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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19:07) 
◈ 백제 금동 대향로
오늘은 처서(處暑)다. 처서는 입추와 백로 사이의 절기로
오늘은 처서(處暑)다. 처서는 입추와 백로 사이의 절기로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이 비뚤어진다고 하여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이다. 그러나 가을을 앞둔 처서임에도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더 덥다다고 한다.
 
최근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3개 지역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 웅진성(熊津城)과 연관된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 古墳群), 부여 사비성(泗沘城)과 관련된 관북리 유적(官北里遺蹟, 관북리 왕궁지) 및 부소산성(扶蘇山城), 정림사지(定林寺址), 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 부여 나성(扶餘羅城), 그리고 끝으로 사비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익산시 지역의 왕궁리 유적(王宮里 遺蹟), 미륵사지(彌勒寺址) 등이다.
 
참고로 남. 북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14개의 문화재를 연도 순서로 보면 ①종묘 ②석굴암, 불국사 ③해인사 장경판전 ④창덕궁 ⑤수원화성 ⑥경주역사유적지구 ⑦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⑧고구려 고분군(북한) ⑨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⑩조선왕릉 ⑪양동과 하회마을 ⑫개성역사유적지구(북한) ⑬남한산성 ⑭백제역사유적지구가 있다.
 
 
 
오늘은 백제의 문화재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백제 금동 대향로에 대하여 적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보 287호. 1993년 12월 12일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어 국립 부여박물관 소장품이다.
 
백제문화의 정수로 손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가 1400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보존 상태가 완벽해 거의 기적적인 발견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금동 대향로의 백미는 섬세한 문양이다. 용이 꿈틀거리고, 연꽃이 피어오르고 평화롭게 신선이 노니는 모습이 담겨있다. 금동을 깨고 막 날아오를 것 같은 봉황의 모습은 단연 압권이다. 700년 역사를 찬란히 꽃피운 백제문화의 진수를 맛본다.
 
 
 
향로는 향을 피워 부정한 것을 깨끗이 하기 위한 도구이다.
 
높이 61.8cm 최대지름 19.0㎝,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 달리 산들이 독립적·입체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백제금동대향로는 530년경 백제의 위덕왕이 부친 성왕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 확실시 된다. 이 향로를 신궁神宮과 사찰寺刹의 양식이 함께 존재하는 신궁사神宮寺에 안치했다.
 
신궁은 왕실의 신들과 조상들의 영들을 모신 곳이고, 사찰은 부처님을 모시기 위한 곳이지만, 불교가 처음 이 땅에 전래될때는 신궁과 불교가 양립하고 공존하는 형태였으므로, 이와 같은 신궁사를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여러 점들을 돌아볼 때, 백제금동대향로는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불교가 주는 큰 가르침을 수용하고자 한 포용과 조화의 정신을 대표하는 백제 최고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나무와 같다. 나무는 아무리 가지가 크게 번성해도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들의 고향인 만주를 떠나 한강과 그 이남 지역에 자리를 잡았던 백제인은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못지않게 우리 문화의 뿌리를 보존하고 지키는데 더욱 더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na-;▼백제 금동 대향로 팜플릿
 
 
 
 
 

 
※ 원문보기
문화재·역사·전
• 김홍도의 풍속화 감상
• 백제 금동 대향로
• 광해군의 실리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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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