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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겉늙은이 망령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겉늙은이 망령

1
아들이 잡혀 갇혔다는 말을 듣고 상훈은 스르르 큰집에 들렀다. 일자 이후로 처음이다. 아들이 그런 누명을 쓰고 횡액에 걸린 것이 안되기는 하였으나 별 죄가 있는 것 아니요, 한 서너 달 미결감에 들어앉았다가 나오면 그만일 것이니, 젊은 놈 기운에 도리어 공부도 되고 이 세상 경험 삼아도 좋을 것이라고쯤 생각하는 것이다. 하여간 몇 달 동안은 눈에 아니 띌 것도 해롭지 않다고 코웃음을 쳤다. 자식 앞에서라도 기를 못 펴다가 그동안만이라도 집안 일을 마음대로 휘들러볼 수도 있겠거니 해서 그런 것이다.
 
2
시어머니는 건넌방에서 내다보지도 않고 며느리만 나와서 맞는다.
 
3
"이 놈은 몸 성하냐? 어디 나갔니?"
 
4
"안방에서 잡니다."
 
5
시아버지는 손자를 보겠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6
-아닌 적엔 손주새끼가 왜 그리 귀여워졌누?
 
7
하고 마나님은 코웃음을 쳤다. 아닌게아니라 영감은 아무도 없는 안방에 들어가서 자는 아이를 언제까지 들여다보고 앉았는지 도무지 감감하다. 건넌방에서 모친이 부어 앉았다가 며느리더러,
 
8
"얘, 무얼 하시나 좀 건너가봐라."
 
9
아들이 밉다고 손주새끼까지 귀여워 못 하랴마는, 첩을 들어앉힌 뒤로는 돈에 갈급이 나서 그런지, 아편인에 몰려서 그런지, 무엇에 씌인 사람처럼 얼굴까지 뒤틀리고 눈자위가 바로 놓이지 않아서, 다니는 사람이니까 남편이요, 시아버지건마는 무시무시하여 정이 떨어지는 터이다.
 
10
"그저 잡니까?"
 
11
며느리가 방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인기척을 내고 문을 방긋이 열려니까, 발치께로 놓인 아들의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무엇을 훔척훔척하다가 깜짝 놀라며 돌아본다.
 
12
"응, 얘, 잠깐 들어오너라."
 
13
"무얼 찾으세요?"
 
14
책상 서랍이 열려 있다.
 
15
"사랑, 문갑 열쇠 어디 있는지 아니?"
 
16
"모르겠에요, 거기 어디 있겠죠."
 
17
열쇠 꾸러미는 조그만 손금고에 넣어서 다락 앞턱에 놓아둔 것을 아나, 모른다고 하여버렸다. 손금고의 열쇠는 물론 덕기가 돈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다.
 
18
"다른 게 아니라 내게 두었던 문서 한 장을 초상 중에 문갑 속에 넣어 둔 것이 있는데 경찰서에 곧 갖다 뵈어야 이 애가 놓여나올 테구나..."
 
19
하고 망단한 듯이 먼 산을 치어다보고 앉았다가,
 
20
"넌 정말 모르니?"
 
21
하며 며느리에게 애원하듯이 하며 얼굴을 치어다본다. 알고도 속이는 며느리는 면구스러웠다. 마치 난봉 피는 젊은애가 휘이 들어와서는 남의 눈을 기이어 가며 집 안을 들들 뒤지는 것 같아서 어른 체모에 딱하고 흉하기도 하다.
 
22
"얘, 할아버니 쓰시던 조그만 금고 어디 갔니?"
 
23
"여기 있에요."
 
24
하고 며느리는 다락문을 열고 금고를 내다가 앞에 놓았다.
 
25
"열쇠 가져 오너라."
 
26
시아버지는 반색을 하며 비로소 생기가 난다.
 
27
"집에 두고 다니지 않아요."
 
28
영감은 다시 낙심이 되었다. 어린애가 장난감 만적거리듯이 데그럭거리며 곁쇠질을 하려 한다. 체통이 사나워 보인다. 며느리는 휙 나오려다가,
 
29
"경찰에서 가져오라 한다시니 그러면 누구를 보내서 열쇠를 내달라고 해 오랄까요?"
 
30
하고 물었다. 문갑에 무에 들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것만 가져가면 제 남편이 나온다는 말에 그래도 마음이 솔깃하여 열쇠가 있으면 시원스럽게 열고 싶었다.
 
31
"그만 두어라. 어떻게 열리겠지."
 
32
며느리가 건넌방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시어머니한테 하니까 펄쩍 놀라며,
 
33
"얘, 쓸데없는 소리 마라. 공연한 말씀이다. 큰 금고 열쇠가 함께 꿰어 있을 줄 알고 그걸 훔쳐가려고 얼렁얼렁하시는 소리다."
 
34
하고 벌떡 일어나서 우당탕 문을 밀치고 나간다. 며느리는 또 무슨 야단이 날까 보아 조마조마하기는 하나 가만히 앉았으려니까, 안방문이 우당퉁탕하더니 철궤를 들어서 마루로 탕 내부딪는 소리가 육간 대청에 떼그르 하고 울린다.
 
35
"얘, 이 철궤 내 방에 갖다 둬라. 이젠 내가 맡는다. 왜 우리마저 쪽박을 차고 나서는 꼴을 보려우? 낮도둑놈 모양으로 무슨 까닭에 여기까지 쫓아와서 작은 열쇠 큰 열쇠 하고 법석요? 그놈의 금고째 떠메가든지! 이짓 하려고 자식을 그 몹쓸 데로 잡아놓었구려? 이 죄를 다아 어디 가서 받을 테요?"
 
36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려니까, 영감은 검다 쓰다 말없이 모자를 들고 나와서 내려가다가 며느리를 보고,
 
37
"난 모르겠다. 형사들더러 와서 가져가라지."
 
38
하고 훌쩍 가버렸다.
 
39
덕희는 책보를 끼고 들어오면서 좌우 방문이 열리고 식구들이 우중우중 섰는 것을 보자 벌써 알아차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전차에서 내리면서 몇 번이나 바라보면서, 심사가 좋지 못한 것을 참고 들어오는 판인데 집안 꼴이 이 모양이다. 덕희는 누구 편을 들고 말고 없이 요새는 집이라고 들어올 생각이 없다.
 
40
학교에서나 동무의 집에서 어정어정 지낼 때는 남과 같이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를 들어와 앉으면 무엇이 짓누르는 듯이 답답하고 누구의 얼굴이나 보고 싶지 않고 누구의 말이나 듣고 싶지 않다.
 
41
부친이야 원체 말할 것도 없고 남보다 좀 나을 따름이지마는 덕희는 모친과도 맞지를 않았다. 모친이 공부하는 묘리나 학교 켯속을 잘 모르는 것이 답답할 때도 없지 않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끌어내놓는 푸념이나 히스테리 증세에는 머리를 내두른 지경이다. 이 집안에서 다만 한 사람 오라비만은 같은 시대에서 호흡을 하고 얼마쯤 이해를 해주고 귀애해 주는 점으로 제일 마음에도 맞고 남에게 자랑도 되었다. 그러나 그 오라비가 저 모양이 되었다.
 
42
"아버지 다녀가셨수?"
 
43
덕희는 오라범댁에게 물었다.
 
44
"그런데 또 왜 그러시우? 싸우셨수?"
 
45
"아니라우. 금고 열쇠를 찾으러 오셨더라우."
 
46
"아버지도 딱하시지!"
 
47
덕희는 한숨을 쉬었다.
 
48
"오빠는 저렇게 고생인데 그건 빼놓아주실 생각은 아니하시구 망령이시지... 금고가 못 잊히셔서. 돈이 뭐구? 재산이 뭔구?"
 
49
공부방인 아랫방을 열고 들어가며 덕희는 혼잣소리를 한다.
 
50
"망령? 나이 아직 50두 못 되어서 망령이야? 철 안 나고 계집 바치는 분수 보아서는 스무남은도 못 되었을라."
 
51
모친은 마루 끝에 앉아서 또다시 시작이다.
 
52
덕희는 문을 꼭 닫고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버렸다.
 
53
말대꾸를 하면 모친이 점점 더 화가 치밀어서 저녁도 못 자실 것이요, 귀가 아파서 못 견딜 것이니까. 그러나 모친이 그르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54
-남의 집 부모는 안 그렇던데 우리집은 왜 이럴꾸?
 
55
덕희는 반찬 가게 하는 동무 집이 새삼스럽게 부러웠다. 오라비는 친구의 반찬 가게를 부러워하더니, 덕희도 동무 아버지의 반찬 가게를 부러워한다. 이 남매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것을 한탄하는 것이다.
 
56
저녁밥을 막 먹으려니까, 지 주사 대신 사랑을 지키는 영감이 앞장을 서고 상훈이 사랑에서 들어온다.
 
57
영감이 어째 또 오나? 하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뒤따른 두 양복쟁이를 보니 묻지 않아도 형사의 행색이다.
 
58
"어디요?"
 
59
형사가 후뿌리는 소리를 하니까 주인 영감은 급급히 마루로 올라서며 썰썰 기듯이 안방을 열어 보인다. 입회를 시킬 테니 방 임자를 불러 들이라 하고 형사들이 앞장을 서 들어갔다. 덕기 처는 겁을 집어먹으며 따라서 들어가서 시아버니 뒤에 섰다. 시어머니와 덕희와 침모들은 마루에 떨고 서서 하회를 기다리고 있다.
 
60
형사들은 장문을 모조리 열고 쑤석거려보고 책상 서랍을 뒤지고 책장을 열어 보고 다락 속도 대강대강 뒤져보더니, 조금 아까 다시 집어넣은 철궤를 들어내며 열어 보겠다 한다.
 
61
"열쇠가 없는데요."
 
62
아까는 남편에게 기별해서 열쇠를 가져오게 하려느냐고 하던 며느리건마는 당돌히 가로막고 나서는 기세다.
 
63
"아범에게서 받아 왔어."
 
64
옆에서 시아버지가 나지막이 귀뜸을 해주었다.
 
65
"이 금고 열쇠가 있으니까 열겠다는 것 아니겠소?"
 
66
늙직한 형사는 젊은 형사가 꺼내드는 열쇠를 가리키며 핀잔을 주는 동안에 젊은 사람은 종시 잠자코 호수를 맞추어 가며 쇳대를 넣어서 뗑그렁하고 열어놓는다. 나먹은 형사는 부스럭부스럭 뒤지더니 열쇠 꾸러미를 꺼내 들어 보이며,
 
67
"이거요?"
 
68
하고 상훈에게 묻는다.
 
69
"예, 예..."
 
70
마루에 섰는 마님은 영감이 왜 저렇게 겁을 먹고 허겁지겁을 해서 젊은 사람에게 쩔쩔매는지 창피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71
형사는 열쇠 꾸러미를 들고 우우들 사랑으로 몰려나갔다. 고식도 덕기를 내놓게 되는 문갑 속의 서류가 무엇인가 궁금하여 뒤쫓아 나갔다. 나가면서 마님은 사랑 영감더러,
 
72
"정말 형산가요?"
 
73
하고 물어 보니까 영감은 눈이 뚱그래지며,
 
74
"그럼 영감이 끌려다니시지 않습니까? 명함두 저기 받아놓았습니다마는."
 
75
하고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냐고 핀잔을 주듯이 대답을 한다.
 
76
어쨌든 아들을 구해내게 된다는 자국에 무엇을 의심하랴고 돌려 생각을 하였다. 고식이 축대 위에 서서 등불이 빤한 방 안의 광경을 노려보고 있으려니까, 문갑을 열어보는 눈치더니 다시 다락 속의 큰 금고를 후딱 열고 뒤져 보고는 제대로 닫고 마루로들 나온다.
 
77
"거기들 왜 섰니? 들어가거라."
 
78
영감은 여자들은 보고 나무라며 축대로 내려온다.
 
79
"어떻게 되었에요?"
 
80
시어머니는 말을 하기 싫어하니까 며느리가 대신 물었다.
 
81
"응, 내일쯤 놓여나올 것이다. 마음놓고들 들어가거라."
 
82
영감은 상노 아이더러 문신칙 잘하라고 일러놓고 형사들에게 꺼들려 나갔다.
 
83
"영감! 지금 댁으로 바루 가시겠습니까?"
 
84
바루 가두 좋지, 하여간 택시를 불러 타세."
 
85
세 사람은 황금정으로 나와서 택시를 불러 탔다.
 
86
"저희들은 오늘밤으로라도 들고 뜁니다. 논공행상은 당장 하셔야 하십니다."
 
87
"염려 말게. 지금 가는 길로 줌세그려."
 
88
"하지만 잘못하면 3년--어쩌면 5,6년은 콩밥 귀신이 될 텐데, 1000원씩은 너무 약소합니다. 어쨌든 3년 동안 처자식 굶지 않을 만큼 만들어 놓고, 들고빼든 때가든 해야 하지 않습니까?"
 
89
한 자가 이렇게 조르니까 한 자는,
 
90
"여부가 있나! 하지만 가만 있게. 설마 영감께서 이렇게 성공한 바에야 처분이 계시겠지."
 
91
하고 추켜세운다.
 
92
"큰 것 하나씩 주셔도 아깝지는 않습니다."
 
93
큰 것 하나라는 말은 1만 원씩 말이다.
 
94
"압다 이 사람들 퍽이나 조급히 구는군. 그런데 아차차 잊어버린 게 하나 있네그려."
 
95
상훈은 놀라는 소리를 한다.
 
96
"무엇 말씀요?"
 
97
자네들, 사랑에서 그 영감쟁이에게 내놓던 형사의 명함 말일세. 큰사랑 문갑 위에든지 놓였을 텐데... 허허 그거 낭패다."
 
98
상훈은 자동차를 돌리라고 하여 다시 가서 뒤져가지고 오자고 한다. 그 명함은 최 참봉을 데려가던 형사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상훈은 지갑 속에 있던 그 명함을 꺼내주며, 만일 무슨 표적을 달라거든 내주되 아무쪼록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던 것이다.
 
99
"염려 없습니다. 경을 쳐도 가짜 형사질을 한 저희가 경을 치지 영감께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100
"누가 경을 치든지간에 다른 것은 집안내의 일이니까 어떻게든지 되겠지마는, 그것이야 인감 도용이나 공문서 위조 사용과 같이 말썽만 되는 날이면 큰일 아닌가?"
 
101
"그렇게 애가 씌시면 제가 당장 뺏아다가 도로 드릴 테니 얼마 내시렵쇼?"
 
102
"이 사람! 자네는 아는 게 얼마인가? 얼마든지 줄게 뺏아만 오게그려."
 
103
"글쎄 얼마 주시겠습니까?"
 
104
"어떻게 뺏아 온단 말인가?"
 
105
"어떻게 뺏아 오든지 그거야 아실 거 있습니까. 얼마란 값만 치십쇼그려."
 
106
"얼마만 했으면 좋겠나?"
 
107
"처분대로지요."
 
108
"그럼 100원 하나만 줌세."
 
109
"그건 너무 헐합니다. 잘못하면 사람 목숨이 한 값이나 되는데요."
 
110
"미친 사람! 하여간 100원 줌세."
 
111
"정녕 그러시지요? 그럼 쓰십쇼."
 
112
"증서를 말인가?"
 
113
"아니오, 소절수요."
 
114
"쓰지... 그 자리에서 다시 집어 넣구 나왔네그려?"
 
115
"하여간 쓰십쇼. 그리고 그 길에 저희들 상급까지 써 줍쇼."
 
116
"그건 안 돼! 당장 현금이 그렇게는 없으니까."
 
117
하며 상훈은 자기 집 문전에 와서 세운 자동차 속에서 100원 소절수를 떼니까, 한 자가 껄껄 웃으며 한 손으로는 돈표를 받고 한 손으로는 외투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서 맞바꾸었다. 돈 100원이 억울은 하나 그 명함을 이 자의 수중에 넣어두는 것은 큰집 문갑 위에 놓아두는 것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었다.
 
 
118
내일 나온다던 사람은 그 내일의 짧은 해가 다 지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119
그래도 영감마저 붙들려갔나 하는 염려도 있고, 영감만은 다녀왔으면 소식을 알리라고 어멈을 화개동으로 보내 보니, 거기서 도리어 여기서 무슨 기별이 있기를 고대하고 있더라 한다. 어제 초저녁에 형사 두 사람이 영감을 데리고 와서 작은집(의경)마저 자동차에 실어가지고 가버렸다는 하회뿐이다.
 
120
고년- 첩년이야 한 10년 가두어두었다가 내놓았으면 좋겠지마는, 영감까지 들어가서 유치장 신세를 지고 있을 생각을 하니, 아들만은 못 하여도 가엾은 생각이 든다. 세상이 마음대로 되었으면 덕기 부자는 오늘 저녁으로 놓여 나오고, 고년과 경애만은 하다못해 일년만이라도 경을 뽀얗게 치고 나왔으면 시원하기도 하려니와, 그러느라면 영감도 마음을 잡고 여러 해 버스러졌던 의초도 돌아서게 되련마는... 덕기 모친은 갖은 공상에 잠이 안 왔다.
 
121
하여간 이렇게 되고 보니 영감의 뒷배를 보아주는 사람이라고는 없다. 무엇을 먹고 그 추운 속에서 덮개도 없이 벌써 이틀이나 어떻게 지내는지 내일은 아들의 밥을 해 가는 길에 금침이나 차입을 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122
이렇게 생각이 드니 천리 만리 떨어졌던 영감이 급작스레 가까워지고 남편의 옥바라지에 공을 들인다는 것이 그다지 장한 일은 아니로되, 그래야 놓아야 남편의 마음도 돌아서게 할 수단이 되겠고, 한편으로는 젊었을 때의 정분이 새로 난 듯이 아까까지 욕을 하던 남편이 그지없이 정답게 생각되었다.
 
123
날이 막 밝으며부터, 마님은 안방 다락 속에 배송을 내 두었던 영감의 자리보퉁이를 끌어내고 장 속을 뒤져서 솜옷 일습을 내놓고 수건을 사 오너라, 비누니 치마분이니 하고 한창 법석을 하여 자리보퉁이를 꾸려놓고 자기도 곱게 분세수를 한 후 온종일 한데서 떨고 있어도 좋을 만큼 든든히 입고 매일 식사 나르는 상노놈을 딸서 자동차로 나섰다. 그래야 집에서는 누구나 밤새로 돌변한 마님을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도리어 마님의 하는 일 중에 제일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들 하였다.
 
124
그러나 집안에서들은 일전 덕기에게는 금침은 아예 아니 받으려는 것을 병중이라고 간청을 해서 들였는데, 이번도 잘 받아줄까? 하고 마님의 하회를 기다리고들 있으려니까, 오정이나 되어서 자동차 소리가 밖에서 또 난다.
 
125
자동차로 오실 제야 허행을 하시는 게로군 학 덕기 처가 나오려니까 뜻밖에도 남편이 마당으로 어정어정 들어온다.
 
126
집안 식구들은 죽었던 사람이 살아온 듯이 법석을 하며 내달아 맞으려니까 중문간에 양복쟁이 둘이 주춤하며 기웃거린다.
 
127
-또 왔구나!
 
128
하는 직각이 누구의 머리에나 떠올랐다.
 
129
덕기는 떠들지들 말라고 손짓으로 제지하고 그 사람들을 불러들인 뒤에 마루에 올라서며 아내더러 다락의 손금고를 내오라고 한다.
 
130
"예? 금고요?"
 
131
아내는 눈이 둥그래졌다.
 
132
"손금고 말요. 열쇠만 꺼내와도 좋아요."
 
133
덕기가 앞을 서서 올라와서 방문께로 가려니까,
 
134
"그저께 경찰서에서 열쇠 가져가지 않았에요?"
 
135
하고 뒤따른 아내는 어떤 영문인지 몰라서 가만히 수군수군한다.
 
136
"뭐야?"
 
137
덕기도 마주 눈이 커대지며 형사들을 돌아다보았다. 그 사람들도 알아 들었는지 눈이 둥그래졌다.
 
138
"아버니께서 경찰서에 안 계셔요? 어머니께선 조금 전에 차입하러 가셨는데..."
 
139
"무어? 아버니께서?"
 
140
덕기가 다시 형사에게 대고 일본말로 물어보니까, 형사들은 도리질을 하로 그럴 리가 없다고 얼굴빛이 달라진다.
 
141
"그래 언제 가져갔더람? 누구라고 합니까? 무슨 표적이 있겠지?"
 
142
"손금고 열쇠를 주어 보내시지 않으셨에요? 사랑에는 명함두 내놨다던데 사랑에 있을 거예요."
 
143
"손금고 열쇠는 여기 있는데!"
 
144
덕기는 하도 어이가 없어 맥을 놓고 열쇠를 꺼내 보인다.
 
145
"그래 영감이 데리고 왔더란 말이지?"
 
146
한 형사가 묻는다.
 
147
"예 처음엔 혼자 오셔서 문갑에서 꺼내실 것이 있다고 열쇠를 찾으시다가 가시더니, 어슬할 때 형사 두 사람하구 오셔서 열쇠를 꺼내 가지구 사랑 금고에서 또 무얼 찾아가셨에요."
 
148
"열쇠를 가지고 왔더랐을 제야 더 말할 더 말할 것 있나마는... 날이 저문 뒤에 가택수색을 하는 법이 있을 리가 있나!"
 
149
형사들은 이런 소리를 하고 덕기와 사랑으로 나갔다. 다만 남은 의문은 부친이 가형사에게 속아 끌려다니면서 곤욕을 당하고 있는지, 혹은 한통속이 되어서 한 일인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덕기는 아무려니 부친이 한통속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150
형사들은 금천 주임에게 전화로 보고 하여 놓고 그 가형사들이 두고 간 명함을 찾아 보았으나 나오지를 않았다. 오늘 덕기를 데리고 온 것은 조부의 유서를 갖다가 보려는 것이요, 마지막으로 그것만 틀림없으면 우선 소위 중독 사건만은 일단락을 지어 무사히들 놓여 나올 뻔하였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여간 낙심이 아니다. 저 금고 속까지 텅 비었을 것이니 부친이 가져갔다면 그런 기막힌 일도 없다.
 
151
형사들은 조사를 마치고 덕기를 다시 데리고 가버렸다. 덕기가 떠나자 모친은 자리보따리를 상노 아이에게 지어가지고 풀없이 되돌아왔다.
 
152
경찰부에서 모른다고 하여 덕기와 지 주사의 식사만 차입하고 종로서로 갔더니 종로서에서는 또다시 경찰부 사법과로 가보라 하여 왔다갔다 다리품만 팔고 온 것이었다. 그동안 지낸 사연을 듣고 낙담하는 모친의 정상은 차마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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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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