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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매당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40권  41권  42권  염상섭

1. 매당

1
9시가 치는 것을 보고 경애는 활동사진관에서 나와 자동차에 올라앉았다. 아까 그 운전사는 아니나 역시 아는 사람이다.
 
2
자동차를 재동 못미처 큰길거리에 던져두고 경애는 운전사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병화가 가르쳐주던 대로 캄캄한 속을 차츰차츰 휘더듬어 들어갔으나 중턱에 들어가서는 게가 거기 같고 전등불도 없는 속에서 어리둥절하였다. 그러자 어느 구석에선지 대문이 찌이걱 열리는 소리가 나며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들린다.
 
3
경애가 운전사를 손짓으로 가만 있게 하여, 두 검은 그림자는 귀에 신경을 모으고 섰다.
 
4
"어쩌면 좋아! 왜 왔더라고 하면 좋아요?"
 
5
겁을 집어먹은 젊은 여자의 목마른 목소리다.
 
6
"조금도 염려없어! 내가 몸으로 슬쩍 막았는데... 그리구 취한 사람이 무얼 분명히 보았을라구."
 
7
이것은 늙은 아낙네의 안위시키는 말소리다.
 
8
"누가 오줌만 누구 그렇게 곧 나올 줄 알았나요. 뒤보러 간다고 하기에 나오시라고 좋도록 꾸며대지."
 
9
노파의 목소리다.
 
10
"그러기로 병환은 저런데 밤중에 나다닌다고 할 게 아니예요?"
 
11
이것은 가려고 문밖에 나선 여자의 걱정이다.
 
12
"그러기로 제 속에만 넣어두었지 소문이야 낼라구! 친환은 내버려두고 술 먹으러 다니는 사람은 얼마나 낫기에! 자기가 창피해서두 모른 척할 테지."
 
13
"그두 그렇지만... 일두 공교스럽게두 되느라구..."
 
14
"모두 내가 없었던 탓이지. 그러나 늦기 전에 어서 가요."
 
15
또 한참 소곤소곤하더니,
 
16
"안녕히 겝쇼."
 
17
"응. 잘 가거라."
 
18
"안녕히 가세요."
 
19
안에서 안 들릴 만큼 인사가 분주하더니 골목 밖으로 조그만 그림자가 쑥 나온다.
 
20
경애와 운전사는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 추녀 밑으로 비켜섰다. 나오던 여자는 멈칫하며 역시 이 집에 드나드는 축이겠지만 아는 동무인가 하고 바라보다가 컴컴한 속에서 보이지를 않는지 그대로 지나쳐 간다. 망토를 두르고 까만 털목도리에 푹 파묻힌 머리에는 밤빛에도 금나비 금줄이 번쩍이는 조바위가 씌워져 있다.
 
21
'분명히 저게 수원집인가보다!'
 
22
경애는 속으로 웃었다. 병환이 어쩌고 하는 것을 들으면 상훈과 맞장구를 펴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 숨어 있다가 변소에 간 새에 도망을 쳐 나오다가 들킨 것이 뻔하다. 경애는 '잘들 놀아난다!'고 속으로 혀를 찼다. 운전사더러 그 집으로 들어가서 조상훈을 찾으라고 하였다. 만일 없다고 하거든 큰댁에서 급히 오시라고 자동차를 가지고 사람이 왔으니 곧 뵈어야 하겠다고 하라고 일렀다.
 
23
경애가 뒤에서 바라보니 전등 달린 커단 새 대문이 어느덧 꼭 닫히었다. 운전사는 들이 흔들다가 안에서 대답이 있는지 가만히 섰다. 경애는 또 숨어 버렸다.
 
24
계집 하인이 나왔는지 중얼중얼하더니 운전사가 급히 뛰어나오며,
 
25
"됐습니다. 이제 나오시는 모양인가 봅니다."
 
26
하고 뛰어간다. 이젠 저는 먼저 나가 있을 것이니 자동차 논 데까지 끌고 나오라 하여 운전사를 다시 들여보내놓고 뺑소니를 쳐 나왔다.
 
27
경애가 불끈 자동차 속에 먼저 들어가 앉았으려니까,
 
28
"어디란 말인가? 이때까지 문밖에서 있다던 사람이 예까지 나왔을 리가 있나?"
 
29
하고 상훈은 술 취한 소리로 역정을 내며 동구 밖으로 나온다. 앞장을 선 운전사는 싱글싱글 웃으며,
 
30
"글쎄올시다. 먼첨 나오셔서 타셨나?"
 
31
하고 컴컴한 자동차 속을 들여다보며 문을 연다. 상훈이 달려 들여다보니까 경애가 해죽 웃으며 고개를 쑥 내민다.
 
32
"엉..."
 
33
상훈은 경풍한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더니,
 
34
"에이, 사람을 그렇게 속여!"
 
35
하고 경애에게 하는 말인지 운전사를 나무라는 것인지 이런 소리를 하고 머뭇머뭇 섰다.
 
36
"창피하니까 잠깐 들어오세요."
 
37
"이러구 어딜 갈 수는 있어?"
 
38
하며 상훈이 망단해하다가 올라서니까,
 
39
"가긴 누가 어디를 가재요?"
 
40
하고 경애가 자리를 비키며 운전사에게 눈짓을 한다. 운전사는 냉큼 뛰어올라서 불을 번쩍 켜고 고동을 틀려 한다.
 
41
"가면 안 돼! 모자두 안 쓰고 나왔는데..."
 
42
상훈은 당황히 소리를 지르며 엉덩이를 들먹거린다.
 
43
"걱정 마세요. 또 데려다드릴게."
 
44
자동차는 뚝 떠났다.
 
45
"감옥 자동차는 용수나 씌우더군마는 맨대가리로 어딜 가는 거야?"
 
46
상훈은 그리 취하지도 않았지만 배반이 낭자하게 벌여놓인 것을 그대로 두고 잠깐 나와서는 이렇게 끌려가는 것이 하도 어이없고 생각할수록 우스웠다.
 
47
"당신 같은 팔자가 어디 있어요. 주지육림에 경국지색을 모아놓고 밤 깊도록 노시다가 갑갑하실 때쯤 때를 맞춰서 바람이나 쐬시라고 나 같은 모던 미인이 자동차까지 가지고 등대를 하고... 하하하..."
 
48
"어떻게 알았어?"
 
49
"냄새를 워낙 잘 맡거든요."
 
50
"사냥개던가!"
 
51
하고 상훈은 실소를 하다가,
 
52
"김병화 요새 만나지?"
 
53
하고 묻는다. 아범이 잃어버린 외투 속의 편지를 생각한 것이다. 매당집에 다니는 것을 자기 패의 몇몇 사람 외에는 바깥애밖에는 모르는 터이니 병화가 새어 들어서 뒤를 밟은 것인 듯하나 혹시 경애 자신이 매당집에 무슨 연줄이 닿아서 알았는지? 매당집이란 서울바닥에서도 유수한 그러한 젊은 계집이 주름을 잡는 도가인지라 경애 역시 그런 축으로 떨어졌기도 쉬운 일인 듯싶다. 하여간에 경애가 이렇게 쫓아온 것이 불쾌할 것은 없다. 제아무리 배 내미는 수작은 하였어도 다른 계집이 따를 줄을 알고 몸이 달아 붙들려고 다니는 것을
 
54
보니 이제는 이편에서 배를 퉁겨보고 싶다.
 
55
"친환은 침중하신데 수원집마저 매당집에 밤사진을 하시느라고 병구완 하실 겨를이 없으신 모양이고 딱하신 사정이라 내가 모시러 갔었습니다만 어떻게 자동차를 큰댁으로 대랄까요?"
 
56
경애는 야죽야죽 놀린다. 자동차는 창덕궁을 등지고 무작정하고 동구 안으로 내려간다. 수원집이란 말에 상훈은 아까 매당집 마당에서 슬쩍 지나치던 것이 정말 수원집이었던가? 하는 놀라운 생각이 들면서 눈살을 찌푸려 보인다.
 
57
"이것 봐! 자동차를 다시 돌려!"
 
58
그렇지 않아도 운전사가 갈 데를 물으려 할 때 상훈이 운전대에 대고 소리를 쳤다.
 
59
"나온 김에 남산으로나 올라가십시다그려."
 
60
병풍 친 온돌방 있는 그 호텔로 가자는 말이다. 거기에는 상훈도 반대는 아니하였다. 시기가 나니까 제풀에 고개를 숙이고 앞장을 서는구나 하고 속으로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어쨌든 싫지는 않은 발론이었다.
 
61
차가 영락정으로 빠져나오니까 경애는 또 무슨 생각이 났던지 남대문 쪽으로 돌리라고 명한다.
 
62
"하여간 모자와 외투나 찾아 입고 나서야지 사람이 왜 그 모양이야?"
 
63
상훈은 속으로 그렇지 않으면서도 짜증을 내보인다. 그렇다고 물론 당장 매당집에 두고 나온 김의경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도 아니다. 요새로 의경에게 졸리는 조건도 하도 많은지라 이렇게 빠져나온 것이 영 해롭지 않은 터이다.
 
64
"두루마기 바람이 대수예요? 모자 외투야 어련히 작은 마님이 잘 맡아 둘라구, 아 그리구 큰댁에는 지금쯤은 수원 마나님께서 들어가셨을 것이니까 거기두 염려없을 게니 오늘밤은 아무리 바쁘신 몸이지마는 오래간만에 하룻밤 시간을 빌리시구려."
 
65
상훈은 그 야죽야죽하는 말에 얄미운 생각도 드는 것이나 하는 수 없었다.
 
66
"그런데 수원집, 수원집 하니 그거 무슨 소리요?"
 
67
하고 상훈은 새삼스레 묻는다.
 
68
"왜 딴전을 하슈? 창피하신 게로군..."
 
69
경애는 웃으며 남자를 돌려다본다.
 
70
"조금 전에 뒷간에서 나오시다가 마당에서 보시구두 그러슈? 자동차 속에서 내다보니까 망토를 오그려 입고 도망꾼처럼 앞뒤를 홰홰 돌아다보며 뺑소니를 치던데요!"
 
71
"미친 소리 마라. 잘못 본 게지. 그건 고사하고 수원집을 어떻게 알어? 그뿐 아니라 수원집이 그런 데를 다닐 리 있나?"
 
72
"수원집을 내가 왜 몰라요? 나도 '수원집'예요. 하하하... 나 수원태생이란 말씀예요. 그건 그렇다 하고, 수원집은 왜 그런 데에 못 다닐게 무어예요? 당신이 다니시기나 수원집이 다니기나... 하하하... 켯속 잘되었지요?"
 
73
상훈이 얼굴이 벌개지며,
 
74
"지각 없는 소리 마라! 그럴 리가 있나?"
 
75
하고 목소리를 긁어 잡아당긴다.
 
76
"왜 내게 역정을 내실 게 무어예요. 꾸지람을 하실 테면 수원집을 가보고 하시지..."
 
77
상훈은 도깨비에 흘린 것 같았다. 지금 와서는 그 여자가 수원집이던 것을 가릴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마당에서 마주친 것까지를 경애가 어떻게 본 듯이 가리켜내는지? 암만 생각해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78
자동차가 진고개 초입께까지 오니까 경애는 별안간 청목당 앞에 대라 명하고 상훈더러 어서 내리라고 재촉이다. 맨대가리에 두루마기 바람으로 내리기가 싫어서 무어 살 것이 있건 기다리고 앉았을 게 어서 사가지고 나오라 한다. 상훈은 경애를 집에 데려다주고 자기는 그대로 탄 채 안동을 가리라고 다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경애는 듣지 앉았다. 저녁을 안 먹었으니 여기서 저녁을 먹여 달라고 졸랐다.
 
79
"호텔은 그만두고 곧 놔드릴 게니 잠깐 내리세요."
 
80
저녁을 이때껏 안 먹었다는 것을 그대로 내던지고 간달 수도 없었다.
 
81
"흥, 매당집이 못 잊으시면 불러다드리지 걱정예요."
 
82
경애가 코웃음을 치며 먼저 튀어내려버리니까 상훈도 하는 수 없이 내외하는 사람처럼 툭 튀어나와서 쏜살같이 청목당으로 들어갔다. 경애는 생글 웃으며 층계로 올라가는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운전사에게 돈도 치르지 않고 무어라고 한참 소곤거린 뒤에 돌려보내고 따라 올라갔다.
 
83
상훈은 의관 안한 것을 연해 창피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나 경애는 상훈이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는 양을 멸시하는 눈으로 한참 건너다보며 4,5 년 전에 처음 볼 때에는 그렇게도 무섭고 훌륭하고 점잖게 보이던 '조 선생님'이 이럴 줄이야 꿈엔들 생각하였으랴 싶어서,
 
84
"그 왜 그러세요. 화롯가에 엿을 붙이고 오셨소? 남잣골 샌님은 뒤지하고 담뱃대만 들면 나막신을 신고도 동대문까지 간다는데 모자 안 썼기로 누가 시비를 걸 테니 걱정이세요?"
 
85
경애는 샐샐 웃다가,
 
86
"그런데 반했다는 색시 좀 보여 주시구려?"
 
87
하고 조른다.
 
88
"반하긴 뉘게 반해. 나두 이제는 늙어가는 판 아닌가?"
 
89
하고 웃고 만다.
 
90
"좀더 늙으시면 제2 김의경이... 아니, 제3 홍경애가 필요하겠군요."
 
91
하며 경애는 쏘아주었다. 상훈은 덤덤히 앉았다.
 
92
"예서 저녁이나 먹고 어디 매당집 구경이나 가볼까!"
 
93
혼잣말처럼 하고 또 웃는다.
 
94
"마음대로..."
 
95
상훈은 그 꼬집는 소리가 탄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데리고 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상관없다느니보다도 자랑이 될 것 같았다. 김의경은 노할지 모르지만 도리어 제풀에 노해서 떨어져주었으면 좋을 판이다. 이만큼 되었으면야 경애는 다시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고 하니 마음이 느긋한 것이다. 그러나 다만 경애를 정말 들어앉혀서 살림을 시키려면 그런 데를 끌고 가서 못된 길을 터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염려도 없지는 않지만 그 역시 아까 수원집 논래를 하던 것으로 보면 데리고 가고 말고가 없이 당자가 벌써 매당집을 자기보다 더 먼저 친히 아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저희들의 내평이나 캐어보고 어쩌는 꼴을 보기 위하여서는 데리고 갈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96
저녁을 먹겠다던 경애는 아무것도 싫다 하고 큐라소주를 한 병째 갖다놓고 마시고 앉았다.
 
97
상훈은 저녁도 안 먹을 지경이면 어서 가자고 졸라보았으나 점잖은 양반이 체통 아깝게 왜 이렇게 조급히 구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줄 뿐이다.
 
98
"병화는 요새 무얼 하고 있누? 언제 만났어?"
 
99
상훈은 이제는 기진하였는지 앉았자는 때까지 앉았을 작정을 하고 자기도 술을 청해 마시며 말을 돌렸다.
 
100
"김병화한테 가 물어봐야 알지요."
 
101
하고 경애는 또 핀잔을 주다가,
 
102
"요새는 키스도 안해주고 잡혀먹을 외투도 없고 하니까 눈에 안 띄나 보군."
 
103
웃지도 않고 이런 소리를 한다.
 
104
"키스는 심심파적으로 하는 건가?...나는 무슨 까닭이 있다구!"
 
105
상훈은 안심한 듯이 웃는다.
 
106
"왜 샘이 나슈?"
 
107
이런 잡담을 하고 앉았으려니까 보이가 들어오더니,
 
108
"손님이 오셨습니다."
 
109
고 한다.
 
110
"손님?..."
 
111
상훈은 눈이 둥그래졌다. 병화가 또 오지나 않았나? 병화와 짜고서 무슨 짓을 하는 것만 같아서 공연한 겁이 더럭 났다.
 
112
"들어오시라고 해 주우."
 
113
경애가 선뜻 대답을 하였다.
 
114
문간을 노려보고 앉았던 상훈은 경풍한 사람처럼 '어!' 하고 소리를 치며 열없는 웃음을 커다랗게 터뜨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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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참조
▣ 기본 정보
◈ 기본
삼대(三代) [제목]
 
염상섭(廉想涉) [저자]
 
1932년 [발표]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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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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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