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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변한 병화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변한 병화

1
어둔 지는 아직도 초저녁이다. 음력 섣달 그믐이 내일 모레라서 그런지 그래도 이 동네는 부촌이라 이집 저집에서 떡치는 소리가 들리고 거리가 질번질번한 것 같다. 떡도 안 치고 설이란 잊어버린 듯이 쓸쓸한 집 안에 있다가 나오니 딴 세상 같다. 덕기는 전차에 올라탔다. 오는 길로 병화에게 엽서라도 띄울까 하다가, 분잡통에 와도 변변히 늘고 이야기할 경황이 없을 것 같아 틈나면 가보지 하고 그대로 두었었다. 지금도 새문 밖으로 갈까, 경애를 찾아서 바커스로 갈까 망설이며 그대로 전차에 올라탄 것이다.
 
2
전차가 조선은행 앞을 오니 경성 우편국이 차창 밖으로 내어다보인다. 불을 환히 켠 유리창 안에 사람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자 덕기는 속으로 내릴까 말까 하며 그대로 앉았다가 사람이 와짝 몰려들어오며 막 떠나려 할 제 뒤로 비집고 휙 내려버렸다.
 
3
우편국 옥상 시계를 치어다보니 아직 8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덕기는 그대로 우편국으로 들어섰다. 창훈의 말이 자기 손으로 경성 우편국에서 전보를 놓았다 하니 물어보면 알리라는 생각을 하였던 터에 지금이 앞을 지나니 생각이 다시 난 것이다. 우편국에서는 귀치않아 하였으나 조 한가한 때라 그런지 그래도 돈 부쳤다는 날짜에서 전후로 일주일간이나 경도로 띄운 전보라고는 덕희가 친 것밖에 없었다.
 
4
덕기는 분한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라도 단단히 족쳐서 이제는 꼼짝을 못하게 만들리라고 단단히 별렀다. 조부는 부친만 가지고 의혹을 하나 창훈이 앞장을 서고 최 참봉은 수원집을 충동이고 하여 무진 짓이든지 꾸미려다가 제패에 떨어진 것이 이제는 의심할 나의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지중간에 부친만 가엾다. 주부가 그대로 돌아가면 조부는 영원히 부친을 오해한 대로 돌아갈 것이요, 부친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이 집안의 객식구처럼 베도는 양을 생각하면 더 딱하다. 하여간에 시험은 못 보게 되더라도 잘 왔기도 왔고 수원집이나 부친에게 얼마씩 떼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마는 조부의 처사도 옳다고 생각하였다. 부친에게 전부 상속을 안하는 것은 자기로서는 죄송스러웠으나 요즈음의 부친 같아서는 역시 자기가 맡아놓고 부친이 돈에 군색치 않게만 하여드리는 편이 부친의 신상을 위하여서나 집안을 위하여 도리어 다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5
덕기는 병화를 찾아서 새문 밖까지 나가기는 좀 늦고 집에도 10시에 의사가 오기 전에 들어가야 하겠기에 거기는 단념하고 잠깐 경애에게나 들러보려고 본정통으로 들어섰다.
 
6
바커스에는 경애는 없고 전에 보지 못하던 미인이 하나 늘었다. 얼른 보기에도 일본 여자 같다. 주부는 반색을 하며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7
"아이상요? 요새 좀 난봉이 났지마는 이제 오겠지요."
 
8
주부는 이렇게 웃으면서 정다이 군다. 덕기는 너무 그런 데에 도리어 얼떨얼떨하였지마는, 오정자의 소식을 알아 기별해주고 한 일이 있어 그러려니 하였다. 주부의 말을 들으면 경애는 요새 이 집에 전같이 육장 붙어 있지도 않고 놀러다니는 눈치다. 병화도 가끔은 오나 그리 자주 오지는 않는다 한다.
 
9
어쨌든 경애도 기다릴 겸하여 잠깐 불을 쬐며 오정자 이야기를 하여 들려 주기도 하고 오정자의 내력도 듣고 앉았으려니까 경애가 소리를 치며 들어온다.
 
10
"아, 이거 누구라구! 언제 왔소?"
 
11
경애는 반가이 인사는 하였으나 속으로는 그리 반가운 것도 아닌 기색이었다.
 
12
덕기가 가까이 있다고 병화의 일에 쌩이질을 할 것도 아니요, 또 병화에게 마음이 쏠렸기로 들의 행동을 감시한다거나 방망이를 놀 것은 아니겠지마는 그래도 전번과 달라서 상훈이 뒤를 쫓게 된 오늘날에는 덕기마저 한 축에 어울리게 된다는 것이 이편에나 저편에나 창피하고 성이 가신 일이다.
 
13
"응, 할아버니께서 그렇게 위중하셔?"
 
14
'내 어쩐지 상훈이를 요새 며칠 볼 수사 없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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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각을 하며 경애는,
 
16
-나두 머리 풀 일 났군!
 
17
하고 속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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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을 좀 만나야 하겠는데, 오늘 여기 오지 않을까?"
 
19
덕기는 말을 도리고 눈치를 슬쩍 보았다.
 
20
"그이두 요새는 별로 볼 수 없습니다. 머리나 좀 깎구 다니는지."
 
21
경애는 지금 당장 만나고 헤어져 오는 길이나 딴전을 해버렸다.
 
22
"그래, 아이는 이젠 몸 성하우?"
 
23
"에, 이젠 괜찮아."
 
24
덕기는 금고 속을 잠깐 생각해보았다. 같은 조가건마는 그 속에는 그 애의 몫으로는 오리 동록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걸 보면 수원집 소생이 얼마나 팔자 좋을지 모르나 나중에 어찌 될는지는 자라봐야 알 것이 아닌가도 싶다.
 
25
아까 홀에서 보던 계집애가 들어오더니 경애에게 소곤소곤하니까 웬일일까? 하는 듯이 고개를 비꼬다가 생글 웃으며,
 
26
"잘 되었군! 당신이 만나시겠다는 친구 양반이 왔다는데."
 
27
하고 덕기더러 먼저 나가보라고 한다.
 
28
경애는 조금 아까 참닿게 헤어져 가던 사람이 왜 또 왔누? 하고 의아도 하였지마는 별일이 있겠니 술이 못 잊어서 그렇겠지 하고 속으로 웃었으나, 병화 역시 요새로 부쩍 몸이 달아서 아우 타는 젖먹이처럼 한시 한때를 안 떨어지려고 하는 눈치를 생각하면 나무랄 수만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좀더 삼가주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29
"야아..."
 
30
"야아, 여전하이그려?"
 
31
"난 자네가 여기 온 줄 알고 찾아왔네."
 
32
밖에서 두 청년이 인사를 하느라고 떠들썩하다. 병화는 덕기가 뛰어 나올 줄은 천만 뜻밖이나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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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온 줄 어떻게 알았나? 우리집에 들렀던가?"
 
34
"내 귀를 보게. 좀 큰가. 한데 아주 위중하신가?"
 
35
"그저 그만하시지만... 참 자네 편지 보구 왔네. 그 무슨 잔소린가? 다시는 안 만날 것같이 서둘러대더니, 두었다가 만날 것을 괜히 만났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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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덕기는 필순이 이야기는 건드리지 않았다. 병화도 픽 웃고만 만다. 무엇에 정신이 팔린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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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자네 웬일인가? 무슨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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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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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병화는 머리를 쓰다듬는다.
 
40
"머리가 말쑥하고, 양복이 보지 못하던 거요, 아마 크림도 바른 모양이지? 하하하..."
 
41
"응, 크림도 바르기는 발랐네마는 보지 못하던 양이라니 고물상에서 사 입은 양복인 줄 아나?"
 
42
병화도 껄껄 웃는다.
 
43
"그러나 크림 값은 대관절 어디서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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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별걸 다 묻는군."
 
45
"이로오도꼬(미남자)! 축배나 한잔 올리고 싶으이마는 곧 가야 하겠어. 섭섭하이."
 
46
덕기는 앉지도 않고 가려 한다. 병화도 잡을 생각은 없으나 어쨌든 잠깐 앉으라고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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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는 감정으로나 기분으로나 퍽 멀어진 것같이 보인다. 동문수학하던 사람이 몇십 년 후에 만남 것처럼 무관하면서도, 서운한 그런 감정이었다. 어째 그럴까? 덕기는 생각하였다. 돈에 꿀리지 않는 모양이기 때문인지 버젓하게 응대하는 그런 기색도 없이 무엇에 달뜬 사람처럼 건성건성 수작을 하는 양도 이상하다. 궁하던 사람이 금시로 가면 기죽을 펴는 바람에, 너무 지나쳐서 있는 사람보다도 주짜를 빼는 수도 없지 않지마는 꼭 그런 것도 아니요, 그저 서성대는 것이다. 경애도 나와서 서로 변변히 인사도 아니하고 무슨 말끝에인지, 서로 눈짓을 하는 것을 보니 그것도 전과는 다른 눈치다. 그러고 보면 달뜬 기분은 연애를 하느라고 그렇다고나 하려니와 돈도 경애에게서 나온 것인가? 덕기는 모든 것을 경애와의 연애에 밀어붙이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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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그렇다면 덕기의 처지는 대단 우스웠다. 경도에 앉아서 편지로 실없는 말을 들을 때와 달라서, 이렇게 둘의 새가 좋은 꼴을 면대해놓고 보니, 속이 느글느글하기도 하고 창피스럽기도 하다. 저희끼리 좋아하면 했지, 내야 어쩌는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부친을 생각하면- 더구나 딸아이를 생각하면 이 현상을 무어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몰랐다. 어쨌든 자기로서는 눈감아버리고 영영 모르는 척하는 것이 상책이요, 금후로는 경애와 만나지 말아요, 더욱이 두 남녀가 무주 않은 자리에 끼이지 않도록 기회를 피하여야 무슨 의논이 있어 온 눈치 같기도 하여 덕기는 자리를 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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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라두 놀러 좀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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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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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틈나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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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탐탁치 않은 대답이다. 말눈치가 요새는 매우 바쁜 모양이나 전 같으면 몇 시에 온다든지 꼭 기다려 달라든지 하며, 긴하게 대답이 나올텐데 이제는 잔돈에 꿀리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며, 덕기는 조그만 불만과 함께 혼자 냉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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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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