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단군소고(壇君小考) ◈
카탈로그   본문  
1930년 11월
최남선
목   차
[숨기기]
1
壇君小考[단군소고]
 
 
 

1. 一[일]

 
3
壇君[단군]이 朝鮮[조선] 人文[인문]의 源頭[원두]로서, 歷史的[역사적]으고 文化論的[문화론적]으로 深重[심중]한 意義[의의]를 가지고 있음은 呶呶[노노]할 必要[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文化科學的[문화과학적]으로 論究[논구]되어야 할 無文字國民[무문자국민]·無記錄時代[무기록시대]에 屬[속]하는 이 民俗的[민속적] 事實[사실]을 엉뚱한 文獻的[문헌적] 方法[방법]으로 商搉상각]하고, 게다가 斷爛剝缺[단란박결]하여 거의 다 없어지고 겨우 남아 있는 不用意[불용의]한 記錄[기록], 그것도 方外者流[방외자류]의 어떤 목적을 위한 方便[방편]으로 攙入改易[참입개역]마저 加[가]하여진 零散[영산]한 文字[문자]만을 膚淺偏陋[부천편루]하게 情景卜度[정경복도]하여, 의심하기 위한 의심을 揷入[삽입]하며, 살을 도려내서 상처를 내는 따위의 僻見[벽견] 紛議[분의]를 거듭하는 弊端[폐단]이 시방까지도 끊이지 않아, 자칫하면 朝鮮[조선]의 古文化[고문화]와 및 朝鮮文化[조선문화]를 關鍵[관건]으로 하는 東方[동방] 古文化[고문화]를 闡明[천명]하는데 있어서 唯一[유일]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그 最高[최고] 最大[최대]의 表象[표상]이며, 가장 重大[중대]한 價値[가치]를 內包[내포]하고 있는 中心事實[중심사실]이, 아직도 學界[학계]에 高擱고각]되는, 아니, 閒却[한각]되는 觀[관]이 있음은 차라리 慨嘆[개탄]할 일이다.
 
4
壇君[단군]을 神話視[신화시]하고 國民傳說視[국민전설시]함은 오히려 나은 편이요, 이것을 훨씬 後代[후대]에 이루어진 民族精神[민족정신]의 產物[산물]이라 하고, 심지어는 日本[일본]에 있어서의 本迹說[본적설]에다 比擬[비의]할 만한 僧侶[승려]의 一假托[일가탁]으로 넘겨 버리는 이조차 있음은 참으로 遺憾[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5
아닌게 아니라 壇君[단군]의 古傳[고전]에는 神話部[신화부]도 있고 信仰[신앙] 要素[요소]도 있으며, 現存[현존]하는 記錄[기록]에는 外來思想[외래사상] 또는 後代[후대] 通念[통념]에 依[의]한 손질도 있어서, 그 形式[형식]에 內容[내용]에 내지는 그 語形[어형] 字原[자원]에, 雌黃[자황]을 더할 수 있는 餘地[여지]가 있음은 사실이지마는, 이것들은 要[요]컨대 壇君[단군] 古典[고전]에 있어서의 形式的[형식적] 部分[부분]이요, 또 第二次的[제이차적] 또는 第二義的[제이의적]인 것들이어서, 그 內容[내용]·事實[사실]에 의하여 이들 附會部[부회부]·轉變部[전변부]가 정리될지언정, 거꾸로 記錄上[기록상]의 瑕疵[하자]때문에 事實[사실] 自體[자체]가 變動[변동]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 二[이]

 
7
世間[세간]에는 壇君[단군]을 民族心[민족심]의 覺醒[각성]에 因[인]한 後世[후세]의 造作[조작]이라고 하고, 그것이 성립되고서부터는 朝鮮精神[조선정신]의 成長[성장]과 함께 그 세력이 增大[증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고, 나아가서는 그 動機[동기]를 설명하되, 外來者[외래자]인 箕子[기자]를 建國[건국]의 祖[조]로 삼고 싶지 않은 데서 출발하고, 支那[지나] 其他[기타] 異種族[이종족]의 압박에 끊임없이 刺戟[자극] 反撥[반발]되어, 드디어 一種[일종]의 信念的[신념적] 歷史形[역사형]을 取[취]하기까지에 발전했다고 하는 論者[논자]가 있어서, 議論[의론]으로서는 얼핏 보아 그럴듯한 點[점]이 있음으로 해서, 이것을 信認[신인]하려는 경향도 없지 않다.
 
8
그러나 說明[설명] 技巧[기교]로서는 하여튼간에, 朝鮮[조선]의 歷史[역사] 事實[사실]은 분명히 이것을 否定[부정]하고 있음을 본다. 첫째 朝鮮[조선]의 民族生活史[민족생활사]에는, 유감이지마는 國民精神[국민정신]의 統一原理[통일원리]로서의 國祖[국조] 拈出[염출]에 대한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朝鮮人[조선인]의 民族[민족]으로서는 恥譽[치예] 如何[여하]는 어떻든간에, 색다른 歷史的[역사적] 行進[행진]에 약속되어 있는 朝鮮人[조선인]은, 그의 國民詩[국민시]·國民信仰[국민신앙]으로서의 建國神話[건국신화]의 建立[건립]에 豊饒[풍요]한 才能[재능]을 보이지 못하고, 마침내 希臘人[희랍인]의 헬라와 같이 화려한, 希伯來人[희백래인]의 야베와 같이 嚴肅[엄숙]한, 民族主[민족주] 乃至[내지] 國民祖神[국민조신]을 造成[조성] 奉戴[봉대]할 機會[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9
도대체 朝鮮人[조선인]의 民族的[민족적] 統一[통일], 全一民族的[전일민족적] 成立[성립]은 新羅[신라]와 渤海[발해]와의 歷史的[역사적] 南北[남북] 二系[이계]의 統一者[통일자]로서의 高麗[고려]의 出現[출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되는데, 이 前後[전후]의 朝鮮[조선]의 文運[문운]은 이미 詩人[시인]의 幻想[환상] 또는 司祭者[사제자]의 强要[강요]에 信順[신순]할 만큼 幼稚[유치]한 狀態[상태]는 아니어서, 새로운 神話[신화]의 出來[출래]를 기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물며 久遠[구원] 深固[심고]한 民俗的[민속적] 根據[근거]가 있는 것 아니요, 僧侶[승려]들이 佛典[불전]에서 배운 藝術[예술] 技巧[기교] 하나로 갑자기 만들어 낸 國祖[국조]며 文化原理[문화원리]의 表象[표상]이며를 내세워서 一般[일반]의 승인을 얻을 만한 無分別[무분별]한 時代[시대]나 沒批判[몰비판]한 民衆[민중]은 아니었다.
 
10
그리고 箕子[기자]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의 東來[동래]의 實否[실부] 如何[여하]는 別問題[별문제]로 하고, 〈史記[사기]〉以來[이래] 一般[일반]에서 信認[신인]되어 온 箕子[기자]의 朝鮮來敎說[조선래교설]이, 儒敎[유교]에 배고 젖은 半島人[반도인]에게 榮幸[영행]으로 여겨진 由來[유래]가 매우 오래고, 特[특]히 支那[지나] 方面[방면]에 이것을 誇稱[과칭] 利用[이용]하는 데 노력이 미치지 못할까를 염려했으면 했지, 이것을 嫌忌[혐기]하고 隱蔽[은폐]하고 그리고 民族的[민족적] 自尊心[자존심]의 發露[발로]에 依[의]한 拒斥[거척]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전혀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 反證[반증]으로는, 埋沒[매몰]되어 버린 箕子[기자]를 國家祀典上[국가사전상]에 부활시킨 것이 高麗朝[고려조]로서, 극도로 그 崇敬率[숭경률]을 높여서, 箕子[기자]의 東來[동래]는 歷史的[역사적] 事實[사실]이라 하고, 壇君[단군]의 肇國[조국]은 語怪[어괴]의 잘못으로 돌린 것이 朝鮮人[조선인]이 아니었던가. 高麗[고려] 以前[이전]은 모른다 치고, 그로부터 以後[이후]의 朝鮮國民史[조선국민사], 그 國民精神[국민정신]의 推移[추이] 過程[과정]에는, 오히려 壇君[단군] 抑蔽[억폐], 箕子[기자] 擧揚[거양]의 一側面[일측면]이 분명히 인정될 정도가 아니냐. 도리어 民俗的[민속적] 事實[사실] 중에서 遺澤殘光[유택잔광]이 인정되는 壇君[단군]이, 이미 高麗朝[고려조]의 記錄[기록]인 〈三國史記[삼국사기]〉와 같은 것에 있어서조차 表面的[표면적]인 標揭[표게]가 거부되고, 李朝[이조]에 들어와서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國家[국가]의 撰史[찬사]에는 勿論[물론], 思慮[사려]가 있다고 하는 史家[사가]와 및 그들의 撰述[찬술]에서 모조리 그 정당한 지위가 부여되지 않은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11
壇君[단군]의 民族精神的[민족정신적] 更生[갱생]은 다만 最近[최근]의 新刺戟[신자극]에 促成[촉성]된 극히 새로운 現象[현상]에 그치는 것이다. 정말 朝鮮[조선] 及[급] 朝鮮人[조선인]에게 民族意識[민족의식]·歷史觀念[역사관념]·國祖信仰[국조신앙] 등이 날카롭고 鮮明[선명]했었더라면, 무엇보다 먼저 이제와서 壇君論[단군론] 等[등]이 새삼스럽게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壇君[단군]은 옛 朝鮮人[조선인]에 依[의]하여 歷史的[역사적]으로 埋葬[매장]되었다가 새로운 文化科學[문화과학]의 빛에 그 가리워졌던 部分[부분]이 드러나 가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12
說使[설사] 아직도 歷史的[역사적]으로 輕視[경시]되고 그르쳐지고, 乃至[내지]는 버려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 文化科學[문화과학]은 그것을 무게 있고 올바르게 잡고, 또 소중히 다루게 될 것이며, 또한 近視眼[근시안]의 歷史家[역사가]에 依[의]하여 朝鮮國祖[조선국조]로서의 壇君[단군]은 한때 抹殺[말살]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亞細亞[아세아] 北系[북계] 文化[문화]의 依支點[의지점]으로서의 그것은 東方[동방] 民俗學[민속학]의 進展[진전]과 함께 더욱 더 그 光輝[광휘]를 發[발]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東方文化[동방문화]의 許多[허다]한 수수께끼가 이 秘鍵[비건]에 依[의]하여 闡明[천명]되는 것도 그다지 먼 훗날의 일이 아닐 것이다.
 
13
또 壇君論[단군론]이라 하면 아무 所用[소용] 없는 문제로 여겨 버리는 사람도 있고, 이것을 귀찮게만 여겨, 버려 두고 묻지 않는 것을 탓하지 않는 傾向[경향]도 있으나, 이것이 朝鮮民族[조선민족] 및 朝鮮文化[조선문화] 乃至[내지] 그 歷史[역사]만의 문제라면 그만일는지 모르지마는, 실은 壇君[단군]은 朝鮮[조선]을 超越[초월]한 東方[동방] 全文化[전문화]의 秘鑰[비약]이요, 關心[관심]인 것이므로, 일이 자못 重大[중대]하다. 이렇게 말하면 壇君[단군] 事實[사실]이라는 것은 複雜[복잡]과 煩冗[번용]을 極[극]한, 아주 까다로운 것으로 速斷[속단]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원래 壇君[단군]의 事實的[사실적] 方面[방면] ― 그 神話素[신화소]·信仰要[신앙요]를 揚棄[양기]한 歷史的[역사적] 一面[일면]은 극히 간단하고 坦樸[탄박]한 것으로서, 하등의 曲辭蔓辯[곡사만변]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다만 오랜 年代[연대]와 넓은 範圍[범위]에 걸친 基調文化的[기조문화적] 事實[사실]인만큼 저절로 많은 側面[측면]과 機構[기구]가 생겨서, 그것을 分別[분별]하여 說明[설명]할 必要[필요]가 있을 뿐이다.
 
14
원래 壇君[단군]을 考證學的[고증학적]으로, 比較硏究的[비교연구적]으로 剖檢[부검] 究覈구핵]함에는 넓고 깊고 또한 精細[정세]한 議論[의론]을 要[요]하지마는, 그것은 一般人[일반인]에게는 無關[무관]한 일이다. 이제 〈三國遺事[삼국유사]〉의 所傳[소전]을 主據[주거]로 하여, 引證[인증]이나 辨析[변석]을 一切[일체] 省略[생략]하고, 平易[평이]하게 壇君[단군]의 여러 斷面[단면]을 要約[요약]해 본다면, 우선 下記[하기]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3. 三[삼]

 
16
첫째로 壇君[단군]은 古朝鮮[고조선], 그 神政[신정](Theocracy)時代[시대]의 王號[왕호]로서, 본디 天[천] 또는 神[신]을 意味[의미]하는 말에서 漸次[점차] 神人[신인]·天子[천자] 乃至[내지] 神政的[신정적] 主權者[주권자]의 稱呼[칭호]로 된 것이다. 壇君[단군]이라는 字面[자면]은 原語[원어] 「단굴」tan - kul 혹은 「당굴」tangul을 吏道的[이도적]으로 寫音[사음]한 것으로서, 漢文[한문]의 字義[자의]에 直接的[직접적]인 關係[관계]가 없으며, 뒤에 壇[단]이 檀[단]으로 搝用[구용]되고, 支那[지나]의 古書[고서]에는 天君[천군]·登高[등고] 등으로도 寫音[사음]되어 있음은 어느 것이나 다 壇君[단군]이 단순한 한 記音[기음]이었기 때문이다.
 
17
後世[후세]에 壇君[단군]이라 汎稱[범칭]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 歷史的[역사적] 意味[의미]와 通俗的[통속적] 慣習[관습]이 混和[혼화]되어 있어서, 壇君[단군] 政治[정치](곧 朝鮮[조선] 神政[신정])의 建設者[건설자]라 하는 朝鮮[조선] 國祖[국조]도 그 하나요, 朝鮮[조선] 國祖[국조](元始[원시] 壇君[단군])의 嫡系[적계]라 하여, 앞서는 遼松[요송]의 사이와 뒤에는 大同江[대동강] 流域[유역]에 특히 朝鮮[조선]이라 하는 國號[국호]로써 傳承[전승]되어 오던 나라의 君王[군왕]도 그 하나요, 또 古代[고대]에 있어서 널리 東方[동방] 一帶[일대]의 땅에 散布[산포]되어 있던 壇君文化系[단군문화계]의 諸部族[제부족]의 君長[군장]도 그 하나요, 또 後世[후세] 政敎分化[정교분화]가 行[행]하여지기 시작한 뒤에도 朝鮮民族敎[조선민족교]의 主權者[주권자](司祭[사제])를 如前[여전]히 壇君[단군]이라 일컬은 것도 그 하나이다. 그렇지마는 後世[후세] 특히 近世[근세]에 이르러서는 壇君[단군]이라 하면 朝鮮[조선] 建國[건국]의 始祖[시조]를 意味[의미]하는 것이 通例[통례]로 되었다.
 
18
또 한편에 있어서 古語[고어] tangul 의 原語[원어]는 그 宗敎的[종교적] 系統[계통]을 繼承[계승]하여 오는 意味[의미]에 있어서, 神職者[신직자] 곧 「巫堂[무당]」의 別稱[별칭]으로서 시방도 行[행]하여지고 있으며, 比較言語學的[비교언어학적]으로는 突厥[돌궐]과 및 蒙古語[몽고어]의 tengeri 또는 tangri와, 日本語[일본어]의 タケル와, 乃至[내지] 漢文[한문]의 天[천]과 및 帝[제](古音[고음]에 tak이 있다고 하는)가 各其[각기] 壇君[단군]과 語原[어원]을 한가지하는 것이다.
 
19
또 後世[후세]의 東方[동방]과 및 北方[북방] 亞細亞[아세아]에서 興起[흥기]한 君王[군왕] 등이 그 位號[위호]를 흔히 天帝[천제] · 天皇[천황] · 天王[천왕] · 天何何[천하하](琉球[유구]의 天加那志[천가나지]와 같은)로서 일컫고, 年號[연호]와 그밖에도 즐겨 天字[천자]를 表象[표상]으로 한 것도, 역시 壇君[단군]의 古義[고의]를 은연중에 繼承[계승]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20
壇君[단군]에는 또 壇君王儉[단군왕검]이라고 하는 一具稱[일구칭]이 있는데, 王儉[왕검]Wangö은 古語[고어]로 主權者[주권자]를 뜻하는 「엄검」 ömgöm「」algom âlgôm 내지 「임검」imgöm 등의 記音字[기음자]로서, 이와 같은 경우에는 壇君[단군]은 다만 天[천] 혹은 神[신]을 意味[의미]하고, 王儉[왕검]과 합쳐서 天神的[천신적] 主權者[주권자]의 표시가 되는 것이다.
 
21
그러나 後[후]에는 단순히 壇君[단군]이라 畧稱[약칭]되는 것이 通例[통례]로 되었으며, 이와 반대로 단순이 王儉[왕검]이라 稱謂[칭위]된 적도 있고, 또 혹은 壇君[단군] 대신 仙人[선인]이라는 말을 冠[관]하여 仙人王儉[선인왕검]이라고 別稱[별칭]한 일도 있었다.
 
22
古朝鮮[고조선]과의 사이에 種族[종족]과 및 文化的[문화적] 近緣關係[근연관계]에 있는 匈奴[흉노]에 있어서는, 君長[군장]을 撑犁孤屠[탱리고도] tangri koto 라 하고, 여기에다 單于[선우]는 廣大[광대]를 形容[형용]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撑犁[탱리]는 壇君[단군]과 同原語[동원어](孤屠[고도]는 王儉[왕검]의 類語[유어]에 해당함)이고, 單于[선우]는 仙人王儉[선인왕검]이라 하는 仙人[선인]의 別傳形[별전형]으로서, 대개 朝鮮語[조선어]에서 後世[후세]까지도 神人[신인]의 뜻을 나타내는 「이」 sani라는 말에 關係[관계] 있는 古語[고어]의 寫音[사음]인 듯하다. 大體[대체]에 있어서 古朝鮮[고조선]의 壇君王儉[단군왕검]·仙人王儉[선인왕검]과 匈奴[흉노]의 撑犁孤屠[탱리고도]·單于[선우]와는 名實共[명실공]히 아주 恰似[흡사]한 것이다.
 
23
壇君[단군]〓tangul은 語原[어원]이 久遠[구원]한 東方[동방] 諸民族[제민족]의 共通語[공통어]로서, 宗敎的[종교적] 또는 歷史的[역사적]으로 重要[중요]한 事實[사실]을 이루고 있었던만큼, 各部族[각부족] 各時代[각시대]에 걸쳐서 가지가지 이유로 인한 轉變語[전변어]가 많고, 一方[일방]에 있어서 神道上[신도상]의 擬人[의인]과 傳說上[전설상]의 國土化[국토화] 등에 因[인]한 表象比喩[표상비유]가 더욱 더 이 傾向[경향]을 繁多[번다]하게 하였다.
 
 
 

4. 四[사]

 
25
둘째로는 朝鮮[조선] 建國[건국]의 始祖[시조]를 壇君王儉[단군왕검]이라고 하는데, 古傳[고전]에 依[의]하면, 天帝[천제]의 아들로서 人間[인간]을 治化[치화]하기 위하여 下降[하강]한 桓雄天王[환웅천왕]이 神熊[신웅]과 結婚[결혼]하여 낳은 神人[신인]이라고 한다. 처음에 桓雄[환웅]이 下降[하강]하자 太伯山[태백산]의 神檀樹[신단수] 아래에 神市[신시]라는 것을 설치하고, 風伯[풍백]·雨師[우사]·雲師[운사]와 그밖에 많은 하늘의 眷屬[권속]을 거느리고 穀[곡]과 命[명]과 病[병]과 形[형]과 善惡[선악] 등 모든 人間[인간]의 三六[삼육]○餘事[여사]를 敎化[교화]하였는데, 壇君[단군]이 이것을 繼承[계승]하여 神市[신시]라 하는 純神政王國[순신정왕국]을 어지간히 人間的[인간적]으로 改化[개화]하여, 唐堯[당요] 卽位[즉위] 五[오]○년 庚寅[경인]에 都邑[도읍]을 平壤[평양]에 두어, 처음으로 朝鮮[조선]이라는 號[호]를 일컫고, 後[후]에 都邑[도읍]을 白岳[백악] 阿斯達[아사달](又名[우명] 弓忽山[궁홀산] 今[금] 彌達[미달])과 藏唐京[장당경] 등 으로 옮겨, 前後[전후] 一[일]천 五[오]백 년을 다스리다가 마지막에 나라를 禪讓[선양]하고 阿斯達[아사달]에 들어가 山神[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26
古記[고기]에는 오히려 壇君[단군]의 壽[수]가 一九[일구]○八歲[팔세]라는 것과, 그의 子裔[자예]로부터 扶餘[부여]며 高句麗[고구려]가 나왔다 함을 傳[전]하고, 다른 載傳[재전](아마도 發展[발전]한 一說[일설])에는 壇君[단군]은 여러 가지 人文的[인문적] 敎化[교화]를 베풀고, 山川[산천]을 修理[수리]하여 民生[민생]에 도움을 주었음을 傳[전]하지마는, 이런 것들은 人文神話[인문신화]의 通態[통태]로서, 깊이 穿鑿[천착]할 必要[필요]가 없을 것이다.
 
27
壇君[단군]의 古記[고기]라는 것은 形式上[형식상] 神話[신화]에 屬[속]할 것이 틀림 없지마는, 여기에서 吾人[오인]의 注意[주의]를 要[요]하는 點[점]은, 이 古記[고기]가 뚜렷한 二段[이단]으로 되어있어서, 桓雄神市[환웅신시]의 段[단]은 純然[순연]한 東北[동북] 亞細亞[아세아] 共通[공통]의 建國神話[건국신화]를 踏襲[답습]한 것에 不外[불외]하며, 뒤의 壇君[단군](王儉[왕검]) 朝鮮[조선]의 段[단]은 그 事實[사실] 叙述[서술]에 있어서, 地理的[지리적] 根據[근거]에 있어서 整然[정연]한 傳說的[전설적] 歷史[역사]의 體[체]를 이루고서 조금도 神怪分子[신괴분자]를 섞지 않았으며, 그 事實[사실] 展開[전개]의 舞臺[무대]가 半島[반도] 歷史[역사]의 事實上[사실상]의 搖籃[요람]인 大同江[대동강] 流域[유역]에서 終始[종시]했고, 게다가 그 國都[국도]가 轉轉無常[전전무상]했다는 것은 多分[다분]히 宗敎的[종교적] 理由[이유]에 因[인]한 것으로 생각되는 東方[동방] 諸民族[제민족]의 古代生活[고대생활]의 事實[사실](例[예]하면 大和平野[대화평야]에 있어서의 倭人[왜인]과 같은)과 잘 符合[부합]하는 것 등이다. 아마도 現[현] 〈三國遺事[삼국유사]〉등에 採錄[채록]된 「古朝鮮[고조선]」의 記事[기사]는, 그 內容[내용]이 桓雄[환웅]·壇君[단군] 兩傳[양전]의 結合[결합]에 依[의]하여 構成[구성]된 것으로서, 桓雄記[환웅기]는 何如[하여]튼 그 壇君記[단군기] 쪽은 설사 傳說的[전설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잘 半島[반도] 社會發達[사회발달]의 實勢[실세]를 顧慮[고려]한 充實[충실]한 歷史性[역사성]의 것이었을 것이다. 이 點[점]은 壇君[단군]이라는 名稱[명칭]이 民俗上[민속상]으로나 文獻的[문헌적]으로나 많은 類證[유증]과 助據[조거]를 가지고 있는 同時[동시]에, 相照互證的[상조호증적]으로 그 事實性[사실성]을 顯現[현현]하는 것일 것이다.
 
28
後世人[후세인]의 推想的[추상적]·常識的[상식적]인 叙述[서술]은 且置[차치]하고, 純粹[순수]한 古傳[고전]으로 생각되는 部分[부분]만에 대해서 考察[고찰]하건대, 壇君朝鮮[단군조선]은 요컨대 農業[농업]을 아는 原始社會[원시사회]를, 神權思想[신권사상]의 背景[배경]과 巫醫[무의]의 術[술]을 解[해]하는 神君[신군]이, 民族的[민족적]·信仰的[신앙적] 連結[연결]을 가지고 治理[치리] 導化[도화]한 時代[시대]에 不外[불외]하였다. 그리하여 古記[고기]에서 傳[전]하려고 하는 趣意[취의]는, 「몰갠」의 社會史[사회사]나 「분트」의 民族心理學[민족심리학] 등의 理論[이론]에도 안성마춤인 한 資料[자료]라고 인정되는 바이다.
 
29
우리들의 아는 바로는, 古代[고대]의 朝鮮人[조선인]은 스스로 自己[자기]의 種族[종족]을 Park(pak)이라 일컬었는데, 이것은 太陽族[태양족], 轉[전]하여 神聖族[신성족]을 意味[의미]하는 말로서, 周圍[주위]에 있는 다른 未開種族[미개종족]에 對[대]하여, 크게 種族的[종족적]·文化的[문화적] 自尊心[자존심]을 표현한 稱呼[칭호]라고도 생각된다. 당시에 있어서의 Park 民族[민족]과 非[비] Park 民族[민족]과의 현저한 文化的[문화적] 差異[차이]는, 前者[전자]의 農業民[농업민]임에 對[대]하여 後者[후자]의 狩獵[수렵] 經濟[경제]를 벗어나지 못한 點[점]이었다. 요컨대 壇君[단군]의 朝鮮國[조선국] 建立[건립]은 곧 狩獵民[수렵민] 중에 農業文化國[농업문화국]의 出現[출현]을 의미하는 것인데, 古記[고기]의 主眼[주안]도 분명히 이것을 指示[지시]하는 데 있음을 본다.
 
 
 

5. 五[오]

 
31
壇君王儉[단군왕검]은 天王[천왕]을 의미하는 것과 國祖[국조]를 表象[표상]하는 것과에 依[의]하여, 진작부터 神[신]으로서 崇拜[숭배]되고, 또 群神[군신]의 長[장]으로서 民族信仰[민족신앙]의 最高[최고] 對象[대상]이 되었는데, 그 神域[신역](뒤에는 聖殿[성전])이 대개 高山[고산]의 上峰[상봉]에 있었으므로 해서, 後代[후대]의 民俗[민속]에 흔히 山神[산신]과 혼동되었다. 이제 一般[일반]으로 山神[산신]이라고 하는 말에는 옛날의 壇君[단군]의 뜻을 繼承[계승]한 點[점]이 있으며, 한편 村里[촌리]의 守護神[수호신]으로서는 sanang이라 하고, 家庭[가정]의 守護神[수호신]으로서는 taigam이라 하고, 또 公共團體[공공단체](혹은 集團生活[집단생활])의 守護神[수호신]으로서는 pukun이라 하고, 貨殖神[화식신]으로서는 puru 라 하여, 公私[공사] 上下[상하]를 通[통]하여 普遍[보편] 絶對[절대]의 信仰[신앙]을 그 一體[일체]에 集中[집중]하게 되었다(이들의 名目[명목]과 壇君[단군]이라는 稱號[칭호]와의 사이에는 各其[각기] 音韻的[음운적]·神學的[신학적] 連絡[연락]이 있음은 勿論[물론]이나, 煩[번]을 피하여 여기에 言及[언급]하지 않는다).
 
32
또 壇君[단군]은 그 起原[기원]이 오래고 勢力[세력]이 컸던만큼, 옛날 壇君文化[단군문화]가 行[행]하여진 곳에는 그 流風[유풍] 餘韻[여운]이 여러가지 名稱[명칭]과 事實[사실]로써 傳布[전포]되어 있다. 支那[지나]에 대해서 말한다면, 天主[천주]를 意味[의미]하는 帝[제](道敎[도교]에서는 天帝[천제])와, 역시 天帝[천제]의 稱[칭]이라 하는 太一[태일]과, 北辰[북진]의 一名[일명]이라 하는 太乙[태을] 乃至[내지] 天罡천강](또는 斗[두])과, 天山[천산]의 主[주]로서 生命[생명]을 맡은 이라는 泰山府君[태산부군]과, 日神[일신]의 이름이라 하는 東君[동군]과, 神仙[신선]의 長[장]으로서 뒤에 西王母[서왕모]와 對立[대립]하게 된 東王公[동왕공]과, 支那[지나]의 俗間[속간]에서 神道[신도]의 師巫[사무]를 端公[단공]이라 하는 등등이 모두 壇君[단군]의 流派[유파]요, 日本[일본]에 對[대]해서 말한다면, 古典[고전]의 神格中[신격중] タケル·タカ·タキ·タケ·タケヌ·タケミ 등을 일컫는 者[자]의 根本神[근본신](本地神[본지신])과, 後世[후세]에 山神[산신]처럼 여겨진 テング(天狗[천구])와, 佛敎[불교]에 들어와서 그 天部[천부]와 混同[혼동]된 荼枳尼[도지니]라 하는 것이 모두 그것이다.
 
33
朝鮮[조선]의 古神道[고신도] 그대로의 事實[사실]을 傳[전]하는 文獻[문헌]으로서는, 支那[지나]에서는 〈三國志[삼국지]〉 馬韓傳[마한전]에 「天君[천군]」이라 하고, 〈周書[주서]〉 高句麗傳[고구려전]에 「登高[등고]」라 했으며, 日本[일본]에서는 〈書紀[서기]〉의 欽明卷[흠명권]에 「建邦[건방](タケクニ)神[신]」이라 한 것이다 壇君[단군]을 音義雙擧的[음의쌍거적]으로 譯傳[역전]한 것이다.
 
 
 

6. 六[육]

 
35
壇君[단군]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마는, 壇君[단군]의 原語[원어]인 tangul은 다시 여러 가지 轉變[전변] 訛畧形[와략형]을 이루어 그대로 壇君系統[단군계통]의 族名[족명]·國名[국명]과 壇君文化圈[단군문화권]의 地名[지명]으로 사용된 것이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대개 天人國[천인국]·天子所治國[천자소치국]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支那人[지나인]이 그 北方[북방]의 異民族[이민족]을 狄[적]이라 하고, 東方[동방]과 및 東北方[동북방]의 異民族[이민족]을 夷[이]라 하였는데, 狄[적]의 音[음] tek과 夷[이]의 古音[고음] ti·tai·tak등은 실로 tagri·taigari의 畧音[약음]으로서, 壇君系[단군계]의 民[민] 또는 國[국]을 표시하는 저들의 自稱[자칭]을 記取[기취]한 것이다. 〈山海經[산해경]〉에 傳[전]하는 大人[대인] tai, 靑邱[청구] chögu 등 東方[동방]의 住民[주민]은 역시 이에 속하는 것이고, 예로부터 支那人[지나인]이 天山[천산] 또는 祭天[제천]의 靈場[영장]으로서 尊崇[존숭]하는 垈宗[대종](두의 泰山[태산])의 이름도 역시 taigari의 한 畧稱[약칭]으로서, 말하자면 泰山[태산]이라 함은 곧 壇君山[단군산]이라는 정도의 의미이다(taigari는 朝鮮[조선] 現代語[현대어]로 머리를 의미하지마는, 다른 여러 國語[국어], 가까이는 漢字[한자]의 天[천]과 大[대]와의 說文的[설문적] 同源關係[동원관계]에도 適例[적례]가 보이는 것처럼, 原始民族間[원시민족간]에는 대개 天[천]과 頭[두]와는 같은 말로써 표현되는 點[점]으로 徵[징]하면, 現代語[현대어]로 頭[두]를 나타내는 taigari도 옛날에는 그대로 天[천]을 의미하는 말이었을 것이요, taigari라는 語形[어형]이 이미 壇君[단군]의 原語[원어]인 天[천]을 표시하는 tangul의 鼻音[비음]이 빠진 語形[어형]일 것이다. 蒙古語[몽고어] tengeri가 西域地方[서역지방]에서는 tegeri로 되어 있는 例[예]도 있다).
 
36
tangul 또는 taigari의 全形[전형]을 傳[전]하는 것에는 後漢[후한] 王充[왕충]의 〈論衡[논형]〉에, 夫餘[부여] 始祖[시조] 東明[동명]이 본래 北夷[북이] 槖離國[탁리국]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槖離[탁리] takri가 있는데, 槖離[탁리]=타그리 tagri=당굴 tangul은 두말 할 것도 없이 天[천]·天神[천신]=壇君[단군]의 한 異形[이형], 한 別傳[별전]으로서, 〈論衡[논형]〉의 두 文[문]은 夫餘[부여]가 壇君[단군]의 後裔[후예]라는 東方[동방]의 古傳[고전]과도 符合[부합]하는 것이다.
 
37
日本[일본]의 神話[신화]에 祖宗[조종]의 故土[고토]를 タカマ라 하는 것도 역시 tangul의 國土化[국토화]한 一別傳[일별전]이다.
 
38
新羅[신라] 王族中[왕족중]의 昔氏[석씨]는 系統[계통]이 吐含[토함]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吐含[토함]의 古音[고음]은 taigam으로, 역시 壇君[단군]의 한 異形[이형]일 것이다.
 
 
 

7. 七[칠]

 
40
近來[근래] 學界[학계]의 一部[일부]에 壇君[단군]의 否認論[부인론]을 말하여, 그 主要[주요]한 理由[이유]로서 半島[반도]에 高麗[고려] 以前[이전]의 그 記錄[기록]이 없다는 것과, 半島[반도]의 法俗[법속]을 傳[전]하는 隣邦[인방]의 文籍[문적]에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41
壇君[단군]의 事實[사실]은 神道的[신도적] 卽[즉] 宗敎的[종교적]인 것이므로, 당연히 比較宗敎學[비교종교학]·比較言語學[비교언어학]의 助力[조력]에 依[의]한 民俗學適[민속학적] 方法[방법]을 가지고 硏究[연구]할 것이요, 본래부터 文獻[문헌] 第一[제일]로 그것을 考審[고심]할 것이 아니다.
 
42
설혹 文獻的[문헌적] 徵憑[징빙]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字形[자형]은 壇君[단군]과 同一[동일]하지 않지마는, 그 異稱[이칭] 別譯物[별역물]이 古書[고서]에 散見[산견]됨이 上文[상문]에 擧示[거시]한 바와 같으며, 특히 〈日本書紀[일본서기]〉의 文[문]과 같은 것은 建邦[건방](タケクニ)神[신]의 來歷[내력]을 說明[설명]하되 壇君古記[단군고기]와 符節[부절]을 合[합]하는 것과 같음이 있음을 보건대, 壇君說[단군설]이 어떻게 오랜 傳說[전설]에 支持[지지]되어 있음을 알 것이다.
 
43
여기 덧붙여 말해 둘 것은 〈日本書紀[일본서기]〉의 建邦[건방](タケクニ)神[신]을 日本學者[일본학자]는 從來[종래] 韓地[한지]를 建造[건조]한 神[신]으로 읽어서 뜻만을 取[취]함이 通例[통례]이지마는, 吾等[오등]은 이것을 建國[건국](タケクニ)神[신]으로 읽어야 할 것으로서, 새김으로는 古語[고어]를 傳[전]하고, 글자로는 事實[사실]을 傳[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44
또 三國[삼국] 以前[이전]의 文籍[문적]에 對[대]하여 말한다면, 모든 것이 蕩然[탕연]하여 싹 쓸다시피 한 형편이고 보면, 壇君[단군]에 關[관]한 文字[문자]의 完存[완존]을 기대한다는 것이 오히려 무리한 일이지마는, 그러면서도 壇君[단군]에 關[관]해서는 〈三國遺事[삼국유사]〉에 引用[인용]된 〈壇君古記[단군고기]〉〈壇君記[단군기]〉〈神誌秘詞[신지비사]〉와, 〈三國史記[삼국사기]〉에 片鱗[편린]을 보여주는 崔致遠[최치원]의 鸞郞碑[난랑비] 所引[소인]의 〈仙史[선사]〉라는 것과 같이 壇君[단군]과 및 神代[신대] 事實[사실]을 主題[주제]로 한 成書[성서]가 확실히 存在[존재]했었으며, 다만 題名[제명]만이요 그 內容[내용]이 아니라 할지라도 白白無援[백백무원] 孑孑單傳[혈혈단전]인 다른 事實[사실]에 比[비]한다면, 壇君[단군]의 文獻的[문헌적] 徵憑[징빙]은 오히려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적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 現存[현존] 壇君記事[단군기사]의 最高[최고] 徵憑[징빙]인 〈三國遺事[삼국유사]〉의 載傳[재전]이 滄海[창해]의 遺珠[유주]를 忠實[충실]하게 保存[보존]·守護[수호]하는 것으로서, 何等[하등] 挾雜[협잡] 帶妄[대망]의 痕跡[흔적]을 인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三國遺事[삼국유사]〉가 高麗[고려] 撰述[찬술]이라 하여 壇君[단군]의 古傳性[고전성]을 의심하려 함이 본래부터 까닭없는 것임은 미상불 贅辯[췌변]을 要[요]치 않는 것이다.
 
 
 

8. 八[팔]

 
46
대저 壇君論[단군론]은 周察明辯[주찰명변]으로 그 根本[근본]을 찌르고 그 眞髓[진수]를 도려내야 할 것으로서, 後世[후세] 文獻[문헌]의 表現[표현] 形式[형식]이며 使用[사용] 文句[문구] 같은 것은 본래부터 末梢的[말초적]인 것이지마는, 이제까지의 壇君[단군]에 關[관]한 考論[고론]은, 대개 〈三國遺事[삼국유사]〉등의 文字[문자] 穿鑿[천착]에 떨어져, 도리어 그 肝要點[간요점]을 따돌려 놓고 있는 혐의가 있다.
 
47
그리하여 桓國[환국]이라 함은 桓因[환인]으로서 〈遺史[유사]〉의 撰者[찬자]가 帝釋[제석]을 이름이라고 註[주]한 것이 그것을 證明[증명]한다느니, 壇君[단군]의 壇[단]은 檀越[단월]·旃檀[전단] 等[등]의 檀[단]으로서 佛典[불전]에 因[인]한 것이며, 君[군]은 道敎[도교]에서 神號[신호]로서 잘 쓰이는 글자로 壇君[단군]을 한편 仙人王儉[선인왕검]이라 일컬음을 보아도 그것이 道敎[도교]에서 배워 온 것임을 알 수 있다느니, 桓雄[환웅]이 天上[천상]으로부터 人間[인간]에 下降[하강]하여 政體[정체]를 設定[설정]하는 것도, 人間[인간]의 國體[국체]를 天上[천상]에 擬設[의설]하고 있는 道敎[도교]의 模倣[모방]이라느니 하는 쓸데없는 閒葛藤[한갈등]을 거듭하는 것도, 다 問題[문제]의 核心[핵심]을 捕捉[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48
그리하여 東北[동북] 亞細亞[아세아] 諸住民[제주민]의 古信仰[고신앙]에, 世界[세계]를 三段[삼단]으로 區分[구분]하여 天上[천상]을 善神[선신]이 살고 있는 光明界[광명계]라 하는 原始哲學[원시철학]이 있고, 이 信仰[신앙]의 한 發展[발전]으로서 그들의 國家創造[국가창조]는 光明界[광명계]인 天神[천신]들이 人間[인간]을 困厄[곤액]에서 救濟[구제]하고자 그의 一子[일자]를 보낸다는데에 그 動機[동기]를 두는 神話[신화]가 널리 分布[분포]되어 있다.
 
49
그리고 「桓[환]」hoan(환)이 朝鮮語[조선어]로 光明[광명]을 意味[의미]하여 桓國[환국] 곧 光明王國[광명왕국]을 詮表[전표]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특히 〈三國遺事[삼국유사]〉所引[소인]의 古記[고기]에, 앞뒤에 아무런 連絡[연락]이 없이 「桓國庶子[환국서자]」라 하여 불쑥 庶子[서자]라 한 庶[서]가, 蒙古[몽고]에 있어서의 類話[유화]에 建國者[건국자](ゲシルボグド)를 天神[천신]의 十三子[십삼자]라 하는 것과 符合[부합]함 등을 商量[상량]해 보면, 桓雄[환웅] 및 壇君[단군]의 古傳[고전]을 文句[문구]의 穿鑿[천착]만으로 速斷[속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50
또 半島[반도]의 古文獻[고문헌]에 보이는 仙字[선자]가 시방도 民俗的[민속적]으로 그 古意[고의]를 傳[전]하고 있는 例[예]가 있듯이, 神聖[신성] 表象[표상]의 一古語[일고어]인 「」san의 對字[대자]에 不外[불외]하는 壇君[단군]이란 神權的[신권적] 君長[군장]을 表象[표상]하는 古代[고대] 東方[동방] 諸民族[제민족]의 共通語[공통어]의 한 寫音[사음]으로서, 蒙古語[몽고어]에 하늘도 神[신]도 무당도 한결같이 tengeri·tangri라 하고, 朝鮮[조선] 現代語[현대어]로 아직도 巫[무](무당)를 「단굴」tangul이라 함과 連繫[연계]되며, 壇[단]에도 君[군]에도 처음부터 字訓的[자훈적]인 何等[하등]의 意味[의미]가 있었던 것 아니며, 그것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吾等[오등]의 이른바 音義雙擧的[음의쌍거적]인 것에 그친다.
 
51
그리고 〈三國遺事[삼국유사]〉에 檀[단]을 壇[단]으로 한 것은 반드시 글자가 잘못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寫音字[사음자]로서는 檀[단]·壇[단] 어느 것을 取[취]하든지 無妨[무방]하기 때문에 任意[임의]의 글자를 取[취]한 것으로도 볼 만한 點[점] 等[등]을 坦率[탄솔]하게 考較[고교]하면, 字義拘礙論者[자의구애론자]의 向下的[향하적] 紛議[분의]가 根據[근거] 없는 것임을 알 것이다.
 
52
이와 같이 個個[개개]의 文句[문구]를 尋枝摘葉的[심지적엽적]으로 東尋西搜[동심서수]해서, 外形的[외형적]으로 近似[근사]한 關聯[관련]을 求[구]하고, 或[혹]은 眼力[안력]이 못미쳐서 成心[성심]에 阻害[조해]된 後世人[후세인]을 愈出愈妄[유출유망]을 極[극]한 放談橫議[방담횡의]를 거창스럽게 詮議[전의]한다는 것은, 아무리 廣博精密[광박정밀]을 極[극]하여도 그것이 中心事實[중심사실]·根本問題[근본문제]를 遊離[유리]하는 限[한], 畢竟[필경] 徒勞[도로]이고 無意味[무의미]하여 마침내 實往虛歸[실왕허귀]에 끝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3
시험삼아 〈三國遺事[삼국유사]〉所傳[소전]의 壇君記[단군기]만에 對[대]하여 洞見[통견]해 보라. 그 것이 얼마나 素樸[소박]하고 非常識的[비상식적]이어서 「매직 릴리져스」的[적]으로 眞實[진실]한 것인가, 그리고 北[북]은 滿洲[만주] · 蒙固[몽고] 乃至[내지] 西域方面[서역방면]과, 南[남]은 日本[일본] · 琉球[유구] 등과의 사이에 同工異曲的[동공이곡적] 一致同質[일치동질]을 보여 주며, 支那[지나]며 印度[인도]와는 오히려 특수한 色臭[색취]를 띠고 있는데, 그것의 半島[반도] 古傳[고전]으로서의 眞實性[진실성]을 自證[자증]하기에 남음이 있음을 想察[상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4
이에 反[반]하여, 약간의 文句的[문구적] 相通[상통]에 因[인]하여, 그것을 佛典[불전]·仙書[선서]의 脫化物[탈화물]이라고 하는 것이 條理[조리] 있다 한다면, 桓字[환자]도 檀字[단자]도 仙字[선자]도 天王[천왕]·壇君[단군]등의 句[구]도 보이지 않고, 半島[반도]의 壇君古傳[단군고전]과 同一構成[동일구성]을 가지고 있는 東北[동북] 亞細亞[아세아] 諸住民[제주민]의 建國古話[건국고화]는 어떻게 무어라고 설명하여야 할 것인가.
 
55
이밖에도 說[설]을 하기를, 壇君[단군]은 巫覡間[무격간]에 傳[전]하여 神[신]으로 된 것으로서 그것이 知識階級[지식계급]에 識認[식인]된 것은 近來[근래]의 일임을 疑難[의난]하는 이 있지마는, 어느 곳에서도 巫覡[무격]이 民族的[민족적] 傳統[전통]의 가장 久遠[구원]하고 가장 强靭[강인]한 保持者[보지자]임과, 한편 朝鮮[조선]에서 知識階級[지식계급]과 그들의 손에 이루어진 記錄[기록]이라는 것이, 國民信仰[국민신앙]·民族的[민족적] 傳說[전설]을 오로지 支那化[지나화]·常識化[상식화]함에 汲汲[급급]하기 日猶不足[일유부족]이었던 徒輩[도배]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巫覡[무격]을 主[주]로 傳承[전승]한 것은 오히려 壇君[단군]의 眞實性[진실성]을 確保[확보]해 주는 重要[중요] 條件[조건]일 것이다.
 
56
또 壇君[단군]의 古傳性[고전성]을 認定[인정]하면서 그것을 平壤[평양]에 限[한]한 地方的[지방적]인 것으로 보거나, 혹은 夫餘[부여]·高句麗[고구려] 등 北方系統[북방계통]의 것으로서 南方[남방]의 韓地[한지]에는 因緣[인연]이 없는 것으로 보거나 하여, 여러 가지로 흠을 잡는 論[론]도 있으나, 원래 壇君[단군] 古傳[고전]의 내용을 구성하는 天子降世[천자강세]·神道治世[신도치세]의 觀念[관념]은 前[전]에 論[논]한 바와 같이, 半島[반도]는 말할 것도 없고 全東方的[전동방적]인 普遍事實[보편사실]이어서, 南方[남방]에 「天君[천군]」이 있다고 하여 tangul을 神格[신격] 혹은 神職[신직]으로 함에 地方的[지방적] 隔差[격차]가 보이지 않으며, 더우기 시방의 民俗的[민속적] 事實[사실]에 徵[징]하면 神[신]에 奉仕[봉사]하는 사람이 tangul이라 함은 오히려 北方[북방]보다도 南方[남방]에 있어서 普遍[보편] 常用的[상용적]임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것 또한 根據[근거] 薄弱[박약]한 膚見[부견]임을 알 것이다.
 
57
(이 小論[소론]의 한 補足[보족]으로서 日文[일문]으로는 朝鮮[조선] 及[급] 朝鮮民族[조선민족] 第一輯[제일집]의 不咸文化論[불함문화론], 朝鮮學報[조선학보] 第一號[제일호]의 古朝鮮[고조선]에 있어서의 政治規範[정치규범]을 參照[참조]하기를 바란다.) ■ (原文[원문] 日文[일문])
 

 
58
古朝鮮[고조선] 朝鮮[조선]王儉[왕검]
59
魏書云[위서운].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내왕이천재유단군왕검]. 立都阿斯達[입도아사달]. 經云無葉山[경운무엽산]. 亦云白岳[역운백악]. 在白州地[재백주지]. 或云在開城東[혹운재개성동]. 今白岳宮是[금백악궁시]. 開國號朝鮮[개국호조선]. 與高同時[여고동시]. 古記云[고기운]. 昔有桓國[석유환국] 胃帝釋也[위제석야] 庶子桓雄[서자환웅]. 數意天下[삭의천하]. 貪求人世[탐구인세]. 父知子意[부지자의].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하시삼위태백가이홍익인간]. 及授天符印三箇[급수천부인삼개]. 遣往理之[견왕리지]. 雄率徒三千[웅솔도삼천]·降於太伯山頂[강어태백산정] 卽太伯今妙香山[즉태백금묘향산] 神壇樹下[신단수하]. 謂之神市[위지신시]. 是謂桓雄天王也[시위환웅천왕야]. 將風伯雨師雲師[장풍백우사운사].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이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범주인간삼백육십여사]. 在世理化[재세이화]. 時有一熊一虎[시유일웅일호]·同穴而居[동혈이거]. 常祈于神雄[상기우신웅]. 願化爲人[원화위인]. 時神遺靈艾一炷[시신유영애일주]·蒜二十枚曰[산이십매왈]. 爾輩食之[이배식지]. 不見日光百日[불견일광백일]. 便得人形[변득인형].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웅호득이식지기삼칠일]. 熊得女身[웅득여신]. 虎不能忌[호불능기]. 而不得人身[이부득인신]. 熊女者無與爲婚[웅녀자무여위혼]. 故每於壇樹下[고매어단수하]. 呪願有孕[주원유잉]. 雄乃假化而婚之[웅내가화이혼지]. 孕生子[잉생자]. 號曰壇君王儉[호왈단군왕검].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이당고즉위오십년경인]. 唐高卽位元年戊辰[당고즉위원년무진]. 卽五十年丁巳[즉오십년정사]. 非庚寅也一作方[비경인야일직방]. 疑其未實[의기미실]. 都平壤城[도평양성]. 今西京[금서경]. 始稱朝鮮[시칭조선].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우이도어백악산아사달]. 又名弓忽山[우명궁홀산]. 又今彌達[우금미달]. 御國一千五百年[어국일천오백년]. 周虎王卽位己卯[주호왕즉위기묘]. 封箕子於朝鮮[봉기자어조선]. 壇君乃移於藏唐京[단군내이어장당경]. 後還隱於阿斯達位山神[후환은어아사달위산신]. 壽一千九百八歲[수일천구백팔세]. 唐裵矩傳云[당배구전운]. 高麗本孤竹國[고려본고죽국]. 今海州[금해주]. 周以封箕子爲朝鮮[주이봉기자위조선]. 漢分置三郡[한분치삼군]. 謂玄菟위현도]·樂浪[낙랑]·帶方[대방]. 北帶方[북대방]. 通典亦同此說[통전역동차설]. 漢書則眞臨樂玄四郡[한서즉진임낙현사군]. 今云三郡[금운삼군]. 名又不同[명우부동]. 何耶[하야].
 
 
60
〈一九三[일구삼]○年[년] 十一月[십일월] 月刊[월간] 朝鮮[조선] 第一八六號[제일팔육호]〉
61
―(金鍾武[김종무] 譯[역])
【원문】단군소고(壇君小考)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30
- 전체 순위 : 1599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20 위 / 182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단군소고 [제목]
 
  최남선(崔南善) [저자]
 
  1930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역사평론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단군소고(壇君小考)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