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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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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이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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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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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紹姬는 CT행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또는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든 눈이 피녀彼女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피녀는 피녀의 불유쾌할 때에 많이 쏘는 독특한 시선으로 좇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갈 때에 어떠한 불안과 일종의 염려를 느끼었었다. 왜? 그의 목에는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누구의 눈에든지 곧 뜨일 만한 큰 흠집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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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저들이 나의 목에 있는 흠집을 보고 머리를 다른 데로 돌리지나 않는 것인가?’하고 생각할 때마다 목을 조금씩 움츠렸다. 그리고 다시 흠집이 있는 곳을 한 번 어루만져보았다. 토실한 것이 여전히 만져졌었다. 그는 다섯 손가락을 갈퀴처럼 움츠려서 왈칵 쥐어뜯고 싶었다. ‘목에 흠집만 없었다면…….’하는 생각을 그가 거울을 대할 때와 같이 다시 하며 속으로 사(思)하였다. 그리고 만일 곁에 남의 눈치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4
“당신 목에는 왜 그렇게 큰 흠집이 생겼소?”하고 물을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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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라 대답할까 생각할 때에는 그 흠집이 다시 크게 입을 벌리고 빨간 피를 줄줄이 토하는 듯한 아픔을 느끼었다. 살을 에는 듯 아픔이란 것보다 과거의 기억이 마음의 가슴을 빠개는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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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흠집은 빨간 입을 벌리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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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소희 씨! 당신은 홀로 살았구려! 나는 당신의 목에 칼을 무의식으로 대일 때에 손에 힘이 풀어져서 당신의…… (이하 2행 판독 불가)
 
8
뻔한 목숨을 다시 이어갈 때에 당신의 생명과 □□하여오는 번민조차 끊어주지 못하였소. 도리어 천 배나 만 배나 아픈 기억만을 시시로 불러일으키게 하였을 따름이오. 그러나 세상 사람의 조소만이 당신의 주위에 모여들게 하였소. 그 희고도 야들야들한 당신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쏟아져 나올 때에 나는 당신의 싸늘하고 창백한 뺨에 나의 상기한 뺨을 대고 문질러보았었소. 그때에 당신은 영기 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보고 “당신은 거저 살아 계십니다. 그렇게 이 생에 못 잊을 것이 계세요?”하고 말씀하셨지요?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나는 그 말끝에 다시 최후의 키스를 싸늘하여가는 당신의 뺨에 한 뒤에 광란狂亂한 듯이 나의 왼편 가슴을 당신의 목에서 흐른 피에 빨갛게 물든 칼로 눈을 감고 힘껏 찌른 뒤에 혼미하게 누워 있는 당신을 포옹하였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몸이 우의羽衣를 입은 듯이 가벼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훌훌 날아갈 때에는 나의 곁에 꼭 있으리라고 생각하던 당신의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습디다. 그래서 나는 홀로 미지의 세계에서 방황하였었습니다. 불계不界에 귀를 기울일 때에 응응 신음하는 당신의 소리만 희미하게 들리는 듯하였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지금에도 당신이 나의 뒤를 따라오는 듯해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곁으로 가고 싶지요만, 당신 있는 그□□로 가기에는 나의 몸이 너무나 가벼워요. 마치 바다에 표랑하는 한 낙엽이 해저에 잠기어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9
소희는 전차에 몸을 실은 뒤에도 그러한 생각만이 그의 머리에 가득하였다. 몇 달 전부터 생각하여 오던 바 흠집 고치는 것을 다시 생각하였다. 흠집을 그대로 두고 어느 때까지든지 그 쓰리고도 비참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소희 자신에 대하여는 도리어 자기의 생을 순화馴化시키는 것도 되었었다. 그리고 항상 어느 동경이 떠나지 않는 것이 생을 의미 있게 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회상할 때마다 그 흠집이 반드시 입을 벌리게 되는 듯하였다. 그래서 오늘에는 이러한 회상과 추억을 자주 일으키는 이 흠집을 차라리 없애버리자는 것이 그의 충동되는 순간의 전부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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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도중에서 차를 내려서 K의원 정형외과에 갔었다. 진찰 받을 수속을 마친 뒤에 환자 공소控所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이름을 불리어 진찰실로 들어갔었다. 의사는 소독약 냄새나는 손으로 그의 목의 흠집을 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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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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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답을 주저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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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에…… 자세히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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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의아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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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러나 그 흠집은 고치기가 좀 어려운데요. 바로 곁에 큰 동맥이 있어서요. 하자면 아주 거창한데요. 그대로 두는 것이 어떠해요? 아무리 고친다 하드래도 감쪽같이는 아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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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그대로 의원 문을 나올 때에 목에 있는 흠집을 바라보고 과거의 비통한 것을 때때로 회상하는 것이 운명같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다시 흠집을 만지며 한숨을 한 번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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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23년 11월 25일
【원문】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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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집 [제목]
 
  이익상(李益相)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23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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