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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금고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금고

1
이튿날 영감은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덕기 부자는 수술을 할 병도 아니니 그만 두자고 하였고, 의사도 고개를 비꼬았으나 수원집은 시중들기가 싫어 그랬던지 앞장을 서서 찬성이었고, 병인도 그리 탐탁치 않은 말눈치면서 그래 보았으면 좋을 것 같은 의견이기 때문에 저녁때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추위에 숨이 넘어갈 듯한 노인을 끌어다가 병원에 둔다는 것은 마음이 실죽들 하였고 병원 구석에서 객사나 시키지 않을까 애가 씌었으나, 덕기 부자는 반대할 수도 없었다. 병원에 쫓아갔다가 온 수원집은 손주며느리에게 상냥스런 웃음을 띄어가며 병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삼동을 두고 양미간에 누벼놓았던 내 천자도 오늘은 스러졌다.
 
2
"너두 내일 아침결에 한번 가뵈어야지."
 
3
"예에."
 
4
"그 길에 아주 친정댁에도 묵은 세배 겸 좀 자녀와야 하지 않겠니?"
 
5
"예에."
 
6
손주며느리는 편찮으신 할아버니께서 안 계시다고 어쩌면 저렇게도 금시도 변할 수가 있을라구? 하고 얄밉기는 하였으나 친정에 묵은 세배까지 하고 오라는 말은 반갑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7
안방이 금시로 환하여진 것이 수원집을 또 웃겼다. 얼굴이 피었을 뿐아니라 몸도 가벼워졌다. 평생에 들어보지 못하던 빗자루도 들고 나오고, 걸레질까지 손수 치는 것이었다.
 
8
"이런 구살머리 적은 속에 누우신 것보다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더라. 모두 정하고 조용하고 수증기 난로를 훈훈히 피워서 안방은 후끈거리구 예쁜 색시들이 오락가락하구..."
 
9
늙은 병인에게 예쁜 색시가 무슨 아랑곳이냐고 어멈은 깔깔 웃었다. 어멈도 안방마마에 못지 않게 낄낄대고 좋아한다. 그러나 손주며느리만은 너무나 속이 빤히 보이는 데 눈살을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10
"병이 안 나으려야 안 나으실 수 없겠더라. 설두 못 차려 먹고 하였으니, 정월 보름 안으로 나으셔서 잔치를 한번 하면 오죽 좋겠니."
 
11
수원집은 이런 소리도 하였다. 저녁도 안방에서 모여서 먹었다. 수원집만 아니라 집안 식구가 누구나 무거운 짐을 내려논 것같이 한숨을 돌릴 것 같고, 침울한 기문이 확 풀려나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수원집처럼 요렇게도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해할 수야 있나. 대보름 안으로 나아서 이 집에 들어오기는커녕 그 안에 이 집 문전에 발등거리를 내어 달고 곡성이 났으면 춤출 것같이 서둔다.
 
12
그래서 수원집은 저녁 후에 병원 간다고 어멈을 데리고 나갔다. 덕기가 병원에서 묵으려다가 자리도 만만하지 않고 하여 창훈과 상노놈을 남겨 두고 자정에나 서모를 데리고 돌아왔다. 덕기의 말을 들으면 집에서는 저녁 7시에 나간 서조모가 병원에는 10시 가까이나 왔더라 한다.
 
13
"그 동안에 어디를 갔었더람?"
 
14
하고 아내가 물으니까,
 
15
"낸들 아나!"
 
16
하고 덕기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하지만 최 참봉이 병원에 한 30분 먼저 오고 서조모가 나중 들어온 것으로 보아도 저희끼리 모여서 무슨 의논을 분주히 하고 다니는 눈치다.
 
17
이튿날 개동에 덕기는 병원으로 달아났다. 수원집도 아침 전에 잠깐 다녀오마 하고 병원으로 갔다.
 
18
"너두 친정댁까지 다녀오려면 일찍 서둘러야 할 것이니 내 다녀올 동안에 얼른 밥을 해치우고 차비를 차리고 있거라."
 
19
고 일러 놓고 나갔다.
 
20
손주며느리는 별안간 왜 저렇게 인심이 좋아졌누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21
하라는 데로 치장을 차리고 있었다.
 
22
10시나 가까워 수원집이 돌아와서,
 
23
"서방님은 거기서 아침 사먹었다. 어서 가보아라. 어쩌면 오늘 저녁때나 내일엔 수술을 하시게 된다더라."
 
24
고 하며, 손주며느리를 늦는다고 재촉재촉하여 내보냈다.
 
25
"무어 이번에는 어른도 안 계시고 다례도 안 지내실 모양인 아주 설을 쇠고 와도 좋다만... 병원에 가건 서방님더러 물어보렴."
 
26
대관절 수원집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도 마음이 내켰는지 덕기댁은 도리어 의심이 들어갔다.
 
27
덕기 처가 병원에 가보니 오늘이 섣달 그믐이라 묵은 세배꾼이 입원한 문안을 겹쳐서 아침결부터 몰려들어 생사람도 조금만 앉았으면 머리가 내둘릴 지경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계시고 한데 별로 할 일은 없다 하여도 곧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서 손님들이 모여 있는 곁방에 잠깐 앉았으려니까 남편이 오더니 어서 집으로 가자고 한다.
 
28
"다례를 잡숫게 하라시는데 어떻게 하나. 얼른 가서 간단히 차려 지내야지."
 
29
덕기 내외는 모친을 모시고 나서면서 지 주사에게 돈을 내주어서 배우개 장으로 흥정을 하러 보냈다. 창훈 아저씨와 같이 보내려고 찾아보았으나 어디를 갔는지 눈에 띄지를 않았다.
 
30
별안간 다례를 지내게 된 것은 일전에 시골서 올라온 당숙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에 와서 병 위문을 하고 섣달 그믐날 수술을 하는 것은 아니 외었으니, 오늘 내일 이틀을 연기하여 초하루나 지낸 뒤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병인 앞에서 발론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감은 오늘이 그믐날이라는 말을 듣자 자기 병 이야기는 고사하고 손자를 돌려다보며,
 
31
"응? 오늘이 벌써 그믐이냐? 그럼 내일 다례 지낼 분별은 해놓았니?"
 
32
하고 놀라서 물었다.
 
33
"이 우환중에 올해만은 안 잡숫기로 어떻겠습니까?"
 
34
덕기가 이런 소리를 하니까 조부는 소리를 지르고, 내가 살아서도 이럴 제야 죽은 뒤에는 어쩌려느냐고 야단을 치는 바람에 예예 하고 나온 것이다.
 
35
세 식구가 애 업은 년을 앞세우고 꼭 지친 대문 안을 들어서니 행랑에서
 
36
"누구요?"
 
37
소리를 경풍을 하도록 치며 뛰어나온다.
 
38
"에구, 어떻게들 오세요. 안방마님은 출입을 하시나보던데요."
 
39
어멈은 무슨 반가운 손님이나- 반가운 손님이라느니보다도 이 집 주인이 따버리라고나 한 불길한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못 들어오게 하느라고 막아내려는 듯이 앞장을 서서 허둥지둥 뛰어들어간다.
 
40
-미친 년두 다 많다. 제가 어째 앞장을 서누?
 
41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쫓아들어가니 대청이 텅 빈 것같이 인기척 하나 없고, 금방 뛰어들어온 어멈도 어디로 갔는지 눈에 안 뛴다.
 
42
수상하다는 생각에, 마치 도둑이 들어와서 집 안을 돌아다닐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선뜻한 마음이 들며 마주들 치어다보았다.
 
43
"모두들 나갔나?"
 
44
덕기는 모친이나 아내가 무슨 기미를 챌까보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크게 내며 마루로 앞장을 서 올라왔다.
 
45
그러나 여자들도 마루로 올라오려니까, 수원집이 사랑 편에서 고무신을 끌고 나릇나릇이 놀란 기색도 없이 들어오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46
"어째들 이렇게 함께 몰려왔누? 너는 안 가니?"
 
47
하고 방에 들어가려다 말고 마루 위에 섰는 손주며느리를 치어다보며 올라온다.
 
48
-웬일일꾸?...
 
49
누구나 이런 의심이 들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50
"사랑에 아무도 없어요?"
 
51
덕기가 건넌방에서 모자를 벗고 나오며 말을 걸었다.
 
52
"아무도 없더군. 무얼 좀 가지러 나갔더니 얻다 두셨는지 눈에 안 띄어."
 
53
수원집은 여전히 심상하고 침착하다.
 
54
"무언데요?"
 
55
"응. 할아버니 잘두루마기가 눈에 안 띄게 사랑에 그저 걸어두셨나 하구..."
 
56
"할아버니 잘두루마긴 병원에 입고 가시지 않았나요?"
 
57
덕기 처가 대꾸를 하였다.
 
58
"응, 참 내 정신두."
 
59
하며 수원집은 풀없이 웃어버린다. 어제 침대차로 영감을 모실 때 담요를 덮다가 잘두루마기를 내오라고 할 제 의걸이 속에 있다고 자기 입으로 해서, 손주며느리가 꺼내다가 경인 위에 덮고, 그 위에 또 담요를 덮던 것을 그렇게 잊어버렸을까? 사실 그렇다면야 어째서 어멈이 곤두박질을 해서 뛰어들어갔던 것인가? 그건 그렇다 하고, 지금 어멈은 쥐구멍으로 안 들어간 다음에야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60
덕기는 사랑으로 나갔다. 사랑에는 금고가 놓였다... 사랑에 아무도 없다는 말은 또 웬 말인가?
 
61
사랑에는 과시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사랑문을 지쳐만 둔 것은 웬일인가?
 
62
덕기가 사랑 앞문을 열고 소리를 치니까 어멈이 이번에는 안에서 긴 대답을 하며 안쪽 문으로 나온다.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다.
 
63
"아무도 없는데 문을 이렇게 열어 두면 어떻게 하나?"
 
64
"제 방에 잠깐 나가느라고 열고 나갔에요."
 
65
덕기는 문을 걸라고 하고는 큰사랑방으로 들어갔다.
 
66
주머니의 열쇠를 꺼내서 다락문을 열었다. 문을 열면서 내닫듯이 마주 치는 것은 금고다. 이 집을 사서 들 제 금고를 들여놓으라고 다락을 뜯어고치고 밑바닥에 기와집 서까래 같은 강철 기둥을 세우고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 몇 해가 지나갔다. 이 금고를 지키기에 소모되고 만 것이다. 언젠가 일고 여덟 살 적에 조부는 금고를 열고 무슨 일을 하다가,
 
67
"덕기야, 너 이 속에 들어가보고 싶으냐? 말 안 들으면 이 속에 놓고 딱 잠가 버린다.."
 
68
고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던 것이 생각난다. 이제는 키가 곱절이나 되었으니 이 속에 들어가 갇히지는 않겠지마는 조부는 역시 자기를 속에 가두고 가려 한다. 덕기의 일생은 이 금고 앞에서 떨어져서는 안 될 것을 엄명하였다. 그리고 이 금고지기의 생애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왜 의심이 부쩍 들었나? 왜 지금 이 금고를 보살피러 나왔는가?
 
69
-내 일생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중대한 일은 이 금고 여닫는 것과 사랑문을 여닫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단 말인가? 마치 간수가 감방 문을 여닫듯이. 그리고 그리 중대(?)한 사업이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70
덕기는 금고가 전에 어떻게 놓여졌던지는 모르나 누가 건드렸다 하였어도 놓인 그대로 있을 것이요, 열쇠를 목에 지니고 있는 다음에야 누가 손을 댄대야 별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속에 무엇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증이 더 난다. '판도라'의 비밀 상자도 아니니, 조부의 엄명을 어길지라도 잠깐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전에 조부에게 배워둔 대로 호수를 맞춰서 열어보려 하였다. 조부는 집안 중에서 덕기에게만 금고여는 비밀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71
덕기는 묵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금고의 배꼽을 뱅뱅 돌리다가 문턱에 부연 재가 떨어진 것이 눈에 힐끈 띄자,
 
72
-웬일일까?
 
73
하며 자세히 보았다. 문 닫는 바람에 올크러졌기는 하나 분명 담뱃재다. 조부가 떨어뜨린 것일까? 조부가 누운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이 재가 한 달 묵은 재일까? 그러나 조부는 담뱃대 외에는 궐련을 아니 피운다. 조부가 담뱃재를 물고 금고 문을 열었을까? 이 재가 담뱃대의 재일까?...
 
74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멈의 행동부터 수상하였다. 집안 시구를 어디로 내쫓았는지 안방 애보기년까지 눈에 안 띄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사랑문이 열려 있는 것이 의아하였다. 어멈이 제 방에 불이 붙기로서니 안으로 돌아나가지 않고 닫은 사랑문을 여고 나갈 필요가 무언가? 잘두루마기를 가지러 나왔더란 말도 어설프지마는 서조모가 무슨 인심이 뻗쳤다고 자기 처더러, 본가에 묵은 세배를 다녀오라고 하였던고? 다른 때 같으면 병원에 가 묵는 것도 바쁜데 어디를 나가느냐고 핀잔을 주었을 터인데 핑계 좋겠다 제가 간다 하여도 못 가게 하였을 것이 아닌가? 결국에 집안 식구를 다 내쫓고 집 지킨다는 핑계로 혼자 들어앉아서 무슨 짓을 하려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창훈 아저씨가 아까 병원에서 눈에 안 띄던 것도 다시 의심이 난다. 최 참봉 역시 아침에만 잠깐 보이더니 없어졌었다.
 
75
-흥! 저희들이 나를 옆에 두고 무슨 짓을 할 것 같은구? 다락문은 맞은 쇠질을 할지 모르지만, 금고까지 맞은 쇠질을 할 재주가 있더람! 또 열어 보면 어쩌려던 건고? 도둑질을 못 할 게 아니지마는, 그런 섣부른 짓이야 할 리 없고 은행 통장을 꺼내낸대도 당장 발각될 것이요... 땅문서의 명의를 고쳐서 감쪽같이 넣자는 것인가? 유서 같은 것이 들었으면 변작을 해놓자는 것인가? 그랬다가 만일 할아버니께서 살아나신다면 어쩔 텐구...
 
76
얼굴이 비칠 듯이 어른거리는 금고 문에 손자국이 몹시 난 것을 자세자세 들여다보다가 덕기는 별안간 겁이 버쩍 났다.
 
77
사랑문이 열린 것을 보면 어떤 놈이든지 뺑소니를 쳤을 것 같기는 하나, 이 넓은 속에 또 누가 어디 숨어서 엿보고 있는지도 모를 것 같다. 뒤로 달려들어서 깩 소리도 못 치게 하고 나면 금고만 멀뚱히 서서 모든 사실, 모든 비밀을 알 것이다. 돈이란--재산이란 이렇게도 무서운 것이요, 더러운 것인 줄을 덕기는 비로소 깨달은 것 같다. 금고 문이 유착스럽게 뻐끗이 열리자 덕기는 차근차근히 뒤지기 시작하였다.
 
78
첫번째 손에 잡히는 것이 유서- 유서라느니보다도 발기를 적은 것이었다. 그 속에는 집안 식구의 이름이 거의 다 씌어져 있었다. 그리고 여남은 개가 되는 봉투에는 가가 임자의 이름을 써서 단단히 봉하여 두었다. 덕기는 급한 대로 그 발기에 씌어진 이름과 봉투를 대조하여 보니 축난 것은 없다. 수원집의 몫과 덕기 자신의 몫도 그대로 있고, 봉투를 뜯었던 자국도 없다. 그 외에 은행 통장이라고 씌어진 봉투도 그대로 있고, 덕기와 조부의 큰 도장도 있다. 결국 저희들이 금고를 못 연 것이다.
 
79
덕기는 가슴이 뻐근하면서도 후련한 것을 깨달으면서 그 발기를 자세자세 들여다보고 앉았다...
 
80
필자는 여기에 조씨집 재산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잠깐 공개할 필요가 있다.
 
81
귀순이(수원집 소생) 50석
82
수원집 200석
83
덕희(덕기 누이) 50석
84
덕희 모(며느리) 100석
85
덕기 처 50석
86
상훈 300석
87
덕기 1500석
88
창훈 현금 500원
89
지 주사 현금 500원
90
최 참봉 혐금 300원
 
91
이것은 물론 대략 쳐서 그렇다는 것이니, 그 중에 수원집 한 사람 몫이 200석 같은 것은 실상 상훈의 300석의 거의 3곱절 폭이나 될 것이요, 또 덕기의 1500석이라는 것도 나머지는 다 쓸어 맡긴 것이니 실상은 2000석까지는 못 가더라도 1700-800석은 될 것이다.
 
92
그 외에 은행 예금 중 큰 것으로 1만 원과 지금 들어 있는 집이 덕기 차지요, 수원집은 태평통에 있는 열 다섯 간 집을 줄 거이요, 북미창정 집은 상훈의 소생이 있다 하니 그에게 내줄 것이며, 현재 자기가 수중에 넣고 쓰는 예금 통장에는 얼마가 남든지 장비를 쓴 뒤에 남은 것으로 창훈과 지 주사들의 상금을 주고, 나머지는 두 집의 용으로 쓰라고 하였다. 그것도 한 1만 원 가량 되었다. 그러나 남대문 안 정미소를 어떻게 처치하라는 말이 별로이 없는 것은 영감이 깜박 잊었는지, 대소가의 생활비를 그것으로 충용할 것인즉 특별히 몫을 짓지 않은 것인지 좀 모호하다.
 
93
그 외에 주의 사항으로는 미성년자의 소유와 덕기 모친과 덕기 처의 몫은 두 계집애 귀순과 덕희가 자라서 시집갈 때까지, 또 모친과 처는 죽을 때까지 덕기가 감독하고 보관할 것을 써놓았다. 이것으로 보면 수원집이 이 집에서 죽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귀순의 장래를 덕기에게 부탁한 것이요, 또 며느리나 손주며느리의 몫을 따로 정한 것은 장래 이혼을 한다든지 무슨 풍파가 있을 경우까지를 염려하고 한 것 같았다.
 
94
산을 남겨줌이 도리어 후손에 화를 끼치는 수도 없지 않기로, 내 생전에 이처럼 분배하여 놓은 것이니, 이는 나의 절대 의사라 다시는 변통하지 못할 지며, 지어 덕기 하여는 장래 조씨집의 문장이라, 덕기 자신에게 줌이 아니라 조씨 일문에 대대로 물려내려갈 생활의 자료를 위탁함이니 덕기 된 제 모름지기 푼전이라도 소홀히 하지 못할지니라...
 
95
운운한 유언도 끝에 씌어 있다.
 
96
그리고 이 재산 처분은 자기가 죽은 뒤 안장을 마치고 여러 사람 앞에 공개하여 분배해주되 특히 여자들의 몫만은 3년상을 마친 뒤에 내줄 것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수원집 하나를 특히 구속하려는 뜻인 모양이다. 수원집이 딴 남편을 해갈지라도 3년이나 마치고 가게 하자는 것이요, 그러느라면 네 살 먹은 귀순도 학교에 갈 나이도 될 것이니 아무의 손으로나 기르게 될 것이니까, 그것을 생각하고 한 것인 듯하다.
 
97
유서에 씌어진 날짜는 불과 십여 일 전, 즉 방으로 들어오기 전이니, 그 침중한 가운데서도 만일을 염려하여 오밤중에 혼자 일어나 엉금엉금 금고에 매달려서 꺼내고 넣고 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덕기는 조부가 가엾고 감격한 눈물까지 날 것 같다. 조부의 성미와 고루한 사상에 대하여서나, 부자간에 그처럼 반목하는 것은 덕기로서도 불만이 없지 않으나 자손을 위하여 그렇게 다심하게도 염려하는 것을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다. 분배해논 것이야 일조일석에 한 것이요, 몸이 편할 때에 시름시름하여 두었겠지마는, 늙은이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죽은 뒤의 마련을 하던 그 쓸쓸한 심정이나 거동을 상상하여 보면 또 눈물이 스민다. 남들은 노래에 수원집에게 홀딱 빠졌으니 그 재산이 성할 수야 있겠느냐고, 덕기가 듣는데서까지 내놓고 뒷공론들을 하였지마는 결국 수원집 모녀 편으로는 250석이니, 상훈의 단 300석밖에 차례가 안간 것을 생각하면 많은 편이나, 적은 셈이다. 원체 상훈에게 300석이라는 것은 너무나 가엾고 이것이 모두 영감의 고집불통 때문이지마는, 봉제사 안하는 예수교 동티다. 결국 영감의 봉건사상이 마지막으로 승리의 개가를 불러보는 것이다. 그러나 덕기가 재산은 상속하였을망정 조부의 유지도 계승할 것인가? 그는 금고 문지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사당 문지기로서도 조부가 믿듯이 그처럼 충실할 것인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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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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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