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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일대의 영결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일대의 영결

1
여편네들만 빼놓고 남자들은 병원에 모여서 과세를 하였다. 낮전에는 번하던 병인이 저녁때부터 혼수 상태에 빠지면 새벽녘이나 조금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2
의사는 어차어피에 원기가 돋아야 수술을 할 것이니까 며칠 연기하는 것이 도리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수술이래야 큰 절개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요, 좌우쪽 갈빗대 사이에 물이 든 것을 뽑아낸다는 것이나, 원체 허약해져서 선뜻 손을 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3
의사도 왜 이렇게 탈진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의아해하였다. 돈 있는 사람이니 아무리 노쇠는 하였더라도, 보약도 상당히 먹었을 것이고 한데 이렇게까지 의식이 혼몽하도록 몸이 몹시 깎였다는 점을 의아해 했다.
 
4
초하룻날 차례도 지내고 3,4일은 무사히 넘어갔다. 그래도 의사는 수술에 착수를 못 하고 있었다. 병인이 어디가 어떤지를 모르게 까부라져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영양분이라고는 들어가기가 무섭게 되받아 나왔다.
 
5
-중독인가? 그렇다면 무슨 중독일까?... 비소 중독?
 
6
의사는 우연히 이런 의문이 떠오르며 고개를 기웃하였다.
 
7
"암만해도 알 수가 없는데... 아마 무슨 중독이 되셨나보외다."
 
8
의사는 고개를 기울였다.
 
9
"무슨 중독이실까요?"
 
10
덕기는 눈이 뚱그래져서 바짝 채쳐보았다.
 
11
"글쎄. 그야 좀더 두고 증세를 봐야 알겠지만요."
 
12
의사의 대답은 그밖에 없었다. 주사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딴딴히 굳어진 노인의 혈관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영양분 대신에 주사로 명맥을 버티어 가는 것이다.
 
13
덕기는 위보를 듣고 위문 겸 병원을 찾아온 이때까지의 주치의와 병원의 박사와 대면을 시켰다. 될 수 있으면 입회 진단을 하여달라는 것이다.
 
14
두 의사는 피차의 경과를 보고하고 각기 그 동안 투약한 처방전(약방문)을 가져다가 서로 바꾸어 보았다. 진단이 틀렸으면 틀렸지 처방으로 보아서는 결코 중독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배설물을 검사한 결과를 주치의에게 보이니까 주치의는,
 
15
"허-?"
 
16
하고 놀라며 고개를 비꼬았다.
 
17
이렇게 되니 남은 의문은 한방의에게로 돌아갔다. 두 의사는 한참 상의한 결과 덕기에게 한약방문과 약 찌끼가 있으면 그것을 가져다달라고 하였다. 의사들은 한약에 유의하느니만큼 한약재의 연구에 대하여 흥미를 더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18
덕기도 여기서 무슨 단서가 나올까 하는 생각으로 아무도 시키지 않고 자기가 한방의에게로 갔다. 약 찌끼도 그대로 있다면 자기 손으로 긁어모아 가지고 올 생각이다.
 
19
한방의는 덕기를 따라 병원에 가서 양의들에게 자기의 진단을 개진하고 방문을 내보였다. 한방의가 내상 외한으로 집중을 하여 다스려 나왔다는 것은 그럴 듯하나, 신열이 보통 감기의 열이 아니요 폐렴으로 해서 내발하는 열인 것은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하여간에 한약에서도 중독될 만한 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더구나 약 찌끼라는 것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20
하여간에 병인은 해독제로 완화는 시켜놓았으나, 이 때문에 신장염과 위장 카타르가 병발하고 시력이 점점 쇠약하여 갔다. 이만하면 비소 중독이란 진단은 결코 오진이 아닌 결정적 사실이요, 또 이것은 의학상 귀중한 연구 재료로 아직 보류하려니와 당장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의사는 거진 절망이었다.
 
21
이 법석통에 수원집은 감기 몸살이라 하여 꼼짝을 안하고 드러누워서 병원에도 사흘이나 아니 갔다. 그래도 수술한다는 날에는 수원집도 깽깽 일어나서 병원에 나왔다. 그러나 그 앓는 소리는 옆의 사람이 듣기에도 송구스러웠다. 앓는 소리만 들으면 영감보다도 이 젊은 마누라가 먼저 갈 것 같았다.
 
22
"하두 오래 병구완하시느라고 저렇게 지쳤구려. 병구완하다가 먼저 돌아가리다."
 
23
일갓집 아낙네들은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놀렸다.
 
24
"대신 나를 잡아갔으면 작히나 좋겠습니까."
 
25
수원집은 숨이 턱에 닿는 소리로 이런 대답을 해서 여러 사람을 웃겼다.
 
26
하여간에 수술은 하였다. 수술이래야 가슴의 물을 빼내는 것이다. 그 덕으로 병인은 신열이 쑥 내려갔으나 그 대신에 기함이 심하여 혼수 상태에 빠져 버렸다.
 
27
이틀 동안을 눈을 한 번도 못 떠보고 그대로 자지러져 들어가던 숨을 마지막 들이걷고 말았다.
 
28
의사는 이해 못하는 가족들이 수술을 잘못하였다고 청원할까 보아 비소 중독을 앞장세우고 또 누구나 의사의 말을 믿었으나, 그 정통 원인이 어디 있었느냐는 점에 이르러서는 의사의 말 못하는 거와는 딴 의미로 아무도 개구를 못하였다. 의사는 다만 의학상 과학적 문제로만 생각하나, 친근한 여러 사람은 법률 문제- 형사 문제로밖에 아니 보이는 거시었다. 그러나 누구나 입을 봉하였다.
 
29
의사가 연구 재료로 해부를 해보아도 좋을 듯이 말을 꺼낼 제 맨 먼저 찬동의 뜻을 표시한 사람은 상제인 상훈이었다. 덕기는 실상은 그렇게 하자고 하고 싶었으나 일가의 시비가 무서워서 대담히 입을 벌리지는 못하였다.
 
30
과연 당장에 우박이 상훈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31
"자네 환장을 했나? 자네 이제는 기를 쓰나? 조가의 집에 이제는 마지막으로 똥칠을 하려는 건가?"
 
32
첫 우박이 창훈의 입에서 쏟아졌다.
 
33
나이 50이나 된 놈이 지각 반푼 어치 없이 어서 분별을 해서 빈소에 모시고 발상을 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황송한 말씀이나 푸줏간에서 소 잡듯이 부모의 신체를 갈가리 찢어발기려는 그런 놈이, 집안 망할 자식이, 천지개벽 이후에 있겠느냐고, 욕설이 빗발치듯 하고 구석구석이 모여서는 대격론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34
부모가 아니라 원수더란 말인가? 생전에 뼈진 소리를 좀 하셨다고 돌아가시기가 무섭게 칼질을 해서 부모를 욕을 보이자 하니 성한 놈이면 육시처참을 할 일이요, 미쳤다면 그놈부터 오리간을 짓고 가두어두든지, 아주 조씨 문중에서 때려잡아 버려야 할 일이라고 은근히 떠들어놓은 사람은 창훈이었다.
 
35
그런 놈이니 제 아비에게 비상이라도 족히 먹였을 것이요, 제 죄가 무서우니까 시신도 안 남게 갈가리 찢어발겨 없애서, 증거가 안 남게 만들어 가지고 불에 살라버리든지, 약병에 채워서 우물주물 만들려는 그런 무모한 생각도 하는 것이라고, 봉인첩설을 하는 것도 최 참봉과 창훈이다. 누구나 또 그럴듯이 듣는 것이다. 이러느라니 수원집은 제각기 한 마디씩 떠들어놓고 병원은 한 귀퉁이가 떠나갈 지경이다. 상훈은 주먹맞은 감투가 되어서 잠깐은 우선 물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할말이 없는 게 아니요, 입이 없어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로되, 공격의 칼날이 날카로운 때는 은인자중하여야 할 것이라고 돌려 생각한 것이다. 만일 금고열쇠가 상훈에게로 왔던들 이 사람들이 상훈을 이렇게까지 무시는 못하였을 것이다. 무시는커녕 창훈부터 '아무렴 그 이상하니 해부해보세' 하고 서둘러댔을 것이다. 상훈으로 말하면 해부를 꼭 하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연놈들의 악독한 음모가 있었다면 그것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선뜻 찬성은 하였으나 기위 의사가 두 사람이나 증명하는 바에야 해부까지 할 필요는 없고 또 후일 문제삼자면 오늘날 안장하고서라도 다른 도리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라고 돌려 생각하였다. 그야 더운 김도 가시기 전에 부모의 시신에 칼을 댄다는 것은 비록 묵은 관념이 아니기로, 차마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 창훈들의 주장이 옳지 않은 것은 아니요, 또 누구나 듣든지 옳다고 하겠으니 한층 더 기고만장을 하여 상훈만을 못된 놈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나 계제가 좋아서 하기 쉬운 옳은 말 한마디를 하였다고 그 뒤에 숨긴 큰 죄악이 감추어지고 삭쳐질 것은 아니라고 상훈은 별렀다.
 
36
-두고 보자. 언제까지 큰소리들을 할 것이냐!
 
37
고 상훈은 이를 악물었다.
 
38
시체는 발상 안한 대로 침대차에 옮겨서 집으로 모셔다가 빈소를 아랫방으로 정하고 안치하였다. 발상에 상훈은 곡을 아니하였다. 이것이 또 문젯거리가 되었으나, 상훈은 내친걸음에 뻗대버렸다. 사실 눈이 보송보송하고 설운 생각이라고는 아니 났다. 그래도 울지 않는 자기가 눈이 통통히 붓도록 눈물을 짜내는 수원집이나 '어이, 어이' 하고 헛소리를 내는 창훈보다는 월등히 낫다고 상훈은 생각하는 것이다.
 
39
상훈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덕기는 깃옷만 안 입었을 따름이지 승중상을 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상꾼도 상훈에게는 절 한 번 뿐이요, 덕기에게로 모여들어서 이야기를 하고 모든 분별을 창훈이 휘두르면서 덕기에게 허가를 맡거나 사후 승낙을 맡는 형식만 취하였으나, 상훈에게는 누구나 접구를 안하려 하였다. 상훈은 꾸어다놓은 보릿자루 모양으로 사랑 안방 아랫목에 멀거니 앉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덕기로서는 부친에게 일일이 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무시를 당하는 부친이 가엾어서도 그렇고 도리로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상훈은 절대 무간섭주의였다. 무슨 말을 물으나,
 
40
"너 알아 하려무나, 의논들 해서 좋도록 하렴."
 
41
할 뿐이다. 거죽은 좋으나 그만큼 속은 토라졌던 것이다.
 
42
그러느라니 덕기가 중간에서 성이 가시었다. 성이 가신 것은 고사하고 일이 뒤죽박죽으로 두서를 차리지 못하고 돈만 처들어갔다. 주인 부자가 이 모양이니, 누구나 먹을 콩 났다고 눈을 까뒤집고 덤비는 축들 뿐이라, 나중에는 저희끼리 으르렁대고 저희끼리 헐어내기에 상두꾼들이 악다구니들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43
그래도 이럭저럭 7일장으로 발인을 하게 되었다. 누가 보든지 호상이었다. 상제는 프록 코트를 입으려 하였더니 역시 제복을 입고 삿갓가마를 탔다. 그 외에는 200여 대의 인력거가 뱀의 꼬리같이 뻗쳤다.
 
44
"잘 나간다. 팔자 좋다! 세상은 고르지두 못하지. 나 죽어 나갈 제는 열두 방맹이 아니라 스물 두 방맹이는 되렷다!"
 
45
아침밥도 못 먹고 모여 선 구경꾼들이 허튼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얼마나 크고 작은 죄악과 불평과 원성이 따르고 남는지를 뉘라 알랴.
 
46
이리하여 조부의 일대는 오늘로 영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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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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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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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