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고재완의 지식창고 문화재·역사·전
문화재·역사·전
2015년
  2015년 8월
2015년 8월 30일
2015년 8월 26일
2015년 8월 24일
김홍도의 풍속화 감상
2015년 8월 23일
2015년 8월 21일
2015년 8월 20일
2015년 8월 19일
2015년 8월 17일
2015년 8월 15일
2015년 8월 14일
about 문화재·역사·전
내서재
추천 : 0
김홍도(金弘道)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풍속화(風俗畵) # 화성능행도
(2019.11.21. 19:07) 
◈ 김홍도의 풍속화 감상
조선의 3대 화가중 정조임금이 가장 총애한 화가는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 ?)입니다. 시민의 삶에 대한 그림뿐만 아니라 1795년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를 그린 8폭 화성능행도(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행차한 모습을 그린 병풍그림)는 매우 사실적이며 꼼꼼하지요.그래서 화성능행도는 당대 촤고의 궁중화가인 김홍도(1745~ ?)가 주도하여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여 김홍도 풍속화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조선의 3대 화가중 정조임금이 가장 총애한 화가는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 ?)입니다. 시민의 삶에 대한 그림뿐만 아니라 1795년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를 그린 8폭 화성능행도(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행차한 모습을 그린 병풍그림)는 매우 사실적이며 꼼꼼하지요.그래서 화성능행도는 당대 촤고의 궁중화가인 김홍도(1745~ ?)가 주도하여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여 김홍도 풍속화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 화성능행도
 
 
타고난 천재 풍속화가 김홍도의《단원풍속도첩》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이미지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 중 하나입니다. 서민들의 노동, 놀이, 남녀 사이에 오고 가는 은근한 감정 등 삶의 여러 모습들이 그려진 소재와 대상이 다채롭고 생생하여 조선시대의 한때, 어떤 곳에 다녀온 기분인데,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하나의 화첩에 모아 그린 예는 풍속화가 유행했던 조선 후기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 김홍도에 대하여
 
① 1745년(영조 21)태어났으나 김홍도가 정확히 몇 년에 사망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1805년 12월에 쓴 편지가 전하고, 이후 행적과 작품이 일절 전하지 않아 예순두 살이던 1806년 사망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②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畫士)·첩취옹(輒醉翁).
 
③ 김홍도는 당대의 감식가이며 문인화가인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화원(圖畫署畫員)이 되었고 강세황의 지도 아래 화격(畫格)을 높이는 동시에,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의 어진(御眞)과 왕세자(뒤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감목관(監牧官)의 직책을 받아 사포서(司圃署)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781년(정조 5년)에는 정조의 어진 익선관본(翼善冠本)을 그릴 때 한종유(韓宗裕)·신한평(申漢枰) 등과 함께 동참화사(同參畫師)로 활약하였으며, 찰방(察訪)을 제수받았습니다.
 
④ 정조는 “회사(繪事)에 속하는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고 할 만큼 그를 총애했고 강세황으로부터는 ‘근대 명수(近代名手)’ 또는 ‘우리나라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⑤ 1778년 작인 「서원아집육곡병(西園雅集六曲屛)」(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776년에 그린 「군선도병(群仙圖屛)」(삼성미술관 소장, 국보 제139호), 『단원풍속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527호)을 비롯해서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개인 소장)·「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간송미술관 소장)·「선인기려도(仙人騎驢圖)」·「단원도(檀園圖)」(개인 소장)와 「섭우도(涉牛圖)」·「기노세련계도(耆老世聯稧圖)」·『단원화첩』(삼성미술관 소장)·「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등이 있다. 현재 300점 정도의 작품이 전합니다.
 
⑥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檀園區)의 명칭은 김홍도가 안산에서 그림을 배우고 성장한 것으로(그때 강세황이 안산에서 처가살이 함) 알려져서 붙인 지명입니다.
 
 
 
● 『단원풍속화첩』에 대하여
 
① 조선 18세기, 39.7 x 26.7 cm, 보물 제527호이며
 
②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록에 의하면 이 화첩은 1918년 조한준에게 구입했을 당시 모두 27점이었으나 1957년 원 화첩의 마지막에 있었던 군선도 2점이 별도의 족자로 꾸며지면서 풍속도 25점만이 새로운 화첩으로 꾸며졌고
 
③ 이 화첩에는〈서당〉〈쟁기질〉〈활쏘기〉〈씨름〉〈행상〉〈무동〉〈기와잇기〉〈대장간〉〈노상파안(路上破顔)〉〈점보기〉〈나룻배〉〈주막〉〈고누놀이〉〈빨래터〉〈우물가〉〈담배잎썰기〉〈자리짜기〉〈타작〉〈그림감상〉〈길쌈〉〈말징박기〉〈고기잡이〉〈신행길〉〈새참〉〈장터길〉 등 당시 풍속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예리한 관찰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실려있습니다.
 
 
● 스케치풍의 그림 : 최소화된 묘사와 채색
 
가로, 세로 30여 센티미터 정도의 종이에 그려진 《단원풍속도첩》의 그림들은 아주 간단하고 간결합니다. 거장의 대표작이라는 포장을 풀고 그림만 다시 살펴보면, 이 그림은 분명히 아주 공들여 그린 그림은 아닙니다. 공들여 그린 공필(工筆)도 아니며 화려한 채색이 입혀진 것도 아닙니다.
 
기법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이 그림은 그림의 소재와 같이 격식을 갖추지 않고 편안하게 그려진 그림입니다. 배경을 생략하고 그리고자 하는 소재만 집중하여 그렸는데, 농사일을 끝내고 새참을 먹는데 논밭은 보이지 않고, 동네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는데 근처에 나무 한 그루가 없습니다.
 
색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엷은 먹색을 중심으로 하여 역시 매우 엷은 푸른색과 갈색조로만 채색을 하고 그 이외의 색은 거의 보이지 않고, 신부를 맞으러 가는 신랑의 신행길에서 조차 예쁜 색을 쓰지 않았습니다.
 
화가는 보통사람들의 매일 매일의 일상을 그린 이 그림들에 가장 어울리는 기법으로 최소화된 묘사와 채색이라는 방식을 선택, 덜 그리고 덜 칠함으로써 소재 자체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소리와 춤으로 한참 흥이 난 마당입니다. 북, 장구, 피리, 대금, 해금 연주자들이 둥그렇게 앉아 연주하는 가운데 무동이 두 팔을 신나게 휘저으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각자의 춤과 연주에 몰두하며, 또는 앞 연주자나 무동을 주시하며 흥겨운 한 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무동은 화첩 중에서 가장 활달한 선으로 그려진 인물이며 가장 역동적인 동감(動感)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비교적 차분하게 그려진, 다른 사람들을 그린 필선과 비교해보면 무동을 그린 필선은 확실히 구분되는데, 진한 먹으로 그려 춤추는 사람의 흥을 한껏 강조하였습니다. 옷의 색깔 또한 선명한 초록으로 생기를 더했습니다.
 
이들은 둥글게 모여 앉고 선 가운데, 서로 소리와 움직임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멋진 마당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원형구도는 춤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는 순간을 효과적으로 구성해내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심한 듯 간단하게 그린 그림 같지만 구도와 인물의 자세와 방향, 표정을 치밀하게 구사하여 명품을 만들어냈습니다.
 
▼ <무동>. 원형구도는 춤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는 순간을 효과적으로 구성해내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새참>과 <씨름>. 단원 김홍도는 보통 사람들의 매일 매일의 일상을 그린 이 그림들에 가장 어울리는 기법으로 최소화된 묘사와 채색이라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 다채로운 구도 : 원형 구도
 
다양한 장면만큼이나 화가가 화면을 구성한 방법, 즉 구도도 여러 가지입니다. 《단원풍속도첩》에서 눈에 띄는 구도는 원형구도입니다. <무동>, <씨름>, <서당>, <그림 감상>이 원형의 구도로 그려진 그림인데, 조선시대의 그림에서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화면 전체가 원형구도를 이루고 있는 그림은 드뭅니다.
 
<그림 감상>과 <서당>, <무동>은 주인공들을 단순하게 원형으로 배치시켰다면 <씨름>은 풍속도첩 중 가장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며 인물의 배치와 방향을 다양화하여 변화 있는 원형구도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밖에 X자 구도, 대각선 구도, 사다리꼴 구도 등 다양한 구도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배치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구도는 주제에 따라 감상자의 시선을 화면의 중심으로 수렴하기도 하고, 화면 밖으로 확산시키기도 하며 생동감 있는 화면을 만들어냈습니다.
 
 
 
● 그림 속의 해학성 : 다양한 인물 군상
 
그림들을 보면 자연스레 웃음을 짓게 됩니다. 아무 그림이나 하나 골라서 봐도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지금의 기분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성격마저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타작>에서는 벼를 털고, 묶고, 지고 가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화면 위에는 갓을 쓴 이가 비스듬히 누워 이들의 노동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확의 기쁨인지 함께 일하는 중의 신바람인지 일을 하면서도 모두 즐거운 표정입니다.
 
다만 앞섶을 풀어헤치고 볏단을 태질하려 들어올린 남자는 영 일이 하기 싫은 눈치입니다. 의욕도 없고 귀찮아하는 표정인데 옷매무새마저도 제일 풀어져 있습니다. 웃옷을 벗은 이와 앉아서 볏단을 묶는 이는 호탕해 보이며 비질을 하는 중년의 남자는 꼼꼼해 보입니다.
 
▼ <타작>과 <우물가>. 등장 인물들의 살아있는 듯 한 표정과 행동으로 그림 속에 이야기를 배치해 놓았습니다.
 
 
우물가에선 세 여인과 한 남자가 마주쳤습니다. 아니,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마주치고 두 여인이 배경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젊고 아리따운 새댁에게 물을 청해서 마시고 있는 남자는 털이 숭숭 난 가슴팍을 풀어헤치고 있습니다.
 
영 민망한 장면이라 젊은 여인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는데, 멀찍이 선 할머니는 이 장면이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반면 화면 앞쪽의 너그러워 보이는 중년 여성은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눈감아주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우물가의 모습을 이렇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그려내었습니다.
 
▼ <대장간>
 
 
 
▼ 장터길
 
 
▼ 말징(편자)박기
 
 
▼ 신행길
 
 
▼ 활쏘기
 
 
▼ 쟁기질(밭갈이)
 
 
▼ 고기잡이
 
 
▼ 빨래터 ; 훔쳐보는 양반
 
 
▼ 자리짜기 : 몰락한 양반, 물레질하는 아낙, 책읽는 아들
 
 
▼ 길쌈 : 길쌈하는 며느리와 못마땅한 시어머니
 
 
▼ 기와잇기 :기왓장 떨어질라 조심해라
 
 
▼ 고누놀이
 
 
▼ 주막
 
 
▼ 노상파안(路上破顔)
 
 
▼ 담배잎 썰기
 
 
▼ 행상
 
 
▼ 점보기
 
 
▼ 나룻배
 
 

 
김홍도의 자세한 자료는 아래 동영상을 참조하세요
 
 
 
 
 
 
 
 
츨처;국립중앙박물관,민족문화백과사전, 위키백과,네이버 , 문화재청,유튜브,고궁박물관
 

 
※ 원문보기
김홍도(金弘道)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풍속화(風俗畵) # 화성능행도
문화재·역사·전
• 경술국치, 한일 강제 병합 조약에 대하여
• 김홍도의 풍속화 감상
• 백제 금동 대향로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로그인 후 구독 가능
구독자수 : 0
▣ 정보 :
미정의 (보통)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참조 정보 (쪽별)
◈ 소유
◈ 참조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 참조정보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