 공장에 다닌다는 딸인가 싶어서 호기심도 없지 않았으나 열없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때까지 그대로 섰을 수가 없었다.
 
35
"그럼 약이라도 어서 먹어야지!"
 
36
덕기는 이런 인사를 하며 껑충 뛰어 툇마루로 올라섰다.
 
37
"허기가 져서 죽겠다는데 약은 무슨 팔자에..."
 
38
병화는 일종의 분기를 품은 목소리로 책망하듯이 중얼댄다.
 
39
"그러기에 어서 나가자는밖에! 어서 선술집이구 설렁탕집이구 가세그려."
 
40
하며 방에 들어서보니 발밑에 닿는 방바닥이 얼음장이다.
 
41
이 때까지 들쓰고 누웠던 이부자리는 어디가 안이요 어디가 거죽인지 알 수가 없다. 발바닥에서부터 찬 기운이 스며올라오건마는 퀴퀴한 기름때 냄새 같은 사내 냄새가 코를 찔러서 비위를 뒤흔들어 놓는다.
 
42
덕기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책상 위의 성냥통을 집었다. 책상에는 잡지 권이 되는대로 흐트러져 있고 잉크병밖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다.
 
43
머리맡에는 신문이 헤갈을 하여 있다.
 
44
'이런 생활도 있다.'
 
45
고 덕기는 속으로 놀라면서 병화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궁극에 달한 생활을 하면서도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주위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말하자면 수난자의 굳건한 정신이 있기 때문이려니 하는 동정이 한층 더 깊어졌다.
 
46
'나 같으면 하루도 못 배기겠다. 벌써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가서 부모의 밥을 먹었을 것이다.'
 
47
고 덕기는 생각하였다.
 
48
"안 나가려나?"
 
49
또 한 번 재촉을 하여보았다.
 
50
"자네 같은 귀골은 일분이 민망할걸세마는 어쨌든 이리 좀 앉게."
 
51
하고 방주인은 이불을 밀쳐놓고 앉는다. 그러나 덕기는 구중중해서 앉기가 싫었다.
 
52
"이는 없네. 이 올릴까봐서 못 앉겠나?"
 
53
그런 중에도 병화는 연해 비꼬는 소리만 한다.
 
54
"미친 사람! 그러지 말고 어서 옷을 입게."
 
55
"머리가 내둘려서 못 나가겠어. 그런데 오늘 떠나나?"
 
56
"사흘 동안 물렸네."
 
57
"왜?"
 
58
병화는 실망한 낯빛으로 물었다. 이 사람이 오늘 안 떠나면 어제 약조한 돈이 오늘 틀리기 때문이다.
 
59
"증조 할아버지 제사 지내고 가라고 하셔서."
 
60
"자네, 증조부 뵈었나?...코빼기도 못 본 증조부 제사에 자네가 꼭 참례를 해야 제사를 받으시겠다고 천당인지 극락 세계에선지 라디오가 왔던가?"
 
61
하며 병화가 웃으려니까 덕기도 마주 웃으면서,
 
62
"에이 미친 사람!"
 
63
하고 눈을 찌푸려 보인다.
 
64
"하여간 자네 증조부 덕에 내 일이 낭팰세."
 
65
"왜?"
 
66
"자네가 어서 떠나야 내 형편이 피지 않겠나!"
 
67
"그렇게 급한가?"
 
68
"급하고말고- 오늘은 안집에서 그대로 있네. 사람들이 무던해서 내게는 아무 말도 없지만 그런 눈치기에 이래저래 싸고 드러누워서 실상은 자네 오기만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네."
 
69
덕기는 무엇보다도 주인집이 가여웠다.
 
70
"딸은 공장에도 아니 갔나?"
 
71
"간 모양이지만 뭘하나. 당장 몇 푼이라도 들고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72
"주인 사내는 무얼 하게?"
 
73
"놀지! 집안 모탬이라고는 유치장 밥이나 콩밥을 나가 먹어서 한 식구 덜어 주는 것 외에는 별수 있나!"
 
74
하며 병화도 코웃음 치고 덕기가 내놓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붙인다.
 
75
"왜? 부랑잔가? 주의잔가?"
 
76
덕기는 놀라운 눈치로 묻는다.
 
77
"그저 그렇지!"
 
78
하고 병화는 말을 돌려서,
 
79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나?"
 
80
하고 급한 문제부터 꺼낸다.
 
81
"글쎄 아직 노비를 못 타서 많이는 없어두 한 5원 내놓고 가려던 참일세."
 
82
"그럼 됐네. 이리 주게."
 
83
병화는 급한 듯이 손을 내민다. 병화는 5원을 받아들고 마루로 나가면서 아주머니를 부른다. 안방에서도 마주 나오며 수군수군하다가,
 
84
"에구 손님께 미안해서 어떡하나!"
 
85
하고 주부의 얕은 목소리가 두세 번난다.
 
86
덕기는 좋은 일 하였다는 기쁜 생각과 주인에게 대한 자랑도 느꼈지만 처음 목도하는 이 광경이 너무나 참담하여 도리어 송구스러웠다.
 
87
"자아, 이젠 나가세."
 
88
병화는 이제는 한시름 잊었다는 듯이 화기가 돌면서 부덩부덩 옷을 입고 앞장을 선다. 덕기는 무엇 하나 놓치고 가는 듯이 서운하였다. 생각해보니 이 집에는 또다시 올 일이 없을 텐데 주인이란 사람과 주인 딸이 보고 싶다. 주인보다도 이 집 살림을 혼자 벌어대고 주의자 사이에서 똑똑하다고 칭찬이 놀랍다는 주인 딸이 까닭없이 호기심을 끌었다. 실상 생각하면 오늘 여기 나온 동기가 딸도 좀 보겠다는 몽롱한 호기심이 반은 되었던지도 모른다.
 
89
"자네 자당께서는 자네가 여기 있는 걸 아시겠지? 설마 이 꼴을 보시면야 어느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두시겠나?"
 
90
덕기는 잠자코 걷다가 지금 속생각과는 딴전의 소리를 하였다.
 
91
"가만 내버려두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마는 우리 어머님도 하느님의 딸이 아닌가?"
 
92
하고 병화는 냉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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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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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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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