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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선 너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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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7
김동인
1
수평선 너머로
2
서곡
 
 
3
근대 문명의 ‘스피이드’를 자랑하는 거대한 괴물이 어두움을 뚫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닫는다. 봉천서 떠난 이 괴물은 그의 우렁찬 숨소리를 연하여 뿜으며 어느덧 만주와 조선의 경계선인 압록강도 넘어서서 그냥 남쪽으로 남쪽으로 닫는다.
 
4
승객들은 대개 벌써 그들의 기름때 흐르는 얼굴을 쿠션에 기대고 잠잘 채비를 대고 있었다. 코를 고는 사람도 있었다.
 
5
중대한 임무를 띠고 신경까지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 × 서 고등계 형사 이필호도 이 기차에 그의 피곤한 몸을 의탁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즈음이었다.
 
6
한 개의 기괴한 인물의 자취를 찾으려 신경까지 가서 밤낮 사흘을 헤매다가 그래도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서지 않을 수 없는 필호는 직업적 낙망과 자기의 자존심이 얼마만치 꺽인데 대한 불쾌감 때문에 남들은 벌써 잠잘 채비를 대는 이때도 잠잘 생각도 않고 연방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7
고요한 차실 ─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간간 코고는 소리 밖에는 다른 소리는 없는 차실 안에서 연하여 담배만 먹고 있던 필호는 문득 몸을 일으켰다. 식당이 아직 열렸으면 식당에 가서 우유 한 잔이라도 먹고 오기 위해서였다.
 
8
비츨비츨 쓰러지려는 몸을 좌우편 의자를 붙들면서 한 객차를 다 지났다. 그 다음 객차도 절반만치 지났다.
 
9
그때에 필호의 직업적 날카로운 눈은 어떤 청년의 위에 머물렀다.
 
10
삼십이 가까운 청년이었다. 고등한 교양을 받은 듯한 청년이었다. 슬기로운 청년이었다. 남들은 벌써 모두 잠자려 하고 있는데도 그 청년은 잠잘 생각도 않고 무슨 영문 잡지를 어두컴컴한 불에 비치어 가면서 일심불란히 읽고 있었다. 그리고 필호의 날카로운 눈이 판단한 바에 의지하건대 그 청년은 해외에서 지금 처음으로 조선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 틀림이 없었다.
 
11
필호는 그 청년을 곁눈으로 흘낏 보았다. 그 다음에는 정면으로 보았다.
 
12
정면으로 보면서 그 다음 이동객차까지 넘어서 식당에를 갔다가 식당이 이미 닫긴 것을 다행히 여기고 도로 발을 돌이킬 때에는 필호에 마음에는 그 청년과 잠시 이야기를 하여보겠다는 생각이 생겼다.
 
13
식당차에서 돌아설 때에 필호는 머리를 한 번 다시 쓰다듬고 옷깃을 바로 잡고 넥타이의 위에 손을 두어 번 움직였다. 이것이 필호에 유일한 변장술이었다. 아직껏 어느 모로 뜯어보든 형사의 내음새가 나던 필호의 차림차림이 이 두어 번의 손질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몇 번의 손질은 필호로 하여금 중학교 교원 혹은 거기 유사한 직업을 가진 사람인 듯키 만들어 놓았다.
 
14
세면소의 거울에 자기의 모양을 비추어 보고 한 번 방긋이 웃은 필호는 이번은 서슴지 않고 몇 객차를 지나서 아까 그 청년이 탄 객차로 향하였다.
 
15
다행히 그 청년의 곁에는 빈 자리가 있었다. 그 빈 자리 앞에서 필호는 한번 가브엽게 머리를 숙인 뒤에 거기 덜석 걸터앉았다.
 
16
아직껏 그냥 영문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던 그 청년은 잡지를 조금 비끼며 필호를 보았다. 본 뒤에는 즉시 도로 잡지로 자기의 얼굴을 감추려 하였다.
 
17
그러나 능란한 필호는 천연덕스럽게 그 청년에게 인사를 던졌다.
 
18
“실례합니다.”
 
19
“괜찮습니다.”
 
20
청년은 잡지를 내리며 대답치 않을 수가 없었다.
 
21
“서울까지 가십니까.”
 
22
필호는 이러한 첫 질문을 던졌다.
 
23
“네 서울까지.”
 
24
“지리하시지요? 어디서부터 오시는지.”
 
25
“상해서 오는데 인젠 벌써 지리한 것도 잊어 버릴만치 되었읍니다.”
 
26
“상해서 내내 기차로 오셨으면 꽤 지리하시겠읍니다.”
 
27
“네, 그래서 소설 잡지라도 읽어서 지리한 것을 좀 잊도록 해봅니다.”
 
28
청년은 자기가 읽던 잡지를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29
필호는 눈을 들어서 청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물론 상해쯤서 들어오는 사람인 줄은 필호도 이미 감정한 바였다.
 
30
그러나 그것이 단지 의미 없는 귀국인지 혹은 비밀한 임무를 띠고 들어오는 인물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31
“상해는 오래 계셨읍니까.”
 
32
“네, 한 십여 년 간 있었읍니다.”
 
33
“이번에는 무슨 일로 귀국하시지는지요?”
 
34
“무얼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오래간만에 고향 산천도 한 번 보고 싶고 해서 돌아오는 길이지….”
 
35
여기서 필호는 비로소 자기의 호주머니로 손을 넣어 자기의 직함이 든 명함을 꺼내었다.
 
36
“이런 사람올시다. 처음 뵙습니다.”
 
37
청년은 명함을 받아 보았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움직이지 않았다. 명함을 자기의 주머니에 넣으면서 자기의 명함을 한 장 꺼내어 필호에게 주었다.
 
38
“서인준 씨 ─ 고향이 경성이시오니까?”
 
39
“평양이올시다.”
 
40
“고향에는 친척이라도 계십니까?”
 
41
“계시던 친척은 모두 공동묘지로 가셨읍니다.”
 
42
“서울에는?”
 
43
“서울도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읍니다.”
 
44
“그럼 친지라도 계십니까?”
 
45
“십 년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있을지 알 수 없소이다.”
 
46
“그럼 친척도 안 계신 곳에 무슨 자미로 돌아오십니까?”
 
47
인준이는 빙긋이 웃었다.
 
48
웃으면서 필호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49
“나는 상해에서 오는 사람이외다. 당신의 블랙 리스트를 뒤져 보면 거기는 내 이름도 아마 있으리다. 당신네의 블랙 리스트에 든 사람이 친척도 친지도 없는 고향에 돌아오는 이상에야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 곡절은 여기서 말할 수는 없지만….”
 
50
인준이는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51
필호는 그 웃음을 보았다. 그 너무도 명랑한 웃음은 조소(嘲笑)로 해석할지 의미없는 미소로 해석할지 필호로도 알 수가 없었다.
 
52
“그럼 무슨 비밀한 임무라도 가지고 들어오시는 길이외다그려.”
 
53
필호도 농담 비슷이 이렇게 응하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54
“네, 비밀한 임무 말할 수 없는 임무 당신네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맬 경천동지의 임무 ─.”
 
55
명랑한 미소 아래서 농담삼아 이렇게 말하는 인준이 태도는 누가 보든 그것이 농담이지 정말로 보이지 않는다.
 
56
이 소위 비밀한 임무를 띠고 잠입하노라는 청년과 × × 서 민완형사 이필호의 두 사람은 밤이 새도록 농담 아닌 농담으로 서로 주고받았다. 그리고 새벽 일곱시 그들이 이 기차에서 내릴 때에는 서로 힘있게 악수를 하였다.
 
57
이리하여 여기서부터 작자가 여러분 앞에 제공하려는 한 가지의 이야기가 진전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58
작자는 이제 진전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여러 독자 앞에 공개하려 한다.
【원문】수평선 너머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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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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