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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복전(申遺腹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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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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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유복전
 
 
2
화설(話說) 해동(海東) 조선국(朝鮮國) 명종대왕(明宗大王) 시절이라.
 
3
전라도 무주 남면 고비촌에 일위(一位)명사(名士) 있으되, 성(姓)은 신(申)이요, 명(名)은 영이니, 장절공(壯節公) 팔세 손(孫)이요, 사대(四代) 진사(進士) 신담의 아들이라.
 
4
어려서부터 총명이 과인(過人)하며 학업을 힘써 학력(學力)이 출중(出衆)하여 작문(作文)에 항심잠의(恒心潛意)하다가, 경과(京科) 초시(初試)로 회시(會試) 장원하여 진사(進士)에 뽑히는지라.
 
5
왕상(王上)이 기특히 여기사 신래(新來)를 진퇴(進退)하시더라.
 
6
신영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물러나와 고향에 돌아와 가묘(家廟)에 배현(拜見)하고 선산(先山)에 영분(榮墳)한 후에 부인 최씨와 더불어 농사를 힘써 가산(家産)은 섬부(贍富)하나 다만 슬하(膝下)에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으매 매양 슬퍼하더니,
 
7
일일(一日)은 진사(進士)가 부인으로 작반(作伴)하여 울울(鬱鬱)한 비회(悲懷)를 풀고자 하여, 후원 동산에 올라가 일변(一邊) 풍경도 완상(玩賞)하며, 일변 산보(散步)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춘흥(春興)을 못 이기여 인간 삼생사(三生事)를 담화할 새,
 
8
이때는 마침 춘삼월(春三月) 망간(望間)이라. 동산(東山) 서원(西園)에 백화(百花)는 만발하여 울긋불긋하며 전천후당(前川後塘)에 양류(楊柳)는 의의(依依)하여 파릇파릇하여 원근(遠近) 산천(山川)을 단청(丹靑)하였는데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요,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며, 비금주수(飛禽走獸)는 쌍거쌍래(雙去雙來)라
 
9
물색(物色)이 정여차(正與此)함에 차처차경(此處此景)을 가지고도 즐거운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되면 환환희희(歡歡喜喜)하여 흥치(興致) 일층(一層) 도도(陶陶)할 것이고, 슬픈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되면 우우탄탄(吁吁嘆嘆)하여 수회(愁懷) 일층 증가(增加)할러라.
 
10
마침 일락서산(日落西山)하고 월출동령(月出東嶺)일 새, 명랑한 월색(月色)을 띠고 돌아오다가 진사가 부인을 대하여 추연(惆然) 탄왈(嘆曰),
 
11
“우리 현인(賢人)의 자손으로 내게 이르러, 오대(五代) 공명(功名)이 부족한 것은 없으되, 다만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기로 만년(萬年) 향화(香火)를 끊게 되니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오. 사후 백골이라도 조선(祖先)에 큰 죄인을 면치 못하리로다. 이러므로 이 같은 화조월석(花朝月夕)을 매양 당하면 비회를 억제치 못하겠도다.”
 
12
하거늘, 부인이 함루(含淚) 대왈(對曰),
 
13
“우리 문중(門中)에 무자(無子)함은 다 첩(妾)의 죄악이라. 오형지속(五刑之屬)에 무후막대(無後莫代)라 하오니 마땅히 그 죄 만 번 죽음직 하오되, 도리어 군자의 넓으신 덕을 입사와 존문(尊門)에 의탁(依託)하여 영화로이 지내오니, 그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다른 명문대가(名門大家)에 요조숙녀(窈窕淑女)를 구하시어 취처(娶妻)하여 귀자(貴子)를 보시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면할까 하나이다.”
 
14
진사 미소 답왈(答曰),
 
15
“부인에게 없는 자식이 타인에게 취처한들 어찌 생남(生男)하오리까. 이는 다 나의 팔자이오니 부인은 안심하옵소서.”
 
16
하오며, 시동(侍童)을 사용(使用)하여 주효(酒肴)를 내와, 진사 부인으로 더불어 권하거니 마시거니 일배일배 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로 서로 위로하며 마신 후에, 진사와 부인이 취흥(醉興)을 못 이기여 각기 침소(寢所)로 돌아오더라.
 
17
이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전전반측(輾轉反側)하다가 적막한 빈방 안에 올연(兀然) 독좌(獨坐)하여 비회를 등촉(燈燭)에 부치어 이리저리 곰곰 생각하다가, ‘옛적에도 자식 없는 사람이 천지(天地) 일월성신(日月星辰)에게 정성 드려 득남(得男)한 사람이 있으니, 나도 자식을 빌어보리라.’하더니,
 
18
마침 진사 내당(內堂)으로 들어오시거늘 부인이 진사를 대하여 여쭈오되,
 
19
“옛적에 자식을 빌어 득남한 사람이 많사오나, 처도 고인(古人)의 일을 행할까 하나이다.”
 
20
진사 청파(聽罷)에
 
21
“부인 말씀 같으면 세상에 무자(無子)할 사람이 없으오리까. 그러한 허탄(虛誕)의 말씀을 다시 하시지 마옵소서.”
 
22
부인이 또 여쭈오되,
 
23
“고언(古言)에 왈(曰), 정성이 지극하면 지성(至誠)이 감천(感天)이라 하였으니,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가서 지성으로 정성 드리어 득남 발원(發願)이나 하여 보면,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혹시 감동하사 일개(一介) 동자(童子)를 점지하여 후사(後嗣)를 이어 조선(祖先)에 죄를 면할까 하나이다.”
 
24
진사가 부인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감응(感應)하여 즉시 행장(行裝)을 수습하여 남방으로 향하더라.
 
25
떠난 지 여러 날 만에 제주 한라산을 당도하여, 수십 명 역정(驛丁)을 사용하여 불일성지(不日成之)로 제단을 건축하고, 진사 부처(夫妻)가 목욕재계하여 일심 성력(誠力)으로 백일기도를 마치고 본제(本第)로 돌아오더라.
 
26
그 부인의 정성이 이 같으니 천도(天道) 어찌 무심하시리오. 그날 밤에 부인이 자연 곤뇌(困惱)하여 안식(案息)에 의지하여 잠깐 졸더니,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한라산 선관(仙官)이 일개 선동(仙童)을 데리고 와 부인을 대하여 왈,
 
27
“부인의 정성을 감사히 여기어 이 아이를 드리니, 잘 교육시켜 문호(門戶)를 빛나게 하시되, 이 아이는 범상(凡常)한 사람이 아니라. 천강(天降) 규성(奎星) 선동(仙童)으로서 하느님께 득죄(得罪)하여 진세(塵世)에 적강(謫降)함을 당하였으니 일후(日後) 영귀(榮貴)하려니와, 그러나 그대 부부 전생에 죄 중(重)하여 수한(壽限)이 길지 못하매, 이 아이가 초년(初年) 고생을 면치 못하겠기로, 그대 부부는 아들의 낙(樂)을 보지 못할 것이니 가장 슬프고 불쌍하도다.”
 
28
하고 문득 간 곳을 알지 못할러라.
 
29
마침 계명성(鷄鳴聲)에 최씨 놀라 깨보니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몽사(夢事)가 이상하여 서운하기로 즉시 진사를 청하여 몽사를 여쭈오니, 진사 왈,
 
30
“나의 몽사도 이 같으니 참 이상하고 서운하외다.”
 
31
하며, 일변(一邊) 내념(內念)에 귀자(貴子)나 둘까 옹망(顒望)하여 하며, 일변 득남할 지라도 아들의 낙을 보지 못할까 서운하여 하나, 진사 부인 최씨로 더불어 과연 그 달부터 태기(胎氣) 있으매 진사 생각하되 생남함을 바라고 바라더니,
 
32
슬프고, 슬프도다. 조물(造物)이 시기하고 귀신이 작희(作戲)함인지 잉태(孕胎) 육 삭(朔)에 진사 우연 득병(得病)하여 병세 침중(沈重)하니 백약(百藥)이 무효일 새, 진사 살지 못할 줄 알고 부인 최씨를 청하여 집수(執手) 체읍(涕泣)하며 유어(遺語) 왈,
 
33
“지금 부인이 잉태하였음에 몽사를 생각하면 응당 귀자를 낳을 것이나, 영귀함과 재미를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것은 그러하려니와 옛적 현인(賢人) 군자(君子)의 교육하던 법을 효칙(效則)하여 슬하에 재미를 볼까 하였더니, 해복(解腹)하는 것도 못 보고 속절없이 황천객(黃泉客)이 되겠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사람 수요장단(壽夭長短)은 천명(天命)이온즉 차장래(嗟將來)하오. 그러나 나 죽은 후라도 부인은 삼가 조심하여 사시다가, 만일 여자를 낳으시면 할 말 없거니와, 요행히 남자를 낳으시거든 학문이나 잘 가르쳐서 문호를 빛나게 하고 요조숙녀를 광구(廣求)하여 배필을 정하여 재미를 보옵소서.”
 
34
말을 마침에 명(命)이 진(盡)하니 일가(一家)가 망극(罔極)하여 곡성(哭聲)이 진동하는지라.
 
35
이때 부인이 또한 기절하거늘. 비복(婢僕) 등이 구하여 겨우 인사(人事)를 차리시매 관곽(棺槨)을 갖추어 예로써 선영하(先塋下)에 안장(安葬)하고 조석(朝夕)으로 애통함을 마지아니하더라.
 
 
36
세월이 유수(流水) 같아서 잉태한 지 십사 삭이 되매, 일일은 오색(五色) 채운(彩雲)이 집을 둘러 향기 만실(滿室)일새, 부인이 좋은 징조 있음을 보고 만심(滿心) 환희(歡喜)하여 옥로(玉爐)에 향을 사르며 소학(小學) 내직(內職) 편을 열람(閱覽)하다가 혼미(昏迷) 중, 일개 옥동(玉童)을 탄생하니 용모 장대하며 표범이 머리와 용의 얼굴이요, 곰의 등이며 잔나비 팔이요, 이리의 허리며 겸하여 소리가 뇌성(雷聲) 같으매 사람이 이목(耳目)을 놀래는지라.
 
37
최씨 부인이 슬픈 중에 대희(大喜)하며 기쁜 중에 비감(悲感)하여 탄식 왈,
 
38
‘슬프다, 네 부친이 살아 계셨다면 오직 즐거워하셨을 게야.’
 
39
하며, 못내 설워하여 왈,
 
40
‘아름다운 배필(配匹)을 택하여 봉황의 짝을 지어 녹수(綠樹)에 노는 양을 보고자 하더니, 슬프고 가련하도다. 고진감래(苦盡甘來)요, 흥진비래(興盡悲來)는 천연공리(天然公理)라.
 
41
또한, 부인이 우연 득병(得病)하여 병세 가장 위중하매, 의약(醫藥)을 쓴들 일분(一分)이나 효험이 있으리오. 병의 증세 점점 위중하여 가니, 부인이 살지 못할 줄 알고 유복(遺腹)의 손을 잡고 낯을 대며 애통 왈,
 
42
“슬프다 유복아. 전생(前生)에 무슨 죄로 차생(此生)에 모자(母子) 되어 나서 어미 복중(腹中)을 떠난 지 불과 오 세에 모자 이별이 무슨 일인고. 네 부친이 살아 계시거나, 우리 집의 내외간 친척이 있었던들 설움이 그다지 아니 되련마는, 내 몸이 죽은 후에 고독 단신(單身)된 어린 것이 어디 가 의탁하며 누구를 믿고 살리오.”
 
43
하며,
 
44
“네 신세를 생각하면 목이 메고 눈이 컴컴하며 정신이 아득하여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도다. 너를 낳아 기를 적에 마른자리에 너를 뉘이고 젖은 자리에는 내가 누우며 일시도 못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울음소리를 들으면 신혼(神魂)이 산란(散亂)하며 주야로 떠나지 못하고, 불면 날까 쥐면 깨질까 하며, 금자동(金子童)아, 은자동(銀子童)아, 만첩청산(萬疊靑山) 옥포동(玉布童)아. 너를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역(力)게 양육(養育)하였더니, 네 팔자 기박(奇薄)하여 이 지경을 당하니, 사고무친(四顧無親)한 어린 아이 촌촌걸식(村村乞食)하여 유리개걸(流離丐乞)할 것이니, 얻어먹는 거러지를 뉘 알아서 불쌍히 여기리오. 내 혼백이라도 지하에 돌아가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45
하며, 시비(侍婢) 춘매를 불러 유탁(遺託)하여 왈,
 
46
“너의 충절(忠節)를 이미 알았거니와, 나 죽은 후라도 유복 아기를 잘 보호하여 길러서 신씨(申氏) 후사(後嗣)를 잇게 하면, 구천(九泉)에 돌아가 만날지라도 그 은혜를 갚을 것이니, 부디 내 유탁을 깊이 생각하라.”
 
47
하니, 춘매 통곡하며 여쭈오되,
 
48
“복원(伏願) 부인께옵서는 심려 말으시고 귀체(貴體) 안보(安保)하옵소서. 만일 불행하실지라도 소비(小婢) 죽기로써 공자(公子)를 극진 보호하리이다.”
 
49
하니, 최 부인이 유복의 손을 잡고 잠깐 흐느끼다가 인하여 명(命)이 진(盡)하매, 남노여비(男奴女婢) 등이 망극하여 통곡할새, 유복이 더욱 방성대곡(放聲大哭)하여 기절하였다가 모친의 젖을 어루만지며 애통하여 왈,
 
50
“어머니는 어찌 나를 보고 반기실 줄 모르나이까.”
 
51
하며 아무것도 모르더라.
 
52
이때 춘매 더욱 망극하여 유복을 안고 달래어 왈,
 
53
“공자는 울지 말고 나의 등에 업히소서.”
 
54
하며,
 
55
“부인께옵서 잠을 깨시면 어찌 사랑 아니 하시리까?”
 
56
하며, 유복을 업고 제 처소로 돌아와 극진 위로하며, 노복(奴僕)으로 하여금 금의(錦衣) 금관(錦冠)을 차려 선령(先靈)에 합폄(合窆)한 후에, 유복을 진심탈력(盡心脫力)으로 사랑하여 보호하며 조석(朝夕) 제전(祭奠)을 정성껏 봉행(奉行)하니 근동(近洞) 인리(鄰里) 사람 처 놓고 칭찬 아니하는 이 없더라.
 
57
그러나 부인 돌아간 후로 주장무인(主張無人)하매 노복 등이 거취를 임의로 하여 가정이 문란하매, 가산(家産)이 자연 탕패(蕩敗)하니 그 참혹함을 어찌 성언(聲明)하리오.
 
58
부인의 삼 년 초토(草土)를 다 받들도록 춘매 정성으로 유복을 공경 보호하며 글을 힘써 가르치더니, 애재(哀哉)라 통재(痛哉)로다. 춘매 또한 병을 얻어 기지사경(幾至死境)에 당한지라.
 
59
유복이 손을 잡고 탄왈(嘆曰),
 
60
“세상에 도망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명이라. 첩이 또한 죽게 되었으니, 명지수요장단(命之壽夭長短)을 어찌하오리까? 이왕에는 공자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춘매의 염려더니, 지금은 공자 장성하여 비전(比前)하오면 염려 적으나, 다만 성취(成娶)함을 보지 못하고 이런 중병을 얻었으니, 죽어 지하에 돌아가도 부인 뵈올 낯이 없을지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첩이 죽은 후면 공자의 의탁할 곳이 없사오니, 부디 귀체를 안보하소서.”
 
61
하며, 다수(多數)한 문적(文蹟)을 내어 놓고 동리 사람을 청하여 부탁하여 왈,
 
62
“다른 사람은 이 문적을 가져가도 무익(無益)할 것이오. 우리 공자는 나이 유치(幼稚)하여 간수할 수 없으니 동리에서 괴로웁다 마시고 이 문적을 대동사고(大洞私庫)에 잘 장치(藏置)하였다가, 일후 공자에게 도로 환송(還送)하여 주옵소서.”
 
63
하며, 기중(其中)에 호적(戶籍)과 세계(世系) 한 장을 내어 공자를 주며 왈,
 
64
“이는 양반의 근본이라. 조선(祖先) 세계오니, 잘 간수하였다가 후일 조상의 근본을 잃지 마옵소서.”
 
65
하며 말을 마치고 명(命)이 진(盡)하니 유복의 참혹한 정경을 어찌 입으로 형언(形言)하리오.
 
66
유복이 모친의 상을 당한 후에 춘매의 지극한 정성을 힘입어 모친의 정을 잊었더니 불의(不意) 몽매(夢寐)에 춘매 또한 죽으매 슬프기 비할 데 없어 애통하여 왈,
 
67
“모친 하세(下世)할 때보다 더 섧다.”
 
68
하더라.
 
 
69
이때 유복의 나이 겨우 초(初) 구 세라. 동리 사람을 사용하여 선산 하(下)에 장사지내고, 의탁할 곳이 없어 집을 떠나 모친 묘소에 나아가 방성대곡하니 청천백일(靑天白日)이 무광(無光)하고 가는 구름이 위로하여 머무는 듯하고, 산중 두견새는 슬피 울어 사람의 수심(愁心)을 돕는 듯하더라.
 
70
유복이 모친 묘소를 하직하고 정처 없이 길을 행할 새, 춘매 주던 호적과 세계를 옷깃 속에 간수하고, 마을을 찾아 밥을 빌어먹고 날이 저물면 방앗간에 들어가 밤을 지내고, 매일 도문걸식(到門乞食)하니 그 참혹한 경상(景狀)을 차마 보지 못할러라.
 
 
71
날이 점점 갈수록 기갈(飢渴)이 자심(滋甚)하여 촌보(寸步)를 행치 못하여 할 수 없어 남의 소를 먹여주고 잔명(殘命)을 보전하여 세월을 보내더니, 일일(一日)은 목동과 함께 초장(草場)에 나가 소를 먹이더니, 유복이 홀연 강개(慷慨)한 마음을 발하여 울적함을 억제치 못하여 장탄(長歎)으로 한 노래를 지어 희롱하니 그 노래에 하였으되,
 
72
“옛말에 성인(聖人)이 나심에 기린(麒麟)이 나고, 현인(賢人)이 나매 봉황이 나고, 장사(壯士)가 나매 용마(龍馬) 난다더니, 고금 물론하고 영웅호걸이 불우시(不遇時)함은 무슨 일인고. 슬프고 슬프다. 창창(蒼蒼)한 저 하늘은 아비처럼 높아 있고, 회회(恢恢)한 땅은 어미처럼 넓어 있네. 어찌하여 이내 몸은 복중(腹中) 유자(遺子) 되었으니, 아비 도(道)를 어찌 알까. 호천망극(昊天罔極 내 아니며, 마찬가지로 조실지모(早失之母)하였으니, 어미 도를 어찌 알까. 무호무시(無呼無視) 내 아닌가. 광활한 천지 간에 혈혈단신(孑孑單身) 이내 몸이 태창제미(太倉稊米) 아득하고, 창해일속(滄海一粟) 묘연(渺然)하다. 슬프다. 옛일을 생각하니, 은왕(殷王) 성탕(成湯) 때 이윤(伊尹)은 신야(莘野)에 밭을 갈고, 고종 때 부열(傳說)은 부암(傅巖)에 담을 쌓고, 문왕(文王) 때 강태공(姜太公)은 위수변(渭水邊)에 고기 낚고,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은 표모(漂母)에게 밥을 빌고, 당태종(唐太宗) 때 울지경덕(蔚遲敬德)은 야점에 고용되어 천신만고하다가 하늘 운수 돌아와서 성군(聖君) 현신(賢臣)이 서로 만나 억조창생(億兆蒼生) 건져내고 영귀(榮貴)함이 지극하였는데, 슬프다. 이내 몸은 바람에 쑥대같이 물결에 뜬 부평초(浮萍草)라. 만리전전(萬里轉轉)이 망연(茫然)하다. 하늘이 영웅 낼 때는 신고기지(辛苦旣知) 하시는 게라. 옛사람 생각하여 만고충신(萬古忠臣) 나아가면 하늘 운수 돌아와서 요순우탕(堯舜禹湯) 다시 만나 천하 창생(蒼生) 건져내고 금의환향(錦衣還鄕) 후 희호세계(熙皡世界) 세계 다시 보세. 여보게 초동(樵童)들아. 내 노래 네 알소냐? 화답(和答)하는 사람 없기로 그만저만 그치노라.”
 
73
노래 그치고 일어나 원산(遠山) 바라보니 나는 새는 수풀로 오고 푸른 연기는 원촌(遠村)에 일어나더라.
 
74
이때 유복이 더욱 비감하여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거늘, 목동들이 듣기를 다하고 수상히 여기더라.
 
75
이날 유복이 소를 이끌고 돌아와 종시(終是) 울적한 마음을 억제치 못하여 헤아리되,
 
76
“남의 고용(雇傭)이 되어 천대(賤待)가 자심滋甚)하니, 장부 어찌 남의 휘하(麾下)에 속절없이 초목(草木)과 같이 썩으리오. 차라리 사해팔방(四海八方)으로 주류(駐留)하여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완상함이 옳도다.’ 하고 주인께 하직하고 길을 떠나 전전걸식(轉轉乞食)하여 가는지라.
 
 
77
각설(却說), 이때 경상도 상주읍에 다다르니 이곳이 역(力)하는 사람이 있으니 성명은 이섬이라.
 
78
본래 향인(鄕人)의 자손으로 근고(勤苦) 있어 호장(戶長)을 하였더니 일찍 취처(娶妻)하여 남자는 없고 다만 여식(女息) 삼형제를 두었으니, 장녀의 명은 경옥이요, 차녀의 명은 경란이요, 삼녀의 명은 경패라.
 
79
경패를 잉태할 때에 천상(天上)에서 선관이 내려와서 이르되,
 
80
“나는 월궁(月宮) 선녀로서 옥황상제께 득죄(得罪)하고, 인간에 적강(謫降)하였기로 전세(前世)에 연분을 찾아와 댁에 의탁하고 왔사오니, 십삼 년만 양육하여 주옵소서.”
 
81
하고 품에 들거늘 깨어나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82
이상히 여겼더니, 그 후 십 삭 만에 일개 옥녀(玉女)를 낳으니, 용모 아름답고 범인(凡人)과 다른지라.
 
83
십 세에 이르러는 월태화용(月態花容)이 요요정정(夭夭貞靜)하여 모란화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하매, 호장 부처 못내 사랑하며 어진 배필(配匹)을 얻어 슬하에 재미를 볼까 하더라.
 
84
이때 유복이 전전걸식하여 두루 다니며 산천을 완상하다가, 경상도에 다다라 낙동강을 건너 상주성에 이르러 물색을 구경하며 곤곤(困困)히 다니더라.
 
85
이때는 춘삼월 망간이라.
 
86
홍살문(紅箭門) 거리에서 이슥하도록 두루 다니다가 마침 종각 앞에서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픔으로 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기탄(忌憚) 없이 돌을 베개하고 잠을 깊이 들었는지라.
 
87
이때 상주 목사(牧使) 덕이 있는 사람이라. 마침 창고(倉庫)에 행차하여 환자(還子)를 분급(分給)하고 돌아올 새, 수배(隨陪) 사령(使令)이 유복의 횡와(橫臥)함을 호령하며 능장(稜杖)으로 찔러 깨우니, 유복이 잠을 깨어 일어 앉으며 아무런 줄 모르고 울기만 하거늘, 목사 잠시 살펴보니 아이의 의복이 남루(襤褸)하여 몸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 터럭이 흩어져 낯을 가렸는지라. 눈물 줄이 매쳤으니 그 추비(醜鄙)한 것을 바로 보지 못할러라.
 
88
그런 가운데 은은한 골격과 늠름한 풍채는 때 속에 비취거늘, 목사 동헌(東軒)에 좌정(坐定)하시고 그 아이를 불러오라 하시니, 사령이 즉시 유복을 불러왔거늘, 목사 유복을 대상(臺上)에 올려 앉히고 문(問) 왈,
 
89
“네 거주(居住)와 성명은 무엇이며, 부친의 이름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이나 되었느냐?”
 
90
유복이 재배(再拜)하여 울며 왈,
 
91
“천생(賤生)의 거주(居住)는 무주 고비촌이옵고, 부친의 함자(銜字)는 신 진사 우영이옵고, 생의 이름은 유복이옵고, 나이는 십사 세로소이다.”
 
92
목사 우(又) 문(問) 왈,
 
93
“그런 양반의 자손으로 어찌하여 유리개걸(流離丐乞)하느뇨?”
 
94
유복이 여쭈오되,
 
95
“사또께옵서 지극히 하문(下問)하시니 비록 미천하오나, 어찌 진적(陳迹)을 은휘(隱諱)하오리까? 천생은 과연 장절공의 구세 손이옵고, 오대 진사 신우영의 아들이옵더니, 부친는 천생을 잉태한 지 육 삭(朔) 만에 하세(下世)하옵고, 모친은 천생 낳은 지 오 년만에 기세(棄世)하옵시니, 혈혈단신으로 의탁할 곳이 없사와 시비 춘매에게 의탁하였사옵더니 불행하여 춘매 또한 죽사오니, 가산이 자연 탕패(蕩敗)하매 생계 난처하옵기로 전전걸식하나이다.”
 
96
하고 행장에서 호적 한 장을 내어 드리니, 목사 보시고 탄식 왈,
 
97
“네 얼굴을 본즉 상인(常人)의 자손 아닌 줄 알았거니와 장절공의 자손인 줄 어찌 알았으리오. 옛적부터 현인과 군자가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일시 고생은 장부의 상사(常事)이거니와 참 불쌍하도다.”
 
98
하고, 즉시 이방(吏房)을 불러 왈,
 
99
“너희 관속(官屬) 중에 어진 여식 둔 이가 있느냐?”
 
100
이방이 여쭈오되,
 
101
“지금 호장으로 있는 이섬이 여식 삼 형제를 두었으니 재질(才質)과 용모 과인하나이다.”
 
102
하거늘, 목사 대희하여 이섬을 불러다 분부하여 왈,
 
103
“내 저 아이를 보니 장내에 귀히 될 아이라. 들으니 네 여식 있다 하니, 네 저 아이를 데려가 사위를 삼으면, 장래에 저 아이 덕을 입으리라.”
 
104
하거늘, 이섬이 뜻밖에 이 분부를 듣고, 대경(大驚)하여 눈을 들어 그 아이를 살펴보니 흉악하고 망측하여 바로 보지 못할러라.
 
105
눈을 찡그리고 여쭈오되,
 
106
“소인(小人)이 아무리 하천(下賤)한 상놈인들 저 같은 거렁뱅이를 사위 삼사오리까? 죽을지언정 이 분부는 봉행치 못하겠나이다.”
 
107
하니, 목사 대로(大努)하여 꾸짖어 왈,
 
108
“네 일읍(一邑)에 호장이 되어 어찌 저토록 무식한가. 자고로 영웅호걸이 초년 곤궁(困窮) 아니 한 사람이 몇이 되느냐? 어찌 그런 말을 하리오. 저 아이가 비록 의탁할 곳이 없어 유리개걸하되 명현(名賢)의 후손이요, 오대 진사 자손이라. 만일 의지할 곳이 있을 양이면 네게 혼인을 바라리오. 내가 저 아이가 의탁할 곳이 없음을 불쌍히 여겨 분부하였거든, 네 종시 깨닫지 못하니 상놈일시 분명하다. 금일은 저 아이를 천히 여기나 타일(他日)에 반드시 우러러 볼 것이니 잔말 말고 데려다가 사위를 삼으라.”
 
109
호장이 감히 거역하지 못하여 아뢰오되,
 
110
“혼인은 인륜대사(人倫大事)오니 나아가 가족을 모으고 결단(決斷)하리이다.”
 
111
하니, 목사 칭탁(稱託)함을 더욱 분히 여기어 고성(高聲) 대로하여 왈,
 
112
“네가 가장(家長)이 되어 가내지사(家內之事)를 임의로 못 하고 뉘에게 물어본다 하니, 저 아이를 종시 천히 알 것이니와, 백옥(白玉)이 지토(地土)에 묻혔으니 뉘 알리오. 네 잔말 말고 바삐 데려다가 사위를 삼으라. 만일 거역하면 장하(杖下)에 죽기를 결코 면하지 못하리라.”
 
113
하고 즉시 사령을 명하여 유복을 데려다 맡기라 하니, 호장이 하릴없어 유복을 데리고 집에 돌아와, 절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말도 내설(內說)치 못하고 두 손으로 문턱만 두드리며 포원지심(抱冤之心)을 억제치 못하거늘, 호장의 처가 이 거동을 보고 대경하여 붙들고 문 왈,
 
114
“무슨 변(變)이 있기에 관가(官家)에서 나오며 이토록 하시나이까?”
 
115
호장이 마지 못하여 이르되,
 
116
“사또께서 나를 불러다가 저 거지로 사위를 삼으라 하시며, 만일 거역하면 우리 가족을 다 잡아다가 죽이리라 하시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117
호장의 처가 이 말 듣고 상(相)을 찡그리고 고개를 외로 꼬며 유복을 바라보고 하는 말이,
 
118
“흉악하고 망측하다. 저 같은 흉물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런 더러운 말을 다시 마옵소서.”
 
119
호장이 더욱 소리를 크게 하여
 
120
“애달프고 가통(可痛)하다. 흉악한 인물이 세상에 나와서 내 집을 망하게 하는 도다.”
 
121
하고, 처를 불러 왈,
 
122
“아무렇게나 아이들을 불러 저것을 보이고 취맥(取脈)이나 하여 봅시다.”
 
123
즉시 딸 삼 형제를 부르니, 삼 형제 부명(父命)을 듣고 일시에 나오거늘, 호장이 저 거지를 가리키며 목사의 분부를 절절(節節)히 이르니, 경옥과 경란이 이 말 듣고 유복을 바라보다가 콧살을 찡그리며 부모에게 하는 말이,
 
124
“자식이 밉거든 약을 먹여 죽이옵소서. 저러한 인물을 우리 배(輩) 같은 몸에 비하나이까? 영천수(潁川水)가 가까우면 귀를 씻고자 하나이다. 금시로 집안이 망할지언정 거렁뱅이를 근처에도 두지 말고 멀리 내어 쫓으옵소서.”
 
125
호장 부처 이 말 듣고 대희하여 두 딸의 등을 어루만지며 왈,
 
126
“네 말이 옳다.”
 
127
하고 못내 칭찬하더니, 경패 곁에 모셨다가 변색(變色) 대(對) 왈,
 
128
“금일은 형님의 말이 가장 무식하도다. 천지간에 오륜(五倫)이 귀중한 중 부자(父子) 최중(最重)하거늘, 이제 부모가 사경에 이르렀는데 자식이 되어 제 몸만 생각하고 부모를 돌아보지 아니하면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 이러하므로 옛날 창공(倉公)의 순우의(淳于意)라 하는 사람도 실화(失和)된 죄를 당하여 죽게 되었더니, 그 딸 제영(緹縈)이 글을 올려 제 몸을 관비(官婢) 삼고 그 아비 죄를 대속(代贖)하였더니, 한나라 문제(文帝)께옵서 기특이 여기사 제영을 사(赦)하여 주셨으니, 우리도 이제 부모를 위하자면 거지 아니라 반신불수(半身不遂) 병신인들 어찌 사양하리오. 저 아이의 용모를 보니 비범(非凡)하기로 비할 데 없으며, 상이 비록 때 속에 묻혔으나 반드시 후일에 귀히 될 사람이라. 어찌 일시 빈천(貧賤)한 것을 흉보며 어찌 부모를 돌아보지 아니하리오.”
 
129
경옥, 경란이 이 말 듣고 대로하여 왈,
 
130
“네가 우리를 책망하는 체하고 음란한 마음으로 네가 저 거러지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도다.”
 
131
하니, 경패 대 왈,
 
132
“무슨 어려울 것이 있으리오. 제일은 부모를 위하려 함이요, 둘째는 몸을 위함이요, 저 거러지인들 한 때가 없으리오.”
 
133
경옥, 경란이 이 말을 듣고 왈,
 
134
“이 더러운 년아. 저 거지에게 눈이 어두워 음양(陰陽)을 탐하니 저 거지를 데리고 나아가라.”
 
135
하며 구박이 자심하는지라. 또한 호장 부처가 대로하여 경패를 꾸짖어 왈,
 
136
“너희 삼 형제 중 너를 그 중 사랑하였더니, 능지(陵遲)하고 처참(處斬)할 년아. 음란(淫亂)한 마음으로 저 거렁뱅이를 생각하여 부모를 염려하는 체하고 사람을 빙자(憑藉)하나, 요망(妖妄)하고 방정맞은 년아. 저 거지를 데리고 너 갈 때로 가거라.”
 
137
하며 손으로 등을 밀어 문밖에 내쫓으니, 경패 하릴없어 유복과 함께 정처(定處) 없이 나오니 그 참혹한 경(景)을 어찌 측량(測量)하리오.
 
138
소저(小姐)가 규중처녀로 문밖을 나지 못하다가 일조(一朝)에 의식을 다 버리고 거지되니 어찌 비감치 아니하리오.
 
139
이때에 소저의 연(年)이 십삼 세라. 유복이 머리에 이가 많은 고로, 이가 주루루 기어 나오는지라. 소저가 이가 기어 나옴을 보고 동리 사람의 집에 들어가 두 개 빗을 얻어다가 냇가에 앉히고 머리를 감아 빗기며 수다(數多)한 이를 잡아 주기고 머리를 빗기며 다정히 말하더니, 해가 서산에 달렸거늘 소저가 저녁연기를 좇아 밥을 빌러 갈 새, 유복이 소저를 따라 마을로 들어가 밥을 빌어먹고 방앗간을 찾아가 거적을 얻어다 깔고 둘이 마주 누워 팔을 베고 동침(同寢)하니 신세 가긍(可矜)한지라.
 
140
유복은 활달한 영웅이요, 소저도 여중(女中) 군자라. 고어(古語)에 하였으되, 흥진비래(興盡悲來)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니, 하느님이 어찌 어진 사람을 한없이 곤궁(困窮)케 하시리오.
 
141
소저 또한 유복의 늠름한 풍채와 관옥(冠玉) 같은 용모를 상대하니 정이 점점 가깝더라. 그러므로 고생함을 어찌 한탄하리오.
 
 
142
그 이튿날 밥을 빌어다 먹고 소저가 유복에게 왈,
 
143
“슬프다. 천지만물지중(天地萬物之中)에 가장 귀한 것은 사람이라 하였거든, 사람만 못한 짐승도 구멍 있거늘 우리는 어찌하여 의지가 없는고. 생각하면 어찌 애달지 아니하리오. 저 건너 북편 돌각정이 임자가 없는 것이니 돌각정을 헐고 움이나 한 칸 묻어 봅시다.”
 
144
동리(洞里)로 재목과 이엉을 구걸할 새,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다투어 주거늘, 소저가 유복으로 더불어 수운(輸運)하여 움을 묻고 거적을 얻어 깔고 밥을 빌어다 나눠 먹고 그 밤을 지내매, 고루거각(高樓巨閣)에 옥식(玉食)을 얻은 것 같이 여기더라.
 
145
그러나 깊고 깊은 정이야 어찌 비할 데 있으리오. 일전 남의 방앗간에서 잠자던 것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146
근처 사람들이 유복의 가련한 정형(情形)과 경패의 지극한 정성을 어여삐 여겨 음식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며, 호장 부처를 욕 아니하는 이 없더라.
 
147
유복이 남의 집 물도 길어주고 방아질도 해주니 기갈은 면하나 의복이 없으매 의표(儀表)가 가장 추비(麤鄙)하더라.
 
148
소저가 일일은 유복에게 왈,
 
149
“옛글에 일렀으되, 장부 세상에 처함애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문호(門戶)를 혁혁(赫赫)하게 하며 조선향화(祖先香火)를 빛나게 하라 하였으니 문필(文筆)를 배우지 못하면 공명(功名)을 어찌 바라리오. 이러므로 옛 사람도 낮이면 밭 갈고 밤이면 글 읽어 성공하여 천추만년(千秋萬年)를 유전(遺傳)하여 이름이 기린각(麒麟閣)에 영정(影幀)하여 일후(日後)에 유전하는 일이 장부에 당당한 일이오. 무식한 가운데 영웅호걸이 있단 말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150
유복이 소저의 말을 듣고 감응하여 왈,
 
151
“내 어려서 글자나 읽었으니 어찌 그런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글을 배우려 한들 어디가 배우며, 또한 책 한 권도 없으니 일로 염려요, 장차 저 외로운 몸이 뉘를 의지하리오.”
 
152
하거늘, 낭자 대 왈,
 
153
“그는 염려 마옵소서. 나는 혼자라도 이웃을 떠나지 아니할 것이요, 양식을 당할 것이매 아무 염려 마옵소서. 내가 듣사오니 뒷절에 있는 원강대사라 하는 중이 도승(道僧)이옵고 또한 천하 문장이라 하니, 거기 가서 간절히 말씀하면 글을 가르쳐 줄 듯하오니 올라가 보옵소서.”
 
154
하고 바로 나아가 책 한 권을 얻어다가 주며 왈,
 
155
“공자의 나이 십삼 세라. 팔 년을 공부하여 이십이 되거든 내려와 반기려니와 만일 그 전에 내려오면 결단코 세상에 있지 아니하오리다.”
 
156
하고 가기를 재촉하거늘, 유복이 낭자의 정성을 위하여 책을 옆에 끼고 절에 올라가서 대사를 보고자 하여 초지정(草地亭)에 이르오매 대사 유복을 보고 놀라 위로 왈,
 
157
“십삼 년 전에 규성(奎星)이 무주 땅에 떨어졌기로 일정 영웅이 난 줄은 알았으나, 다시 광명이 없기로 분명한 곤란이 있음을 짐작하였더니 금일에야 만나도다.”
 
158
위로하여 왈,
 
159
“장부의 초년(初年) 고생은 영웅호걸의 사업재료가 되는 법이니, 사람이 고초(苦楚)를 지내지 못하면 교만한 사람이 되리로다.”
 
160
하고, 그날부터 글을 가르칠 새, 유복은 본래 천상 선동이라 한 자를 가르치면 백 자를 능통하니 선생이 기이 여겨 칭찬 왈,
 
161
“이제는 글에 당하여서는 더 가르칠 것이 없는지라. 문무(文武) 겸비(兼備)함은 영웅의 재료라. 대장부 어찌 성훈(聖訓)과 역사만 배우리오.”
 
162
다시 사마양저(司馬穰苴)의 군율(軍律)이며 손오병서(孫吳兵書)를 가르쳐 육도삼략(六韜三略)과 구궁팔쾌(九宮八卦) 버리는 법을 가르치며 창검 쓰는 법을 가르치매, 검술이 비상함이 당시 동서양에 무쌍(無雙)하고 무등(無等)한 영웅호걸의 재목이 되었더라.
 
163
이때 경패 남의 고용도 하여 주어 찬밥이며 쌀되를 얻어다가 찬밥은 제가 먹고 주소(晝宵)로 품팔기를 일삼으매 곤궁함은 비하여 측량하지 못할러라.
 
 
164
각설, 이때 호장 부처 딸들이 과년(過年)하여 가매 사위를 구하되, 호가(豪家) 자제를 구하니 맏사위는 류형의 맏아들 소현이요 둘째 사위는 김형의 아들 평이매 두 사람일러라.
 
165
그 사람이 요망(妖妄) 방탕(放蕩)하여 호주(好酒) 탐색(耽色)으로 세월을 보내되, 호장 부처 두 사위를 세상에 없는 듯이 알고 극히 사랑하며 경옥과 경란이 행여나 제 서방의 눈에 날까 두려워하여 연연(娟娟)한 영색(令色)으로 마음을 아름다이 하여 아리따운 교태를 부려 세월을 지내더라.
 
 
166
각설 신 공자(申公子) 팔 년 공부를 마쳤는지라.
 
167
신 공자 사문(寺門)에 내려와 이 낭자를 찾아 이성지합(二姓之合)에 길례(吉禮)를 마치고 그날부터 금슬지락(琴瑟之樂)이 생기어 여러 해 그리던 회포를 담화(談話)하며 공부를 특별히 함을 알고자 하여 신생(申生)을 대하여 왈,
 
168
“글을 대여섯 장을 주시와 써서 주시면 쓸 데가 있사오니, 써서 주옵소서.”
 
169
하거늘, 신생은 활달한 남자이라. 낭자의 뜻을 알고 잠시간 글을 지어 써서 주니 낭자 받아다 품에 간수하고 마을에 내려와 글 잘하는 사람을 찾아가 글장을 내어 보여 왈,
 
170
“내가 오는 길에서 글씨 쓴 종이를 얻었으니 혹 무엇에 소용될 글인가 보아 주옵소서.”
 
171
하니, 그 선비가 자세히 보다가 대희 왈,
 
172
“이 글은 옛날 이태백(李太白)과 두목지(杜牧之)가 갱생(更生)하여 지을지라도 이 글에 미치지 못하겠도다. 만일 지금 세상에 이런 재조가 있으면 금번 과거에 장원랑(壯元郎)이 갈 데가 없으리로다.”
 
173
하며 크게 칭찬(稱讚) 불이(不二)하더라 낭자 그 말을 듣고 왈,
 
174
“그 글장을 도로 주옵소서. 갖다가 창호(窓戶)나 바르겠나이다.”
 
175
하니, 그 선비가 글장을 사모하기를 마지 아니하여 왈,
 
176
“이 글장을 두시고 볼 만한 글장이오니 창호를 바르려 하거든 다른 종이를 주마.”
 
177
하고 다른 종이 한 장을 주거늘, 받아가지고 움집으로 돌아와 그 기쁨을 측량치 못하여 하더라.
 
 
178
이때 인조대왕께옵서 세자(世子)를 탄생하시고 태평 경과(京科)를 배설(排設)하여 경향(京鄕) 선비를 부르실 새, 팔도 선비 과거 소식을 듣고 과행(科行)을 차리려 하더라.
 
179
각설 이때 호장 부처가 두 사위를 과행으로 보낼 새, 행장 범백(凡百)이 가장 굉장하더라.
 
180
이때 신생이 과거 소식을 듣고 대사께 고하여 왈,
 
181
“소자가 전일(前日)에 듣사오매 과일(科日)이 불원(不遠)하다 하오니, 장부 세상에 처하여 공부는 잘못하였으나, 이때를 당하여 집에 내려가서 과거 볼 기구를 차릴까 하나이다.”
 
182
하고 대사께 하직하고 내려와 집으로 돌아와 낭자를 대하여 과거 소식을 전하니, 낭자 대 왈,
 
183
“장부 세상에 처하여 과거를 보아 이름을 후세에 유전(遺傳)함이 장부의 떳떳한 일이 온즉 과거 노수(路需)를 준비하여 봅시다.”
 
184
하고,
 
185
“듣사오니 형님 남편들은 처가에서 인마(人馬)를 차려 보낸다 하오되, 낭군이야 푼전인들 어찌 주리오.”
 
186
하니, 신생이 대 왈,
 
187
“동서(同壻)들은 생면(生面)치 못하였으나, 만일 인정이 있는 사람 같으면 동접(同接)과거 무리같이 보련만은 남의 심지(心志)를 알지 못하니 난처하도다.”
 
188
소저 왈,
 
189
“첩이 듣사오니 그 사람들을 지목(指目)하되 교만 방탕하고 괴상하다 하니 어찌 인정이 있으리오,”
 
190
하거늘, 신생이 탄왈(嘆曰),
 
191
“팔자 가련한들 이같이 심할까.”
 
192
하며 탄식함을 사람의 심장(心腸)으로 보지 못하는 듯하더라.
 
 
193
각설, 류형과 김형 두 사위가 과행을 차려 떠날 새, 이때 호장 부처와 경옥 경란이 쫓아 나와 전별(餞別)하며 참방(參榜)하기를 천만 축수(祝手)하더라.
 
194
이날 신생이 두 사람의 마음을 시험코자 하여 가는 길가에 주저(躊躇)하다가 두 사람 옴을 보고 말머리로 마주 나가 가로되
 
195
“공등(公等)은 말을 머무르고 통성명하옵시다.”
 
196
하며,
 
197
“우리 동서 간으로 금일 상봉은 진실로 늦었도다.”
 
198
하니, 류 김 두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바라보니 헌 옷 입은 상거지라. 일전 부모의 말을 들은 고로 말대답도 아니 하고 말을 재촉하여 몰아가거늘 신생이 내념(內念)에 무료(無聊)하여 말도 못하고 움으로 돌아오니 낭자 문 왈,
 
199
“그 사람들을 보고 무슨 말씀을 하셨나이까?”
 
200
하니, 신생이 대 왈,
 
201
“그 사람들이 귀먹은 체, 병신인 체하여 묻는 말도 대답지 아니하고 가더라.”
 
202
하니, 낭자 그 파측(叵測)한 인정을 책망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203
‘부모님도 야속하다. 한 번도 어찌 사는 양을 묻는 일도 없고, 겨 한 줌도 주지 아니하니 무슨 일인고. 내가 슬하에서 실행(失行)한 일이 있나. 부모를 위하여 이렇게 되었거늘 어찌 두 사위는 중히 알아 노수 인마를 차려 보내면서 우리는 박대(薄待) 자심(滋甚)하니 애달프고 통분하다. 내 체면을 생각하면 무엇하리오. 금일은 내 저녁에 집에 돌아가 쌀말이나 도적하여 낭군의 과거 노비를 보태리라.’
 
204
하고 밤을 기다려 가만히 건너가며 생각하되,
 
205
‘요행으로 쌀말이나 도적하여 과거 노수나 보태고 만일 잡히면 도적이나 아니 될까?’
 
206
하고 주저하다가 친정에 다다라 쌀고(庫)로 들어가 쌀을 푸다가 어미에게 잡히니, 그 어미 급히 호장을 불러 경패가 쌀 도적질 하려던 말을 하려 할 즈음에, 경옥과 경란이 큰 죄나 잡은 듯이 제 아비 앞으로 왈칵 나오며 제 아우 경패의 허물을 몇 갑절을 보태어 이르니, 그 호장이 와락 내달으며 대질(大叱) 왈,
 
207
“이 도적년을 죽여 후환이 없게 하리라.”
 
208
하고 무수히 난타(亂打)하니, 낭자 평생 힘을 다하여 겨우 몸을 빼내어 움에 돌아와서 살펴보니 몸에 유혈(流血)이 낭자하고 의복이 열파(裂破)되었거늘, 낭자가 그 부모와 그 형들의 악함을 생각하니 섧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전신을 덜덜 떨며 울기만 하는지라.
 
209
유복이 낭자의 그 모양과 거동을 보고 악연(愕然) 대경(大驚)하여 그 연고를 물은 즉, 낭자가 체읍(涕泣)하다가 마지 못하여 사연을 고하니, 유복이 더욱 강개하여 낭자를 위로하며 탄식 왈,
 
210
“구차한 사람이 무슨 일을 아니 보리오. 우린들 좋은 때가 없으리오. 옛글에 하였으되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였으니 낭자는 너무 서러워 말라.”
 
211
하더라.
 
212
이때 낭자 백계무책(百計無策)하여 한 길되는 제 머리를 베어 행장에 넣고 과수(科需)를 차릴 새, 얻어온 쌀되며 전량(錢糧)을 갖추어 간수하여 주며 왈,
 
213
“이것을 가지고 문전걸식(門前乞食)하여 올라가 머리를 팔아 지필묵 값이나 보태어 쓰시고 과거 구경이나 하옵소서.”
 
214
유복이 감사하여 눈물을 머금고 길을 떠날 새 도처걸식하며 경성에 올라가니, 각처 선비 구름 모이듯 하였는지라.
 
215
유복이 명지(名紙)를 사려 하고 명지전(名紙廛)에 가서 돈이 적은 고로 파명지(破名紙)를 구하더라.
 
216
이날 명지 장사 홀연 졸더니 난데없는 청룡이 소리를 지르며 파명지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거늘 놀라 깨어나니 헌옷 입은 선비 파명지를 들고 사자 하매, 장사 이상히 여겨 답 왈,
 
217
“좋은 명지 많거늘 어찌 파명지를 사시려 하나이까?”
 
218
유복이 답 왈,
 
219
“나는 본래 빈한(貧寒)한 사람이라. 돈이 적은 고로 파명지를 사 가지고 과거 구경이나 하려 하노라.”
 
220
그 장사 가로되,
 
221
“금방 장원급제 하올 것이니 천불생무록자인(天不生無祿之人)이라 하였사오니 어찌 파명지 값을 받으리오.”
 
222
유복이 답 왈,
 
223
“남의 것을 어찌 거저 가지리오. 값을 말하라.”
 
224
하매, 장사 답 왈,
 
225
“과거를 보아 성공하거든 갚으소서,”
 
226
하고 사양하거늘, 유복이 하릴없이 받아 가지고, 또 필묵점(筆墨店)에 들어가니 필묵 장사 또한 졸더니 파필(破筆) 끝에 계화만발(桂花滿發)하고, 부러진 먹이 변하여 금두껍이 되어 계화를 물고 궐내로 들어가거늘, 장사 놀라 깨어보니 헌옷 입은 선비 와서 부러진 필묵을 잡고 팔라 하거늘, 필묵 장사 답 왈,
 
227
“좋은 필묵이 많거늘 구태여 부러진 필묵을 사다가 무엇에 쓰리오.”
 
228
유복 왈,
 
229
“나는 빈한한 선비라. 값 적은 것을 사려 하나이다.”
 
230
하니, 장사 공경 왈,
 
231
“상공(上公)은 금방에 장원할 것이니 어찌 파필묵(破筆墨) 값을 받으리오. 결단코 받지 아니한다.”
 
232
하거늘, 유복이 마지못하여 받아 가지고 주인(主人)을 정하려 하고 돌아가다가 문득 바라보니 두부집이 있거늘, 비지를 사려 할 즈음에, 이때 두부 장사 마침 방문을 베고 잠이 들었더니 청룡이 구름을 타고 계화를 물고 가려 하거늘, 놀라 깨니 헌옷 입은 선비 비지를 사자 하거늘, 장사가 활인(活人) 두자를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문 왈,
 
233
“잠깐 보아도 선비 양반이신데, 비지를 사서 무엇 하시렵니까?”
 
234
유복 왈,
 
235
“본래 빈한한 고로 객중(客中)에 푼전도 귀하매 비지나 사서 요기(療飢)코자 하나이다.”
 
236
할미 불쌍히 여겨 왈,
 
237
“상공은 주인을 어디 정하셨나이까?”
 
238
하며 왈,
 
239
“상공이 이렇듯이 구차하시니 첩의 집이 비록 가난하오나, 조석(朝夕) 진지를 감당하올 것이니 과거나 잘 보옵소서.”
 
240
하고 정성으로 대접하거늘, 유복이 사례하며 감사하여 왈,
 
241
“내 형세에 푼전이라도 어려우니 잠시 고용(雇傭)이나 생애 삼아 지내다가 과거 구경이나 보고 내려가겠노라.”
 
242
하니, 할미 지성으로 강권(强勸)하여 선반(宣飯)을 상상(上上)으로 드리거늘, 유복이 마지못하여 받아먹고 도리어 편치 못하여 하며, 그렁저렁 과일(科日)이 당하니 과장 기구를 차려 과장에 들어가 자리를 얻지 못하여 민망하여 하다가, 한 곳을 바라보니 류형 김형이 자리를 광활(廣闊)이 점령하고 앉았으나, 저이들이 제 글을 짓지 못하여 남의 손을 빌어 과거를 보려 하고, 주안을 많이 차려 동접(同接)을 관대(寬待)하거늘, 유복이 마음에 반겨 그 접(接)에 들어가니, 천지간에 용납지 못할 놈이 유복을 보고 대로하여 꾸짖어 왈,
 
243
“요 거지놈이 어디로 들어왔느냐. 저놈을 어서 잡아내어라. 사람 많이 모인 것을 보고 쫓아 왔으나 저놈을 바삐 잡아내어라.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을 보고 왔으나 눈앞에 보이지 말라.”
 
244
연차(連次) 호령하니 유복이 분한 마음을 머금고 다른 곳에 가서 헌 거적을 얻어 깔고 앉았더니, 이윽고 글제 내어 걸거늘, 유복이 한번 보고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일천(一天)에 선장(先場)으로 바치고, 여관에 돌아와 방목(榜目)을 기다리고 있더라.
 
245
각설, 류형 김형 두 놈이 겨우 남에게 글장이나 얻어 보고 대방(代房)할 염치가 없어 즉시 발행(發行)하여 내려 가더라.
 
246
이때 호장 부처와 경옥 경란이 반겨 나와 영접하여 집에 들어가 술을 권하니 그 두 놈이 인리(鄰里) 친구를 청하여 즐기더라.
 
 
247
이때 경패 그 두 사람이 과거에 갔다가 무사히 돌아옴을 알고 행여 낭군을 과장(科場)에서 만나 보았는가 소식을 들으러 갔더니, 류형 김형이 바깥 사랑에서 호장에게 왈,
 
248
“유복을 장중(場中)에서 만나 끌어 쫓아 내었다.”
 
249
말을 한즉 호장이 듣고 고성(高聲)하여 왈,
 
250
“그놈을 잘 박대하였다.”
 
251
하고 박장대소(拍掌大笑)하더라.
 
252
이때 낭자 마침 그 지껄이는 말을 듣고 낭군이 장중에 무사히 들어감을 알고 기뻐하나, 그 두 놈의 소위(所爲)를 생각하여 심히 통분히 여기어 움집으로 돌아와 탄식하여 왈,
 
253
“세상에 몹쓸 놈도 있도다. 낭군이 타인과 달라 찾아갔거든 함께 과거를 보았으면 좋을 것인데, 도리어 만모(慢侮) 중에 무료를 주었으니 낭군인들 오직 통분하였으리오.”
 
254
하며, 개죽을 쑤어 놓고 먹고자 하되, 목이 메어 못 먹고 하늘을 우러러 축수하여 왈,
 
255
“유유청천(幽幽靑天) 일월(日月)은 굽어 살피소서. 낭군의 몸이나 무사 태평히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256
하고 못내 슬퍼하더라.
 
 
257
각설, 유복이 궐문 밖에서 방(傍)을 기다리더니, 이날 전하께옵서 시관(試官)을 데리시고 글을 고르시더니 홀연 유복의 글을 보시고 칭찬하사 왈,
 
258
“이 글은 만고(萬古) 충효를 겸하여 만장중 제일이라.”
 
259
하시고, 급히 비봉(祕封)을 개탁(開坼)하시니, 전라도 무주 남면 고비촌 신유복이라 하였거늘,
 
260
“장원랑(壯元郎)의 신유복을 입시(入侍)시키라.”
 
261
전명(傳命) 사알(司謁)에게 하교하시매, 사알이 예방(禮房) 승지(承旨)에게 인차(人次)로 전하니 승지가 사령으로 하여금 장원랑의 신유복을 등대(等待)하는 호명(呼名)을 시키었는지라.
 
262
정원 사령이 크게 불러 호명할 새, 금방 장원랑은 전라도 무주 땅에 사는 진사 신영의 아들 신유복이라. 넓은 장중으로 다니며 고성하여 여러 번 부르는지라.
 
263
신유복이 마침 궐문 밖에 있다가 이 소문을 듣고 일경일희(一驚一喜)하여 궐내로 들어가 복대(伏臺) 사은(謝恩)하오니, 전하 기뻐하사 유복의 손을 잡고 왈,
 
264
“네가 신유복이라 하니, 세대 손의 후손이냐?”
 
265
하시니, 유복이 복지(伏地) 주(奏) 왈,
 
266
“장절공의 구세 손이로소이다.”
 
267
전하 대희하사 칭찬하여 가라사대.
 
268
“그러하면 일등 명현(明賢)의 자손이라. 어찌 반갑지 아니하리오.”
 
269
하시고, 즉시 한림(翰林)을 제수(除授)하시고 청삼(靑衫) 옥패(玉佩)에 금안(金鞍) 준마(駿馬)를 사급(賜給)하시고, 실내를 진퇴(進退)하신 후에 무동(舞童) 창부(唱夫)를 앞세우고 청기(靑旗) 홍기(紅旗)를 받들며 옥저를 불고, 장안 넓고 넓은 대로로 할미집에 돌아오니, 할미 창황(蒼黃)히 나와 맞으며 못내 반기더라.
 
270
이러므로 삼일 만에 탑전(榻前)에 하직 숙배(肅拜)하니, 상이 사랑하사 출무(出務) 일당상(一堂上)을 제수하시고 즉시 이조 판서를 초대(招待)하사 웅주거읍(雄州巨邑) 유무궐(有無闕)을 물으시니, 판서 아뢰오되,
 
271
“수원이 유궐(有闕)하였나이다.”
 
272
상(上)이 즉시 유복으로 수원 부사(府使)를 제수하시고 가라사대,
 
273
“너의 신세 고단하고 가긍(可矜)하기로 외임(外任)을 주나니 즉시 도임(到任)하여 애민(愛民) 선정(善政)하라.”
 
274
하시거늘, 신유복이 복지 사배(四拜) 왈,
 
275
“소신(小臣)이 하향(遐鄕) 천생(賤生)으로 외임 중직(重職)을 감히 받사와 감당치 못할까 하나이다.”
 
276
상이 가라사대,
 
277
“너의 용모를 보니 만고 영웅이라. 이만 벼슬을 자랑하리오. 오래지 아니하여 나이 고굉지신(股肱之臣)이 될 것이니 바삐 고향에 내려가 조선(祖先)에 영화(榮華)를 뵈이고 수원에 도임하여 민정을 안찰(按察)하라.”
 
278
하시거늘, 부사 하직하고 여관에 돌아와 할미를 보고 치사(致謝) 왈,
 
279
“나는 할미 덕으로 내 몸이 귀히 되었으니 어찌 감사치 아니하리오.”
 
280
행장(行裝)으로부터 월자(月子)를 내어주며 왈,
 
281
“이것이 내 부인의 머리털이니 아직 일로써 정성을 표하라.”
 
282
하고,
 
283
“은혜는 후일(後日)에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 갚을 것이나 아직 약소(略少)한 표를 하노라.”
 
284
할미 사양 왈,
 
285
“그만 일로 어찌 은혜라 하리오. 하물며 부인의 털을 어찌 가지리오.”
 
286
하고 종시 받지 아니하거늘, 부사 하릴없어 도로 행장에 넣고, 수원 저이를 불러 분부하되,
 
287
“신연(新延) 하인은 경상도 상주 본댁으로 대령하라.”
 
288
하고 즉시 속포낭(贖布囊)을 만들어 홍패(紅牌) 품대(品帶) 계화 청삼(靑衫)을 섬에 넣어 질방 걸어지고, 주인 할미를 이별하고, 상주 본가로 내려온지라.
 
289
경패 낭군을 과거 장중에 보내고 날로 기다리더니 일일은 몽사를 얻어 낭군이 청룡을 타고 한림원(翰林院)으로 들어감을 보고 놀라 깨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가장 수상히 여겨 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더라.
 
 
290
이날 청조(靑鳥)가 날아와 울며 낭자를 향하여 반기며 자주 울거늘, 낭자 마음에 불안하여 낭군을 고대(苦待)하다가, 문득 노상(路上)을 바라보니 낭군이 오는지라.
 
291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전도(前途)에 나아가 낭군을 붙들고 낙루(落淚)하여 왈,
 
292
“낭군은 어찌하여 오늘에야 오시나이까?”
 
293
유복이 반겨 대 왈,
 
294
“이 섬을 가지고 들어갑시다.”
 
295
부인 왈,
 
296
“그런 것이야 밖에 둔들 누가 가져가오리까? 추후(追後) 들여갑시다.”
 
297
부사 왈,
 
298
“비록 섬일망정 일신(一身) 행장 의복이 그 속에 들었으니 어찌 허수히 두리오.”
 
299
하고 움 안에 들여놓고, 낭자에게 왈,
 
300
“시장하온데 먹을 것이 없나이까?”
 
301
낭자 대 왈,
 
302
“오늘 아침 얻어온 밥이 있사오나 차서 먹지 못하겠나이다.”
 
303
하고 내려놓으니, 부사 손으로 쥐어 먹으며 이르되,
 
304
“집에 쌀되나 있소이까?”
 
305
하니, 낭자 대 왈,
 
306
“쌀되나 있나이다.”
 
307
부사 왈,
 
308
“쌀을 정(淨)히 씻어 밥을 지라.”
 
309
하니, 낭자 내념(內念)에 헤오되,
 
310
‘오죽 배가 고파야 그리하는고.’
 
311
하며 밥을 지었거늘, 부사 그제서야 당상(堂上) 교지(敎旨)와 한림학사 수원 부사 교지와 홍패 계화며 청삼 품대 백옥홀(白玉笏)을 내어놓고 낭자에게 가로되,
 
312
“부인의 정성으로 구은(舊恩)이 망극하여 금방 장원급제를 하였사오며 전하께옵서 사랑하사 한림학사 출무 일당상에 수원 부사를 제수하신 고로 신연(新延) 하인은 이곳으로 오라 하고 내려왔나이다.”
 
313
낭자 이 말씀을 듣고 만심(滿心) 황홀하여 치하하여 왈,
 
314
“이는 하늘이 감동하심이요, 선조의 도우심이로소이다.”
 
315
하며 못내 즐기더라.
 
316
유복이 또 낭자의 머리털을 내어주니 낭자 문 왈,
 
317
“명지와 필묵 값을 어찌 감당했사오며 어찌 이것을 남겨 왔나이까?”
 
318
하니, 유복이 전후 수말(首末)을 낱낱이 말하니, 낭자 소(笑) 왈,
 
319
“사람 살 곳은 곳곳마다 있단 말이 옳도다.”
 
320
하며, 낭자 다시 문 왈,
 
321
“전일 과장에서 류형 김형 두 놈에게 욕을 보셨으니 오직 통분하셨으리오,”
 
322
분연(奮然) 탄왈(嘆曰),
 
323
“그 두 놈은 소만도 못한 놈이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렇지 못하련마는 만모(慢侮) 중에 무안(無顔)을 주었으니 어찌 통분치 아니하오리까?”
 
324
부사 낭자의 분하여 함을 보시고,
 
325
“시속(時俗) 사람이 부귀하면 빈천한 사람을 업수이 여기지 않는 법이거늘, 도시 이 팔자라.”
 
326
하며, 낭자에게 왈,
 
327
“그릇을 정히 부시고 밥을 담아다가 이리 올리라.”
 
328
하니, 낭자 나아가 이지러진 바가지와 깨진 사발에 밥을 담아 왔거늘, 부사 부인에게 돈을 주어 그 앞에 놓게 하고, 한림과 당상 교지와 수원 부사 교지를 벌려 놓고 홍패를 세우고 부사 머리에 오금(烏錦) 사모(紗帽)를 쓰고 그 위에 계화를 꽂고 몸에 유록(柳綠) 관대(冠帶)에 품대를 띠며, 손에 백옥홀을 쥐고 그 앞에서 국궁(鞠躬) 사배할 새, 낭자 부사의 동작함을 바라본즉 천상 선관이 양계(陽界)에 하강(下降)한 것 같은지라.
 
329
지금이야 어찌 방앗간에 있든 거렁뱅이로 알리오. 깊고 깊은 정과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낭군과 함께 사배하고 그 옆에 엎드렸는지라.
 
330
이때 마침 경옥과 경란이 각기 서방을 위로하다가 함께 문밖에 나와 산보도 하며 사면으로 방황하다가 건너편에서 난데없는 화광(火光)이 조요(照耀)한지라.
 
331
두 년이 서로 돌아보며 왈,
 
332
“저 건너편에 불빛이 조요한즉 저 거지 연놈이 무슨 작란(作亂)하는가 싶으니 우리가 가만히 건너가서 보고 오자.”
 
333
하며 도랑방자(跳踉放恣)한 두 년이 건너가서 문틈으로 엿보매 붉은 뭉치와 흰 뭉치를 좌우로 갈라 세워 놓고, 유복은 몸에 수박 빛 같은 옷을 입고, 관 같은 이상한 것을 쓴 머리 위에 무슨 꽃을 꽂고 두 거지가 함께 엎드렸는지라.
 
334
두 년이 그 거동을 보고 마음에 놀랍고 두려워 얼른 도로 건너와 호장 부처를 보고 왈,
 
335
“우연히 문밖에 나가본즉 건너편에서 화광이 조요하였기로 그 거지 연놈이 무슨 작란을 하는가 의심이 촉발(觸發)하여 그 움문 앞으로 가서 엿보온즉, 붉은 뭉치와 흰 뭉치를 좌우에 세워 놓았으며 밥 여섯 그릇을 벌려 놓고 그 앞에 엎드렸으니 반드시 우리 집을 망하게 하기로 방자하는가 봅디다.”
 
336
하매, 무장공자(無腸公子) 같은 호장 부처 이 말을 듣고 그러이 여겨 노기등등(怒氣騰騰)하여 왈,
 
337
“이 연놈의 심통을 보라. 일전에 쌀 도적질하려다가 매만 맞고 갔더니, 제 용통한 마음에 우리를 원망하고 우리 집을 망하게 하느라고 방자함이 분명하도다. 오늘은 건너가서 이 연놈을 죽여 후환이 없게 하리라.”
 
338
하며, 호장 부처 두 딸을 데리고 달음박질로 건너가 그 움문을 박차고 썩 들어가려 하다가 생각하되, 인지위덕(忍之爲德)이라는 문자를 홀연 생각하고, 상전벽해 수유개(桑田碧海須臾改)라 하였으니, 근본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저의 조상에게 고유(告由)하는 다례(茶禮)를 설행(設行)하는 거동을 보고, 그릇 방자함으로 지목(指目)된가 하여 저의하는 동작을 보아 조처하리라 하고, 그 잡것들을 문틈으로 엿본즉, 좌우 벽상에 붉은 뭉텅이와 흰 뭉텅이를 갈라 세워 놓고 유복의 부부가 정성껏 엎드렸는지라.
 
339
또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한 뭉치는 장원랑(壯元郎)의 홍패요, 한 뭉치는 수원 부사와 출무 당상 교지일 새, 유복이 몸에 유록 관대에 품대를 띠고 머리에 계화를 꽂고 손에 백옥홀을 쥐고 엎드렸거늘, 호장이 그 거동을 한번 보매 삼혼칠백(三魂七魄)이 산란하여 쥐죽은 듯이 숨을 조금도 쉬지 못하고, 가만히 집으로 돌아와 정신을 진정치 못하며 말도 이루지 못하고, 덜덜 떨기만 하는지라.
 
340
악독한 두 딸년이 악연(惡緣) 경황하여 왈,
 
341
“거지 연놈이 무슨 방자하였는지 이런 변이 났다.”
 
342
하며 요란케 하는지라.
 
343
호장이 두 딸년의 소동(騷動)함을 민망히 여기어 정신을 겨우 차리어 꾸짖어 왈,
 
344
“이년들아. 정신이 없이 잔말 말고 국으로 가만히 있거라. 큰 탈이 났으니 미구(未久)에 경들 치리라.”
 
345
하는지라.
 
346
사위와 딸년들이 그 호장의 걱정하는 말을 들으매 아무런 줄 모르고 길 가리키는 장승같이 우뚝하니 섰을 따름이라.
 
347
호장이 딸과 사위들을 제집으로 다 돌려보내고 제 처를 대하여 왈,
 
348
“이제는 크고 큰 변이 낫다.”
 
349
하며,
 
350
“이 일을 장차 어찌하자는 말이오. 저 건너편 움에 계신 사위님이 이번 과거에 장원 급제하신 후 한림학사로 출무 당상까지 하사 수원 부사를 하여 계시니, 이제 이 일을 두고 생각건대 본읍(本邑) 사또님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계신 양반이시라. 연전에 혼인 중매하시든 말씀을 들어 저 건너 사위님을 호의(好意)로 후대(厚待)하였으면 오늘 이런 큰 걱정이 없었으련마는, 내가 귀도 먹고 눈이 어두웠던 것이 아니요, 다만 교만하고 무식함으로 저리 영귀한 사위님을 몰라보고 혹독한 박대를 하였으니, 이제는 딸과 사위님을 무슨 면목으로 상대하리오. 만일 사위님이 나의 허물을 생각하실진대 나의 죄를 다 살리실지라.”
 
351
하며 후회막급(後悔莫及)하여 한탄(恨歎) 불이(不二)하여 지내더라.
 
 
352
차시(此時) 류형 김형 등이 신 부사(申府使)의 소식을 듣고 향자(向者) 과장에서 박대하던 일을 생각하매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덜덜 떨리고 정신이 혼미하여 아무 말도 못하며 머리를 매여 푹 숙이고 전당(典當) 잡아논 촛대와 같이 앉았더라.
 
 
353
각설 이때 경기도 수원 이방이 경저리(京邸吏)의 통기(通寄)한 신관 사또의 전령을 받아 보고 신연 절차를 준비하여 육방(六房) 관속과 관노(官奴) 사령을 다수 영솔(領率)하여 경상도 상주읍에 내도(來到)하여 신관 사또댁을 사면(四面)으로 찾아다니되, 아는 사람이 없더라.
 
354
이방이 민망하여 모든 관속을 사면으로 파송(派送)하여 가가호호(家家戶戶)로 다니며 남녀노소 없이 여러 사람에게 널리 물어 찾아다니더니, 마침 한 여인이 가리켜 이르되,
 
355
“저 건너편 움집에 사는 이가 신유복의 성명 가진 이밖에 없다.”
 
356
하거늘, 이방이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움집으로 건너가 문밖에서 별감(別監)을 불러 수원 신관(新官) 댁을 물으려 하더라.
 
357
이때 마침 신 부사 움집에 있다가 문밖에서 훤화(喧譁)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 신연 관속을 살펴보다가, 도로 들어가서 무지터진 관을 쓰고, 깃만 남은 도포를 입고 살만 남은 부채를 쥐고 나오며 관속들을 보고 왈,
 
358
“너희들이 수원 관속이냐? 신관 사또를 뫼시러 왔거든, 저 건너편 이 호장 집에 건너가서 물으면 자연 알리라.”
 
359
하고 움으로 도로 들어가는지라.
 
360
수원 신연 관속들이 할 일 없어 상주 호장의 집으로 찾아가 주인을 청하여 수원 신관 댁을 물으매 호장이 마지못하여 묻는 대로 대답하는지라.
 
361
수원 이방이 상주 호장을 대하여 왈,
 
362
“우리는 경기 수원 신연 이방이로다. 신관 사또께옵서 이곳 양반 신유복씨라 하옵는데, 그 사또께옵서 본댁으로 대령하라 전령하옵셨기로, 여러 하인을 데리고 와서 그 댁을 여러 날 널리 찾으되, 알 수 없사와 민망하옵더니 어느 여인이 가리켜 말하되, ‘저 건너 움에 있는 이가 신유복씨라 하며 그밖에 다른 이는 없다.’ 하옵기로 찾아가서 묻사온즉 그 움에 계신 양반이 말씀하시되, ‘여기 와서 물으면 자연 알리라.’ 하시기에 찾아 왔사오니 자세히 가르쳐 주옵소서.”
 
363
하니, 호장이 황공 변색(變色)하여 왈,
 
364
“과연 그 양반이 금방 장원 급제하사 수원 부사 하셨나이다.”
 
365
수원 이방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여러 하인을 데리고 움집으로 대령하는지라.
 
366
이날 신 부사 머리에 오금 사모를 쓰고 몸에 유록 관대를 입고 허리에 품대를 띠고 손에 백옥홀을 들었음에 위풍(威風)이 늠름하고 용모는 옥골(玉骨) 선관이 진세(塵世)에 하강한 것 같은지라.
 
367
이때 신 부사 움집 앞에 좌정하고 육방(六房) 관속과 사령 관노를 차례로 문안 현신(現身) 받는 절차를 거행하더라.
 
368
이때 상주 목사 신 부사의 소식을 듣고 대희하여, 즉시 본읍 이방에게 분부하여, 움 앞에 차일(遮日)을 널리 치고, 갖은 보진(寶珍)을 화려히 설비(設備)하며, 산진해미(山珍海味)로 갖은 요리를 다수 준비하여 다담상(茶啖床)을 올리게 하며, 악공과 기생을 다수이 보내어 부사의 부인과 본관의 부인을 모시게 한 후에, 본관이 위의(威儀)를 차리고 나와 신 부사를 대하여 과거하고 외임함을 치하하여 서로 즐길 새, 두 고을 관속이 좌우에 옹위(擁衛)하여 잡인(雜人)과 훤화(喧譁)를 금절(禁絶)하더라.
 
369
이때 수원 부사, 상주 목사에게 청하여 왈,
 
370
“이제 내 고향에 올라가 선영에 영분(榮墳)코자 하오나, 보진 가행(家行)이며 위의(威儀) 절차 차리올 예방(禮房) 공방(工房) 아전(衙前)이 부족하온지라. 귀읍 관속 중에 류형 김형은 세대 아전의 후손이온즉, 시배(侍陪) 거행(擧行)을 잘할 듯하오니, 그 두 아전은 잠시 빌리시면 영분(榮墳)시에 사용하겠으니 빌리시기 바라나이다.”
 
371
하매, 목사 대답하여 왈,
 
372
“그는 염려 마옵소서.”
 
373
하며, 류형과 김형을 등대(等待)시키라 하시매, 방자(幇子)가 이 호장의 집에 건너가서 두 사람에게 분부를 전하여 등대시키는지라.
 
374
목사 류, 김 양인에게 분부하여 왈,
 
375
“수원 사또께옵서 영분(榮墳)시에 너의 둘을 예방 공방의 소임을 정하여 빌리시라 하시기로 너희 등을 별도(別途)히 정하여 보내나니 너희 등은 각별 조심하여 영리하게 잘 거행하여라.”
 
376
하시고, 류형으로 예방을 정하시고, 김형을 공방으로 정하여 보내며 목사, 부사를 대하여 왈,
 
377
“예방 공방의 거행 선부(善否) 간에 상벌을 노형(老兄)이 자랑 조처하옵소서.”
 
378
하시는지라.
 
379
류, 김 두 사람은 본시 아전 소임을 띠었으매 어찌 목사의 명령을 거역하리오. 그 분부를 청령(聽令)하고 물러 나와 부사에게 문안 현신하더라.
 
380
이때 부사, 목사를 대하여 전후 감사함을 못내 치하하며 종일 즐기다가 날이 저물매 목사 관저(官邸)로 들어가라 하거늘, 부사와 부인이 목사와 부인을 각기 서로 분수(分手) 이별하더라.
 
 
381
각설 부사 모든 관속을 이 호장의 집으로 보내어 숙식하게 하고 죽장망혜(竹杖芒鞋)로 뒤 암자에 올라가니 대사 마주 나와 손을 잡고 치하하여 왈,
 
382
“상공(上公)이 영귀하였단 말은 풍편(風便)에 들었으나, 본래 이 몸이 산승(山僧)이 되옵기로 산문(山門)을 떠나 치하함을 고하지 못하였사오니 죄송만만이로소이다.”
 
383
부사 몸을 굽히어 답례하여 왈,
 
384
“소생(小生)이 이렇듯이 영귀함이 선생의 넓으신 덕으로 문호를 빛냈사오니 어찌 감사치 아니하오리까? 소생이 금번(今番) 수원에 도임한 후에 선생의 은덕을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 갚을까 바라나이다.”
 
385
하며, 석일(昔日) 회포를 말씀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밤을 지낸 후 이튿날 영분차(榮墳次)로 전라도 무주로 올라갈 새 무동(舞童) 창부(唱夫) 한 쌍과 옥저 한 쌍을 불리우매 풍악(風樂)이 낭자한지라.
 
386
이때 경옥과 경란이 신 부사의 행차를 구경하다가 류형과 김형이 시퍼런 장성 모시 직령(直領)을 몸에 붙였으며, 안성 죽갓을 푹 숙여 쓰고 설설 기어 앞으로 급급(急急)히 지나가거늘, 그 두 년이 서방의 거행하는 거동을 보고 마음에 부끄럽고 분히 여기어 왈,
 
387
“당초에 이렇게 귀히 될 줄 알았다면 우리가 부사로 인연(因緣)을 맺었다면 저와 같이 호강스러울 것이라. 어찌 극통(極痛)치 아니 하리오.”
 
388
하며, 후회막심(後悔莫甚)하더라.
 
 
389
각설 신 부사 무주 고향에 올라가 본즉, 가옥이 동퇴서붕(東頹西崩)되어 인적이 없고 그 앞에 다만 주점(酒店)만 두어 집이 남았는지라.
 
390
부사 마음에 비창(悲愴)하여 그 주점에 나아가서 밤을 지닐 새, 슬픈 마음이 비할 데 없어 은연중(隱然中)이 울며 석일(昔日)을 생각하고, 두어 창부를 데리고 길로 행하여 옥저를 불리우매, 창부 제 흥을 못 이기여 흥취 있게 잘 부니 기성(其聲)이 처량하여 슬픈 회포를 일층(一層) 감동케 하는지라.
 
391
부사 옛일을 생각하고 마음이 더욱 감창(感愴)하여 흘리나니 눈물이라.
 
392
곁에 늙은 여인이 저 부는 소리를 듣고 구경하다가 그 노인 마음이 자연 비감하여 눈물을 흘리는 줄 모르게 흘리거늘, 신 부사 수상이 여기어 문 왈,
 
393
“그대는 무슨 연고로 비회(悲懷) 안색에 나타나느뇨?”
 
394
그 사람이 여쭈오되,
 
395
“소인은 이 동리에 사옵더니 금일 영감마님 행차 중에서 저 소리를 들으매 자연 마음이 비감하여 낙루(落淚)함을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396
고하니, 부사가 그 말을 듣고 노색(怒色)을 띠어 가까이 청하여 물어 왈,
 
397
“그대가 이 동리에 오래 살았으면 신 진사님 댁 묘소와 가택(家宅)을 자세히 알 것이니, 나를 위하여 바로 가리키라. 내가 타인이 아니라 신 진사댁 자제로다.”
 
398
한즉, 그 노인이 그 말을 듣고
 
399
“당신이 유복씨오니까?”
 
400
부사 대(對) 왈,
 
401
“내 과연 그러하노라.”
 
402
하며,
 
403
“나의 이름을 어찌 아느뇨?”
 
404
노인이 여쭈오되,
 
405
“상공이 구 세에 이곳을 떠나신 후로 소식 존망(存亡)을 몰랐삽더니 이렇듯 영귀하여 돌아오심을 어찌 알았으리오. 상공 댁 문서까지 있나이다.”
 
406
하고 가져오거늘, 받아 보니 자기 전대(前代) 문서가 분명한지라.
 
407
부사 더욱 망극하여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탄식하더니, 도방(道傍)이 장차 밝으려 하거늘, 부사 모든 관속에게 분부하여 영분(榮墳) 절차를 차려 가지고 그 노인을 앞세우고 선산에 올라가 살펴본즉, 분묘 다 퇴붕(退崩)하여 형용만 남아 있고, 좌우 석물(石物)이 다 쓰러져 누웠는지라.
 
408
부사, 정신이 아득하여 일장(一場) 통곡에 기절하거늘, 좌우 하인들이 황망히 구원하더니 이윽고 부사 정신을 차리어 예로써 제물(祭物)을 갖추어 올리고 글을 지어 제(祭) 지낼 시
 
409
그 제문(祭文)에 하였으되,
 
410
“유세차(維歲次) 모년 모월 모일에 고애자(孤哀子) 신유복은 감소고우(敢昭告于) 현고(顯考) 진사(進士) 부군(府君) 현비(顯妣) 의인 임씨 양위(兩位) 영혼지하(靈魂之下) 하옵나이다. 불초자(不肖子) 명(命)도 기박(奇薄)하여 잉태 육 삭에 부친을 여의고, 또한 오 세에 모친을 여의고 혈혈단신뿐 이옵더니, 시비 춘매에게 의탁하였삽다가 하느님이 밉게 여기사 시비 춘매 또한 죽사오니, 의지할 곳이 없사와 유리개걸하여 다니옵다가, 남의 고용이 되어 하천(下賤)한 사역(使役)을 하옵는 중에 마음이 울적하여 그 집에서 도로 나와 개걸(丐乞)하다가, 경상도 상주에 이르니 마침 지도하는 사람을 만나 혼인을 정하여 주옵는데, 그 처덕(妻德)을 힘 입사와 몸이 영귀히 되어서 선조 신령을 다시 뵈옵고 일배주(一杯酒)를 드리어 아버님 어머님 영혼을 위로하오니, 선령(先靈)은 흠향(歆饗)하옵소서.”
 
411
고축(告祝)함을 필(畢)한 후에 방성통곡(放聲痛哭)하다가 기절하니, 좌우 하인이며 묘하(墓下) 친구 남녀노소 없이 설워 아니하는 이 없으며, 초목 금수(禽獸)라도 수색(愁色)을 머금은 것 같더라.
 
412
제사를 파한 후에 다시 제물을 가지고 춘매 분묘에 나아가 술을 부어놓고 제문 지어 제사 지낼 새, 그 제문에 하였으되,
 
413
“복(僕)은 유모 죽은 후로 갈 바를 알지 못하여 풍찬노숙(風餐露宿)하여 가며 유리 개걸하여 다니다가, 경상도 상주 땅에 이르러더니, 그 고을 원님께옵서 내 형용과 정경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실 뿐 아니라 친성(親姓) 같이 사랑하사 이 호장의 셋째딸을 억지로 혼인 중매되시어, 천행(天幸)으로 처의 덕을 입어 일신이 이에 영귀하여 유모의 분묘에 찾아왔나니, 유모의 혼령이 신명(神明)할 것 같을 지경이면 이런 줄 알련마는, 유명(幽明)이 현수(懸殊)함으로 면목(面目)을 상대하여 언어를 통(通)치 못하니, 심회를 펴지 못하매 슬픈 마음을 억제치 못 할지라. 복은 일후(日後) 황천(黃泉)에 가 유모를 만나면 은덕을 만분지일이라도 갚음을 천만 번 바라노라.”
 
414
하고, 방성대곡하여 기절 혼도(昏倒)하니 좌우에 보는 자 뉘 아니 불쌍히 여기며 그 덕성을 뉘 칭찬치 아니하리오.
 
415
제사를 파한 후에 부사, 이방을 불러 명령하여,
 
416
“일 내 선조의 분묘와 유모 산소에 개사초(改莎草) 치산(治山)과 석물(石物) 건축(建築)과 사당(祠堂)집 건축 절차를 등분(等分)없이 일체로 하여라.”
 
417
하더라.
 
418
이때 이방이 여쭈오되,
 
419
“사초(莎草)와 석물은 건축하려니와, 사당집 건축은 일자가 촉급(促急)하와 산력(散力)할 일이 아득하여이다.”
 
420
하매, 부사 도임할 일자를 생각하고 다시 분부하여 석물부터 세우라 하고, 묘하 백성을 불러 이르되,
 
421
“내가 도임 일자가 가까워 오래 있지 못할지라. 황금 수천 냥을 내어주나니, 여등(汝等)은 힘을 다하여 당집 두 좌(座)를 건축하되, 하나는 내 선조의 사당집이요, 또 하나는 유모의 사당집이니 각각 건축하여 사당집과 분묘를 성심(誠心) 수호(守護)하면 일후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너희 은혜를 후히 갚으리라.”
 
422
하니, 묘하 모든 하인이 그 심덕(心德)을 일제히 칭찬하며,
 
423
“영감마님 분부대로 거행하오리다.”
 
424
하더라.
 
425
부사 선조 분묘에 사배 하직하고, 유모 분묘에 장읍(長揖) 고별한 후에 묘하 백성을 불러 돈 수백 냥을 행하(行下)로 사급(賜給)하고 즉시 상주로 돌아올 새, 예방 류형과 공방 김형을 불러 분부하여 왈,
 
426
“너희 등은 먼저 이 호장의 집으로 가서 사처(私處)를 정하라.”
 
427
하시니 류형 김형 등이 사또의 분부를 청령하고 급히 떠나 호장의 집으로 돌아와서 음식과 보진 절차를 성비(盛備)히 준비하여 부사 행차를 기다리더라.
 
428
부사, 상주에 내도(來到)하여 호장의 중당(中堂)에 좌정(坐定)한 후에 호장 부처를 청하매, 호장 부처 황겁하고 전매(全昧)하여 감히 들어가지 못하다가, 그 영(令)을 거역지 못하여 그 앞에 나아가 복지 사배하고 머리를 숙여 복걸(伏乞) 사죄하거늘, 부사, 사람으로 하여 중당에 올려 앉히고 화평한 말로 위로하여 왈,
 
429
“그대는 나에게 장인이 되시니 장인에 허물을 어찌 혐피(嫌避)로 알리오. 허물치 마옵시고 마음을 안심하옵소서.”
 
430
하며, 그 부인을 청하여,
 
431
“그 부모께 뵈옵소서.”
 
432
하시니, 부인이 부모를 여러 해 걸리던 마음이 간절하나 부모가 찾지 아니하시고 겸하여 부사의 영(令) 없이 출입함이 부도(夫道)에 미안하여 정성(精誠) 지절(至切)을 오래하였으나, 부모를 날로 생각하던 차에 이런 기회를 만나매 일월(日月)을 다시 보는 듯하여 여취여광(如醉如狂)으로 만심환희(滿心歡喜)하여 새로 단장(丹粧)을 차리되, 큰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몸에 수포(繡布) 금상(錦上)에 명월패(明月佩)를 차고 손에 봉미선(鳳尾扇)을 쥐고 사인교(四人轎)에 들어앉으매, 기생 수십 명이 좌우로 옹위(擁衛)하였으니, 그 거동이 옛날 서왕모(西王母)와 요지연(瑤池宴)에 가는 듯하며, 월궁항아(月宮姮娥) 광한전(廣寒殿)을 올라가는 것 같으매, 관광자(觀光者)가 누가 칭찬 아니하며 누가 움 속에 있던 낭자로 알아보리오.
 
433
이렇듯이 호장 부처께 재배하여 왈,
 
434
“소녀 불초(不肖)하여 부모를 모시지 못하였사오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오리까? 금일에 자안(慈顔)을 다시 뵈오니, 죄송만만이로소이다. 어찌 다시 부모의 자안을 뵈올 줄 알았사오리까?”
 
435
하거늘, 호장 부처 그 딸의 사죄하는 말을 듣고 더욱 부끄럽고 황공 전매하여 머리를 푹 수그려 감히 입을 열어 회답(回答)지 못하더라.
 
436
부인이 또한 다시 두 형을 청하니, 경옥과 경란이 무안하고 황겁하여 어찌할 줄을 몰라 여취여광(如醉如狂)하여 비슥비슥 모퉁이 걸음으로 겨우 자리에 나아가 앉았으나 감히 거두(擧頭) 대면치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지용 토소같이 꼼짝없이 앉았더라.
 
437
부인이 두 형을 향하여 위로 왈,
 
438
“지나온 일은 도시(都是) 다 내 팔자라. 이제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소용무처(所用無處)이오니 형님들은 안심하고 괘념(掛念)치 마옵시고, 동생 간에 정의(情意)를 펴사이다.”
 
439
하며 술을 부어 부모 두 분께 드리고 크게 즐겨 지낼 새, 이때 부사, 류형 김형을 불러 분부하여 왈,
 
440
“너희는 각별 조심하여 예방 공방의 거행(擧行)을 소홀치 말며, 한만(閑漫)치 말고 착실히 거행하되, 만일 잘못 거행하면 장하(杖下)에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441
하니, 류 김 양한(兩閑)이 황공 전매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더라.
 
442
이때 호장이 대연(大宴)을 배설하고 산진해미로 제조한 진수성찬을 올리오매, 부사 부처와 호장 부처며, 경옥 경란이 각각 차례로 다담상을 받을 새, 부사 부처는 위엄이 단산(丹山) 맹호(猛虎)가 밥을 차고 앉았던 듯하며, 호장 부처와 경옥 경란이는 매 본 까투리 수풀 속에 엎드렸는 것 같으며, 류형 김형 등은 고양이 본 쥐 독 틈으로 기어가는 것 같더라.
 
443
이때 부사 좌중(座中) 경황을 살펴본즉, 호장 부처는 겨우 음식에 하저(下箸)하나, 경옥 경란은 각기 제 서방의 참혹한 정형(情形)을 봄에 일변 수참(愁慘)하고 일변 황공하여, 능히 저(箸)를 들지 못하거늘, 부사 그 거동을 보고 대로하여 나졸(邏卒)을 명하여 류형과 김형을 나입(拿入)하여 마당에 꿇리고 꾸짖어 왈,
 
444
“내 여등(汝等)에게 먼저 분부하여 신칙(申飭)하였거늘, 어찌 음식과 자리를 이렇듯이 부정하게 하여, 좌중 부인의 마음에 합당(合當)치 못하게 하여, 상을 받으시되 저를 들지 못하시니, 이러한 무안한 일이 없도다. 무엄(無嚴)한 너의 두 놈은 장하(杖下)에 죽이리라.”
 
445
하며 사령을 명하여 분부하여 왈,
 
446
“류형과 김형 두 놈을 차례로 형틀에 올려 매고 매를 치라.”
 
447
하시니, 사령들이 일제히 청령하고 가서 절차(節次)로 거행하며 매를 들고 달려들어 벼락치듯 한 개를 딱 붙이니 몸에 혼(魂)이 없고 정신이 산란하여 두 손으로 싹싹 빌어 왈,
 
448
“용서하여 잔명(殘命)을 살려 주옵소서.”
 
449
애걸하는지라.
 
450
부사 애걸하는 소리는 들은 체 아니하고, 수십 도씩 맹타(猛打)하고 다시 분부하여 왈,
 
451
“너의 놈들을 죽여 타인을 징계(懲戒)코자 하였더니 십분 용서하여 주거니와, 차후에는 각별 조심하여 잘 거행하여라.”
 
452
하고 물리치매 그 두 놈이 머리를 푹 숙이어 사례하며 물러 가더라.
 
453
이때 호장 부처는 두 사위 형벌 당함을 보고 넋이 없이 땅만 내려다보며, 경옥 경란은 저의 서방 맞는 양을 보고 더욱 혼불부처(魏不府體)하여 정신을 수습지 못하여 지내더라.
 
454
이때 부인이 부사 전(前)에 나아가 종용(慫慂)이 말씀하여 가로되,
 
455
“상공은 금일 두 사람을 치죄(治罪)하옵시기는 전일에 박대한 혐피(嫌避)로 처벌하신가 하나이다. 옛적에 한국(漢國) 한신(韓信)이는 도중(島中) 소년에게 욕을 보았으되, 왕후(王侯) 된 후에 그 소년을 청하여 벼슬을 시켰으니, 바라건데 상공은 고인(古人)의 행적을 효칙(效則)하사 그러한 마음을 풀어 버리시며, 또 겸하여 첩의 낯을 보아 특별히 용서하사 형제간에 윤기(倫紀)를 화목하게 하여 주옵심을 천만 바라나이다.”
 
456
하는지라.
 
457
부사 그 말을 듣고 깨달아 왈,
 
458
“내 어찌 이과지사(已過之事)를 생각하여 혐피하리오. 부인은 다시 염려치 마옵소서.”
 
459
하고, 이튿날 수원으로 올라갈 새, 상주 목사 멀리 나와 전별하매 부사, 목사를 향하여 청하여 왈,
 
460
“호장과 류형과 김형은 나하고 처족(妻族)이 되니 이안(吏案)에 제명(除名)하여 주옵소서.”
 
461
하거늘, 부사 왈,
 
462
“그 일은 부탁하신 대로 시행하오리이다.”
 
463
하고 창연(愴然)히 전별(餞別)하고 직소(職所)로 돌아와 그 세 사람을 이안에서 제명하더라.
 
 
464
각설 부사 호장 부처와 류형 김형을 청하여 가로되,
 
465
“내가 수원부에 도임한 후 인마(人馬)를 보낼 것이니 그대 등은 마음을 불안히 먹지 말고 인마가 이르는 대로 즉시 올라오라.”
 
466
한 후, 또한 부인이 부모와 두 형을 이별할 새 못내 결연히 분수 이별하더라.
 
467
부사는 금안준마(金鞍駿馬)에 높이 앉아 청기(靑旗) 밭고 오륙십 명 관속을 좌우로 벌려 세우고 부인은 쌍교(雙轎)에 앉았는데, 기생 수십 명이 쌍쌍이 시위하여 가매, 금교 유전과 풍악 소리는 운소(雲霄)에 사무치매 도로에 관광자(觀光者)가 여산여해(如山如海)하여 그 영귀함을 보고 누가 칭찬하고 흠선(欽羨)치 아니하리오.
 
468
부사 여러 날 만에 수원에 도달하여 도임하고 민정(民情)을 인의(仁義)로 다스릴 새, 불과 수년에 연년(年年) 풍등(豐登)하매 백성들이 태평하여 거리거리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더라.
 
469
이때 부사, 금은을 장수암으로 많이 보내어 법전(法殿)과 초막(草幕)을 일신(一新) 수보(修補)하게 할 차로 원강대사와 제승(諸僧)에게 은혜를 치사하고, 또한 중방(中房)으로 하여금 경성에 보내어 여관 주인 할미와 명지 장사며 필묵 장사 세 사람을 청하여다가 전일 은혜를 치사하고, 금은 천 냥을 나눠 주고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여 관대(寬待)하니, 그 사람들이 못내 하례(賀禮)하며 그 덕성을 축사(祝辭)하여 도리어 감사히 여기고 각각 돌아가더라.
 
470
부사 도임한 지 수년에 선치(善治)하는 예성(譽聲)이 자로하여 국내(國內)에 진동하거늘, 왕상께옵서 기특히 여기사 타읍으로 이직(移職)하게 하시더라.
 
471
수원 백성들이 원님이 체등(遞等)됨을 알고 수천 명 백성이 경성에 올라가 원류장(願留狀)을 비국(備局)에 정하였더라.
 
472
이때 왕상께옵서 더욱 기특히 여기사 직품(職品)을 돋우어 부사 신유복으로 하여금 유수(留守)를 제수하시고 수원을 떠나지 말라 하시더라.
 
473
이때 신 유수(申留守) 이 전지(傳旨)를 받자와 향탁(香卓)을 배설하고 북향(北向) 사배한 후에 국운(國運)을 축사(祝辭)하여 못내 즐기더라.
 
474
각설, 부사 인마(人馬)를 경상도 상주로 보내어 장인 장모와 류형과 김형 등을 청하여 데려올 새, 유수 특별히 처가, 족속을 청하여다가 부인으로 윤기를 화목케 하시니, 그 유수 신유복의 어진 덕성과 활달한 심지(心志)를 비할 데 없더라.
 
475
신 유수와 이 호장 간에 사실 아는 사람은 신유수의 넓은 덕성(德性)과 깊은 후의(厚意)를 칭찬치 아니하는 이 없더라.
 
476
신 유수 다시 도임한 후에 백성의 폐막(弊瘼)을 거세(巨細) 없이 십분(十分) 주의하여 사실대로 하후하박(何厚何薄) 없이 공결(公決)하여 주니 백성들이 찬양하여 왈,
 
477
“공정하고 인선(仁善)하신 양반은 많이 보았거니와 신명(神明)하시기 귀신 같으시며 인심을 감화하시기 특별하사, 악인이 변하여 선인이 되고, 도적이 변하여 양민(良民)이 되매, 산무도적(山無盜賊)하고 도불습유(道不拾遺)하며 야불폐문(夜不閉門)하고 민우재송(民憂載送)하니 신임 사또의 덕행으로 일읍이 태평 무사하니 공수(龔遂)와 황패(黃霸)의 행적(行蹟)을 다시 보는 듯하다.”
 
478
일컫더라.
 
479
이때 왕상께옵서 공정하고 청렴한 사람을 택하사 팔도 민정(民情)을 살피실 새, 마침 수원 치적(治績)이 제일이라.
 
480
왕상께옵서 더욱 만심환희(滿心歡喜)하사 신유복으로 전라 감사(監司)를 제수하시더니, 반년이 못 되어 다시 경상감사로 이직하시고 가라사대,
 
481
“경의 마음과 재조를 누년(累年) 시험하여 보매, 도처(到處) 치적이 석일 공수 황패에게 지내도다. 이번 경상도에 도임하거든 칠십이 주 수령을 임의로 출척(黜陟)하라.”
 
482
하시더라.
 
483
신 감사(申監司)는 본래 총명하고 영매(英邁)하여 매사를 이문목도(耳聞目睹)한 것 같이 공결(公決)하매 왕상께옵서 어찌 범인(凡人)으로 알으시리오.
 
484
신 감사 천은(天恩)을 축사(祝辭)하며 경상도에 도임하여 치적이 역연(亦然)하매 다시 병조판서로 부르시어 금위대장(禁衛大將)을 겸하게 하이시며, 그 부인의 가자(加資)를 돋우시어 정렬부인(貞烈夫人)을 봉하시더라.
 
485
이때 신유복의 위엄이 조정에 제일일 새,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뉘 아니 두려워할 자가 없더라.
 
 
486
각설, 이때는 명나라 무종(武宗) 황제 즉위 삼 년일 새, 조정에 충신이 없고 간신(奸臣)이 병권(秉權)하여 천자의 총명을 가리어 난일(亂日)이 상다(常多)하니 어찌 국가 태평하리오.
 
487
이때 마침 서번(西蕃)과 가달(加達)이 강성하여 몽고(蒙古)로 더불어 화친하여 세 나라가 동심합력(同心合力)하여 군사를 일으켜 중원(中原)을 칠 새, 서주(西州) 칠십여 성을 쳐 항복 받고 서평관(西平館)에 이르니, 관 지키는 장수 능히 저당(抵當)치 못하여 장계(狀啓)를 닦아 급히 올리거늘, 황제 대경(大驚)하사 급히 개탁(開坼)하여 보시니, 그 장계에 하였으되,
 
488
“서번과 가달이 군사를 거느려 먼저 서주 칠십여 성을 항복 받고서 평관에 이르렀사오니, 그 세가 태산 같사와 소장(小將)의 힘으로는 당치 못하겠사오니 급히 특별한 장수를 보내시어 성지(城址)를 구원하옵소서. 만일 지체하오면 서북은 도적의 땅이 되겠나이다.”
 
489
하였거늘, 황상(皇上)께옵서 남필(覽畢)에 대경하시어 만조백관을 모시어 그 장계를 보이시고 가라사대,
 
490
“도적이 이렇듯이 강성하매 뉘 능히 적병을 당하리오.”
 
491
하시니, 사마원극이 출반주(出班奏) 왈,
 
492
“신이 비록 재조 없사오나 한 번 싸워 도적을 함몰(陷沒)하고 국가에 근심을 덜까 하나이다.”
 
493
하거늘, 황제, 원극으로 대원수(大元帥)를 봉하시고, 왕균으로 선봉(先鋒)을 삼으시며, 양춘으로 부선봉을 삼으시고, 누관과 서형으로 좌우 익장(翼將)을 삼으시며, 군사 칠십 만을 도발(調發)하사 택일(擇日) 발행(發行)하라 하실 새, 기치(旗幟) 창검(槍劍)은 일월을 가리우고, 사람은 천신(天神) 같고 말은 비룡(飛龍) 같더라.
 
494
떠난 지 여러 날 만에 서평관에 다다라 적병과 대진(對陣)하고 접전(接戰)할 새, 가달의 장수 통골은 당세(當世) 명장이라. 뉘 능히 당하리오.
 
495
명진(明陣) 선봉장 왕균이 통골과 더불어 싸울 새, 십여 합(合)에 왕균의 기운이 쇠진(衰盡)하여 가매 통골이 더욱 승세(勝勢)하여 철퇴를 들어 왕균을 치니 거꾸러지는지라.
 
496
통골이 칼을 빼어 목을 갈기매 금광(金光)을 좇아 마하(馬下)에 내려지니 통골의 용맹은 나는 제비라도 미치지 못할러라.
 
497
통골이 의기양양(意氣揚揚)하여 진전(陣前)에 횡행(橫行)하여 크게 꾸짖어 왈,
 
498
“명진에 적수(敵手) 있거든 바삐 나와 내 칼을 받으라 하는지라.”
 
499
명진 대원수, 선봉장의 죽음을 보고 앙천(仰天) 탄식하며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좌익장 누관과 우익장 서형으로 더불어 대군을 휘동(麾動)하여 일시에 진전으로 나서며 크게 호령하여 왈,
 
500
“이 개 같은 오랑캐는 들으라. 네 강포(强暴)만 믿고 외람(猥濫)이 천위(天位)를 범하니 어찌 천도(天道) 무심(無心)하시리오. 이러함으로 하느님이 나를 내사 도적을 함몰하게 하셨으니, 너는 닫지 말고 목을 드리어 내 칼을 받으라.”
 
501
하며 달려드니, 통골이 크게 웃어 왈,
 
502
“너 같은 어린아이들은 무슨 잔말 하느냐.”
 
503
하며 싸울 새 십여 합에 승부 없더니, 통골이 분노하여 철퇴를 높이 들어 누관과 서형을 치니, 양장(兩將)이 일시에 마하에 내려지매, 사마원극이 황겁하여 본진으로 달아나는지라.
 
504
통골이 양장을 베어 들고 급히 원극을 따라 명진을 사살(射殺)하니, 명진 장졸의 머리 추풍낙엽(秋風落葉) 같은지라.
 
505
원극이 칠십만 대병을 통골의 손에 다 죽이고 목숨만 보전하여 필마단기(匹馬單騎)로 기주성에 이르러 자사(刺史)를 보고 지난 사실을 이르고, 장수를 발(發)하여 성을 굳게 지키고 즉시 패한 사실을 주달(奏達)하니, 황제 대경하사 조정을 모으시고 도적 파할 의논을 하실 새, 만조백관이 황겁하여 대답하는 자가 없거늘, 황제 창황망조(蒼黃罔措)하사 아무리 할 줄 모르시더니, 좌승상 최철이 주(奏) 왈,
 
506
“도적이 이렇듯이 강성하였사오나 조정에 지용(智勇)이 겸비한 장수 없고 다 백면서생(白面書生) 같사오니 가장 망극하온지라. 신의 소견에는 조선이 비록 소국이오나 명장이 많사오니, 폐하는 아무 염려 마옵시고, 조선으로 사신을 보내어 청병(請兵)하옵소서.”
 
507
하오니, 황상께서 청병하시기로 윤허(允許)하시더라.
 
508
좌승상이 황명(皇命)을 봉승(奉承)하여 사신을 조선으로 보낼 새, 사신을 불러 당부하여 왈,
 
509
“국세(國勢) 만분(萬分) 위급하였으니 그대는 급히 다녀오라.”
 
510
하더라.
 
511
사신이 황명을 봉승하고 조선국으로 향하여 가더라.
 
512
이때 조선국은 연년 풍등하여 백성이 격양가를 부르고, 조가(朝家)에서는 태평가를 부르니 이러므로 관민이 다 태평성대라 일컫는지라.
 
513
이때 왕상께옵서 만심환희 하사 문무백관(文武百官)을 거느리시고 여민락(與民樂) 풍류로 매일 연락(宴樂)하시는 시대라.
 
 
514
이때 마침 명나라에서 청병 자문(咨文)을 올리거늘 즉시 개탁하여 보시니, 그 글에 하였으되,
 
515
“명국 황제는 조선 국왕에게 두어 자 글을 올리나니, 지금 서번과 가달이 강성하여 몽고로 더불어 동심합력하여 서주 칠십여 성을 치고 서평관에 이르렀으니 그 형세 태산 같아서 국가 위태함이 조석(朝夕)에 있기로 구원함을 청하였으니, 한번 장졸을 빌리면 도적을 물리치고 종사(宗嗣)를 안보(安保)하겠나이다.”
 
516
하였거늘, 왕상께옵서 보시기를 다하시고 만조백관을 모아 명국에 구원병을 청하는 일에 대하여 의논하시니, 만조정(滿朝廷)이 묵묵부답(黙黙不答)하더니, 그 중 병조판서 신유복이 출반주 왈,
 
517
“지금 중국이 위태하여 구원함을 청하였사오니 구원을 보내지 아니하면 인국(隣國) 대접이 아니옵고, 가달이 만일 중국을 멸하오면 조선도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어려우니, 바삐 구원병을 보내어 중국을 구원하여 주고 조선의 위엄을 뵈옴이 좋을까 하나이다.”
 
518
왕상이 가라사대,
 
519
“경의 말이 옳으나 구원병을 영솔할 장수를 냄 직한 사람이 없고, 만일 갔다가 패하면 다시 원수를 맺을지라. 가달이 우리나라를 칠 지경이면 어찌 방어하리오.”
 
520
하시매, 병조판서 고쳐 주(奏) 왈,
 
521
“전하는 근심치 마옵소서. 신이 비록 재조없사오나 한번 나아가 가달과 서번과 몽고 세 나라를 쳐 파(破)하고 조선국 위엄을 세계에 떨칠지니 아무 염려 마옵소서.”
 
522
하거늘, 왕상이 가라사대
 
523
“경은 나의 수족(手足)이요, 국가에 충신이라. 만일 경을 타국에 보내고 일시(一時)인들 어찌 심신이 편하리오. 차라리 다른 신하를 택하여 보냄이 옳다.”
 
524
하시거늘, 병조판서 머리를 조아리며 여쭈오되,
 
525
“신이 망극한 천은을 입사와 벼슬이 일품(一品)에 이르렀사오니, 천은이 하해(河海) 같은지라. 서번과 가달과 몽고를 파하옵고 이름을 삼국에 빛내고 돌아오기를 바라나이다.”
 
526
하거늘, 왕상께옵서 사세(事勢)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으사, 병조판서 신유복으로 구원병 대도독(大都督)을 삼으시고 정병 삼천 명을 조발하사 중국 사신과 함께 발행하게 하시니, 신 도독(申都督)이 왕상께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 부인으로 전별할 새, 부인이 도독의 손을 잡고 가로되,
 
527
“만리타국에 구원장(救援將)으로 가시니 가장 망극하고 가련하오나, 대장부가 세상에 처하여 일변(一邊) 국가를 위하옵고, 일변 도탄(塗炭)에 든 불쌍한 백성을 건지어 이름을 죽백(竹帛)에 올리어 천추만세(千秋萬歲)에 유전(遺傳)하여 문호를 빛낼 일이 떳떳하거늘 어찌 수회(愁懷)를 생각하오리까?”
 
528
하며, 조금도 슬퍼하는 빛이 없고
 
529
“원로(遠路)에 무사히 성공하고 돌아오시기를 천만번 축수하옵나이다.”
 
530
하거늘, 도독이 부인의 말이 정대(正大)하고 사리에 절당(切當) 함을 탄복하며 분수 전별하고, 즉시 장졸을 영솔하여 발행할 새, 군율(軍律)이 엄숙하고 행오(行伍)가 정제(整齊)함이 사마양저(司馬穰苴)의 군율과 주아부(周亞夫)의 장략(將略)이며 제갈량(諸葛亮)의 용병함에 지날러라.
 
531
신 도독이 장졸을 영솔하고 행군하여 임진강을 건너 동파역에 숙소(宿所)하였더니, 이날 밤 삼사 경에 월색(月色)은 조요(照耀)하고 금풍(金風)이 소슬(蕭瑟)하여 사람의 객회(客懷)를 돕는지라.
 
532
도독이 잠을 이루지 못하여 군중으로 다니며 배회하더니, 문득 일위(一位) 노승(老僧)이 칡베 장삼을 입고 육환장(六環杖)을 짚고 완연(完然)히 오다가 도독을 보고 합장(合掌) 배례(拜禮)하여 왈,
 
533
“장군은 작별한 지 수년에 무양(無恙)하시나이까?”
 
534
도독이 마음에 의아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원강대사라.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답례하여 왈,
 
535
“선생이 어디에서 오시나이까?”
 
536
대사 다시 배례 왈,
 
537
“빈승(貧僧)이 마침 묘향산을 구경갔다 오는 길에 장군 행차가 이곳에 머무심을 듣고 반가이 뵈옵고자 왔나이다.”
 
538
하고, 소매에서 일봉(一封) 서간(書簡)을 집어내어 주며 왈,
 
539
“이제 장군이 전장으로 가시매 승패를 알지 못하여 가장 어려운지라. 중국에 한 도승(道僧)이 천봉산 봉선암에 있사오니, 이 편지를 전하옵고 전장에 도와달라 간청하옵소서. 봉선암에 계신 일행 대사는 빈승의 선생이시니, 천문지리(天文地理)와 육정육갑(六丁六甲)과 둔갑장신(遁甲藏身)이며 풍운조화(風雲造化)를 모를 것이 없사오니 특별한 정성으로 찾아가서 함께 나아가시면 적병을 어찌 근심하리오. 부디 허수히 알지 말고 성공하시고, 평안히 다녀옵소서.”
 
540
하거늘, 도독이 감격하여 사례 왈,
 
541
“이 도적이 강성하여 중국이 위태하오니 염려 무궁하옵는지라. 선생의 말씀 같을지니 어찌 감격지 아니하리오.”
 
542
하고, 선생에게 문 왈,
 
543
“오늘 밤을 함께 쉬어 정회(情懷)나 말씀하사이다.”
 
544
선생이 사양하여 왈,
 
545
“군중에서 군략(軍略)과 전술에 참모(參謀)함을 문답하려니와 어찌 차외(此外)에 무슨 정회를 담화하리오. 지금 이것이 작별이오니 장군은 성공하고 평안히 돌아옵소서.”
 
546
하고, 소매를 떨쳐 동편으로 향하여 가거늘, 잠깐 살펴본즉 걸음이 경첩(輕捷)하여 능히 따르지 못할러라.
 
547
도독이 하릴없어 선생의 전후 은덕을 생각하고 못내 사모하며 진중에 도로 와서 쉬고, 이튿날 장졸을 재촉하여 여러 날 만에 중국(中國) 지경(地境)에 다다라 천봉산을 물어 찾아갈 새 마침 일위 노승이 지나가는지라.
 
548
도독이 마음에 대희하여 그 중을 대하여 천봉산을 물은즉 대답하여 가리키되,
 
549
“저 건너 산이 천봉산이로소이다.”
 
550
하고 합장(合掌) 배례하고 가는지라.
 
551
사신을 먼저 보내어,
 
552
“황상께 주달(奏達)하여 근심하심을 위로되시게 하라.”
 
553
하고, 즉시 행군하여 천봉산에 다다라 산어귀에 유진(留陣)하고 군무사(軍務事)를 아장(亞將)에게 잠깐 위임(委任)하고 죽장망혜로 천봉산을 올라가며 두루 경치를 완상(玩賞)하여 봉선암을 찾아가다가, 한편을 바라본즉, 홀연 한 동자 상상봉(上上峰)에서 약을 캐다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거늘, 도독이 그 노래를 자세히 들으니, 그 노래에 하였으되,
 
554
“천지 요란하고 시절이 불운하다. 중원(中原)이 광대하여 인생이 많건마는 강포한 서북(西北) 도적 뉘라서 알 소냐? 세상이 번복(飜覆)하여 난세(亂世)가 되었던들 영웅이 바이없어 성덕(聖德)을 받들지 못하니, 옥야(沃野) 천지 넓은 땅이 호지(胡地)가 된단 말인가. 천봉산 구름 속에 대은(大隱)이 있지마는 세상이 무심하니 뉘가 능히 알아보며, 제갈량이 좋은 계교 흉중(胸中)에 묻혔으니 유황숙(劉皇叔) 없으니 찾을 이 바이없다. 산중에서 방황하는 저 장수는 대로(大路)를 잃고 협로(狹路)로 산중에 들어왔나. 일락서산(日落西山)하니 어서 바삐 돌아가소. 깊고 깊은 태산 험로(險路)에 모진 짐승 무서워라.”
 
555
천만 가지로 비양스럽게 조롱하는지라.
 
556
도독이 듣기를 다하고 그 동자를 향하여 문 왈,
 
557
“이 산중에 봉선암이 어디 있으며 일향대사 산중에 계시뇨?”
 
558
동자 답 왈,
 
559
“일향대사는 알지 못하거니와 봉선암은 이 위에 있나이다.”
 
560
하니, 도독이 바로 봉선암을 찾아가니, 아이 우물가에 앉아 약을 씻는지라.
 
561
도독이 문 왈,
 
562
“일향대사가 이 산중에 계시뇨?”
 
563
그 아이 답 왈,
 
564
“우리 스승이 약을 캐러 가셨다가 곤(困)하사 잠을 깊이 들으셨나이다. 귀객(貴客)은 부득이 보시려 하시거든 잠깐 머무소서.”
 
565
하고, 약을 씻어 가지고 암자로 들어가더니 이윽하도록 나아오지 아니하거늘, 도독이 하릴없어 암상(巖上)에 앉아 날이 저물도록 기다리되 아무 종적이 없거늘, 도독이 이유를 알 수 없어 민망히 지내다가 유황숙이 공명 선생의 잠 깨기를 고대(苦待)하던 일을 생각하여 태연히 안심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리더니, 이윽고 동자 나와 문 왈,
 
566
“귀객(貴客)이 어디 계시며 무슨 일로 대사님을 보려 하시나이까? 지금이야 잠을 깨셨으니 들어가 뵈옵소서.”
 
567
하는지라.
 
568
도독이 그 동자를 따라 사중(寺中)에 들어가보니 일향 노승이 서안(書案)을 의지하고 언연(偃然)히 앉았거늘, 도독이 대사를 향하여 배례(拜禮)하니
 
569
노승이 몸을 굽혀 답례하여 왈,
 
570
“존객(尊客)은 어디 계시며 무슨 일로 산중에 왕림하셨나이까?”
 
571
도독이 공손히 답하여 왈,
 
572
“소생은 조선사람으로서 구원장(救援將)이 되어 이 땅에 지나가다가 법사(法師)의 높으신 이름을 듣삽고 한번 뵈옵고자 하여 이와 같은 정결한 산중에 더러운 몸이 들어왔삽더니, 존사(尊師)께옵서 잠을 들어 계시기로 지금까지 기다렸나이다.”
 
573
노승이 도독의 말을 듣고 놀라는 체하여 동자를 꾸짖어 왈,
 
574
“귀객이 오신 지 오래되었으면 어찌 나를 즉시 깨우지 아니 하였느냐.”
 
575
하며, 동자로 하여금 특설(特設) 하탑(下榻)하여 예필(禮畢) 좌정한 후 석반(夕飯)을 올리거늘, 도독이 식상(食床)을 받아 본 즉 속반(俗飯) 사치가 없고 다만 소담하나, 식미(食味)는 양계(陽界)에는 없는 요리일러라.
 
576
식상을 물리고 반과(飯菓)를 먹은 후에 낭중(囊中)으로부터 원강대사의 서찰을 드려 왈,
 
577
“소생이 구원 대장으로 나아오나 지략이 부족하옵고 재조 천단(淺短)하여 능히 강포한 도적을 저당(抵當)치 못하겠나이다.”
 
578
하며,
 
579
“원강대사는 소생의 선생이시매 사제(師弟)의 정리(情理)를 생각하사 중로(中路)에 찾아와 일봉 서간을 닦아 주시며, 법사의 높으신 이름을 일러 주시기로 선생님의 도학을 자세히 들었나이다. 복원, 선생은 소생의 사정을 특별히 생각하사 한번 산문(山門)을 떠나 파적(破敵)함을 참모(參謀)하여 주시기를 천만 바라옵나이다.”
 
580
일향대사 흔연(欣然) 답 왈,
 
581
“노승이 산에 내려가지 아니한 지 만 오십 년이라. 무슨 정신이 있으리오. 원강이 잘못 지시하였도다.”
 
582
도독이 고쳐 간청하여 왈,
 
583
“소생이 어찌 그릇 들었으리이까? 지금 도독이 강성하여 중원을 침범하여 위태함으로 천자 대경하사 조선에 구원을 청하였사오니, 만일 도적이 중원을 함몰하면 명나라 사직이 일조(一朝)에 망할지라. 선생이 비록 산중에 계시나 이 산도 명국 땅이매 이용하시는 수토(水土)라도 국가에 관계가 되옵거늘, 어찌 국가를 방조(傍助)하지 아니 하시리이까?”
 
584
노승이 탄식하여 왈,
 
585
“소신이 어찌 사세(事勢) 그러한 줄 모르리오마는 제일은 내 나라를 사랑하고, 둘째는 원강의 부탁을 저버리지 못할지라. 작야(昨夜)에 천문(天文)을 살펴보니 규성(奎星)이 산문에 비취었기로 귀객이 오실 줄 알았노라.”
 
586
하고 다과(茶果)를 내 와서 서로 권하며 이슥하도록 담화하여 밤을 지내더라
 
 
587
각설, 일향대사 동자를 대하여 이 절을 잘 지키라 당부하고 산문을 떠날 새, 머리에 갈건(葛巾)을 쓰고 몸에 학창의(鶴氅衣)를 입고 처사(處士)의 모양으로 산하(山下)에 내려오니, 도독이 진문을 크게 열고 환영하여 들어감에 제장(諸將) 군졸(軍卒)이 군사례(軍士禮)로 행하더라.
 
588
이때 도독이 일향대사로 더불어 행군하여 떠날 새, 선생은 사륜거(四輪車)에 모시고 도독은 천리대완마(千里大宛馬)를 타고 행군하여 여러 날 만에 황성에 도달하여, 황제께 폐현(陛見)하오니, 황상이 도독을 한번 살펴보신즉 양미(兩眉)간에 천지조화와 일월광채 어렸으니 진실로 만고 명장이요 동서양 영웅이라.
 
589
천자 탄식하여 가라사대,
 
590
“조선이 소국이로되 저 같은 명장이 있어 내 나라를 구원하러 왔으니 어찌 도적 파하기를 근심하리오.”
 
591
하시고, 부탁하사 왈,
 
592
“짐이 불행하여 난세(亂世)를 당하여 사직이 위태함이 조석에 있으니 경은 충성을 다하여 짐을 도와 빛난 이름을 오국(吾國)에 진동케 하라.”
 
593
하시고, 황제 친히 장졸들을 조발하실 새, 신유복으로 대원수를 봉하시고, 백모황월(白旄黃鉞)과 청룡유성퇴(靑龍遊星槌)를 주시니 원수 고두사은(叩頭謝恩) 하는지라.
 
594
황제 또한 대장 혼연과 사마 도총판 서경필을 명초(命招)하사 왈,
 
595
“경등은 대원수와 동심합력(同心合力)하여 도적을 파하라.”
 
596
하시매 두 장수 청령(聽令)하고 물러나오거늘, 원수 장대(將臺)에 올라 제장 군졸을 점고(點考)한 후에 제장으로 더불어 단속하여 왈,
 
597
“황상께옵서 주신 상방검(尙方劍)을 들고, 여등은 만일 나의 영을 거역하는 자 있으면이 칼로 군법 시행하리라.”
 
598
하니 장졸이 일시에 청령하거늘,
 
599
이튿날 탑전(榻前)에 하직하려 할 새, 황제 친히 잔을 잡으사 술을 부어 원수를 주사 부탁하여 가라사대,
 
600
“도적이 강포하니 경적(輕敵)지 말고 수이 성공하여 돌아옴을 바라노라.”
 
601
하시니 원수 고두 사례하며 하직하고 물러나와 장졸을 영솔하여 서평관으로 행하여 가더라.
 
 
602
이때 가달이 통골과 더불어 서평관을 쳐빼앗고 기주에 다다르니, 기주 자사와 원극이 성문을 굳게 닫고 안병부동(按兵不動) 하거늘, 가달이 통골과 의논하되,
 
603
“여차여차(如此如此) 하자.”
 
604
약속을 정하고 밤 들기를 기다려 대군을 휘동(麾動)하여 사면으로 둘러싸며 성문을 깨치고 짓쳐 들어가니, 자사와 원극이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만난 것 같아 미처 손을 놀릴 새 없이 통골의 칼이 빛나며 자사와 원극의 머리가 떨어지는지라.
 
605
이러므로 통골이 양장(兩將)을 베고 성중(城中)을 엄살(掩殺)할 새, 주검이 태산(太山) 같고 피 흘러 강이 되었더라.
 
606
가달 등이 한번 싸워 서평관과 기주를 함락시키고 의기양양(意氣揚揚)하여 바로 황성으로 행하여 지나는 바에 대적할 자가 없더라.
 
607
숙주에 이르니 목사(牧使) 성을 버리고 달아나거늘 또한 숙주를 빼앗고 더욱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진주에 이르더라.
 
 
608
이때 신 원수(申元帥)의 대병이 진주에 다다르매 진주목사 구원병이 옴을 보고 대희하여 성문 밖에 나와 원수를 환영하여 드리거늘, 원수 진주에 이르러 밤을 지내고 이튿날 성에 올라 적세(敵勢)를 살펴본즉 무수한 도적이 만산편야(滿山遍野)하여 사면에 진을 쳤을 뿐이 아니라 군율이 엄숙하고 항오(行伍)가 정제(整齊)하여 굳음이 철옹(鐵甕) 같더라.
 
609
원수 적병 칠 계교를 의논할 새, 일향대사 왈,
 
610
“적진 항오가 분명하고 진세(陣勢) 엄숙하니 경적지 말고 접전(接戰)하되, 삼가 조심하옵소서. 적진에 반드시 명장이 있을 것이니, 내 한번 적진에 진위(眞僞)를 살펴본 후에 대적하라.”
 
611
하고 적세를 시험하여 보더라.
 
612
신 원수(申元帥) 갑주(甲冑)를 갖추고 천리대완마를 타고 진전(陳前)에 나서며 크게 꾸짖어 왈,
 
613
“무무(貿貿)한 도적아. 천위(天威)를 모르고 대국을 침범하니 하느님이 어찌 무심하시리오. 나는 조선국에서 온 구원장이라. 너희들을 씨 없이 함락시키리라.”
 
614
하거늘, 적장 통골이 이 말을 듣고 말을 내달아 대로 왈,
 
615
“소국(小國)에 어린아이거늘 감히 대국을 구원하려 한들 능히 나를 저당(抵當)할 손가. 부질없이 기운만 허비하지 말고 잔명(殘命)을 도모(圖謀)하려 하거든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616
하거늘, 신 원수 크게 웃으며 말을 내몰아 싸울 새 칠십여 합(合)에 불분승부(不分勝負)라. 통골이 고함하고 달려들거늘 원수 철퇴를 들어 통골의 가슴을 치니 통골이 몸을 날리어 피하고 다시 싸우니 양장의 재조는 서로 상당한 적수라.
 
617
검광(劍光)은 일월을 희롱하고, 말굽은 분분(紛紛)하여 능히 자웅(雌雄)을 불변치 못할러라.
 
618
진시(辰時)로부터 술시(戌時)까지 싸우니 그 우열(優劣)을 가히 알지 못할러라.
 
619
양진(兩陣) 장졸이 서로 바라보매, 뇌정벽력(雷霆霹靂) 같은 가운데에서 쌍룡(雙龍)이 여의주(如意珠)를 다투어 희롱하는 것 같고, 단산(丹山)의 두 범은 밥을 다투어 태산을 움직이는 듯하며 정신이 아득하여 바라보기 엄위(嚴威)한지라.
 
620
일향대사 양장의 싸움함을 보다가 쟁(錚)을 울려 군을 거두오니, 양장이 각각 본진(本陣)으로 돌아가더라.
 
621
원수 문 왈,
 
622
“선생은 무슨 일로 쟁을 치시어 소장을 부르셨나이까?”
 
623
선생이 답 왈,
 
624
“원수의 검술도 비상하오나, 적장의 검술도 당시 영웅이라. 힘으로 잡을 것이 없다.”
 
625
하고,
 
626
“묘한 계교 있노라.”
 
627
하며, 제장 군졸을 불러 계교를 각각 가르쳐,
 
628
“번진 사면에 매복하였다가 여차여차하라.”
 
629
하니 제장 군졸이 장령(將令)을 듣고 각각 신지(信地)로 가더라.
 
630
이튿날 적장 통골이 진전에 횡행(橫行)하며 크게 외쳐 왈,
 
631
“어제 미결(未決)한 싸움을 결단(決斷)하자.”
 
632
하거늘, 원수 노기등등(怒氣騰騰)하여 맞아 싸워 오십여 합에 이르러 원수 거짓 패하는 체하고 본진으로 달아나거늘, 통골이 승세(勝勢)하여 급히 따르더니, 통골이 명진(明陳)에 들며 대무(大霧) 일어나고 흑운(黑雲)이 일어나며 천지를 분변(分辨)치 못하는 가운데, 좌우 복병(伏兵)이 일시에 일어나며 원수 급히 말을 몰아 나와 치니, 통골이 비록 영웅인들 어찌 벗어나리오.
 
633
통골의 정신 아득하여 미쳐 손을 놀리지 못하여 원수의 칼이 빛나며 통골의 머리 검광을 조차 떨어지는지라.
 
634
이윽고 천지 명랑하거늘, 원수 선생의 도술(道術)을 못내 탄복하며 사례하고 통골의 머리를 원문(轅門)에 달고 호령하더라.
 
635
가달이 통골의 머리가 원문에 매달림을 보고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앙천(仰天) 탄(嘆) 왈,
 
636
“우리가 동병(動兵)하기는 통장군의 지략을 믿고 중원을 정벌하였더니, 우리 운수 불행하여 명장을 잃었으니, 다시 뉘를 믿고 천하를 의논하리오.”
 
637
하며 탄식하거늘, 서번장 위골대와 몽고국 대장 설만춘이 일시에 여쭈오되,
 
638
“대왕은 근심치 마옵소서.”
 
639
위골대, 말을 내몰아 크게 외쳐 왈,
 
640
“너를 잡아 통장군의 원수를 갚으리라.”
 
641
하며 달려들어 싸움을 돋우거늘, 원수 대로 하여 맞아 싸워 십여 합에 이르러 원수에 칼이 빛나며 위골대의 머리 마하(馬下)에 떨어지매, 설만춘이 또한 창을 들고 달려들어 싸움을 돋우거늘 원수 일 합에 설만춘을 베어 들고 적진 중에 좌충우돌(左衝右突)하니, 가달 등이 진문을 굳게 닫고 나지 않거늘 원수 본진으로 돌아오니 선생과 제장이 그 용맹을 못내 칭찬하더라.
 
642
이때 가달과 서번이 몽고와 더불어 의논을 할 새,
 
643
“적진의 재조를 보니 천지조화를 가져는지라. 가벼이 대적지 못할 것이니 오늘 밤에 가만히 잠들기를 기다려 명진을 겁측하여 적진을 사로 잡으라.”
 
644
하고 계교를 정하더라
 
645
이날 마침 명진에서 장졸을 모아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즐기더니, 홀연 광풍이 이러나 깃발이 험하게 부치니, 일향대사 고이 여겨 점괘를 버리다가 대소 왈,
 
646
“도적이 오늘 밤에 우리 진을 겁칙하리라.”
 
647
하고 제장을 불러,
 
648
“여차여차하라.”
 
649
단속하였더니, 마침 밤이 삼경(三更)이라 과연 적병이 달려 들거늘, 원수 제장으로 더불어 일시에 나와 엄살(掩殺)하니 적진에 머리 추풍낙엽(秋風落葉) 같더라.
 
650
서번과 가달이 군을 패하고 겨우 잔명만 보전하여 본진으로 돌아와 탄식하여 왈,
 
651
“무죄한 장졸만 죽이고 성공치 못하였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652
하니, 제장이 일시에 여쭈오되,
 
653
“적장의 용맹은 경적지 못하리라 하시나 통골의 아들 통각이 비상한 재조를 품었으니 어찌 제 부친의 원수를 생각지 아니하리오. 반드시 힘을 다하여 적장을 잡을 것이리다. 이밖에 다른 계교 없사오니 급히 통각을 청하여 의논함만 같지 못하다.”
 
654
하거늘, 서번과 가달이 대희하여 즉시 사자(使者)를 보내어 통각을 청한지라.
 
 
655
이때 통각이 제 아비를 전장에 보내고, 주야(晝夜)로 승첩(勝捷)함을 기다리더니 문득 사자 부음(訃音)을 가지고 와 전하고 가달의 글월을 올리거늘, 통각이 대경 망극(罔極)하여 즉시 신위(神位)를 배설하고 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하매, 금강도사 통각의 사정을 불쌍히 여겨 왈,
 
656
“네 부친의 용맹이 세상에 으뜸이더니 명장 손에 죽었으니 명장은 범상(凡常)한 장수가 아니라.”
 
657
하고, 또
 
658
“스승이 없을 것이요, 겸하여 강력(强力)이 부족하고 별 조화 없을 것이라.”
 
659
하고,
 
660
“내 전세(戰勢)에 나아가기 싫으나 그대를 홀로 보냄이 미안한즉 함께 가리라.”
 
661
하고 통각의 집으로 돌아와 행장을 차려 작반(作伴)하여 갈 새, 통각 누이 벽옥이 통각으로 더불어 금강도사에게 십년 재조를 배워 검술이 비상하고 조화 무궁하여 풍운을 타고 사해 팔방으로 출입하는지라.
 
662
벽옥이 또한 작반(作伴)함을 청하여 왈,
 
663
“부모의 원수 갚기는 남녀 간에 분별이 있사오리이까? 함께 나아가 부친 원수를 갚고 적장의 간을 내어 부친의 고혼(孤魂)을 위로하옴이 옳사오니 모친은 만류(挽留)치 마옵소서.”
 
664
하거늘, 그 어미 기특히 여겨 왈,
 
665
“네 충성과 효성이 지극하니 어찌 성공치 못하리오. 속히 보수(報讎)하고 돌아오라.”
 
666
하매 벽옥이 어미에게 하직하고 통각과 도사로 더불어 작반(作伴)하여 가달의 진에 이른지라.
 
667
이때 신 원수 날마다 싸움을 재촉하여 질욕(叱辱)하되,
 
668
“가달 등이 진문을 닫고 요동치 아니하나이다.”
 
669
하거늘, 선생 왈,
 
670
“거야(去夜)에 천문을 살펴본즉, 서방으로서 은은한 자성(觜星)이 적진에 비치었으니 분명히 특별한 명장 있어 적진을 도움이니, 원수는 삼가 조심하라.”
 
671
하더라.
 
672
이때 마침 금강도사와 통각과 벽옥이 사신을 따라옴을 보고 가달과 서번이 대희하여 멀리 나가 금강도사와 통각을 환영하여 진중으로 돌아오더라.
 
673
통각이 진중에 들어가 통곡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튿날 진전에 나와 크게 불러 왈,
 
674
“적장은 바삐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나는 통장군의 아들 통각이라 내 너를 결단코 죽여 우리 부친의 원수를 갚으리라.”
 
675
하며 달려 들거늘, 원수 대로하여 꾸짖어 왈,
 
676
“너의 아비가 무도(無道) 불의(不義)하여 천위를 범하다가 목 없는 귀신이 되었으니, 내 칼은 본래 사정이 없으니 네 또한 죽기를 재촉하니, 한 칼로 부자 동참(同斬)이 가련하다.”
 
677
하고 맞아 싸울 새, 팔십여 합에 이르러는데 신 원수 칼을 들어 통각의 말을 찌르니, 말이 소리를 벽력(霹靂)같이 지르고 본진으로 닫거늘 원수 따르려 하거늘, 일향대사 쟁을 쳐 부르는지라.
 
678
원수 하릴없어 본진으로 돌아와서, 쟁 치던 이유를 물으니 선생 왈,
 
679
“적장이 비록 패하였으나, 적진이 안전하고 항오 분명하여 굳기가 철옹 같거늘 어찌 경적하리오. 원수 적장을 따라감이 해로울 듯하기로 쟁을 쳐 군을 거둠이라.”
 
680
하더라.
 
681
이때 금강도사 왈,
 
682
“내 적장의 지략(智略)과 용맹을 보니 당세 영웅이라. 힘으로는 대적지 못할 것이니 내 마땅히 조화로 잡으리라.”
 
683
하고,
 
684
“종이를 나누어 맹호(猛虎) 삼천을 만들어 각각 신장(神將)을 접(接)하여 싸움을 돕게 하리로다.”
 
685
하고 발기(發起)를 기다리고 있더라.
 
686
이때 일향대사 원수를 불러 왈,
 
687
“내 적진을 살펴본즉 운무(雲霧)가 적진을 옹위(擁衛)하고 살기(殺氣) 충천(衝天)하니 반드시 도인 있어 계교를 꾸미는 것 같으니, 내일은 부디 경적지 말라.”
 
688
하고 목룡(木龍) 삼천을 만들어 풍백(風伯)을 호령하여 싸움을 돕게 하더라.
 
689
이튿날 통각이 진전에 나서며 싸움을 돕거늘, 원수 나와 싸워 불과 수합(數合)에 광풍이 대작(大作)하며 난데없는 짐승이 맹호 삼천을 몰아 들어오니, 맹호 불덩이를 토하며 달려 들으니 명진 장졸이 황겁하여 감히 대적지 못하고, 원수 또한 수족(手足)을 놀리지 못하거늘, 일향대사 양진(兩陣) 승패를 살펴보다가 급히 풍백(風伯)을 불러 호령하여, 목룡 삼천을 몰아 적진을 헤치고 들어가니, 뇌정벽력(雷霆霹靂)이 천지진동하고 얼음덩어리를 날려오니, 적진 중에 범과 장졸이 얼음 우에서 다리를 벌벌 떨고 무서워 감히 싸우지 못하거늘, 자세히 살펴본즉 범의 몸이 다 종이인 고로 비를 맞아 시신(屍身)도 없더라.
 
690
그제야 원수 풍백을 호령하여 통각을 성문 밖에서 베고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며 크게 즐겨 하더라.
 
691
이때 벽옥이 구름을 올라타고 적진에 이르니 오라비 벌써 죽었는지라.
 
692
대경 통곡할 새, 차시(此時) 금강도사 벽옥에게 일러 왈,
 
693
“그대 검술이 비상하니, 오늘밤에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베혀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를 갚으라. 적진에 기이한 장수와 신기한 도사가 있어 조화 무궁하니 인력으로 잡지 못할지라.”
 
694
하더라.
 
695
벽옥의 연(年)이 십팔 세라. 이날 밤 들기를 기다려 비수(匕首)를 몸에 품고 무지개를 타고 적진을 향함에 금강도사도 보검(寶劍)을 들고 풍운(風雲)에 쌓이여 들어 가더라.
 
696
이날 일향대사 천문을 살펴본즉, 탐랑성(貪狼星)이 살기 만천(滿天)하여 명진에 비치었거늘 일향대사 원수를 청하여 왈,
 
697
“금일 밤에 적진에서 자객(刺客)을 보내어 원수를 해하고자 하리로다.”
 
698
하고, 즉시 초인(草人)을 만들어 원수의 옷을 입히어 장대(將臺)에 앉히고 좌우에 매복하여 풍백과 신장에게 하령(下令)하여 때를 기다릴 새,
 
699
적진으로부터 흰 무지개 한 줄 뻗치거늘, 일향대사 원수로 더불어 당상(堂上)에 앉아 둔갑술(遁甲術)을 베풀어 몸을 감추고 살펴보더니 벽옥이 무지개를 타고 공중으로 내려와 동정을 살피되 인적이 없거늘, 바로 장대에 올라와 원수 앉았음을 보고 달려들어 칼을 빼어 가슴을 찌르고, 금강대 공중에서 내려와 보검을 빼 들고 원수의 목을 치려 할 즈음에,
 
700
일향대사 방포일성(放砲一聲)에 풍백을 호령하니, 좌우 복병이며 신장(神將) 신병(神兵)이 일시에 달려들어 금강도사와 벽옥을 결박하여 바치거늘, 일향대사와 원수 장대 높이 앉아 금강도사와 벽옥을 꿇리고 고성 대질(大叱) 왈,
 
701
“너는 늙은 놈이 무슨 재조 있기에 전장에 나와 반적(叛賊)을 도와 임자 있는 명국을 요란케 하느냐.”
 
702
금강도사 애걸 사죄 왈,
 
703
“빈도(貧道)는 산중에 묻혀 뫼를 벗을 삼고 세월을 보내더니, 저 계집은 통각의 누이이온데 일찍 빈도를 따라 인간 검술을 배웠삽기로, 저의 남매가 보수(報讎)하기를 간청하오매, 사제 간의 의리를 생각하고 외람(猥濫)히 천위를 범했사오니 죄는 만사무석(萬死無惜)하오나 잔명(殘命)을 살려 주시면, 산중에 묻혀 다시 세상에 나아가지 아니 하오리다.”
 
704
하며 손을 묶어 애걸하거늘, 일향대사 왈,
 
705
“너를 마땅히 죽일 것이로되 특별 용서하나니 다시 외람한 뜻을 두지 말라.”
 
706
하고, 맨 것을 끌러 놓으니 도사가 백배사례(百拜謝禮)하고 풍운(風雲)을 타고 바로 애매산을 향하여 가더라.
 
707
또한 벽옥을 꾸짖어 왈,
 
708
“가달과 네 아비는 무도하여 중국을 침범하다가 명천(明天)이 밉게 여기사 죽었거늘, 천의(天意)를 모르고 죽기를 재촉하니 어찌 애달지 아니하리오. 그러하나 너는 살지 못하리니 나를 한(恨)치 말라.”
 
709
하고 무사를 명하여 내어 베어,
 
710
“후인(後人)을 징계하라.”
 
711
각설 원수 대군을 거느려 싸움을 재촉할 새, 가달 등이 벽옥의 죽음과 도사의 도망함을 보고 망극하여 서로 의논 왈,
 
712
“이제는 별도리 없으니 대적지 못하리라. 사생(死生)이 경각(頃刻)에 달렸으니 차라리 항복하여 목숨을 도모함이 옳다.”
 
713
하고, 가달과 서번이 몽고와 더불어 목을 매여 진전에 나와 항복하며 잔명을 빌거늘, 원수 대로 왈,
 
714
“너희 등이 강포만 믿고 대국을 침범하다가 형세 위급하매 목숨을 도모코자 항복하니, 너희는 신의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놈이라. 반드시 죽일 것이로되 명이 지중하여 십분 용서하여 살려 보내니 이후는 다시 반심(叛心)을 두지 말라.”
 
715
하고, 항서(降書)를 받든 후에 각각 놓아보내니, 가달 등이 천은을 사(謝)하며 원수며 일향대사를 향하여 백배사례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철비(鐵碑) 두 좌(坐)를 세워 그 은덕을 기념하게 하며 금은 채단(綵段) 수 백 차(車)를 드려 왈,
 
716
“원수의 태산 같은 덕택으로 잔명을 보전하여 돌아왔사오니, 하해(河海)같은 성덕을 어찌 다 측량하여 형언(形言)하오리이까?”
 
717
하며,
 
718
“머리를 백번 두드리고 사례하나이다.”
 
719
하였더라.
 
720
원수, 가달과 서번과 몽고 삼국에서 보낸 채단을 내어 명국 장졸들과 조선 장졸들에게 나눠 주고 승전고를 울리고, 즉시 황제께 누차 승전 첩서(捷書)를 올린 후에 주육(酒肉)을 많이 준비하여 잔치를 지낼 새, 원수, 제장 군졸을 대하여 왈,
 
721
“금번 승전함은 그대 등의 충성을 힘입어 중국의 위엄을 삼국에 진동케 하였으매 한 잔 술로 치하(致賀)하노라.”
 
722
하니, 모든 장졸이 원수를 향하여 왈,
 
723
“장졸 간 상한 자 없이 강포한 도적을 함락시키사 국가의 위엄을 동서양에 진동케 하여 주시고, 도탄(塗炭)에 들었던 백성을 건지시고 위태하였던 중원 종사(宗祀)를 안전케 하여 주셨다.”
 
724
하며, 제장 군졸이 일시에 백배사례하며 원수를 향하여 천세(千歲) 천세 천천세라 축사(祝辭)하더라.
 
 
725
차설(且說) 이때 잔치를 마치매 다시 승전고를 울리며 황성에 돌아올 새 경향(京鄕)간 대소 관원이 지경 대후(待候)하매 위엄이 오국(吾國)에 진동하더라
 
726
각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웅호걸이 자고 급금(自古及今)하여 많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종말까지 역사를 살펴보면 실패한 사람이 많건마는, 신 원수의 역사 열람(閱覽)하여 본 즉 재조는 천 사람에 지나가고, 지혜는 만 사람에 지나며, 용맹은 고금에 열대(列隊)하고 겸하여 충의가 공전절후(空前絕後)하겠으니, 동서양의 영웅호걸들을 슬하에 꿇릴 만한 인물일러라.
 
727
고언(古言)에 하였으되, 인걸지령(人傑地靈)이라 하더니 자고급금(自古及今)하여 조선 동천(東天)에 특별한 영웅이 배출하니 금수강산(錦繡江山)일 새 분명하더라.
 
 
728
각설, 일향대사 원수의 손을 잡고 작별하여 왈,
 
729
“노신(老臣)이 산문(山門)을 이별하고 원수와 더불어 전장에 구치(驅馳)하온 지 오래되매 마음이 자연 울울하외이다. 오늘 이 땅에 서로 전별(餞別)이 되오니 가장 창연(愴然)하외이다. 그러나 원수의 지극한 덕성과 성심을 생각하면 결연한 회포를 어찌 다 성언(成言)하오리이까? 원수는 원로(遠路)에 부디 태평이 가시옵소서.”
 
730
하며 말을 마치매 소매를 떨치고 몸을 솟구쳐 공중에 오르니, 그 간 바를 모르더라.
 
 
731
차설, 원수, 선생을 이별하고 마음을 진정할 수 없으나 하릴없어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 후 황성에 도달한즉, 황상께옵서 백관을 거느리시고 이십 리 밖에 동가(動駕)하사 원수를 기다리시는지라.
 
732
원수 말에서 내려 용안(龍顔)을 뵈오니 황상께옵서 원수의 손을 잡으시고 승첩(勝捷)함을 못내 칭찬하시더라.
 
733
원수, 가달과 서번과 몽고 삼국에 받은 항서를 쌍수(雙手)로 바치며 주달(奏達)하여 왈,
 
734
“폐하의 넓으신 성덕을 입사와 도적을 파하였사오나 하정(下情)에 기뻐하옵나이다.”
 
735
황상이 대희하사 왈,
 
736
“경의 충심 곧 아니더면 종사에 위태함을 어찌 면하였으리오. 경의 공을 의논하자면 하해(河海)가 얕을지라.”
 
737
하시며 벼슬을 돋우어 위국공(衛國公)을 봉하시고,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시키시니 원수 황공하여 고사불수(固辭不受)하되, 종시 불윤(不允)하시온즉 하릴없어 사은숙배(謝恩肅拜)하더라.
 
738
황상께옵서 원수를 사랑하사 황성 남문 밖에 충렬비를 광장(廣壯)하게 세우고 생사당(生祠堂)을 건축하여 사시(四時) 향촉(香燭)을 풍비(豐備)하게 하사 만세에 유전(遺傳)하게 하시고 금은 채단을 많이 상사(償賜)하시고, 조칙(詔勅)하여 가라사대
 
739
“경은 짐과 평생을 같이 누리리라.”
 
740
하셨는지라.
 
741
위국공 겸 병부상서 신유복은 표(表)를 닦아가 천폐(天陛)에 올리니 그 글에 하였으되,
 
742
“소신이 본시 조선 국왕을 섬겼사오니, 신의 사정을 깊이 하촉(下觸)하사 소대지임(小大之任)을 갈아 주시면 돌아가 국왕이 주소(晝宵)로 신을 기다리고 바라는 마음을 위로하여 사군(事君)하는 신자의 도리를 밝혀 주소서.”
 
743
하였더라.
 
 
744
차설 황상께옵서 위국공의 굳은 마음을 아시고 하릴없어 비답(批答)하여 가라사대,
 
745
“경의 소대지임(小大之任) 중에 작위(爵位)는 걷지 않고 다만 병부상서를 갈아주니 경은 안심하라.”
 
746
하시며 다시 조칙(詔勅)하여 가라사대,
 
747
“경은 양국 충신이니 조선에 나아가되, 일년 일차(一次) 조회에 참례(參禮)하여 서로 만나 보아 짐이 사랑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말게 하라.”
 
748
하시더라.
 
749
위국공이 하릴없어 천은을 축사하며 즉일 하직하고 본국으로 돌아 나올 새, 천자(天子) 만조백관을 거느리시고 삼십 리 밖에 동가하사 전별하실 새 전역(全域)에 나갔던 장졸도 나와 전별하더라.
 
750
이때 위국공이 전역에 나아갔던 군졸을 대하여 위로 왈,
 
751
“그대 등의 충심을 힘입어 도적을 파하고 나라를 태평케 하였으나, 그 고초(苦楚)하든 정형(情形)을 생각하면 정의(情意) 서로 잠시인들 떠날 수 없건마는, 사군(事君)하는 도리에 귀국하지 아니할 수 없어 시세(時勢) 부득 휘루(揮淚) 상별(相別)하노니, 그대 등은 각기 귀가하여 복록(福祿)을 많이 받아 부모 형제 처자로 만세를 잘 누리라.”
 
752
하더라.
 
753
전역에 나아갔던 장졸들이 위국공을 향하여 위로 왈,
 
754
“장군의 충심과 지략을 힘입어 장졸간 일명(一名)이라도 피상(被傷)한 자가 없이 도적을 파하고 나라를 평안하게 하셨으니, 그 은혜 태산 같삽고 애휼(愛恤)하시던 정의 하해 깊사와 서로 잠시라도 떠나지 못하겠거늘, 귀국 근군(覲君)하심으로 말미암아 휘루 상별함을 당하오니 별도리 없거니와 복원 장군은 원로에 안녕히 환국(還國)하사, 만대 영화(榮華)하여 지내옵소서.”
 
755
하였더라.
 
756
이때 위국공이 제장 군졸을 차례로 작별한 후에 천폐(天陛)에 하직하고 황성을 떠나 여러 날 만에 본국으로 돌아와, 왕상께 문안 입시(入侍)한 후에 가달과 서번과 몽고 삼국을 정벌하여 항복 받고 황상의 근심하심을 덜게 하고 상사 받은 일이며, 명국 정치와 법률이며 인물 선불선(善不善)과 전후 말씀을 주달하오니,
 
757
왕상이 위국공의 손을 잡으사 칭찬하사 왈,
 
758
“내 경을 타국의 전장에 보내고 주소(晝宵)로 염려 무궁하더니, 이제 다시 만나보니 반갑기 측량 없도다. 그러나 강포한 도적을 처물리치고 벼슬이 공후(公侯)에 이르렀으니 경 같은 이는 고금에 드물지라.”
 
759
하시거늘, 위공이 천은을 축사하며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 부인을 만나 못내 반기며 만리 타국에 무사 성공하고 돌아옴을 희불자승(喜不自勝)하여 하더라.
 
760
신공(申公이) 하향(下鄕) 백성으로서 양국의 인끈 비껴 차니 영귀(榮貴)함이 일국에 제일일러라.
 
761
신공이 전하께 여쭈오되,
 
762
“신의 징부(聘父)며 류소현과 김평은 신의 처족(妻族)이로소이다. 전하의 넓으신 덕택을 힘입어 명천(明天)하게 하시면 일후(日後) 구천(九泉)에 가더라도 천은을 갚사올까 하나이다.”
 
763
왕상이 대희하사 이섬으로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제수하시고, 류소현으로 상주 목사를 제수하시고, 김평으로 밀양 부사를 제수하시매 각기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천은을 축사하고 신공의 은덕을 못내 사례하고 각기 직소(職所)로 부임하더라.
 
764
각설 신공이 부인으로 더불어 금실지락(琴瑟之樂)으로 세월을 보낼 새 어언간(於焉間)에 삼남 일녀를 두었으니, 총명과 재질이 특이하여 출중(出衆) 과인함에 위공이 사랑하여 장자의 이름은 상길이요, 차자의 이름은 중길이요, 삼자의 이름은 만길로 지었으니 각기 청년 등과(登科)하여 벼슬이 일품에 처하고, 딸의 이름은 소희니 용모와 문학이며 재덕이 비상하매 우승상의 며느리 되어 부귀를 누리더라.
 
765
이때 위공의 연광(年光)이 칠십 세에 이르러 기력이 쇠진하매, 상소를 닦아 벼슬을 사직하고 무주 고비촌 고향에 금의환향으로 내려가더라.
 
 
766
독자(讀者)시여, 여차(如此)한 동자(童子)를 보게 되면 인물 우열(優劣)을 가히 알 지라.
 
767
고진감래(苦盡甘來)며 흥진비래(興振悲來)는 천연 공리어니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이 매양 영귀할수록 욕망이 불같이 일어나서 득롱망촉(得隴望蜀)하는 마음으로 더욱 극귀(極貴) 할 양으로 불나비 밝은 빛을 탐하여 등잔불에 달려들고, 소경이 평평함을 취하여 파밭에 들어가듯이 한없이 극귀(極貴)한 지위를 엉뚱 맹랑스럽게 도모하려다가 도리어 신망가폐(申亡家廢)하는 지경을 당하여 노루 배꼽 씹고 사슴뿔을 분지르는 탄식을 한들, 후회막급이요 막가내하(莫可奈何)라
 
768
서한(西漢) 적 장량(張良)은 적송자(赤松子)를 따라갔다 하고, 월국(越國) 시대에 범려(范蠡)는 오호(五湖)를 건너가서 육축(六畜) 장사하고, 부귀(富貴)를 부운(浮雲)같이 여기여 피흉취길(被凶就吉)하던 사람이 있으되, 이같이 달관한 신유복은 부귀공명이 지족(知足)함을 깨달음으로 세상 아자(俄者) 쓸데없다.
 
769
공성신퇴지후(功成身退之後) 임천(林泉)에 초당(草堂)지어 만권 서책 쌓아 놓고 여러 자손 교육시키며 부모 위하여 사당집을 정결 건축하고, 공전절후(空前絕後)한 충렬 부인 옆에 동좌(同坐)하고 남노여비(男奴女婢)로 더불어 농업과 방적(紡績)으로 힘써 치산(治産)하며 원근 친구를 청요(請邀)하여 음풍영월(吟風詠月)로 세월을 한양(閑養)하여 가며, 여가에 아름다운 풍광이 내도(來到)하면 경치를 취하여 휘주승선(徽州乘船)하여 거문고 줄을 울리며, 강호(江湖)에 백구(白鷗)로 벗을 삼아 소자첨(蘇子瞻)의 지취(志趣)를 밟으니, 세상에 알거나 알지 못한 행려(行旅) 과객(過客)이 되매, 옛날 입신양명(立身揚名)한 후 영귀하던 일을 도리어 생각하여 보면 일장춘몽(一場春夢)일러라.
 
770
옛적에 자죽주는 천추(千秋)의 보감(寶鑑)이 되매 뉘라서 흠선(欽羨) 칭찬 아니할이 없더라.
 
771
슬프도다. 인생 수요(壽夭) 장단(長短)은 천연 공리라. 어찌 인력으로 하리오.
 
772
이때는 마침 하(夏) 사월 망간(望間)이라. 녹음방초(綠陰芳草) 승화시(勝花時)에 해는 어이 더디 가노. 오동야월(梧桐夜月) 달 밝은 때를 당한지라.
 
773
이때 공이 부인을 대하여 왈,
 
774
“우리가 상주에서 움 속에 살림하던 것이 어제 같더니 벌써 우리 연광(年光)이 칠십여 세에 이르러 백발이 성성(星星)하매 다시 젊든 못하리로다.”
 
775
하매, 부인이 미소 왈,
 
776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이라 하든 옛사람의 말을 망치(忘置)하셨나이까?”
 
777
신공이 생각하되 전정(前情) 무일(無逸)함을 깨닫고 후원 국내에 보진을 화려히 설배(設排)하고, 잔치를 굉장히 배설(排設)하여 부인과 여러 자녀로 더불어 풍악을 갖추어 날마다 연락(宴樂)하여 즐기더라.
 
 
778
이때는 하(夏) 사월 망간이라. 월색(月色)은 만원(滿園)하고, 화풍은 화창하며 꾀꼬리 벗을 생각하여 부르고, 두견이 고국을 생각하여 슬피 우는데 난데없는 청아(淸雅)한 옥저 소리 은은히 들리거늘, 괴이 여겨 살펴본 즉 하늘에서 일위 선관이 내려와 신공을 향하여 길게 읍(揖)하여 왈,
 
779
“진세(塵世) 재미가 어떠하시며, 별후(別後) 무양(無恙)하시나이까?”
 
780
하니, 공이 답례하여 왈,
 
781
“전일(前日)에 한 번도 뵈온 적이 없삽는데, 별후라 하시는 말씀은 조금도 생각지 못하겠나이다.”
 
782
선관이 답하여 왈,
 
783
“그대와 부인은 천상 선관 선녀로서 옥황상제께 득죄하여 양계(陽界) 인연을 맺어 진세에 적강(謫降) 시키셨더니, 옥황상제께옵서 나를 명하사 그대 부부를 데려오라 하시기로 내려왔사오니 인간 재미를 생각지 마시고 바삐 가사이다.”
 
784
하거늘, 공과 부인이 여러 자녀를 돌아다보며 자녀들을 대하여 한마디씩 일러 주더라.
 
785
이때 마침 천지 진동하고 채운(彩雲)이 일어나며 옥저 소리 다시 나는 듯하더니, 공과 부인이 간 데 없거늘, 비로소 여러 자녀들이며 남녀노소들이 상공이 백일승천(白日昇天)한 줄을 알고 애통하며 그 상공과 부인의 덕성을 사모하여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지내더라.
 
786
자손들이 하릴없어 상례(喪禮)와 장례(葬禮)를 갖추어 선영하에 대장(大葬)으로 허장(虛葬)을 지내고, 예로써 삼년 초토(草土)를 극진히 마친 후에 삼자(三子) 일서(一壻)가 청년 등과하여 벼슬이 일품에 처하여, 자손이 창성(昌盛)하고 금옥(金玉)이 만당(滿堂)하여 세대(世代)로 영귀하고 현달(顯達)한 공명이 면면부절(綿綿不絕)하여 신씨 부부의 사적(事績)이 하도 특별하기로 대강 기록하노라.
 
 
787
신유복전 종(終).
【원문】신유복전(申遺腹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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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