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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문전(玄壽文傳) (경판본) ◈
◇ 현수문전 권지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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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수문전(玄壽文傳) (경판본)
2
현수문전 권지하
 
 
3
차설 위왕 부모가 붕(崩)하거늘, 위왕이 거상(居喪)에 애회(哀懷) 지극하거늘, 천자가 들으시고 삼 년 조공을 말라 하시며 조문(弔問)하시니, 위왕이 천은을 일컫고 삼상(三喪) 마친 후 일 년에 한 번씩 조회에 참예(參預)하니 상이 가로되,
 
4
「짐이 이제 연만(年晩)하여 경을 오래 보지 못하리니 한심하거니와, 태자가 있으니 족히 종사를 이으리로되, 아는 일이 적으매 치국(治國)함을 염려하나니 경의 아들 하나를 주어 태자를 돕게 하면 짐의 마음이 좋을까 하노라.」
 
5
위왕이 돈수(敦壽) 주하기를,
 
6
「신의 자식이 여럿이 있사오니 다 용렬(庸劣)하오니 어찌 감당하오리까마는, 제이자(第二子) 담으로 태자를 뫼시게 하오면, 반드시 유익함이 있을 듯하옵고, 또 세 사람을 천거하오리니 백마천과 기수하와 여동위라. 이 사람이 족히 태자를 보필하오리니 무슨 염려 있으리까?」
 
7
상이 대열하사 사자를 보내어 현담을 부르시며, 삼인을 불러 인견(引見)하시고 이르기를,
 
8
「그대 등을 위왕이 천거하여 태자를 돕게 함이니 여등(汝等)은 종사를 보전케 하라.」
 
9
사인(四人)이 사은하고 태자를 뫼시니라.
 
10
위왕이 본국에 돌아감을 하직하오니 상이 타루(墮淚)하며 이르기를,
 
11
「짐의 나이 많고, 경의 나이 많으니 피차 세상이 오래지 아닐지라.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12
위왕이 또한 슬픈 심사를 금치 못하나 인하여 하직하고 본국의 돌아가니라.
 
13
슬프다. 황제 졸연(猝然) 환우(患憂)가 계시사 회춘(回春)하지 못할 줄 아시고 태자를 불러 유체하며 이르기를,
 
14
「내 죽은 후 너를 믿나니, 네 이제 장성하였으매 범사를 알려니와 수하(手下)에 현담과 백마천 등이 있으니, 간(諫)하는 말을 신청(信聽)하고 혹 어려운 일이 있거든 위왕 현수문과 의논하면 천하가 태평하리니 삼가 유언(遺言)을 잊지 말라.」
 
15
하시고 붕(崩)하시니, 춘추(春秋)가 칠십오 세라.
 
16
태자가 망극애통하사 선릉(先陵)에 장(葬)하시고, 보위(寶位)에 직(職)하시니 임자(壬子) 동 십일월 갑자(甲子)이라.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진하(進賀)를 맞고 만세를 호창(呼唱)하더라.
 
17
황숙(皇叔) 등이 산중(山中)에 피하였더니, 천자가 붕하심을 듣고 들어와 신천자(新天子)를 도우며 교언(巧言)으로 천자께 붙어 간신이 되니, 상이 부왕(父王)의 유교(遺敎)를 돈연(頓然)히 잊으시고, 간신의 말을 믿으사 정사(政事)가 날로 어지러운지라.
 
18
현담 등이 자주 간하되 듣지 아니시고, 대신과 백마천 등의 벼슬을 파직하시며 현담의 죄를 의논하시니, 간신 등이 주하기를,
 
19
「위왕 현수문이 비록 촌공(寸功)이 있으나, 선제(先帝)의 대덕(大德)으로 왕작을 주옵시니 은혜 백골난망이거늘, 일 년의 한 번씩 하던 조회를 폐하오니 만일 수문을 그저 두오면 후환이 되올 지라. 이러므로 서천(西天) 한중(漢中)을 도로 들이라 하시고 진공(進貢) 예단(禮單)을 타국(他國) 예(禮)로 거행하게 하소서.」
 
20
상이 옳이 여기사 즉시 조서를 내리어 사신을 발송(發送)하시니라.
 
 
21
각설 위왕이 천자가 붕하심을 듣고 방성통곡하여 황성에 올라가 신천자께 조회하려 하더니, 문득 사관이 내려와 교지를 전하거늘, 왕이 북향사배하고 조서를 보니 가로되,
 
22
「슬프다. 국운이 불행하여 선제 붕하시고 짐이 즉위하니 어찌 망극하지 않으리오. 경이 신자(臣子)가 되어 한 번도 조회치 아니하니, 이는 선제 대덕을 저버림이라. 마땅히 문죄(問罪)할 일이로되, 아직 용서하고 서천 일지(一地)를 환수(還收)하되 진공은 타국 예와 같이 하라.」
 
23
하였더라.
 
24
위왕이 마음의 헤아리되,
 
25
‘조정에 간신이 이서 천자의 총명을 가리움이니 어찌 분한(憤恨)치 않으리오.’
 
26
하고, 즉시 주문을 지어 보내니 이르기를,
 
27
「위왕 현수문은 돈수백배(敦壽百拜)하고 글을 성상(聖上) 탑하(榻下)에 올리옵나니, 오호(嗚呼)라. 신이 선제 대덕을 입사와 벼슬이 왕작에 있사오니, 진충보국(盡忠保國)함을 원하오매 성상의 조서대로 봉행(奉行)치 않으리까마는 선제 서천으로써 신(臣)을 주심이요, 신이 서천으로써 왕업이 되옵거늘, 이제 폐하가 선제의 유교를 잊으시고 신으로 하여금 부족하게 여기사 베어주신 땅을 덜고자 하시니 어찌 황공(惶恐) 송률(悚慄)치 않으리까. 복망 폐하는 선제의 유교를 생각하시사 조신(朝臣)의 그릇 간함을 듣지 마시고, 신이 차지한 땅을 보존케 하소서.」
 
28
하였더라.
 
29
상이 남필(覽畢)에 제신을 뵈시고 의논하시니, 제신이 주하기를,
 
30
「위왕의 표(表)를 보오니, 그 첫째는 폐하를 원망하여 밝지 아닌 임금으로 돌려보냄이요, 둘째는 조정의 간신이 있어 국정이 무너져 버림으로 이름이니 극히 외람하온지라. 그러나 현수문은 선황제 총신(寵臣)이라. 가볍게 다스리지 못하오리니 먼저 현담을 나수(拿囚)하고 그 땅을 환수한다 하시면, 제 어찌 거역하리까.」
 
31
상이 옳이 여기사 즉시 현담을 구리산에 가두시니, 백마천 등 삼인이 태자를 버리고 위국에 돌아와 천자의 무도함을 이르니, 위왕이 이 말을 듣고 선제 지우(知遇)하시던 은혜를 생각하고 충성된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더니, 또 사신이 이르렀다 하거늘, 왕이 전과 같이 하여 돌려보내었더니 천자가 들으시고 대노하사 기병(起兵) 문죄(問罪)하고자 하시거늘, 만조(滿朝)가 일시에 간하기를,
 
32
「만일 병(兵)을 일으키면 반드시 위왕에게 패하리니, 현담을 젓 담아 수문에게 보내면 수문이 보고 분노하여 제 스스로 기병하리니, 이때의 수문을 잡아 죽임이 만전지책(萬全之策)일까 하나이다.」
 
33
상이 대희하사 즉시 현담을 젓 담아 위국에 보내니, 위왕이 이 일을 보고 크게 통곡하며 승상 석침을 돌아보아 이르기를,
 
34
「이제 천자가 자식을 죽여 아비에 뵘은, 나의 마음을 분하게 하여 기병함을 권함이요, 내 아무리 하여도 이신벌군(以臣伐君)은 않으리니 그대로 고하라.」
 
35
하니, 사자가 돌아와 위왕을 말을 고하니, 상이 들으시고 일변(一邊) 무안(無顔)하나 분기를 참지 못하시거늘, 제신이 주하기를,
 
36
「위왕 현수문이 비록 기병하여 있으나 그 용력을 당할 자가 없사오리니, 먼저 서번국(西蕃國)에 사신을 보내어 위국을 치라 하시면, 번국(蕃國)이 반드시 위국을 칠 것이니, 그때 함께 대군을 일으켜 좌우로 치면 현수문이 비록 용력이 있으나 어찌 양국 대병을 당하리까.」
 
37
상이 크게 기뻐 사신을 서번국에 보내시되, 모월 모일의 위국을 치면 대국 병마를 보내어 접응하리라 하였거늘, 서번왕(西蕃王)이 마지못하여 진골대로 선봉을 삼고 구골대로 후군장을 삼아 정병 십만을 조발하여 위국으로 나아가니, 벌써 대국 병마가 이르렀더라.
 
 
38
차시 위왕이 선제를 생각하고 세상 일이 그릇됨을 슬퍼 눈물을 흘리고 행여 천심(天心)이 돌아설까 하여 탄식함을 마지아니하더니, 문득 보(報)하되,
 
39
「서번국이 병을 거느리고 위국지경(魏國地境)에 이르렀다.」
 
40
하더니, 또 보하되,
 
41
「천자의 대병이 이르렀다.」
 
42
하거늘, 위왕이 대경하여 급히 방비할새,
 
43
제일자(第一子) 현후를 불러 이르기를,
 
44
「너는 삼천 군을 거느려 한중(漢中)에 진(陣)치고 이리이리 하라.」
 
45
하고, 제삼자(第三子) 현첨을 불러 이르기를,
 
46
「너는 삼천 철기를 거느리고 서강원에 가 진을 치되, 남주성 백성을 다 피란하라.」
 
47
하고, 계교를 이르며 위왕은 대군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아가 진을 치더니, 과연 번국 대장 진골대 급히 군을 몰아 남주성에 들어가니 백성이 하나도 없고 성중이 비었거늘, 진골대 대경하여 도로 회진(回陣)하고자 하더니, 현첨이 번군이 성의 듦을 보고 군을 급히 내와 에워싸며 산상(山上)의 올라 웨기를,
 
48
「서번이 어찌 감히 우리를 당할 소냐. 옛날 양평공과 우골대 다 내 칼에 죽었거늘, 네 맞아 죽고자 하니 어린 강아지 맹호(猛虎)를 모름이로다. 제 죽은 혼이라도 나를 원(怨)치 말고 천자를 원(怨)하라.」
 
49
하고, 화전(火箭)을 급히 쏘니 성중에 화염이 창천하여 모두 불빛이라. 적군이 견디지 못하여 화염을 무릅쓰고 달아나더니, 또 위왕의 진을 만나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서로 짓밟아 죽는 자가 불가승수(不可勝數)이라. 진골대 탄하며 이르기를,
 
50
「위왕은 만고영웅이라. 인력으로 못하리로다.」
 
51
하고 항복하여 이르기를,
 
52
「우리 왕이 구태여 싸우려 함이 아니요, 천자가 시킴이니 바라건대 위왕은 잔명(殘命)을 살리소서.」
 
53
위왕 이르기를,
 
54
「서번이 과국(寡國)과 본디 친하고 혐의(嫌疑) 없기로 놓아 보내거니와, 차후는 아무리 천자의 조서가 있으나 기병할 의사를 먹지 말라.」
 
55
하고 돌려보내느라.
 
 
56
차시 천병(天兵)이 구골대와 합병(合兵)하여 화음현의 이르니, 백성들이 길에서 울거늘 그 연고를 물으니 답하기를,
 
57
「위왕이 서번국에 패하여 거창산에 들어가 백성을 모아 군(軍)을 삼으니 저마다 도망할새, 처자(妻子)를 잃었으매 자연 슬퍼 우나이다.」
 
58
하거늘, 구골대 차언(此言)을 듣고 대열하여 위왕을 잡으려 하고 거창산으로 군을 몰아 들어가니, 길이 험하고 수목이 무성하여 행군하기 어려운지라. 점점 들어가니 과연 산상의 기치(旗幟) 창검(槍劍)이 무수히 꽂혔고 진중이 고요하거늘, 크게 고함하며 들어가니 군사가 다 초인(草人)이요, 사람은 하나도 없는지라.
 
59
구골대 크게 놀라 어찌할 줄 모르더니, 문득 산상에서 방포 소리가 나며 불이 사면으로 일어나며 시석(矢石)이 비 오듯 하는지라. 구골대 앙천(仰天) 탄하며 이르기를,
 
60
「내 어찌 이곳의 들어와 죽을 줄을 알리오.」
 
61
하고 죽기로써 화염을 무릅쓰고 산문(山門)을 나오니 또 좌우에서 함성이 대진(大振)하고 쫓아오니, 구골대 능히 대적하지 못하여 투구를 벗고 말에서 내려 복지하며 살기를 빌거늘, 위왕이 크게 꾸짖고 중곤(中棍) 삼십을 처 내치니, 구골대 백배 사례하고 돌아 가다가 인하여 죽으니, 양국 대병이 대패하매 번왕이 탄하며 이르기를,
 
62
「내 천자의 조서를 보고 망령되이 기병하였다가 아까운 장졸만 죽였으니 어찌 분한치 않으리오. 이후는 위지(魏地)를 범치 못하리로다.」
 
63
하더라.
 
64
차시 천자가 삼로병(三路兵)이 대패함을 듣고 크게 몰라 차탄(嗟歎)하며 이르기를,
 
65
「위왕은 과연 천신(天神)이로다. 뉘 능히 당하리오.」
 
66
제신이 주하기를,
 
67
「폐하가 위를 처 함몰하고 위지를 환수하고자 하시다가, 도리어 패한 바가 되어 열국(列國)의 웃음을 면치 못하게 되오니, 신등(臣等)이 또한 참괴(慙愧)하도소이다.」
 
68
상이 차탄하심을 마지아니하시더라.
 
 
69
각설 이때 흉노(匈奴) 묵특이 천자가 혼암(昏暗)함을 듣고 대군을 조발(調發)할새, 왕굴통으로 대장을 삼고 진고란으로 참모장군(參謀將軍)을 삼아 먼저 옥문관을 쳐 항복받고, 하람성에 이르니 천자가 크게 황겁하여, 장기백으로 대원수를 삼고, 우흥으로 후군장을 삼아 십만 병을 주시며 북호(北胡)를 파하라 하시니, 장기백이 대군을 휘동하여 하람에 이르니, 적장 왕굴통이 진문(陣門)을 열고 나와 웨기를,
 
70
「너의 천자가 무도 포악하여 국체(國體)를 무너뜨려 버리니, 하늘이 나같은 장수를 내시사 무도한 황제를 소멸케 하시니, 너의 무리 죽기를 재촉하거든 빨리 나와 칼을 받으라.」
 
71
하고 내다르니, 장기백이 대노하여 칼을 들고 맞아 싸울새, 수합이 못하여 적장을 당치 못할 줄 알고 달아나니, 굴통이 승세(勝勢)하여 물밀듯 들어오니 황제 대경실색하여 성문을 굳이 닫고 나지 않으니, 굴통이 군을 재촉하여 황성을 겹으로 싸고 엄살(掩殺)하니 뉘 능히 당하리오.
 
72
상이 앙천 탄하며 이르기를,
 
73
「이제 적병이 강성하여 성하에 다다르니 어찌 사직(社稷)을 보존하리오.」
 
74
하시고 시신(侍臣)을 거느려 차야(此夜)에 도망하실새 구리산으로 들어가니, 왕굴통이 천자가 도망하여 구리산으로 감을 알고 군을 몰아 급히 따르니라.
 
 
75
이적에 진단이란 사람이 있으니, 벼슬이 승상에 이르렀더니 조정을 하직하고 수양산의 은거하였더니, 흉노의 병이 강성하여 천자가 위태하심을 보고, 천리마를 타 위국의 이르러 왕을 보고 이르기를,
 
76
「이제 신천자(新天子)가 비록 무도하나, 우리는 세세(世世) 국록지신(國祿之臣)이라. 간절한 마음을 놓지 못하더니, 이제 흉노가 기병하여 황성의 이르매, 천자가 구리산으로 피란하사 급함이 조석에 있으나, 조정에 모사(謀士) 맹장(猛將)이 없으니 송실이 위태할지라. 왕 곧 아니면 회복하지 못하리니, 전(前) 일을 개회(介懷)치 말고 선제를 생각하여 천자를 구하소서.」
 
77
위왕이 정색(正色)하며 이르기를,
 
78
「황제 무단히 복(伏)의 자식을 죽여 젓 담아 보내니 그 일을 알지 못하고, 또 기병하였으나 이는 적국이라. 현형(賢兄)은 다시 이르지 마소서.」
 
79
진단 이르기를,
 
80
「왕의 아들은 곧 복(伏)의 사위라. 사람이 어찌 온전하리오마는 한 자식을 위하여 선제를 저버리지 못하리니, 왕은 재삼 생각하라.」
 
81
왕이 그 충성된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기를,
 
82
「복이 선제의 망극한 은혜를 잊음이 아니로되, 형장(兄丈)의 충언을 감동하여 천자를 구하리이다.」
 
83
하고 즉시 군마를 정제(定制)하여 구리산으로 향할새, 기치창검(旗幟槍劍)이 햇빛을 희롱하더라.
 
 
84
차시 천자가 적진에 싸이었으매 양초(糧草)가 진(盡)하여 시신(侍臣)이 많이 주려 죽는지라. 상이 앙천(仰天) 탄식하며 항(降)하고자 하더니, 문득 티끌이 일어나며 대진(大陣)이 풍(風)같이 몰아 와 왕굴통과 싸우거늘, 상이 성루의 올라 자세히 보니 다른 이 아니요, 곧 위왕 현수문이라.
 
85
자룡검이 이르는 곳에 장졸의 머리 추풍낙엽(秋風落葉) 같더니, 수합이 못하여 왕굴통의 머리 마하에 내려지는지라. 흉노가 위왕이 왔음을 알고 상혼(喪魂)낙담(落膽)하여 약간 군사를 데리고 쥐 숨듯 달아나니라.
 
86
위왕이 흉노를 파하고 산문에 진치고 굴통의 머리를 상께 보내어 이르기를,
 
87
「나는 위왕 현수문이라. 오늘 이곳의 와 천자를 구함은 선제 유교를 봉승(奉承)함이니 다시 보기 어렵도다.」
 
88
하고 진을 돌리어 본국으로 돌아가거늘, 천자가 이 거동을 보시고 대찬(大讚)하기를,
 
89
「위왕은 실로 충량(忠亮)의 영웅이로다. 만일 위왕 곧 아니면 어찌 흉노를 파하리오.」
 
90
하시고 사관(辭官)을 보내어 치사(致謝)하고자 하시거늘, 승상 조진이 간하기를,
 
91
「현수문이 비록 공이 있으나, 선제(先帝)만 위하고 폐하는 위하지 아니하오니, 어찌 그런 번신(藩臣)에게 치하하리까.」
 
92
상이 그렇게 여기시고 환국하시며 만조를 모아 진하하시더라.
 
 
93
각설 계양춘이 진왕 죽은 후 겨우 목숨을 보전하여 천리마를 타고 여진국(女眞國)으로 향하더니, 진강산 하에 이르러는 길이 홀연 끊어져 갈 수 없는지라. 앙천 탄하며 이르기를,
 
94
「내 여자의 몸으로 만고의 없는 일을 하다가, 이제 이곳에서 죽으리로다.」
 
95
하고 슬퍼 통곡하더니, 문득 일위(一位) 노옹(老翁)이 산상(山上)에서 내려오거늘 반겨 가는 길을 물으니, 노옹 이르기를,
 
96
「그대 아비 원수를 갚고자 하여 여화위남(女化爲男)하고 주유(周遊) 천하(天下)하니 어찌 길을 나에게 묻느뇨?」
 
97
양춘이 대경하여 이르기를,
 
98
「선생이 벌써 근본을 아시니, 어찌 은휘(隱諱)하리까.」
 
99
하고 전후사를 자세히 이르니 노옹 이르기를,
 
100
「위왕 현수문은 일광대사의 술법을 배웠으니 뉘 능히 당하리오. 내 천문을 보니 송태자 위왕을 박대(薄待)하여 망하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하늘이 무심하리오. 위왕이 한번 공을 갚은 후 다시 아니 도우리니, 그대는 여진국에 가면 반드시 황후가 되리니 천기를 누설치 말라.」
 
101
하고 환약 세 개를 주며 이르기를,
 
102
「제일은 개용단(改容丹)이니 여진에 갈 제 먹고, 그 다음은 대국과 싸울 제 자객을 먹이면 천하를 도모할 것이요, 그대 가는 길에 또 도인을 만나리니 성명은 신비회라. 부디 그 사람을 데려가게 하라.」
 
103
하고 인하여 이별하니, 계양춘이 배사(拜謝) 하직하고 한 곳에 다다르니 강물이 가로질러 건너기 망연하더니, 문득 일인(一人)이 낚시를 들고 물가의 앉았다가 배를 대어 건너거늘, 계양춘이 노인의 말을 생각하고 사례 하거늘,
 
104
기인(其人) 이르기를,
 
105
「금일 우연히 만나 물을 건너거니와 공자는 소원을 이루소서.」
 
106
하고 가거늘, 계양춘이 이별하고 여러 날 만에 여진의 이르러 개용단을 먹으니 인물이 천하일색(天下一色)이 된 지라. 여진 궁녀들이 다투어 구경하더니 왕이 이 말을 듣고 불러 보니 과연 일색이라. 일견(一見)의 대혹하여 함께 취침(就寢)하니 이러므로 정이 비할 데 없어 아들을 낳으니 여진왕이 워낙 무자(無子)하던 차 더욱 침혹(沈惑)하더라.
 
 
107
일일은 계양춘이 왕에게 이르기를,
 
108
「이제 군마와 장수가 족하니 한 번 중원 강산을 다투어 변방(邊方)의 좁은 곳을 면하옴이 좋을까 하나이다.」
 
109
왕 이르기를,
 
110
「내 또한 뜻이 있으되, 매양 위왕 현수문을 꺼리노라.」
 
111
양춘이 웃으며 이르기를,
 
112
「왕이 어찌 이다지 무식하뇨. 천자가 수문을 박대 태심(太甚)하되, 수문은 충신이라. 선제의 은혜를 생각하고 흉노난의 급함을 구하였거니와 다시는 돕지 아니할 것이니 염려치 마소서.」
 
113
왕이 청파(聽罷)에 대희하여 이르기를,
 
114
「그대는 짐짓 여중(女中) 군자(君子)로다. 내 어찌 기병치 않으리오.」
 
115
양춘 이르기를,
 
116
「왕이 기병할진대 모사를 얻어야 하리니, 듣자온즉 화룡강의 신비회란 사람이 있어 재조와 도행(道行)이 제갈무후(諸葛武侯)에 지난다 하오니 청하소서.」
 
117
왕이 예단(禮單)을 가지고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예(禮)를 행하여 함께 돌아오니라. 왕이 계양춘의 말이 다 신기함을 아름다이 여겨 아골대로 선봉을 삼고 신비회로 모사를 삼아 택일 출사(出師)할새, 계양춘도 전복(戰服)을 입혀 함께 군중에 행하니라.
 
 
118
재설, 천자가 위왕의 도움으로 흉노의 핍박함을 면하여 종사를 보전하였으나, 간신의 말을 듣고 위왕을 대접하지 아니하나, 위왕은 한중(漢中)을 베어 천자께 드리니 천자가 조신을 모으고 즐겨하더니, 문득 초마(哨馬)가 급보(急報)하되,
 
119
「여진국 아골대 대군을 거느리고 지경(地境)에 이르렀다.」
 
120
하거늘, 황제 대경하여 만조를 모아 의논하되,
 
121
「뉘 적병을 막으리오.」
 
122
대사마(大司馬) 장계원이 출반주(出班奏)하기를,
 
123
「신이 비록 재조가 없사오나 적장의 머리를 베어오리이다.」
 
124
상이 기뻐하사 육십만 대군과 천여 원 장사를 조발하여 풍수성의 이르니, 적장 아골대 군마를 거느려 진치고, 여진왕이 십만 대병을 거느려 후응(後應)이 되었으니 호풍(胡風)이 천 리에 놀라더라.
 
125
장원수가 진문을 열고 대호하기를,
 
126
「반적(叛賊) 여진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나는 송조(宋朝) 대원수 장계원이라. 너 같은 쥐 무리를 없이하고자 하나니, 만일 나를 두렵게 여기거든 미리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하라.」
 
127
하고 싸움을 돋우니, 아골대 이 말을 듣고 분노하여 칼을 들고 내다르며 이르기를,
 
128
「나는 여진장 아골대라. 너의 황제 무도하므로 하늘이 나 같은 장사를 내시사 송실의 더러운 임금을 없이하고 천하를 진정하고자 하나니, 너는 천의(天意)를 알지 못하고 당돌한 말을 하느냐.」
 
129
하고, 맞아 싸울새 양장(兩將)의 검광(劍光)이 번개 같으니, 짐짓 적수(敵手)라. 칠십여 합을 싸우되 승부를 결치 못하고 각각 본진에 돌아 오니라. 신비회가 아골대에게 이르기를,
 
130
「송장 장계원의 재조를 보니 졸연(猝然)히 잡기 어려울지라. 이제 한 계교 있으니 그대는 군을 거느려 구리성에 진치고, 후군장 신골대는 일천 군을 거느리고 백룡강을 건너가 이리이리 하라.」
 
131
하고 진골대에게 이르기를,
 
132
「그대는 여차여차 하라.」
 
133
하니, 제장이 대희하여 모사(謀士)의 신출귀몰(神出鬼沒)한 계교를 탄복하고 물러나니라.
 
134
날이 밝으매, 장원수가 분기를 참지 못하여 외갑(外甲)을 정제(整齊)하고 정창(挺槍) 출마(出馬)하여 싸움을 돋우니, 아골대 또한 분노하여 내달아 이르기를,
 
135
「어제 너의 목숨을 불쌍히 여겨 돌려보내었거니와 오늘은 당당히 용서치 못하리라.」
 
136
하고, 십여 합을 싸우더니 골대 거짓 패하여 달아나매, 장원수가 급히 그 뒤를 따르더니 홀연 땅이 무너지며 수천 인마(人馬)가 지함(地陷)의 빠져 일진(一陣)이 대패하니, 적진 장졸이 일시의 짓치매 장원수가 투구를 잃고 얼굴이 상하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제장의 구함을 입어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백룡강을 버리고 달아나니 삼십여 리를 간 지라.
 
137
기갈(飢渴)을 참지 못하여 다투어 강수(江水)를 마시더니, 문득 급한 물이 이르러 죽은 군사가 무수한지라. 장원수가 겨우 수십 기를 거느리고 도망하여 경사(京師)로 올라 오니라.
 
138
아골대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무인지경(無人之境) 같이 함곡관에 다다라 진치고 군을 쉬오며, 열읍(列邑) 창고를 열어 군량(軍糧)을 삼으니 위태함이 조석에 있는지라.
 
 
139
차시 천자가 장원수가 패하여 옴을 보시고 크게 근심하사, 제신을 모으시고 도적 파함을 의논하시더니, 또 보(報)하되,
 
140
「도적이 함곡관에 이르러 진치고 열읍 창고를 여러 군기와 양식을 내어 임의(任意)로 처치하니 위태함이 조석에 있다.」
 
141
하거늘, 천자가 들으시고 대경실색하여 하늘을 우러러 탄식 유체(流涕)하며 이르기를,
 
142
「짐의 운수가 불길하여 허다 병혁(兵革)을 만났으되, 위왕 현수문 곧 아니면 종사(宗社)를 보전하지 못하리로되, 그 공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그른 일을 많이 하여 앙화(殃禍)가 이처럼 미쳤으나, 아무리 급한들 무슨 낯으로 다시 구완을 청하리오.」
 
143
하고 눈물을 흘리시며 어찌할 줄 모르시니 좌우제신이 묵묵부답(黙黙不答)이러니, 문득 한 사람이 주하기를,
 
144
「현수문은 충효(忠孝) 겸전(兼全)한 사람이라. 폐하가 비록 저를 저버림이 있으나 저는 이런 줄 알면 반드시 구하오리니 이제 급히 사관을 택정(擇定)하여 위국에 구완을 청하시면 도적을 파하리니와, 이제 만일 그렇지 아니 하오면 송실을 보전치 못하오리니, 복망 폐하는 익히 생각하소서.」
 
145
천자가 이 말을 들으시고 용안(龍顔)에 참색(慙色)이 가득하사 자세히 보니 병마도총(兵馬都摠) 박내신이라. 마지못하여 조서를 닦아 사자를 주어 위국으로 보내시고, 다시 군마를 조발하여 장계원으로 대원수를 삼고, 박내신으로 부원수를 삼아 적병을 파하라 하시니, 양장이 대군을 휘동하여 함곡관의 다다르니 정병이 백 만이오 용장이 수십 원이라.
 
146
진세(陣勢)를 엄숙히 하고 싸움을 돋우니, 적진이 송진의 위엄을 보고 견벽불출(堅壁不出)하며 파할 계교를 의논하더니, 계양춘이 여진왕에게 이르기를,
 
147
「첩이 아무 지식이 없사오나, 송진 형세를 보니 비록 먼저 한번 이기었으나 다시 파하기 어려우리니, 첩이 금야(今夜)에 양장(兩將)의 머리를 베어 오리이다.」
 
148
왕이 믿지 아니하고 모사 신비회를 돌아보아 이르기를,
 
149
「여자가 어찌 양장의 머리를 베리오.」
 
150
하고 미소(微笑) 부답(不答)이거늘, 계양춘이 고하기를,
 
151
「첩이 만일 그렇지 못하올진대 군법을 면치 못하리니, 왕은 염려치 마소서.」
 
152
하고 가만히 진도관을 불러 이르기를,
 
153
「내 그대 재조를 아나니, 금야에 자객이 되어 송진의 들어가 양장의 머리를 베어올 소냐.」
 
154
진도관 이르기를,
 
155
「들어가면 베어 오려니와, 들어가기 어려움을 근심하노라.」
 
156
계양춘 이르기를,
 
157
「내게 기이한 약이 있으니, 이름은 변신(變身) 보명단(保命丹)이라. 이를 먹으면 곁의 사람이 몰라보나니 어찌 들어가기를 근심하리오.」
 
158
진도관이 응낙하고 약을 가지고 밤을 기다려 비수(匕首)를 품고 송진에 나아갈새, 그 약을 먹으니 과연 곁에 군사가 알지 못하거늘, 진도관이 방심(放心)하고 완완(緩緩)히 대(臺)에 이르러 보니, 박내신은 촉(燭)을 돋우고 병서를 읽고, 장계원은 상처를 앓아 서안(書案)에 의지하여 신음하거늘, 진도관이 비수를 날려 양장의 머리를 베어들고 완완히 나오되, 군중에 알 이 없더라.
 
159
진도관이 본진에 돌아와 수급(首級)을 계양춘에게 드리니, 여진왕이 이 말을 듣고 대희하여 계양춘에게 이르기를,
 
160
「그대는 과연 신선의 여아로다.」
 
161
하고 또 진도관을 보아 이르기를,
 
162
「네 비록 약을 먹었으나 만군(萬軍) 중에 들어가 상장(上將)의 머리를 낭중취물(囊中取物) 같이 하니 어찌 일공(一功)이 아니리오.」
 
163
하며 그 수급을 기에 달아 송군(宋軍)을 뵈어 이르기를,
 
164
「너의 대장의 머리를 얻어왔으니 비록 쓸데없으나 찾아 가라.」
 
165
하니 송군이 대경하여 서로 도망하거늘, 생각하니 어찌 가련치 않으리오.
 
166
이때 아골대 한 번도 싸우지 아니하고 양장의 머리를 얻으매, 마음이 상활(爽闊)하여 송진(宋陣)을 시살(弑殺)하니 일합이 못하여 함몰하고, 군을 몰아 들어올새, 또 창덕현을 파하고 물밀듯 황성에 이르니 감히 나 싸울 자가 없더라.
 
167
차시 천자가 이 말을 들으시고 통곡하며 이르기를,
 
168
「적세 강성하여 대국 명장을 다 죽이고 황성을 범한다 하니, 짐에게 이르러 삼백 년 기업(基業)이 망할 줄 어찌 알리오.」
 
169
하시고 용루(龍淚)를 내리 오시니 만조(滿朝) 제신이 막불(莫不) 유체(流涕)러라.
 
 
170
각설 위왕 현수문이 천자의 박절하심을 통한히 여기나, 그러나 조금도 원망치 아니하며 매양 천심(天心)이 손상(損傷)함을 한(恨)하고, 국운(國運)이 오래지 않음을 슬퍼하며 여러 아들을 불러 경계하며 이르기를,
 
171
「노부(老父)가 출어(出御) 세상(世上)하여 허다 고초(苦楚)를 많이 지내고, 일찍 용호방(龍虎榜)에 참여하여 출장입상(出將入相)하니, 이는 천은(天恩)이 망극한지라. 갈수록 천은이 융성하여 벼슬이 왕작(王爵)의 거(居)하니 이는 포의(布衣)에 과극(過極)한지라. 이러므로 몸이 마치도록 나라를 돕고자 하나니, 여등은 진충(盡忠) 갈력(竭力)하여 천자를 섬기고 소소(小小)한 현담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
 
172
하고 누수를 흘리더니, 문득 보하되, 천자의 사관이 이르렀다 하거늘, 위왕이 놀라 헤아리되,
 
173
‘천자가 또 어느 땅을 들이라 하시도다.’
 
174
하고 성외에 나가 맞으니 사관이 조서(詔書)를 드리며 이르기를,
 
175
「천자가 방금 여진의 난을 만나 적병이 황성의 이르매 그 위태함이 조석의 있기로 급히 구완을 청하시더이다.」
 
176
위왕이 천사(天使)의 말을 듣고 대경하여 북향(北向) 사배(四拜)하고, 조서를 떼어보니, 그 조서의 이르기를,
 
177
「짐이 불행하여 또 여진의 난을 당하매, 적세 크게 강성하여 성하에 이르니 사직의 위태함이 조석에 있는지라. 방금 조정에 적장 아골대 당할 장수가 없으니 어찌 종사를 보전하리오. 이는 다 짐이 자취(自取)한 죄라. 누구를 한하며 누구를 원망하리오. 허물며 경은 선제 충신이요 만고의 대공(大公)이거늘, 짐이 잠깐 생각하지 아니하고 간신의 말을 좇아, 경을 부족히 여기며 그 아들을 젓 담아 보내었으니, 첫째는 선제의 유교(遺敎)를 저버린 죄요, 둘째는 스승을 죽인 죄요, 셋째는 선조(先朝) 충신을 만모(慢侮)한 죄요, 넷째는 서천을 환수한 죄이니, 이런 중죄를 짓고 어찌 안보하기를 바라리오마는, 이왕에 자작지죄(自作之罪)는 회과(悔過)하였거니와, 이제 위태함을 당하여 부끄럼을 무릅쓰고 사자를 경에게 보내나니, 경이 비록 연만하여 용맹이 전만 못하나 그 재조는 늙지 아니하리니, 만일 노(怒)를 감추고 원망을 두지 아닐진대, 한번 기군(起軍)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족히 천하를 보존하리니, 국가 안위는 재차(再次)일 게라. 모름지기 경은 익히 생각하여 짐의 허물을 사(赦)하고 선제의 유교를 돌아봄이 어떠하뇨.」
 
178
하였더라.
 
179
위왕이 남필(覽畢)에 일변 놀라고 일변 슬퍼 흐르는 눈물이 백수(白鬚)를 따라 이어지며 묵묵무언(黙黙無言)이러니 오랜 후 표를 닦아 사관을 돌려보내고, 급히 군사를 발하여 천자를 구하고자 할새,
 
180
장자(長子) 현후로 후군장(後軍將)을 삼고, 삼자(三子) 현첨로 좌익장(左翼將)을 삼고 승상 석침으로 군사장군(軍師將軍)을 삼아, 철기 백만을 거느리고 급히 행군하여 황성으로 향하니, 위왕이 홍안(紅顔) 백발(白髮)이 자못 씩씩하여 갑주(甲冑)를 정제(整齊)하고 손에 자룡검을 잡았으니, 사람은 천신 같고 말은 비룡 같아 군제(軍制) 엄숙한 가운데, 정기(旌旗)는 폐(廢)일(日)하고 금고(金鼓)는 훤천(暄天)하니, 가는 길에 비록 도적이 있으나 위풍(威風)으로 좇아 쓰러지니, 위왕의 조화 있음을 가히 알지라.
 
181
여러 날 만에 황성의 이르러 진치고 적진 형세를 살펴보니, 여진왕이 아골대와 더불어 진세를 웅장히 하고 기운이 활달하여 천지를 흔들 듯한지라. 위왕이 군중에 전령하여 이르기를,
 
182
「적진이 비록 싸움을 돋우나 일절(一切) 요동(搖動)치 말라.」
 
183
하고 진(陣)을 변하여 팔문금사진(八門金蛇陣)을 치고 상께 표문을 올리며 연(然)하여 군사를 쉬게 하더라.
 
 
184
차설 천자가 적세 위태함을 보시고 어찌할 줄 알지 못하고, 다만 하늘을 우러러 장탄 유체하시며, 요행 위왕의 구병(救兵)이 이를까 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주야로 기다리시더니, 과연 위왕이 십만 대병을 거느리고 성외의 이르러 표문(表文)을 올린다 하거늘, 상이 대열하사 그 표문을 떼어보니, 하였으되,
 
185
「위왕 현수문은 삼가 표문을 황상 용탑(龍榻) 하(下)에 올리옵나니, 신이 본디 하방(下方) 천생(賤生)으로 선제의 망극한 은혜를 많이 입사오매. 그 갚을 바를 알지 못하여 몸이 마치도록 성은을 잊지 아니하옵더니, 이제 폐하가 선제의 뒤를 이으사 신의 용렬함을 깨달으시고, 서천 일지(一地)를 도로 거두시며 죄를 자식에게 미루어 그 뒤를 끊고자 하시니, 신의 마음이 어찌 두렵지 않으리 마는, 본디 충을 지키는 뜻이 간절한 고로, 저적에 흉노의 난을 평정하고 폐하의 위태함을 구하였으나 뵈옵지 아니하고 감은 폐하가 신을 보기 싫은 뜻을 위함이러니, 이제 또 여진이 반하여 황성의 이르매 그 위태함을 보시고 구완을 청하시니, 신이 어찌 적병이 이른 줄 알면서 편히 있음을 취하리까마는, 천한 나이 벌써 칠순에 가까운지라. 다만 힘이 전만 못함을 두려워 양아(兩兒)를 데리고 군을 발하여 이르렀으나, 옛날 황충(黃忠)만 못하지 아니 하오리니, 바라건대 폐하는 근심치 마소서.」
 
186
하였더라.
 
187
상이 남필에 대찬하기를,
 
188
「위왕은 만고충신이라. 짐이 무슨 낯으로 위왕을 대하리오.」
 
189
하시고 멀리 나와 맞고자 하나, 적병이 강성함을 두려워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장탄 불이 하시더니 조신 중 일인이 출반주하기를,
 
190
「이제 위왕 현수문이 대군을 거느리고 와 진(陣)치매, 적장 아골대 그 진세 엄숙함을 보고 십 리를 물러 진쳤으매 그 겁(怯)함은 짐작하오리니, 폐하가 일지군(一枝軍)을 주시면 신이 한번 전장에 나아가 위왕의 일비지역(一臂之役)을 돕사올까 하나이다.」
 
191
모두 보니 이는 도총병마(都總兵馬) 설연이라. 상이 기뻐하사 즉시 군사를 나누니 겨우 수천 기라. 당부하여 가로되,
 
192
「적장 아골대는 지모가 과인하고 모사 신비회는 의량(意量)이 신묘(神妙)하니 삼가 경적(輕敵)하지 말라.」
 
193
설연이 사은하고 군을 거느려 위왕진에 이르니, 위왕이 반기며 적진 파할 계교를 의논하고 제장을 불러 이르기를,
 
194
「적장 아골대는 짐짓 지모가 잇는 장수이라. 우리 군사가 수천 리를 몰아 왔으매 반드시 그 피곤함을 알고 쉬지 못하게 하여, 싸움을 돋우되, 내 그 뜻을 알고 삼일을 견벽불출(堅壁不出)함이니, 명일 싸움에 제장은 나의 뒤를 따르라.」
 
195
하고 날이 밝은 후 방포일성(放砲一聲)의 진문(陣門)을 크게 열고 말에 올라 내다르며 대호하기를,
 
196
「적장 아골대는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나는 위왕 현수문이라. 나의 자룡검이 본디 사정이 없기로 반적의 머리를 무수히 베었나니 허물며 너 같은 무도한 오랑캐 목숨은 오늘 내 칼 아래 달렸으니 바삐 나와 칼을 받으라.」
 
197
하는 소리가 우레 같으니, 아골대 분노하여 진밖에 내다르며 꾸짖기를,
 
198
「나는 여진국 대장 아골대라. 우리 왕이 하늘께 명을 받아 무도한 송(宋)천자(天子)를 멸하고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매, 벌써 삼십육도 군장(君長)을 쳐 항복받고 이제 황성을 무찔러 천자를 잡고자 하거늘, 너는 천시(天時)를 알지 못하고 무도한 황제를 구하고자 하니, 이른바 조걸위학(助桀爲虐)이라. 네 어찌 늙은 소견이 이다지 모르나뇨.」
 
199
하고 맞아 싸울새 칠십여 합에 이르되, 승부를 결치 못하는지라. 위왕이 비록 노장(老將)이나 용력(勇力)이 족히 소년 아골대를 당하니 검광이 번개 같아 동을 쳐 서를 응하고, 남을 쳐 북장(北將)을 베니 그 용력을 가히 알지라.
 
200
날이 저물매 각각 본진으로 돌아가니, 위왕이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제장 군졸을 모으고 의논하기를,
 
201
「내 서번 도적을 칠 때에 초인(草人)을 나와 같이 만들어 적진을 속였더니 이제 또 그처럼 속이리니, 그대는 약속을 잃지 말라.」
 
202
하고 수일이 지난 후 철기 백만을 거느리고 진 좌편 호인곡에 매복하고, 후군장 현후를 불러 이르기를,
 
203
「너는 군을 거느리고 적진과 싸우다가 이리이리 하라.」
 
204
하고 밤들기를 기다려 싸움을 돋우며 대호하기를,
 
205
「적장 아골대는 전일 미결(未決)한 승부를 오늘날 결단(決斷)하자.」
 
206
하고 자룡검을 들고 내다르니, 여진왕이 아골대에게 이르기를,
 
207
「위왕 현수문이 심야(深夜)에 싸움을 재촉하니 무슨 계교 있음이라. 삼가 경적하지 말라.」
 
208
아골대 응낙하고 말에 올라 진문을 열고 내달아 싸울새, 등촉(燈燭)이 휘황한 가운데 위왕이 엄숙한 거동이 씩씩 쇄락(灑落)하여 금고(金鼓) 소리는 산천이 움직이고 함성은 천지진동하니, 번개 같은 검광은 횃불이 무광(無光)하고 분분(紛紛)한 말발굽은 피차(彼此)를 모를러라.
 
209
서로 삼십여 합을 싸우더니 위왕이 거짓 패하여 달아날새, 아골대 승세(勝勢)하여 급히 뒤를 따르매 위왕을 거의 잡을 듯하여 수십 리를 따르니, 아골대의 칼이 위왕 목에 이르기를 한두 번이 아니로되, 종시(終是) 동(動)치 아니하는지라.
 
210
아골대 의혹(疑惑)하여 군을 돌리고자 하더니, 문득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또 위왕이 여진왕의 머리를 베어 들고 군을 몰아 짓치니, 앞에는 현첨, 석침과 도총병마 설연이 치고, 뒤에는 위왕이 치니 아골대 비록 용맹하나 거짓 위왕이 싸움도 어렵거든 하물며 정작 위왕의 일광도사 술법을 당하리오.
 
211
위왕의 칼이 이르는 곳에 장졸의 머리 검광을 좇아 떨어지니 아골대 낙담상혼(落膽喪魂)하여 동을 바라고 달아나는지라. 위왕이 군을 재촉하여 따르니 아골대 대적하지 못할 줄 알고 말에서 내려 항복하여 이르기를,
 
212
「이제 우리 왕이 벌써 죽었고, 소장이 세궁(勢窮) 역진(力盡)하였사오니 바라건대 위왕은 잔명(殘命)을 살리소서.」
 
213
하거늘, 위왕이 아골대를 잡아 꿇리고 꾸짖기를,
 
214
「네 임금과 함께 반하여 대국을 침범하니 마땅히 죽일 것이로되 항자(降者)를 불살(不殺)이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놓아 보내나니, 너는 돌아가 마음을 고치고 행실을 닦아가 어진 사람이 되게 하라.」
 
215
하고 등 팔십을 쳐 원문(轅門) 밖에 내치고 삼군을 모아 상사하며 방(榜) 붙여 백성을 안무하고 승전한 표(表)를 올리더라.
 
 
216
차시 천자가 적진의 싸이어 성중 백성이 많이 주려 죽으니, 이러므로 천자가 자주 통곡하시며 위왕의 승전하기를 하늘께 축수하더니, 이날 위왕이 여진왕을 죽이고 아골대를 사로잡아 항복받은 표문을 보시고 크게 기뻐하사 만조를 모으시고 성문에 나와 나 위왕을 맞으실새,
 
217
위왕이 복지 통곡하오니, 상이 수레에 내려 왕의 손을 잡으시고 참색(慙色)이 용안(龍顔)에 가득하사 눈물을 흘리시며 가로되,
 
218
「짐이 혼암(昏闇) 무지(無知)하여 경 같은 만고충신을 대접하지 아니하고, 또 경의 어진 아들을 죽였으니 무슨 낯으로 경을 대하리오. 이러므로 짐의 죄를 하늘이 밉게 여기사 송실을 위태하게 하심이로되, 경은 추호(秋毫)를 혐의(嫌疑)치 아니하고, 저적에 흉노난을 소멸하며 이제 또 여진의 흉적을 파하니, 경의 충성은 만대의 썩지 아니하고 짐의 허물은 후세의 침 받음을 면치 못하리니,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오.」
 
219
위왕이 천자가 너무 자복(自服)하심을 보고 읍(泣)주(奏)하기를,
 
220
「신이 본디 충성을 효칙(效則)고자 하여 선제의 망극한 은혜를 갚지 못하였기로 몸이 마치도록 나라를 위하오매, 어찌 폐하의 약간 그러심을 혐의하오리까마는, 저적에 흉노를 파하고 폐하를 뫼시지 아니하고 곧바로 위국에 돌아감은 세상공명을 하직(下直)하고자 함이러니, 갈수록 국운의 불행함을 면치 못하여 또 여진의 난을 만나사 위태하심을 듣자오매, 신이 비록 천한 나이 많사오나 어찌 전장(戰場)을 두려워하리까. 이제 폐하의 홍복(弘福)으로 도적을 파하오나 이는 하늘이 도우심이라. 신의 공은 아니로소이다.」
 
221
상이 더욱 칭찬하시며 함께 궐중의 들어와 새로이 진하(陳賀)하시고 위왕의 공을 못내 일컬으시며 황금 일천 냥과 채단 오백 필을 사송(賜送)하시고 가로되,
 
222
「짐이 경의 공을 생각하면 무엇으로 갚을 바를 알지 못하나니, 이제 경의 나이 쇠로(衰老)하매 연연(年年)이 조공하는 예(禮)를 폐하고 안심 찰직(察職)할지어다.」
 
223
위왕이 돈수(敦壽) 사례하고 인하여 하직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니라.
 
 
224
재설 아골대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모사 신비회와 계양춘을 찾아 데리고 여진의 들어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르기를,
 
225
「우리 계양춘의 말을 듣고 백만대병을 일으켜 대국을 치매, 위왕 현수문의 칼아래 귀신이 다 되고 다만 돌아오는 사람은 우리 수삼 인이라. 어찌 통한치 않으리오.」
 
226
하고 다시 반(叛)함을 꾀하더라.
 
227
위왕이 본국의 돌아가 현후, 현첨 두 아들이 무사히 돌아옴과 석침이 또한 성공하고 함께 돌아옴을 기뻐, 모든 자녀를 거느리고 잔치를 배설하여 크게 즐길새, 왕비 석씨를 돌아보아 이르기를,
 
228
「비(妃)와 과인(寡人)의 옛날 일을 생각하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어찌 이처럼 귀히 됨을 뜻하였으리오. 다만 한하는 바는 송실이 오래 누리지 못할까 두렵나니 이제 과인이 연기(年紀) 팔순이라. 오래지 아니하여 황천길을 면치 못하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229
왕비 또한 비회(悲懷) 교집(交集)하여 이르기를,
 
230
「신첩(臣妾)이 당초 계모의 화를 피하여 칠보암에 있을 제, 노승의 후은(厚恩)을 입사와 우리 부부가 서로 만나게 하였으니, 이를 생각하면 그 은혜 적지 아니 하온지라. 이제 사람을 그 절에 보내어 불공하고 제승에게 은혜를 갚고자 하오니 복망 전하(殿下)는 신첩의 사정을 살피소서.」
 
231
위왕이 옳이 여겨 금은 채단으로 옛정을 표하여 보내더라.
 
232
차시 백관이 왕과 또 비의 성덕(聖德)을 하례(賀禮)하고 조회를 마치고 잔치를 파하니 위국 인민(人民)이 칭(稱)복(福)하지 않는 이 없더라.
 
 
233
일일은 위왕이 마음의 자연 비감(悲感)하여 전에 입던 갑주와 자룡검을 내어 보니, 스스로 삭아 조각이 떨어지고 칼이 부스러져 썩은 풀 같은지라. 위왕이 대경 탄하며 이르기를,
 
234
「수십 년 전에 내 타던 말이 죽으매 의심하였더니, 그 후로 과연 선제 붕하시고, 또 이제 성공한 갑주와 칼이 스스로 삭아 쓸 데 없이 되었으니, 차(此)는 반드시 나의 명이 진(盡)한 줄 알지라. 슬프다. 세상 사람이 다 각각 수한(壽限)의 정함이 잇나니 내 어찌 홀로 면하리오.」
 
235
하고 즉시 현후를 봉(封)하여 세자를 삼고, 석침으로 좌승상을 삼으며 용상에 눕고 일어나지 못하더니, 스스로 회춘(回春)치 못할 줄 알고 왕비와 후궁을 부르며 모든 아들을 불러 유체(流涕)하며 이르기를,
 
236
「과인이 초분(初分)은 비록 사오나오나 이제 벼슬이 왕작에 거하고 슬하의 아들 구형제를 두었으니 무슨 한이 있으리오. 그러나 송실(宋室)이 장구(長久)치 못할까 근심하나니 돌아가는 마음이 가장 슬프도다. 너희는 모름지기 후사(後嗣)를 이어 충성으로 나라를 받들고 정사를 닦아, 백성을 평안하게 하라.」
 
237
하고, 상의 누우며 명이 진하니 춘추 칠십팔이라. 왕비와 모든 자제 발상(發喪) 거애(擧哀)하니 위국 신민(臣民)이 통곡 않는 이 없고 일월(日月)이 무광(無光)하더라.
 
238
왕비 석씨 일성(一聲) 통곡에 혼절(昏絶)하니 시녀의 구함을 입어 겨우 정신을 차린지라. 왕비 세자 현첨을 불러 이르기를,
 
239
「사람의 명은 도망하기 어려운지라. 세자는 모름지기 과도히 슬퍼 말고 만수무강(萬壽無疆)하라.」
 
240
하고 이어 훙(薨)하니 모든 자녀와 군신의 애통함은 이르지 말고, 석침이 슬퍼함을 부모상 같이 하여 지극 애통하며 상구(喪具)를 차려 신릉에 안장(安葬)하니라.
 
 
241
재설 천자가 위왕의 관인(寬仁) 대덕(大德)을 오래 잊지 못하사 해마다 사신을 보내어 위문하시더니, 일일은 천문관(天文觀)이 주하되,
 
242
「금월 모일의 서방(西方)으로 두우성(斗牛星)이 떨어지오니 심히 괴이하도소이다.」
 
243
상이 들으시고 괴이 여기시더니, 문득 위왕이 훙한 주문(奏文)을 보시고 방성대곡하시며 즉시 조문사(弔問使)를 보내사 예단을 후히 보내시니, 인국(隣國)이 또한 위왕의 훙함을 듣고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며 다 각각 부의(賻儀)를 보내니 불가(不可)승수(勝數)라.
 
244
천자가 위왕의 제삼자 현첨을 봉하여 위왕을 삼으시고, 종사를 이으라 하시니 현첨가 교지를 받자와 북향 사은하고 인하여 위(位)에 직(職)하니, 임신(壬申) 추 구월 갑자(甲子)라. 문무백관이 모이어 천세를 호창(呼唱)하고 진하를 마치니 왕이 자못 부(父)풍(風) 모습이 있는 고로, 정사를 다스리니 사방의 일이 없고 백성이 태평하더라.
 
 
245
차시 천자가 위왕 현수문이 훙한 후로 그 공을 차마 잊지 못하여 친히 제문을 지으시고 사관을 명하여 위왕묘에 제(祭)하라 하시니, 사관이 달려 위국의 이르매 왕이 맞아 천은을 사례하고 함께 능침(陵寢)의 올라 제하니, 그 제문에 가로되,
 
246
「모년 모월 모일의 송천자(宋天子)는 사신을 보내어 위왕 현공(玄公) 묘하(墓下)에 제하나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왕의 충성이 하늘에 사무침이여. 선제(先帝) 귀히 대접하시도다. 도적이 자주 기병(起兵)함이여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도다. 송실의 위태함을 붙듦이여. 족히 천하를 반분(半分)하리로다. 갑주를 벗은 날이 드묾이여. 그 공이 만고의 희한하도다. 양조(兩朝)를 도아 사직을 안보함이여. 큰 공이 하늘의 닿았도다. 허다 적장을 베임이여. 이름이 사해의 진동하도다. 충회 겸전함이 고금에 드묾이여. 덕택이 만민에 미쳤도다. 왕의 충절이 불변함이여. 맑음이 가을 물결 같도다. 원망을 두지 않음이여. 늙도록 마음이 변치 아니하도다. 여진을 파함이여. 짐의 급함을 구하도다. 갈수록 공이 높음이여. 갚을 바를 알지 못하도다. 짐이 혼암(昏闇)함이 심함이여. 충량(忠亮)을 몰라보도다. 죄상(罪狀)이 무궁함이여. 후회막급(後悔莫及)이로다. 왕의 음성이 귀의 쟁쟁함이여. 지하의 돌아가 만나보기 부끄럽도다. 슬프다. 왕이 한 번 귀천(歸天)하매 어느 날 그 공을 생각하지 않으리오. 이제 짐이 구구(久久)한 정성을 차마 잊지 못하여 일배(一杯) 청주(淸酒)를 표하나니, 위유(慰諭) 영혼(靈魂)은 흠향(歆饗)하라.」
 
247
하였더라.
 
248
읽기를 다하매 왕과 제신이 일시의 통곡하니, 산천초목이 슬퍼하는 듯하더라. 왕이 사관을 위하여 예단을 후히 하고, 천은이 망극함을 못내 일컬으며 멀리 나와 전송하더라.
 
 
249
재설(再說), 천자가 위왕 현수문이 훙한 후로 고굉지신(股肱之臣)을 잃었으매 성심(聖心)이 번뇌(煩惱)하사 매양 변방(邊方)을 근심하시는지라. 조정의 간신이 권세를 잡으매 충량(忠亮)을 모해하며 불의를 일삼으니, 천자가 아무리 총명(聰明)영매(英邁)하시나 어찌 간신의 가리움을 면하리오.
 
250
이때 종실(宗室) 조충이 주하기를,
 
251
「위왕 현수문이 비록 전장의 공이 있으나, 선제의 성신문무(聖神文武)하신 덕택으로 왕위를 주시오니 이는 저에게 과복(過福)하온지라. 혹자(或者) 도적이 있으면 한번 전장에 나아가 전필승(戰必勝)하고 공필취(功必取)함은 군신지리(君臣之理)에 떳떳하옵거늘, 수문이 죽은 후로 또 그 아들로 왕위를 전하게 하시니, 기자(其子) 현첨이 천은이 망극함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뜻이 교앙(驕昂)하여 천자를 업수이 여기고 마음을 외람히 먹은 즉 반드시 제어(制御)할 도리 없사오리니, 복망 폐하는 현첨의 왕작을 거두사 범을 길러 근심됨이 없게 하소서.」
 
252
상이 청파(聽罷)에 묵묵부답이거늘, 차시 조정이 조충의 말이 두려워 그른 줄 알되 부득이 준행(遵行)하더니, 이 날 조충의 주사(奏辭)를 듣고 그저 있지 못하여 그 말이 옳은 줄로 주달하온대, 천자가 양구(良久) 후 가로되,
 
253
「짐이 종사를 보전하기는 현수문 곧 아니면 어찌 하리오. 그러나 선제 심히 사랑하신 바이거늘 이제 그 공을 잊지 아니하고, 기자(其子)가 종사를 잇게 함이 있더니, 경등의 말을 들으니 심히 의심되도다.」
 
254
조충이 또 주하기를,
 
255
「현첨도 또한 용력이 있는 자이라. 제 형 현담을 젓 담은 혐의를 매양 생각하고 황제를 원망하여 설분(雪憤)함을 발(發)보이고자 하나, 제 아비 교훈이 엄숙하므로 미처 못하였더니, 이제는 기부(其父)가 돌아가고 거리낌이 없으매 반드시 그저 있지 아니하오리니, 그 근심됨이 적지 아니 하올지라. 폐하는 익히 생각하소서.」
 
256
상이 이 말을 들으시고 그렇게 여기사 그 힘을 차차 덜고자 하여, 서천 일지(一地)를 도로 바치라 하시고 조서를 내리오시니라.
 
 
257
각설 위왕 현첨이 부왕의 충성을 효칙하여 천은이 융성함을 망극히 여기고 위국을 다스리니, 위국 인민이 풍속의 아름다움을 즐겨 송덕(頌德)하지 않은 이 없더라.
 
258
일일은 위왕이 조회를 파한 후 상의 의지하였더니, 문득 백발노옹이 청려장(靑藜杖)을 집고 난간(欄杆)으로 좇아 방중(房中)의 이르거늘, 왕이 잠깐 보매 기위(奇偉) 엄숙한지라. 황망히 일어나 서로 예(禮)하고 좌(座)를 정하매 왕이 묻기를,
 
259
「존공(尊公)은 어대 계시관대 어찌 이리 오시니까?」
 
260
노옹 이르기를,
 
261
「나는 남악 화산 일광대사라. 그대 부친이 나의 제자가 되어 재조를 배홀 때의 정이 부자간 같아서 팔년을 함께 지내매, 그 정성이 지극함을 탄복하여 혹 어려운 일을 가르침이 있더니, 하늘이 도우사 일신의 영귀함을 누리다가, 세월이 무정하여 어느덧 팔십 향수(享壽)하고 천상에 올라가시니 가장 슬프거니와, 또 그대를 위하여 이를 말이 있기로 왔노라.」
 
262
왕이 노옹의 말을 듣고 다시 일어나 재배하며 이르기를,
 
263
「대인이 선친(先親) 스승이라 하오니 반갑기 측량 없거니와, 무슨 말씀을 이르고자 하시나이까?」
 
264
대사가 이르기를,
 
265
「그대 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거하니, 그 무강한 복록은 비할 데 없거니와 이제 신천자(新天子)가 혼암(昏闇) 무도(無道)하여 간신이 그릇하는 일을 신청(信聽)하니 기세(氣勢) 부장(不長)이라. 그대의 충량(忠亮)을 알지 못하고 크게 의심을 발하여 왕작을 거두고자 하시리니, 만일 위태한 일이 있거든 그대 부왕의 가졌던 단저가 있으리니, 그 저는 곧 당초 석참정을 주어 그대 부친에게 전한 바이라. 이를 가져다가 내어 불면 위태함이 없으리니 그대는 명심불망(銘心不忘)하라.」
 
266
하고 또 소매로부터 환약(丸藥) 일개를 내어 주며 이르기를,
 
267
「이 약 이름은 회생단(回生丹)이니 천자의 환우(患憂) 계시거든 이 약을 쓰라.」
 
268
하고 인하여 하직하고 가거늘, 왕이 신기히 여겨 다시 말을 묻고자 하다가 홀연 계하(階下)에 학의 소리로 놀라 깨어나니 침상(沈床) 일몽(一夢)이라. 왕이 정신을 차려 자리를 보니 환약이 놓였거늘, 심중에 의혹하여 집어 간수하고 즉시 좌승상 석침을 명초(命招)하여 몽중 설화를 이르며, 부왕의 가졌던 저를 내어 보고 탄식함을 마지 아니 하더라.
 
 
269
수월이 지난 후 홀연 천사(天使)가 이르렀다 하거늘, 왕이 맞아 사례하온대 사관 이르기를,
 
270
「천자가 왕의 지방(地方)이 좁고 길이 멂을 염려하사 먼저 서천 일지(一地)를 환수하라 하시고, 왕을 보지 못함을 한(恨)하사 특별이 사관을 보내시며 함께 올라옴을 기다리시더이다.」
 
271
하고 조서를 들이거늘 왕이 조서를 보고 북향 사배하며 의아함을 마지아니하여 이르기를,
 
272
「망극한 황은이 이처럼 미쳤으니 어찌 황공 송률(悚慄)치 않으리오.」
 
273
하고 함께 발행할새, 좌승상 석침을 데리고 황성으로 향하니라. 여러 날 만에 황성의 다다르니, 홀연 수천 군마가 내달아 위왕을 에워싸며 무수히 핍박(逼迫)하거늘, 위왕이 크게 놀라 문득 일광대사의 가르친 일을 생각하고 단저를 내어 부니 소리가 심히 처량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인도하는지라.
 
274
여러 군사가 일시에 흩어지니, 이는 종실 조충이 본디 외람한 뜻을 두었으나 매양 위왕 부자를 꺼리더니 이제 비록 현수문은 죽었으나 기자(其子) 현첨을 시기하여 상께 참소(讒訴)하더니, 이날 가만히 위왕 현첨을 잡아 없이 하고자 하다가 홀연 저 소리를 듣고 스스로 마음이 풀어진 바가 되니, 천도(天道)의 무심치 않음을 가히 알지라.
 
275
위왕이 그 급한 화를 면하고 바로 궐내에 들어가 탑전에 복지하오니, 상이 보시고 일변 반기시며 일변 부끄러워 가로되,
 
276
「경을 차마 잊지 못하여 가까이 두고자 함이러니, 이제 짐의 몸이 불평(不平)하여 말을 이르지 못하노라.」
 
277
하시고 도로 용상(龍床)에 누어 혼절하시니 급하심이 시각에 있는 지라. 만조가 황황(遑遑) 망조(亡兆)하고, 위왕이 또한 상 위급하심을 크게 놀라 문득 환약을 생각하고 낭중(囊中)으로부터 내어 시신(侍臣)을 주며 이르기를,
 
278
「이 약이 비록 좋지 못하나 응당 효험(效驗)이 있을 듯하니, 갈아 씀이 어떠하뇨?」
 
279
만조가 다 황황한 가운데 혹 다행히 여기며 혹 의심도 내니 있더니, 곁에 조충이 모셨다가 이를 보고 생각하되,
 
280
‘만일 상이 회춘하지 못할진대 성사(成事)할 조각을 만남이니 어찌 다행치 않으리오.’
 
281
하고 급히 받아 시녀로 하여금 갈아 쓰게 하였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호흡을 능히 통하시고 또 정신이 씩씩하사 오히려 전보다 심사가 황홀하신지라. 급히 위왕을 인견(引見)하사 이르기를,
 
282
「짐이 아까 혼절하였을 때에 한 도관이 이르되, ‘송천자가 충량지신(忠亮之臣)을 몰라보고 난신적자(亂臣賊子)를 가까이 하는 죄로 오늘 문죄(問罪)하고자 하였더니, 송국의 위왕 현첨의 충성이 지극하기로 환약을 주어 구하라.’ 하였으니 급히 나가라 하거늘, 깨어 생각하니 경이 무슨 약으로 짐의 급한 병을 구하뇨.」
 
283
왕이 주하기를,
 
284
「마침 환약이 있사와 다행히 용체(龍體)의 환우가 급하심을 구하오나 이는 다 폐하의 성덕이로소이다.」
 
285
상이 희한히 여겨 가로되,
 
286
「경의 부친이 충효 지극하여 선제와 짐을 도운 공이 태산이 오히려 가벼웁고 하해(河海) 오히려 얕은지라. 그 갚을 바를 알 못하더니, 기자(其子) 경이 또 충효 쌍전(雙全)하여 파적(破敵)한 공은 이를 것도 없고, 선약을 얻어 짐의 죽을 병을 살려내니 만고의 없는 일대 충신이라. 무엇스로 그 공을 갚으리오.」
 
287
하시고 좌우를 돌아보시니 조충 등 팔십여 인이 다 간신이라. 상이 그 환약을 진어(進御)하신 후로 흐리던 정신이 맑아지고 어두운 마음이 온전하여 누구는 그르며 누구는 옳음을 판단하시니 이러므로 자연 천하가 대치(大治)하더라.
 
 
288
이날 위왕이 본국의 돌아감을 주하고 사은 퇴조(退朝)하온대, 상이 위로하며 이르기를,
 
289
「짐이 망령되어 경에게 사신을 보내어 서토(西土)를 들이라 하였더니, 이제 경을 만난 후로 짐의 그릇한 일을 황연(晃然)히 깨달았으니 경은 의심치 말고 안심 치국(治國)하라.」
 
290
하시고, 조서를 거두시며 금은 채단을 많이 상사하시니, 위왕이 천은을 사례하고 석침과 함께 본국의 돌아가 여러 대군을 모아 형제 서로 천자의 하시던 일을 이르며 일광대사의 기이한 일을 일컫더라.
 
291
일일은 좌승상 석침이 주하기를,
 
292
「신이 선왕의 후은을 입사와 벼슬이 상위(相位)에 거하오니 은혜 망극하온지라. 오래 부친 산소의 다녀오지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전하는 수삭(數朔) 말미를 주시면 다녀올까 하나이다.」
 
293
왕이 이 말을 듣고 희허(喜許) 탄하며 이르기를,
 
294
「선왕이 매양 석참정 산소에 자주 친행(親行)하심을 과인이 잊지 아니하였으나, 그 사이 삼년 상을 지내고 또 천자의 명초하심을 인하여 자연이 잊은 모양 같더니, 이제 승상의 말을 들으니 과인도 선왕의 하시던 일을 효칙하여 함께 나아가리라.」
 
295
하고 즉시 발생하여 석참정 산소의 가 정성으로 제하고 돌아와 정사를 다스리니 위국이 태평하여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더라.
296
세월이 여류하여 위왕의 나이 사십이 되매 삼자 일녀를 두고, 여러 형제 다 각각 자녀를 많이 두어 영총(榮寵)이 무궁하니 천하의 이런 복록이 어디 있으리오. 대대로 충신(忠臣) 열사(烈士)가 계계승승(繼繼承承)하더라.
297
천자가 또한 위왕 부자의 대공을 잊지 아니하시고, 그 화상(畫像)을 그려 기린각(麒麟閣)에 걸고 단서(丹書) 칠 권을 만들어 만고충신이라 하사 사적을 기록하시고 종묘의 감(鑑)하시니라.
【원문】현수문전 권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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