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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小學諺解 (소학언해) ◈
◇ 善行第六 ◇
카탈로그   목차 (총 : 6권)   서문     이전 6권 ▶마지막
조선 선조 20년
정구 등
1
쇼언 권지육 (외편)
2
善行第六(션뎨륙)
 
3
어딘 실이니 례예 여재라
 
 
4
○ 呂滎公名希哲, 字原明. 申國正獻公之長子. 正獻公居家, 簡重寡黙, 不以事物經心, 而申國夫人, 性嚴有法度, 雖甚愛公, 然, 敎公, 事事循蹈規矩.
 
5
呂榮公의 일홈 希哲이오 字 原明이니 申國 正獻公 [일홈  公著ㅣ니 申은 봉 히오 正獻은 시회니 宋 적 졍승이 라] 의 아이라 正獻公이 집의 이실 제 간략며 후듕며 잡일 아니며 잡말 아니야 일과 온갓 거스로 애 경 영티 아니고 申國夫人이 性이 嚴고 法度ㅣ 이셔 비록 심 히 公을 랑나 그러나 公을 츄  規矩 조차 드듸게 더라
 
6
甫十歲, 祁寒暑雨, 侍立終日, 不命之坐, 不敢坐也. 日必冠帶, 以見長者, 平居雖甚熱, 在父母長者之側, 不得去巾襪縳袴, 衣 服唯謹.
 
7
계오 열 설에 큰 치위와 덥고 비올 제라두 뫼셔 셧기를 날이 도록 야 命야 안라 아니커든 敢히 안 아니더라 날마다 반시 冠帶야  얼우신 뵈오며 샹해 이실 제 비록 심히 더우나 父母와 얼우신 겯틔 이셔 시러곰 곳갈와 보 션과 뎐 밧디 아니야 衣服을 오직 삼가더라
 
8
行步出入, 無得入茶肆酒肆, 市井里巷之語, 鄭衛之音, 未嘗一經於耳, 不正之書, 非禮之色, 未嘗一接於目.
 
9
녀 거러 나며 들음애 시러곰 차  집과 술  집의 드디 아니며 져제와  말와 鄭과 衛ㅅ 소 [두 나라 일 홈이니 음탕 풍라] 를 일즉 번 귀예 디내디 아니며 正티 아니 글월와 禮 아닌 빗 일즉 번 눈에 브티디 아 니더라
 
10
正獻公通判潁州, 歐陽公適知州事. 焦先生千之伯强, 客文忠公所, 嚴毅方正, 正獻公招延之, 使敎諸子. 諸生小有過差, 先生 端坐, 召與相對, 終日竟夕, 不與之語, 諸生恐懼畏伏, 先生方 略降辭色.
 
11
正獻公이 穎州 [고을 일홈이라]ㅣ예 通判 [판관 톄엿 벼슬이라] 여실 제 歐陽公 [일홈은 修ㅣ니 宋 적 샹이라] 이 州 事를 지엿더니 [아단 말이니 목 톄엿 벼슬이라] 焦 先生 千之 伯强 [千之 일홈이오 伯强은 라] 이 文忠公 [歐陽公 시회라] 곧애 손이 되야셔 嚴고 거여우며 모나고 졍답거늘 正獻公이 블러 마자다가 여곰 모 아을 치 더니 모 션 죠곰애나 글옴이 잇거든 先生이 단졍히 안자 블러 더블어 서르 對야 날이 졈을며 나조히 초 더블어 말을 아니다가 모 션 저허 복죄여 先生이 보야호 로 말이며  빗 잠 기 더라
 
12
時公方十餘歲. 內則正獻公與申國夫人敎訓, 如此之嚴, 外則焦 先生化導, 如此之篤. 故公德器成就, 大異衆人. 公嘗言, 人生 內無賢父兄, 外無嚴師友, 而能成者, 少矣.
 
13
그 적의 公이 보야호로 열 남은 설이러니 안흐로 正獻公과 다 申國夫人이 츔이 이러시 嚴고 밧로 焦先生 이 되게 야 인도홈이 이러시 도타오니 그러모로 公이 德 과 그르시 이러키 모 사에셔 다니라 公이 일즉 닐오 人生애 안해 어딘 아비와 兄이 업스며 밧 嚴 스승과 벋이 업고 能히 일움이 이시리 젹으니라 더라
 
 
14
○ 呂滎公長夫人, 待制諱昷之之幼女也. 最鍾愛, 然, 居常至微細事, 敎之必有法度. 如飮食之類, 飯羹許更益, 魚肉不更進也. 時張公已爲待制河北都轉運使矣.
 
15
呂榮公의 張夫人 待制 [벼슬 일홈이라] 일홈 昷之의 졈은 이라 장 랑을 모도와시나 그러나 샹해 이실 제 微細 일에 닐으히 츔을 반시 法度ㅣ 잇더니 飮食  類에 도 밥과 으란 다시 더음을 許고 고기란 다시 나오디 아니 니 그 적의 張公이 이믯 待制로 河北都轉運使 [河北은 디명 이오 都轉運使 관찰 톄엿 벼슬이라] 를 엿더라
 
16
及夫人嫁呂氏, 夫人之母, 申國夫人姊也. 一日來視女. 見舍後有鍋釜之類, 大不樂, 謂申國夫人曰, 豈可使小兒輩私作飮食, 壞家法耶. 其嚴如此.
 
17
믿 夫人이 呂氏예 셔방 마자오나 夫人 어마님은 申國夫人의 형이라  날애 와 을 보더니 방샤 뒤헤 솓가마 類엣 거 시 잇거늘 보고 크게 즐기디 아니야 申國夫人려 닐어  오 엇디 可히 졈은 아로 여곰 로이 飮食을  라 家法을 허러 리게 리오 니 그 嚴홈이 이러 더라
 
 
18
○ 康陽城爲國子司業, 引諸生告之曰, 凡學者, 所以學爲忠與孝也. 諸生有久不省親者乎. 明日謁城還養者, 二十輩. 有三年不 歸侍者, 斥之.
 
19
[나라 일홈이라] 적 陽城이 國子 [이제 셩균관이라] 司業 [벼슬 일홈이라] 야셔 모 션를 나오혀 告야 오 믈읫 學기  튱셩과 다 효도기를 호 배니 모 션 오래 어버이를 보디 몯엿 이 인냐 니 이튼날 城의게 뵈고 돌아가 효양 이 스므 물이러니 三年이도록 돌 아가 뫼시디 아니 이 잇거늘 내티니라
 
 
20
○ 安定先生胡瑗, 字翼之. 患隋唐以來, 仕進尙文辭而遺經業, 苟趨祿利. 及爲蘇湖二州敎授, 嚴條約, 以身先之, 雖大暑, 必 公服終日, 以見諸生, 嚴師弟子之禮, 解經至有要義, 懇懇爲諸 生, 言其所以治己, 而後治乎人者. 學徒千數. 日月刮劘, 爲文 章, 皆傅經義, 必以理勝, 信其師說, 敦尙行實. 後爲太學, 四 方歸之. 庠舍不能容.
 
21
安定先生 胡瑗의 字 翼之니 隋와 唐으로 옴애 벼슬야 나아가 이 글지이만 슝샹고 經業 [실을 업 삼이라] 을 려 구챠히 祿과 利예 라드 줄을 병도이 너기더니 믿 蘇 湖 두 고 敎授ㅣ 되야 법됴와 약속을 嚴히 야 몸으로 몬져 야 비록 큰 더위라도 반시 公服고 날 졈글워  모 션 보와 스승 弟子의 禮 嚴히 며 글 사굠애 종요로온  인  니르러 졀히 모 션 위 야 그  몸을 다린 후에 사을 다릴 바 닐더라 호 물이 千이나 더니 날이며 로 다마 文章을 호  다 경셔 의 븓텨 야 반시  理勝케 며 그 스승의 말 믿어 行實 도타이 슝샹더니 후에 太學을 야 四 方이 도라가니 집이 能히 용납디 몯더라
 
22
其在湖學, 置經義齋治事齋. 經義齋者, 擇疏通有器局者居之, 治事齋者, 人各治一事, 又兼一事. 如治民治兵水利算數之類. 其在太學亦然.
 
23
그 湖ㅅ 學애 이실 제 經義齋 [經書 다리 齋니 齋 션 인 집 일홈이라] 와 治事齋 [일 다리 齋라]  두니 經義齋예 疎通고 器局이 인 이 여 살이고 治事齋 예 사이 각각  일 다리며   일 兼니 셩 다리며 군 다리며 믈의 利며 算으로 혜아림  類ㅣ 라 그 太學애 이심애  그리 더라
 
24
其弟子散在四方, 隨其人賢愚, 皆循循雅飭. 其言談擧止, 遇之不問可知爲先生弟子. 其學者, 相語稱先生, 不問可知爲胡公也.
 
25
그 弟子ㅣ 四方에 흗터 이숌애 그 사이 어딜며 어림을 조차 다 循循 [셰 이셔 례예 넘디 아니 톄라] 히 아담고 조 심니 그 말이며 거동을 만남애 묻디 아니여셔 可히 先 生의 弟子 줄을 알고 그 혼 사이 서르 말 홈애 先生이 라 일거 묻디 아니여셔 可히 胡公인 줄 알리러라
 
 
26
○ 明道先生言於朝曰, 治天下, 以正風俗得賢才, 爲本.
 
27
明道先生이 됴뎡에 닐어 샤 天下 다료 風俗을 正히 며 어딘 인 어모로 근본을 삼을디니
 
28
宜先禮命近侍賢儒及百執事, 悉心推訪, 有德業充備足爲師表者, 其次有篤志好學材良行修者, 延聘敦遺, 萃於京師, 俾朝夕相與- 講明正學.
 
29
맛당이 몬져 갓가이 뫼완 어딘 션과 믿 온갓 관원을 禮로 命야 을 다야 츄심야 무러 德業이 차 자 足히 스승이며 表ㅣ 되염즉니 이시며 그 버거  도타이  야 문을 됴히 녀기며 죄 어딜며 실이 닷 이 잇거 마자 블러오며 권야 보내게 야 셔울에 모도와 여곰 아  나조 서르 더블어 正 學을 강론야 키게 홀디니라
 
30
其道必本於人倫, 明乎物理, 其敎自小學灑掃應對以往, 脩其孝悌忠信, 周旋禮樂. 其所以誘掖激勵漸摩成就之道, 皆有節序. 其要在於擇善脩身, 至於化成天下, 自鄕人而可至於聖人之道.
 
31
그 道 반시 人倫에 근본야 物의 理 키고 그 침은 小學엣 믈 이고 며 應며 對홈으로븓터  감로 그 효도며 손슌며 튱셩며 믿븜을 닷그며 禮며 樂애 周旋케 니 그  달애며 들며 아내며 힘 게 며 저지며 다아 일우 밧 도리 다 며 례 이시니 그 종 어 딘 일을 며 몸 닷가 天下 化야 일움애 니르며  샹사으로븓터 可히 聖人의 道애 니매 인니라
 
32
其學行皆中於是者, 爲成德. 取材識明達可進於善者, 使日受其業, 擇其學明德尊者, 爲太學之師, 次以分敎天下之學.
 
33
그 문과 실이 다 이에 마 이 德 인 이 되리니 질와 디식이 고 차 可히 어딘  나아 가리 取야 여곰 날마다 그 業을 받게 야 그 學이 고 德이 노 이  여 太學의 스승을 삼고 버근 이로 화 天下의 學애 칠 디니라
 
34
擇士入學, 縣升之州, 州賓興於太學, 太學聚而敎之, 歲論其賢者能者於朝.
 
35
션를 여 學애 들요 懸이 洲ㅣ예 올여 洲ㅣ 손녜로 太學의 쳔거야든 太學이 모토아 쳐 마다 그 어딜며 能 이 됴뎡에 의론디니라
 
36
凡選士之法, 皆以性行端潔, 居家孝悌, 有廉恥禮讓, 通明學業, 曉達治道者.
 
37
믈읫 션  法은 다 性과 실이 단졍고 조하 집의 이셔 효도며 손슌며 廉恥와 禮讓이 이시며 學業을 通야 키 며 다릴 道 아라  이로  거시니라
 
 
38
○ 伊川先生看詳學制. 大槪以爲學校, 禮義相先之地, 而月使之爭, 殊非敎養之道. 請改試爲課, 有所未至, 則學官召而敎之, 更不考定高下.
 
39
伊川先生이 學졔도를 看詳 [보펴 샹뎡단 말이라] 시니 大槪  호 學校 禮義로 서르 몬져  히어 마다 여곰 토게 홈이 [글지이로 결오단 말이라]  쳐 치 도리 아니니 請컨댄 試 [글 지여 고노단 말이라] 를 고 텨 일과를 야 니르디 몯 배 잇거든 學관원이 블러 치 고 다시 놉프며 가옴을 고노와 막키디 아니며
 
40
制尊賢堂, 以延天下道德之士, 鐫解額, 以去利誘, 省繁文, 以專委任, 勵行檢, 以厚風敎, 及置待賓吏師齋, 立觀光法. 如是 者, 亦數十條.
 
41
尊賢堂을 지어  天下앳 道德엣 션 마자오며 향공수를 더러  利로 달애옴을 업시며 어즈러온 글월을 젹게 야  소임 맛듐을 젼일히 며 行檢을 힘 게 야  풍쇽과 교화를 둗겁게 고 믿 待賓 [어딘 사을 손으로 졉 집이라] 와 吏師 [다임을 아라 관원의 스승될 사을 드 리 집이라] 를 두며 觀光 [텬하앳 션히와 나라 셩 빗츨 봄이라] 法을 셰니 이  이  두어 열 됴건이러라
 
 
42
○ 藍田呂氏鄕約曰, 凡同約者, 德業相勸.
 
43
藍田 [디명이라] ㅅ 呂氏 [大忠 大防 大鈞 大臨 네 형뎨니 宋 적 사이라]  약속애 오 믈읫 가지로 약속 이 德이며 욜 일로 서르 勸며 過失相規.
 
44
허믈와 그른 일 서르 경계며
 
45
禮俗相交.
 
46
禮다온 풍쇽으로 서르 사괴며
 
47
患難相恤.
 
48
근심과 어려운  서르 구디니라
 
49
有善則書于籍, 有過若違約者, 亦書之, 三犯而行罰, 不悛者絶之.
 
50
어딘 일이 잇거든 글월에 쓰고 허믈이 이시며 믿 약속을 어그릇 이  써 세 번 犯야 罰 行호 고티디 아니  이란 내틸디니라
 
 
51
○ 明道先生敎人. 自致知至於知止, 誠意至於平天下, 灑掃應對至於窮理盡性, 循循有序.
 
52
明道 先生이 사을 치샤 알옴을 닐위옴으로븓터 그칠  알옴애 니르며  셩실히 홈으로 天下 平케 홈애 니 르며 灑掃와 應對로 理 궁구며 性을 다홈애 니르샤 循循 히 셰 잇게 더시니
 
53
病世之學者, 捨近而趨遠, 處不而闚高. 所以輕自大而卒無得也.
 
54
셰상의 學者ㅣ 갓가온 란 리고 먼  며 가온  이셔 놉픈  엿보디라  가야이 스스로 큰 양야  애 어듬이 업는 바 病도이 너기시니라
 
55
右, 實立敎.
 
56
이 우 침 셔윰을 實우니라
 

 
 
57
○ 江革少失父, 獨如母居. 遭天下亂, 盜賊並起, 革負母逃難, 備經險阻, 常採拾以爲養. 數遇賊, 或劫欲將去. 革輒悌泣求哀, 言有老母. 辭氣愿款, 有足感動人者. 賊以是不忍犯之, 或乃指 避兵之方. 遂得俱全於難.
 
58
江革 [東漢 적 사이라] 이 졈어셔 아비를 일코 혼자 어미와 더브러 사더니 天下ㅣ 어즈러옴을 만나 盜賊이 모다 니러나거 늘 革이 어미를 업고 환난을 도망야 어렵살  초 디 내여 샹녜 며 주어  치기 더니 조 도적을 만나 或 겁틱야 잡아 가고쟈 거든 革이 믄득 울오 에엿비 너기고 라 비러 닐오 늘근 어미 이셰라 야 말과 긔이 셩실코 관곡야 足히 사을 感動홈이 인디라 도적이 일로 아 犯티 몯며 或 병난 避  치니 드여 시러곰 다 환난에 보젼니라
 
59
轉客下邳, 貧窮裸跣, 行傭以供母, 便身之物莫不畢給.
 
60
올마 下邳  나그내 되야 가난고 궁박여 옷 벗고 발 버서 고공 녀  어미를 공양호 몸 편 거시 다 죡디 아님이 업더라
 
 
61
○ 薛包好學篤行. 父娶後妻而憎包, 分出之, 包日夜號泣不能去. 至被毆杖, 不得已廬于舍外, 旦入而灑掃, 父怒, 又逐之, 乃廬於里門, 晨昏不廢. 績歲餘父母慚而還之. 後服喪過哀.
 
62
薛包 [東漢 적 사이라]ㅣ 學을 즐겨 며 실을 독실히  더니 아비 훋안해를 얻고 包 믜여 닫내여 包ㅣ 낫밤을 블 으지져 울오 아 가디 몯더니 매 마좀애 니르러 시러곰 마디 몯야 집 밧긔 막 야 아이어든 들어가 설거늘 아 비 怒야  내대 里門에 막 여셔 새배며 어믈 [문 안단 말이라] 廢티 아니더니 오라 남음애 父母ㅣ 붓그 려 도라오게 다 후에 거상 닙어 슬허기 넘게 니라
 
63
旣而弟子, 求分財異居, 包不能止, 乃中分其財, 奴婢引其老者曰, 與我共事久. 若不能使也. 田廬取其荒頓者曰, 吾少時所理. 意所戀也. 器物取其朽敗者曰, 我素所服食. 身口所安也. 弟子 數破其産. 輒復賑給.
 
64
이윽고 아와 동의 식히 셰간 화 닫사라지라 求거 包ㅣ 能히 그치누르디 몯야 그 믈을 고로 홀 奴婢 를 그 늘근이 잡으며 오 날와 더블어 일을 가지로  얀디 오란디라 네 能히 브리디 몯리라 며 받과 집을 그 거고 기우러딘 이 가지며 오 내 졈어실 제 다리던 배라 에 렴 배라 며 器物을 그 석고 여딘 거슬 가지며 오 내 본 며 먹던 배라 몸과 입에 편안히 너 기 배라 더니 아와 동의 식히 조 그 셰간을 배 아거 믄득  주어 쥬죡게 더라
 
 
65
○ 王祥性孝. 蚤喪親, 繼母朱氏不慈, 數譖之. 由是失愛於父, 每使掃除牛下, 祥愈恭謹, 父母有疾, 衣不解帶, 湯藥必親嘗, 母嘗欲生魚. 時天寒冰凍, 祥解衣, 將剖冰求之. 冰忽自解, 雙 鯉躍出, 持之而歸. 母又思黃雀炙. 復有雀數十, 飛入其幕, 復 以供母. 鄕里警嘆, 以爲孝感所致. 有丹柰結實, 母命守之, 每 風雨祥輒抱樹而泣, 其篤孝純至如此.
 
66
王祥 [晋 적 사이라] 이 性이 효도롭더니 일어미 일코 繼母 朱氏 어엿비 녀기디 아니야 조 하니 일로 말암아 아게 랑을 일허 양 여곰 을 설이거 祥이 더 옥 공슌고 삼가며 父母ㅣ 병이 잇거든 옷슬  그디 아 니며 藥을 달혀 반시 親히 맛보더라 어미 일즉 生 고기  먹고져 더니 그 적의 하이 차 어이 어럿거늘 祥이 옷슬 그고 쟝 어름을 고 어드랴 더니 어름이 믄득 절 로 헤여디여 두리에 여 나거늘 가져 도라오니라 어미   새 구은 이를 각더니  새 두어 열히 라 그 집의 들거    어미 먹이니 히 놀라 차탄야  효도의 감 동야 닐윈 배라 더라 블근 먿이 이셔 여 잣거 어미 命야 딕희라 대 양 비예 祥이 믄득 남글 안고 우니 그 독실 효되 슌일코 지극홈이 이더라
 
 
67
○ 王裒字偉元. 父儀爲魏安東將軍司馬昭司馬. 東關之敗, 昭問於衆曰, 近日之事誰任其咎. 儀對曰, 責任元帥. 昭怒曰, 司馬 欲委罪於孤耶. 遂引出斬之.
 
68
王裒의 字 偉元이니 아비 儀ㅣ 魏 [나라 일홈이라] 安東將 軍 司馬昭의 司馬 [벼슬 일홈이라] ㅣ 되얏더니 東關 [ 일 홈이니 吳ㅅ나라와 싸호다가 패니라] 에 敗홈애 昭ㅣ 모 사려 무러 오 요조옴 일을 뉘 그 허믈을 맛료 儀 답야 오 허믈이 읏듬쟝슈 인니이다 昭ㅣ 怒야 오 司馬ㅣ 내게 罪를 밀고쟈 냐 고 드듸여 어내 여 죽이다
 
69
裒痛父非命, 於是隱居敎授, 三徵七辟, 皆不就, 廬于墓側, 旦夕, 常至墓所, 拜跪, 攀栢悲號, 涕淚著樹. 樹爲之枯. 讀詩, 至哀哀父母, 生我劬勞, 未嘗不三復流涕. 門人受業者, 並廢蓼 莪之篇.
 
70
裒ㅣ 아 命 아닌 줄을 [天命으로 죽디 아니홈이라] 셜이 녀겨 이예 隱居야셔 글 쳐 세 번 브며 [나라호로셔 브 시단 말이라] 닐곱 번 쳔거 [고로셔 쳔거단 말이라] 홈 애 다 나아가디 아니고 무덤 겯틔 막 야 아 나조  양 무덤 곧애 니르러 절며 고 즉을 븓들고 슬피 우러 눈믈이 남긔 무드니 남기 위야 이우니라 모시 닐글 제 슬프 며 슬프다 父母ㅣ 날 나심을 슈고로이 샷다  니르 러 일즉 여러 번 고텨 닑고 눈믈 흘리디 아니티 아니니 門人 [뎨라] 글 호 이 다 蓼莪篇을 리니라
 
71
家貧躬耕, 計口而田, 度身而蠶. 或有密助之者, 裒皆不聽. 及司馬氏簒魏, 裒終身未嘗西向而坐, 以示不臣于晉.
 
72
집이 가난야 몸소 받 갈아 입을 혜고 받 갈며 몸을 혜고 누에 치더니 或 마니 도오리 잇거든 裒ㅣ 다 듣디 아니더라 믿 司馬氏 魏 아사 裒ㅣ 몸이 도록 일즉 西ㄴ녁흐로 向 야 안 아니야  晋 [晋은 司馬氏의 나라 일홈이니 션 녁희 도읍엿던이라] 에 신하 되디 아닌 줄 뵈더라
 
 
73
○ 晉西河人王延事親色養. 夏則扇枕席, 冬則以身溫被, 隆冬盛寒, 體常無全衣, 而親極滋味.
 
74
晋西河 [ 일홈이라] 사 王延이 어버이 셤교되 빗로 치더니 [ 빗 화히 단 말이라] 녀름이어든 벼개며 돗글 부체질고 겨을이어든 몸으로 니블을 덥게 며 한겨을 盛  치위예 몸애 샹녜 암 옷시 업소 어버이 맏난 마슬 極히 더라
 
 
75
○ 柳玭曰, 崔山南昆弟子孫之盛, 鄕族罕比. 山南曾祖王母長孫夫人, 年高無齒, 祖母唐夫人, 事姑孝, 每旦櫛縰笄, 拜於階下, 卽升堂, 乳其姑. 長孫夫人, 不粒食數年而康寧.
 
76
柳玭이 오 崔山南 [일홈은 琯이니 山南節度使 벼슬니 唐 적 사이라] 의 형뎨와 子孫의 盛홈이 결에 比리 드므더니 山南의 한할마님 長孫夫人 이 나히 만야 니 업거늘 할마님 唐夫人이 싀어미 셤굠 효 도로이 야 일 아 머리 비서 縱고 빈혀 고자 섬 아 래 가 절고 즉재 堂에 올라 그 싀어마님을 졋먹이니 長孫夫 人이 낟 먹디 몯홈 두어로 편안더니
 
77
一日疾病, 長幼咸萃. 宣言無以報新婦恩. 願新婦有子有孫, 皆得如新婦, 孝敬, 則崔之門, 安得不昌大乎.
 
78
 병이 듕커 얼운과 아 다 모닷더니 베퍼 닐오  新婦의 은혜 갑디 몯리로소니 願컨댄 新婦 식이며 손 히 다 시러곰 新婦의 효도며 공경홈 면 崔시의 가 문이 엇디 시러곰 챵셩야 크디 아니리오 니라
 
 
79
○ 南齊庾黔婁爲孱陵令, 到縣未旬父易在家遘疾. 黔婁忽心驚, 擧身流汗, 卽日棄官歸家. 家人悉驚其忽至.
 
80
南齊 [나라 일홈이라] 庾黔婁ㅣ 孱陵 [고 일홈이라] ㅅ令 원이라 이 되야 고 니런디 열이 몯여실 제 아비 易ㅣ 집의 이셔 병을 만낫더니 黔婁ㅣ 믄득 이 놀라 온 몸애 이 흐거 그 날 벼 리고 집의 도라오니 집사 이 다 그 믄득 니 줄을 놀라더라
 
81
時易疾始二日. 醫云, 欲知差劇, 但嘗糞甛苦. 易泄利, 黔婁輒取嘗之. 味轉甛滑, 心愈憂苦, 至夕每稽顙北辰, 求以身代.
 
82
그 적의 易의 병이 비르소 이틀이러니 의원이 닐오 위연며 되욤을 알고져 홀딘댄 다 이 며 을 맛볼 거시라 야 易ㅣ 즈츼여든 黔婁ㅣ 믄득 가져다가 맛보니 마시 다 함 오 믯믯거 애 더옥 근심고 셜워야 나조 니애 양 北辰 머리를 조아 몸으로 代욤을 求더라
 
 
83
○ 海虞令何子平, 母喪去官, 哀毁踰禮, 每哭踊頓絶方蘇. 屬大明末東土饑荒, 繼以師旅. 八年下得營葬, 晝夜號哭, 常如袒括 之日, 冬不衣絮, 夏不就凊凉, 一日以米數合, 爲粥, 不進鹽菜. 所居屋敗, 不蔽風日, 兄子伯興欲爲葺理, 子平不肯曰, 我情事 未申. 天地一罪人耳. 屋何宜覆.
 
84
海虞ㅅ 令何子平이 엄의 거상애 벼슬 더디고 슬허 샹케홈을 禮예 넘게 야 양 울며 소애 믄득 긔졀엿다가 보야 호로 더라 마초아 大明 [宋孝武帝의 년회라] 내죵애 東녁 히 흉황고 병난으로 니우니 여듧  시러곰 장을 경영티 몯야 나지며 밤의 블으지져 울오 양 袒括 [袒은 메와슴이오 括은 머리 욤이니 초상적 례라]  날 티  야 겨을에 소옴 둔 옷슬 닙디 아니고 녀름에 서늘  나 아가디 아니며   두어 홉으로 粥을 고 소곰과  도 먹디 아니더라 사 밧 집이 허러뎌 과 볃틀 리 우디 몯거늘 兄의 아 伯興이 위야 슈리코져 대 子平 이 즐겨디 아니여 오 내 情에 일을 펴디 몯여시니 天地예  罪人이라 집을 엇디 맛당히 덮프리오
 
85
蔡興宗爲會稽太守, 甚加矜賞, 爲營塚壙.
 
86
蔡興宗이 會稽ㅅ 太守 [원이라] ㅣ 되연디라 甚히 에엿비 너기며 과호이 너김을 더어 위야 무덤을 니라
 
 
87
○ 朱壽昌生七歲, 父守雍. 出其母劉氏, 嫁民間. 母子不相知者, 五十年. 壽昌行四方, 求之不已, 飮食罕御酒肉, 與人言輒 流涕.
 
88
朱壽昌이 난 닐굽 예 아비 雍 [雍州ㅣ란 고을히라] 에 원 엿더니 그 어미 劉氏를 내텨 셩의 서리예 얼리니 어미와 아 이 서르 아디 몯홈이 쉰 러니 壽昌이 四方오로 녀 어듬 을 그치디 아니야 飮食에 술고기를 드믈이 먹고 사 더블 어 말홈애 믄득 눈믈을 흘리더라
 
89
熙寧初棄官入奏, 與家人訣, 誓不見母, 不得還. 行次同州, 得焉. 劉氏時年七十餘矣. 雍守錢明逸以事聞, 詔壽昌還就官. 繇 是天下皆知其孝.
 
90
熙寧 [宋 神宗 년회라] 처엄에 벼슬을 리고 秦으로 들어갈  집사 더블어 여오되 셰야 어미옷 보디 몯면 다 시 도라오디 아니호리라 더니 가 同州예 다라 어드니 劉 氏 그 시졀의 나히 닐흔 남 이러라 雍 원 錢明逸이 실 로 들리온대 壽昌을 詔 [皇帝의 命이라] 야 도로 벼슬에 나아가라 시니 일로 말믜암아 天下ㅣ 다 그 효셩을 아니라
 
91
壽昌再爲郡守. 至是, 以母故通判河中府, 迎其同母弟妹以歸. 居數歲母卒, 涕泣幾喪明. 拊其弟妹益篤, 爲買田宅居之, 其於 宗族, 尤盡恩意, 嫁兄弟之孤女二人, 葬其不能葬者十餘喪. 盖 其天性如此.
 
92
壽昌이 두 번 郡守 엿더니 이예 니르러 엄의 연고로 河中府에 通判을 야 그 엄이 가진 아이며 누의를 마자  도 라왓더니 이션디 두어 예 엄이 죽거늘 우러 거 눈이 멀리 러라 그 아와 누의를 에엿비 너귬을 더욱 두터이 야 위 야 받과 집을 사셔 살리고 그 동셩 권당의게 더욱 恩意를 곡 진히 야 兄弟의 아비 업  두 사을 혼인며 그 能히 영장 몯 열 남 상 영장니 그 天性이 이러 더라
 
 
93
○ 伊川先生家, 治喪. 不用浮屠. 在洛亦有一二人家化之.
 
94
伊川先生 집이 상 다림애 부텨의 일을 디 아니시니 락양의 겨실 제  나 두어 사의 집이 化리 잇더니라
 
 
95
○ 霍光出入禁闥二十餘年, 小心謹愼, 未嘗有過. 爲人沈靜祥審, 每出入下殿門, 進止有常處. 郎僕射竊識視之. 不失尺寸.
 
96
霍光 [漢 적 대신이라] 이 대궐의 나들옴이 스므 남 예 조심고 삼가 일즉 허믈이 잇디 아니더라 사이론디 심팀 고 안졍며 셔고 펴 양 나들어 殿門 [대궐 문이 라] 에 릴 제 나며 그침이 덛덛 곧이 잇더니 郎과 僕射 다 벼 일홈이라 들히 마니 보람여셔 보니 자히며 치도 일티 아니더라
 
 
97
○ 汲黯景帝時, 爲太子洗馬, 以嚴見憚. 武帝卽位, 召爲主爵都尉. 以數直諫, 不得久居位. 是時太后弟武安侯田蚡爲丞相. 中 二千石拜謁, 蚡弗爲禮. 黯見蚡未嘗拜, 揖之.
 
98
汲黯이 景帝 [漢 적 님금이라] 시졀의 太子洗馬 [東宮 벼슬 이라] ㅣ 되여셔 嚴홈으로 림을 보더니 武帝 [景帝의 아 이라] 位예 나샤 [님금 셔단 말이라] 블러 主爵都尉 [벼 슬 일홈이라] 를 이시니 조 곧게 諫홈으로 시러곰 오 래 벼슬에 잇디 몯니라 이 시졀의 太后의 아 오라비 武安 侯田蚡이 丞相이 되연디라 中二千石 [ 녹이 이쳔 셕이 니 샹품이라] 이 절여 뵈여든 蚡이 례도를 아니더니 黯 은 蚡을 봄애 일즉 절을 아니고 揖더라
 
99
上方招文學儒者. 上曰, 吾欲云云. 黯對曰, 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 奈何欲效唐虞之治乎. 上怒變色而罷朝. 公卿皆爲黯懼. 上退謂人曰, 甚矣. 汲黯之戇也.
 
100
[님금을 닐옴이라] 이 뵈야흐로 글  션를 블으더시 니 上이 샤 내 이리이리 고져 노라 黯이 답여 오 陛下 [皇帝를 지향 말이라]ㅣ 안호론 욕심이 하시고 밧고로 仁義 베프시니 엇디 唐虞 적 다림을 법받고져  시니잇고 上이 怒샤 色을 變시고 됴회를 罷시니 公卿 [샹이라] 히 다 黯을 위여 두려더니 上이 믈러와 사 려 닐러 샤 甚다 汲黯의 어림이여
 
101
群臣或數黯, 黯曰, 天子置公卿輔弼之臣, 寧令從諛承意, 陷主於不義乎. 且已在其位. 縱愛身, 奈辱朝廷何.
 
102
모 신하히 或 黯을 외다 대 黯이 오 天子ㅣ 公卿이며 도 신하 두샴 엇디 여곰 븓조차 아당며 을 바 다 님금을 올티 아닌  디게 홈이리오  이믜 그 벼슬에 이시니 비록 몸을 앗기나 朝廷을 슈욕홈애 엇디료
 
103
黯多病, 病且滿三月, 上常賜告者, 數, 終不癒. 最後嚴助爲請告. 上曰, 汲黯何如人也. 曰, 使黯任職居官, 亡以癒人, 然至 其輔少主守成, 雖自謂賁育, 弗能奪也. 上曰, 然. 古有社稷之 臣. 至如汲黯, 近之矣.
 
104
黯이 病이 하 病연디 거의 석 이 거늘 上이 샹해 말 주심이 조 내종내 됴티 몯엿더니  후에 嚴助ㅣ 위 여 말 請대 上이 샤 汲黯은 엇던 사고 오 黯오로 여곰 벼슬을 맛며 구의예 이시면  사의게 넘 디 몯려니와 그러나 그 졈은 님금 도와 인것 딕킈옴애 니 러 비록 스스로 닐오 賁育 [孟賁과 夏育이니 다 힘 센 사 이라] 이로라 여도 能히 앗디 몯리이다 上이 샤 그러다 녜 社稷엣 신해 잇더니 汲黯  이예 니르러는 갓 갑도다
 
105
大將軍靑侍中上踞厠視之, 丞相弘宴見, 上或時不冠, 至如見黯, 不冠而見也. 上嘗坐武帳. 黯前奏事. 上不冠, 望見黯避帷中, 使人可其奏. 其見敬禮如此.
 
106
大將軍 [벼슬 일홈이라][셩은 衛니 쟝슈엣 신해라] 이 안 해 뫼셔 이실 제 上이 평상 애 걸안자셔 보시고 丞相 弘 [셩은 公孫이라] 이 샹해 뵈거든 上이 或 잇다감 冠 쓰디 아니샤 黯을 보심애 니르러 冠 쓰디 아니여셔 보디 아니더시다 上이 일즉 武帳 [병잠기 인 라] 에 안자 겨 시거늘 黯이 나아가 공 엳오려 더니 上이 冠 쓰디 아 녀 겨시다가 黯을 라보시고 댱 안해 避야 사으로 여 곰 그 엳틈을 可타 시니 그 고마야 례도홈을 봄이 이러 더라
 
 
107
○ 初魏遼東公翟黑子, 有寵於太武. 奉使幷州, 受布千疋. 事覺, 黑子謀於著作郎高允曰, 主上問我, 當以實告. 爲當諱之. 允曰, 公帷幄寵臣. 有罪首實, 庶或見原, 不可重爲欺罔也. 中 書侍郞崔鑑公孫質曰, 若首實, 罪不可測. 不如姑諱之. 黑子怨 允曰, 君奈何誘人就死地. 入見帝, 不以實對, 帝怒, 殺之.
 
108
처엄의 魏 [元魏ㄴ 나라히라] 遼東公 [벼슬 일홈이라] 翟 黑 子ㅣ 太武 [魏ㅅ 님금이라] 의게 고임이 잇더니 竝州 [고 일홈이라] 예 브림을 맛다 가셔 뵈 일쳔 疋을 바닷더니 일이 텨 黑子ㅣ 著作郎 [벼슬 일홈이라] 高允의게 의론야  오 님금이 날려 무러시든 맛당히 實로 告랴 위야 맛당히 긔이랴 允이 오 그 댱 안해 괴이 신해니 罪 잇거든 올대로 엳오면 거의 或 노힘을 보려니와 可히 다 시곰 소기기를 디 몯 거시니라 中書侍郎 [벼슬 일홈이라] 崔鑑과 公孫質이 오 만일 올대로 엳오면 罪 可히 측량티 몯리니 안즉 긔윰만 디 몯니라 黑子ㅣ 允을 怨 야 오 그 엇디 홈으로 사을 달애여 죽을 해 나 아가게 뇨 고 들어가 帝 [황뎨라]  뵈오아 實로  답디 아니대 帝ㅣ 怒야 죽이시다
 
109
帝使允授太子經. 及崔浩以史事被收, 太子謂允曰, 入見至尊, 吾自導卿. 脫已尊有問, 但依吾語.
 
110
帝ㅣ 允으로 여곰 太子를 글 치더니 믿 崔浩ㅣ 긔일로 [崔浩ㅣ 魏ㄴ 님금 조샹 흉을 돌해 사겨 셰여늘 帝ㅣ 노 야 죽이니라]  잡피 닙어 太子ㅣ 允려 닐러 오 들어가 至尊 뵈와 내 스스로 그를 인도호리니 만일 至 尊 [지극이 놉픔이니 님금을 닐옴이라] 이 무르심이 잇거든 다믄 내 말을 의지야 라 太子見帝言, 高允小心愼密, 且徵賤. 制由崔浩. 請赦其死. 帝
 
111
召允問曰, 國書皆浩所爲乎. 對曰, 臣與浩共爲之. 然浩所領事多. 總裁而已, 至於著述, 臣多於浩. 帝怒曰, 允罪甚於浩. 何 以得生. 太子懼曰, 天威嚴重. 允小臣. 迷亂失次耳. 臣曏問. 皆云, 浩所爲. 帝問允, 信如東宮所言乎. 對曰, 臣罪當滅族. 不敢虛妄. 殿下以臣侍講日久. 哀臣, 欲丐其生耳, 實不問臣, 臣亦無此言. 不敢迷亂.
 
112
太子ㅣ 帝 뵈와 오 高允은 조심며 삼가며 딘밀고  微賤디라 그롬이 崔浩로 말암으니 請컨댄 그 죽음을 赦쇼셔 帝ㅣ 允을 블러 무러 샤 나랏 글이 다 浩의 온 바가 답야 오 臣과 다 浩ㅣ 가지로 오 니 그러나 浩 거늘인 밧 일이 한디라 모도 잡아 단  이어니와 글 지움애 닐으러 臣이 浩의게셔 하옹이다 帝ㅣ 怒야 샤 允의 罪ㅣ 浩의게셔 甚도소니 엇디  시 러곰 살리오 太子ㅣ 저허 오 하 위엄이 嚴고 重시 니 允은 젹은 신해라 아하고 어즐야 례를 일토송이다 臣이 고젓긔 묻조오니 다 닐오 浩의  배라 덩이다 帝ㅣ 允려 무샤 진실로 東宮의 닐으 바 냐 답야 오 臣이 罪ㅣ 맛당히 결에를 滅디라 敢히 거즛 되며 망 녕되이 몯영이다 殿下 [太子를 일 말이라] ㅣ  臣이 뫼와 글 엳옴이 날이 오란디라 臣을 에엿비 너기샤 그 사 롬을 비옵고져 실 이언뎡 진실로 臣려 묻도 아니시며 臣도  이 말이 업소오니 敢히 아고 어즐홈이 아니롱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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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顧謂太子曰, 直哉. 此人情所難, 而允能爲之. 臨事不易辭信也. 爲臣不欺君貞也. 宜特除其罪, 以旌之. 遂赦之.
 
114
帝ㅣ 太子를 도라 닐러 샤 直다 이 人情의 어려운 배어 允이 能히 니 죽음애 다라셔 말을 밧고디 아니홈  믿븜이오 신해 되여셔 님금을 소기디 아니홈 뎡졍홈이니 맛당히 특별이 그 罪ㅣ를 더러  졍표 거시라 시고 드듸 여 赦시다
 
115
他日太子讓允曰, 吾欲爲卿脫死, 而卿不從何也. 允曰, 臣與崔 浩實同史事. 死生榮辱, 義無獨殊. 誠荷殿下再造之慈, 違心苟 免, 非臣所願也. 太子動容稱嘆.
 
116
다 날애 太子ㅣ 允을 외다 여 오 내 그 위여 죽음을 벗기고져 거늘 그 졷디 아니홈 엇뎨오 允이  오 臣이 崔浩로 더블어 진실로 긔일을 가지로 호니 죽 으며 살며 영화로으며 辱도욤애 의리예 혼자 달리 홈이 업 거시니 진실로 殿下의 다시 살오신 어엿비 녀기심을 닙소왓거 니와 을 어글우쳐 구챠히 免홈은 臣의 願 배 아니닝 이다 太子ㅣ 용모 고텨 일라 차탄더라
 
117
允退謂人曰, 我不奉東宮指導者, 恐負翟黑子故也.
 
118
允이 믈러와 사러 닐러 오 내 東宮의 쳐 인도홈을 받디 아니홈 翟黑子 져릴가 저헨 연괴니라
 
 
119
○ 李君行先生名潛. 虔州人. 入京師. 至泗州, 留止. 其子弟請先往, 君行問其故. 曰, 科場近. 欲先至京師, 貫開封戶籍, 取 應. 君行不許曰, 汝虔州人, 而貫開封戶籍, 欲求事君, 而先欺 君, 可乎. 寧遲緩數年, 不可行也.
 
120
李君行 [君行 니 宋 적 사이라] 先生의 일홈은 潛이니 虔州 [고을 일홈이라] ㅅ 사이라 셔울 드러올 泗州 [고을 일홈이라] 예 니르러셔 머믈어 잇더니 그 子弟 몬져 감을 請 거 君行이 그 연고 무른대 오 과거시댱이 갓가오니 몬져 셔울 니르러셔 開封 [이제 漢城府  마을이라] 戶籍 [댱 호젹이라] 에 드려 과거 보기를 고져 노이다 君行이 許티 아녀 오 네 虔州ㅅ 사으로셔 開封戶籍에 드리면 님금 셤김을 求코져 며셔 몬져 님금을 소김이니 可냐  하리 두어  더딀 이언뎡 可히 가디 몯 거시니라
 
 
121
○ 崔玄暐母盧氏嘗誡玄暐曰, 吾見姨兄屯田郞中幸玄馭. 曰, 兒子從宦者, 有人來云, 貧乏不能存. 此是好消息, 若聞貲貨充足, 衣馬輕肥. 此惡消息. 吾嘗以爲確論.
 
122
崔玄暐 [玄暐 字ㅣ오 일홈 녑이니 唐 적 사이라] 의 어 미 盧氏ㅣ 일즉 玄暐를 경계야 오 내 姨兄 [엄의 겨집 동에 난 오라비라] 屯田郎中 [벼슬 일홈이라] 辛玄馭 보니 오 식이 벼슬여 니 이를 사이 이셔 와 닐 오 가난야 군핍야 能히 잇디 몯더라 면 이 이 됴  긔별이어니와 만일 믈이 차 足며 옷과 이 가얍고 지다 홈을 드르면 이 사오나온 긔별이라 니 내 常해  확실 의론이라 노라
 
123
比見親表中仕宦者, 將錢物, 上其父母父母但知喜悅, 竟不問此物, 從可而來. 必是祿俸餘資, 誠亦善事, 如其非理所得, 此如 盜賊何別. 縱無大咎, 獨不內愧於心. 玄暐遵奉敎誡, 以淸謹見 稱.
 
124
요이 보니 親 [동셩 권당이라][이셩 권당이라] 에 벼 슬 이 쳔량읫 거슬 가져다가 그 父母ㅅ 올려든 父母ㅣ 다  깃거 줄만 알오 내죵내 이거시 어드러 조차 오뇨 묻디 아니니 반드시 이 祿俸에 남은 믈인댄 진실로  됴 일이어니와 만일 그 非理예 어든 배면 이 盜賊으로 더블어 엇 디 리오 비록 큰 허믈이 업스나 홀로 안호로 애 붓그 럽디 아니랴 대 玄暐ㅣ 르쳐 경계홈을 조차 받와 쳥 렴고 삼감으로 일롬 보니라
 
 
125
○ 劉器之待制初登科, 與二同年, 謁張觀參政. 三人同起身, 請敎, 張曰, 某自守官以來常持四字. 勤謹和緩. 中間一後生應聲 曰, 勤謹和旣聞命矣. 緩之一字某所未聞. 張正色作氣曰, 何嘗 敎賢緩不及事. 且道世間甚事不因忙後錯了.
 
126
劉器之 [器之 字ㅣ오 일홈은 安世니 宋 적 사이라] 待制 ㅣ 처엄 급뎨야 두 동년으로 더블어 張觀參政 이샹  벼 슬이라  뵈더니 세 사이 가지로 몸을 니혀 침을 請대 張이 오 내 벼슬 딕킈욤으로브터  옴으로 샹녜 네  자받노니 브즈런홈과 삼감과 和홈과 날회여 홈이니라 中間의  졈은이 소 應여 오 브즈런홈과 삼감과 和홈 이믜 命을 듣왓거니와 날호예라    내 듣 디 몯엿던 배로소이다 張이 正色고 긔운 지어 오 엇디 일즉 그로 여곰 느저 일에 밋디 몯라 리오  니라 世間에 므스 일이 밧븐 後를 因야셔 그르디 아니 뇨
 
 
127
○ 伊川先生曰, 安定之門人, 往往知稽古愛民矣. 則於爲政也何 有.
 
128
伊川先生이 샤 安定 [안뎡 션이라]의 門人이 잇다감 녜 일을 샹고며 셩 랑홈을 아니 곧 졍욤애 므스 거시 어려우료
 
 
129
○ 呂滎公自少官守處, 未嘗干人擧薦. 其子舜從守官會稽, 人或譏其不求知者, 舜從對曰, 勤於職事, 其他不敢不愼. 乃所以求 知也.
 
130
呂榮公이 졈은 제브터 벼슬 디킌 고대 일즉 사의게 擧薦홈을 간구티 아니더니 그 아 舜從 [舜從은 니 일홈은 疑 問이라] 이 會稽 [고을 일홈이라] 예 벼슬을 딕킈여실 제 사 이 或 그 알옴을 求티 아니 줄을 긔롱거늘 舜從이  답야 오 소임옛 일을 브즈러니 고 그 다 일을 敢히 삼가디 아니티 아니노니  알옴을 求 배니라
 
 
131
○ 漢陳孝婦年十六而嫁, 未有子. 其夫當行戍, 且行時屬孝婦曰, 我生死未可知. 幸有老母. 無他兄弟備養. 吾不還, 汝肯養 吾母乎. 婦應曰, 諾.
 
132
漢 적 陳  孝婦ㅣ 나히 열여스신 제 셔방 마자 식이 잇디 몯엿더니 그 남진이 부방 가게 當야 쟝 갈 적의 孝婦의 게 맛뎌 오 내의 살며 죽움을 可히 아디 몯 거시니  혀 늘근 어미 잇고 녀 兄弟 효양을 초리 업스니 내 도라 오디 몯디라도 네 즐겨 내 어미를 효양다 婦ㅣ 답야 오 그리 호마
 
133
夫果死不還, 婦養姑不衰, 慈愛愈固, 紡績織紝, 以爲家業, 終無嫁意.
 
134
남진이 과연 죽어 도라오디 몯야 婦ㅣ 싀어미 효양홈을 衰티 아니야 어엿비 녀기며 랑홈이 더욱 구더 질삼며 뵈   집 살올 일 고 내죵내 남진 어를 이 업더라
 
135
居喪三年, 其父母哀其少無子, 而早寡也, 將取嫁之. 孝婦曰, 夫去時, 屬妾以供養老母, 妾旣許諾之. 夫養人老母, 而不能卒, 許人以諾, 而不能信, 將何以立於世. 欲自殺, 其父母懼, 而不 敢嫁也, 遂使養其姑. 二十八年姑八十餘. 以天年終, 盡賣其田 宅財物, 以葬之, 終奉祭祀.
 
136
三年 居喪 닙어늘 그 어버이 그 졈어셔 식 업고 일 홀어미된 줄을 슬피 녀겨 쟝 려다가 남진 얼리려 더니 孝婦ㅣ 오 남진이 갈 적의 내게 늘근 어미 供養기로 맛뎌 내 이믜 許諾호니 사의 늘근 어미를 치다가 能히 디 몯 며 사을 그리 호마 홈으로 許고 能히 믿비 몯면 쟝 엇디  셰샹의 셔시리오 고 스스로 죽고져 대 그 어버이 저허 구틔여 얼리디 아니야 드듸여 여곰 그 싀어미를 치 게 니 스므여듧 만애 싀어미 여 남은 이라 하 삼긴 나호로 죽거늘 그 받티며 집이며 財物을 다 라  영장 고 내 祭祀를 바다 니라
 
137
淮陽太守以聞, 聞使使者, 賜黃金四十斤, 復之, 終身無所與. 號曰, 孝婦.
 
138
淮陽 [東陳  고을히라] 太守ㅣ  들리온대 使者 블여 黃 金 마 근을 주시고 복호야 몸이 도록 참예 배 업게 니 [구실에 참예티 아니홈이라] 일홈 지어 오 효도로온 며리라 니라
 
 
139
○ 漢鮑宣妻桓氏, 字少君. 宣嘗就少君父學. 父奇其淸苦, 故以女妻之. 將送資賄甚盛, 宣不悅, 謂妻曰, 少君生富驕, 習美飾. 而吾實貧賤. 不敢當禮. 妻曰, 大人以先生修德守約, 故使賤妾 侍執巾櫛. 旣奉承君子, 惟命是從. 宣笑曰, 能如是, 是吾志也. 妻乃悉歸侍御服飾, 更著短布裳. 與宣共挽鹿車. 歸鄕里, 拜姑 禮畢, 提甕出汲, 修行婦道. 鄕邦稱之.
 
140
漢 鮑宣의 안해 桓氏의 字 少君이라 宣이 일즉 少君의 아븨게 나아가 호더니 아비 그 고 고로오믈 긔특이 녀겨 그러 모로 로 안해 삼으니 결속야 보내 믈이 장 盛 거늘 宣이 깃거 아니야 안해려 닐러 오 少君이 가 열어 교죵  나셔 아다온 단장을 니겨시니 내 진실로 가 난코 미쳔디라 敢히 례도를 감당티 몯리로다 안해 오 아비  先生이 德을 닷가 검약을 딕킈연는 연고로 賤 妾으 로 여곰 뫼와셔 슈건과 비슬 잡게 시니 이믜 君子를 받 와시란 오직 命신대로 이 졷오리이다 宣이 웃고 오  能히 이러시 면 이 내 이로다 안해 뫼신 사과 의 장읫 거슬 다 도라보내고 고텨 댜 뵈치마를 야 宣으로 더 블어 가지로 젹은 술위를 어 본향  도라가 싀어미  뵈 례도를 고 항을 가져 나가 믈 기러 며느리 도리  닷가 行니 히며 고을히 일더라
 
 
141
○ 曹爽從弟文叔妻, 譙郡夏侯文寧之女. 名令女. 文叔蚤死, 服闋, 自以年少無子. 恐家必嫁己, 乃斷髮爲信. 其後家果欲嫁之, 令女聞, 卽復以刀截兩耳, 居止常依爽. 及爽被誅, 曹氏盡死, 令女叔父上書, 與曹氏絶婚, 彊迎令女歸.
 
142
曹爽 [魏  종실이라] 의 사촌아 文叔의 안해 譙群 [ 일홈이니 文寧의 본향이라] 夏侯 文寧 [夏侯 셩이오 文寧은 일홈이라] 의 이니 일홈은 令女ㅣ라 文叔이 일 죽거늘 거상 고 스스로  나히 졈고 식이 업스니 집이 반시 저를 남진 얼릴가 저허 머리털을 버혀 셰엿더니 그 후에 집이 과연 얼리고져 거늘 令女ㅣ 듣고 즉제 다시 갈로 두 귀를 버히고 살기를 샹녜 爽의게 의지얏더니 믿 爽이 버히믈 닙 어 曹氏 다 죽거늘 令女의 아자비 글월을 올려 曹氏로 더블어 혼인을 긋고 구틔여 令女를 마자 도라오니라
 
143
時文寧爲梁相一作州. 憐其少執義, 又曹氏無遺類. 冀其意阻, 乃徵使人-風之, 令女嘆且泣曰, 吾亦惟之. 許之是也. 家以爲 信, 防之少懈, 令女於是竊入寢室, 以刀斷鼻, 蒙席而臥, 其母 呼與語, 不應, 發被視之. 血流滿床席, 擧家驚惶, 往視之, 莫 不酸鼻.
 
144
이 적의 文寧이 粱 [졔후 나라히라][벼슬 일홈이라] 이 도얏더니 그 졈고 졀의를 자반는 줄을 에엿비 녀기고  曹氏 기틴 類ㅣ 업슨디라 그 이 그츰을 라 마니 사으로  여곰 알왼대 令女ㅣ 탄식고  울어 오 내  각호니 許심이 올타 야늘 집이  믿비 녀겨 막옴을 젹이 게을 이 대 令女ㅣ 이예 마니 자는 방의 들어가 갈흐로 고 버히고 니블 무롭고 누어셔 그 어미 블러 더블어 말호 답 아니커늘 니블을 헤혀 보니 피 흘러 평상과 돗긔 얏거 늘 온 집이 놀라 두려 가 보고 고 싀여 아니리 업더라
 
145
或謂之曰, 人生世間, 如輕塵棲弱草耳. 何辛苦乃爾. 且夫家夷滅已盡. 守此欲誰爲哉. 令女曰, 聞仁者, 不以盛衰改節, 義者, 不以存亡易心. 曹氏全盛之時, 尙欲保終, 况今衰亡. 何忍棄之. 禽獸之行, 吾豈爲乎.
 
146
惑이 닐어 오 사이 世間의 사라심이 가븨야온 드틀이 弱 플에 븓터슘 니 엇디 辛苦홈을 이리뇨  남진 의 가문이 러 죽어 이믜 盡여시니 이를 디킈여셔 눌을 위 코져 뇨 令女ㅣ 오 들오니 仁 이 盛며 衰홈으 로 졀개를 고티디 아니고 義 이 이시며 업모로 을 밧고디 아니니 曹氏 알픠 盛 시절의도 오히려 내죵을 보젼코져 거든 믈며 이제 衰亡야시니 엇디 마 리리오 즘승의 실을 내 엇디 리오
 
 
147
○ 唐鄭義宗妻, 盧氏略涉書史, 事舅姑, 甚得婦道. 嘗夜有强盜數十, 持杖鼓噪, 踰垣而入. 家人悉奔Ꝩ, 唯有姑自在室, ,盧冒 白刃, 往至姑側, 爲賊捶擊, 幾死.
 
148
唐 鄭義宗의 안해 盧氏 녯글 잠 슷치고 싀어버이를 셤교 장 며늘의 道 어덧더니 일즉 밤의 强盜 두어 열히 막대 가지고 며 들퀘여 담 넘어 드니 집 사이 다 라 나 숨고 오직 싀어미 스스로 방의 잇거늘 盧氏 허연  다 와다가 싀어미 겨틔 니르러 도적의게 티임을 닙어 거의 죽을 이러라
 
149
賊去後家人問, 何獨不懼. 盧氏曰, 人所以異於禽獸者, 以其有仁義也. 隣里有急, 尙相赴救, 况在於姑, 而可委棄乎. 若萬一 危禍, 豈宜獨生.
 
150
도적이 간 후에 집 사이 무로 엇디 혼자 저티 아니더뇨 盧氏 오 사이  즘승의게 다 바 그 仁과 義 이시 모로니  急홈이 이셔도 오히려 서르 라가 救 거 시온 며 싀엄의게 잇거든 可히 릴 것가 다가 萬一 위  禍ㅣ 이시면 엇디 맛당히 혼자 사라시리오
 
 
151
○ 唐奉天竇氏二女, 生長草野, 幼有志操. 永泰中群盜數千人, 剽掠其村落, 二女皆有容色, 長者年十九. 幼者年十六. 匿巖穴 間, 曳出之, 驅迫以前. 臨壑谷深數百尺, 其姊先曰, 吾寧就死, 義不受辱. 卽投崖下而死, 盜方驚駭. 其妹繼之自投, 折足破面 流血, 群盜乃捨之而去.
 
152
唐 奉天 [ 일홈이라] 竇氏의 두 이 싀골셔 나 라되 졈 은 제브터 과 졀죄 잇더니 永泰 [代宗의 년회라] 가온대 모  도적 두어 千이나  사이 그  텨 후린대 두 이 다 이 이셔  나히 열아홉이오 아 나히 열여스시러 니 바흿 구무 이예 숨엇거늘 어내야 모라 차  알프로 갈 굴헝이 깁픠 두어 百 자히나  를 디늘어셔 그 이 몬져 오 내 하리 죽음애 나아갈 이언뎡 義예 辱을 받 디 몯 거시라 고 즉제 빙애 아래 러뎌 죽거늘 도적이 뵈야호로 놀라더니 그 아이 니어 스스로 러뎌 발이 것고  치 야뎌 피 흘으거늘 모 도적이 리고 가니라
 
153
京兆尹第五琦, 嘉其貞烈, 奏之, 詔旌表其門閭, 永蠲其家丁役.
 
154
京兆尹 [이제 城判尹  벼슬이라] ㅣ 그 뎡졀을 아다이 녀겨 엳온대 詔샤 그 門과  族表 [이제 홍문 셔기 톄엿 일이라] 시고 영영히 그 집 나 구실을 더르시다
 
 
155
○ 穆肜少孤, 兄弟四人, 皆同財業. 及各取妻, 諸婦遂求分異, 又數有鬪爭之言, 肜深懷忿嘆, 乃掩戶自撾曰, 穆肜汝修身謹行, 學聖人之法, 將以齊整風俗. 奈何不能正其家乎. 弟及諸婦聞之, 悉叩頭謝罪, 遂更爲敦睦之行.
 
156
繆肜 [漢 적 사이라] 이 졈어셔 孤야 아비 업단 말이라 兄弟 네 사이 다 셰간을 가지로 더니 믿 각각 안해 어더 모 겨집히 드듸여 화 닷살 기를 求고  조 싸화 토 말이 잇거늘 肜이 노야 애롬 깁피 품어 문 닫고 스스로 티며 오 繆肜이 네 몸을 닷고 실을 삼가 聖人의 法을 홈은 쟝  風俗을 졍졔호려 홈이니 엇디 홈으로 能히 그 집을 正케 몯뇨  대 아와 믿 모 겨집히 듣고 다 머리 좃고 謝罪야 드듸여 다시 도탑고 화동 실을 니라
 
 
157
○ 蘇瓊除南淸河太守. 有百姓乙普明兄弟爭田, 積年不斷, 各相援據. 乃至百人. 瓊召普明兄弟, 諭之曰, 天下難得者兄弟. 易 求者田地. 假令得田地, 失兄弟心, 如何. 因而下淚, 諸證人莫 不灑泣. 普明兄弟叩頭, 乞外更思, 分異十年, 遂還同住.
 
158
蘇瓊 [北齊 사이라] 이 南淸河 [고을 일홈이라] 太守  니 百姓乙普明의 兄弟 받 토아 여러  결티 몯야 각 각 서르 혀 증거니 일 사에 니르럿더니 瓊이 普明의 兄 弟 블러 알외여 오 天下애 얻디 어려온 거슨 兄弟오 求 키 쉬운 거슨 田地니 가셜 여곰 田地를 어더도 兄弟의  을 일흐면 엇더료 고 因야 눈믈을 딘대 모 본증엣 사 히 눈믈 리디 아니리 업더니 普明의 兄弟 머리 두드 려 밧긔 가 다시 각여지라 빌어 화 닫난디 열 만애 드듸여 도로  사니라
 
 
159
○ 王祥弟覽母朱氏, 遇祥無道. 覽年數歲, 見祥被楚撻, 輒涕泣抱持, 至于成童, 每
 
160
王祥의 아 覽의 어미 朱氏ㅣ 祥 졉홈을 無道히 더니 覽의 나히 두어 설의 祥의 매 맛기 닙음을 보고 믄득 울고 안아 븓드더니 아 일옴애 [열다 적이라] 닐으러 양 그 어미 를 諫니 그 어미 흉히 보채옴을 젹이 그치니라 朱ㅣ 조 非理로 祥을 블이거든 覽이 祥으로 더블어  고  祥 의 안해를 보채여 블이거든 覽의 안해  건녀 가지로  니 朱ㅣ 어려이 녀겨 그치니라
 
 
161
○ 晉右僕射鄧攸永嘉末沒于石勒, 過泗水. 攸以牛馬負妻子而逃, 又遇賊, 掠其牛馬, 步走, 擔其兒及其弟子綏. 度不能全, 乃謂其妻曰, 吾弟早亡, 唯有一息. 理不可絶. 止應自棄我兒耳. 幸而得存, 我後當有子. 妻泣而從之, 乃棄其子而去之. 卒以無 嗣.
 
162
晋右僕射 [벼슬 일홈이라] 鄧攸ㅣ 永嘉 [懷帝의 년회라] 내죵 애 石勒의게 디여 泗水를 디나갈 攸ㅣ 쇼와 로 妻子  싣고 도망다가  도적을 만나 그 쇼와 을 후리이고 거러 며셔 제 식과 믿 그 아 아 綏를 메오 가더니 能히 다 보젼티 몯 줄을 혜여 보고 그 안해여 닐어 오  내 아이 일 죽고 다  식이 이시니 理예 可히 긋디 몯 거시라 오직 응당히 스스로 내 식을 릴 거시로다  혀 시러곰 이시면 나는 후에 맛당히 식이 이시려니녀 안 해 울오 조차늘 그 아을 리고 갓더니 내  식이 업스니라
 
163
時人義而哀之, 爲之語曰, 天道無知, 使鄧伯道無兒. 弟子綏服攸喪三年.
 
164
시절 사이 어디리 녀겨 슬허 위야 닐어 오 天道ㅣ 無知야 鄧伯道로 여곰 식이 업게 도다 아의 아 綏ㅣ 攸의 거상을 三年을 닙으니라
 
 
165
○ 晉咸寧中大疫. 庾袞二兄俱亡, 次兄毗復危殆, 癘氣方熾, 父母諸弟皆出次于外, 袞獨留不去, 諸父兄强之, 乃曰, 袞性不畏 病. 遂親自扶持, 晝夜不眠, 其間復無柩, 哀臨不輟. 如此十有 餘旬, 疫勢旣歇, 家人乃反. 毗病得差, 袞亦無恙.
 
166
晋咸寧 [武帝의 년회라] 가온대 큰 려역이러니 庾袞의 두 兄 이  죽고 버근 兄 毗  危殆야 병긔 뵈야호로 셩거 늘 父母와 모 아히 다 나가 밧 이쇼 袞이 혼자 머 믈어 나가디 아니거늘 모 父兄이 우긴대 오 내 性이 病을 저티 아니노라 고 드듸여 친히 스스로 븓들어 낫밤 을 조으디 아니며 그 이예  관을 지며셔 슬피 울기를 그치디 아니더니 이러시 기를 열남은 旬 열흘식 야 열히니 서너 이란 말이라 에 病셰 이믜 헐거 집사이 도라오니 毗의 病이 시러곰 됴코 袞도  병이 업스니라
 
167
父老咸曰, 異哉. 此子. 守人所不能守, 行人所不能行,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 始知疫癘之不能相染也.
 
168
늘근이히 모다 오 긔이다 이 손이여 사의 能히 딕킈디 몯 바 딕킈며 사의 能히 行디 몯 바 行 니 치운 후에 솔과 즉의 후에 디 줄을 아니 비르 소 녀역의 能히 서르 뎐염티 몯 줄을 알와라
 
 
169
○ 楊播家世純厚, 並敦義讓, 昆季相事, 有如父子. 椿津恭謙, 兄弟旦則聚於廳堂, 終日相對, 未嘗入內, 有一美味, 不集不食. 廳堂間往往幃幔隔障, 爲寢息之所, 時就休偃, 還共談笑.
 
170
楊播 [元魏 적 사이라] 의 가문이 셰셰로 純厚야 다 올 일로 양홈을 두터이 야 형뎨 서르 셤규 아비 식 티 더니 椿과 津이 온공고 겸손야 兄弟 아이어든 廳과 堂에 모다 날이 도록 서르 마조 안자 일즉 안해 드디 아니 며  됴 마시나 잇거든 몯디 아니여셔 먹디 아니 더라 廳堂 이예 잇다감 댱으로 이막아 자며 쉴 쳐소를  라 시시예 나아가 쉬여히즐이고 도로 와 가지로 말며 웃더라
 
171
椿年老, 曾他處醉歸, 津扶持還室, 假寢閤前, 承候安否.
 
172
椿이 나히 늘거셔 일즉 다 곧애 가 醉야 도라오거늘 津이 븓잡아 방의 도라와 지게 알셔 무서 자며셔 안부를 피 더라
 
173
椿津年過六十, 並登台鼎, 而津常旦莫參問, 子姪羅列階下. 椿不命坐, 津不敢坐.
 
174
椿과 津이 나히 여슌이 넘어 와 台鼎 [台 三台星이오 鼎 은 솓 발이 세히니 三公을 샹 말이라] 의 올라시되 津이 샹 해 아 나죄로 뵈와 문안거든 아와 아아히 섬아 래 버러 셧더니 椿이 안을 命티 아니커든 津이 敢히 안 아니더라
 
175
椿每近出, 或日斜不至, 津不先飯, 椿還然後共食. 食則津親授匙箸, 味皆先嘗, 椿命食然後食. 津爲肆州椿在京宅. 每有四時 嘉味, 輒因使次, 附之, 若或未寄, 不先入口. 一家之內男女百 口. 緦服同爨, 庭無間言.
 
176
椿이 양 갓가이 나가 或  기우도록 닐으디 아니커든 津이 몬져 밥 먹디 아니야 椿이 도라온 후에  먹더니 밥 먹 을 적이면 津이 술와 져 친히 받오며 맛가슬 다 몬져 맛 보고 椿이 먹음을 命 후에 먹더라 津이 肆州ㅣ [고을히라] ㅅ 원여실 제 椿이 셔울 집의 잇더니 양 졀에 아다온 마샛 거시 잇거든 믄득 갈 사을 因야 븓텨 보내고 만일 或 보내디 몯야시면 몬져 입에 들이디 아니더라  집 안 해 나와 간나 일이러니 緦服 [八寸형 뎨복이라] 이 셔 밥 지오 집 안 잇 말이 업더라
 
 
177
○ 隋吏部尙書牛弘弟弼, 好酒而酗. 嘗醉. 射殺弘駕車牛, 弘還宅, 其妻迎謂弘曰, 叔射殺牛. 弘聞, 無所怪問. 直答曰, 作脯. 坐定, 其妻又曰, 叔射殺牛. 大是異事. 弘曰, 已知. 顔色自若, 讀書不輟.
 
178
隨吏部 [마을이라] 尙書 [벼슬이라] 牛弘의 아 弼이 술 즐 기고 쥬졍더니 일즉 醉야셔 弘의 술위 메 쇼 와 죽 인대 弘이 집의 도라오나늘 그 안해 마조 弘려 닐어 오 아자비 쇼 와 죽이다 야늘 弘이 듣고 괴이히 녀겨 문 배 업고 담 답야 오 보육 라 안좀을 定커늘 그 안해  오 아자비 쇼 와 죽이니 큰 이 고이 일이 로다 弘이 오 이믜 알와라 고  빗치 연야 글 닑기를 그치디 아니더라
 
 
179
○ 唐英公李勣, 貴爲僕射, 其姊病, 必親爲然火煮粥. 火焚其鬚, 姊曰, 僕妾多矣. 何爲自若如此. 勣曰, 豈爲無人耶. 顧今 姊年老, 勣亦老. 雖欲數爲姊煮粥, 復可得乎.
 
180
唐 英公 [英은 봉 히라] 李勣이 貴야 僕射ㅣ 되여시되 그 누의 病엿거든 반시 친히 위야 블디더 粥을 글히 더니 블이 그 날 오재 븓거늘 누의 오 겨집죵이 하니 엇 디 스스로 슈고 이러시 뇨 勣이 오 엇디 사 업 슴을 위예리오 도라보건댄 이제 누의 나히 늙고 勣이  늘 그니 비록 조 누의를 위야 粥을 글히고져  다시 可히 어드랴
 
 
181
○ 司馬溫公與其兄伯康, 友愛尤篤. 伯康年將八十. 公奉之如嚴父, 保之如嬰兒, 每食少頃則問曰, 得無饑乎. 天少冷則拊其背 曰, 衣得無薄乎.
 
182
司馬溫公이 그 兄 伯康으로 더블어 랑홈을 더옥 도타이 더니 伯康이 나히 쟝 여이라 公이 위와돔을 嚴 아비  티 며 간슈홈을 아기 티 야 양 밥 먹고 이윽면 무러 오 아니  골가 며 날이 져기 면 그 등을  져 오 오시 아니 열운가 더라
 
 
183
○ 近世故家惟晁氏, 因以道申戒子弟, 皆有法度. 群居相呼, 外姓尊長, 必曰, 某姓第幾叔若兄. 諸姑尊姑之夫, 必曰, 某姓姑 夫某姓尊姑夫. 未嘗敢呼字也, 其言父黨交游必曰, 某姓幾丈. 亦未嘗敢呼字也. 當時故家舊族, 皆不能若是.
 
184
요이 녯 가문이 오직 晁氏ㅣ 以道 [일홈은 說之니 宋 적 사이라] 의 子弟를 다시곰 경계홈을 因야셔 다 法道 이시니 모다 살며 서르 블롬애 外姓 얼운으란 반시 오 아모 姓 현잿 아자비며 밋 兄이라 며 모 아미며 넛할 남편으 란 반시 오 아모 姓 아의 남편이며 아모 姓 넛할믜 남편이라 고 일즉 敢히 字를 브르디 아니며 그 아븨 물에 사괴여 니 이 니를 제 반시 오 아모 姓 현잿 얼 운이라 고  일즉 敢히 字를 브르디 아니니 그 시절 녯 가문과 오란 겨레들히 다 能히 이 디 몯더라
 
 
185
○ 包孝肅公尹京時, 民有自言, 以白金百兩, 寄我者死矣, 予其 子. 不肯受. 願召其子, 予之. 尹召其子, 辭曰, 亡父未嘗以白 金委人也. 兩人相讓久之.
 
186
包孝肅公 [일홈은 拯이니 孝肅은 시회라 宋 적 샹이라] 이 셔울 尹 [漢城判尹  벼슬이라] 여실 제 셩이 스스로 니리 이쇼 은 일 량으로 내게 브틴 이 죽거늘 그 아 을 주니 즐겨 받디 아니니 願컨댄 그 아을 블러 주쇼 셔 尹이 그 아을 브른대 양야 오 죽은 아비 일즉 은으로 사을 맛디디 아년니라 고 두 사이 설으  양기 오래더라
 
187
呂滎公聞之曰, 世人喜言無好人三字者, 可謂自賊者矣. 古人言, 人皆可以爲堯舜. 蓋觀於此而知之.
 
188
呂榮公이 듣고 오 셰샹 사이 됴 사 업다  세 字 즐겨 닐으 이 可히 스스로 해 이라 닐으리로다 녯 사이 닐오 사이 다 可히  堯舜이 되리라 니 이 예 보아 알리로다
 
 
189
○ 萬石君石奮歸老于家. 過宮門關, 必下車趨, 見路馬, 必軾 焉. 子孫爲小吏來歸謁, 萬石君必朝服見之, 不名. 子孫有過失, 不誚讓, 爲便坐, 對案不食, 然後諸子相責, 因長老, 肉袒, 固 謝罪改之, 乃許.
 
190
萬石君 [당신과 아 네희 녹이 각각 이쳔 셕식이모로 만셕군이라 니라] 石奮 [漢 적 臣해라] 이 도라와 집의셔 늙더니 대궐 문을 디날 반시 술위예 여 으며 路馬 [님금  시 路車 메 이라]  보고 반시 軾더라 子孫이 효  벼슬 연디라 와 뵈여 萬石君이 반시 朝服 닙어 보 고 일홈 블으디 아니며 子孫이 過失이 잇거든 짓디 아니 고 위야 애 안자 반상을 對여셔 먹디 아니거든 그린 후에 모 식히 서르 責야 얼운을 因야 나 게 메왓고 장 謝罪야 고텨지라 여 許더라
 
191
子孫勝冠者在側, 雖燕必冠, 申申如也, 僮僕訢訢如也, 唯謹.
 
192
子孫이 冠 쓴 이 겯틔 잇거든 비록 혼자 이신 제라두 반시 冠 써 申申 며 죵게 訢訢 [화열 양이라]  호 오직 삼가더라
 
193
上時賜食於家, 必稽首俯伏而食, 如在上前, 其執喪哀戚甚. 子孫遵敎, 亦如之. 萬石君家以孝謹, 聞乎郡國. 雖齊魯諸儒, 質 行皆自以爲不及也.
 
194
上이 시시로 음식을 집의 주어시든 반시 머리를 좃고 업더 여셔 먹어 上의 앏픠 이슘 티 며 그 거상 닙어실 제 슬허 셜워홈이 甚니 子孫이 츔을 조차  티 더라 萬石 君의 집이 효도며 조심홈으로 고을히며 나라해 들리디라 비록 齊와 魯ㅅ닷 모 션히라두 실 실은 다 스스로  맛디 몯리로다 더라
 
195
長子建爲郞中令, 少子慶爲內史. 建老白首, 萬石君尙無恙. 每五日洗沐歸謁, 親入子舍, 竊問侍者, 取親中裙厠牏, 身自浣滌, 每與侍者言, 不敢令萬石君知之以爲常.
 
196
아 建은 郎中令 [벼슬이라] 이 되얏고 졈은 아 慶은 內史 [벼슬이라] ㅣ 되얏더니 建이 늘거 머리 셰요 萬石君이 오히려 병이 업더라 양 닷쇗만의 모욕 말 제 도라와 뵈 고 親히 겯방의 들어가 뫼션 이여 만이 무러 어버의 속우틔 가져다가 몸소 스스로 아 도로 뫼신 이 주 敢 히 萬石君으로 여곰 알에 아니야  샹를 삼더라
 
197
內史慶醉歸, 入外門, 不下車, 萬石君聞之, 不食, 慶恐, 肉袒 謝罪, 不許, 擧宗及兄建肉袒, 萬石君讓曰, 內史貴人. 入閭里. 里中長老皆走匿, 而內史坐車中自如. 固當. 乃謝罷慶, 慶及諸 子入里門, 趨至家.
 
198
內史慶이 醉야 도라와 밧 門의 들어 술위 브리디 아니대 萬石君이 듣고 음식 먹디 아니커늘 慶이 두려 라게 메왓 고 謝罪대 許티 아니거늘 온 권당과 밋 兄 建이 라게 메와대 萬石君이 죵여 오 內史 貴 사이라  을 들거든 을 온대 늘근이들히 다 라 들어 숨거늘 內 史ㅣ 술위 온대 안자심을 약히 니 진실로 맛당도다 고 慶을 나가라 니 慶과 밋 모 아이 里門의 들어  조 걸어 집의 닐으더라
 
 
199
○ 疏廣爲太子太傳. 上疏乞骸骨, 加賜黃金二十斤, 太子贈五十斤, 歸鄕里, 日令家供具設酒食, 請族人故舊賓客, 相與娛樂, 數問其家, 金餘尙有幾斤. 趣賣以供具.
 
200
疏廣 [漢 적 사이라] 이 太子太傅 [太子 글 으치 벼슬 이라] ㅣ 되엿더니 上疏야 骸骨을 빈대 [몸을 비롬이니 벼 슬 마라지란 말이라] 黃金 스므 근을 더 주시고 太子ㅣ 쉰 근 을 주어시늘 싀골 도라가 날로 집으로 여곰 긔구를 초와 술 음식을 쟝만야 권당읫 사과 故舊와 손흘 請야 설 으 더블어 즐기며 조 그 집의 무로 金 나믄 이 오히려 몃 근이나 인고 리 라  긔구를 초라 더라
 
201
居歲餘廣子孫竊謂其昆弟老人廣所信愛者, 曰, 子孫冀及君時, 頗立産業基址. 今日飮食費且盡. 宜從丈人所, 勸說君, 置田宅. 老人卽以閒暇時爲廣言此計,
 
202
이션디  남으매 廣의 子孫이 그 형뎨예 늘근 사 廣의 믿고 랑 바려 만이 닐러 오 子孫이 어버이 시절 을 미처  계홀 터 셸가 아더니 오날애 飮食  허비예  盡야 가니 맛당히 얼우신 고 조차셔 어버잇긔 勸야 달아여 田宅을 두게 라 늘근 사이 즉제 閒暇 시 절로 廣을 위야 이 계교를 닐은대
 
203
廣曰, 吾豈老悖, 不念子孫哉. 顧自有舊田廬. 令子孫勤力其中, 足以共衣食, 與凡人齊. 今復增益之, 以爲嬴餘, 但敎子孫怠惰 耳.
 
204
廣이 오 내 엇디 늙고 망패야 子孫을 렴려티 아니리오 도라보건댄 스스로 녯 받과 집이 이시니 子孫으로 여곰 그 가온대셔 브즈런이 힘 면 足히  옷밥을 쟝만야 년 으 사으로 더블어 리니 이제 다시 더으게 야  남을 거슬면 다 子孫을 게을옴을 으침이니라
 
205
賢而多財, 則損其志, 愚而多財, 則益其過. 且夫富者, 衆之怨也. 吾旣無以敎化子孫. 不欲益其過而生怨. 又此金者, 聖主所 以惠養老臣也. 故樂與鄕黨宗族, 共享其賜, 以盡吾餘日. 不亦 可乎.
 
206
어딜오 믈이 하면 그 을 해고 어리고 믈이 하면 그 허믈을 더니  가열옴은 모의 원망이니 내 이믜  子孫을 으쳐 되게 홈이 업디라 그 허믈을 더어 원망이 나 디 아니케 고져 노라  이 金은 님금의  늘근 신하를 주어 치신 배니 그러모로 즐겨 과 권당들로 더블어 그 주 신 거슬 가지로 안향야  내 나 날을 다으려 노니  可티 아니냐
 
 
207
○ 龐公未嘗入城府, 夫妻相敬如賓. 劉表候之. 龐公釋耕於壟上, 而妻子耘於前, 表指而問曰, 先生若居畎畝而不肯官祿. 後 世何以遺子孫乎. 龐公曰, 世人皆遺之以危, 今獨遺之以安. 雖 所遺不同, 未爲無所遺也. 表嘆息而去.
 
208
龐公 [ 德公이니 漢 적 은라] 이 일즉 자안히며 마애 들어가디 아니고 夫妻ㅣ 설으 공경홈을 손 티 더니 劉表 [漢宗室이니 형쥬 원 얏더니라] ㅣ 니 龐公이 두 던 우희 가 받 가던 거 그치고 妻子ㅣ 앏픠셔 기음 더니 表ㅣ 으치고 무러 오 先生이 슈고로이 받이렁의셔 살오 벼슬 祿을 즐겨 아니니 훗예 므서스로  子孫을 기티 리오 龐公이 오 셰샹 사은 다 위 거스로 기티거 늘 이제 혼자 편안 거스로 기티노니 비록 기티 배 디 아니나 기티 배 업미 아니라 대 表ㅣ 嘆息고 가다
 
 
209
○ 陶淵明爲彭澤令, 不以家累自隨. 送一力, 給其子, 書曰, 汝旦夕之費, 自給爲難, 今遺此力, 助汝薪水之勞. 此亦人子也. 可善遇之.
 
210
陶淵明 [일홈은 潛이니 晋 적 은라] 이 彭澤令을 야 가쇽으로 스스로 졷디 아녓더니  죵을 보내여 그 아을 주고 유무여 오 네 아 나죄  거 스스로 쟝만홈이 어려 올 이제 이 죵을 보내여 네 나모며 믈 길이예 부 돕 노니 이도  사의 식이니 可히 됴히 졉디니라
 
 
211
○ 崔孝芬兄弟, 孝義慈厚. 弟孝暐等奉孝芬, 盡恭順之禮, 坐食進退, 孝芬不命則不敢也, 鷄鳴而起, 且溫顔色, 一錢尺帛, 不 入私房, 吉凶有須, 聚對分給. 諸婦亦相親愛, 有無共之.
 
212
崔孝芬 [元魏 적 사이라] 의 兄弟 효도로오며 올흐며 샹 며 슌후더니 아 孝暐等이 孝芬을 위와도 恭順 례도  다야 안며 음식 먹으며 나며 믈롬애 孝芬이 命티 아 니면 敢히 아니며  울어든 니러   빗 온화히  며  돈이며 잣깁을  房의 들이디 아니고 吉며 凶   거시 이심애 모다 마조 안자 화 주더니 모 며리  서 親며 랑야 이시며 업을 가지로 더라
 
213
孝芬叔振旣亡後, 孝芬等承奉叔母李氏, 若事所生, 旦夕溫凊, 出入啓覲, 家事巨細一以咨決, 每兄弟出行, 有獲則尺寸以上皆 入李之庫, 四時分賚李氏自裁之. 如此二十餘歲.
 
214
孝芬의 아자비 振이 이믜 죽은 後에 孝芬等이 아이 李氏 위와도 나 바 셤귬 티 야 아 나조 며 서늘 케 며 나며 들옴애 고 뵈며 집일이 크며 젹은 이  티  무러 決며 양 兄弟 나닐 제 어든 거시 잇거든 재며 치로 우흿 거슬 다 李氏의 庫애 들이고 졀의 화 줌을 李氏 스스로 알아 더니 이 티 홈이 스므 남은 러라
 
 
215
○ 王凝常居慄如也. 子弟非公服, 不見, 閨門之內若朝廷焉.
 
216
王凝 [唐 적 사이라] 이 샹해 이쇼매 싁싁더니 子弟 公服 아녓거든 보디 아니야 방문 안히 朝廷 더라
 
217
御家以四敎. 勤儉恭恕. 正家以四禮. 冠婚喪祭.
 
218
집 다요 네 가짓 으침오로 니 브즈런며 검박며 공슌며 의  졉어 봄이오 집 正욤 네 가짓 禮로 니 가관기며 혼인기며 상며 졔러라
 
219
聖人之書及公服禮器不假, 垣屋什物必堅朴, 曰, 無苟費也. 門巷果木必方列曰, 無苟亂也.
 
220
聖人의 글월과 믿 公服과 졔긔 비디 아니며 담이며 집이며 온갓 긔믈을 반시 굳고 검박게 야 오 구챠히 허비 티 아닐 거시라 며 문 오래며 과실 남글 반시 방졍히 버 럿게 야 오 구챠히 어즐업게 아닐 거시라 더라
 
 
221
○ 張公藝九世同居. 北齊隋唐, 皆旌表其門. 麟德中, 高宗封泰山, 幸其宅, 召見公藝, 問其所以能睦族之道, 公藝請紙筆以對, 乃書忍字百餘以進. 其意以爲宗族所以不協, 由尊長衣食, 或有 不均, 卑幼禮節, 或有不備, 更相責望, 遂爲乖爭. 苟能相與忍 之, 則家道雍睦矣.
 
222
張公藝ㅣ 아홉    사더니 北齊와 隋와 唐이 다 그 門에 旌表니라 麟德 [唐高宗의 년회라] 가온대 高宗이 泰山을 봉션시고 그 집의 가샤 公藝를 블러 보아 그  能히 권당 화동 밧 도리 무신대 公藝 죠와 붇을 請야  답호   忍字 일 남은 이를 써  들이오니 그 이  호 권 당이  화티 몯 바 얼운의 옷과 밥을 홈이 或 고로 아 니홈이 이시며  이며 졈은의 禮節이 或 디 안임이 잇거  다시곰 설으 외다 야 원망홈을 말믜아 드듸여 어긔여 톰이 되니 진실로 能히 설으 더블어 면 家道ㅣ 화목 리라
 
 
223
○ 韓文公作董生行曰, 淮水出桐栢山, 東馳遙遙, 千里不能休, 淝水出其側, 不能千里, 百里入淮流. 壽州屬縣有安豊. 唐貞元 年時, 縣人董生召南, 隱居行義於其中. 刺史不能薦. 天子不聞 名聲. 爵祿不及門. 門外惟有吏, 日來徵租更索錢.
 
224
韓文公 [일홈은 愈ㅣ오 字 退之니 唐 적 큰 션라] 이 董生 [董 셩이오 生은 션를 닐옴이라][글 일홈이라] 을 지어 오 淮水ㅣ 桐栢山의 나셔 동녁크로 리기를 아라 이 야 千里예 能히 쉬디 아니거든 淝水ㅣ 그 겨틔셔 나 能히 千里를 몯야 百里예 淮슈로 드러 흐르놋다 壽州ㅣ 屬  고을히 安豊이란  이시니 唐貞元 [德宗 년회라] 시절의 懸 사 董生召南 [일홈이라] 이 그 가온대 숨어 살며 어딘 이 行놋다 刺史 목라 ㅣ 能히 쳔거티 몯니 天子ㅣ 일 홈과 소릐를 듣디 몯신디라 벼슬와 祿이 門의 밋디 몯고 門 밧긔 오직 아젼이 날로 와 곡식을 물리며  돈을 내라  놋다
 
225
嗟哉董生. 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息, 或山而樵, 或水而漁. 入廚具甘旨, 上堂問起居. 父母不慼慼, 妻子不咨咨.
 
226
슯프다 董生이여 아의 나가 받 갈고 밤의 도라와 녯 사의 글을 닑놋다 날이 다도록 시러곰 쉬디 몯야 或 뫼헤 남오 며 或 믈에 고기 잡놋다 브세 들어 고 만난 거 초고 텽의 올라 안부를 묻오니 父母ㅣ 시름 안이며 妻子ㅣ 원 탄 안이놋다
 
227
嗟哉董生. 孝且慈人不識, 唯有天翁知, 生祥下瑞無時期. 家有狗乳出求食, 雞來哺其兒, 啄啄庭中拾蟲蟻, 哺之不食鳴聲悲, 彷徨躑躅久不去, 以翼來覆待狗歸.
 
228
슯프다 董生이여 효도롭고  인로옴을 사은 아디 몯고 오직 하히 아라셔 뎡샹을 내며 샹셔를 리옴을 시걱이 업 시 놋다 집의 개 이셔 삿기 나코 나가 머굼을 求거 이 와 그 삿기 머규  가온대 딕쥬어려 벌에며 개얌이 를 주어 머기니 먹디 아니커 우 소 슯허야 두루 건니 며 놀아 오래 나디 아니고 개로 와 덥퍼셔 개 도라 옴을 기들오놋다
 
229
嗟哉董生. 誰將與儔. 時之人夫妻相虐, 兄弟爲讎, 食君之祿, 而令父母愁. 亦獨何心. 嗟哉董生, 無與儔.
 
230
슯프다 董生이여 뉘 쟝 더블어 리오 시졀 사은 夫妻 ㅣ 설으 보채며 兄弟ㅣ 원슈되여 님금 祿을 먹오 父母로  여곰 시름케 니  홀로 엇던 고 슯프다 董生이여 더 블어 리 엄도다
 
 
231
○ 唐河東節度使柳公綽在公卿間, 最名有家法.
 
232
唐 河東 節度使 柳公綽이 公卿 이예 이셔 장 家法이 잇다 일홈나더라
 
233
中門東有小齋. 自非朝謁之日, 每平旦輒出至小齋, 諸子仲郢皆束帶, 晨省於中文之北. 公綽決私事, 接賓客, 與弟公權及群從 弟再會食, 自朝至莫不離小齋, 燭至則命一人子弟, 執經史, 躬 讀一過訖, 乃講議居官治家之法, 或論文, 或聽琴, 至人定鍾, 然後歸寢, 諸子復昏定於中門之北. 凡二十餘年, 未嘗一日變易.
 
234
中門 東녁킈 쟈근 집이 잇더니 스스로 됴회  날이 아니면 양 기예 믄득 쟈근 집의 니거든 모 아 仲郢히 다  여 中門 뒤희 가 새바긔 省더라 公綽이 일 결 단며 손 졉고 아 公權과 밋 모 촌 아로 더블 어 두 번 모다 음식 먹어 아브터 나죄 닐으히 쟉은 집의  나디 아니고 블 혀 오나 子弟  사을 命야 경뎐이나 긔나 잡혀셔 몸소 닑어  번 디냄을 고 벼에 이시며 집 다릴 法을 의론며 或 글 의론며 或 거믄고 듣다가 人定 붑 다은 후에 자  니거 모 아히  中門 뒤희가 어을 定더니 믈읫 스므 남은 예 일즉 도 고 티디 아니더라
 
235
其遇飢歲, 則諸子皆蔬食. 曰, 昔吾兄弟侍先君爲丹州刺史, 以學業未成不聽食肉. 吾不敢忘也.
 
236
그 가난  만나면 모 식이 다  음식을 더니 오 녜 우리 兄弟ㅣ 先君이 [션군은 죽은 아비 닐옴이 라] 丹州 ㅅ 원야 겨시거늘 뫼와실 제 호 業이 이디 몯여시모로 고기 먹음을 허티 아니더시니 내 敢히 닛디 몯노라
 
237
姑姊妹姪有孤嫠者, 雖疎遠, 必爲擇壻嫁之, 皆用刻木粧奩, 纈文絹爲資裝. 常言, 必待資粧豐備, 何如嫁不失時.
 
238
아미며 누의며 아 누의며 아이 아비 업슨 이와 남진 업슨 이 잇거 비록 疎고 먼 이라도 반시 위야 사 회 야 혼인호 다 남그로 사긴 셩뎍 그슬 며 자 문 노흔 깁으로 결속더니 샹해 닐오 반시 결속을 豊備 홈을 기오모론 혼인호 를 일티 아니홈과 엇더뇨 더라
 
239
及公綽卒, 仲郢一遵其法, 事公權如事公綽, 非甚病, 見公權未嘗不束帶. 爲京兆尹鹽鐵使, 出遇公權於通衢, 必下馬端笏立, 候公權過, 乃上馬, 公權莫歸, 必束帶迎候於馬首. 公權屢以爲 言, 中郢終不以官達有小改.
 
240
公綽이 죽음애 미처는 仲郢이 티 그 法을 조차 公權을 셤규 公綽 셤귬 티 야 甚히 病 저기 아니어든 公權을 볼 제 일즉  디 아니티 아니더라 京兆尹塩鐵使 [노 벼슬이라] ㅣ 되야셔 나가 公權을 通 거리예 만나매 반시  브려 笏 받고 셔셔 公權이 디남을 기들워  며 公權이 나죄 도라올 제어든 반시  고  머리예 마조 기우더 니 公權이 조  닐오 仲郢이 내죵내 벼슬이 현달호모로  죠고매도 고티미 잇디 아니더라
 
241
公綽妻韓氏相國休之曾孫. 家法嚴肅儉約, 爲搢紳家楷範. 歸柳氏三年無少長未嘗見其啓齒, 常衣絹素, 不用綾羅錦繡, 每歸覲 不乘金碧輿, 祗乘竹兜子, 二靑衣, 步屣以隨. 常命粉苦蔘黃連 熊膽, 和爲丸, 賜諸子, 每永夜習學含之, 以資勤苦.
 
242
公綽의 안해 韓氏 相國休 [休 일홈이니 唐 적 어딘 샹 이라] 의 曾孫이니 家法이 엄졍고 싁싁며 검박고 간약 야 搢紳 [홀 곳고  단 말이니 됴관을 닐은 말이라] 의 집 법이 되엿더니 柳氏의게 간 三年에 아 어룬 업시 일즉 그 니 드러낼 적을 보디 몯며 샹해 깁을 닙고 솔기며 고뢰 며 금의와 슈치 디 아니며 양 도라가 근친 제 금이 며 프른 걷  수뤼 디 아니고 오직 대교를 타 두 프 른 옷 닙은 이 거러  좃더라 샹해 긔걸야 苦參과 黃連과 熊膽 [다  약이라] 을 라 섯거 丸 라 모 아 주 어 양 긴 밤의 혼 것 니길 제 머굼어  브즈런코 고로옴  돕게 더라
 
 
243
○ 江州陳氏, 宗族七百口. 每食設廣席, 長幼以次坐, 而共食之. 有畜犬百餘, 共一牢食. 一犬不志, 諸犬爲之不食.
 
244
江州陳氏 [일홈은 袞ㅣ니 南唐 적 사이라] 권당이 七百 사 이러니 양 밥 머글 제 너븐 돗 고 얼운과 아 례로  안자 가지로 먹더라 치 개 일 남은 이 이쇼  그 르세 가지로 먹더니  개 닐으디 아니면 모 개 위여 먹디 아니더라
 
 
245
○ 溫公曰, 國朝公卿能守先法, 久而不衰者, 唯故李相家. 子孫數世至二百餘口, 猶同居共爨, 田園邸舍所收及有官者俸祿, 皆 聚之一庫, 計口日給餉, 婚姻喪葬所費, 皆有常數, 分命子弟, 掌其事. 其規模大抵出於翰林學士宗諤所制也.
 
246
溫公이 오 우리나랏 公卿이 能히 션셰예 法을 딕킈여 오라 衰티 아니 이 오직 녯 李相 [李肪이란 졍승이니 宋 적 사이라] 집이니 子孫이 두어 예 二百 남은 사에 닐으러시되 오히려   살며 가지로 밥 지어 뎐디며 집셰 거둔 바와 믿 벼슬 둔는 이의 월봉과 祿을 다  庫애 뫼화 사 혀여 날로 먹일 거 供給며 婚姻이며 상장의  배 다 덛덛 數ㅣ 잇게 야 화 子弟 긔걸야 그 일 을 알에 니 그 법이 大抵혼디 翰林學士 宗諤의  바 에 난 이라
 
247
右, 實明倫.
 
248
이 우 인륜 키 實우니라
 

 
 
249
○ 或問第五倫曰, 公有私乎. 對曰, 昔人有與吾千里馬者, 吾雖不受, 每三公有所選擧, 必不能忘, 而亦終不用也, 吾兄子嘗病, 一夜十往, 退而安寢, 吾子有疾, 雖不省視, 而竟夕不眠. 若是 者, 豈可謂無私乎.
 
250
或이 第五倫 [東漢 적 사이라] 려 무러 오 公이  로옴이 인냐 답야 오 녜사이 나 千里馬 주리 잇거 내 비록 받디 아니나 양 三公이  쳔거 배 이실 제 애 能히 닛디 몯호  내 디 아니며 내 형의 아이 일즉 病엿거늘   열 번 가되 믈러 와 편히 자고 내 아이 병이 잇거늘 비록 펴보디 아니나 밤이 도록 자디 몯호니 이러 홈이 엇디 可히  업다 니리오
 
 
251
○ 劉寬雖居倉卒, 未嘗疾言遽色. 夫人欲試寬令恚, 伺當朝會, 裝嚴已訖, 使侍婢奉肉羹, 翻汚朝服, 婢遽收之. 寬神色不異, 乃徐言曰, 羹爛汝手乎. 其性度如此.
 
252
劉寬 [東漢 적 사이라] 이 비록 밧븐 제 이셔도 일즉  말이며 과 곳 아니더니 夫人이 寬을 시험야 여 곰 노케 고쟈 야 朝會예 다 적을 기들워 무을 이 믜 다 엿거늘 뫼신 죵으로 여곰 고깃국을 받드러 업텨 됴 복애 더러이고 죵이 믄득 거두더니 寬이 神色이 다르디 아니 야 날회여 닐러 오 국이 네 손 데거냐 니 그 性度 ㅣ 이러 더라
 
 
253
○ 張湛矜嚴好禮, 動止有則, 居處幽室, 必自修整, 雖遇妻子, 若嚴君焉. 及在鄕黨, 祥言正色. 三輔以爲儀表.
 
254
張湛 [東漢 적 사이라] 이 긍장며 엄졍고 禮를 됴히 너 겨 움즉이며 그침애 법이 이셔 그윽 집의 이쇼 반시 스 스로 닷가 졍졔히 며 비록 妻子 졉기라도 존엄 얼운 티 더니 믿 鄕黨의 이셔 말을 셔히 고  비츨 졍 다이 니 三輔 [京兆와 馮翊과 扶風 세 히라] ㅣ  법 야 表리를 삼더라
 
255
建武初爲左馮翊. 告歸平陵, 望寺門而步, 主薄進曰, 明府位尊德重. 不宜自輕. 湛曰, 禮下公門, 軾路馬, 孔子於鄕黨恂恂如 也. 父母之國, 所宜盡禮. 何爲輕哉.
 
256
建武 [漢 光武 년회라] 처어믜 左馮翊이 되엿더니 말믜야 平陵 [본향 히라] 의 가 구읫 門을 라보고 거른대 主簿 [낭텽 톄엿 관원이라] ㅣ 나아 오 明府 [관원을 존칭 말이라]  벼슬이 놉고 德이 重니 스스로 가븨야이 홈 이 맛당티 아니니이다 湛이 오 禮예 구읫 門을 브리며 님금 술윗 을 軾고 孔子ㅣ 鄕黨에셔 恂恂 [믿브고 실 양이라]  시니 父母의 나라 맛당이 禮를 다 배니 엇디 가야이 다 니뇨
 
 
257
○ 楊震所擧荊州茂才王密爲昌邑令. 謁見, 懷金十斤, 以遺震, 震曰, 故人知君, 君不知故人何也. 密曰, 莫夜. 無知者. 震曰, 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 密愧而去.
 
258
揚震 [東漢 적 사이라] 의 거쳔 밧 荊州 [고 일홈이라] 茂才 [죄 만탄 말이니 션 쳔거 뎨목이라] 王密이 昌 邑令을 연디라 쳥야 뵐 金 열 근을 품어  震을 준 대 震이 오 故人은 그듸 알어늘 그듸 故人을 아디 몯 홈 엇디오 密이 오 밤이라 알리 업스니라 震이 오 하히 알오 귀신이 알오 내 알오 그 아니 엇디 알리 업다 니료 密이 붓그려 가니라
 
 
259
○ 茅容與等輩避雨樹下. 衆皆夷踞相對, 容獨危坐愈恭, 郭林宗行見之而奇其異, 遂與共言, 因請寓宿. 旦日容殺鷄爲饌, 林宗 謂, 爲己設. 旣而以供其母, 自以草蔬與客同飯, 林宗起, 拜之 曰, 卿賢乎哉. 因勸令學, 卒以成德.
 
260
茅容 [東漢 적 사이라] 이 동류로 더브러 비를 나모 아래셔 避 모다 다 줏그리 걸안자 서 對여쇼 容이 홀로  어 안자 더옥 공슌거 郭林宗 [일홈 泰니 어딘 사이 라] 이 가다가 보고 그 다 줄을 긔특이 너겨 드듸여 더브러 가지로 말고 因야 請야 자리 브터 자더니  날애 容이 을 주겨 차반을 어 林宗이 너기되 저를 위야 쟝만니라 더니 이윽고 그 어미 이받고 스스로 소로  손과 더브러 가지로 밥 먹은대 林宗이 니러 절고 오  그듸 어딘뎌 고 因야 勸야 여곰 글 호라 야 내  德을 일우니라
 
 
261
○ 陶侃爲廣州刺史, 在州無事, 輒朝運百甓於齋外, 莫運於齋內. 入問其故. 答曰, 吾方致力中原. 過爾優逸, 恐不堪事. 其 勵志勤力, 皆此類也.
 
262
陶侃 [晋 적 사이라] 이 廣州刺史ㅣ되여셔 고을 이셔 일이 업거든 믄득 아의 일 甓을 집 밧긔 옴기고 나조 집 안해 옴기더니 사이 그 연고를 무른대 답야 오 내 보야호로 中原에 힘을 닐위려 노니 너모 눅노라 편안면 일을 이긔디 몯가 저허 노라 니 그 을 면려야 힘을 브즈런이 홈이 다 이 類ㅣ러라
 
263
後爲荊州刺史. 侃性聰敏, 勤於吏職, 恭而近禮, 愛好人倫. 終日斂膝危坐, 閫外多事, 千諸萬端, 罔有遺漏, 遠近書疏, 莫不 手答, 筆翰如流, 未嘗壅滯, 引接疏遠, 門無停客.
 
264
後에 荊州 刺史를 니 侃의 性이 총명고 민쳡야 관원의 소임에 브즈런며 온공야 禮예 갓가오며 人倫을 앗겨 됴히 너기더라 날이 도록 무루플 가다 어 안자 閫外 [쟝슈 맛 단 를 닐옴이라] 예 일이 만홈이 일쳔 귿티먀 일만 귿티 로 遺漏홈이 잇디 아니며 멀먀 갓가온 유무글월을 손조 답디 아니티 아니호 붇 귿티 흐르 야 일즉 막켜 머 믈우디 아니며 소고 머니라도 나오혀 졉호 門의 머므 런 손이 업더라
 
265
常語人曰, 大禹聖人, 乃惜寸陰. 至於衆人, 當惜分陰. 豈可逸遊荒醉, 生無益於時, 死無聞於後. 是自棄也. 諸參佐或以談戱 廢事者, 乃命取其酒器蒱博之具, 悉投之于江, 吏將則加鞭扑, 樗蒱者, 牧猪奴戱耳. 老莊浮華, 非先王之法言. 不可行也. 君 子當正其衣冠, 攝其威儀. 何有亂頭養望, 自謂弘達耶.
 
266
샹해 사려 닐어 오 大禹 聖人이샤 치만    앗기시니 모 사애 니르러 맛당히 분만    앗길 거시니 엇디 可히 편안히 놀며 황난히 醉야 사라셔 시저 더음이 업스먀 주거 후에 들리미 업게 리오 이 스 스로 리미니라 모 아랫 관원이 或 말먀 희롱으로 일 을 廢 이어든 命야 그 술그릇과 상뉵쟝긧 긔구를 가져다 가 다 江의 드리티며 아젼과 군어든 매를 더으고 오 상 뉵쟝긔 돋 치 죵의 노르시오 老莊 [老聃과 莊周 두 사 이라] 의 부허코 빗난 거슨 先王의 법다온 말이 아니니 可히 行티 몯 거시라 君子 맛당히 그 衣冠을 正히 며 그 威 儀를 자블 거시니 엇디 머리를 헏글우고 명망을 길워 스스로 어그럽고 통달호라 니롬이 이시리오
 
 
267
○ 王勃楊炯盧照鄰駱賓王, 皆有文名. 謂之四傑. 裵行儉曰, 士之致遠, 先器識, 而後文藝. 勃等雖有文才, 而浮躁淺露. 豈享 爵祿之器耶. 楊子沈靜, 應得令長, 餘得令終爲幸. 其後, 勃溺 南海, 照鄰投潁水, 賓王被誅, 炯終盈川令. 皆如儉之言.
 
268
王勃와 楊炯과 盧照隣과 駱賓王 [네 사 다 唐 적 사이라] 이 다 글  일홈이 인디라 닐오 네 호걸이라 더 니 裵行儉이 오 션 멀리 닐위 이 그릇과 디식을 몬 져 고 글과 조 후에 니 勃의  비록 글죄 이시 나 부경고 조급고 엳가와 드러나니 엇디 벼슬이먀 祿을 누릴 그르시리오 楊子 심팀고 안졍니 응당히 令이며 長 [젹은 고 원이라] 은 어드려니와 남 이 됴히 주금을 어돔이 幸니라 더니 그 후에 勃 南海예 디고 照隣 穎水에 들어 죽고 賓王 주김을 닙고 炯은 盈川令에 니 다 行儉의 말 니라
 
 
269
○ 孔戡於爲義, 若嗜慾, 不顧前後, 於利與祿, 則畏避退怯, 如懦夫然.
 
270
孔戡 [唐 적 사이라] 이 올 일 기예 즐기며 욕심  야 앏뒤 돌보디 아니고 利와 다 祿애 저허 避며 믈러나 㤼야 섭운 사  더라
 
 
271
○ 柳公綽居外藩. 其子每入境, 都邑未嘗知, 旣至, 每出入, 常於戟門外下馬, 呼幕賓爲丈, 皆許納拜, 未嘗笑語款洽.
 
272
柳公綽이 밧 번딘 [졀도 인 라] 에 이실 제 그 아이 양 디경에 들옴애 고히 일즉 아디 몯고 이믜 니르러 양 나들 적에 샹녜 살門 밧셔  브리며 막하읫 손 블로 얼운이라 야 다 절을 받게 고 일즉 우움 웃고 말 기를 관곡야 흐믓게 아니더라
 
 
273
○ 柳仲郢以禮律身, 居家無事, 亦端坐拱手, 出內齋未嘗不束帶. 三爲大鎭, 廐無良馬, 衣不薰香, 公退必讀書, 手不釋卷.
 
274
柳仲郢이 禮로 몸 다려 집의 이심애 일이 업서도  단졍히 안자 뎡 고며 안 셔예 날 적의 일즉  디 아니 티 아니더라 세 번 큰 번딘을 호 오양의 됴 이 업 스며 오새 香 품기디 아니고 구의로셔 믈러옴애 반시 글 을 닐거 손애 을 노티 아니더라
 
275
家法在官, 不奏祥瑞, 不度僧道, 不貸臟吏法, 凡理藩府, 急於濟貧卹孤, 有水旱, 必先期假貸, 廩軍食, 必精豐, 逋租必貰免, 舘傳必增飾, 宴賓犒軍必華盛, 而交代之際, 食儲帑藏, 必盈溢 於始至, 境內有孤貧衣纓家女, 及笄者, 皆爲選壻, 出俸金爲資 裝, 嫁之.
 
276
家法에 벼슬에 이셔 祥瑞를 드리옵디 아니며 즁과 도류를 度 [度 度牒이니 즁이며 도 될 제 귀예셔 야 주 글월 이라] 티 아니며 贓吏 [탐 관원이라] ㅅ 法을 누키디 아 니며 믈읫 번딘 마 다임애 가난 이를 거늘이치며 어버이 업 이를 어엿비 너기기를 急히 며 믈디며 이 잇거든 반시 젼긔야 이며 군 머글 거슬 창의 녀호 반시 精고 만케 며 몯 바틴 공셰를 반시 덜며 샤와 역을 반시 더 이며 손 이바디 며 군 머김을 반시 빈나며 盛케 고 交代 이예 머글 것 뎨튝과 고엣 거시 반 시 비로소 니를 저긔셔 차 넘어디게 며 디경 안 어버이 업고 가난 됴관의 집 이 빈혀 고애 다니 잇거든 다 위야 사회를 여 록봉엣 金을 내여 결속야 혼인더라
 
 
277
○ 柳玭曰, 王相國涯, 方居相位, 掌利權. 竇氏女歸, 請曰, 玉工貨一Ꟃ. 奇巧. 須七十萬錢. 王曰, 七十萬錢我一月俸金耳. 豈於女惜. 但一Ꟃ七十萬. 此妖物也. 必與禍相隨. 女子不復敢 言.
 
278
柳玭이 오 王相國 [졍승을 닐옴이라][唐 적 사이 라] ㅣ 보야호로 졍승 位예 이셔 릿 權을 아랏더니 [이 젯 戶曹判書 소임이라] 竇氏의게 간 이 뵈라 와셔 請야 오 玉바치  빈혀 니 긔특고 공교로온디라 七十萬 돈을 바도려 덩이다 王이 오 七十萬 돈 내   록 봉앳 金이니 엇디 네게 앗기리오 다  빈혀에 七十萬이 이 요괴로온 거시라 반시 화란으로 더브러 서르 조츠리라 대 이 다시 敢히 니르디 몯니라
 
279
數月女自婚姻會歸, 告王曰, 前時Ꟃ爲馮外郞妻首飾矣. 乃馮球也. 王嘆曰, 馮爲郎吏, 妻之首飾有七十萬錢. 其可久乎. 馮爲 賈相餗門人. 最密. 賈有蒼頭頗張威福, 馮召而勗之. 未浹旬馮 晨謁賈, 有二靑衣捧地黃酒, 出飮之, 食頃而終. 賈爲出涕, 竟 不知其由.
 
280
두어 만에 이 婚姻 몯지로브터 도라와 王의게 告야 오 젼읫 빈혜 馮外郎 [량텽이니 가온 벼슬이라] 안해의 머릿 단장이 되엿더라 니 馮球 [外郎의 일홈이라] ㅣ라 王 이 차탄야 오 馮이 랑텽 벼슬을 여셔 안해의 머리단 장이 七十萬 돈  거시 이시니 그 可히 오라랴 풍이 賈相餗 [餗은 일홈이니 그 적 졍승이라] 의 門人 [집의 드나 사 을 닐옴이라] 이 되연디라 장 친밀더니 賈의 蒼頭 [나 죵을 프른 두건 쓰이니라] ㅣ  威福을 쥬댱 이 잇거늘 [유셰 단 말이라] 馮이 블러다가 경계더니 열 흘이 디 몯야셔 馮이 새바긔 賈의게 유무 들이거늘 두 靑 衣 [알 니 아 프른 옷 닙히니라] ㅣ 地黃술을 받 들어 내여다가 먹킨대 밥 머글 덛은 여셔 주그니 賈ㅣ 위 야 눈믈을 내요 내 그 연유를 아디 몯니라
 
281
又明年王賈皆遘禍. 噫, 王以珍玩奇貨爲物之妖. 信知言矣. 徒知物之妖, 而不知恩權隆赫之妖, 甚於物耶. 馮以卑位貪寶貨, 已不能正其家, 盡忠所事, 而不能保其身. 斯亦不足言矣. 賈之 臧獲, 害門客于牆廡之間, 而不知. 欲終始富貴, 其可得乎.
 
282
 이듬예 王과 賈ㅣ 다 화란을 만나니 슬프다 王이 귀코 보암즉 긔특 보로 物의 요괴를 삼으니 진실로 말을 아라 얏거니와 갓 物의 요괴로 줄을 알오 은툥과 권셰 셩며 빗남의 요괴로옴이 物두곤 甚 줄을 아디 몯냐 馮 이 가온 벼슬로 寶貨앳 거슬 貪야 이믜 能히 그 집을 正히 몯고 셤기 바애 튱셩을 다다가 能히 그 몸을 보젼 티 몯니 이  足히 닐럼즉디 아니도다 賈의 臧 [나 죵이오][겨집죵이라] 이 門읫 손을 담과 집기슭 이예 셔 害호 아디 몯니 終始히 富貴코져  그 可히 어드랴
 
283
此雖一事, 戒臧數端.
 
284
이 비록  일이나 경계되욤 여러 그티로다
 
 
285
○ 王文正公發解南省廷試, 皆爲首冠. 或戱之曰, 狀元試三場. 一生喫著不盡. 公正色曰, 曾平生之志, 不在溫飽.
 
286
王文正公 [일홈 曾이니 文正은 시회라 宋 적 졍승이라] 이 發解 [초시라] 와 南省 [회시 마이라] 과 廷詩 [뎐시 라] 예 다 읏듬이 되엿더니 或이 부소야 오 狀元으로 세 場에 여시니 一生애 머그며 닙음이 다디 몯리로다 公이 正色고 오 曾의 平生 디 덥고 블옴애 잇디 아 니니라
 
 
287
○ 范文正公少有大節. 其於富貴貧賤, 毁譽歡戚, 不一動其心, 而慨然有志於天下. 嘗自誦曰, 士當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 樂而樂也.
 
288
范文正公이 졈어셔브터 큰 졀개 이셔 그 가열며 貴며 가난며 賤며 헐리며 기리며 깃브며 측욤애  일도 그  움즈기디 아니고 慨然 [애라 양이라] 히 天下 애 을 둣더니 일즉 스스로 외와 오 션 맛당히 天下읫 근심에 몬져 근심고 天下읫 즐김애 후에 즐길 거시라 더 라
 
289
其事上, 遇人, 一以自信, 不擇利害爲趨捨. 其有所爲, 必盡其方, 曰, 爲之自我者, 當如是. 其成與否, 有不在我者. 雖聖賢 不能必. 吾豈苟哉.
 
290
그 우 셤기며 사을 졉홈애 티 스스로 민 거스로 야 利며 害를 야 나아가며 임을 디 아니고 그 욜 배 이숌애 반시 그 모해 일을 다야 오 기 날로브터  거슨 맛당히 이러시  거시니 그 일며 다 몯홈은 내게 잇디 아님이 인디라 비록 聖賢이샤도 能히 긔 필티 몯시리니 내 엇디 구챠히 리오 더라
 
 
291
○ 司馬溫公嘗言, 吾無過人者. 但平生所爲, 未嘗有不可對人言者耳.
 
292
司馬溫公이 일즉 닐오 내 사의게셔 넘은 거시 업거니와 다 平生애 욘 배 일즉 可히 사 對야셔 니디 몯 거시 잇디 아니호라
 
 
293
○ 管寧嘗坐一木榻. 積五十餘年, 未嘗箕股. 其榻上當膝處皆 穿.
 
294
管寧 [漢 적 쳐라] 이 일즉  나모 평상의 안니 오람이 쉰 남은 로 일즉 다리를 벋디 아니니 그 평상 우희 무 롭 단 고디 다 들워디니라
 
 
295
○ 呂正獻公自少謹學, 卽以治心養性, 爲本, 寡嗜慾, 薄滋味, 無疾言遽色, 無窘步, 無惰容, 凡嬉笑俚近之語, 未嘗出諸口, 於世利紛華聲伎游宴, 以至於博奕奇玩, 淡然無所好.
 
296
呂正獻公이 졈은 제브터 문을 강구호 곧  다리며 性 치기로 근본을 삼아 즐기 거시며 욕심을 젹게 며 滋 味옛 거슬 엷게 며  말와 급거  비치 업스며 뵈앗  거름이 업스며 게으른 얼굴이 업스며 믈읫 희롱앳 우움과 야쇽 말을 일즉 입에 내디 아니며 셰간 利 일와 어 즈러이 번화 일와 풍며 노르시며 노롬노리 이바디예과  바독 쟝긔과 긔특 보암즉 거싀 니르히 淡然 [힘 드렁 양이라] 야 됴히 너기 배 업더라
 
 
297
○ 明道先生終日端坐, 如泥塑人. 及至接人, 則渾是一團和氣.
 
298
明道先生이 날이 도록 단졍히 안자 겨심애 흘그로 근 사 더시니 믿 사 졉홈애 닐으러 오오로이 덩이 화  긔운이러시다
 
 
299
○ 明道先生作字時, 甚敬. 嘗謂人曰, 非欲字好. 卽此是學.
 
300
明道先生이 글 쓰실 저긔 장 조심더시니 일즉 사려 닐어 샤 字 됴코져 홈이 아니라 곧 이거시 이 學이니 라
 
 
301
○ 劉忠定公見溫公, 問盡心行己之要, 可以終身行之者. 公曰, 其誠乎. 劉公問, 行之何先. 公曰, 自不忘語始.
 
302
劉忠定公 [忠定은 시회니 劉器之라] 이 溫公을 보와 을 다며 몸을 行 종 可히  몸이 도록 行 거슬 무른 대 公이 오 그 셩실인뎌 劉公이 무로 行홈애 므서슬 몬 져 링잇고 公이 오 간대옛 말 아니홈으로브터 비르슬디 니라
 
303
劉公初甚易之. 及退而自檃栝日之所行與凡所言. 自相掣肘矛盾者多矣. 力行七年以後成. 自此言行一致. 表裏相應, 遇事坦然, 常有餘裕.
 
304
劉公이 처어믜 장 쉬이 너기더니 믿 믈러와 스스로 날마다 行 바와 다 믈읫 니르는 바를 檃栝 [고븐 나모 잡아 바 게  거시니 말과 실을 서르 마초아 보단 말이라]  여 보니 스스로 掣肘 [을 미니 븓들리단 말이라] 며 矛盾 [창과 방패니 서 어긔단 말이라] 홈이 하더니 힘  行 닐굽  후에 이니 일로브터 말과 실이 가지라 안 콰 밧기 서르 應야 일을 만남애 훤츨야 샹해 남아 넉넉홈 이 잇더라
 
 
305
○ 劉公見賓客, 談論踰時, 體無攲側, 肩背竦直, 身不少動, 至手足, 亦不移.
 
306
劉公 [忠定公이라] 이 손 볼 적의 말기를  계게 호 얼굴이 기우틈이 업서 엇게과 등이 고즉고 바며 몸 죠 고매도 움즈기디 아니야 손발에 니르러도  옴기디 아니 더라
 
 
307
○ 徐積仲車初從安定胡先生學. 潛心力行, 不復仕進, 其學以至誠爲本, 事母至孝. 自言, 初見安定先生, 退頭容少偏. 安定忽 厲聲云, 頭容直, 某因自思, 不獨頭容直. 心亦要直也. 自此不 敢有邪心. 卒諡節孝先生.
 
308
徐積仲車 [積의 라] ㅣ 처어믜 安定胡先生을 조차 호더니 을 가 힘  行야 다시 벼슬디 아니고 그 學홈이 至誠으로 근본을 삼아 어미 셤굠을 지극히 효도로이 더라 스스로 닐오 처엄으로 安定先生을 보고 믈러남애 머리의 양이 잠 기우더니 安定이 믄득 솔의를 이 야 닐으샤 머리의 양을 바  거시라 야시 내 因야 스스로 각 호 홀로 머리의 양을 바게 홀 이 아니라 도  발 고져  거시라 야 일로브터 敢히 샤곡 을 두디 아 니호라 더라 죽거늘 시호를 節孝先生이라 니라
 
 
309
○ 文中子之服儉以絜, 無長物焉. 綺羅錦繡不入于室, 曰, 君子非黃白不御. 婦人則有靑碧.
 
310
文中子의 오시 검박호  조케 고 너 거시 업더니 깁 과 로와 금의와 슈치를 집의 드리디 아니야 오 君子 누른 것과  거시 아니어든 닙디 아니고 婦人 프른 것과  거시 인니라 니라
 
 
311
○ 柳玭曰, 高侍郞兄弟三人, 俱居淸列, 非速客, 不二羹胾, 夕食齕蔔匏而已.
 
312
柳玭이 오 高侍郎兄弟 세 사이 [釴익 銖슈 鍇니 唐 적 사이라] 다 근 벼슬에 이쇼 손 쳥 저기 아니어든 과 고기 두 가지 아니며 나죄 븨 무우와 박만 씨블 이러라
 
 
313
○ 李文靖公治居第於封丘門外, 廳事前僅容旋馬. 或言, 其太隘, 公笑曰, 居第當傳子孫. 此爲宰輔廳事誠隘, 爲太祝奉禮廳 事, 則已寬矣.
 
314
李文靖公 [文靖은 시회니 일홈은 沆이라 宋 적 졍승이라] 이 살 집을 封丘門 [셔울 셩문이라] 밧 지오 대텽 알피 계요  도로혐을 용납 만더니 或이 그 너무 조븐 주를 니른대 公이 웃고 오 살 집은 맛당히 子孫의게 傳 거시니 이 샹의 대텽이 됨애 진실로 좁거니와 大祝奉禮 [다 즌 벼 슬이라] 의 대텽이 됨애 너모 너르니라
 
 
315
○ 張文節公爲相, 自奉如河陽掌書記時. 所親故規之曰, 今公受俸不少, 而自奉若此. 雖自信淸約, 外人頗有公孫布被之譏. 公 宜少從衆. 公嘆曰, 吾今日之俸, 雖擧家錦衣玉食, 何患不能. 顧人之常情, 由儉入奢易, 由奢入儉難. 吾今日之俸, 豈能常有, 身豈能常存. 一旦異於今日, 家人習奢已久. 不能頓儉, 必至失 所. 豈若吾居位去位身存身亡如一日乎.
 
316
張文節公 [文節은 시회니 일홈 知白이라 宋 적 샹이라] 이 샹 되여셔 스스로 봉양기를 河陽 [고히니 졀도 인  라] 掌書記 [이제 평 톄엿 벼슬이라] ㅅ 적 티 더 니 친 밧 사이 或 규풍야 오 이제 公이 록봉 반 거시 젹디 아니호 스스로 봉양기를 이러시 니 비록 스스로 쳥념코 간약홈을 미들디라도 밧 사이  公孫의 뵈니블 긔롱이 이시니 [公孫弘이 뵈로 니블을 야 검박 톄 거늘 汲黯이 그 간사 줄을 긔롱니라] 公이 맛당히 젹이 을 조라 公이 嘆야 오 내 이젯 록봉이 비록 온 집 이 금슈옷과 귀 음식을 호려  엇디 能히 몯홈을 근심 리오 도라보건댄 사의 常情이 검박으로 말암아 샤치  들기 쉽고 샤치로 말암아 검박  들기 어려우니 내 이젯 록봉이 엇디 能히 덛덛이 이시며 몸이 엇디 能히 덛덛이 이시리오  아 이젠 날과 다면 집사이 샤치예 니 건디 이믜 오란디라 能히 믄득 검박디 몯야 반시 失所홈 애 니르리니 엇디 내 벼슬에 이시며 벼슬에 나며 몸이 이시 며 몸이 업슴애  날 만 리오
 
 
317
○ 溫公曰, 先公爲群牧判官, 客至, 未嘗不置酒. 或三行, 或五行, 不過七行, 酒沽於市, 果止梨栗棗柿. 肴止脯醢菜羹. 器用 漆. 當時士大夫皆然. 人不相非也. 會數而禮勤, 物薄而情厚.
 
318
溫公이 오 先公 [죽은 아비를 닐옴이라] 이 群牧判官 [벼 슬 일홈이라] 여 겨실 제 손이 니르러든 일즉 술을 두디 아 니티 아니터시니 或 세슌며 或 다 슌며 닐굽 슌에 넘오 디 아니호 술은 져제 가 사고 과실은 와 밤과 대쵸와 감 만이오 안쥬 포육과 젓과 국만이오 글으슨 사긔와 옷거 슬 더니 그 적 士태우히 다 그런디라 사이 서르 외다 아니니 몯지 조 례도 브즈런며 차반 사오나 오 情은 厚더니라
 
319
近日士大夫家, 酒非內法, 果非遠方珍異, 食非多品, 器皿非滿案, 不敢會賓友, 常數日營聚, 然後敢發書. 苟或不然, 人爭非 之, 以爲鄙吝. 故不隨俗奢靡者鮮矣.
 
320
요이 士태우의 집은 술이 궐 法이 아니며 과실이 遠方읫 귀 거시 아니며 음식이 여러가지 아니며 그르시 상의  디 아니커든 敢히 손이며 버들 뫼호디 몯야 샹녜 여러 날 경영야 모톤 후에아 敢히 유무를 내니 진실로 或 그리 아 니면 사이 토와 외다 야  더럽다 니 그러모로 시 쇽을 조차 샤치티 아니리 져그니라
 
321
嗟乎, 風俗頹弊如是. 居位者, 雖不能禁, 忍助之乎.
 
322
슬프다 風俗의 믈허뎌 야딤이 이 니 벼슬에 인 이 비록 能히 禁티 몯나 마 도오랴
 
 
323
○ 溫公曰, 吾家本寒族. 世以淸白相承, 吾性不喜華靡, 自爲乳兒時, 長者加以金銀華美之服, 輒羞赧棄去之. 年二十忝科名, 聞喜宴獨不戴花. 同年曰, 君賜. 不可違也. 乃簪一花. 平生衣 取蔽寒, 食取充腹, 亦不敢服垢弊, 以矯俗干名. 但順吾性而已.
 
324
溫公이 오 우리집이 본 가난 겨레라 셰셰로 淸白으로 서르 닛고 내 性이 빗나고 샤치 거슬 깃거 아니야 젿 먹 아 도여실 적브터 얼운이 金銀과 빗난 됴 오스로 더어든 믄득 붓그려 내여 리다니 나히 스믈힌 제 급뎨예 모 텸야 聞喜宴 [급뎨 사의 이바디라] 에 홀로 고 곳디 아니호니 同年이 오 님금 주신 거시라 可히 어글웃디 몯 리라 야  고 고조라 平生애 오 치위 리옴만  며 음식을 예 올만 고  敢히 더러오며 헌 것 닙 어  셰쇽에 달이야 일홈을 간구티 아니고 다 내 性을 順 이로라
 
 
325
○ 汪信民嘗言, 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 胡康侯聞之, 擊節嘆賞.
 
326
汪信民 [일홈은 革이니 宋 적 사이라] 이 일즉 닐오 사 이 샹해  희를 너흘면 온갓 일을 可히 일우리라 야늘 胡康侯 [胡安國 라] ㅣ 듣고 손 고 차탄야 기리더라
 
327
右, 實敬身.
 
328
이 우 몸 공경홈을 實우니라
【원문】善行第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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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