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월 십삼일, 봉천행 밤차 이등실에는 신랑 신부의 일행이 탔다. 신랑은 갈걍갈걍한 키에 미목이 청수하나 삼십이 넘은 노신랑, 신부는 백설 같은 너울로 부끄러운 듯이 슬쩍 얼굴을 가리어 나이를 분명히 알 길이 없으나 그 아른아른한 뺨과 앳된 입모습으로 보아 이십 안팎밖에 되지 않았을 듯.
2
신부 쪽으로 처형이 되는지, 신랑 쪽으로 누이가 되는지 스물 너덧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부인 하나가 후행 겸 하님 겸 따랐을 뿐이다. 흰 숙고사 겹저고리에 다듬은 모시 치마, 그리고 흰 고무신, 수수하나마 깨끗하게 차린 그 부인은 어데를 보든지 틀에 박은 구식 가정부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3
객지에서 쓸쓸하게 혼례식을 지냈음이리라. 전송 나온 사람 하나 없었다.
4
아니다.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 여행을 떠나는 길인지, 또는 혼례식을 치르러 가는 길인지, 그것조차 분명치 않다. 침대에도 들지 않고 신랑 신부가 곁눈질 한번 않고 시침을 따는 것을 보면 결혼 전인지도 모르리라.
5
이 일행은 앉은 고 자리에서 꼬박이 밤을 세우고 안동현에 대어도 나리지 않았다. 그 이튿날 밤에 잠깐 봉천에 나렸으나 그것은 천진행 기차를 바꾸어 타기 위함이었다. 천진에 나리자 신랑은 두 여자를 데리고 정거장 근처 객잔(客棧)에 들어 하롯밤을 쉬고, 그 이튿날 정거장에 나오는 길에 신랑은 일본 돈을 따양으로 바꾸고, 여자 청복 두 벌을 사고 마침 지나치는 일 자신문 천진 신문을 한 부를 사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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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시 총총히 남경행을 바꾸어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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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움직이자 그들은 완전히 마음을 놓은 모양이었다. 중국 기차 이동은 휑덩그렁하게 비었다.
8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꾸민 신랑과 신부 놀음을 구만두고 말짱하게 청복을 갈아입었다. 신랑만은 그대로 모닝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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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과 신부는 물을 것 없이 상열과 은주, 후행은 명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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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을 갈아입으매 두 여자의 기분은 새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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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으로 아모리 가도 왜 이리 지리펀펀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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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는 멍하게 차창을 내다보다가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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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이 질펀한 광야가 끝나는 곳에 새로운 희망의 나라가 있을 것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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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가 맞장구를 친다. 두 여자의 눈은 새 희망에 번쩍인다. 상열은 생각난 듯이 신문을 펴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별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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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명화와 은주도 신문 위에 고개를 디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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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도 놀라 부르짖었다. 상열의 떨리는 손가락은 다음과 같은 간략한 기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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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전보」 경성 ˟˟서에서는 지난 12일 밤 조선인 청년 한 명을 검거하여 취조 중, 그 청년은 어데 감추고 있었던지 폭탄 한 개를 깨물어 굉연한 음향과 함께 현장에서 즉사하였는데, 취조 받은 피의자가 폭탄을 깨물고 자살하기는 전무후무한 사실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그 청년은 상해 방면에서 잠입한 듯한 모라고 하나 취조가 진행되기 전에 죽어 버렸으므로 공범 관계라든지, 계통 기타는 전연 알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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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침통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며 아모 말이 없었다. 이윽고 상열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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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에 지글지글 타는 인물. 한 시라도 열정의 대상이 없고는 견디지 못하는 인물. 그런 종류의 사람은 태양에 비기면, 인생의 적도선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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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지가 자욱히 앉은 차창엔 지평선 속에서 둥실둥실 떠오르는 대륙의 새빨간 태양이 숭엄한 얼굴을 비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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