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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레종(鐘) ◈
◇ 제1막 ◇
카탈로그   목차 (총 : 5권)     처음◀ 1권 다음
1942.3
함세덕
1
어밀레 鐘[종](전5막)
 
 
2
• 인물 :
3
혜공왕(惠恭王 ; 신라 제36대 왕)
4
만월부인(滿月夫人 ; 母后[모후] 攝政[섭정])
5
시무나(詩牟那 ; 왕의 누님)
6
무라사키히메(牟羅佐記姬[모나좌기희] ; 日本遺[일본진] 신라 유학생)
7
김은거(金隱居 ; 執事部侍中 伊湌[집사부시중 이찬])
8
김옹(金邕 ; 鑄鐘檢校使[주종검교사 上大等[상대등] 겸 兵部令[병부영])
9
김체신(金體信 ; 鑄鐘檢校副使[주종검교부사] 侍郞[시랑])
10
하전(下典 ; 鑄鐘檢校副使[주종검교부사] 大博士[대박사])
11
미추홀(彌鄒忽 ; 鑄鐘檢校副使[주종검교부사] 次博士[차박사])
12
충봉(忠封 ; 鑄鐘檢校副使[주종검교부사] 判官[판관])
13
일상(一桑 ; 鑄鐘檢校副使[주종검교부사] 錄事[녹사])
14
이화녀(梨花女 ; 희생 바친 과부)
15
그의 딸
16
범지(范知 ; 唐[당] 왕자)
17
오노히로토시(小野博臣[소야박신] ; 야마토([大和[대화]] 醫博士[의박사])
18
지조대사(智照大師)
19
탁발승
20
시위부감(侍衛部監)
21
수문장
22
기 타 ― 도제(徒弟), 주정(鑄丁), 부역인부(賦役人夫), 궁녀, 시녀, 문무백관, 도하(都下)의 남녀노약(男女老若).
 
23
• 연대 :
24
혜공왕 6년 경술(庚戌)
25
당(唐) 대력(大曆)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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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칭덕천황신호경운(日本稱德天皇神護景雲) 2년
27
거금(距今) 1156년 전
 

 
28
제 1 막
 
 
29
신라 경사(京師) 서라벌(현 慶州[경주]) 시외에 흐르는 알천하변(閼川河邊)에 가설(假設)한 주종공방(鑄鐘工房). 높은 토병(土屛)에 위요(圍繞)되어 내부는 보이지 않으나 발다리, 사닥다리가 거미줄 같이 엮인 용로(鎔爐)의 일부가 토병 위로 보인다. 공장 입구에 성덕대왕 신종조궁성전(聖德大王神鐘造宮成典)이란 현판과 검교정부사(檢校正副使)를 비롯하야 주종에 종사하는 박사(博士)로부터 녹사(錄事)에 이르기까지의 인명이 열기(列記)되어 있다.
30
장내에는 철설(鐵屑), 목탄, 점토, 모래 등이 사처(四處)에 산적해 있고, 우변으로 주종공방의 현판과 문, 좌변엔 화리(花籬)로서 도리화(桃李花)가 만개했고, 그 뒤로 백사장을 건너 알천이 흐른다. 강 건너로 풍옥(豊沃)한 평야가 뻗었고 수려한 소금강의 산맥이 춘삼월 양광에 조으는 듯. 멀리 봉덕사(奉德寺)의 가람(伽藍)들.
31
효성왕(孝成王)이 개원(開元) 26년 무인(戊寅)에 봉덕사를 창건하야 부왕(父王)이신 성덕왕의 명복을 빌매, 아우님 경덕왕(景德王) 또한 거종(巨鐘)을 주조하야 부왕의 인덕과 위업을 넓히고저 이 국가적 대업에 착수함이라. 이에 상응한 경건하고도 장엄한 서곡에 막이 오른다. 이어서 주정(鑄丁)들의 풀무질하며 부르는 노래 소리와 캉 - 캉 - 하고 하변(河邊)의 정적을 깨트리는 쇠 다루는 소리 등.
 
32
주정 3, 4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물지게로 물을 길어 들고 들어간다.
33
공장내에서 대박사의 대를 짜개는 듯한 지령 소리 들린다.
 
34
대박사의 소리  취홀이 탈출구멍을 막어라.
35
추홀의 소리  네. 판관, 빨리 물을 끼얹지 않구 뭣들 보구 섰는 거야.
 
36
쏵쏵하고 물을 끼얹는 소리.
37
주종검교부사(鑄鐘檢校副使)인 젊은 장군 김체신(金體信)이 녹사와 함께 사무실에서 뛰어나와 초조와 불안 가운데 희보(喜報)를 기다리는 양, 장내를 왔다갔다 한다. 작열한 쇠가 식는 소리. 문틈으로 증기가 자욱이 나온다. 차박사(次博士) 미추홀, 장내에서 황급히 달려나온다. 청수(淸秀)한 미목(眉目) 속에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의지가 숨었다. 어딘지 모르게 흐르는 귀품은 직업과는 머 - ㄴ 거리를 가졌다.
 
38
미추홀   (격하야 부사 앞에 엎더지며) 부사님, 종이 울지를 않습니다.
39
부 사   무어? 이번에도.
40
미추홀   조곰도 맑은 소리가 아니 나고 질그릇을 두다리는 듯한 탁한 소리가 납니다.
41
부 사   혹 금이 간 곳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42
미추홀   금간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고 종명(鐘銘)도 한 자 뭉그러지지 않고 똑똑히 나왔습니다.
43
녹 사   그 기 - ㄴ 종명이 한 자도?
44
미추홀   네, 저번에 잘 노출이 안 됐던 용의 부조도 비가 쏟으면 하눌로 꼬리를 치고 올라갈 듯 뚜렷이 나왔고, 관세음이 향로를 들고 승천하는 상도 선명히 나왔습니다. 그런데 소리만은 웨 그렇게 탁한지, 주석과 구리로 만든 종에서 질그릇 소리가 난다는 것은 도모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45
부 사   쇠를 끓일 때 잡물이 들어간 것은 아닐까?
46
미추홀   원료의 배합에는 조곰도 틀림이 없습니다.
47
부 사   이게 어찌된 노릇일꼬? (녹사에게) 빨리 검교사님께 이 일을 전해라.
48
미추홀   얼마나 실망을 하실까요?
 
49
녹사, 급히 나간다.
 
50
부 사   대박사께선?
51
미추홀   스승님께선 거진 실성하시다시피 되셨습니다. 옆에 놓였던 칼을 집어드시고, 죽음으로써 상감마마와 검교사님께 사죄를 하겠다고 하시는 것을 지금 모두들 붙들고 있습니다.
 
52
이때 공장 안에서 하전(下典)의 “놔라, 나를 붙들지 마라” 하는 노호와 “스승님, 한번만 더 해보시지요”, “스승님, 이 칼 놓으십쇼” 하는 제자와 주정(鑄丁)들의 떨리는 소리 들려온다. 김체신, 안으로 달려간다. 아주 봉발구안(蓬髮垢顔)에 눈만이 형형히 번뜩이는 하전, 칼을 든 채 나온다. 제자들과 주정들이 사방에서 붙들므로 자유를 잃고 몸부림 친다.
 
53
부 사   대박사, 그 칼 놓시오.
54
하 전   부사님, 이 버러지 같은 위인을 죽게 해주십쇼.
55
부 사   (칼을 빼앗아 멀리 내던지며) 대박사가 죽으면 이 일을 어떻게 하란 말이오.
56
하 전   5년, 긴 세월을 종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오늘 또 실패를 했사오니, 살어서 무슨 면목으로 상감마마를 뵈옵겠습니까. 내 기술이 이렇게도 미숙하던가? (허회[噓唏])
57
부 사   미숙한 기술이라니 당치 않은 말이오. 신라 888사의 대소 수천의 범종이 거개가 박사와 박사의 제자들이 맨든 것이 아니오.
58
하 전   기술이 부족하지 않다면 어떻게 종 하나에 여섯 번이나 실패를 거듭하겠습니까. 부사님!
59
부 사   아마도 검님이 시기하시기에 그렇지 그럴 수가 있을라구……. 그렇지만 박사, 이 종은 여섯 번이 아니라 백 번을 다시 하드라도 기어쿠 맨들어놔야 하오.
60
미추홀   검교사님께서 들어주실는지요?
61
부 사   지금 녹사가 갔으니, 끝말을 달려 오실 꺼요. 보나 안보나 그 성미에 가만히 계시지는 않을 꺼요. 그러나 무슨 노연 말씀을 하시드래도 꾹 참으시오. 대업을 완성해야지오.
 
62
부사,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멀리서 질주해오는 마제(馬蹄) 소리.
 
63
미추홀   스승님, 검교사님이 오십니다.
 
64
마제 소리 가까이서 뚝 그친다. 이어서 녹사를 앞세우고 상대등 겸 병부령인 검교정사 김옹(金邕) 들어온다. 하전 이하 제자들, 주정들, 하수(下手)로 엎대인다.
 
65
김 옹   (추상같이) 이번엔 질그릇 깨치는 소리가 난다지?
66
하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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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옹   종 하나를 가지고 5년을 끌며 여섯 번 다시 맨들어도 질그릇 소리 밖에 안 난다는 것은 검교사 이 김옹의 치욕뿐 아니라 천만 년후까지 우리 신라의 누명이야.
68
하 전   ……….
69
김 옹   더구나 이 종으로 말하면 선왕의 형님이신 효성대왕(孝成大王)께서 개원(開元) 26년에 부왕이신 성덕대왕(聖德大王)을 위하시와 봉덕사를 창건하심에 있어 아우님은 종을 맨들어 바칠려고 이 일을 시작하옵신 것은 다들 알겠지? 그러나 못 보신 채 승하하셨으므로 아드님이신 금상께옵서 부왕의 뜻을 받드시어 계승하신 일이야. 금상께서는 등극하신 지 4년, 춘추 겨우 14세이시지만 효심이 지극하시어 이 일에 여간 신금을 태우시는 것이 아니야. 전번에 실패했을때도 닷새 동안이나 수라를 물리치시고 침전 문을 닫으시고 조회도 아니 받으시었는데, 또 실패를 했다고 내가 어떻게 아뢰겠느냐. 박사, 지난 겨울에 한 번만 더 맡겨주면 기어코 극성해놓겠다든 것이 이 꼴이야.
 
70
부사, 공장에서 나온다.
 
71
부 사   도무지 해괴한 일입니다. 한 곳 탓할 데 없이 깨끗이 부어졌는데 종소린 탁하게 나니……. 이건 반드시 검님께서 노하신게지 박사의 미숙한 탓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72
김 옹   (서리같이) 급찬이 박사를 두던할 필요는 없어.
 
73
김옹, 공장을 듸려다보지도 않고 나간다.
 
74
부 사   (녹사에게) 어데로 가시나 봐라.
75
녹 사   (밖을 내다보며) 봉덕사로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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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거긴 웨 가실까요?
77
부 사   이 종을 만드는 것이 성덕대왕 영전에 바칠려는 게 아니오? 아마 실패한 것을 영전에 사하러 가시는 게지요. 자 - 이러구 섰으면 무얼 하겠소. 들어가서 어데서 틀려졌나 다시 한번 샅샅이 보시오.
 
78
하전, 절망 속에 넋 잃은 사람처럼 허청허청 공장으로 들어간다. 제자와 주정들 뒤따른다. 이때 질주해오는 마제 소리.
 
79
부 사   누굴꼬?
80
녹 사   (마제 소리 나는 곳을 응시하더니) 시위부감(侍衛部監)인가 봅니다. 상감마마께서 거동합신다는 전교는 아닐까요.
81
부 사   글쎄…….
 
82
녹사, 집무방으로 들어가 비를 들고 나와 소제한다. 마제 소리, 문 앞에서 끄치고 시위부감 들어온다.
 
83
시위부감  상감마마 거동이시오.
84
부 사   노부(鹵簿)로 행행이시오?
85
시위부감  미행이시니 번거로웁게 하지 말라는 분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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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사   고마우셔라. 곧 뫼실 차비를 하겠소.
87
시위부감  특히 오날은 태후마마께서도 단 한 분이신 따님 시무나 공주마마와 대화국(大和國)의 석학 기비노마비(吉備眞備[길비진비])의 따님으로 우리나라에 유학생으로 오신 무라사키히메(ムラサキ姬[희])를 데리시고 동행하신다 하오니 만사에 소홀이 없도록 하시라는 집사부 시중의 말씀이요.
88
부 사   만사에 소홀이 없도록?
89
시위부감  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하여 둘 것은…….
90
부 사   (약간 불쾌하야) 명심?
91
시위부감  (아불관언[我不關焉]이라는 듯이) 네, 시중 김은거 어른께서는 본직에게 꼭 그렇게 분부하셨소. 공주마마께서는 올해까지 16년 ─ (손을 꼽아 보더니) 아니 17년 ─. (미심[未審]하므로 녹사에게) 공주께서 올해 몇이시오?
92
녹 사   (웃으며) 18세시오.
93
시위부감  (약간 위엄을 손[損]했으나 다시 존대하게) 18년 만에 궁중 밖을 처음으로 나오시는 것이니 한 가지라도 추하고 괴상한 것을 보시지 않도록 거듭 주의하라시는 분부시오.
 
94
시위부감, 전할 말만 전하고는 나간다.
 
95
녹 사   (분개하야) 시중이, 신하로 최고의 벼슬이신 상대등 겸 병부령으로 일국의 군사와 정사를 한몸에 맡으신 대각간 우리 검교사님께 ‘만사에 소홀이 없도록’이라니 -, ‘특히 명심해 둘 것은’ 이라니, 하는 언사를 쓰시니 제가 듣기에도 민망하고 화가 납니다.
96
부 사   원체가 남을 갉아잡아 말하길 좋아하는 분인데다가 당나라에 2년간 숙위하고 오시드니 이제는 안하무인이란 말이야. …… 벼슬이야 상대등께서 우이시지만 시중은 금상의 외숙이시니 조정의 권세는 각간께서도 누를 수 없으시지. 그건 그렇거니와 빨리 봉덕사에 가서 상대등께 거동하신다는 전갈을 아뢰어라.
 
97
녹사, 밖으로 나간다.
 
98
부 사   (공장 안을 향하야) 상감마마 거동이시다. 빨리 나와 장내를 소제들 해라.
 
99
부사, 영접차 밖으로 나간다. 미추홀과 도제, 주정들 나와 소제한다.
 
100
주정 1  정말 벼락이 나리나 보군.
101
주정 2  벼락이 나려도 떠나시는 공주마마의 얼골을 한 번 뵈옵고 죽는 것은 한이 없어.
102
도 제   공주님이 어데로 떠나십니까?
103
주정 1  오는 춘삼월 당나라 황자(皇子)님께로 시집을 가신다오.
104
도 제   시집을요?
105
주정 2  아, 선부(船府)에서 가마 대신 공주님이 타고 가실 견당선(遣唐船)을 만드느라고 주야겸행이란 말두 못 들었남.
106
도 제   그럼 정혼은 벌써 됐군요?
107
주정 2  지난 달 창부 낭중(倉部郞中) 귀숭경(歸崇敬)이가 상감마마와 태후마마의 책봉을 바치러 왔을 때 아주 결정하셨대.
 
108
“쉬 -. 거동이시오” 소리가 누구의 입에선지 나오자 일동, 좌우로 부복한다. 부사, 혜공왕, 만월부인, 공주 들어온다. 뒤이어 김은거와 무라사키히메(牟羅佐記姬[모나좌기희]).
 
109
혜공왕   이번에는 소리가 맑지가 못하다지.
110
부 사   (엎대인 채) 공구하오이다.
111
혜공왕   정녕 무슨 마가 붙은 거야.
112
만월부인  소리가 아주 못 쓰겠소?
113
부 사   그렇소이다.
114
시무나   들어가보아도 괜찮으오?
115
부 사   네.
 
116
시무나와 무라사키히메,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117
만월부인  그래, 상대등께선 어떡하실 작정이라 하오?
118
부 사   아즉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119
이때 김옹, 황급히 달려와 부복한다.
 
120
김 옹   황공하옵게도 상감마마의 행행을 봉영치 못하와 공구무비하오이다.
121
만월부인  상대등, 이 일을 어떡했으면 좋겠소.
122
김 옹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최후로 한 번만 더 시켜보고 싶소이다.
123
김은거   (흘연[屹然]히 김옹을 쏘아보며) 이 이상 더 작업을 계속했다간 국고가 말러 황송하옵게도 궁중의 비용까지 궁핍을 느끼게 될까 하오.
124
혜공왕   그렇다고 부왕께서 짐에게 유언하시고 승하하신 일을 자식의 도리로 폐할 수 있겠소?
125
김은거   신은 황공하옵게 선대왕의 뜻을 어기시어 중지하십사고 아뢰인 것이 아니옵고, 종은 국력을 기울이더라도 다시 맨드옵되 주종 대박사, 하전 이하 전부 갱철하심이 어떨까 하오.
126
부 사   분황사(芬皇寺)의 종을 만든 소공(蘇工), 백률사(栢栗寺)의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만든 백서장(白徐匠)이 있사오나, 하전에 비하오면 그의 제자들보다도 기술이 떨어지옵고, 그 외에는 가마솥이나 유기를 만드는 장인들 뿐이오이다.
127
김 옹   하전이 못 한 일을 해낼 사람은 없소이다.
128
김은거   하필 우수치 못한 신라의 주공만을 구할 필요가 어데있다 하오.
129
만월부인  그럼 당나라에서 초빙하자는 말씀이오?
130
김은거   그렇소이다. 내가 숙위왕자(宿衛王子)로 당나라에 유할 때 도기공을 갱철하시라 하고 몇 번이나 상주했었소?
131
김 옹   그것은 선대왕의 뜻이 아닌가 하오.
132
김은거   상대등의 국수사상엔 참으로 두통이오. 신라의 전통과 고유만 찾지만 무엇이 전통이며 어데가 고유한 것이오? 노자와 공맹의 도가 들어와 비로소 학문이란 게 생겼고, 불교가 수입됨에 따라 건축공예가 발달해나가지 않었소? 문물이 그러했고, 제도가 그러했고, 허다못해 사원의 건축으로부터 능묘의 벽화까지가 대국의 것을 모방하지 않음이 없거늘 전통은 뭐고 고유란 도대체 뭣이오. 당나라에는 능란한 기공이 부지기수요.
133
김 옹   석굴암의 석불과 불국사의 석교․석탑을 비롯하야 서랏벌 888 사의 종과 탑이 무비 우리나라 기공의 손으로 훌륭히 이뤄졌거늘 이제 새삼스럽게 당나라에서 사람을 초빙한다는 건 신라의 위신에도 관계될 줄 아오.
134
만월부인  그렇지만, 실제에 있어 여섯 번째나 실패를 겪지 않했소? 나는 섭정으로 명령하오. 폐일언하고 당장 주종사를 파면하오.
135
김 옹   …….
136
만월부인  상대등이 말하지 않겠거든 섭정이 손수 하겠소. 박사를 이리 부르게 하오.
 
137
이때 공방 뒤꼍에서 가느단 여자의 비명. 일동 소리나는 곳을 응시한다. “누구 없어요”, “이리 와 보세요” 등등.
138
이윽고 공주와 무라사키히메, 공포에 질린 얼골로 들어온다.
 
139
시무나   누가 강가에서 배를 갈르고 죽었어요.
 
140
미추홀, 이때 자기들 하수에 부복한 사람 중에 스승이 없음을 알자 불길한 예감에 쫓기어 환급히 공방 밖으로 달려간다. 멀 - 리서 “스승님”, “스승님” 찾는 소리가 점점 떨려간다. 이윽고 “스승님” 하고 통곡하는 오열 소리. 김옹, 부사, 도제(徒弟)들 일제히 달려간다.
 
141
시무나   (공포에 떨며) 어마마마.
142
만월부인  아가, 진정해라.
 
143
김옹과 부사, 초연(悄然)히 들어온다. 뒤따라 미추홀.
 
144
김 옹   박사가 자결을 해버렸소.
145
부 사   아까 실패한 줄 알자 곧 배를 갈러 상감마마와 섭정마마께 사죄하겠다는 것을 억지로 말려놨었습니다.
146
미추홀   스승님은 상감마마께 바친 유서 한 장을 남겨놓으시고 그만…….
147
혜공왕   (동심[童心]의 순정 속에) 빨리 읽어봐라. 무어라구 했나.
148
미추홀   (유서를 읽는다) 대죄인 하전 황감하옵게도 상감마마의 홍은을 받자와 신종 주조의 대임을 배하고 도제들과 더불어 뼈를 갈고 살을 이기되 하해 같으신 홍은의 만분지 일이라도 보답코저 하였사옵니다. 그러하오되 원래가 재능이 없고 기술이 미숙하와 5년 긴세월에 여섯 번 다시 붓는 전무후무의 실패를 거듭하야 국고를 말리고 성상의 신금을 태우시게 함은 백번 죽어 마땅하온 줄 아옵니다. 천신 하전 여덟 살에 아비를 따라 당나라에 들어가 20년간 주종술을 배우고 귀국하야 일로 기술의 연마에 30여 년을 보냈사오나, 자신을 잃은 이제 일루의 희망도 가질 수 없사오매, 이에 지옥길을 찾어가옵니다. 무신(戊申) 3월 주종 대박사 대나마(大奈麻) 하전(下典).
149
만월부인  (눈물을 닦으시며) 가엾어라.
150
혜공왕   황룡사의 48만 근 거종을 3개월 만에 극성해놓았다는 그가…….
151
미추홀   (부복하며) 상감마마께 아뢰옵니다. 이 대업을 소신에게 한번만 더 맡겨주옵소서. 살을 이기고 골을 바시되 반드시 성공하야 스승의 이 원통한 죽음을 위로해 드리고저 하옵니다.
152
김은거   사제지간의 미덕을 위하야 국가대업을 소홀히 맡길 수는 없어.
153
미추홀   이대로 저희가 공방을 물러간다면 스승님의 영혼은 너무나 불쌍치 아니하옵니까.
154
김은거   (섭정에게) 신라는 당나라의 번속국(藩屬國)이오. 주공을 대국에서 초빙하는 것은 이 대업의 완성을 촉진할 뿐더러 당 황제의 신애를 더 한층 사게 되는 것이오니 일석이조가 아니오?
155
만월부인  …….
156
미추홀   섭정마마, 당나라 주공의 손으로는 선대왕께서 바라신 신비한 종소리는 절대로 못낼 것이외다.
157
김은거   무어랐다?
158
미추홀   스승님도 당나라엔 20년 계셨고 소신도 여러 해 동안 아진(阿眞)이란 장안 제일의 명공에게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러하오되 지금 이 공방의 설비는 조곰도 당나라의 공방을 본뜬 것이 아니옵고, 주종하는 방법도 스승님과 저의 창안으로 된 것입니다.
159
김은거   달르긴 무엇이 달러?
160
미추홀   시험삼아 대조해보소서. 소리에 있어 당나라의 종은 그 지세처럼 황막하고 단조하고 또 외형도 선이 미적으로 되지 못합니다. 한 번 치면 화랑의 피를 끓게 할 웅장한 소리가 나고, 두 번 치면 성대에 만세를 부르는 백성의 평화한 노래 소리가 나고, 세 번 치면 어린애 잠을 재울 수 있는 부드러운 자장가 소리가 혼연히 섞여 나올 종을 족속이 다른 당나라 사람이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161
이 강렬한 열정적 사상에 시무나와 무라사키히메는 서로 감격하고 공명했다. 김옹은 저으기 만족한 듯.
 
162
김은거   대국과 친교를 깊이 할려는 것은 선조 대대로 나려오는 신라의 근본 국책이야.
163
시무나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국책의 희생은 나 하나로서 충분할 줄 아오.
164
김은거   희생?
165
시무나   시중께선 내가 당 황실에 출가만 하면 신라의 사직은 반석같이 될거라 하였지요. 나는 시중과 중신들의 말대로 신라의 종사를 무공케 하고저 혼인을 쾌히 승낙했었습니다. 이 우에 또 당나라에 아첨할 필요가 어데 있으며, 환심을 살려고 할 이유가 어데 있습니까.
166
김은거   혼약과 주공 초빙이 무슨 관계요?
167
시무나   어서 기공을 초빙해서 친교를 꾀하십시오. 그러면 시무나가 타국으로 시집갈 필요는 없으니까. (나가버린다)
168
만월부인  아가, 아가……저 애가……. (김옹에게) 저 젊은이에게 다시 한번 시켜보시오.
169
김 옹   공구하오이다.
 
170
일동 안도. 미추홀의 고조된 흥분과 시중의 못마땅한 얼골.
 
171
― 막 ―
【원문】제1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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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덕(咸世德)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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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8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