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관의 머므다 날이 으 경산(景山)의 나아가 삼시 곡반(三時哭班)을 참예하니라 산좌라[리]문(山左裏門)을 드러 동편 마조 뵈 곳의 어졔치 지폐(紙幣) 살오 겻 흔 거시 업고 오직 당즁(當中)여 누른 보로 덥허 노흔 거시 이시니 어졔 보던 바의셔 장 젹더라
3
날은 황뎨(皇帝) 나오지 아니코녜부(禮部)샹셰(尙書ㅣ)신여 잔을 드린다 며 진시 뎐(辰時奠)파고 관(內官)이 빈뎐(殯殿) 문으로 나와 슐병을 들고 기우려 지폐 오던 곳으로 니며 슐을 리니 한 모 녜문(禮文)이러라
4
긔 샹셔(紀尙書)의 버금 아이 야흐로홍노시(鴻寺)명찬(鳴贊)벼이라 홍노시(鴻寺) 연녜(燕禮)던 날노브터 내 알 니러 은근 을 뵈고 그 후 곡반(哭班)의 만나면 문득 손을 드러 녜(禮) 나 말을 통치 못지라 다만 아른 톄 이러니 이 날 그 동뇨만쥬사 나흘 리고 댱막(帳幕)을 자 니럿지라 겻 와 안즈 두 다리 버드르쳐 안즈니 대개 이곳 사이 바지 통이 좁게 그러 겨유 다리 용납(容納)지라 안즈랴 면 두 다리 아 쥬져 안즈니 형셰(形勢) 그럴 밧 업지라 이런 고로 캉(炕)의 걸안며 교위(交椅) 노하 안기 쉽게 미러라 므 슈작을 고 시부나 지필(紙筆)이 업지라 다만 져근 쇼반과 찬 보아 나히 알 잇거 차믈(茶水)을 나모가지예 직어 글 라 문답(問答) 내 믄져 뵈야 오 여러 번 만나나 말을 통치 못지라 졍(情)을 발뵈지 못더니 오 놉흔 멍에 굽혀 이곳의 니니 극히 감샤노라긔샹이 답 왈 귀국(貴國)의 문아(文雅)믈 본 모하고져 지난 홍노시(鴻寺)의셔 아담 용의(容儀) 잠간 샹졉(相接)나 말을 셔로 모고 이 다른 와 다른지라 관(館)으로 결을이 업지라 의 경경(耿耿)믈 이긔지 못여 이리로 자 니로미로 막차(幕次)의 진의(盡意)토록 슈작을 길이 업이 (恨) 배라 지라 쇼반이 젹어 두어 쥴을 면 반이 다 졋지라긔이 쥬먹의 여 쇼반을 믄지니 숀이 더러오 지 못고 오 이리 만나 녜모(禮貌) 오지 못니 웃지 말나 며 날을 대인(大人)이라 일지라 그 녜(禮待) 을 알거시오 그 거동이 혹 녜모 일허 우음이 될가 념녀 모양이러라
5
내 무로 외국 사이 됴뎡(朝廷) 일의 참예야 알냐 기 블긴(不緊)거니와 황샹 츈츄(皇上春秋)와 황(皇子ㅣ)몃 위(位)며 황형졔(皇兄弟) 몃치시믈 아지 못니 엇지 궁겁지 아니리오긔이 답왈 황샹 츈츄 십 일셰오 황 다만 위오 야흐로 십셰니만(滿洲)녯각노(閣老)아리곳(阿里昆)의 손녀라 혼인을 뎡야 올 녜(行禮)려 더니 태샹황(太上皇) 상(喪事) 만나니 짐쟉건대 긔년(期年) 후의나 이십 칠월 후 기려 실 거시오아리곤(阿里昆)은 곳 츌쟝입샹(出將入相)던 사이라 임의 작고(作故)엿고 그 아이 쟉위(爵位) 놉핫다 며 황형(皇兄)은 이 인이오 황뎨(皇弟) 일 인이며 태상황(太上皇)의 손 열 두 사이오 증손(曾孫)이 네히오 현손(玄孫)이 나히니 태상황은 진짓 녜부터 드믄 텬(天子ㅣ)라 일리라 니 이 태상황이 스로 고희텬(古稀天子ㅣ)라 됴셔(圖書) 삭인 고로 니른 말이러라
6
내 문왈 만만슈셩졀(萬萬壽聖節) 방믈(方物)을 도로 쥬라 신황지(新皇旨) 잇 고로 우리 쇼방 졍으로녜부(禮部)의 졍문(呈文)야 밧기 쳥엿더니 그 혹 드럿냐긔왈 어졔 임의 엿왓지라
7
삼 일 후의 맛당이 발낙(發落)이 잇실 거시오 신의 이리 미 곳 맛당 일이니 반시 허시리라 오 귀국의 대국이복(內服)다르미 업지라 됴뎡(朝廷)의셔 녜(禮待)미 젼브터 각별니라
8
오 귀국의 문 만흔지라 대국 션와 친(親)하여 혹 년을 치지 아니니 내 대인과 사괴엿지라 오느,ㄹ 관의 도라간 후 등하(燈下)의 슈(首) 시(詩) 초(抄)여 기치믈 어든 즉 엇지 빗나지 아니 리오 내 공경여 회답리라 내 오 글을 못고 시(詩) 지을 쥴을 모니 셩한 을 맛초기 어렵도다 니긔이 구지 쳥여 왈 고인(故人)의 겸(謙辭ㅣ)과도다
9
내 본 동국(東國)의 문쟝(文章)을 닉이 드럿고 대인의 셩화(聲華) 루러러 오형(荊州) 아라 소원(所願)을 일웟니 엇지 시(詩) 지어 이 교계(交契) 표(表)믈 앗기리오 며 내 더옥 양 져의 쳥미 더윽 졀지라 내 오 졸 글귀 더러오믈 닷토와 대방(大方)의 무음을 면치 못려니와 돗타온 을 져리기 어려온지라 일간(日間)의 맛당이 히 피믈 더러이리다 니 치샤더라
10
긔이 가지 고고 오 명일은 맛당이 지필(紙筆)을 가지고 틈을 어더 다시 모히기 도모이다 고 즉시 니러 가니라 이의 다른 슈작은 만흐나 다 긔록지 못노라 신시(申時) 반녈의 됴(朝士ㅣ) 내 셧 곳의 니러 녜(禮)고 무 말을 나 내 젼혀 아라듯지 못지라 이도 반녈의셔 여러 번 만나 얼골이 닉을 이오 슈작이 업더니 이 날 니러 인니 괴기 구(求)미러라 셩(姓)을 무니 왕가(王哥)로라 며 벼을 무니호부(戶部)낭즁(郎中)이러라
11
관의 도라오니 이 날 여러 사들이슝문문(崇文門)밧 나가법장(法藏寺)구경고 도라왓지라 셰히 뎐 말을 드니슝문문밧긔 낙역(絡繹) 거마(車馬)와 번셩(繁盛) 져졍양문(正陽門)밧긔 밋지 못나 사이 길의 메이고 물홰(物貨ㅣ) 득지라 문밧긔 나 션(生鮮) 파 져 이시니 구유의 믈을 븟고 고기 워시 리 치며 반나마 사라시니 금닌어(金鱗魚) 부어와 굴근 니여러라 남편 길 여 보 동안의 온갓 긔완(奇玩)을 븬틈 업시 버려시 산호(珊瑚) 보셕(寶石) 진쥬(眞珠) 구 마류(瑪瑙)로 근 노리개와 그릇슬 노하시니 그 즁의 문방지믈(文房之物)은화류필통(樺榴筆筒)이며 침향괴셕(沈香怪石)과 연산(硯床)과 별오와 연젹(硯滴)이며오동향노(烏銅香爐)와슈압향노(睡鴨香爐)와 도셔(圖書) 튼 거시 다 이시니 셩냥(成樣)이 공교(工巧)고 이밧 평의 보지 못던 것과 일홈 못든던 거시 무궁(無窮)니 이로 형상(形像)여 니지 못며 그 나마태샹노군(太上老君)의 샹(像)과 온갓 션인(仙人)의 형상을 라시 져근 옥동(玉童子)만 거 문방(文房)의 가지로 노회시니 졔작(製作)이 긔특여 인믈(人物)이 살앗 듯더라
12
여러 가지 버린 거시 각각 제 뉴(類) 븐변(分辨)여 극히 졍졔 아녀 보암즉며 눈이 바고 현란(絢爛)니 아모 거신 쥴 지젹(指摘)여 보지 못너라
13
곳 푸(舖子)의 드러가니 슈션화(水仙花)와 영츈화(映春花) 화(梅花) 삼도화(三色桃花) 분도화(粉桃花) 홍도화(紅桃花) 월계계(月季四季) 톄당화(棣棠花) 당화(海棠花) 다 치 픠고 각 란초(蘭草)종녀(棕櫚)동(冬栢) 치(梔子) 각각 봄을 닷토니 븍방셜한(北方雪寒)의 긔이 구경이러라
14
집을 움 속치 깁히 글고 셕탄(石炭)을 댱 픠워 뎌은 긔운이 잇게 고 믈을 년속(連續)히 쥬어 화(百花) 픠게 다 며 국화(菊花) 즈니 쥬인이 니 져 국화 아모리 픠오랴 여도 홀노 아니 픠니 일 업니라 더라
15
곳의 큰 그 노코 오 고시 담아 노코 파되 그 겻 뉴리병을 하시니 병을 사 고기 담아 가 쟤 무슈더라
16
곳을 보니 뫼새(山禽)와 들새(野鳥) 모도아 우리의 녓코 파니 그 즁 일홈 모 새 다 가지나 니 숫 토되 머리와 리 흰 새오 새 몸은 숫 토되 머리와 리 암 갓여 심히 젹고 새 가치 트되 빗치 희고 두 개의 아롱진 븕은 문이 이시니 극히 고은지라 이 셕계(石鷄)라 새오 새 몸이 누러 금빗 고 브으리 븕고 발이 븕으니 곳 뮈(鸚鵡l)라 사을 보고 별노 지져괴더라
17
길 푸 안흐로 문(門)을 지나며 묘당(廟堂)이 이시니 관왕소상(關王塑像)을 봉안(奉安)지라 갑옷 닙고 두 손으로 무릅흘 집고 동(東)을 향여 보며 므 말을 모양이라 눈의 노긔(怒氣) 이셔 눈을 부릅고 동벽(東壁) 아 소샹(塑像)여 안쳐시니 얼골을 밧그로 향야 항복(降伏)지 아니 모양이러라
18
이 옷(吳)나라 쟝슈(將帥) 조빈(曹彬)이니 젹토마(赤ꟙ馬) 도적(盜賊)다가 잡히인 모양이러라
19
사은조빈의 뒤희셔 노흘 븟들고 사은 쳘퇴(鐵椎)로 치려 거동이오 좌우의 뫼신 신장(神將)이 다 우러러관왕(關王) 명(命)을 바다조빈조빈의게 을 두어시며 젹토마 벽 밋셔관왕을 츼미러 보며 갈기 흔들고 눈을 부릆든 거동이로 보 사랏 니 뎐 말이슈(隨)나라젹의 든 라 더라
20
관왕묘셔(西)흐로 반 니(半里) 가셔 약왕(藥王)의 뫼(廟) 이시니텬황시(天皇氏)·디황시(地皇氏)· 인황시(人皇氏)·헌원시(軒轅氏)·복희시(伏羲氏)·신농시(神農氏)여 위(位) 쥬벽(主壁)여 좌우(左右)로 의약(醫藥)의 공 잇 사 십여 인을 그러 안쳐시 각각 알 패(牌) 세오고 셩(姓字) 더라
21
법장(法藏寺)의 다니 이 졀은 곳 쳔단(天壇)을 지나 이시니 텬단은 황뎨 하 졔(祭) 지내 단(壇)이라 졀 문을 드러가 졀 둘이 잇고 둘 뎐(殿)을 지내이 그 뒤 탑이 이셔 놉희 십댱이오 팔면(八面)의 닐곱 층(層)이러라
22
첫 층 남편(南便)의 무지게 문이 이시니 놉희 사이 드러갈 만지라 이 문을 드러 탑 속을 올나 가게 엿더라
23
문을 드러 벽(壁)으로 든 닥다리 올나가니 이 첫 층(層)이오 올나가다가 닥다리 첫 층과 치 노핫지라 이 둘 층이라 이치 도라 오로기 니롭 번을 니 웃층의올랏더라
24
처음의 드러갈 제 그 속이 어둡더니 닥다리 그친 곳마다 팔면으로 창을 내여 밧글 보게 고 창 낸 곳마다 안벽을 굼을 파고 부쳐 안치고 알 향노(香爐)와 등잔을 노핫더라
25
샹원(上元) 밤의 탑 속의 등불을 다 혀고 즁드리 풍뉴(風流)고 올나가면 텬샹(天上) 트여 뵌다 더라
26
장 웃층의셔 창을 내미러 보니 셔편 텬단(天壇)과 북편 황셩(皇城) 안이 다 구버뵈더라
27
탑 속의 졔명(題名) 거시 득니 남방(南方) 사의 일홈이 만흐며김노가(金老稼齋)홍담헌(洪湛軒)졔명(題名) 곳이 잇더라
28
뎐(殿) 압 의 녯 비(碑) 무슈니 이로 볼 길이 업지라대명(大明)홍치(弘治) 년의 세운 라경태(景泰) 이년신미(辛未)의 세온 비 이시니 이 탐은 홍치 년가늬 무은 거시러라 졀 마즌 편의 태양궁(太陽宮)이란묘당(廟堂)이 이시니 여러 뎐이라 압편의 안니 미셩군(紫微星君)이오 셔편은 태양셩군(太陽星君)이오 동은 태을셩군(太乙星君)이오 뒤편은 텬션군(天仙君) 셩모낭낭(聖母娘娘)의소샹(塑像)이라 더라
29
니광직이 오 부어 사왓다 거 가져오라 여 보니 병을 면이 둥그럿케 글고 가온대 치 남즈기 나모 불희치 세워시니 고기 그를 의지여 셔로 라 리쳐 도라 지라 고기 다슬 너허시 둘은 빗치 븕기 쥬홍(朱紅) 칠 것과 니 긔이지라 통쥬강(通州江)의셔 건진다 더라
30
내 캉(炕)의 잠간 랏다가 도로 내여 쥬니라 이 젼은 신이 갓 화초분(花草盆)을 드려다가 븐다 슈역(首譯)이 은(銀)이 든다 고로 보지 아니니라
32
관의 머므다 날이 으경산(景山)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 진시예 반녈을 일우 황뎨인교 [타]고신무문으로 초차경산남편으로 말암아 나아오니 빈뎐(殯殿)의 나아가 황뎨 졀 젼일과 다미 업더라
33
오후의긔(紀生)이 그 족하 사을 리고 왓시니 년긔(年紀) 이십오뉵이오 벼을 무니 픔슈(品數) 오품이나 아직 직임(職任)이 업니 황뎨 인견(引見)신 후 고졍(考定)야 다 더라
34
대개 대국 사 법이 번 인견 후의 벼을 시기니 샹의 질(子姪)은 부형(父兄)의 음(蔭)으로 픔슈 노프나 인견기 젼은 벼이 업니 아국통덕낭(通德郞)과사과(司果)튼가 시부더라
35
긔생이 지필을 가져 왓지라 내 무로 안항(雁行)이 몃치니 뇨긔왈 삼형뎨로 형(伯兄)은 작고(作故)고 즁형(仲兄)은 야흐로강셔지현(江西知縣)이라 그 족해 곳지현(知縣)의 아이라 더라
36
긔의 슉질(叔姪)이 얼골이 심히 박약(薄弱)고 문필(文筆)이 변변치 못니 그 아븨게 비기 여러 층이 츄락(墜落)다 너라
37
두어 말을 슈작 통관(通官)이 니러 신시(申時) 밋첫다 거긔이 허리로셔문시종(問時鐘)으로 내여 고동을 이고 보더니 거의 되엿다 고 니러셜 내 다시 만나기 무니 막(幕次)로 보자 나가니통관이 오 오은셔안문(西安門)으로 조 야태지(太液池)구경미 해롭지 아니타 거 됴타 고 슐위 돌녀 오라 니라
38
신시 곡반을 파 후 셔편으로 조차 나올 슈목(樹木)이 쟝 무밀(茂密)고 그즁 측(側柏)이 만터라 오십 보 여 동남으로 도라보니경산편이 분명이 뵈고 산 우 지은 집이 뵈니 팔면(八面) 집의 다 발을 드리오고 금벽(金碧)이 찬란니 이로 형용치 못러라 븍편으로 두 패뤼(牌樓ㅣ) 이시니 편은 텬승무역 네 고 편은 구식지승 네 시며 쟝원(牆垣)이 빗나고 패루 안흐로 다 슈문(水門)으로 내여시니 그 안흔 무묘당(廟堂)인가 시브더라
39
패루 지나 슈십 보 니 븍으로 긴 골이 이시니역관이 오 그 안희 무(鸚鵡)와 공쟉(孔雀)이 잇다 드러가 보지 못니라
40
서편 문(西便門)의 니라니 이 산우리문(山右裏門)이라 산좌리문(山左裏門)으로 졍히 샹여시니 대개 이 안히 면이 반고 댱광(長廣)이 각 쳔여 뵈될 듯고 동셔남븍으로 별노 담을 하 막아시니경산은 남편으로 치우쳐 잇고쥬루각(朱樓彩閣)이 북편으로 여러 곳이 은영(隱映)여 이시 남으로 문을 내여신무문(神武門)과 자(垓字) 리 격(隔)여시니 극히 심엄(深嚴) 곳이러라
41
문을 나 져기 더니 남향(南向)여 큰 궁뎐(宮殿)이 잇고 알 삼면으로 뤼(牌樓ㅣ) 이시니 그 안히 심히 널너 면이
42
각 슈 뵈 될지라 이태극뎐(太極殿)이라 더라
43
가지로 동(同行) 쟤 만흐며 나마승(喇嘛僧) 사이 라 오거 마뒤(馬頭ㅣ) 무로 어 잇뇨 니탑(白塔寺)즁이로라 지라탑구경을 쳥니 쾌히 허나 곡반으로 조차 승긔[지](勝地)의 구경가미 톄면의 불가지라 로 태극뎐앏흐로 지나니 슈뤼 령엿거 슈뤼의 안니 예셔브터 큰 믈이 뵈되 너븨 오뉵십 보의 지나니 이 곳 태(太液)이라 좌우의 셕츅(石築)이 극히 졍졔(整齊)고 믈 가온대 큰 돌다리 건너 노하시 옥(玉)튼 흰 돌노 온갓 물형(物形)을 삭여 좌우 난간의 베플고 다리 두 편의 패루 셰워시니 동편은 옥동(玉蝀) 두 사기고 셔편은 금오(金鼇) 두 삭여시니 븕은 기동과 프른 기왜 믈의 됴요(照耀)더라
44
슈뤼 모라 리의 므니 소견(所見)이 황홀여 비록 텬작(天作)이 아니오 인교(人巧)로 샤치(奢侈) 극진이 여시나 대국 냥을 볼 거시오 텬의 긔구 짐쟉너라
45
믈의 어름이 플녓지라 믈빗치 비록 지 못나 바람의 희미 믈결이 비단고 노 오리 무리 이 츌몰니 은영(隱映) 강호 경치(江湖景致)라 셩시진애(城市塵埃) 가온대 이튼 승 이시믈 짐쟉지 못너라
46
븍편으로 라보니 두편 셕츅(石築) 흐로 동셔븍 삼면의 버들이 쳔여 보 둘너 잇고 버들 안흐로 구누(珠樓)와 비단집(綺閣)이 슈플 이의 은영(隱映)니 이 집이 팔모각(八面閣)도 잇고 뉵모각도 이시며 다 두 층의 오 뉴리 기와 니이고 금으로 쥬져리 여시 놉고 졔되 결지 아니며 눈의 향 바마다 긔묘(奇妙)믈 토고 집마다 오 간식 여 짓고 그 이의 각(行閣)을 지어 셔로 통케 다 믈 흐로 난간으로 두고 창을 내여시니 그림의 일 보지 못 긔관(奇觀)이오 뒤흐로 프른 누각(樓閣)이 곳곳이 은영니 이 언덕의 잇 집이오 그 알프로 션(彩船) 두어 이 여시니 상게 먼지라 그 형상을 분변치 못너라
47
오룡뎡(五龍亭)이 믈 븍편의 잇다 나 어 집인 쥴 지젹지 못고 다만 동븍편으로 다 집이 셔로 니이여시니 이곳이오룡뎡인가 시부며 남편의 믈 가온 각(彩閣)이 이시 먼니셔 보 난간이 믈가의 긴 더라
48
이 집 남편(南便)으로 믈이 아오라이 뵈고궁쟝(宮墻)안희 무슈 누각(樓閣)이 각각 졔양(制樣)이 다니 니로 형샹치 못며 그 즁 웃둑 집이 곳광각(紫光閣)이라 더라
49
리 동븍으로 큰 됴산(造山)이 잇고 쟝 놉흔 봉(峰) 우희 태호셕(太湖石)을 둘너 세오고 그 가온 돌노 부도(浮屠) 그라 셰워시니 그 놉희 십여 댱이오 면으로 쇠슬노 얽어 길게 느리워시며 좌우로 븕은 긧대 이 셰오고 긔 각각 라시 너븨 두어 치 지나가지 못고 기 거의 을닐 듯며 밋 온갓 색(彩色) 비단으로 격지 두어 층층이 그려시니 먼리셔 보 므 왼[의] 쥴 모며 부도 둘너 돌난간을 여시 난간 빗과 부도 빗치 희기 옥 갓더라
50
누각이 층층이 뵈니 이 우희 곳 졀을 짓고 얼[일]홈을탑사(白塔寺)하더라
51
이곳은 대명(大明)젹의 세운 뎡(亭臺)라 일던 곳이니 이졔 잇 집 일홈이근졍뎐(勤政殿)이며풍원(風柵院)이며츄운뎡(秋雲亭)이며초원(楚院)이며님의뎡(臨意亭)이며슈은(垂恩寺)그 나마 여러 집이 각각 일홈이 이시나 적지(的只)이 알 길 업더라
52
믁 속의 년화(蓮花) 득이 심어시니 치 픠면 더윽 긔이너라
53
리 지나 길 좌우로 큰 문이 여시니 남편은 븍화문(北華門)이오 븍편은 대양문(太陽門)이오 그 안히 심히 심슈여 보암더라
54
이리로 조차태지(太液池)남븍을 통가 시부더라
55
이 문을 지나 좌우의 뎐방(廛房)이 극히 번셩며 오뉵 보의 년엿고 뎐방이 진(盡) 큰 문이 이시니셔안문(西安門)이라 더라
56
이 문은 곳외궁쟝(外宮墻)ː셔편문이라 문을 나 남을 향여 큰 길의 다로 놉흔 문뤼(門樓ㅣ) 먼리셔 뵈니션무문(宣武門)이러라
57
년여궁쟝(宮墻)밋트로 발마 올 여러 사이 연쟝을 가지고 길흘 닥가 편편이 그라 흑길의 믈을 려 듯글을 니지 못게 니 셩안 히 심히 검고 바람이 조금 닐면 진애(塵埃) 챵텬(漲天)니 오도 져기 부지라 믈그릇 가져 니음다라 리더라
58
인교오뉵 이 긔 지나 고 인도 쟤(者ㅣ) 셔시며 뒤 츄종(追從) 칠팔 식 되되 다 환쟤(宦者ㅣ)라 인여 등등(等等)니 기리란 말이라 슈 머므로고 셔시니인교안흐로 얼골을 뉴리(琉璃)의 다히고 밧글 보 모양이 다 소복(素服) 부인이라 다 공쥬와 군(郡主)라 지난 후부(副使ㅣ)나 도라보아 오 젼혀 외 쥴을 모니 져거시 말이 되엿냐 더라
59
길 남편의 큰 집이 보이고 밧문이 놉희 칠팔 쟝이 되니 삼층집이오 그 졔되 녑흐로 본 반 모양이라 밧그로 잣바질 니 엇진 졔양(制樣)인지 아지 못너라
60
문 밧긔 회(回子) 사이 여러히 나셔시니 궐의셔 보던 상(像)이라 이곳회관(回子館))이러라
61
아희들이 여러히 나와시 혹 칠팔 셰 삼 셰된 거시며 머리의 말이(抹額) 워시 우희 아국벙거지곡지치 웃둑게 븕은 가족을 라 세웟더라
62
계집 나히 문의 셔시니 얼골 예 계집이로 옷 빗 비단을 좁게 여 닙이 길희 을니고 머리 뒤흐로 하 드리워시니 발 뒤축의 하시며 븕은 거 머리털을 감아 핫고 굴기 팔독만 니 의 너헛가 시브더라
63
삼 층 밧문을 여궁쟝(宮墻)안의 누른 기와집이 이시니 퍽 놉고 젼면(前面)의 살창을 내여 조희로 나시니 이곳 귀비(貴妃) 그 아비 보던 곳인가 시브더라
64
예 지나 패문(牌門)을 지나 쟝안개(長安街ㅣ)란 패뤼(牌樓ㅣ)이시니 활셩 안희 편모흐로 패뤼이시 다댱안개 (長安街ㅣ)라 더라
65
금의위(錦衣衛)아문(衙門)을 지나니 긔문 문 말 목(木柵)을 세워시며 태샹시(太常寺)와형부(刑部)아문을 지나니 아문 졔도금의위와 모양이오사 두어식 문에 나셔시니 직흰 사인가 시브더라
66
대쳥문(大淸門)알플 지나오 하마(下馬) 젼례(前例) 업다 니 괴이더라
69
관의 머므다 날이 으경산(景山)의 나아가 삼시 곡반 참예니라
70
슈일 풍긔(風氣) 장 어즈럽지 아니코 텬일(天日)이 쳥화(靑和)니 봄 의(意思ㅣ) 돈연(頓然)이 나지라 죵일토록 댱막(帳幕) 알플 가리오고 잠잠이 안시니 신긔 심히 피곤더라
71
슈십 일을 궐의셔 날을 보니 대궐 방위와 궁뎐 츼 임의 눈의 닉고 어졔셔안문을 말암아 지내니 궁셩(內宮城) 서·븍·남 삼 편을 다 보아시 오 나올 동편을 셰 피니 우리 보던 곳과 안밧 문의 좌향이 더윽 분명지라 대져븍경(北京)의 긔이 구경이 여러 가지로 궁궐이 읏듬 쟝관이러라
72
임의 본 바와 각 바 다시 긔록노라궁쟝(宮墻)은 십팔이오궁쟝은 뉵 리니외궁쟝은 안밧희 쥬홍 칠이며 누른 기와로 니펴시며궁쟝은 겻텹(堞)을 둘너시니 셩 졔되라궁쟝안히 방졍(方正) 남븍이 길고 동셰 져르니 쥬희 합여 뉵 니라 당즁(當中)여태화뎐(太和殿)이 이시니 곳 황뎨 큰 됴회 밧 집이라 좌우 각은십삼(十三省)과 외국 방믈(方物) 너흔 곳집이오 슈 간월(月臺) 친왕(親王) 각노(閣老)의 됴회 곳이오 아 (牌) 두 쥴노 셰오고 픔슈(品數) 삭여시니 이 만됴쳔관(滿朝千官)과 외국 공(外國貢使)의 됴알(朝謁) 곳이라 월 좌우로 동편은 두어 길영 셰워 시(時刻)을 샹고고 셔편은 두어 길 돌향노 셰워 향을 픠여 노코 월 남편으로 층층이 향노의 열여 쳥동향노 버려시 몸픠 두어 아람이니 솟과 모양이라 이 다 침향을 픠오게 거시오 세 층 셤 우흔 층층이 길 남은 돌을 셰워시며 난간 돌기동은 뇽(龍)을 삭이고 셤 모흐로 도라가며 뇽의 머리 내미러시니 이 니른 바 니뒤(螭頭ㅣ)라 난간을태화뎐좌우로 거 븍으로 버럿고태화문좌우의 각을 인연여 각각 난간을 셰워 좌우로 둘너시니 굉궐(宏傑) 거동과 쟝녀긔샹이 대강 이러하더라
73
두 편 각의 당즁여 두층집이 이시니 동편은톄인각(體仁閣)이오 셔편은흥의각(興義閣)이오우익문(右翼門)은흥의각아 잇고문연각(文淵閣)뒤 놉은 담이 잇고 그 동편 모 문이 이시니 이 경운문(景運門)으로 드러가 문이라희화문(熙和門)은동화문(東華門)과 바로 나고협화문(協華門)은셔화문(西華門)과 바로 나시니동화·셔화두 문은 곳텬안문(天安門)좌우 문이오텬안문은 곳태화문·오문(午門)·단은문(端恩門)밧기니 뎐각과 문댱이 좌위 셔로 고 보쓔(步數)와 원근이 균젹며태화문동셔의 두 협문이 이시니 셔편은졍도문(正道門)이오 동편은 일 지나지 아닌지라 그 일홈을 보지 못고태화뎐좌우 녑 두 문이 이시니 셔편은즁우문(中右門)이오 동편은즁좌문(中左門)이라 이 문안희즁화뎐(中和殿)이 잇고보화뎐(保和殿)좌우 녑 두 문이 이시니 셔편은후우문(後右門)이오 동편은후좌문(後左門)이오 그 뒤흔 곳건쳥궁이라 셔편의늉롱문(凌龍門)이 잇으니우익문븍편의 쥴노 잇고 동편의경운이 이시니좌익문븍편의 쥴노 잇지라건쳥궁동편은봉션뎐(奉先殿)이니 두 이의뉵경궁(毓慶宮)이 잇고황극뎐(皇極殿)셰 집이 동편으로 치우쳐 일(一字)로 잇고봉션뎐뒤영슈궁(靈壽宮)이 이시니 태샹황이 새로 지어 뎐위 후의 왕왕 거쳐던 집이오건쳥궁뒤곤영궁(坤寧宮)이 이시니 이 곳 뎐(內殿)이라황극문동편 담의 낸 문이셕경문(石磬門)이니경운문과 먼리 엿지라 그 두 이예 담으로 져기 내미러황뎨샤뎡(皇帝射程)이란 집이 이시니 곳 우리 댱막을 베플고 날마다 후던 곳이라샤뎡남편으로문화각(文華閣)이 팔십 보 고 셔편으로 삼십 보 동안의좌익문이 담을 격여시니 문연각(文淵閣)이 그 밧기오태화뎐이 동편이라슝졍(崇禎) 갑신(甲申)의쇼현셰(昭顯世子ㅣ)구왕궁뎐(九王宮殿)의 계시샤븍경을 드러와 겨실 문연각의 드러 겨시더라 고 노가일긔(老稼齋日記)예 집이 만히 퇴락(頹落)다 일더니 이졔 보 단쳥(丹靑)이 됴요(照耀)니 근예 즁슈(重修)가 시브더라
74
문화각알 담을 코 문을 내여시니 온문화문(文華門)이오 문 압 슈십 보 못 밋쳐 븍으로 난간 돌리 서히 느러 이시니 그 졔되텬안문 리고 리 븍편 문은 온젼셩문(前星門)이오 문안 여 보의 쳥기와 니운 집이 이시니 곳텬궁(靑宮)이라 니 집이라 이 집 밧그로 뎐각을 세인 것치 누른 빗치라 빗치 쓰이면 녕농(玲瓏)여 기름이 드 더라
75
태지 가을 대궐셔 븍편으로 드려 궁셩을 여 집을 둘러 굴곡히 둘너문연각을 지나협화문녑흐로 드려태화문과오문이로 가로 건너희화문겻흐로 븍히로 휘여문화각뒤흐로 조차젼셩문을 지나 도로 남으로 나아가니 믈길이태화뎐으로 셔 만궁현(彎弓形)이 되게 엿더라
76
믈 너븨 두 간 남즉 두 편 가흐로 다 난간을 고 리마다 난간을 베럿더라
77
동화문부터 시작여셔화문지 궁셩을 둘넛고 집을 년여 지엇시니 궁즁 일용(日用) 백믈(百物)을 다 여긔 너헛시며 아국(我國) 셰례미(歲禮米) 셔편 곳집의 밧치며 그 니마 다태화뎐ː월랑(月廊)의 둔다 더라
78
곳집 문은 다 안편으로 내고 밧편은 다 담이오 밧근 (垓子) 믈이 둘너시니 궁셩과 곳집 이의 기리와 너븨 두 슈 갋갈만 더라
79
대궐 궁뎐이 다대명(大明)젹(的) 치오 궁뎐의 단쳥이 만히 투(頹色)엿지라대명(大明)이후의 다시 고치지 아녓다 니 폐(廢)며 흥(興) (數ㅣ) 가히 슬프더라
80
신후(申後) 관의 도라올옥하슈 못 밋쳐 내 슈 녑흐로인지내되 알 다 재 인도고 뒤 십여 긔 니 위의(威儀) 금즉지라 마두(馬頭)로 여금 죵쟈(從者)려 무라 니 쇼친왕(小親王)이라 니고 만셰야(萬歲爺) 죵형(從兄)이라 더라
81
내 뒤역관(譯官)들이 을 고 셔시 리라 일이 업고 녑흐로 조차 지날 그 얼골을 보니 쟝 셕대(碩大)고 두렷 얼골이며 셩긘 나롯시오 눈츄리의 거믄 마괴 잇고 풍신이 극히 웅즁(雄重)여 뵈더라
82
압히며 뒤희 멘 놈이 홋옷 닙어시 을 흘니고 을 져허 시 나가 마 우히 조금도 요동치 아니코 죵쟤 젹여 로 뭉치여 지어 조니 심히 호대더라
83
옥하슈동편으로 져가 드러가다가 니문(里門)을 드러가니 그 집은화신의 회 군왕(群王)의 집과 개쳔이 격(隔)여 마조 잇지라 긴 담을 가로막아 니문을 내여시니 그 안히 너기 큰 벌 고 남향여 블근 문이 이시 놉흔 집이 조텹(稠疊)여 뵈더라
84
식후(食後)의니광직을 브니 대(大醉)여 누엇다 거 슐 먹은 곡졀(曲折)을 무니치형왈 거번(去番)경인(景仁)과 가지로니운(李雲)을 자 갓실 의 슐을 구지 권(勸) 못 먹노라 양니 극히 흥치(興致) 업셔 지라 오날니광직으로 더브러 갓더니 가히 긔이 못고지라 니너라 거 그 셔로 필답(筆答)며 슐 먹던 말을 대강 니 모힌 션 곳니운과셥등교(攝登喬)와니운의 죵표졔(從表弟)쥬원(周元)과졀강(折江):젼당현(錢唐縣)션한휴(韓休)와산음현(山陰縣)션진연(秦延)다 사과 가지로 모히니한(韓生)은한위공(韓魏公)의 손이라 거 그 셰덕(世德)을 의논다가 한왈한위공은 곳한문공(韓文公)의 방손(傍孫)이라 지라 무러 왈 우리챵녀현(昌黎縣)을 지나 혹 니문공(文公)의 션묘(先墓)잇다 니 이 올흔 말이며문필봉(文筆峰)이 이시며문공이 이 졍명(精明) 긔운을 응(應)여 낫다 말이 이시니 그러냐한왈 우리 듯지 못 말이라문공의 션셰(先世)챵녀현의 사라시나 분(墳墓ㅣ) 업고문공은 이 고을셔 나지 아니여시니 므문필봉을 응여시리오 좌즁의 첫 번 보 션 셩명(姓名)을 무니니운이 각각 셩명과 거쥬(居住) 뵈고쥬원을 쳐 왈 이신·한(申韓)의 슈단(手段)이 이시니 야흐로 공(功)을 일워방셩소윤(邦成小尹)벼을 리라 니 쥬의 얼골이 단졍나 거지(擧止) 부졍여 조 견지 못 거동이라 남방(南方) 긔인(擧人)을 혀 황셩의 니러시 젼(篆字) 잘 며 도셔(圖書) 삭이기 잘니신·한은 곳 녯날 형명(刑名)을 일던 사이라 참각슈단(慘刻手段)이라 닐 고로니이신·한의게 비러 긔롱미오 경계(警戒)미러라셥이 무러 왈 귀국 녁(冊曆) 법이즁국과 냐 답왈 마다 십월의녜부(禮部)의 문(咨文)고 헌셔(憲書) 바다 도라가 국즁의 쥰니 만일 이러치 아니면 텬 졍삭(正朔)을 반포(頒布)다 말이 어이 이시리오 고 인여 왈 그 녁 들믈 므니 반시 히 알음이 잇도다
85
셥이 우어 왈 내 믈을 말이다 아 배 므 이시리오 고 졔인(諸人)인 닐너 왈 이 우리 일 샹고치 못 일이라 고 답지 아니더라
86
이곳은 곳진연(秦延)의 관(客館)이라 셔로 약간 슈쟉(酬作)이 이신 후신이 사을 블너 슐과 음식을 나오라 더니 이윽야 큰 탁의 두어 그보(甫兒)와 각 나믈과 실과와 고기 안쥬 버리고 각각 알 져근 잔을 노흐니 슐을 브어 압압히 놋지라 잇니광직이니운과 셔로 인고 혹 말노 슈작니쥬이 놀나 왈됴션어법(語法)이즁국과 다미 업도다셥이 오 글이 임의 트니 말이 머지 아니지라 말만 어음(語音)이 지 아니 곳이 이시니 셰쇄 슈쟉을 통키 어렵다 더라
87
모힌 즁의셥과니과니광직이 쟝 쥬량(酒量)이 너른지라니광직의 별호(別號)우야(又也)니 져근 잔으로 임의 여러 슌(巡杯) 지난지라 일변(一邊) 지필(紙筆)을 드러 들 통며 잇다감 희(戱諧)할우얘 눈치 잇 말이 만흔지라 슐을 쟝 잘 먹지라니왈우얘슐을 언마나 먹뇨경인왈 쥬량이 장 너나 다만 여러 잔이 못 되여 미친 거동이 만흐리다.우얘왈 그 미치믄 타인(他人)의 미 배 아니라니이 우어 왈 이 사은 첫 번 보 미친 사이로다우얘됴타여 왈완운(阮雲)이 진짓 내 슐 벗이로다셥이 오 엇지관즁(管仲)의 그 리오 괘히 대(大杯) 나오라 니 대개공(孔子)말의관즁의 그시 젹다 시다 고로 슐잔이 젹으믈 비우(比喩)여 큰 잔을 나오란 말이라 드여 압압히 찬완(饌碗)을 노코 득히 브어 먹으니이 슐을 다 마시면 잔을 뒤쳐 여러 사을 뵈여 왈 밋 보라 며 다 먹엇노라 며 다른사을 젼(專)미라치형·경인은 큰 잔을 구지 양고 져근 잔을 압 노하시나 먹지 아니 지라니이 큰 잔을 밧고아 노코우야 도라보아 왈 시쥬(詩酒)의 다 영(令)이 잇니 엇지면 됴흐리오우얘왈금곡의 벌을 조리라신·한의 슈단이 녑 이시니 여금 녕을 케 미 죠토다니이 즉시쥬으로 하여금 슐을 드려치형·경인을 강박니경인왈우얘신·한을 고져 니 우리 무리 가온대 슈단이 이시믈 못 일이라치형왈 법이 라 변니 아지 못게라 그 날을 엇지 쳐치려 뇨 이진이 슐잔 나흘 나오니 그 졔되 쇠로 복셩화 반을 친 모양치 글고 가온대 션인(仙人)을 셰워시 을 드러 슐잔의 못 밋첫지라 손바닥과 발바당의 굼글 두어 잔 미로 통(通)게 여시니 슐을 부어 손바닥의 지나면 슐이 여 머금도 남지 아니고 젹즁(適中)게 브으면 발의 잇 굼그로 지 아니게 여시니 그 공교(工巧) 의(意思ㅣ) 긔이(奇異)며 넘지 거 경계(警戒) 이라 일홈을 누치(漏巵)라 니 잔이란 말이라진이 잔을 드러우야 쥬니그 슐 만이 먹으믈 경계야 뵈 이라니이 드여 벌(罰)을 먹이려 면 이 잔을 드러 쓰지라니이 슐을 마시 번의 다니우얘 누치 가져 번의 마시고 잔을니의 드던로 좌즁(座中)을 뵈야 왈 엇던진이 오 쟝완윤으로 더브러 셔로 먹기 결우고져 냐우얘우어 왈 셔로 즐기기 위미라 오날 모히기 평의 드믄 일이로다 이 좌즁이 임의 엿지라니이우야의 등을 두려 왈우얘호(豪士)로다 나 잡아 흔들며 왈 늙엇다 슈(白鬚)로다 슐 먹 모양을 보고 년여 호방(豪放)을 일로니우얘왈 이곳의 호방 법을 아니 쓰고 어 곳의 호방믈 리오니왈셔령이 시 잘 지라 글졔(題) 명(命)여 지으미 해롭지 아니토다우얘왈 누치로 졔(題) 미 엇더 니왈 운(韻)은 내 내리니경인은 복셩화 도(桃字) 짓고치형은 고(糕字) 짓고우야 임의로 희고셥협은경인과치형이 운을 브로라 거 잔 (杯字) 브대니왈 너모 도다
88
셥이 오완윤은 뉘 운을 쥬리오니왈 나 시 잘 못지라 샹관(上官)으로 쳐(自處)여 좌즁의 모든 시 평논(評論)미 엇더뇨셥이쥬을 도라보고 누치의 슐을 득 브어 먹여 왈 쳬 너모 놉도다 엇지 벌을 양리오 다만 벌을 먹으미 극히 경(輕)지라 도 곳 모도 달나 만일 일우지 못면 필연 큰 벌을 베플니라우야왈신·한이 이시니 벌을 미 오리라니이 우어 왈 벌을 그라 스로 해롭게 미 날을 니미라 나 시 니지 아니고 벌쥬(罰酒) 믄져 노라경인이 우어 왈 벌쥬 다만 세 잔의 그치고 만히 먹기 허치 아니니라
89
니이 쇼왈(笑曰) 여러 번 벌을 범(犯)면 엇지 세 잔의 그치리오 다 대쇼(大笑)고셥이 다시 운을 부니진은 슐 쥰(樽字) 짓고우야와쥬은 잔 치(巵字) 짓고한은 병 호(壺字) 짓기 졍니진왈 시 일우고 슐이 진(盡)면 필경(畢竟)의 챵연(悵然)믈 엇지 리오셥은 죵의 스로 큰 잔을 가져 먹거우얘쇼왈 나 졀노 큰 그 어덧거 형은 스로 구니 이 형의 덕(德)이 나의게 밋지 못미로다셥이 쇼왈 이 므 덕을 의논리오니이 좌즁의 젹은 잔을 먹 사을 보고 우어 왈 그들은 풍되(風度ㅣ) 졸(拙)도다 엇지관즁의 그로 리오 혹 오 검박(儉朴)다 거공오샤 녜(禮) 아지 못다 시니라
90
경인이 쇼왈 내관즁의게 므어 양(辭讓)미 이시리오셥이 쇼왈 그 그 되오미 텬지(天地) 이의 가득니라
91
치형이 쇼왈 군 그 아니니라진왈 크고 쟈그믈 거리게지 아니고 능 그 내 너 허(許)노라우얘왈 나 큰 것도 능히 고 져근 것도 능히 노라쥬이 쇼왈 엇지 대쇼(大小) 의논리오 어즈러음의 밋지 못미 됴토다 니 대개 여러 사의 말이 각각 녯일을 인증(引證)여 잔의 대쇼 비유 말이니 각각 븟 드러 이음다라 말을 일오니 죡히 승(勝事)라 니너라
92
이윽여 여러 사의 시 례로 일우지라우야 졈졈 여 미란지라 임의 큰 잔으로 열다 잔을 먹은지라니왈 어이 졍신이 망망우얘두 귀 다가 더져니을 쥬어 왈 아 그 라 고 글 귀 뵈여 오
93
금일우봉텬하(今日偶逢天下士)[주:오날 우연이 텬하 션 만나니]
94
년댱작몽즁인(百年長作夢中人)[주:일 예 기리 속 사을 지으리로다]
95
좌즁이 보고 오 이 말이 과(過)도다 고 악연(愕然) 의(意思ㅣ) 잇더라
96
슐이 후니·셥은 웃옷과말이 벗고우얘젼립(氈笠)을 버셔 더지고 긔롱(譏弄)과 담(才談)이 셔로 니이여시니 말을 우음이 좌샹의 득더라
97
날이 져믈 슈 어더우야 일니이 와 나와 등을 두리며 호라 더라
98
이치형의 뎐 말노 긔록노라니의 글과셥의 글이 비록 취즁이나 공졍(工程)을 볼지라니의 시의 왈
99
동남빈쥬투분조(東南賓主鬪分曹)[주:니 동남의 손과 쥬인이 홈여 무리 호니]
100
누치원연뎐쥬료(漏巵原緣奠酒醪)[주:잔이 새 거시 슐을 담으믈 인연미로다]
101
혼돈하년샹쟉규(混沌何年傷鑿窺)[주:흔돈은 엄예 굼글 두리기의 샹엿고]
102
헌슈유의부투도(獻壽有意賦鬪桃)[주:현슈 지 이셔 복셩화 더지기 글 지엇도다]
103
통파뉴혈심원이(通波有穴尋源易)[주:믈결을 통 겻 굼근 근원을 기 고]
104
쳔슈운근인노(穿石雲根引脈勞)[주:압을 구 휘 을 인도기 슈고롭더라]
105
나득휴준즁구회(那得携樽重九會)[주:엇지 시러금 슐준을 잇그러 구일 못고지여]
106
뇽샹뎡샹졔고(龍山頂上更題糕)[주:뇽산 니마 우 다시 을 두고 글을 지을고]
108
낙일금준요샹(落日金樽邀上客)[주:낙일의 금준으로 읏듬 손을 마자시니]
109
쥬린홍동긔연(酒鱗紅動綺筵開) [주:슐비이 븕어 움기 비단리 여럿도다]
110
쥬인아욕경쳥합(主人雅欲傾千榼) [주:듀인은 본 일쳔 합을 기우리고져 나]
111
합좌하증진일(闔坐何曾進一盃) [주:합좌 엇지 일즉 잔을 나아시리오]
112
의혈괴졔죵고유(蟻穴潰堤從古有) [주:개암이 언닥 여지미 녜로븟터 잇고]
113
미려셜긔시희(尾閭泄海幾時回) [주:미려 바다흘 게 여 어나 도라오리오]
114
빙교환노쟉(憑敎換取鸕鶿酌) [주:비겨 쳐 노쟉을 밧고아 가져]
115
의화월(醉倚梅花待月來)[주:여 화 의지여 으기 기리도다]
116
그나마 모든 글은 별노 일 거시 업더라
117
쥬부(付子ㅣ) 오니 오됴션신이 이십구일 묘시(卯時)의신무문(神武門)밧긔 니러 황뎨 환궁(還宮)믈 기려 지영(祗迎) 후경산(景山)으로 나아가지 말고광각샹(賞) 쥬 믈건을즁령뎐의 니러 녕슈(領受)라 엿더라
119
관의 머므다 이날은공궤 이십칠일 날이라샹병환이 임의 쾌히 나핫고 지영과 샹 기 위여부(副使)와 가지로 픔(品帶)와 흑단령(黑團領)을 초고 나아가거 나도 로려 더니 여러역관(譯官)이 고왈(告曰) 샹임의 (行次)여 겨시니셔쟝 아니 여도 관계미 업리라 고로 나 드러가지 아니니라
120
샹부관의 도라온 후 드니 황뎨 젼일과 치 대로 말아마경산의 니러 진시 뎐(辰時奠)을 참예(參禮)고신무문으로 조차 올샹부지영더니 황뎨인교(四人轎) 고 신의 지영 곳의 니러 로 도라보고 지내 의복(衣服)은 젼과 치 흰 복이며 시신(侍臣)은 임의 복을 벗고 원됴와 치 관복(官服)을 초와마으락이의샹모·증(鏳子) 븟첫더라 며 황뎨 지날 극히 엄슉(嚴肅)여 좌우의 시위(侍衛) 졔신(諸臣)이 다 신을 젹이 드여 발자최 소 내지 못니 조심믈 가히 짐쟉너라
121
황뎨 지나통관이샹부 인도여셔화문을 드러즁뎡뎐의 니니 이 집은태화뎐셔븍의 잇 집이라 졔되 극히 샤치(奢侈)고즁뎡뎐녑 놉흔 집이 여러 곳이 이시니 기즁 집은보명원각노(普明圓覺樓)다 현판(懸板)을 고 집은우화각(雨花閣)세 현판여시니 현판을 보건대 졀의 법당(法堂)과 가지라 부쳐 위 집인가 시부더라
122
니른바광각(紫光閣)의 잔 고 신을 블너 참예여 샹을 쥬니 근년(近年)의 마다 폐(廢)치 아니턴 젼례(典例)라 이번은 태샹황(太上皇) 상(喪事) 만나 황뎨 녯일을 각고녜부(禮部)로 됴셔(詔書) 리와 오 비록광각잔 아니나 엇지 이젼 쥬던 샹을 폐리오 특별이 신을 블너즁뎡뎐의 니러 샹 쥬던 믈건을 초와 쥬라 니 이 격의예 은젼(恩典)이라일더라
123
녜부관원(禮部官員)이 니러 황뎨 위(位) 셜(排設)고 신을 알 녀샹믈건을 반(頒賜)니 밧기 파(罷) 세 번 며 아홉 번 고두(叩頭)고 즉시 관의 도라왓더라
124
샹의 샹은 금(錦) 세 필(匹)과쟝웅(長雄)세 필과대전팔단(大縳八絲緞)네 필과대하포 (雙)과쇼하포다 과쇼전오단(小縳八絲緞)네 필이니 하포 비단 주머니 일 일홈이러라
125
부의 샹은 금 두 필과쟝웅두 필과대전팔단세 필과쇼전오단세 필과대하포 과쇼하포두 이러라
126
이날 경인치형이 뎡양문(正陽門)밧긔 나갓다가 도라와 니아문(衙門)의 니러통관임(雙任)과니달(李達子) 보니임왈 그 황셩 외예 여러 곳을 구경니 됴셩(都城)셔울과 어더타 뇨 답왈됴션은 쇼국이라 긔방이 좁으니즁국의 엇지 비리오임왈 진실노 그러거니와 우리칙 당여됴션을 나가면남별궁(南別宮)가온 죵일 가도와 거름 흘 나디 못게 고됴션신은븍경을 드러오면 다른 외국의 구경을 허피 아닛 곳을 임의로 니니 엇지 통분(痛憤)치 아니리오 답왈됴션은 져근 나라히라 별노 구경이 업고칙(勅使) 대졉여 곳의 게 미니 엇지 가도다 리오임왈 이젼은 아국(我國)의 문금(門禁)이 엄여 그 (大內) 구경을 임의로 못더니 이졔 그러치 아니니 이 우리 힘이라 젼두(前頭)의 우리됴션을 나가면 그 쳥여 구경을 도모미 엇더뇨 내 웃고 답여 왈 우리됴션의 좀션 놈이라 그 나오나 듯지도 못리니 무 도모미 이시리오 여러통관이 다 웃다 더라
127
푸(鋪子)의 드러가니 궤(櫃) 나흘 노하시 놉픠 쥬쳑(周尺) 두 자 남고 너븨 일 쳑은 더라
128
알 두문을 여니 그 속의 침향(沈香)으로 믜[뫼] 글고 이이 산호(珊瑚)로 든 것도 이시니 형샹(形象)이 산(山臺)노름 더라
129
열쇠 금긔 여허 틀기 각계슈리 여니 그 가온셔 소 나며 온갓 인물과 새 즘과 믈고기 다 음기되 우희 졀 나흘 지어시니 그 속의 즁이 이셔 경쇠 치며 겻 무지게 다리 이시니 사이 노새 고 다리 건너 가 리 우희 쟈근 졀의 즁이 문을 열고 다리로 사 가 양을 보노라 문을 다드락 열락 고 뫼 아 셩문이 이시니 셩 밧그로셔 나히 도라와 셩문의 다면 문을 다 다다가 여러 드리고 든 후 도로 셩문을 닷으니 이리기 여러 슌 도라니고 쟝 아 믈결과 마름플이니 그 가온 큰 쾨에 놀며 편의 됴개 겁질을 버렷거 황새 직 거동이라 번을 틀면 돌기 져즌 담 대 먹을 동안을 도라가다가 그치며 트니 이 셔양국(西洋國) 사이 근 거시라 며 각각 형샹 산호 밀화(蜜花) 금은 침향으로 여시니 갑 치면 만흘너라 더라
130
뉴관(留官)이 오가지 십일이라 일 잇 당여 아직도 날 긔약이 업니 심히 궁겁더라
132
관의 머므다 일젼의긔이 시 구 공졔(公除) 젼(前)은 글을 지어 셔로 왕복미 가치 아닐 듯여 아니고 인여 그 쳥 을 져리면 이국(異國) 사의게 실신(失信)이 될지라 슈(首) 시 일우니 오
133
대됴인량쇽명신(大朝寅亮屬名臣)[주:큰 됴뎡의 도음이 일홈난 신하의 브쳐시니]
134
유아풍뉴뎨일인(儒雅風流第一人)[주:유아와 풍치 뎨일 사이러라]
135
기비영원우숑(奇士蜚英元祐宋)[주:기의영원우숑명(名)을 리믄 나라히요]
136
덕문아븍구진(德門迓福太丘陳)[주:덕문의 븍을 마즈믄의 집이러라]
137
삼시회읍셩사(三時會泣星槎客)[주:삼시의 셩사의 이 모히여 곡엿고]
138
만국번비일어빈(萬國翻悲一馭賓)[주:만국의 번득여 일어의 빈믈 슬허도다]
139
격슈부상유블원(隔水扶桑猶不遠)[주:믈을 격 부샹이 오히려 머지 아니니]
140
여군후인젼인(與君邂逅續前因)[주:그로 더브러 만나니 이젼 인연을 짐쟉놋다]
141
글 아 쥬어 쥴 편지 오 막(幕次)의 두어 번 아담 얼골을 밧드니 족히 아다온 인연을 일지라 다만 날마다 번극(煩劇)여 구 을 다 펴지 못니 갓 경결(耿結) 회푀(懷抱ㅣ) 졀지라 업여 각건대 날이 신명(神明)이 호위여 더윽 븍(福)을 바드리로다 영걸(英傑)이 아답고 평안여 져즈음게 졸(拙) 글귀 굽흐려 나 관의 번요(煩擾)믈 결을치 못여 이졔야 비로소 히 감(鑑)믈 더러이니 다이 히 치고 회답(回答)믈 라노라 긔(行期) 머지 아닌지라 다시 밧드미 인연이 업니 머리 들고 쳠망(瞻望)여 읍읍(悒悒)믈 니긔지 못노라
142
각 화젼지(花箋紙) 이십 복과 필믁(筆墨) 각 다과 쳥심원(淸心元) 삼 환(三丸)과 광졔환(廣濟丸) 이십 환을 아오라 졍셩을 표노라 고 기 운 쥬어긔의 집의 뎐엿더니 이윽고운도라와 고 그 집의 가 뎐코져 니 문의 직흰 사이 니 노얘(老爺) 일이 츌입고 업니 편지 머므고 가라 기의 답쟝을 못 맛타 왓노라 더라
143
이곳 사이쳥심환을 긔이 보로 아지라 환의 셔 돈 은을 쥬고 셔로 (賣買) 반나마 거 거시라 이 곳 사이 이러 쥴을 모지 아니 거즛 거 어더도 오히려 됴히 너기니 그 곡졀(曲折)을 알 길 없지라 혹 니 쳥심환 가온대 오 어을 너흐니 바다 가온대 이셔 쳔년이 되여도 녹지 아니 어름이라 니 텬하의 녹지 아니 어롬이 어 이시리오 만일 신의게 낫 어드면 이거 진짓 거시라 보 어든 시 다이 너기니 므 긔이 효험(效驗)을 보지 고이 더라
144
니운과셥등각각 칠뉼을 지어치형의게 보내엿다 거 그 글을 가져오라 여 보니 셥등의 글의 와시
145
담운미우쇼고(澹雲微雨蕭孤寺)[주:은 구과 져근 비쇼고의]
146
동국풍뉴샹견지(東國風流想見之)[주:동국 사의 풍뉴 각여 보리로다]
147
의셕존은샤직(海外昔存殷社稷)[주:바다 밧긔 녯은나라샤직이 잇고]
148
안즁유도한위의(眼中猶照漢威儀)[주:눈 가온대 오히려한나라위의 보리로다]
149
만니심긔일쥬(萬里心期一杯酒)[주:만 리의 을 쥬의 긔약여시니]
150
긔다별누쇄금치(幾多別淚灑金巵)[주:몃 번이나 니별 눈믈을 금잔의 렷고]
151
상풍오동됴초긔(相風烏動潮初起)[주:바람을 샹보고 가마괴 움기 됴 쳐음으로 밀고]
152
관월사희츈긔[주:을 여 도라오 봄이 스로 도라오도다]
153
이 글 첫 귀 안은 곳쳥음 션(淸陰先生)김샹공이대명말년(末年)의 슈로(水路)로 신을 드러갈등히쇼고 지내다가왕어량(王漁洋)이란 사과 더브러 슈챵(酬唱) 글귀라왕어량이명말(明末) 여러 사의 글귀 모도와 졔목을감구집이라 니 녯 일을 감동단 말이니 이 글이감구집의 드럿 고로 즁국 사이 오외지라쳥초(淸初)의 션의 글의 와시
154
담운미우쇼고(澹雲微雨蕭孤寺)[주:은 구과 져근 비쇼고의]
155
국슈난최팔월시(菊秀蘭崔八月時)[주:국홰 이울고 난최 거져 팔월 러라]
156
이 글귀 쳥음션(淸陰先生)글 안밧 을 모도 첫 귀 삼고 그 아 귀예 와시
157
긔듀됴션신어(記得朝鮮使臣語)[주:됴션신의 말을 긔록여 어덧더니]
158
과연동국능시(果然東國解能詩)[주:과연 동국의 능히 시 쥴을 아더라]
159
이 글노 보건대쳥음션(淸陰先生)의 글귀즁국의 회쟈(膾炙)믈 알 것시오셥등능히 글 을 시니 긔이 일이라 다만 아지 못게라쳥음션(淸陰先生)의 탁연(卓然) 졀의(節儀)셥이 능히 아지 모로리로다
161
쳑셔셩비궤젼(百尺西城斐几前)[주:일 자 셔셩이 빗난 궤 앏히라]
162
여흥긔의달요텬(如虹義氣達遙天)[주:무지게 튼 긔운이 먼 하의 첫도다]
163
운산유반가회(雲山有客攀佳會)[주:운산의 손이 이셔 아단 못고지 밧드렷고]
164
국하인화셕연(海國何人話昔緣)[주:국의 엇던 사이 녯 인연을 말엿고]
165
관셩비잠식엽(雙管聲飛蠶食葉)[주:대의 소 나니 누에 닙흘 먹 고]
166
일노향분압연(一爐香焚鴨生煙)[주: 화로의 향긔 나시니 을이 를 어 내더라]
167
신시시젼님풍금(新詩試展臨風錦)[주:새 시 시험여 바람을 님 비단을 펴시니]
168
인흥니시우연(莫認鴻泥詩偶然) [주:기러기 우연 시 걸니언 쥴노 알지 말나]
169
니운의 편지 이시니 와시 사괴미 외국의 니이고 졍의 과 치 흡족지라 시쥬(詩酒)로 뉴련(流連)여 롸 즐기믈 여러 날을어드니 가히 빈(賓主ㅣ) 동남(東南)의 아다오미 다다 니리로다 챵연(悵然)) 바 나 날 노 믄져 브고 머리 동(東)으로 고져 지라 모히기 젹고 니별이 만흐니 강문통(江文通)의 암연(黯然)히 신긔(神氣) 미 곳 이의 잇도다 바다 하이 묘묘(杳杳)여 후회(後會) 진실노 어려을지라 만일 (使行)이 오믈 인연여 글월을 어드면 운이 시러금 졍셩을 베프러 답지니 엇지 일시의 아다온 모히 아니리오 원 배 이 트니 그 엇더타 뇨 각 이 가의 가득나 필믁(筆墨)의다 배 아니요 오직 바람을 인여 먼 라고 눈믈을 흘릴 이라 말은 다미 잇고 은 궁진(窮盡)미 업니 긴 길의 보즁(保重)기 쳔만 라노라 여시며 운은 계(啓)노라 엿더라
170
원월(元月) 초삼일 이후 신황졔(新皇帝) 졍녕(政令) 긔록 문셔(文書) 샹방으로셔 어더 드럇다 거 비러다가부와 가지로 보니 기즁(其中) 보암 말이 이시오셕난이란 사을 혁직(革職) 됴셔(詔書)의 와시화신(和珅)의 문셔 슈탐(搜探)오셕난의 편지 이시 황고(皇考)의 상(喪事)와 딤의 훼(哀毁)믄 귀(句) 거즌 말은 업고 다만화신을 권여 과히 슬허지 말나 여시니 이 므 심댱(心臟)이오 한인(漢人) 아모의 편지의 젼혀 황고의 상 슬허 말이오 딤의 훼믈 념녀(念慮) 말이니 이 한인이로 오히려 이 거든오셕난은만(滿洲ㅣ)사으로셔 다만화신의 슬허가 졀이 념녀여 그 나라흘 니며 권신(權臣)의게 븟좃 졍샹이 극히 통(駭痛)지라 위션 혁직(革職)라 여시니됴션으로 보건대 한인과 만인(滿人)을 현연히 분간 의 잇시니 다른 곳의 활대(闊大) 규믜 오직 만·한(滿漢)의 이치 간격(間隔)니 아 졍 아니러라 대개 한인과 만인이 가지로 쥬션(周旋) 만인이 쥬인이되고 한인은 손이 되니 우리셔 망(責望) 졍 이러지라 어이 쥬의 졍세 오니지 아니리오 텬하 일통(一統) 지 거의 이 년이 만인이 판연(判然)여 두 나라 니 이바 하이 남븍을 한(限)미러라
172
관의 머므다 슈십여 일을 궐즁왕(闕中往來)의 날을 지고 슈일노부터 비로소 관의 이셔 죵일 문을 닷고 깁히 안기 져기 심심지라샹즁(行中)의노가일긔(老稼齋日記) 가져왓건 내 길희셔부터 권식 비러 보더니 못 다 본 거 어졔 오날 다 보니븍경길희 구경을 진이 믄 타인의 밋 배 아닌 지라 그각산(覺山寺)의셔 혼 밤을 지나고쳔산(天山)을 여러 날 애던 거시 더옥 긔이노구교(蘆溝橋)와셔산(西山)을 구경치 못믈 깁히 한는 배로라 닐시니 신이 되여 비록 구경을 이갓치 고져 나 엇지 못 일이어니와 나 근년의 (使行) 보던 바도 못 본 곳이 만흐니노가로 여금 쳔(千載)의 졸(拙) 사이믈 우리로다
174
관의 머므다 리의 이지 못여셔치형이 드러와셔산(西山)을 가노라 니 이날 새벽브터 눈이 오지라 셜즁(雪中)의 므 구경리오 답왈 임의 뎡 날이오 구경은 셜즁이 더옥 긔이타 고 가니라 식후의 캉 밧긔 건니더니경산반(班次)의셔 말던호부낭즁(戶部郎中)왕낭즁(王郎中)이 니러 의셔 쥬져 더니 밋 나 보고 희미히 웃고 드러와 읍(揖)지라 내 손을 드러 녜모(禮貌) 일오고 믄져 댱(堂)의 오라 니 이곳 손을 맛 법이 손이 믄져 오고 쥬인이 뒤흘 로지라왕냥즁이 져기 양다가 압셔 캉의 오더라
175
좌(座) 뎡 므 두어 말이 이시 귀졀을 아라듯지 못지라 드여니광직을 블너 말을 통려 더니왕냥즁이 오 구챠히 남의 입을 비 거시 필믁을 드러 통졍(通情) 니만 지 못다 여 내 조희와 필믁을 초와 노흐니왕냥즁이 믄져 므러 오 내 일 귀국(貴國) 공(貢使)와 여러 번 슈쟉엿지라 일경산반의 우러러 각 졍셩을 펴지 못니 오히려 경경(耿耿) 회푀 졀도다 내 오 셜즁의 굽흐려 님믈 어드니 깁히 두터온 들 치샤노라
176
왕냥즁왈 귀국의 인물 풍아(風雅)믈 오 흠앙(欽仰)지라 특별이 니러 밧드노라 내 오 말이 임의 통치 못고 글노 들 기 어려오니 이거시 배로다 대답여 왈 들 모도와 마을 짐쟉미 가니라
177
내 이곳 법으로 차 나와 졉니 마셔 오 이동파(東坡)의 니른바 쾌히 황양셜을 마시미로다 내 오 이 무 됴흔 차라 리오 내 본 병이 이셔 곽향(藿香)을 약의 너허 먹더니근년의 됴흔 곽향을 어들 길이 업니 므 연괴뇨왼[왕]낭즁이 오 이젼은 약(藥材) 젼혀 산즁의셔 어더 지라 약녁(藥力)이 잇더니 근 곽향 튼 초(草材) 니지 말고 곳 복녕(茯笭)도 집의 뭇엇던 거시니 엇지 약녁을 라리오 내 오 황셩의 능 의원이 이셔 능히 다리기 어려온 병을 고치냐 답왈 요이 업 아니라 젼브터 듯지 못엿노라 더라
178
내 의복을 쳐 오 이 다대명젹 졔되(制度ㅣ)냐 그 셔믈 엇고져 노라 내 오 일신(一身)의 닙은 거시대명졔되 아닌 거시 업고 혹 시쇽 졔되(時俗制度ㅣ) 이시나 아국 하쳔(下賤)이 닙을 이라 사모관(紗帽冠帶) 본즁국졔되오 금관(金冠)과 됴복(朝服)이 이시니 금으로 근 관이오 븕은 관복(官服)이며 옥을 시니 이곳 난셩홰홰(鸞聲噦噦) 니미니라 갓슬 뭇거 내 오 이송나라림쳔의 샹 던 거시니 일홈을 곡용닙(曲容笠이)라 며 졀풍건(折風巾)이라 니라 우문왈 대국은 녀염(閭閻) 의복 졔되 됴뎡과 가지냐 답왈 샹해 어이 다로리오 고례(古禮) 이졔 다 업셧니라 고 져기 븟그리 다가 아국 복졔 뭇거 내 오 젼혀쥬문공(朱文公)의가례(家禮) 좃니 비록 하쳔이라도 삼년 샹(喪)을 아니 닙지 못고 혹 거상(居喪)의 녜문(禮文)을 어긔면 명교(名敎)의 리여 류(士類)의 참예치 못니라 내 인여 무 태샹황 인산(因山)이 맛당이 어노 뇨 답왈 구십월노 일(擇日)리라 거 내 오 녜예 텬 칠월만의 장(葬事)니 어이 이치 여러 이 되뇨 답왈 산운(山運)이 칠월노 니치 못고 요(遼水ㅣ) 이실 듯지라 일노 념녀니라 일이 된 후 발인(發靷)여 능소(陵所)의 나아가 인산 길일(吉日)을 기리니라 내 오 공졔(公除) 후 쳔관(千官)의 곡반(哭班)을 일우지 아니냐 답왈 로식 간일(間日)여 황샹이 친히 나아가실 예 참예다 니 일 드 이곳 녜법의 이 지나면 황뎨 식 간일여 빈뎐(殯殿)의 나아가고 두 이 지나면 이틀식 간일 여 나아간다 더니 그 말이 올턴가 시부더라
179
내 무러 오화신을 쳐치 후의 어지여 슈쇄(收殺)가 되엿냐 답왈 자진(自盡)케 후의 허(許)여 녜 일워 초죵(初終)을 오게 여시나 다만 졀 무고(無故) 사과 다고신(珅)의 아은 일홈이풍신은덕(豊信恩德)이니곳 부(駙馬)라 황샹이증(曾子)와 됴복을 쥬어시나 졔 집의 한가히 이셔 스로 새롭게 여 조초 쳐분(處分)이 이시리라 내 오구문졔독(九門提督)과군긔대신(軍機大臣)과 밋각노(閣老) 엇던 사을 새로 졔슈(除授)엿뇨 답왈 태샹황의 둘 아 친왕(親王)과 밋경계(景桂)라 사과리구형이란 사이군긔대신이 되고경계와 밋뉴뵈(柳甫ㅣ)새로각(內閣學士)되고 그나마 다 젼과 치 이시며쥬규 어졔야 남방(南方) 슌무(巡撫)던 고로브터경셩(京城)의 니러시니군긔대신이나각사두 벼 즁의 오라지 아녀 황지(皇旨) 내려 니라 더라
180
왕낭즁이 무러 오 귀국의 외방(外邦) 벼은 엇던 사이 며 몃 식 졍을 나뇨 답왈 삼년 과궐(窠闕)도 잇고 뉵년 과궐도 이시니 음관(蔭官)이 만이 며됴션긔방이 남븍은 쳔 리오 동셔 이쳔 리라 팔도(八道) 화 각각관찰(觀察使) 두어 군현(郡縣)의 츌쳑(黜陟)을 가음 아니 이 과거(科擧)로 츌신(出身)여 경(卿宰)의 밋 쟤관찰 이며 음관의 슈령(守令)으로 나가 쟈는 안벼 리력(履歷)으로 오니라왕낭즁이 오 그러면 대개 안흐로 말아마 밧그로 나가도다 내 오 그러나 안흐로 즁히 너기고 밧그로 경(輕)히 너기 고로관찰 여 나가 쟤 다 좌쳔(左遷)이라 일니라왕낭즁이 쟝 우어 왈 이 튼 풍쇽은 녯날 뎐 말을 드러실 이오 이졔 보지 못 배로다 고 칭찬기 마지 아니 니 대져즁국의 안흐로 경히 너기고 밧그로 즁히 너기믈 이 말노 가히 짐쟉너라
181
내 무러 오 츌신(出身)연지 몃 되엿나뇨 답왈 공(貢生) 츌신이오 조뷔(祖父) 일병부샹셔(兵部尙書의 니럿지라 션음(先蔭)으로 벼여 임의 십년이 지난지라 거 내 오 그 문쟝이 놉흘 거시오 좃차 노 쟤 당셰(當世) 명(名士ㅣ) 만흐리로다 답왈 나 셩품이 오졸(迕拙)여 사 사괴기 만히 못고 좃차 노니 다 쳥졍(淸淨)야 즁과 도(道士)로 더브러 놀기 됴히 너기지라양포의양봉이란 사이 이시 도의 즐기며 률(四律)을 공부니 내 됴하 벗이라 그러나 일 챵화(唱和) 거시 업니 내 쟝졸(藏拙)기 위미라 이 사이 귀국 션 친 쟤 만코 이 사의게 일 드니 귀국김니도(金履度)의 셩명을 그 벗의게 드러시 글과 글시 칭찬며 닛지 못 배라 더라 니 그김니도 아냐 거 내 오 이 사은 나의 친 배라 아국의 본 일홈이 잇 션니라 인여 무러 오양봉은 야흐로 므 벼의 잇뇨 답왈 슈십 년을경셩의 노다가 년젼의 고향으로 도라갓다 더라
182
이 밧긔 슈쟉이 만흐나 다 긔록지 못니라
183
가기 님여 오 내 집이졍양문(正陽門)밧긔 이시니 번 일이 강님(降臨)여 날이 못도록 강논(講論)미 엇더뇨 내 오 진즁 을 감샤나 긔(行期) 날노 격(隔)고 산증(疝症)이 이셔 야흐로 조셥(調攝)지라 다시 만나기 도모커 어려오니 엇지 챵연치 아니 리오왕낭즁이 오 이럴진 오날 기리 니별(離別)이 되지라 댱노(長路)의 기리 보즁(保重)기 라노라 고 즉시 니러 부방(副房)으로 나아가 반향(半晑) 슈쟉을 일오고 도라가니라치형이 진 후 도라와시니 별노 일긔(日記) 거시 이셔 못 셰지라 이에 아오라 긔록노라 그 일긔예 오셔산구경기 일니션·니검셔(李檢書)·민셔방(閔書房)으로 언약냐 오 가졍엿지라 어졔 져녁의니진(李進士) 가 보니 소셰(梳洗) 아니코 리의 누엇거 오 언약을 엇지 뇨 무니니진병이 드럿노라 못 가기 졍고 날을 긔약니니검셰니진와 가지로 구경랴 지라 만일 여러 날을 퇴(差退)면 긔 박두(迫頭)여 못 갈 거 나임의 졍 날노 가렷노라 고 도라오니 사이 젹으면 구경이 젼일(專一)지라 새벽 일직 니러나 쥬방(廚房)의셔 이른 아을 아 나오거 먹기 뉴낭팅(柳郎廳)으로 더브러 안문의 나오니 본방건량마두(本房乾糧馬頭)운태와 내 마두(馬頭)효신과뉴낭텽의 마두바회로지라 잇 눈이 시작여 만히 올 거 나기 져니운태오셔산졔셜(霽雪)은 황도팔경(皇都八景)의 드믄 경치라 오 구경이 더옥 긔이타 니운태능히 이 말을 니 긔이더라
184
슐위 초아 고민셔방을 기리더니 눈이 온다 여 못 간다 거 즉시 슈 모라대쳥문(大淸門)블근 목 밧그로 도라셔댱안문(長安門)을 나니 문 졔되동댱ː안문과 치 엿더라
185
길 븍편은 다 민가(民家)로 푸 업더라
186
패루(牌樓) 지나 셔흐로 큰 거리의 내니 이션무문으로 통 길이라 길어귀에 패루 셔시 남으로션무문이 일 니 여 뵈더라
187
패루 지나며 븍으로 걱거 슈 보 여셔안문(西安門)아럐흘 지나 슈 리 여 븍편 큰 골의후구란 큰 졀이 이시니 마다 여 번 시(開市) 곳이로 근 못 번셩치 못여늉븍(隆福寺)의셔 못다 고로 일 구경치 아니니라
188
이윽이 가다가 셩문의 니러 셩안 가온 길은 거믄 쟝믁(長木) 네식 엇거러 가로 노하시니 인은 두 편 녑흐로 니게 더라
189
이 문은셔직문(西直門)이니 문 밧긔 져와 푸 슈 리 년여시나 믈화(物貨)졍안문밧보다 바히 못더라
190
(垓字) 리 건너 리 지나니 리 아 믈이 셔흐로 흘너 동븍으로브터 깁히 히여시니 흘너가 쥴을 몰을너라
191
이 믈 근원이옥쳔산(玉泉山)으로 나아오니 ·외셩(內外城) (垓字)와태지(太液池)·옥하(玉河水ㅣ)다 이 믈노 되엿다 더라
192
리 좌우의 난간을 며시 졔되 공교(工巧)고 두 편의 각각 루(彩樓) 셰워시니 이 길은 황뎨셔산(西山)의 왕 길이라 셔남으로 라보 믈가 쳡쳡(疊疊) 각(彩閣)이 슈목 이로 은영(隱映) 다 믈흐로 년여 셔로 빗최여시니 그 밧글 보지 못지라운태왈 이 믈 좌우로 삼십 니 지은 집이니 다 황뎨 노리 집이라 도라올 의 믈흘 조차 구경리라 더라
193
셔직문밧그로브터 박셕(薄石)을 라원병[명]원(圓明圓)사십 니 버더시니졍양문(正陽門)·됴양문(朝陽門)밧과 다 가지러라 푸의 드러가 약간보보(寶寶) 사 낫의 요긔(療飢) 거 삼고 리 지나니 눈이 뎜뎜 쟝(壯)더라
194
길 븍편의틱건광명(勅建光明寺)란 졀이 이시니 졔되 쟝 웅장지라 예 지나 푸 드믈고 길 좌우로 버들과 측(側柏)과 노숑(老松)이 셧겨시 그 기 뭇거 세온 고 단쳥 누각이 곳곳이 츌몰(出沒) 셜즁의 긔이 경치 진짓 그림으로 엇지 못 배오 왕왕(往往)이 인개 돈연(頓然)이 산야 풍경이라 슈의 큰 노 메오고 슈 모 년여 둘너 리니 이 고 슈 박회 박셕(薄石)의 구으 소 벽녁(霹靂) 트니 지난 바 뵈이 바 리 다 거울 속 산쳔이며 그림 속 뉴리(琉璃)라 이십 니(里) 비로소 여념(閭閻)이 셩고 길 남편으로 긴 담이 잇고 담 안희 슈 리의 여러 집이 이시니 이강희(康熙)머므던챵츈(暢春)이라 담 쥬회(周回) 슈 리의 넘지 못고 담 안희 집 말니 혹 뵈이니 담 졔도와 궁실 규뫼 극히 쵸쵸(草草)고 검박(儉朴) 모양이러라
195
챵츈원(暢春園)큰 문을 지나 두 편의 조산(造山)을 무오고 슈플 이의 왕왕(往往)이 여러 간 집이 이셔 오 분묘(墳墓) 모양이라 황뎨의 궁궐이 지쳑(咫尺)이 가(私家) 분묘 옴기지 아녀시니 간슐 규모러라 셔흐로 오 리 길 좌우 긴 담이 일 니 벗첫고 담 안이 광활(廣闊)여 놉흔 집이 아흐라이 뵈니 올흔편 집은화신(和珅)의 집이오 왼편은김간(金簡)의 집이라 며 왼편 담 밋 슈십 보식 포막(鋪幕)이 잇고 직희 군 이시니 그 믈(財物) 젹몰(籍沒) 아직 다 옴기지 못 고로 밤낫으로 직흰다 더라
196
예 지나 새로 지은묘당(廟堂)이 이시 알 블근 목(木柵)과 블근 면쟝(面墻)을 베플고 세 문을 구지 가시니 현판의칙건웅궁(勅建紫雄宮)다 시 셰치 못나 대개 지언지 십 년의 넘지 못가 시부더라
197
오 리 여원병[명]원의 니니 뒤흐로 큰 뫼히 둘너시 일홈은옥쳔산이라 뫼 기의 셰 굴이 이시 둘은 뫼 셔남의 이시니 그 아 믈이 깁허 측냥(測量)치 못너라
198
뫼 나흔 동남의 이시니 바회의옥쳔(玉泉)두 삭이고 뫼 아 고인 믈이 이시니 일홈은셔호라 쥬회 십여 리의 년을 득 심으고 흰 모과 긔이 새며 믈즘이 하 빗과 구 기림자 이의 츌몰니옥쳔슈홍(玉泉垂虹)이 연도팔경(燕都八景)의 드 곳이라 슈홍은 무지게 드리온단 말이니 믈 흐 형샹을 니미러라 뫼 알프로 층층 누각이 슈목 이의 슈 리(數里) 년고 길편으로 긴 담이 막히여셔산지 벗쳣시니 황뎨셔산의 노리면 궁즁으로 말암아 뒤흐로 나아가게 여시며 대궐 알 큰 못시 잇고 니며 리 통 곳이 이시 먼리셔 셜즁(雪中)의 희미이 라보 그 형샹을 셔히 알 기리 업고 표묘(縹渺) 궁뎐이 기즁(其中) 알프로 잇 집은졍대광명뎐(正大光明殿)이란 집이오 후원으로 웃둣 놉흔 집은산고슈댱(山高水長)이란 집이라 더라
199
길 셔편으로 큰 년못시 이시 방이 슈삼 뵈(步)라 면의 셕츅(石築)이 졍치(精緻)고 년못 동편의 못 님야 슈 간(間) 푸집을 쥴노 집을 지어시 표묘 누각과 녕농(玲瓏) 각이 믈 가온대 빗최여 믈결이 흔들니며 황홀(恍惚) 그림자와 긔이 졔되 과 눈을 놀내지라 운태니 일 드니 이 다 황샹(皇上)이 믈녁을 쥬어 샤치(奢侈) 극진이 여 샹고(商賈)의 니(生理)와 인의 음식을 위여 긔이 귀경을 위미라 더라
200
푸 알 슈 려 푸의 드러가 차 마시고 즉시 니러 나와 못 겻 져근 비(碑) 셰오고 태샹황(太上皇)의 글과 글시 못 판 젹을 긔록엿시니 대강 오 히 누습(漏濕)여 인을 통치 못더니 흉년의 쥬린 셩을 모도와 진휼(賑恤)을 먹이고 그 힘을 합여 못슬 파이니 인의 근심을 덜고 믈을 져츅(貯蓄)여 한(旱災) 방비니 갓 노리 위미 아니라 엿더라
201
푸 알셔운태 피인(彼人)을 잡아 인(人事)거 어인 사이뇨 무니운태오 이 곳 호권(虎圈)을 직흰 사이라 이 놈을 못 만나더면 호권을 볼 기리 업다 고 으러 알 셰오고 셔흐로 다가 도 남으로 걱거 패문 튼 패문을 드러가문의신우쥰(神佑駿)셰 시니 신령이 돕 쥰(駿馬)란 말이라 남으로 큰 들이 이셔 알프로 슈목이 둘넛고 이 무리 지어 니니 이 곳 황뎨 내여 쥬어 먹이 배라 더라
202
오 리 밧긔 뫼히 둘너시니 일홈은만슈산(萬壽山)이오 뫼 뒤희 층층 탑과 쳡쳡 누각이 먼리셔 라보 인간 경(景色)이 아니니 이 션산(仙山)이라 지라 이윽히 여 큰 언덕을 도라 호권으로 드러가니 문안의 오 간 집이 이시 간살이 장 커 간이 네 간이 다 된 니 큰 범을 너흔 곳이라 슈십 층 셤을 지나 큰 집의 오니 므은 가온로 좃차 아 깁히 고 너븨 네 간을 지어시 칠팔 간이 될 거시오 바닥의셔 (臺) 므은 젼이 다 길이 될지라 우흐로 큰 나모 셔너흐로 가로 누여 언고 나모 우희 굴은 쳘망(鐵網)을 베플고 우흐로 사이 왕여 요동(搖動)치 아니케 여시니 범이 여 나지 못게 미러라 네다 사이 우희 느러 안고 큰 남그로 텰망 우흘 그러으며 크게 소니 동편 밋흐로 쇠문을 근 곳이 이시 미쳐 몰낫더니 홀연 마 벽녁 소 집이 울니고 하이 믄허지 며 범이 리 두고 나 거녀 우흐로 칩드 네 길흘 나마 올흐니 안졋던 사이 일시의 닓더셔 혹 믈너셔 쥴을 지 못니 그 금즉 위엄(威嚴)과 무셔온 형샹을 가히 짐쟉지라 범의 모양을 셔히 피니 표범이로 머리로셔 리지경이 이 될 거시오 몸이 며 눈이 녈(猛烈)여 쟝 녀고 모진 범이라 사이 손을 져허 치 형샹을 면 년여 흉 소 지며 노 즉시 문 잇 곳으로 여 드러가 몸을 슘기 거동이라 제 사을 겁(怯)가 시브더라
203
혹 여러 번 치 쳬고 년여 짓 소면 용을 노다가 몸을 고 눈을 지롭 사을 보고 그리리 소며 톱으로 박셕을 허위며 셩내 거동이 비록 텰망의 막히여시나 감히 갓가히 나아가 엿보지 못너라
204
동편으로 담을 고 가온대 터 왕 곳이 잇거 나아가 보니 남븍으로 간을 막고 두 간을 그러시 깁기 담 안의 잇 곳과 고 젼을 둘나 길의 모롬게 담을 두고 텰망을 아니 둘너시니 직흰 쟤 오 장 낸 범도 여 나지 못 고로 텰망을 아니 더펏다 며 시방 범을 너흔 곳의 이 만흐면 문을 여 녹노(轆轤)흘 틀허 범을 밧그로 나가게 고 사이 드러가 졍히 러낸다 며 담 밧 븍편 간의 대 로 지고 므 고기 거럿거 직흰 놈려 고기 쥬어 먹 양을 뵈이라 니 고기 먹일 면 관원(官員)이 니러 준다 니 뵈이고져 아니여 거말인가 시브더라
205
그 범을 셩내여 노 양을 여러 번 시기니 직흰 쟤 말라 여 왈 셩이 과(過)히 내면 병(病)이 드니라 더라
206
범을 살녀 잡 양을 므니 혹 함졍(陷穽)의도 잡으며 혹 쟝(壯士ㅣ) 의 모도 쇠투겁 씨여 범이 을 믈게 고 으러 온다 더라
207
내개 호권은 님군의 위엄을 뵈게 의라진·한(秦漢)으로브터 텬의 궁즁의 베펏던 거시니진시황(秦始皇)의 범이 사을 보고 믈고져 거쥬(朱亥)눈을 부릅고 쥬먹을 두니 범이 놀나 업여 감히 음기지 못다 니 이곳의 니러쥬의 일을 각니 쳔고(千古)의 녁(力士)라 일미 올터라 직흰 쟤 니 태샹황이 년년(年年)이 호권의 니러 구경고 혹 틀에 너허 가도와 궁즁의 드려다가 본다 며 년젼의 태샹황이 녈문 우 올나안고 산을 시길 범을 내여노 좃게 고 좃가 도로 잡게 니 여슨 죽고 나흔 사라시니 곳 시방 잇 거시라 더라
208
보기 문을 나 동으로 쳐기 드러가 길 남편의명년(明淵寺ㅣ)란 졀이 잇고 븍편의 믈 가온대 지은 집이 이시니 이 곳 션(彩船)을 너흔 집이라 니 믈을 건너가 볼 기리 업더라
209
집 아로 흐 믈이 너븨 오 간이 되고 깁희 밋틀 보지 못지라 널노 리 노하 니게 여시나 널조각이 각각 믄허져 건너가 극히 위(危殆)더라
210
믈 셕츅 곳의 잠간 안자 구경다가 도로 리 건너 셔흐로여 보 여 남향여 놉흔 집이 이시니 이곳은 널문 우라 집 졔되 극히 웅쟝고 단쳥이 못 빗나 지언지 오라지 아니여시며 층계(層階) 십여 층의 지나고 층계 우 셕쥬(石柱) 길 남게 베플고 그 우희 집을 지어시니 올나 안 소견(所見)이 극히 광활(廣闊)지라 문을 구지 다닷더라
211
틈을 조차 보 다만 어탑(御榻)으로 당즁(當中)여 노코 누른 보흐로 덥헛더라
212
븍편 층계로 려 집 뒤쥬산(主山)의 오니 이 조산(造山)이라 약간 슈목을 심으고 두 편이 방졍게 엿더라
213
쟝 놉흔 봉의 오니셔산의 긔졀(氣絶) 치(配置) 거의 다 짐쟉나 젼후 좌우의 누쳔 간(累千間) 각 누각이 다 빗 며 긔이믈 나토니 스로 엇더타 니 길이 업더라
214
셔산은븍경(北京)으로셔 읏듬 명산이오 셜후(雪後) 봉만(峰巒)이 더옥 긔특니 이러므로셔산졔설(西山霽雪)이연도팔경의 뎨일이라 이 눈이 쾌히 개이고 날빗치 븨싀이니 황홀 경개 글노 형용 배 아닐너라
215
이 봉의 올나 보옥쳔산이 알플 둘너잇고원명원이 뒤흐로셔산의 하시며셔산이옥쳔산을 년여 구 가 소사 낫시니셔산텬연(天然) 봉만의 혀난 긔운을 엿고옥쳔산은 인력(人力)을 만히 드려 장졈(粧點) 포(排布) 알 거시오 뫼 뒤흐로 먼 뫼 쳡쳡이 뵈니 리 산셰 웅장고 눈이 허여 여시니 이거용관(居庸關)이라일통지(一統志)의 닐너시거용관이 남편 어귀예서 븍편 어귀지 사십 니의 좌우에 층암 졀벽(層巖絶壁)이 하 하시니 이 텬하의 뎨일 험 곳으로 일 히오경셩(京城)의 일 이십 니라 거용쳡취(居庸疊翠) 팔경의 드럿지라 일 긔이히 너기더니 오날 와 보심히 갓가히 뵈지라연도팔경(燕都八景)의 들미 올터라 믜 려녈무루(閱武樓)앏흘조차 호권 녑흐로 첫 번 드러오던 문으로 도로 나가 셔흐로 이윽히 여셔산기의 니러 문을 드니 편의 암슈(巖峀) 두 로 현판고 폐문 압 큰 오동(烏銅獅子) 좌우로 니고 알플노 쥴 됴방(朝房)치 지은 집이 잇지라 븍편으로 산 우흘 라보 각이 이시니 집 지은 졔되 반만 칀 년화(蓮花) 모양이 여러 지어 집이 되게 모양이요 그 긔묘며 황홀여 신교(神巧)며 찬란(燦爛)기 쥬궁패궐(朱宮貝闕)노 일코미 오히려 더러올 지라 의 놀납고 눈의 금즉여 스로 혜오 텬하의 이갓튼 죄 이시며 젼고(前古)의 이튼 샤치 어이 이실고 시분지라 됴방 튼 집 알프로 나아가 글 닑 소 나거 드러가니 두어관(內官)과 두어 사이 쳥셔(淸書)로 므 문셔 다가 마자 안기 쳥고 차 권더라
216
잠간 안잣다가 나올 지필(紙筆)을 가져 그 집 일홈을 무니 다 셔로 도라보아 지 못니 글 모 거동이러니 문 밧긔 셧던 사이 븟 달나 여담희각(淡喜閣)셰 뵈거 예셔 뵈 여러 집 일홈을 무니 좌우 도라보와 답 바 모니 제 아지 못가 시부더라
217
남으로 여 호슈 흐로 발마 나아갈 호슈(湖水) 좌우로 셕츅을 졍졔(整齊)히 고 호슈 븍편과 셔편은 산을 덥허 다 각을 두어시 노픈 (臺)로 조차 산 밋지 거의 븬 틈이 업고 집 졔양(制樣)을 다 각각 다게 여 곳도 튼 곳이 업게 고 오 뉴리 기와 니어시니 면으로 블근 난간을 두고 각 공교(工巧) 삭임과 긔괴한 믈샹(物像)이 다 평의 듯도 못던 배라 산 밋 잇 집으로 븟터 장 놉흔 집지 난간을 발마 오며 좌우도 집안흐로 셔로 통여 니게 졔되라 니 엇지 근 거신지 녁냥(力量)의 밋 배 아닐 더라
218
호슈로 조차 년여 남으로 나아가며 거름거름 머리 두혀 보 볼록 놀납고 새로와 믄득 이 몸이 신션을 라방장·영쥬(方丈瀛洲)의 노 더라
219
됴방 튼 집을 져기 지나 삼층각이 호슈 가온대 이시니 혹 오 이문챵각(文昌閣)이라 며 예 지나 여 보 가셔 믈 속의 긔묘 삼층각이 이시니 혹 왈 이뇽왕묘(龍王廟)라 며 예 지나십칠(十七橋ㅣ)란 리 이시니 호슈 동편으로 브터 셔편지 벗쳐 안밧흘 통게 여시 길의 슈여 뵈오 너븨 오뉵 간이 될지라 아로 열닐곱 무지게 굼글 내여 믈을 통고 그 놉희 누션(樓船)의 큰 틀 라 츌입게 여시니 웅쟝 졔도 짐쟉 거시오 좌우로 난간(欄干)을 며시며 사의 머리의 닷케 엿지라 리 반을 지나 금줄을 느고 두 편의 군포(軍舖) 직희 거동이 사은 업지라운니 관계치 아니타 고 리의 올나 말 니러 난간의 의지여 븍편을 라보니 믜 우희 쟝 놉히 잇 집이 마조 건너 뵈이니 리 놉희 가히 알 거시오 집 졔도 셔히 보 좌우 젼후로 민 모양이 므어 응(應) 각여도 셰치 아닌지라운오 이 집이 글로 형샹여 지엇다 거 황연이 치니 일만 만와 목슘 슈로 응 거시며 집 뒤와 뫼 우히며셔산봉만의 먼리 보 곳의 곳곳이 흰 탑(塔)을 세워 혹 열 길이 너므며 혹 열닐곱 길도 되어 옥치 흰 빗치 각 집 뒤흐로 표묘히 뵈이니 이 인간의 경(景)이 아닐너라
220
리 지나 셔편으로 려가더니 다엿 놈이 각각 몽치 들고 바로 치려 모양이라 대경(大驚)여 엇지 쥴을 모고운 지져 예 어이 인도다 니 운관계치 아니타 고 몽치 가진 놈의게 마조 드러가 하오아 하오나 니 그 놈들이 믄득 머므고 죵용(從容)이 닐너 어셔 나가라 지라운태오오태감(吳太監)이 평안(平安)냐 일 내게 그림 부 쥬어 오 이후의 부 가지고 오면 막지 아니 리라 언약야시니 이 말을 통라 면 부와쳥심환을 쥬니 다엿 놈이 도로 드러가지라 우리 그 뒤흘 조차 리 너므니 리 지나며 븍으로 층뉘 이시니 난간을 층층이 두고 분합을 면으로 다닷시며 동편으로망셤각세 삭이고 삼면으로 각각 현판이 이시 밋쳐 보지 못여 다엿 사이 도로 나와 니 잇 다른 와 달나 드러오기 허치 못니 도로 나가란다 고 구여 공갈(恐喝)은 아닌지라 도로 리 건너 나올 뒤흘 도라보 호슈 셔편으로 묘연(杳然)히 각이 뵈히 졀묘(絶妙) 졔작(製作)과 궁극(窮極) 샤치 호슈 의 잇 집의 비치 못지라운처 니로 져 궁인의 직흰 집이니 오직안동김직각녕감(令監)이 보앗다 거 본 곡졀을 무니운오 그영감이셔쟝으로 드러올 의 저샹통마두로 드러오지로 길희셔브터 이젼 못던 구경을 궁진(窮盡)히 고 밋 여긔 니러 구경 졔 이 리의 오 직흰 군 앗가치 몽치 들고 치려 거 됴흔 부와쳥심환을 년여 쥬어 달내고 임의 리 지나고 깁히 드러갈 사을 만나지 못지라 향방(向方)을 모고 져긔 뵈 집을 자 드러가니 문의 직희 쟤 업지라 여러 집을 지나 져 집을 다 여러 궁인(宮人)이 누에 올나 건니다가 밋 우리 보 대경(大驚)여 려 가더니관(內官)두어 사이 갑군(甲軍)을 블너 론 인과군관·역관이 알 믄져 니른 쟈 결박(結縛)여 쟝 크게 죄(罪)이실 지라김직각녕감이 급히 아모리 쥴을 모로다가 하인을 블너 져 자바드러 업지고 큰 몽치로 쟝 죽이러 거조 니 관이 그 거동을 놀나 연고 뭇거 졔 답왈 내 모고 대인(大人)을 인도야 왓다가 이 지경의 니니 슬프다 나 이졔 죽으리다관이 졔 등에 업히여 치지 말나 고 여러 사의 결박을 플고 알프로 오라 니 임의 옛지 드러왓시니 엇지 리오 고 알셔 인도거 면피(面皮) 쟝 만히 쥬고 여러 곳을 구경 궁인이 문틈으로 조차 나와 토와 엿보니 그 긔묘 구경은 다시 엇지 못 일이오 평의 긔이 일이라 더라
221
리 건너 년여 남으로 향 믈의 프른 구리로 쇼 그라 셕탑(石塔) 우 누여시니 머리 드러 븍편으로 라보 형샹이러라
222
사라 음겨 여 니러날 니 혹 니 이 쇠 여 호슈에 드러가면대쳥(大淸)이 오라지 아니리라 다 니 쇠로 근 놀니 어이 이시리오 등 위희 슈십 글을 삭여시 긔괴 젼(篆字)라 다만 태샹황 도셔 삭여시니 어필(御筆)인가 시부며 셕탑 면으로 가 남글 심거시니 셔히 보지 못너라
223
믈의 져근 비 둘이 이시니 다 태샹황 어졔(御製)라 노람을 포쟝(襃獎) 거시오 믈 일홈은근명회(昆明湖ㅣ)라 여시며 곡식 시므 경(頃)을 일라시니 대개 이 호슈 인연여 호슈 동편으로 망망 들의 다 눈을 그러시니 문 이후로 쳐음 보 배라 의 반가와 여러 번 도라볼너라
224
쇼 누인 곳의 셔남편으로 팔면각이 이시니 집 졔되 우산 벗틘 모양이라 일홈은학여뎡(鶴唳亭)이라 고 현판을 무슈히 라시 다 태샹황 글이러라
225
져기 안 이 여러 사이 와 환약(丸藥)을 구니 괴롭더라
226
예 지나 큰 리 이시니십칠교졔작과 방블(髣髴) 무지게 굼글 나흘 내고 리 면 기동의 다 글귀 삭여시니 이슈의(水漪橋ㅣ)라 일며 리 동셔편으로 다 패문이 이시 셔편은 리 지나가 보기 결을치 못고 동편은 츈부영츄(春富秋榮)네 안밧그로 현판엿더라
227
밋 예 지나 호슈 쥬회 거의 다 구버뵈니 호슈 쥬회 방 칠팔 니가 될 거시니 이 믈노 인연(因緣)여 삼십 니 둘너시니셔산아로브터 남으로 흘너원명원(圓明園)알프로 두고 가은셔직문으로 통여시니 이 다 인력(人力)으로 근 배라 금즉더라
228
예셔브텀 언덕을 히 회슈(淮水) 막아시 회(灰) 닉여 길을 무어시니 너븨 오뉵 간의 지나고 즁간이 노프며 두 녑히 게 여 이치 고 삼십여 리 느럿다 더라
229
년여 뒤 도라보 구뷔구뷔 집 졔되 쳔(千百) 형샹이오 호슈 가온대 큰 셤이 이시니 셤 우 여 간 누 셰오고 가온대 삼층집이 이시니 이 슈졍궁(水精宮)이라 곳이라 면이 다 믈이라 알 져근 션을 여시니 사의 왕 오 삼층집의셔 사이 난간을 의지여 내미러 보 녀인(女人)의 복이라 의연히 텬샹의 션녠(仙女) 더라
230
셔편으로 언덕이 막히이고 언덕 뒤 여라믄 누른 대 슈플 이의 셔시며 머리 언덕 녑흐로 뵈이니 이 황뎨 노의 뇽(龍舟ㅣ)니 졔되 긔이타 나 도라가미 급지라 가보지 못니라
231
동으로 향여 도라올 음식 푸의 드러가 약간 요긔(療飢)고 물길흘 조차 오니 이 디명이회젼이니원명원과 잇 곳이라 혹 슈십 보 오고 혹 여 보 여 년여 각각 졔양(制樣)으로 집을 지어시 혹 두세 층을 글고 혹 팔면각(八面閣)이며 뉵면각이며 혹 십 간 각(行閣)을 느고 혹 담을 막아 담 안 젼방치 무슈이 지어 집마다 물을 향야시며 혹 믈속의 기동을 박아 지은 집이 이시며 혹 믈을 로 막아 듯이도 지엇고 혹 느리리 지어시 편은 고 편은 놉하 러질 모양도 이시며 혹 궁글게 그라 안흐로 도라니게도 야 부 펼치며 우산을 벗틔고 여시며 고 업 모양이니 형형(形形色色)이 이로 형용치 못너라
232
이 다 황뎨 믈길노 좃차 고 오라리관과 궁녀로 여금 여러 집의 온갓 긔믈(奇物)과 각 음식을 초와 각각 공졔며 젼방의 져 모양의 버러 셔로 머 시기니 이 젼혀항(杭州ㅣ)ː셔호(西湖) 모방(模倣)고 그곳 사의 노 거동을 본바다 미라 이치셔직문(西直門)밧태문지 긋지 아녓다 니 이 다운의 니 말이라 이곳 말을 인식히 이치 거 비로소 그븍경 슈(數) 무니 스믈여 번로라 니 이러므로 그러더라
233
열하(熱河)구경 말을 니셔(西山)의셔 오히려 나흔 곳이 잇다 며 졔 십여 년젼의 신을 뫼시고셔산등희의 와 왓더니 신 햐쳐 곳으로 다 친왕이 지나다가 아국 사이 셧 거 보고 슈 머므러 한어(漢語) 사을 니 신이 져 명여 나오라 니 친왕이 두어 말을 뭇다가 죵(從者)로 여금 려오라 거 죵쟤 큰 을 쥬여 이고 뒤흘 롸가챵츈원(暢春園근쳐의 드러가 큰 집을 드러가니 이 친왕의 집이라 이윽여 브거 드러가니 그 집 졔양이 셔산의 잇 집과 별노 다지 아니코 져 블너 의 안치고 그 탁의 음식을 와 먹이지라 졔 어인 일인 쥴 아지 못지라 두 다리 박셕의 고 공경여 음기지 아니코 안잣더니 이윽여 풍뉴(風流) 엿고 각 뉴리등(琉璃燈)의 블을 라노 니 이날은 졍월 십칠일이라 그 구경이 원명원의셔 보던 바의셔 못 쥴 모 거시오 져 안 곳은 심히 깁흐니 그 안집인가 시부더라
234
더옥 황공여 일향 럿더니 홀연 관이 제젼립과 웃옷살 벗겨 가더니 이윽여 도로 러 안 녑흐로 향냥(香囊)을 무슈히 더지니 대개 녀인들이 놉흔 누에 비겨셔 구경다가 져 쥬 거시니 업여 모 쳬더니 밤든 후 친왕이 죵쟈 명여 려다가 도로 잇던 로 보라 거 죵쟤 향낭을 거더 쥬니 닐곱 쥬머니마다 은 냥식 너헛고 니러 오기장 마 뭇 말이 업니 그 다려가기 젼혀 가(自家)의 집과 노을 구경시커고 아국 사을 녀인들이 구경케 미러라 십여 리 여만슈(萬壽寺)의 니니만슈 졀 일홈이오 믈을 님여 지은 졀이라 문밧긔 패루와 돌 극히 웅장(雄壯)며 블젼(佛典)의 경 닑 소 나거 나아가 보니 븍벽의 큰 부쳐 열아문을 안쳣고 당즁(當中)여 부쳐 알 황뎨만만(皇帝萬萬壽라ㅣ) 패(牌) 셰워시며 즁이 동셔로 각 십여 인식 셔시 거믄모진관(冠)이며 검과 누른빗 장삼(長衫)을 닙고 팔을 곳고 눈을 감아 야흐로 경(經)을 외오 극히 한아(閒雅)야 즁의 본(本色)이 이시며 이이 묵어(木魚) 쳐 소의 졀 맛초더라
235
법당(法堂) 동셔 익낭(翼廊)의 편은 관뎨소샹(關帝塑像)이오 편은 부쳐 위 곳이며 좌우 익낭이 여 간의 지나니 다 즁의 잇 방이오 법당 뒤 삼층각이 잇거 아 조차 슈십 층 사리 올나 쟝 웃 층의 오니 아 거시 업고 다만 황뎨 어필노 병풍 좌 븍벽으로 븟첫더라
236
남편 문을 열고 먼리 라보니 소견이 망창(茫蒼)여 가흘 보지 못너라
237
도로 려 집 뒤흐로 드러가니셕가산(石假山)을 무엇시 쥬회 여 보의 지나고 놉희 오 쟝의 지나니 다 긔이 괴셕(怪石)으로 쳔 층 봉만(峰巒)을 그라 진짓 산형(山形)을 모방고 틈틈이 긔이 화목(花木)을 심어시니 비록 텬쟉(天作)이 아니나 사의 공교미 조화(造化)의 공부 아삿다 닐너라
238
남으로 두 바회 이예 조고만 셕문(石門)이 잇고 문안희 돌 틈으로 층층 뫼길이 슈플 이의 빗겻거 문을 드러 뒤흐로 돌을 반연(絆緣)여 노 려가니 븍편의 법당이 잇고 좌우로 긴 담을 막아시니 두 편으로 둥근 문을 내여 사을 통게 엿지라 그 안흔 이 더욱 너로고 간숑(白幹松) 다 그늘이 의 득니 슈 년 고목일너라
239
븍편의 법당이 이시니 블샹이 다 길의 지나고 손의 반 튼 그 드러 가의 다혓지라 하인들이 쇼쳔(小錢)을 치쳐 그 그 담기게 고 흣터진 것도 다시 줍지 아니니젼브터 이치 돈을 치쳐 만히 언치면 됴타니 즁의 먹 거시 가 시부더라
240
법당 녑흐로 익낭의 드러가니 간방의 다만 늙은 즁 나히 잇지라 합장(合掌)여 녜 일오고 안기 쳥니 보기의 극히 슌량(純良)고 산승(山僧)의 도 일치 아녓지라 칭찬여 왈 아국 놉흔 즁이 곳 화샹(和尙)의 모양이라븍경의 드러온 후 첫 번 보노라 니 노승이 오 즁이 다 가지라 엇지 즁의 도리 직희지 아니리오 다만 나마승(喇嘛僧)은 즁을 망치 못리라 더라
241
운간숑(白幹松子) 어더지라 니 졔 둔 바 자 쥬며 젹다 여 가히 업셔 모양이 더옥 귀지라 도로 믈흐로 좃차 다가 오탑(五塔寺)란 졀의 니니 문밧긔 치만슈와 미 업며 밋 큰 법당의 니니 누른 옷 닙은 즁이 믈의 나와 보 녜슈(禮數)도 아니고 다만 면피(綿皮) 만히 라 여 법당 문을 구지 닷고 아니 여러 쥬니 지쳑 이의 인심이 도니만슈즁의 말이 그지 아니더라
242
법당 의 원승이 나흘 쇠슬노 목을 야 두어시니 션 사을 보고 놀나 놀며 괴이히 보 거동이 극히 우읍고 담 여 더지면 압 발노 고 조금식 져 먹으며 사이 치려 면 망상이 놀며 믈고져 더라
243
법당을 열 별노 긔이 귀경이 업고 븍편으로 깁흔 곳의 니니 높흔 무어시 방이 삼십 보 고 두어 길 높희라 우 탑을 무어시 면의 층층이 난간치 삭이고 조고만 블샹을 틈틈 안쳐시 탑 빗과 블샹이 다 금빗치러라 극히 황홀여 남편으로 조금만 문이 이시니 문 우영낙(永樂) 십이년구월 초일일 짓다 삭엿더라
244
문을 열고 드러가 누른 휘장으로 면을 막고 가온 블샹 나흘 안쳐시며 알 큰 그 노아 옷 담아 야흐로 블을 혀시니종악묘의셔 보던 바와 더라
245
동편 리 오니 오 층의 지나 어둡기 칠야(漆夜)과 다지 아닌지라 눈의 뵈이 바 업고 손의 어져 다리 편으로 조차 집고 올나가 다리 면으로 트러 오게 엿지라
246
장 이윽히 올나가더니 하빗치 우흐로 져기 새야 빗최니 이 상풍이라 탑 밧그로 나오 굼기 겨오 사의 몸이 용납(容納)고 밧긔 나셔 져근 탑을 세워 굼글 리왓더라
247
븍으로 문을 나오니 면을 라보 안계(眼界) 광활(廣闊)여 동으로 황셩 안을 구버 님고 셔흐로셔산을 졍이 여 알프로 믈흐로 층층 뉴리 버려시니 이 댱관이러라
248
탑 우 져근 탑이 이시 각각 오방(五方)을 응야 세오고 길 삼 댱(丈)이오 공교 삭임과 긔묘(奇妙) 장엄이 곳의 보지 못던 배러라 탑 남편으로 셕가산을 무어시며 셔편으로 여 간 집을 버려시 당즁(莊重)여 누른 기와집이 이시니 이 즁[궁]이라 더라
249
이윽이 구경다가 슈 밧비 모라셔직문을 드니 오히려 놉핫지라셔안문을 지나고 새문을 드러옥동(玉蝀)의 올나오룡졍(五龍亭)을 다시 둘너 보더니경조츈운(瓊島春雲)과태악쳥패(太液淸波ㅣ)연도팔경(燕都八景)의 두 가지라 탑(白塔) 이 조산(造山)을 경치라 일니 이 져녁 안개 산기을 두고태지(太液池)은 믈결이 희미 바람의 문 니니 우연히 니럿다가 두 가지 긔이 경(景)을 더 어드니라 관의 도라갈대쳥문(大淸門)안흘 지나니 문을 임의 닷더라
250
져녁의쥬부(付子) 니러 닐오됴션샹 쥬 믈건을 초일 진시(辰時)의 반(頒賜)고 셤나(暹羅)신은 초오일 쥬기 졍여시니 초일통관이 신을 인도여 오믄 알 니러 기리라 엿더라
252
관의 머므다 도든 후 삼 신이 관복을 초고졍관(正官)이십칠 원(員)으로 더브러동화문(東華門)으로 조차오문(午門)알 니러 동편 의 셔고오문을 당즁여 큰 탁 노코 샹 쥬 믈건을 다 핫다가 미 삼 신이 알프로 쥴노 고졍관은 뒤흐로 쥴노 럿지라홍노시명찬(命撰)으로 챵(唱)을 브거 세 번 고 아홉 번 고두(叩頭) 마 마 챵을 여 알프로 나오라 거 다시 러 안니대와통관이 례로 탁의 노힌 믈건를 밧드러 쥬지라 밧기 세 번 고 아홉 번 고두고 인여 례로 믈너 나오니 아국 샹(賞) 타기 젼의 샹 타 쟤 이시니 이몽고사이라 며 샹 쥬 믈건이 아국과 다미 업지라 샹 쥬 가지 슈통문관지(通文館志)의 셔이 잇지라 다시 긔록지 아니며 은은 누른 무명으로 쥬머니 지어 각각 너허시 은마다 도셔(圖書) 쳐시며 비단의 마다 맛타 신하 일홈을 슈(繡) 노핫지라 마다 동지 신의 샹 쥬 거시 녜 네 가지 샹이 되니 곳 동지(冬至)와 원초(元初)와 셩졀(聖節)과 셰례(歲禮)라 혹 샤은(謝恩)을 겸면 다 가지 샹이 되니 이번은 샤은을 겸엿지라 지라 다 가지 상이 이실 거시로 셩졀(聖節) 방믈을 아니 밧고 그 외의 동지(冬至)와 원조(元朝)와 샤은(謝恩) 방믈을 다 아니 밧은 거시 되어시니 년공(年貢) 밧긔 샹이 업니 곳 가지 샹이라 대개 셩졀 방믈은 비록 태샹황샹젼의 니려시나 미쳐 밧은 비답(批答)을 못 리온 고로 황뎨 신여 비답이 미만지라 겸여뎡유년젼녜 잇 고로 아니 밧기로 엿고 각(內閣) 의논이 니 셩졀 방믈 밧긔 여러 가지 방믈의 인표문(表文)의 다 하례(賀禮) 말이 이시니 이 당려 하례 바드미 녜의 대긔고 표문의 쥬홍(朱紅)으로 밧은 비답을 리오 젼녜라 이 변통이 어려온 고로 일톄로 아니 밧기로 쳥엿더니녜부로셔 엿와 셩졀 방믈과 그나마 세 가지 방믈을 다 머므러 후년(來後年) 년공을 삼게 엿지라 도로 가져가기 면니 공(貢使)의 다미 진실노 젹지 아닌 일이러라
253
처음은 신의 졍문(呈文)을 인연여 이리 된가 여더니녜부와 각이 임의 신의 졍문여 을 드럿 고로 졍문을 기리지 아니고 념일일(念一日)의 의논여 엿와 념일(念四日)의 황뎨 비답을 리왓고 졍문의 황뎻 엿지 아녓다 며 이번 비록 가지 샹이 될 거시나 아니 밧 것도 머믈너 주엇 고로 가지 샹을 더 쥬어 두 가지 샹이 되게니 특별 은전(恩典)이라 며 신의게 혹 즁의 낭될가 념녀여 샹을 더 쥬어시나국왕 대졉 도리로 더 보 거시 업다 니역관 사이녜부 샹셔긔균(紀畇)의게 이리 드럿노라 고 뎐더라
254
이날 녜부의셔 엿운 글을 어더 보니 와시 금년 됴공이경셩의 니 그 국왕(國王)과 신의게 샹쥬 믈견을 져즈음 신(臣)의 을노 말아마 초 엿와 오문 알셔 바 쥴노 엿더니 셔히 샹고오니됴션국(朝鮮國)의셔 금년 방믈 나온 거시 다 가지의 기 즁 태샹황긔 나온 셩졀 방믈 가지 맛당히 신의게 븟쳐 돌녀보 거시라 샹쥴 믈건도 가지 덜고 다만 네 가지 샹을 쥬기로 임의 신등이 엿와 감(鑑)시믈 닙왓거니와 조 각의셔 엿온 말을 셔히 피오니 동지와 뎡됴와 샤은 세 가지 방믈을 머믈너 이십 칠일 후 공믈(貢物)을 삼고 오직 셰례[폐](歲幣) 가지 외국의셔 녜 나오 거시라 표문 안 하례 귀졀이 업니 맛당히 밧을지라 엿지라 임의 세 가지 방믈을 머므러 이십 칠일 후 방믈을 삼은 져즈음 긔 의논여 태샹황 셩졀 방믈을 돌녀 보내여지라 거 긔 머믈고 가지 샹을 더 쥴지라 업여 황지(皇旨) 기리오며 신을 잔던 젼녜 잇 당여 맛당이 졍지고 샹을 준 후 즉시 본국으로 돌려보여지라 여시며 곳태 오 황지 밧와 셩졀 방믈을 머믈너 후 방믈을 삼으라 엿더라
255
이젼은 궐의셔 샹을 탄 후녜부의 나아가 하마연(下馬宴)을 지나니 디 린 후 잔란 말이오 관(館)의 도라온 후녜부 시랑(禮部侍郞)이 잔 와 관으로 니면 신이 즁문의 나가 마자 븍벽의 안치고 군관역관은 신 안 뒤 셔벽으로 안 후 차 보식 먹이고 차후의 각각 샹을 드리 실과 밧근 다른 거시 업고 실과 물니며 양육(羊肉) 믄 것 덩이식 노코 슐 세 슌(巡杯) 나오고 그만여라 고 파 후 고두(叩頭) 녜 이시시랑이 맡게라 니 이 샹마연(上馬宴)이니 게 오 잔란 말이라 하마연이 이 모양이로 이번은 다 폐니라
256
즁의 (蔘) 갑슬 삼 오십냥으로 결가(決價) 엿다 니 계유 냥 면나 져의 비단 물화 갑슬 냥의 이십냥식 도드자 니 이곳 머[] 법이 은(銀)을 쥬지 아니코 각 비단 물화로 갑 쳐쥬 슈쥬(水紬) 필의 뎡은(正銀) 두 냥을 치니 아국 엿 냥 돈이 되 나온 후 너 냥 지기 밧다 니 이럭 구럭 니(利)가 업다 더라
257
샹의원(尙衣院)무역(貿易) 오(五色) 삼승(三升)은 소즁(所重)이 잇 거시오 이곳 파 푸 여러 곳이 아니라 장놈이 아국 물졍을 짐쟉 고로 무단 이 갑 도도와 달나 로 아니 쥬면 못 팔게 되엿다 여 구디 팔기 허(許)치 아니니 갑 도도와셔 후례[폐](後弊)의 관계 일이오 삼승을 아니 사기도 못지라샹판사(上判事)윤갑죵·김경위 샹의원(尙衣院)의 무역을 맛타 왓더니 엇지 쥴을 아지 못여 내게 와 고 갑 도돌 밧긔 엇지 길 업다 거 내 의의 혜오 졔 이젼 파던 거 홀연이 갑 도도려 믄 갑시 만하도 반시 사 갈 쥴노 알오미니 극히 통악(痛愕) 지라 그 계교 치고져 여 닐너 오 아국의 두고 은[온] 무명이 잇고 각 믈을 못 드릴니 업니 삼승 무역은 못 밧[에] 업지라 갑 의논치 말나 니 십여 일 젼의 이 분부 일이라 삼승 푸의 다시 갑 말을 아니코 기(行期) 날노 격니 갑 도드려 뎐 쟝 공연이 아국의 마다 파뎐 누금(屢百金) 흥졍을 못게 된지라 이 날상판드러와 고 그 장 이젼 갑스로 흥졍을 여지라 고 야흐로 졔 캉의 나러 쳥다 거 내 우셔 오 졔 임의 이젼 금로 쟈면 므 일 아니 무역리오 니라
258
이곳은(銀) 법이 뎡은(丁銀) 냥으로 시샹은(市上銀) 닐곱 근을 밧고며 십샹텬은십(十上天銀)으로 시샹은 아홉 돈을 밧고니 시샹은 혹 무[문은(紋銀)]니라 닐니 샹시상(上時賜)라 연시(燕市賜)라 분별이 이시니 샹시 황뎨 샹쥬 은이오 연시뇽경져[市場] 흥졍 은을 니미라 쇼쳔 밧고논 법은 됸흔 졍은 냥의 쇼쳔 여 냥을 밧고며 됸흔 텬은 냥의 혹 열 냥을 밧고며 시은 냥의 열 냥 닷 돈을 밧고 이 뎡은 냥은 아국 석 냥이 되고 십샹텬은과 밋 연시 냥은 아국 돈 셕 냥 닐여 돈이 되고 샹시 냥은 아국 돈 넉 냥 두 돈이 되니 쇼쳔 여 냥이 아국 돈 석 냥이 될지라 은과 돈 법을 일노 밀위여 아너라[피휘1]
260
관의 머므다 부역(副譯)뎡현이녜부샹긔균을 보고 도라와 슈작을 강 뎐더라
261
긔균은 본하간(河間)사람이니 글과 글시 져머셔브터 졔류(儕流)의 일홈이 잇고 텬셩이 츙후(忠厚)여 됴뎡의 의쟝(倚仗) 라 며 아국 사을 별노 관(款待)여 은근 을 뵈지라홍판셔 냥회(良浩)년젼의샹로 드러왓실 의긔균과 더브러 여러 번 샹죵고 시 슈챵(酬唱)여 사괴미 쟝 돗탑고 도라간 후도 셔신을 왕복지라 이 날뎡역(鄭譯)과 한훤(寒暄)을 파 곳홍판셔안부 무 혹이계 션(耳溪先生)이라 일며 혹 샹공(相公)이라 일니 이계 홍공의 별호(別號)오 샹공이라 믄샹로판부직함을 비러 갓 고로 졍승이라 이미라면역이 태샹황 인산(因山)의 긔약을 무니긔(균)답왈 구월 십오일노 날을 뎡여역쥬: 동능(易州東陵)의 장 지언다 거 면역이 무 묘호(廟號) 어 예 올리뇨 답왈 묘호와 시호 뎡여시니 은고종슌황뎨(高宗純皇帝)라고종두 곳 태샹황 기치신 이라 인산 젼 묘호 올니니 후의 귀국의칙나걸 거시오 인산 후 부태[터] 묘 후로 칙 갈 듯니 그 긔약이 구월 십월 이의 이실 다니 일년 세 번 칙(勅行)이 폐(弊) 젹지 아닐 지라 드 극히 민망더라
262
뎡역이 도 무러 오 경하례 방믈을 다 머므혀 이십 칠월 후 년공을 삼지라 이십 칠월 이젼은 아국의셔 (使行)이 드러올 젹의 쟝 경하(慶賀) 방믈을 초와 나오지 아니 라 긔 답왈 이 일은 내 지젹여 답지 못리로다
263
비록 가져와도 아니 바들 쥴을 아나 귀국의셔 일노 방믈을 나오지 아니튼 못 다 더라 니 말이 진실더라
264
면역이 년젼의 바독 보긔샹셔 쥬엇더니 이날 갑(匣冊)을 뵈야 왈 바독이 진실노 긔이 보라 극히 랑더니 내 벗범대 뇽의 비러간 되어 오후범공(范公)이 죽은지라 맛 바독 간 바 므니 심히 로다즁국바독은 흑을 다 구어 그 고로 족히 귀 거시 업고 귀국 바독은 본질이 쳔연지라 이러므로 일홈을쳔연긔(天然碁)라 여 이 의 긔록엿더니라 고 인여 그 갑을 드러뎡역을 쥬더라 거 이리 가져오라 여 보니 긔록 라긔샹셔의 보고 듯던 바 올닌 거시오 일홈을난양슈록(灤陽隨錄)이라 여시니 난양은열하(熱河) 니른 말이라병진년녀름의 황뎨 뫼셔열하의 가 과하 각 바 긔록노라 고 슈녹이란 말은 니어 긔록다 말이니 이 밧긔 여러 권 긔록 잇 쥴을 짐작지라 보암 말이 간혹 잇더라
265
뎡역왈 을 가져가 거시 금녕(禁令)이라 보기 다면 쟝 노즁(路中)의 리라 더라
266
져젹의니광직먹 궤 구경 로 드려와시니 곳 태샹황의 졔도와 일홈을 뎡여 글닌 라 남그로 져근 궤 글고 다 셜합을 워 셜합마다 비단 방석을 고 먹 모양로 굼굴 파 노하시 셜합의 다 쟝식이시니 합하여 스믈 다 쟝이 낫낫치 모양과 일홈이 다 다고 졔되 극히 졍묘지라 갑 삼십 냥 은 달난다 니 대개 피인의 매의 초등(超等)미 이다 더라[피휘1]
268
관의 머므다 식후의쥬부 니로니 오됴션국의 도로 돌녀 보 표문(表文)은 맛당이 신의게 붓쳐 보낼 거시니통관이됴션대통관(朝鮮大通官)을 거리고녜부의 니러 졍슌라 엿더라
269
공졔 이십칠 일을 지낸 후의 황셩 안밧희 됴(朝士) 군민이 샹모 말이와 빗난 의복이 평일과 다미 업 아국은 본 녜의지방(禮義之邦)이라 이지라 샹시와 져기 다믈 뵈거시 올흘 여 관의 구지 드러이셔 젼부터 셩 구경던 바 번도 가 보지 아니 여시나문묘(文廟)의 알셩(謁聖)은 구경과 다른지라 이날샹부가 보기 졍거 내 라갈 관복을 초고 슈 셰내여 고 관문을 나니군관 · 역관다 사이 좃더라
270
옥하슈(玉河水)셔편으로 말암아 가다가 동으로 향여 큰 길의 니러 져기 다가 북편으로 큰 골이 잇고 골의 긴 궁장(宮墻)이 쳐시며 큰 문이 당즁(當中)여 이시니 동안문이라 동편의 궁쟝문이 잇고 남편으로 큰 길 놉흔 담이 막히고 담안희 프른 기와 니운 집이 못 번려니 므 공(公廨)가 시부더라
271
쟝안가패문(牌門)을 지나 북으로 여 슈리(數里) 니 이 큰 길이니 남은 즁무문(重武門)이오 북은 안졍문(安定門)이오 길 동편의 뉵텽[현]방(育賢坊)이란 패문이 이시니 이슌텬부라슌텬부잇 집이라 며 슈리 여 셩형방이란 패문을 조차 동으로 이윽히 니 남으로 향여 큰 패문 셔히 이시니국감셰 금로 더라
272
가온대 패문을 드니 븕은 목을 느르고 사을 왕게 여시니 남편으로 담을 리오기 뎨왕묘 치 엿더라
273
목 안히 퍽 너고 동으로 패문이 이시니 디경문(持敬門)이라 현판여시며 문 안 남편으로 치당이란 집이 잇더라
274
이 안흔 큰 문 안히오 즁문 밧기니 좌우로 비 무슈히 세워시니원나라·대명과 쳥지 진의 일홈 긔록 비러라 즁문의 세문을 내여 졍문은대셩문이라 고 문 왼편의 비원나라대덕 년간의공대셩지셩문션왕(大成至聖文宣王)시호(諡號) 더은 됴셰(詔書)오 올흔편의 비슈[원]나라지슈 년간의공부모 츄증 됴셔며건륭황뎨문묘 즁슈 비 세워시니 대강 니탕금(內帑金)이십여 만 냥을 내여 젼됴(前朝)의 녯 졔도 새롭게 고졍젼(正殿)의 이젼은 프른 기와 니웟더니 누른 기와로 곳치며 졍뎐과 여러 문 현판을 다 곳쳐명죠의쟝춍의 녯 일홈을 밧고노라 여시며 졍뮨 두 편 익낭(翼廊)의셕고(石鼓) 각 다식 노하시니 셕고 돌노 근 븍 일홈이라 다 젼(篆字)로 사기고 긋 비 세워 셕고 착양얏더라
275
세 문믈[을] 다 고 졍문 셔편의 져근 협문이 이시 잠갓지라 직흰 사이 열쇠 가져와 여니샹판(上判事)마뒤부아 쳥심환을 주고 열닌다 더라
276
문을 드러가니 굿보 사이 노니 만흐 헌옷과 무든 치며 겨집아희 무슈이 드러오니 극히 셜만(褻慢)더라
277
묘졍히 심히 쳥슈고 늙은 측 여러 (株) 좌우로 섯더라
278
졍젼을 직흰 쟤종녀피(棕櫚皮)로 근 돗 졍뎐 아 왼편의 베플고 녜케 거 (四拜)고 뎐샹의 오니 현판의션묘(先師廟)세 시며 무오고 졍뎐을 세워시니 놉희 길이 되고 삼면으로 난간을 둥글게 둘너 돌이 옥빗 고 알프로 졍노 통여 층계 노하시태화뎐(太和殿)뒤 노흔 모양과 가지오 층계 니어 졍노 도도와 즁문의 게 여시며 안흔 다 박셕을 가릿더라
279
졍뎐문을 열고 드러가 신위 앙쳠(仰瞻) 북벽 밋 뫼시고 누른 쟝으로 가리와시니 졍뎐을 직흰 쟤 신을 신고 감실(監室)의 올나가 댱을 거두니 극히 블경더라
280
신위 븕은 남긔 금로 으 지셩션공(至聖先師孔子)라 고 겻만쥬글노 시니공엇지만쥬글 아시리오 신령이 흠향치 아니실 더라
281
위패 탁 노코 솟과 슐준을 노하시니 다쥿나라졔도 모방 거시라 이 황뎨 안흐로셔 여 보 거시라 며 슐준 두 좌의 다 금빗치오 나모로 근녕지초 잣더라
282
탁 알프로안·증·· 동셔로 향(配享)여시니안위패 복셩안(復聖顔子)라 고증패 죵셩 증(宗聖曾子)라 고위패 슐셩(述聖子思)라 고 위패 아셩(亞聖孟子)라 으되 위패 동편안· 서편증 라 좌우 바람벽 밋흐로 십칠[철]을 논화 뫼셔시 동편은 유약(有若)을 올녀 뫼시고 셔편은쥬(朱子) 올녀 뫼셔 열두 위 되얏지라태(太學)의 잇 션려 어 올녀 뫼셧뇨 무니 답왈쥬옹뎡(擁正) 년간의 올녀 뫼시고유(有子)건륭(乾隆) 십오년의 올녀 뫼셧다 며 감실(龕室)을 간간이 막고 다 누른 댱을 리와시며 독(櫝)을 그러 덥지 아녓더라
283
열 두 위 위패 다 성현 아모라 고 후셰예 츄증(追贈) 벼을 아니 시니 이 다명셰종황뎨(世宗皇帝)의 졍 졔되러라공위패 뫼신 감실 두 편 기동의 금로 두 쥴 글을 남게 삭여 거러시며 감실 우 쟝 놉히강희(康熙)와 옹졍(擁正)과 밋 태샹황 어필(御筆)을 라시 강희 민미유(生民未有)라 네 고 옹졍은 만세표(萬世師表) 네 고 태샹황은 여텬디참(與天地參)이라 시며 뎐(殿內)의 종녀 겁질노 돗 그라 븬틈 업시 라시니 그 빗치 검고 븕어 갈기털 더라
284
졍뎐(正殿)이 너븨 아홉 간 집이로 간살이 크기 이십 간이 남아 될 고 뎐 젼혀 쥬홍(朱紅)으로 며시니 문 안 드러셔 날 빗치 이며 븕은 빗치 눈의 바더라
285
졍뎐 좌우로 가각 슈십 간 월랑을 짓고 녁 셩현을 향야시니 쳥의 뉵농기란 션 향얏다 며 좌우로 여러 비 이시니 다 비각이 잇고 혹 누른 기와로 이어시니 비졍통(正統) 구년삼월 초 일일의태을 새로 셰온 비오 그 나마 강희와 밋 태샹황의 세운 비러라대셩문안의셕고(石鼓)열을 동셔로 각 다식 버려 노와시니 대쇠 갈지 아니 며 놉희 쥬쳑(周尺)으로 자 셔너 치 고 너븨 아람의 벌 듯니 그졔되 즁동이 져기 브른 며 다{피휘1]비슷더라
286
셕고쥬 션왕이 나라이 어즈러온 긋 니어 텬하 다려 즁흥고 뎐하 졔후 모화동도의 산영고 그 젹을 비의 긔록여시니 형샹이 북흐므로 셕고라 이며 그 글시 젼오 글은 송(四字頌)이라대흥현디란 의 여시 셕괴태극문(太學戟門)안 이시니 처음의 진창 뭇첫더니 당나라 경셩이란 사이 갓다가 복셩현 부묘의 두엇다가 나흘 일헛더니송나라황우(皇祐) 년의 민간의 가 어드니 그 이에 니라대관(大觀) 이년의 경경됴로셔 변경의 옴기 쳐음의벽옹(辟雍)의 두엇다가 후의보화뎐의 옴기고 글의 금을 메웟더니뎡샹 이년금인(金人)이 시러금연경의 옴겨와 금을 더 내고왕션무(王宣武)의 집의 두엇다가 후의대흥부(大興府學)의 옴겻더니원나라 대덕(大德) 십이년의우집이란 사람이대도 교슈(大都敎授)야실 졔 진흙 속의셔 어든 배니 비로소 이곳의 옴겨 두엇다 더라
287
북을 갑 을 병 뎡 무 기 경 신 임 계로 례로 막혀시니 글 대 뉵 오십칠의 다 박낙(剝落)고 남은 거시 스물 다 라 더라
288
먹을 칠고 박아 내여 셰샹의 뎐니 이러므로 돌빗치 검어시며 민간의 잣다 거 졀구 파 곡식을 턴 모양이 오히려 텬연(天然)더라
289
당(唐)젹 한퇴지(韓退之)와송(宋)젹 소쳠(蘇子瞻)의 셕고개(石鼓歌) 다 이 두고 지은 거시니 가히 고젹(古蹟)이라 니지라 혹 니쥬 션왕(周宣王)젹이 이쳔 년이 남아시니[넘어시니] 그 젹 거시 어이 지금 뎐리오 고 의심나 이것시 셔화서화(書畵)와 달나 파락(破落) 길이 업고 금은 보화와 다니 사이 갓다가 업 거시라 만년이 지낸들 어이 업리오 셕고 겻 져근 비 나흘 셰워시니 셕고의 글을 후셰의 글로 옴겨 삭이고 글마다 쥬(註) 내여 알게 여시니협산 반젹이란 사의 긔록 배러라 보기 지셩문으로 도나와 북으로 여태:졍뎐잇 뎜을 져기 지나 셔흐로 조금 도라 북향 큰 문을 드니 이벽옹(辟雍)이니 벽(辟)은 뎐(天子)의 션 치 곳을 일콧 일홈이라태셔북편의 이셔태과 셔로 엿더라
290
안히 남북은 삼 보의 지날 거시오 동셔 일 오뉵 십보라 당즁(當中)여벽옹을 베러시니 방으로 물을 돌너 못 글고 못 우희 안밧그로 돌난간을 둘너 월랑형(月廊形)이 되게 고 동셔남북으로 못 우희 다리 노하 안흐로 드러가게 여시며 당즁여 집을 셰오고 면으로 분합(分閤)을 베퍼시며 집안흔 바닥의 다 벽돌을 고 큰 탑을 노하시 우희종녀(棕櫚)겁질노 근 돗 덮헛더라
291
못 북편은 이륜당(彛倫堂)이란 집이 이시니 아국 명뉸당(明倫堂)과 튼 집이라 집 졔되 웅쟝고 븍편 바람 벽을 의지여 큰 비 슈십 좌(座) 세워시니 이 황뎨 어필노 삭여 졍문(正文)을 거시오 누른 댱(帳)으로 젼면을 리오고이츈[륜]당세 현판여시며 현판 겻 문 츙신(文行忠信) 네 와 복쥬유셩[서](福疇攸敍) 네 좌우로 라시니 다 태샹황 어필이러라
292
이츈[륜]당동셔로 각각 익낭(翼廊)집이 이시니 왼편 익낭은 국됴교(國子助敎) 잇 집이라 됴교(助敎) 사이 므 급 문셔 샹고기로 손 졉을 결을치 못며 올흔편 집은 북편 벽의 거믄 돌을 세오고 돌의 괴화나모로 삭엿고 편의 글을 삭여시니 글과 그림이 다 태샹황의 어졔라 그 글 귀예 오초식지원셰(初植至元世) 쳐음시[지]원 예 심어영신미년(再榮辛未年)신미년의 두 번 영화로왓도다그 글귀 밋 오신미년은령군[궁](慈寧宮)뉵십셰라 여시니 대개 이 집 알 늙은 괴화남기 이셔 가지 나토 업고 굴근 쥴기도 다 말나 앙쟝 모양이오 남모불휘로브터 움이 나 못 무셩엿지라 면을 둘너 단(壇)을 핫더라
293
이 남모원(元)젹허영[형](許衡)이란 사이 심어시니허영의 별호노(魯齋)오원젹의 놉흔 션라지원 년간의국(國子師)벼노 이실 예 이 나모 납히 픠니령궁은 곳건륭황뎨모후(母后)라 그 예 나히 뉵십셰 엿 고로 샹셰(祥瑞)라 여 글 짓고 그림 그려 그 젹(事蹟)을 표미러라이츈[륜]당좌우로 월랑(月廊)이 각 뉵십 이간이니 왼편의존경당· 양심당·슝지당(崇智堂)세 현판을 달고 올흔편의고당(學古堂) ·졍의당·광업당(廣業堂)세 현판을 다라시며 두 편 집 안 다 비(碑) 셰오고 십삼경 졍문(正文)을 삭이고 간마다 비 세식 셧지라 합여 삼 닐은 두 비니 그 물역과 공역이 가히 텬의 긔구 짐쟉너라
294
월랑 머리로 동셔의 각 두 집을 니어 지여시 동은승건쳥이오 셔박텽이라승건쳥문틈으로 여허보니 그 안 침방을 깁히 며시 문 얼굴을 다침향(沈香)·강진향(降眞香)으로 글고분당지(粉糖紙)로 도여시니 눈이 부시이지라이츈[륜]당동편으로 방을 며 이와 트니 황뎨벽옹의 거동면 안 곳이라 더라
295
못 알 큰 패문을 세우고 안은 졀관(學海節館) 네 고 밧근 환교교(環橋敎澤) 네 시며 두 겻 다 누(樓) 짓고 각각 가죽 북과 쇠북을 라시며 큰 문이 패문 밧그로 이시 다 닷고 츌입 쟤 다 북편 협문으로 조차 더라
296
태셔편의옹화궁(雍和宮)이 이시니 이옹졍황뎨원당(願堂)이라 긔이 귀경이 만타 나 근 을 드리지 아닌다 거 그 곡졀을 무니 이 구경 의 라 간 사들이 어즈러이 구 고로 괴로이 너겨 문금(門禁)을 엄히 다 더라
297
관으로 도라올셩현방을 지나 져기 더니 큰길 의 거리마다 사이 몰겨 섯지라마뒤고여 오 이 환슐 놈이 사을 모도와 졔 조 시험고 돈을 밧다 며 의복 파 져 지내니 다 샹의 닙망뇽(蟒龍)의며 온갓 션명(鮮明) 의복을 두 쥴의 걸어시니 보 찬란고 그 밧 근 의복도 길의 뫼 치 하시 여러 사이 가온대 드러가셔 서로 옴겨 흐며 두 손으로 가지식 들고 목소 극히 놉혀 노래 브로시 므 말을 무슈히 을픈 후 편으로 더지면 다른 사이 바다 흐니 대개 이 옷시 품슈(品數) 놉고 갑슨 즈니 브 사 닙으라 말을 곡됴(曲調)로 여 사으로 여금 우읍도록 니 이러므로 그 소 별양(別樣)즛굿게 곳은 사이 무슈히 모혀 셔고 사이 만흐면 더욱 즛내여 소 놉히니 혹 목이 면 여럽셔 거동이 우읍다 더라
298
육현방(育賢坊)의 나러숑·경인과·치형이 러져슌텬(順天學)의 드러가니문승샹소샹(塑像)을 보려 미러라 황셩 안희 두 고을이 이시니 동편은대흥형이오 셔편은완졍[평]현이니 다슌텬부의 쇽여시니슌텬부 아국한셩부트며 지부벼을 두어시니 아국경긔감튼 벼이라 셩 외 셩을 리고 션 치며 이곳은슌텬부이니 그 안희 셩현 위패 봉안고슌텬부의 쇽 고을의 고로 유명 사을 졔니 이 니른향현(鄕賢祠)오 션 과거 가음아 집이라 아국향교와 흔 집이러라
299
문승샹의댱(祠堂)은 북[부](府學)동편의 잇다 니문승샹은 곳송나라졍승 문텬샹(文天祥)이라 츙졀이 쳔고에 유명 사이니송나라이 위급 당여 븬손으로 샤직(社稷)을 붓들고져 다가 내 시운(時運)을 이긔지 못여 나라히 망고 몸이 사로잡흰 배 되니원나라군신이 그 츙졀을 어엿비 너겨 브 항복 밧고져 여 가지로 달 듯지 아니고뇽뇌(龍腦) 키고 칠일을 굴머 죽기 도모니원셰조흘필녈(忽必烈)이 그 을 앗지 못 쥴을 알고식[시]시(柴市)관[란]셔 죽이니 이 날은원나라지원(至元) 임오십월 초구일이라 바람이 크게 블며 모래니여 날이 어두오니 궁즁의 셔블을 혀고 니지라원세죄장 뉘웃쳐 금광녹대부 태보 즁셔령 쟝사 여릉군공(金紫光祿大夫太保中書令長沙廬陵郡公)을 츄증고 시호를츙무라 고식시 단을 무호고왕젹응(王迪應)을 명여 신쥬 고승상발니(拔里)로 여금 졔니 의 회호리 바람이 니러나 신쥬 거두쳐 구 속의 오고 우례소 은은굉굉(隱隱轟轟)여 노여 소 고 날이 더욱 어두온지라 이에 신쥬 고쳐송됴 소부 우승샹 신국공(宋朝少傅右丞相申國公)이라 니 하이 비로소 쳥명지라 명일의구양부인(歐陽夫人)이동궁(東宮)으로 조차영걸[거](靈車)을 어더 슈장(收藏)케니 강남 의(義士) 열 사이 관을 메여 나가 도셩(都城)쇼남문밧 오리 초장(初葬)고 그곳을 보람엿더니대덕(大德) 삼년의 공의 양문승(文丞)이북경의 니러슌셩문안희셔 농 사의 겨집을 만나니 이 공의 녯 죵 죡홰라승을 위여 그 초장 곳을 즈니 그곳의 탑들이 잇고 져근 비 이셔 신공 두 삭엿지라지원 이십년의녀릉(廬陵)의 귀장(歸葬)니라
300
이곳은 식[시]시라대명홍무 구년의북평부(北平府事)뉴승이 비로소 쳥여당을 짓고영낙(永樂) 뉵년의태샹뉴리졀이 명을 바다 츈츄(春秋)로 졔게 얏다 더라
301
치형이 도라온 후 드니문승샹당이계유 삼간이오 이 심히 좁고묘당안흐로 만고강샹(萬古綱常) 네 시며소샹(塑像)은 홀(笏)을 잡고 먼 보 형상이오 미목(眉目)이 소랑(昭朗)며긔샹이 단아(端雅)며 닙은 것 관(冠帶)오 것은 북[복]두(幞頭) 고 금관(金冠)도 비슥니송나라졔된가 시부며소샹아 두어 자 거믄 돌이 이시니문승샹화샹을 삭여시소샹과 극진이 흔지라문승샹이 죽기 님여 션 졀의 기록히 너겨 스로 니로 이튼 사의 화샹을 엇지 뎐치 아니리오 고 급히 칼흘 혀 겻 잇 돌 우 그 화상을 모방다 니 이 곳 그 션의 그린 거신가 십더라
302
소상은 남향이오 동편 벽의 여진 비 둥굴게 다듬아 워시니 녯운휘 장군(雲麾將軍)의 비오니웅(李邕)이의 글시라 박낙박락(剝落)여 글 분명이 아지 못고운휘장군은 어 사인지 아지 못다 더라
303
육현방을 지니 길 샹여 긔구 곳곳이 노하시니 이 아국샹두도가흔 집이라 상여 별노 큰 거 웅장니 길 네다엿 이오 몸픠 두셰 우움이라 쥬홍 칠을 찬란이 여 소견(所見)이 극히 홀난고 북틀 모양을 그라 크기 간의 듯 거시 이셔 쥬홍(朱紅) 칠고 도금 장식(裝飾)을 두로 박아시니 이명졍(銘旌)을 셰오 틀이러라
304
이 다경산(景山)으로 태샹황을 빈(殯) 젹 보던 것과 대되[쇠] 조금도 다지 아니타 다만 누른 빗치 아니러라북경일이 온 거시 다 간편 홀노 상여 긔구 이갓치 쟝대니 긔이더라
305
옥하슈(玉河水)편으로 도차 길 큰 문이 잇 그 안희 둥근 탑이 잇거 무니 이 옥하관이니 녜로브터됴션신이 드 곳이러니 즁년의악나의게 앗기여다 니악나 한어로어르쇠라어르쇠흑뇽강븍편몽고의 죵낙(種落)이니 크이 별양(別樣) 크고 극히 흉악 인물이다 이러모로대비달(大鼻達字)라 일로니 아국의 나오 셕경(石鏡)이 다어르쇠소산(所産)이라역관홍복이 오어르쇠셩졍(性情)이 녕악하여 황뎨도 심히 괴로히 너기고 됴공(朝貢)을 년년이 아니 군 극히 강포하므로 변방의 침노믈 념녀여즁국의 츌입기 허고 믈화(物貨) 매기 통니 문 밧글 나면 흥셩억(興成抑賣) 거시 만코 혹 사을 샹해오며 겨집을 겁박더니 십년 젼의 여러 놈이 길 나와 사을 텨 죽이고 물을 겁탈지라 황예[뎨] 듯고 크게 노여대쳥문(大淸門)의 친히 안자 군 모호고 위의 셩히 혀 두어 놈을 목을 버히니 이 후 쟉난이 져기 낫다 거 이졔 잇냐 무니 오이죵낙을 본 볼모로 잡아 두어시니희 잡아 둠과 흔지라 다만 이놈은 대국 모양으로 의복을 여 닙은 고로 혹 분변치 못 시방도 여러 놈이 잇다 더라
306
슈역김츈셰긔상셔(紀尙書) 니별고 도라와 그 슈작을 뎐더라
307
김역이 무 태샹황 부태묘 길일이 어 되리오긔답왈산릉(山陵)의 일을 못고 황샹(皇上)이 황궁오신 후 그 이튼날 곳 부태묘 니 이 녁됴(歷朝)의 뎡 법졔(法制)라 며인산(因山)일을 무니 구월 십오일노 일이 되여시니 오히려 완졍치 못다 며 오 묘호(廟號)와 시호(諡號) 올닐 긔약은 아직 졍치 못여시며 부태묘 곳 구월 념후(念後)의 될지라 귀국의칙나가기 어 될 쥴은 졍녕이 아지 못노라 니 어졔뎡역(鄭譯)의 드른 바와 가지러라
308
김역(金譯)이 무러 왈 쇼방(小邦)의 진공(進貢) 방믈을 임의 특은(特恩)을 닙어 머물게 엿지라 녜부로부터 맛당이 문(咨文)을 지위(知委)여 랴긔(紀)왈 맛당이 귀국의 문지라 이젼의 이러 일이 이시면 몬져 긔별이 나간 후 동국 문을 기혀 드드여 머물너 후 방믈의 이슌[쥰]더니 이번은 네 가지 방믈을 다 황지(皇旨)를 밧드러 특별이 머물너 이슌[쥰]게 니 이 격외(格外)예 진렴(軫念)시미라김역이 오 드니 이십칠일 젼은 황샹이 하례 밧지 아니신다 나 쇼방의 령일 대국 셤기 졍셩으로 써 금년 진공 방믈을 젼례로 나아오리로다 긔 왈좌뎐(左傳)의 닐너시 손이 녜 두 쥬인이 흰다 야시니 이 쥬인이 졍치 못 일이로다 이밧긔 여러 말이 이시 다 한만 슈쟉이라김역이 가기 고여 오 감히 오 슈응(酬應)므로 슈고 치지 못니 하직을 쳥노라긔왈 원방(遠邦) 손으로 더브러 슈쟉미 엇기 지 아닌 일이라 져기 오 말나 곤피(困疲)물 지 못노라 고 만류여 왈 일 니됴션은 다른 외국과 다른 지라쥬무왕이긔 봉여시니 만일 본즁국히 아니면 엇지긔로 여금 님군을 삼아 두어시리오 내 양 귀국 신으로 챵화(唱和)며 슈쟉 시러금 외국이라 여 간격을 두지 아니노라김역이 오 대국의 쇼방 보기 복(內服)과 치 도다긔왈 귀국이 본됴의 신복믈 장 몬져 지라 일노 귀국을 읏듬을 삼니 이러므로 됴뎡이 졉 녜뫼 특별 분 아니라 본국이 공근믈 황샹이 니기 알시 일이니라김역이 오 이번의 젼례 밧긔 가지 샹을 더 쥬시미 특은이라 감츅믈 어이 측냥리오긔왈 샹쥬 물건은 녜로브터 다른 외국의 비겨 별노 두터울 분 아니라 다른 외국은 날 반샹고 오직 귀국은 홀노 날을 뎡여 반샹미 다른 외국으로 여금 보지 못게 미니라김역이 오 더욱 감황(感惶)미 졀하뇨라김역이 묘호 무니긔왈 임의고종이라 여시니 본 맛당이고조(高祖)라 일 거시로고종이라 믄 황샹의 을 준미라 더라 고 피담던 조희 갓다가 뵈니긔균이 나히 팔십이로 필획(筆劃)이 졍여 노필(老筆)인 쥴 닷지 못며 슈쟉이 못 셰지라 이치 대강을 긔록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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