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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稽古箚存(계고차존) ◈
◇ 第一期(제일기) 檀君時節(단군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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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6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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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 古 箚 存[계고차존]
2
─檀君曁夫餘時節[단군 기부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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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期[제일기] 檀君時節[단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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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節[제일절] 檀君[단군]의 開國[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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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고대] 國邦[국방]의 肇興地[조흥지]는 土地沃衍[토지옥연]하고 物産[물산]이 繁滋[번자]하여, 天[천]이 其便[기편]을 假[가]하고 地[지] 其寶[기보]를 吝[인]치 아니함으로써 必須[필수] 條件[조건]을 作[작]하나니, 「 주신」人[인]은 此[차]를 太白山下[태백산하] 松花江[송화강] 上流[상류] 에 발견하여 그 長久[장구]한 역사의 搖籃[요람]을 作[작]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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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今[종금][오]천 년 前後[전후]에 先祖[선조]의 天降[천강]을 信[신]하고 天王[천왕]이라는 主上[주상]을 戴[대]한 桓[환]이란 一民族[일민족]이 有[유]하여, 居民[거민] 崇仰[숭앙]의 標柱[표주]인 太白山下[태백산하]에 都[도]를 奠[전]하고 神市[신시]라 稱[칭]하니, 蓁蓁[진진]한 草莽裏[초망리]에 情艶獨發[정염독발]한 白百合[백백합]과 如[여]히 朴陋椎魯[박누추노]한 旁近[방근] 諸族[제족] 중에 在[재]하여 敎化[교화] 자못 優越[우월]하며 産業[산업]·刑政[형정] 등 御國導民[어국도민]의 具[구] 略備[약비]하였으며, 더욱 農牧[농목]으로써 생활 방법을 作[작]함은 射獵時代[사렵시대]를 脫[탈]치 못한 당시의 四旁[사방] 중에 在[재]하여 특수한 色彩[색채]를 放[방]하더라. 此期間[차기간]을 神市時節[신시시절]이라 하나니, 年紀[년기] 綿邈[면막]하므로 事蹟[사적]이 疎佚[소일]하거니와, 德惠[덕혜]의 漸被[점피]하는 바에 未開[미개]의 部屬[부속]이 四方[사방]으로서 率歸[솔귀]하거늘, 歷代[역대]의 天王[천왕]이 善[선]히 綏撫[수무]하고 鍛鍊[단련]하여 힘써 文明[문명]에 同化[동화]케 하였음을 古記[고기]에 傳[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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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市[신시] 以前[이전]의 原居[원거]를 古傳[고전]에 桓[환]이라 書[서]하니 桓[환]은 곧 하늘의 合譯[합역]이라, 故[고]로 主上[주상]의 名號上[명호상]에 반드시 桓[환]을 加[가]함은 곧 天降[천강]을 表示[표시] 함이요 後[후]에 解[해]로 轉[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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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節[제이절] 歷代[역대]의 治績[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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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君[단군]의 治世[치세]는 一[일]천 五[오]백 년 이상을 算[산]하나니, 歷代[역대]의 數[수]를 可考[가고]치 못하나 대개 五○許代[오공허대]에 下[하]치 아니할지라, 樸鹵淳厖(박로순방)한 上世[상세]이매 宏大[굉대]한 事變[사변]은 無[무]하였으려니와, 이렇듯 長久[장구]한 歷年[역년]에 內[내]로 化外[화외]의 梗民[경민]도 無[무]치 아니하고 外[외]로 異方[이방]의 征伐[정벌] 도 無[무]치 아니하였을 터인즉, 幾多[기다]의 英雄[영웅]이 응당 此間[차간]에 활약하고 幾多[기다]의 파란이 응당 此中[차중]에 駭跳[해도]하였겠지마는, 오직 國初[국초]에 西南[서남] 涿鹿(탁록)의 野[야]에서 漢族[한족]의 軒轅氏(헌원씨)로 더불어 震天撼地[진천감지]의 大活劇[대활극]을 演出[연출]하여, 半分[반분]은 이미 神話化[신화화]한 蚩尤( 치우) 一族[일족]이 幸傳[행전]하는 以外[이외]에는 文籍[문적]이 此[차]를 傳[전]치 아니하고 山河[산하]가 此[차]를 語[어]치 못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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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정치] 方面[방면]을 察[찰]하건대, 當代[당대]의 最大[최대] 政事[정사]는 群族[군족] 統制[통제]와 野人[야인] 導化[도화]니, 第一世[제일세] 檀君[단군]의 初政[초정]은 아직 敎化[교화]에 浴[욕]하지 아니한 者[자]에게 編髮[편발] 盖首[개수]를 命[명]하고, 宮室[궁실] 飮食[음식]을 制[제]하고 사회 생활상 必須[필수]한 禮節[예절]을 敎[교]함이라 이는 다 同化[동화] 進明上[진명상]의 急先務[급선무]며, 匪西岬[비서갑]의 女[여]를 娶[취]하였음은 桓雄天王[환웅천왕]의 神熊氏[신웅씨]를 妻[처]함과 如[여]히 同化[동화] 함 異族[이족]에게 和好[화호]의 意[의]를 躬示[궁시]함이며, 또 山川[산천] 整理[정리]∙道路[도로] 開鑿[개착]∙農藝[농예] 普及[보급] 등 生民奠接上[생민전접상] 要務[요무]를 시행하였더라. 嗣後[사후]의 壬儉[임검]이 此[차] 齊民[제민]∙養民[양민]의 兩大[양대] 綱領[강령]으로써 世謨[세모]를 作[작]하였을 것은 自明[자명]의 理[리]라 할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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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年代[연대]를 臆斷[억단]하지 못할지라, 檀朝[단조][일]천 五[오] 백 년간을 三段[삼단]에 均分[균분]하여 上[상] ∙中[중] ∙荷葉[하엽]의 名[명]으로써 大勢[대세]를 斟酌[짐작]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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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節[제삼절] 國疆[국강]의 發展[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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當代[당대]의 疆理[강리]가 初[초]에는 處女林[처녀림] 葱鬱[총울]한 松花江[송화강] 上流[상류]의 谷地[곡지]였으나, 異民[이민]의 來歸[내귀]도 世[세]로 增[증]하고 外域[외역]의 進取[진취]도 代[대]로 加[가]하였으며, 中葉[중엽] 이후로는 四方[사방]의 발전이 더욱 駸駸(침침)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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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流[강류]를 順[순]하여 北進[북진]한 者[자]는 濊[예]( 一作蔿[일작위]) 의 名[명]을 得[득]하고, 土門[토문]의 峽[협]으로 東進[동진]한 者[자]는 沃沮[옥저]의 名[명]을 得[득]하고, 鴨綠[압록]의 谷[곡]으로 西進[서진]한 者[자]는 貊[맥](▣貊[맥])의 名[명]을 得[득]하니, 種族[종족]의 本源[본원]이 同[동]하므로 法俗[법속]이 대개 同一[동일]하였으며, 貊人[맥인]의 南下[남하]하여 半島[반도]로 入[입]한 者[자]는 豻[한](후에 韓[한]이니 아울러 桓[환]의 異稱[이칭] 곧 天降[천강]을 표시하는 語[어])의 名[명]을 得[득]하고, 또 그 黃河[황하]∙遼河[요하]의 間[간]과 渤海[발해] ∙黃海[황해]의 岸[안]에 進居[진거]한 者[자]는 漢族[한족]에게 東夷[동이]의 名[명]을 得[득]하니, 이는 대개 中葉[중엽]으로부터 末葉[말엽]에 至[지]하는 동안의 推移[추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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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夷[동이]에 廣狹[광협] 二義[이의]가 有[유]하니, 廣用[광용]할 時[시]엔 支那[지나] 以東[이동] 諸民族[제민족]의 總名[총명]이요, 狹用[협용]하면 支那[지나] 內陸[내륙]에 雜居[잡거]하는 古朝鮮人[고조선인]의 稱謂[칭위]가 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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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반도]로 入[입]하여 韓[한]을 成[성]한 者[자]는, 南下[남하]하는 歷路[역로] 處處[처처]에 別部[별부]를 自建[자건]하니, 時代[시대]의 先後[선후]는 總[총]히 可考[가고]치 못할지나, 鴨綠江上[압록강상]에 團居[단거]한 者[자]도 有[유]하며, 亞耳山下[아이산하]에 團居[단거]한 者[자] 도 有[유]하며, 大同江上[대동강상]에 團居[단거]한 者[자]도 有[유]하며, 九月山下[구월산하]에 團居[단거]한 者[자]도 有[유]하며, 점차로 南進[남진]하여 四方[사방]에 割據[할거]하였는데, 그 漢水[한수] 以化[이화]의 者[자]는 末年[말년]에 至[지]하여 대개 漢民族[한민족]의 侵破[침파]를 被[피]하여, 舊疆[구강]을 株守[주수]한 者[자]는 漢邦[한방]에 雜居[잡거]하고 自主[자주]를 希求[희구]하는 者[자]는 東南[동남]으고 遷徙[천사]하였더라. 平壤[평양]에서 仙人[선인]의 號[호]를 得[득]하고, 阿斯達[아사달]에서 神人[신인]의 號[호]를 得[득]하고, 穴口[혈구]에 三郞城[삼랑성]을 築[축]한 者[자]는 다 此[차] 南下[남하]한 一支[일지]의 事[사]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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寧邊[영변]의 妙香山[묘향산](古名[고명] 太伯山[태백산])과 江東[강동]의 大朴山[대박산] 등이다 그 一派[일파] 一時[일시]의 遺蹟地[유적지] 일지니, 그 檀君窟[단군굴]이라 함과 檀君墓[단군묘]라 함이 얼마큼 所以[소이]가 有[유]할 것이요, 반드시 架空[가공]의 設[설]이라 하여 一筆抹去[일필말거]할 것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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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節[제사절] 當代[당대]의 物質的[물질적] 方面[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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當代[당대]의 文化[문화]를 考[고]하건대, 土地[토지]의 情形[정형]을 因[인]하여 開化[개화]의 早晩[조만]이 大別[대별]하고, 時世[시세]의 遷易[천이]을 隨[수]하여 文明[문명]의 程度[정도] 顯異[현이]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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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江[장강] 大澤[대택]은 漁撈[어노]에 宜[의]하고, 叢樹[총수] 密林[밀림]은 狩獵[수렵]에 宜[의]하고, 平原[평원] 沃土[옥토]는 耕作[경작]에 宜[의]하여 생활의 資料[자료]를 所在[소재]에 易得[이득]하므로, 文明[문명]의 發達[발달]이 자못 早速[조속]하고 松花江畔[송화강반]의 農業地方[농업지방]이 尤然[우연]하니, 後[후]에 夫餘[부여]는 실로 此中[차중]에 建成[건성]한 文明國[문명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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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族[환족]은 神市時代[신시시대]로부터 이미 農藝[농예]와 牧畜[목축]을 業[업]하였으나, 四旁[사방]의 異民[이민]은 대개 射獵[사렵]으로써 생활 수단을 作[작]하였으며, 平敞[평창]한 地[지]에는 곧 농업이 布施[포시] 되었으나 東北方[동북방] 峽地[협지]에는 地勢[지세]로 인하여 許久[허구] 한동안 射獵[사렵] 主業[주업]의 風[풍]이 改[개]치 아니하였으며, 衣服[의복]은 從古[종고]로 皮卉[피훼]를 幷用[병용]하니, 대개 冬[동]에는 貂[초] ∙豹[표]의 皮[피](곧 소위 文皮[문피])와 夏[하]에는 雄常[웅상]의 布[포]를 着用[착용]하였으며, 居處[거처]는 기후의 관계로 대개 土室[토실]을 作[작]하니, 炎苦[염고]보다 寒苦[한고]가 甚[심]함으로 以[이]함이며, 半島[반도] 南部[남부]에 移住[이주]한 者[자]오 당초에는 土室[토실]의 舊習[구습]을 去[거]치 못하였으며, 西南[서남] 農業地方[농업지방]은 中葉[중엽] 이후로 宮室[궁실]의 制[제]가 크게 發達[발달]하였으되, 東北[동북]의 山林[산림] 沍寒[호한]의 地[지]에는 後年[후년]까지도 半穴居[반혈거]의 風[풍]이 遺存[유존]하였으며, 上葉[상엽]에는 馴鹿[순록]으로써 運輸交通[운수교통]의 役[역]을 供[공]케 하였으나 점차 牛馬[우마]로 代[대]하였으며, 牧畜[목축]이 자못 성하여 猪[저]∙羊[양]의 數[수]가 중요한 財産[재산]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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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節[제오절] 當代[당대]의 精神的[정신적] 方面[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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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民[인민]의 氣習[기습]은 彊勇奮義[강용분의]하며 勤勉力作[근면역작]하며, 또 歡呼[환호] 聚樂[취락]을 好[호]하여 統言[통언]하면 沒我的[몰아적]의 一面[일면]과 樂天的[낙천적]의 一面[일면]을 有[유]한 單純質直[단순질직]한 人民[인민]이며, 此[차] 氣風[기풍]이 社會生活[사회생활]을 長養[장양]하기에 適合[적합]한고로 祭祀[제사] 儀式[의식]과 音曲[음곡] 歌舞[가무]는 上古[상고]로부터 자못 발달하였으며, 西南[서남]에 遷徙[천사]한 者[자]도 此[차] 北方的[북방적] 특색을 영구히 保持[보지]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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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開[미개]한 部族[부족]에는 雜神[잡신]을 事[사]하는 風[풍]도 有[유]하고, 山岳[산악] 重疊[중첩]한 地方[지방]에는 山神[산신] 崇拜[숭배]의 風[풍]이 例有[예유]하되, 桓族[환족]과 및 그 直統[직통]을 傳[전]한 人民[인민]은 스스로 天帝[천제]의 裔[예]임을 信[신]하므로, 自初[자초]로 拜天[배천]의 信仰[신앙]을 有[유]하여 혹 肇國[조국]의 靈山[영산]과 혹 光國[광국]의 偉人[위인]을 天[천]에 配[배]하여 崇奉[숭봉]하니, 실로 天帝即是皇祖[천제즉시황조]로 拜天[배천]과 崇祖[숭조] 本一不二[본일불이] 인 信仰[신앙]을 有[유]하였으며(太白山[태백산] 崇敬[숭경]의 俗[속]은 금일에까지 변함이 없도록 根基[근기]가 深固[심고]한 것이니, 그 舊名[구명] 不咸[불함] 北語[북어]로 天[천]의 義[의]라 곧 山[산]으로 天[천]에 配[배] 함이요, 後[후]에 高句麗[고구려]에서 天祭[천제]를 東盟[동맹]이라 함은 國祖[국조] 東明[동명]의 國語[국어]니 곧 人[인]을 天[천]에 配[배] 함이라), 祭天[제천]의 節日[절일]은 매양 擧國[거국] 聚樂[취락]의 社交的[사교적] 性質[성질]을 帶[대]하였으며, 神市時代[신시시대]로부터 祭壇[제단]을 반드시 深山高峰[심산고봉]에 淨造[정조]하고, 民[민]을 會[회]하여 敬拜[경배]하는 風[풍]이 有[유]하니 穴口[혈구]의 塹城檀[참성단]은 곧 南下[남하]한 一支[일지]의 築造[축조]한 바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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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 하늘, 漢譯[한역]하여 桓[환]이라 함은 곧 大世界[대세계][혹] 宇宙[우주]의 義[의]니, 檀人[단인]은 대개 하늘로서 原降[원강]하여 하늘로 終歸[종귀]함을 信[신]하였으며, 人世[인세]에 降[강]하기는 救厄弘益[구액홍익]하기 爲[위]함이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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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凶[길흉]을 判[판]함에는 神占[신점]이 有[유]하며 善惡[선악]을 懲[징]함에는 刑賞[형상]이 有[유]하며, 勸農[권농]과 授時[수시]의 政[정]은 神市時代[신시시대]로 부터 매우 重視[중시]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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當代[당대]의 藝術[예술]이 심히 素樸[소박]하였음은 想見[상견]키 難[난]치 아니하나, 陶術[도술]은 자못 夙達[숙달]하여 種種[종종]의 伎巧[기교]를 生[생]하였으며, 文樣[문양]∙繪畵[회화] 혹 彫刻[조각]의 傳[전]하는 것은 無[무]하나, 少[소]하여도 布匹皮服[포필피복]∙弓身矢頭[궁신시두] 등 의장식에 응당 相當[상당]한 藝術的[예술적] 情調[정조]가 表現[표현]하였을것이며, 今[금]에 當代[당대] 美德[미덕]의 一斑[일반]을 窺伺(규사)할 者[자]는 오직 東北[동북] 滿洲[만주]에서 발견하는 諸種[제종] 石器[석기], 더욱 石鏃[석족]의 模樣[모양]뿐일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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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字[문자]의 有無[유무]는 당시에 神誌[신지]란 職[직]이 有[유]하여, 宗敎上[종교상] 豫言[예언]과 古事[고사] 傳授[전수] 등을 掌[장]함을 古記[고기]가 전하니, 國初[국초]부터는 아니라 할지라도 檀君時節[단군시절]에 이미 思想[사상] 傳達[전달]의 有形的[유형적] 一方法[일방법]이 有[유] 함은 사실일지요, 末葉[말엽]부터 漢土[한토]의 교통이 점차 頻數[빈수]하였은 즉, 발달 초기에 在[재]하던 漢子[한자] 諸種[제종] 機會[기회]에 稍稍[초초] 入來[입래]하였을까 하노라. 歌唱[가창]은 「주신」人[인]의 原時的[원시적] 嗜好[기호]인즉, 歌曲[가곡]이 심히 풍부하였음을 設想[설상]할지니라.
 
29
古記[고기]에 當時[당시] 治理[치리]의 目[목]이 三六〇餘條[삼육공여조]임을 傳[전]하니, 規模[규모]의 備[비]함을 謂[위]함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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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六節[제육절] 漢土[한토] 方面[방면]의 交涉[교섭]
 
31
「 주신」人[인]의 同化力[동화력]과 繁殖力[번신력]은 자못 왕성하여 千有餘年間[천유여년간] 統攝[통섭]과 發展[발전]이 일찍 停息[정식]하지 아니하였으며, 上古[상고]로부터 遼水[요수]∙黃河[황하]의 間[간]에까지 遍居[편거]하고, 더욱 北支那[북지나] 一帶[일대]에서는 漢人[한인]이 建邦設都[건방설도]하기 前[전]으로부터 遠近[원근]에 雜居[잡거]하니 本國[본국]에 自居[자거]하는 者[자]를 漢人[한인]이 肅愼[숙신]으로써 呼[호]하고, 漢土[한토]에 雜居[잡거]하는 者[자]를 東北夷[동북이]라 稱[칭]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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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土[한토]에는 距今[거금] 약 四[사]천 三[삼]백 년 前[전]에야 黃河[황하] 沿岸[연안]에 君邦[군방]이 稍成[초성]하여 初[초]에는 賢能[현능]이 迭替[질체]하는 制度[제도]로, 다만 民望[민망]의 趨嚮[추향]을 從[종]할 뿐이요 種族[종족]의 異同[이동]을 拘[구]치 아니하니, 我國[아국][초]에 初後[초후]하여 手建[수건]한 君邦[군방]을 唐[당]의 堯[요]라하며, 東夷[동이]의 人[인]인 虞[우]의 舜[순]이 그의 後[후]를 繼[계]하였으며, 또그 後繼者[후계자]를 夏[하]의 禹[우]라 하니 君主[군주] 世襲[세습]의 制[제] 此代[차대]에 始[시]하였으며, 夏禹[하우]는 疆土恢拓[강토회척]에 크게 功業[공업]을 成[성]하였으나, 國內[국내] 四方[사방]에 異民族[이민족]의 別部[별부] 오히려 甚多[심다]하고, 더욱 東夷[동이] 혹 東北夷[동북이] 로써 稱[칭]하는 「주신」人[인]의 植民地[식민지]는 黃河[황하]의 北[북]과 東北[동북] 海上[해상]의 到處[도처]에 존재하고 隨[수]하여 피차 교섭의 端[단]이 滋多[자다]하였드며, 中葉末[중엽말]에 夏[하][망]하고 殷[은]이 代[대]하매 夷人[이인]의 세력이 더욱 寢盛[침성]하였더라.
 
33
中葉[중엽] 이후로 漢人[한인]에게 著名[저명]한 者[자]는 北陸方面[북륙방면]에 稷愼[직신](곧 주신 本國[본국])∙符婁[부루](一作[일작] 鳧臾( 부유) 즉 夫餘[부여]) ∙濊[예] ∙貊[맥] ∙玄都[현도] ∙良夷[양이] ∙高夷[고이] ∙俞[유] ∙發[발] ∙孤竹[고죽] 등이요, 恒山[항산] 南北[남북]에서 漢族[한족]과 雜處[잡처]한 者[자]에는 羿( 예) ∙畎夷( 견이) ∙于夷( 우이) ∙方夷( 방이) ∙藍夷( 남이) 등이 有[유]하고, 東海[동해] 方面[방면]에는 靑丘[청구] ∙周頭[주두]( 이상 渤海[발해] 沿岸[연안]) ∙島夷[도이] ∙萊夷[내이] ∙嵎夷[우이]( 이상 山東半島[산동반도][급] 海上[해상]) 등이니, 支那人[지나인]은 九夷[구이]의 稱[칭]으로써 數[수]의 多[다]함을 形容[형용]하였으며, 이렇듯 名號[명호]의 殊異[수이]함은 대개 長久[장구]한 세월, 허다한 歷路[역로]에 혹 外界[외계]의 事情[사정]과 혹 異族[이족]의 混和[혼화]로 인하여 풍속과 언어에 種種[종종] 차별이 生[생]한 故[고]러라.
 
34
此等[차등] 「주신」人[인]은 다만 一民團[일민단]으로 생활하였을 뿐 아니라, 漢族[한족]의 국가에 대하여 정치적 간섭도 少[소]하지 아니하였으며, 대개 武勇[무용]으로써 漢人[한인]의 畏憚(외탄)하는 바 되어, 항상 厚賄[후회] 와 重禮[중예]로써 親和[친화]를 來乞[내걸]하였으며, 彼此[피차]의 土産[토산] 交易[교역]은 自古[자고]로 자못 활발히 행하니, 我[아]의 往販物[왕판물]은 古今[고금] 없이 皮毛[피모]가 爲主[위주]요, 만일 〈尙書[상서] 〉 禹貢[우공]의 記載[기재] 진실로 三代[삼대] 以前[이전]의 事[사]를 傳[전]하는 것이라 하면, 我[아] 海上[해상] 移住民[이주민]의 漢人[한인]과 교역하던 物目[물목]이 다시 幾種[기종]을 加[가]하리니, 「冀州島夷皮服[기주도이피복]」이란 것은 〈通鑑[통감]〉 前編[전편] ∙〈書經[서경] 〉 集傳[집전] 등의 해석과 如[여]히 〈爾雅[이아]〉의 이른바 「東北方之文皮[동북방지문피]」 곧 貔羆(비비)의 皮[피]요, 「揚州島夷卉服[양주도이훼복]」 은 곧 絺葛苧初[치갈저초]의 屬[속]이며, 此外[차외] 蠙珠[빈주] ∙纖縞[섬호]( 纖[섬]은 黑經[흑경] 白緯[백위], 縞[호]는 素[소]) ∙織貝[직패]( 錦名[직명] 或云[혹운] 細布[세포])∙柚橘[유귤] 등 天産[천산][급] 加工品[가공품]이 有[유]하였더라. 之圖書蒼頡之文[지도서창힐지문], 即制文字[즉제문자], 以代結繩之政[이대결승지정], 以作書契[이작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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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니, 以上[이상] 諸條[제조]는 春秋[춘추]· 奏[주]· 漢間[한간] 支那人[지나인]의 書[서]에 散見[산견]하는 者[자]니, 그 流傳[유전] 稱說[칭설]이 반드시 久遠[구원]한 것일지라, 古代[고대] 支那人[지나인]의 此方[차방]에 대한 觀念[관념]을 此[차]에 窺知[규지]할 것이며, 賤他自大[천타자대]의 支那人[지나인]으로 오히려 이렇듯한 好特點[호특점]을 擧[거] 함에 注意[주의]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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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古[상고]의 생활은 극히 簡樸[간박]한 것이니, 口腹[구복]이 適充[적충]하면 足[족]하며 居住[거주]安夷[안이]하면 足[족]한지라, 山野藪澤[산야수택]의 財産[재산]과 射獵漁撈[사렵어로]의 技能[기능]만이면, 그이 要求[요구] 洽滿[흡만]하며 그의 世界[세계] 照皥[조호]하던 것이로다. 然[연]이나 群族[군족]이 雜處[잡처]하고 利害[이해]가 相左[상좌]하면 충돌이 斯[사]에 起[기]하며, 紛競[분경]이 斯[사]에 滋[자]하여 人[인]이 그 煩苦[번고]를 堪[감]치 못하기에 至[지]할지라, 統一[통일]· 節制[절제]의 運動[운동]이 此間[차간]에 生[생]함은 固然[고연]의 勢[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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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史[고사]를 歷觀[역관]하건대, 이러한 경우에는 雄豪出來[웅호출래]하여 群小[군소]를 倂合[병합]함도 一[일] 形式[형식]이요, 大衆[대중]이 會商[회상]하여 首長[수장]을 選載[선재]함도 一[일] 形式[형식]이니, 古代[고대] 諸國[제국]이 대개 前者[전자]로써 生起[생기]하였건마는 오직 「 주신」 의 建國[건국]은 後者[후자]에 由[유]하였더라.
【원문】 第一期(제일기) 檀君時節(단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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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선(崔南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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