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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젖 ◈
◇ 제3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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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9
홍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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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흰 젖
2
〈제3막〉
 
 
 

1. 1장

 
4
궁중 후원 신단(神檀) 앞.
5
달밤.
6
(공주는 노구메를 드리는 듯 날아갈 듯이 절을 하고 시녀 두 사람은 조금 멀찍이 서서 등롱(燈龍)을 들고 공주를 뫼시고 있다.)
 
 
7
공주    미욱한 인간에 답답한 일이 하도 많아서 거룩하옵신 토함산신 어머님께 이 정성을 드리옵나이다. 어찌하면 좋사오릿가. 어머니 어머님께옵서 거룩하신 영검을 설설 내리여 주옵소서. 사랑이 깊으신 너른너른한 당신의 얼굴을 굽어보이사 이 좁은 가슴의 애 마르는 시름을 거두어 주옵소서. 어머님께옵서는 어찌 차마 이 어린 딸을 애달픔과 괴로운 설움에 그대로 시들어 죽도록 내버리어 두시겠삽나이까. 어찌 차마 이 딸의 죽는 얼굴을 견디어 보시겠삽나이까.
8
하늘을 우러러 목메이는 시름을 하소연 할 길 없사오며 가슴에 넘치는 출렁거리는 설움은 무어라 이름을 지을 수조차 없삽나이다. 이 좁고 여린 가슴은 무엇을 그리워하며 무엇을 슬퍼하며 무엇을 바라다가 두려움에 주저앉아 그대로 우는지오. 그것을 내리 굽어 살피사 시원히 풀어 주실 이는 어머니 한 분뿐이올시다. 그것을 알아주실 이는 어머니 한 어른뿐이올시다.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둘 곳 없는 마음을 찢어질 듯 찢어질 듯 이제는 아마나 소리도 없이 그만 찢어버리였나보외다.
9
깊은 곁 속에 외로운 몸이 그윽히 잠겨 있사오매 아무에게도 사뢸 길 없는 궂은 시름을 눈물에 무저져 설움에 무저져⋯⋯ 이제는 썩다썩다 못하여 곰이 피었소이다. 이 정성을 드리려고 수풀 속의 샘물을 길어올 적에 손 끝에 닿는 가을물이 뼈가 시리게 차건마는 철없는 눈물이 먼저 앞을 가리며 세 번이나 뜬 물을 다시 엎질렀소이다. 샘터 푸서리에 물에 젖어 씻긴 조약돌도 샘물에 씻기어 동글고 희여진 단단한 조약돌도 눈물 어리인 이눈으로 보면은 모두 다 겅성드뭇한 설움의 덩어리일 뿐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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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아침마다 오셔서 어설픈 창틈으로 저의 잠자리를 뒤슬러 보실 때에 저의 고달픈 얼굴에는 얼마나 보기 싫은 눈물 흔적이 어릉졌겠사오릿가. 그 때마다 새로금 수줍은 시름이여. 소우처럼 아침 분세수도 눈물에 무저져 치러버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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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 허 거룩하옵신 어머니 좋은 일일랑 도와주시고 괴로운 궂은 일을랑 한때 바삐 풀어주시옵소서. 깨끗하게 건져 주시옵소서. 남이 알까 두려운 계집애의 설움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사오릿가. 거룩하시고 영검하신 손을 드리시와 이 어린 딸을 붙들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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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 등장)
 
13
내인    아기씨 어디 계시냐.
14
시녀1    (얼른 한 걸음 나서서 손짓을 하며 가만한 소리로) 이 애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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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    (무료한 듯이) 전(殿)마마께옵서 여쭈시는데⋯⋯아가씨 방에 들어봅시고 봄이 늦었는데 어디 가셨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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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1    이 애 그래도 가만히 좀 있거라. 시방 아가시께서 정성으로 노구메를 드리옵시는데⋯⋯. 잠깐만 계시면 이리 내려오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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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    노구메는 왜 드리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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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1    우리도 몰라. 벌써 이레째나 되는데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시랴.
19
내인    그럼 나는 들어간다. 너희들이 잘 모시고 들어오너라.
 
20
(내인 퇴장)
 
21
공주    (걸음을 고이 옮기여 단에서 나려오며) 이 애 시방 누가 왔었니. 목소리를 언뜻 듣건대 이차돈 한사님이 오신 듯하던데 아마.
22
시녀2    아니랍니다. 시방 전마마께옵서 아기씨를 여쭈신다고 중전 내인(中殿內人)이 왔다 갔어요.
23
공주    전마마께옵서 어째.
24
시녀1    아기씨 방에 듭셨더라나요. 그래 밤이 늦었다고⋯⋯
25
공주    그것은 너무나 황송하게 되었구나. 그럼 어서 들어가지.
 
26
(왕비 보도부인(保刀夫人) 내인 둘을 앞을 세우고 등장)
 
27
공주    (맞아 나서며) 어머니께옵서 제 방에를 듭시었더라는데.
28
왕비    (사랑이 넘치는 듯한 목소리로)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니.
29
공주    노구메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30
왕비    노구메를 드리었어? 접때도 네가 노구메를 드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더니.
31
공주    ………….
32
왕비    (사방을 한 번 눈여거 둘러보고 넌짓한 웃음으로) 어 ─ 허 갸륵하고 신통한 우리 딸이 이 나라가 잘 되라는 너의 노구메 정성이로구나. (잠깐 무엇을 생각 하는 듯) 그러나 이제는 네가 이 어미 품에서 벗어 나아가기도 얼마 아니 되겠지.
33
공주    (놀라운 듯) 왜요. (고개를 숙이며) 어떻게 설마 그건 일이 있겠습니까.
34
왕비    (슬픈 듯) 그래도 너는 이제 차차 나에게서 떨어져 갈 때가 되었으니까⋯⋯.
35
공주    어머니 저는 어느 때까지든지 이 궁 속에서만 지내고 싶어요. 아침 저녁 거룩한 검님께 노구메나 드리며 사랑이 깊으신 어머니 품에 싸여 지내는 것이 얼마나 행복된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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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고개를 저으며) 아니다. 너는 이제 시집을 가서 살아야 할 것이다.
37
공주    (애원하는 듯) 어머니 저는 그런 것은 싫어요. 낯설은 시집을 가서 사는 이 보담은 이 궁 속에서 어머니 품에 안기어 이대로 살고 싶어요.
38
왕비    아직 곱고 수줍은 너의 마음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너는 어느 때까지든지 이 궁 속에만 있을 몸은 아니야. 이제는 때가 다 닥쳐왔으니까.
39
공주    어머니 넓으신 사랑으로 아무쪼록 저를 이 궁 안에 두어 주셔요. 토함산 신 어머니께서 이 궁으로 점지해주신 제 몸이라면서 저는 어느 때까지든지 저 신단 앞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대로 살다가 여기서 죽어 서 신단 곁 숲 속에 어느 곳에든지 길이길이 파묻히고 싶어요.
40
왕비    아니 이 궁중살이는 그만큼 했으면 고만이지 너에게는 별다른 운명과 복록(福祿)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까. 아무튼 너는 얼른 저 신단 앞도 떠나가지 않으면 못쓸 것이다.
41
공주    (의아한 듯이) 어째서요.
42
왕비    너는 벌써 나이 찬 시악시가 된 까닭이지. 이제부터 영검스러운 신사(神事)에 몸을 바치기에는 좀 깨끗치 못해졌어.
43
공주    네 ─?
44
왕비    너도 이제 철모른 아기만이 아닌 줄을 내가 벌써부터 알았다. 접때 네가 자리에 누워 정신없이 몹시 앓을 제 나는 언뜻 그것을 보았다. 너의 속옷자락이 더러워진 것을.
45
공주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인다.)
46
왕비    너에게도 이제는 봄이 온 것이다. 온갖 생물이 ○○○ 절로 오는 그 봄철이.
47
공주    ………….
48
왕비    그리 놀라울 것도 없어. 그러나 이 어머 품에서는 저절로 벗어날 때가 되었으니까 그것이 좀 섭섭하다는 말이지. (눈물을 짓는다.)
49
공주    어머니 비옵건대 아무쪼록 제 몸을 어머니 곁에 두어주십시오. 이 궁 속에서 저 신단 앞에서 어머니 품 안에서 저는 정말로 행복되게 살고 있는 몸이올시다. 저의 조그마한 목숨이 붙어 살기에는 여기밖에 더 좋은 곳이 어디에 다시 또 있겠습니가.
50
왕비    아직까지는 그러하였을 터이지. 그러나 이제부터는 여기보다도 더 행복된 곳으로…….
51
공주    제 마음에는 아무 곳이라도 여기보다도 더 좋은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만 같애요.
52
왕비    아니 이제는 너의 임자는 너의 깃들이어 살 따뜻한 보금자리는 다른 곳에 따로 있어서 안가슴을 벌리고 너 오기만 고대 고대 기다릴 것이다. 이궁으로 네 몸이 태어나서 저만치 소담스럽게도 자랐구나. 이 어미 젖을 빨아 먹고 자란 너의 몸은 저만치 미끈하고 헌출해졌구나.
53
네가 이 곁을 떠나기 전까지는 거룩한 신어머니께서 너의 착한 정성을 숫시악시의 숫된 마음으로 드리는 그 정성을 잘 받드사 매양 돌보아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실 것이다. 아니 이 다음에라도 너에게 많은 복록은 그이의 돌보아 주시는 거룩한 은덕이겠지. 그런데 철은 벌써 익어왔구나. 모든 준비는 다 ─ 차리어져 너나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너는 이제 궁 밖 세상으로 인생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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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그렇지만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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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아니…….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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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왜 꼭 그래야만.(눈물이 어리인다)
57
왕비    응 너는 이제 시집갈 나이가 찼으니까 올 시월 상달쯤은 너의 목숨의 은인에게로…….
58
공주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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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그러나 너무 그리 걱정하지는 말아라. 무어 그리 섭섭할 것도 없지. 사람마다 크면은 다 ─ 저절로 어버이의 품을 떠나게 되는 것이니까……. [小間(소간)] 아직 몸도 그리 성치 않다면서……. 밤이 너무 들기 전에 일찍 자거라.
 
60
(왕비 퇴장)
 
61
공주    (왕비를 따라 두어 걸음 걷다가 발을 머물러 잠깐 시름에 쌓이는 듯하다가) 이몸이 어찌 될 것인고, 그것은 어쩐 일일까.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그러나 요사이 뒤숭숭한 꿈자리는 퍽 어지러웠다. 몸이 몹시 고달픈 까닭인가. 이 몸이 깨끗하지 못해지다니……. 아 ─ 무서워. 그런 알 수 없는 일이 별안간 있다니. (얼굴이 붉어진다) 그만 그 남부끄러운 꼴을 어머님께 들키였나보지. 그렇게 조심을 하였건마는…….
62
나에게도 봄철이 왔다고 시집갈 철이 되었다고 아으 무서웁고 남 부끄러워서 어찌하노.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모두 아마 짐작으로 눈치를 채어 알으신 것인지도 모르지. (한숨을 쉰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 살고 싶어. 이 궁에서만 살 몸이야. (무엇을 꿈꾸는 듯한 표정) 저 소리는 저 부엉이 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는 (사방을 휘둘러 본다) 아 그러나 모두 쓸쓸하고 고요한 밤뿐이다. (신단 앞에 꿇어앉는다)
 
63
(이차돈 지나간다)
 
64
(공주 얼른 일어나 몸을 숨기려는 듯하다가 이차돈과 마주쳐 고개를 넌짓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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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비슬비슬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내가 내가 이게 미친 짓이나 아닌가 미친 . 것이나 아니야. 어째 이럴까. 어째 이럴까. 도무지 말할 수도 없어. 알아 줄 이도 없어……. 그러나 아니로다. 신어머니께서는 알아보신게로다. (무릎을 꿇어앉으며) 어찌하면 좋사오릿가. 저는 저는 좋은 꿈자리를 보았습니다. 어머니 앞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보오매 까닭없이 이 가슴이 두근거리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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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들은 어리둥절해 섰다.)
 
 
 

2.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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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전(便殿)의 일실(一室).
69
첫가을밤, 화려하고도 장엄하게 꾸민 실내, 사방에는 모두 고운 발을 드리었고 정면에는 내정(內廷)의 화초가 달빛에 어렴풋이 보인다. 방 가으로 네개의 용트림한 등롱에는 옥등잔의 향유가 밝고도 고요하게 불이 붙는다. 중앙에는 대왕의 침상이 놓여 있고 그 앞에 조그만한 향로에서는 향연이 소로르 떠올라 꿈나라를 이루는 듯.
70
(침상에는 대왕과 왕비가 앉았고 발 밖에는 내인 두어 사람이 뫼시고 있다.)
 
 
71
     나는 근심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매 될 수 있으면 그리 변변치 않은 걱정거리는 이르지도 마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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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그렇지만 아기의 일로 해서 허튼 걱정이 모진 잠들기 전에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습니다그려. (한숨을 쉬며) 그 애의 매양 시름에 쌓인 얼굴을 여겨 보면 아직도 앓던 몸이 그리 성하지도 못한 모양이예요. 어떤 때는 아무 풀기 없이 그저 넋을 잃고 앉아서 가슴이 답답한 듯이 가벼운 한숨도 쉬이며 두 볼에는 눈물 흘린 흔적이 가끔 보이니 그것이 어쩐 까닭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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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4
왕비    아마 모진 병에 너무도 시달리어서 파리해 그러한지요. 또 그리고 그 애가 본디부터 천품이 고요하고 안존하여서 몸이 고달플수록 그것을 너무 아마 혼자만 속에 넣고 근심을 하여서 그러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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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요. (혼자 무슨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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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그러니 시방 한창 꽃봉오리처럼 되어 울울 고비에 그만 모진 병에 쪼들리어서……. (한숨을 쉰다) 그 애가 벌써 열여덟이니 그만 나이면 마음이나 몸이 오죽이나 곱게 부러울 때예요. 그렇건마는…… 고은 얼굴을 다스리지도 않고 흩뜨러진 머리를 거두칠 줄도 모르고 다만 이 어미 말에 못 이기어서 되는대로 그 옷매무새나마 억지로 억지로 차리고 있나 보아요. 그러니 그 가는 허리는 가벼웁고 엷은 김치마 하나 걸치기에도 너무나 무거워서 견디기가 어려운 듯 참으로 애처로워서 못보겠어요. [小間(소간)] 그러니 그것이 필연 몸에 탈이 난 것이 아니면 곧 마음속에 깊은 병이 들은 모양인데……. 몸의 병을 고치느라고 마음속에다 큰 병을 들리어 주었다면…….
77
     (이상한 눈으로 왕비를 언뜻 노려 보고 다시 고개를 숙이여 잠잠하다)
78
왕비    그래서 이 어리석은 소견에는 무엇으로든지 그 애의 마음을 좀 즐겁게 해줄 것이나 없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다 못하여서 저번에 약고 헌출한 아기 내인들을 모야 패를 지어서 즐거운 이야기도 하며 재미스럽게 놀아보라고 그리했더니만 그러나 그것도 그 애의 시름겨운 마음을 풀어주는 데에는 아무 소용도 없던가 보아요.
79
     (한숨을 쉬며) 그러니 흔적도 없고 자취도 없어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는 마음 속에 든 병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겠소.
80
왕비    그렇지만 제 생각 같아서는 아기의 몸이 조금만 더 소복이 되거든 하루바삐 훌륭한 사위를 맞아 비둘기같이 쌍으로 알뜰하게 지내이는 꼴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도 늦게 금두꺼비 같은 외손자 하나 얼른 보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웃던 얼굴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른 다시 한숨을 쉬며) 이 몸이 허물이 많은 탓인지 하늘이 주신 씨앗이 다만 딸형제에 그 중에도 그 애기는 토함산에 빌어 얻은 막내둥이로 마음은 아들만 못지 않게 두굿기는 그것이건만…….
81
     훌륭한 사나이 그것은 또 얻어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82
왕비    왜 저번에 벌써 이차돈 한사로 간택을 해두옵셨다면서……. 더구나 그 사람은 내물 마립간님의 후손이요. 습실갈문왕(習實葛文王)의 증손이니 겨레도 가까운 성골로 우리 아기의 남편이 되기에도 가장 마땅하오며 또 상감마마께옵서도 깊이 믿고 사랑하옵시는 신하라면서…….
83
     그야 좋기야 좋지. 그러나 시방은 나라에 일이 가장 많은 때이매 이차돈은 아직 좀 더 훌륭한 일을 한 뒤에라도 그리 늦지는 않을 것이요.
84
왕비    그렇지만 아기의 몸을 보아서…….
85
     묻건대 이차돈이가 아직 나이는 어려도 그 그릇이 우리 아기의 몸 하나만을 건져주기에는 너무도 크니까.
86
왕비    그렇지만 아기는 우리의 혈육이 아닙니까.
87
     아니요 그런 . 말은 마시요. 이 나라에는 우리 아기보다도 더 애처로운 신세에서 울고 있는 우리의 아들과 딸이 퍽 많이 있소. 나는 항상 그것들이 눈에 밟히어서.
88
왕비    더구나 알공인가 하는 사람은 아기의 일로 말미암아 이차돈 한사를 몹시 시새워하고 미워한다는데요.
89
     나도 그런 일은 벌써부터 짐작해 알았오.
90
왕비    그러면 시방이라도 곧 사정부령(司正府令)에게 분부를 하셔서 알공을 잡아 죄를 주도록 하시지요.
91
     아니요. 그런 일은 할 수 없지요. 더구나 이 나라의 법은 그렇게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니까. 도리어 나는 밝은 아침만 되면 알공으로 사정부령을 시키겠소.
92
왕비    (놀라서) 그것은 어째서.
93
     거기에서 내가 훌륭한 사람을 밝혀보려구요.
94
왕비    (어안이 벙벙해 앉았다가) 그래도 만일 상감마마 천추만세(千秋萬歲) 뒤에는 이 나라를 이차돈 한사에게 내려주실 것이 아닙니까.
95
     그야 그보담 더한 것이라도 줄 수만 있으면 주고 말고.
 
96
(내인 우편에서 등장)
 
97
내인    내사 사인(內史舍人)이 들어왔습니다.
98
     이리 곧 들어오라 해라.
 
99
(내인 우편으로 등장)
 
100
     내가 아까 이차돈이를 조용히 부른 일이 있는데…….
101
(왕비 좌편으로 퇴장, 이차돈 우편으로 등장해 침상 앞에 부복)
102
     일어나 편히 앉으라. 이 늙은이의 잠 아니오는 근심스러운 밤이 너무도 외로워서 이야기 동무로 너를 오늘 부른 것이다.
 
103
(이차돈 공손히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는다.)
 
104
     요사이 밖에는 별 일이나 없는지.
105
이차돈   별로 큰 일은 없는가 하옵나이다.
106
     아도 화상이 천경림에 그저 잘 있는지…… 너는 더러 만나보았느냐.
107
이차돈   자주 만나보나이다.
108
     이 나라의 백성들이 이제는 불법(佛法)으로 돌아가려 하는 이가 더러 있는지.
109
이차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미욱하고 완악한 사람이 많사와 아직도 깨달은 이가 적은 듯하오며 더구나 이 나라의 율법이 깨달은 이를 못 견디게 구오매 그로 말미암아 뜻 있는 이 가운데는 더러 눈살을 찌푸리어 걱정하기를 마지 않는 이가 보오이다.
110
     그것도 모두 나의 밝지 못한 허물이로구나.
111
이차돈   아니로소이다 폐하께옵서는 . 지극히 거룩하옵시건마는 아래에 있는 저희들이 성지(聖志)를 도무지 받들어 받을 힘이 없사오니 그 큰 죄가 작은 몸을 둘 사이 없사옵니다.
112
     어허 이 몸도 이제 반나마 늙었으니 얼마 아니 있어 내가 죽은 뒤에 이 나라를 맡아 다스릴 만한 이가 누구일꼬. 슬하에는 쓸만한……. (눈물을 지운다.)
113
이차돈   동궁은 아직 비어 계옵시지마는 입종(立宗) 같으신 가장 친근하옵신 성골(聖骨)께옵서 계옵신데요.
114
     아니 그 사람은 내 아우이지마는 그칙하지 못하니까 이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네가 나이는 아직 어리나 나는 너 한 사람만을 깊이 믿고 또 마음에 든든히 여기고 있다. 그래서 너를 오늘도…….
115
이차돈   (물러 앉아 자리에 엎드리며) 소신은 그저 어리석은 지아비일 뿐이로소이다. 한 나라의 크낙한 그릇을 어찌 바꿀 길이 있사오릿고.
116
     아니다. 그러하지 말고 일어나 앉아서 내 말을 자세히 들어보라.
 
117
(이차돈 일어나 앉는다)
 
118
     그러나 이 나라 백성들의 마음은 아직 너에게로는 돌아가지 않고 도리어 알공 같은 사람에게로 쏠리는 모양이지. (한숨을 쉬며) 그러기에 여러 사람들이 모두 알공의 말과 일에만 두둔을 하지. 너의 옳은 말에는 모두 헐며 뻗서기만 하고…….
119
이차돈   그것은 진실로 소신이 잘 나지 못한 탓이겠삽지요. 소신도 알공은 뜻있고 훌륭한 사나이인 줄로 아옵나이다.
120
     그러기에 말이다.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뜻한 것은 아니나……. (이차돈의 눈치를 자세히 살피며) 저번에 공주의 병을 고치어 준 공도 너에게 큰 줄은 번연히 알겠지마는 여러 사람의 우김에 어려워서 그만…….
 
121
(멀리서 내인들의 이차돈을 찬송하는 노래 소리가 들린다.)
 
122
     너, 저 소리를 들어 알겠느냐.
123
이차돈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124
     저 소리도 아마 알공을 기리는 공주와 내인들의 노래 소리일 것이다.
125
이차돈   놀라웁고 (불안하고 또 의아한 듯이) 알공을……. (다시 불안한 빛에 싸인 얼굴을 숙인다)
126
     (빙긋 웃으며) 왜 너도 저 소리가 듣기 싫으냐. 나만 그런 줄로 알았더니.
127
이차돈   네 ─ (얼른 힘없이) 그러나 아니올시다. 소신도 알공을 깊이 믿고 사랑하오며 또 두터히 기리고 있삽나이다.
128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할 터이냐. 너의 공로를 남에게 앗기었어도…….
129
이차돈   이 나라를 다스리는 공변 되인 일에 만일 크게 언짢거나 또는 좋은 일이 있다 하오면 소신의 가슴에는 다만 죽음과 충의만이 있고자 할 따름이로소이다.
130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너에게 그러한 훌륭한 기개가 있는 것은 나도 익히 잘 아는 바이다. 그러나 그러한 충성도 무엇에 쓸 데가 있어야 하지……. (한숨을 쉬며) 시방 우리 나라의 형편을 자세히 살피어 보아라. 남들은 모두 하늘 아래의 온 땅이 좁다고 한창 날뛰는 이 판에 우리는 그들의 가랑이 아래로 기어들고 헛발길에 뒤채어 소리도 못 지르고 엎드려만 있으니……. 가엾게도 제 몸을 파묻을 무덤 구덩이만을 후비적거리기에 가장 바쁜 셈이지. 우리가 이렇게 못난 짓만 하는 것이 그 허물이 남에게 있느냐. 우리가 매여 있다는 저 ─ 높은 하늘 위의 몸별에 있는 줄 아느냐. 아니로다. 그런 것이 아닌 줄은 나는 벌써부터 깨달아 알았노라. 그것은 그것은 그 몹쓸 어둠의 덩쿨이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깊이 뿌리를 박아 서리고 있는 까닭이 아니냐. 홍 알공과 이차돈, 신라와 고구려, 백제 그것은 다 ─ 무엇이냐. 사람으로서 무엇이 다를 것이 있으며 나라로서 또 무엇이 다를 것이 있으랴. 어허 시세(時勢)여. 너는 동친 막대가 되어 있구나. 어허 계림이여. 너에게는 영매(英邁) 과감한 위인의 핏줄이 이제 그만 끊어져 버리었느냐.
131
이차돈   상감마마 (무슨 감격에 가슴이 북받쳐 막히는 듯 눈물을 지우며) 폐하께옵서 소신을 이다지 믿고 사랑하옵심을 어찌 감히 모를 길이 있사오릿고. 폐하께옵서 감추어 두옵신 큰 뜻을 이로 듣지 않사은들 어찌 모르리잇고, 죽사와도 폐하의 거룩하옵신 그 뜻을 어김이 없겠나이다.
132
     고마웁다. (눈물에 어린 기꺼운 얼굴로) 너는 참으로 착한 신하이다 다만 . 한사람뿐인 나의 신하이다. [小間(소간)] 그런데 이 나라를 잘 다스리자 하면 어찌하여야 좋을고. 나의 생각 같아서는 하루바삐 부처님의 거룩한 도를 모시어 들이고 싶은데…….
133
이차돈   (다시 자리를 잡아 앉으며) 그러하올시다. 이웃의 먼저 깨어 억세인 나라와 사귀려 하와도 그것이라야 하겠삽고 미욱한 백성들을 일깨워주려 함에도 그것이라야 하겠삽고 마음을 밝게 깨우쳐 사람을 어질도록 가르침에나 모든 것을 가미로웁게 하고자 하옴에는 모두 가미로웁게 하고자 하음에는 모두 가 시방에 있어서는 첫째로 그 거룩한 것이 아니면 아니 될 것 같사옵니다.
134
     그리고 또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영검스러운 일이나 고마운 신세나 간절한 소원으로 보아서도 내가 몸소 나아가 그 거룩한 일을 이룩해야 하겠다마는 내 앞에는 완악한 신하들이 많아서 모두 나의 뜻을 못 알아주고 제 욕심껏 제 고집껏 제 심술껏 뻗서고 헤살만 놓으니 어찌하면 좋을고.
135
이차돈   소신이 때로 근심 빛에 어리인 용안을 쳐다 뵈옵고 또 이 나라의 가리잡을 수 없이 어지러워진 정사를 그윽히 생각하오매 저절로 북받히는 핏줄이 좁은 가슴을 막사오며 나닿는 주먹이 둘 곳이 없사와 하염없이 솟치는 뜨거운 눈물에 앞 일이 캄캄해 보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로소이다. 그러하오나 이 철없고 미욱하온 소견에도 보고 깨우친 것이 있사오매 다만 한 옆으로 든든하옵고 반가운 느낌이 가득하와 스스로 옹친 마음이 풀리옵고 넌지시 조바심하던 가슴이 늣구어지옵는 것은 황송하오나 크게 거룩하옵시고 지극히 거룩하옵신 상감마마께옵서 높은 자리에 계옵시니“계림에 성군이 나옵셔서 크게 불교를 이룩하리라” 하옵던 고도녕(高道寧)의 이른 말이 이제와 바로 맞는 줄로 깊이 믿사옵고 또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136
     그러나 뜻은 있으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너무도 답답하고 안타까웁지아니하냐.
137
이차돈   옳소이다. 그러하옵기에 소신의 어리고 못난 소견에도 매양 저어하옵는 바는 황송하오나 폐하의 마음 두심이 너무나 인자하옵신데만 흐르심이 아닐까 하옵나이다. 너무도 아끼시는 게 많으시와 작은 것을 아끼시옵다가 크게 아끼시옵는 것까지 잃기 쉬웁사오며 너무도 사랑하심이 지나치시와 적은 일을 사랑하옵시는 동안에 많은 일을 그르치시올까 두려하옵나이다. 손싸게 부싯불 치듯이 하셔야 하옵실 일에도 인정에 끌리시와 내어놓은 걸음을 도로 물리어 머뭇거리옵시니 크옵신 뜻과 거룩하옵신 마련은 비록 많으옵시나 그것을 이룩할 만한 억세인 힘과 모질으옵신 마음이 적으옵심을 그윽히 슬퍼하옵나이다.
138
     그러면 어찌하여야 좋을고.
139
이차돈   첫째로 이룩해야만 할 일에는 하루 바삐 이룩하옵시고 끊어내 버려야만 될 마디에는 얼른 쉽사리 끊어버리시옵소서. 이 나라 백성들의 암치뇌옥(闇癡牢獄) 얽매인 쇠사슬을 풀어 주옵시려거든 먼저 폐하의 애린(愛隣)에서 헤매이시옵는 번뇌의 철성(鐵城)부터 무너버리시옵소서. 사랑하옵시는 공주 아기씨에게라도 못 끊을 정 끊을 것이옵거든 얼른 끊어버리시옵고 깊이 미워하시는 알공도 긴히 불러 쓰실 일이옵거든 고대 불러쓰시옵고 이 나라에서는 그리 영검하옵다는 밝수의 무리들도 이제는 쓸데없어 흩어버릴것이면은 곧 흩어버리시옵소서. 모든 것을 굳세이게 끊어 맺으시옵는 본보기로 소신의 이 모가지라도 버혀 버리시어야만 되올 일이옵거든 시방이라도 냉큼 잘라주시옵소서. (열에 띤 눈물을 씻으며) 그리고 밝는 아침이라도 폐하의 거룩하옵신 뜻대로 천경 수풀을 치고서 큰 절을 이룩하시옵소서. 폐하의 뜻대로 고도녕의 말대로 백성의 마음대로 검님의 알음짱대로…….
140
     (잠잠히 생각하는 듯) 그러나 신하들이 또 벌떼 일어나 듯 하여 어근목을 쓰며 잔소리들을 하면 어찌하노.
141
이차돈   폐하께옵서 옳게 보옵신 일이오면 못하올 것이 어디 있사오릿고. 만일 누가 무어라 지껄이오면 그 때는 소신이 목숨을 놓고 싸우더라도 반드시 옳고 바른 말로 겨루고 대답하여 위로는 폐하의 거룩하옵신 뜻을 이루도록 하오며 아래로는 일만 사람이 다 ─ 돌아와 항복(降服)하도록 하겠삽나이다.
142
     아니다. 더구나 네 몸은 시방 그러한 짓을 할 때가 아니다. 그들은 본디가 완악하고 미욱한 짐승들이거든 너를 도리어 죽이어 없애일지언정 어찌 그리 쉬이 감화될 리가 있겠느냐.
143
이차돈   폐하께옵서 두굿기시옵는 거룩하옵신 사랑으로 소신에게 큰 믿음을 주옵시며 끝까지 굳세인 힘을 주옵시며 바르고 착한 슬기를 주옵시면 모르옵건대 소신의 이 몸과 목숨은 나라 일에 바친 지 이미 오래 오매 반드시 삶이 있지 아니하면 죽음이 남아 있어 기다릴 따름이로소이다.
144
     그러나 까닥 잘못하면 너의 목숨만 공연히 잃어버리는 일이니 [小間(소간)] 안될 말이지. 더구나 나의 뜻은 본디 여러 사람에게 이익하게 하고자 함이어 늘 도리어 어찌 아무 허물 없는 너만을 죽이는 일을 일부러 할까 보냐. 더러는 네가 비록 큰 공덕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름지기 죽음을 피하는 이만 같지 못하니라.
145
이차돈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대로 버리기 어려운 것이 이른바 목과 목숨이라 하옵지요. 그러하오나 시방 소신의 몸이 저녁의 죽음으로서 거룩한 도가 이튿날 아침에 행한다 하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사오릿가. 그 때는 밝은 빛이 온 나라 땅에 뻗칠 것이오며 폐하께옵서도 길이길이 만복을 누리시올일이 아니겠사오릿고. 그 적이 비록 소신이 죽는 날이라 이르오나 도리어 영생으로 다시 살아나는 때라고 반기겠삽나이다.
146
     (침묵에 쌓였다가 별안간 감격과 환열에 띠어 상에 내려 이차돈의 손을 잡으며) 어허 갸륵한 넋이여. 나는 너와 같이 어진 신하를 얻었으니 이제 죽더라도 유한(遺恨)이 없겠다.
 
147
(왕과 이차돈 기쁨과 눈물 속에 어른어른 침침하던 등잔불은 새로이 밝게 붙는다.)
 
 
 

3. 3장

 
149
황혼 수풀 곁 영천(靈泉).
150
우물 둔덕에는 깨끗한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151
(사시와 촌부 둘은 물을 긷고 있고 늙은 과부 한 사람은 돌무더기를 향하여 절을 하고 있다.)
 
 
152
과부    (손을 비비며) 정성이 지극하면 죽었던 낭군도 다시 살아온다 하옵기로……. (일어나 절을 한 번 하고 공손히 돌 하나를 집어 돌무더기 위에 올리어 놓고 퇴장)
153
촌부1    아이 망측스러워라. 늙은이가 그게 무슨 짓이야.
154
촌부2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사철 젊어서…….
 
155
(일동 웃는다)
 
156
촌부3    그래도 젊은 가시내가 한창 놀아나 너털 웃음에 엉덩이짓만 하고 다니는 이보다는 퍽 낫지요 무얼…….
157
촌부1    (웃음 띤 눈으로 사시를 여기어 보며) 참 저 색시 얼굴은 퍽도 어여뻐. 좀 더 곱게 다스려 몸꼴만 냈으면 나라님께서 원화(原花) 아가씨로 모시어 가겠어.
158
사시    에그 그 지겨운 원화 나는 싫어요. 그 극성인 풍월(風月)님네들 등쌀에 어떻게 베기게요.
159
촌부2    참 우리집 골목 안 막다른 집 시악시의 이야기 더러 들어보았소.
160
촌부3    (고개를 저으며) 못 들었어…….
161
촌부1    왜 어느 풍월님을 따라서 고을 살러 갔다면서요.
162
촌부2    글쎄 말이오. 그 풍월님이 몹쓸 사람이던게야. 아마 그이에게 속아서 갔다나 보던가. 처음에는 너무도 곱다고 칭찬하고 추어주는 바람에 시악시가 그만 반해 따라간 것이…… 풍월님은 고만 중이 된 까닭에 고을사람들한테 맞아 죽었대요. 그리고 그 색시는 중놈하고 산 계집이라고 얼굴에도 똥칠을 해 이 고을 저 고을로 끌고 다니었다던가 그만 아침 이슬에 피었던 꽃이 하루밤 된서리를 맞아 스러진 셈이지.
163
사시    아이 가엾어라.
164
촌부3    가엾어요? 가엾기는 무엇이 가여워. 도리어 재미있게 고소하지. 한창은 너무도 미쳐서 저녁마다 삼을 잇다가도 저의 어머니의 조는 틈을 타서 울을 넘어 도망질을 해가지고……. 그럴수록 저의 어머니는 더 기강을 부리며 딸을 붙들어 가두느라고 애를 쓰겠지. 그 계집애는 건달에게 넘어져서 죽을둥 살 둥 모르고 허덕지덕 야단인데. 그래 울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뒷곁 엎주거리에다 날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노구메 정성을 들이더라나. 아이 참 우스워서……. 그러더니만 그 ─ 예 중놈 서방을 해 간 셈이야. 그나마라도 끝이나 좋았더면.
165
사시    왜 중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요. 이 서울에는 나라에서도 절을 다 ─ 짓도록 마련을 하신다는데요.
166
촌부1    여기는 그래도 서울이니깐 그렇지요. 시골서는 아직도 그런 것을 보면은 이를 갈고 길쌈 싸가지고 쫓아다니며 못살게 군답디다.
167
사시    아이 밉살머리스러운 사람들도 다 ─ 많지. 그게 온 무슨 짓이야.
168
촌부2    저 아기는 중놈한테로나 시집을 보내야하겠군.
169
사시    (부끄러운 듯 얼른 고개를 숙인다)
170
촌부3    (촌부2에게 얼른 눈짓을 하며) 그러기에 세상이 낭이라 이르지요.
 
171
(촌부들은 물동이를 이고 퇴장)
 
172
사시    (한숨을 가볍게 한 번 쉬며) 몹쓸 사람들도……. 남의 궂은 일에 그리 고소할 것이 무엇인고. (돌무더기 앞으로 가서 사방을 한 번 휘휘 둘러본 뒤에 돌 하나를 집어 돌무더기 위에 올리어 놓고 공손히 절을 하고 엎드려 빈다) 그이의 몸에 온갖 궂은 일일랑 물리쳐 주시옵고 시방이라도 한 번만 만나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173
(이차돈 수풀 뒤의 길로 등장)
 
174
사시    한 번이라도 좋사오니 다만 꿈결에라도.
175
이차돈   (돌무더기 뒤에 가만히 서서 보다가 빙긋 웃으며) 그래라 너를 만나 보게 하여주마.
176
사시    (깜짝 놀라 일어나며) 어메나.
177
이차돈   (웃고 나서며) 누구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서 애를 쓰노.
 
178
(사시 부끄러운 듯 반가운 듯 가슴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인다.)
 
179
이차돈   그래 여기에서 무얼 하누. 외따르고 후미진 이런 곳에서. (물동이를 보고) 물을 긷나.
180
사시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덱끄덱하며 치마끈을 입에다 문다)
181
이차돈   너를 이런 데서 만날 줄은 몰랐구나.
182
사시    저는 퍽 그리웠어요.
183
이차돈   벌써 닷새 전부터 대궐 안에 바쁜 일이 있어서 나와 보지도 못하고 이제서야 아도 스님을 뵈오려 가는 길이야. 저 달이 반달 적에 너와 헤어졌더니 벌써 그 동안에 온달이 되도록 둥그렀구나.
184
사시    그러믄요. 벌써 가을이 들었는데요. 요사이는 밤새도록 뜰 앞에 귀뚜라미 소리가 사람마다의 얕은 꿈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185
이차돈   나도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나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던고. 그러나 나라에 바친 몸이매 바쁜 일에 쌓여 밤낮 눈코 뜰 새도 없었으니.
186
사시    저도 뵈옵기는 싶으면서도 그런 줄을 알고 공연히 기다리다 기다리다 이제는 기다리지도 않는답니다. 아무쪼록 나라 다스리시는 데 거룩한 일을 많이 하셔요.
187
이차돈   너의 부탁은 고맙다마는 나에겐 그만한 힘이 이로 미치지 못할까 보아 두렵구나.
188
사시    저는 요사이 아무 생각도 아니하고 지낸답니다. 아따금 바람결의 쓰르라미 소리를 좇아서 버들숲 속 길로 멋없이 돌아다니어 보기도 하고 축동 저쪽에 흰 말 그림자가 눈에 번득 띠일 때마다 저는 한사님인가만 여겨 몇 번이나 가슴이 울렁거리었는지요.
189
이차돈   그것은 너무나 고마웁고도 가엾구나. 그러면 이제 들어가지 또 스님도 뵈어야 하겠으니깐.
190
사시    그러면 어떻게 하게 또 오랫동안 못 뵈올 것을.
191
이차돈   잠깐 머뭇거리다가 (돌무더기 앞에 앉으며) 그럼 여기서 잠깐 놀다가 갈까.
192
사시    지나가는 사람이 보지나 않을까요.
193
이차돈   무어 없겠지. 또 누가 본들 어떠할라고.
194
사시    달도 참 밝기도 하지. 나는 그 동안에 얼마나 그리워하였을까. (안는다)
195
이차돈   어 ─ 바람도 시원코야. 거칠은 겨울 벌판과 같이 쓸쓸하였던 가슴에 금방 거룩한 샘물을 들이붓는 듯하구나.
196
사시    어 ─ 허 ─ 무엇이라 말을 하면 좋아요. (저의 가슴을 껴안는다)
197
이차돈   (혼잣말처럼) 아무 소리나 되는대로 지껄이어도 다 ─ 좋지. 거칠어 빠진 돌무더기 언덕에도 한 줄기의 거룩하고 좋은 샘물이 있어 목마른 목을 축이어 주니 아무러한 소리라도 가슴이 터져나오도록 마음껏 질러보아도 좋지. (다리를 뻗고 앉는다)
198
사시    여보셔요. 거기 그렇게 앉지는 마셔요. 그 고운 옷에 흙물이 들면 어찌합니까.
199
이차돈   아무려면 어때. 너와 이렇게 앉아 즐겁게 이야기하는 동안에 더러 더럽히는 옷이라면…… 또 더러워졌으면……. 만일 이 옷이 더러워 못입게 되걸랑 네가 저 샘물을 떠 깨끗하게 빨아나주렴.
200
사시    빨아드리기는 어렵지 않으나 그 옷이 헤지면 어떻게 하게요.
201
이차돈   그것까지야 걱정할 것은 없다. 나는 도리어 너의 그 어여쁘고 고운 손이 헤어지지 않을까 저어할 뿐이다.(사시의 얼굴을 건너다 보며 빙긋 웃는다)
202
사시    왜 그렇게 저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셔요. (아양을 부리어 손짓을 하며) 그렇게 보지 마셔요. 저는 오늘 머리도 빗지 않았는데요. 그 귀걸이도 시방은 물 길러 나오느라고 집에 떼어 두었는데…….
203
이차돈   그래도 너는 어여쁜 각시다. 이 나라에서는 제일 곱다고 이르는 원화들보다도 더 고운 선녀이다. 골안개에 피어난 무궁화 너는 우리의 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이 가꾸어 준 어여쁜 꽃이다. 아가씨야 왜 이렇게 고개를 넌지시 숙이기만 하니. (사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204
사시    점잖은 한사님게서도 이렇게 손잡손을 다 하시나요.
205
이차돈   손잡손이 아니라 삼단 같은 너의 머리가 퍽 소담스럽구나. 이 귀밑머리까지 내 손으로 다 풀어줄까.
206
사시    몸을 모로 (피하는 듯) 아스셔요. 아스셔요. 그것은 아스셔요. 귀밑머리는 풀지 마셔요.
207
이차돈   (열적은 듯이 멀쑥해 앉으며) 왜 내가 너의 그 머리를 풀어줄 만한 임자가 못될까 보아 그러니. 시방이라도 너의 집에 가 너의 어머니와 오라버니께 말씀을 여쭈며 그들도 아마 나의 말을 뻗서지는 않으실 터이지. 그래 네가 이 한사 이차돈의 아내가 된다 하기로 무엇이 그리 언짢을 것이 있을까. 설사 너의 집에서는 말을 듣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208
사시    ………….
209
이차돈   왜 아무 말도 아니 하니. 나의 지껄이는 소리가 듣기 싫으냐.
210
사시    아니요. 당신의 말씀이 고마웁기는 하지만.
211
이차돈   그래 어떻단 말이냐.
212
사시    저는 어느 때까지 이대로 있고 싶어요.
213
이차돈   어째서 나는 그래도 네가 나의 이 뜻을 들으면 무척 반가워 할 줄만 알았었구나.
214
사시    반가웁기야 너무도 반가웁지요마는……. 그러나 저는 어느 때까지든지 허락지 않은 시악시의 몸 이대로 그냥 있고 싶어요.
215
이차돈   그것은 너무나 꽃다웁다 못해 안타까운 일인데.
216
사시    ………….
217
이차돈   네가 만약 좋다고만 하면 저 달재에 대궐터를 빌어 비둘기장같이 새집을 짓고 서른 새의 고운 깃으로 너를 입히고 좋은 구실 좋은 노리개를 모두 장만해주마. 온갖 좋은 보물을 얻어 너를 차리어 주고 너를 꾸미어 주마. 뒷곁에는 업죽가리 하나 만들고 그 앞에는 꽃도 심고 그 꽃이 필 적에는 네가 노상 잘 부르는 그 길쌈 노래도 불러 보잤구나. 네가 즐기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만들어주지.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신세도 끼치지 말고 참견을 받지도 말고 홀가분하게 우리 단 둘이만 즐겁게 지내잤구나.
218
사시    저 같은 것을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219
이차돈   그러면 나하고 시방 같이 가면 어떨고. 이 나라에서는 처음 될 만한 크낙하고도 훌륭한 혼인 잔치를 차리고서 너를 맞이해 가지.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처럼 삼월삼짓날 꽃말이처럼. 어 ─ 허 ─ 그 때 너는 얼마나 어여쁜 새색시가 될꼬. 나는 그것이 보고 싶구나. 너의 집이 그 무명옷이 싫거든 이 나라에서 제일 호사하는 원화(原花)의 옷을 입히어 주마.
220
사시    그처럼 저를 생각해주시는 것은 도무지 어떻다 말할 수 없이 고맙고 기쁘지마는…….
221
이차돈   그것은 또 무슨 소리야.
222
사시    아니야요. 저도 한사님을 모시고 그런 살림살이를 하고 싶기는 퍽 하지만은 그렇지만 저는 어떻든 이대로 그냥 이 천경(天鏡) 수풀 속에서 살다가 스러질 목숨일 줄만 여기어요.
223
이차돈   어째서.
224
사시    글쎄 어째 그럴까……. (고개를 숙이며) 그것은 저도 모르겠어요.
225
이차돈   (답답한 듯이) 이 애 그것은 네가 나를 골리려고만 하는 소리로구나.
226
사시    제가 이렇게 그런 훌륭한 살림살이를 할 수 있는 몸이겠어요. 시방 말씀은 모르건대 실없는 희롱으로 저를 놀리어 보고자 하시는게지요.
227
이차돈   허 ─ 허 이것은 또 무슨 소리야.
228
사시    무얼 그렇지요. 이리저리 속이시다가 저를 모르는 곁에 떠다밀어 진창에 빠져 우는 것을 보고 웃으시려구.
229
이차돈   (무의식하게) 그럴리야 있나.
230
사시    무얼 요사이 풍월님네들이 거진 다 ─ 그렇다는데요. 귀여워하고 추어만주니깐 계집애들은 금방 반해 덤비지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만 모르는 결에……. (한숨을 쉰다)
231
이차돈   아무튼 너는 똑똑한 시악시이다. 그러나 어느 몹쓸 풍월님이 그리 거짓말을 잘 하는 실없고 사나이였던고.
232
사시    귀밑머리가 다 ─ 이렇게 풀어졌으니 어떻게 해요. 어머니가 보시면 또 꾸지람하시겠내. (방긋 웃는다)
233
이차돈   그것은 참 매우 안되었구나.
234
사시    괜찮아요. 도섭스럽게 온 별 말씀을.
235
이차돈   가뜩이나 믿지 못하는 사나이가 그런 짓을 해놓아서.
236
사시    (이차돈의 침울한 마음을 농치어 주려는 듯이 아양성 있는 웃음의 얼굴로) 그렇지만 안뵈을 동안에는 그리웁고 믿음직한 어른은 한사님뿐이야요. 노상 너그러웁고 탐탐하신 우리 한사님. 한사님은 아마 나밖에도 더 좋은 동무가 퍽 많으시지요. 나보다는 무척 재미도 있고 또 어여쁜 가시내들이.
237
이차돈   그런 말은 또 어째 별안간…… 까닭없는 시새움. 그것이 널로 하여금 이 세상에 약은 아가씨를 만드는 것이로구나.
238
사시    (어린 애처럼) 그럼 그런 말은 묻지 않는 것입니까.
239
이차돈   아니 그런 것도 아니지만……. [小間(소간)] 아무튼 묻고 싶으면 묻는 것이지 어떻든 그따위 이야기는 재미 없으니 이제 고만 두자. (딴 말을 하려고 일부러) 그래 내가 먼 발치로 올 때에 네가 먼저 나를 알았을까 내가 머저 너를 보았을까.
240
사시    (한숨을 쉬며 힘없이) 그것은 자세히 모르지만 저는 말타고 다니는 이만 보면 모두 한사님만 여기어 가끔 속으니까요.
241
이차돈   아까는.
242
사시    저는 모르게 오시고도……. (원망하는 듯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243
이차돈   그렇게 그리워하는 너에게 내가 여러 날 보이지 아니해서 너무 안 되었다. 더구나 접때 내가 갈 때에도 아무 말도 없이 섭섭히 고만 달아나버려서.
244
사시    무얼요. 그 때도 한사님 가시는 것을 일부러 숨어 지켜 보았답니다. 다 ─ 가셔서 안 보이시도록…….(김의 풀을 뜯어 치맛자락에 감아 쥐고 입 안의 소리로 무슨 푸념을 하는 듯)
245
이차돈   그것은 무엇을 그러니.
246
사시    아니야요. 손잡손이지요.
247
이차돈   손잡손.
248
사시    아니예요. 보시지 마셔요. 또 놀리며 웃으시려고.
249
이차돈   무엇을 그리 입으로 중얼거리니 무슨 푸념이야.
250
사시    여보셔요. 제가 정말 이뻐요 미워요.
251
이차돈   이쁘고 말고. 이슬 머금은 무궁화송이 같이 이쁘다는 밖에.
252
사시    (혼자 푸념으로) 이뻐 미워 이뻐 미워.(이차돈을 웃으며 돌아보고) 저 나도 당신이 퍽 이뻐요.
253
이차돈   그렇지. 그 영검스러운 김의 풀을 빌어 나는 네가 그리웁고 너는 내가 그리운 것을 하소연한다. 우리 둘의 목숨을 그 가느다란 한 오리 김의 풀에다 매어달고.
254
사시    (가슴에 손을 대고 힘없는 소리로) 저는 별안간 가슴이 두근거려져요.
255
이차돈   (놀라운 듯) 왜 그럴까. 괜히 쓸데없는 말을 오래 해서 아마 그러한감.
256
사시    (고개를 가벼히 저으며) 아녜요. (잠잠하다가 고개를 넌짓 들며) 한사님 저를 꼭 이뻐하시지요.
257
이차돈   그렇고 말고.
258
사시    한사님께서 중을 어떻게 생각하셔요.
259
이차돈   이 애 그까짓 말은 이제 고만 두잤구나. 내가 너를 그리워한다는 밖에 더 무엇 있니.
260
사시    그렇지만.
261
이차돈   네가 나를 그리워하고 내가 너를 그리워하니 우리 둘의 것은 무엇이든지 벌써 예전에 거룩한 이의 뜻대로 다 ─ 바치어 버린 것이지 무어야. (우는 사시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왜 우니. 울지 말어. 울기는 왜 울어.
262
사시    그냥 놓아주셔요. 얼른 저 달이 넘어가버리었으면 저는 손발이 싸느랗게 질리어 저절로 떨리어집니다. 이 좁은 가슴은 이렇게 기쁨에 울렁거리는 것인데 이것도 이때뿐이나 아마 아닐지.
263
이차돈   어 ─ 가엾은지고. 가시내 마음이 이다지도 여린 것인가. 이 철없는 아가씨야 사시 아가씨야. 이제 그런 쓸 데 없는 이삭다니는 고만 두잤구나.
264
사시    (무엇을 동경하는 듯 열없이 혼잣소리처럼) 어 ─ 저 ─ 아가씨야 부르시는 그 음성이 맨 처음 제 가슴에 그리움의 화살을 박던 활시위의 소리였어요. 한사님께서는 아마 잊으셨겠지요. 벌써 그게 저 지난 달에 사시 아가씨야 부르시던 당신의 음성이 나의 가슴을 얼마나 뛰놀게 하였던지요. 아무도 그처럼 고운 목소리로 제 가슴이 찌르렁하고 무너지도록 불러주는 이는 다시 또 없을 것이야요. 그 목청에는 영검스러운 그 무엇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저는 시방도 맨처음 뵈옵던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이 제 이름을 처음 부르던 그 날부터 저의 마음에는 수줍음이 생겼으니까요.
265
이차돈   수줍음이.
266
사시    당신은 아마 잊으신 것이지요. 그 때 우속(于續) 마을 집에 있을 적에 당신이 흰 말을 타시고 늦은 벗을 띄워 우리집을 찾아오셨지요. 그리고 그담에는 울 안 굴집 앞에서 물끄러미 서로 건너다 보다가 우리 어머니에게 들키였지요. 또 저에게 처음 말씀을 건네어 주실 때를 생각했어요. 당신은 아마 그 때에는 모르셨겠지만 무엇 당신을 처음 뵐 때부터 제 마음은 엉크러져 당신의 얼굴만 그리기에 이었던 삼실도 쓰지 못하게 엉크러버려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퍽 많이 들었답니다.
267
그리고 그 뒤에도 당신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나를 여기어 찾으시는 당신의 눈치를 나는 살피어 잘 압니다. 접때 아도 스님하고 무슨 말씀을 하실 때에도 저는 향불을 가지고 올라가다가 당신이 언뜻 눈에 띄이기에 나무 그늘에 서서 당신의 얼굴만 울려다보느라고 얼이 빠졌었습니다. 나는 당신만 뵈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요. 내가 당신을 넋을 잃고 서서 쳐다볼 때에 당신께서도 말씀을 하시다 모르는 결에 힐끗 나를 보고는 다시 큰 눈을 떠 나를 쏘아내려다 보셨지요.
268
당신의 눈과 제 눈이 서로 마주 칠 때에 어찌도 남부끄럽던지 낯이붉어 얼른 고개를 숙였었지요. 그래 제가 하는 수 없이 향을 들고 가려다 보니까 그만 향로는 땅에 떨어졌고 제 치마 앞이 커다랗게 구멍이 나도록 탔겠지요. 아마 그것을 당시는 못 보셨을게야. 그 때는 고개를 돌리셨을 적이니깐. 그래 온 어떻게도 열쩍던지 참 혼자 우스워 죽을 뻔했어. 부끄럽기도 하고 남이 볼까 보아서…….
269
이차돈   챔 재미있고도 우스운 일이었었구나.
270
사시    참 나 보게. 이야기에 팔리여 달이 높도록 있어서 앉았으니.
271
이차돈   그럼 이제 들어 가지.
272
사시    한사님 곁에 있을 때에는 어떻게 철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갈테니 조금 나중 들어오셔요.
273
이차돈   그러지.
274
사시    그러고 있다 가실 적에 휘파람을 한 번 부셔요. 그러면 제가…….
 
275
(사시 퇴장)
 
276
이차돈   어 ─ 저 달은 밝기도 하고녀. 뜨거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답답한 가슴을 식혀주는 듯.
【원문】제3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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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