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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이 ─ C와 나 ─ 명월관(明月館) 지점에 왔을 때는 오후 일곱 시가 조금 지냈을 적이었다. 봄은 벌써 반이 가까웠건만 찬바람이 오히려 사람의 살점을 에는 작년 이월 어느 날이다. 우리가 거기 간 것은 우리 사(社)에 처음 들어온 K군의 초대를 받은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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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리점에 오기가 그 날이 처음은 아니다. 처음이 아니라면 많이 다닌 것 같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이번까지 어울려야 겨우 세 번밖에는 더 안된다. 나는 이런 연회석에 참례(參禮)할 적마다 매우 즐거웠다. 길다란 요리상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술도 마시고 요리도 먹는 것이 좋았음이라. 아니 그것보담도 나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기생을 볼 수 있음이었다. 친할 수 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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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나는 잠깐 나의 경우를 설명해 두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폐학(廢學) 안 할 수 없게 된 사람이다. 그것은 어느덧 이 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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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공부할 적에는 모범적 학생, 유망한 청년이란 칭찬을 들었었다. 기실 그것이 허예(虛譽)는 아니었다. 남은 히비야(日比谷[일비곡]) 운동장에서 뛰고, 아사쿠사구(淺草區[천초구]) 놀이터에서 정신을 잃을 때에도 나는한 자라도 알려고 하며 두 자라도 배우려 하였다. 나는 공일도 모르고 휴일에도 쉬지 않았었다. 나의 유일의 벗은 서책뿐이었다. 나에게 위안을 주고 오락을 주는 것은 오직 지식뿐이었다. 창 틈으로 새어 오는 찬바람에 곤(困)한 잠이 깨어지고, 선선한 달빛이 찬물처럼 외로운 벼개를 적시는 새벽, 사향(思鄕)의 눈물을 뿌리다가도 갑자기 머리맡에 두었던 책을 집어 들었었다. 이대도록 나는 공부에 열광적이었다. 공부만 하고 보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내가 숭배하는 영웅호걸도 따를 수 있다. 그보담 지 내 간들 무엇이 어려우라! 나는 까마득하나마 광채 찬란한 장래를 꿈꾸었다. 나의 환영은 희망의 붉은 꽃이 필 대로 핀 꽃밭 사이로 떠돌았었다. 물론 나는 이 꿈을 믿었었다. 이 환영을 참으로 여기었다. 그러나! 심술궂은 운명은 그것을 흥뎅이치고 말아다. 불의에 오촌 당숙에 별세하시니 나는 그 의입후(入後)가 아니될 수 없었다. 팔십이 넘은 종조모님의 홑손자가 되고, 삼십이 남짓한 당숙모님의 외아들이 되고 말았다. 인제는 집을 떠날 수 없다.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가기는커녕 며칠 시골만 다녀와도 할머님과 어머님이 우시며 부시며 집안이 호젓한 것을 하소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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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깨어졌다. 환영은 사라졌다. 광명이 기다리던 앞길에 잿빛 안개가 가리었다. 희망의 불꽃은 그물그물 사라져 간다. 날이 감을 따라 달이 감을 따라 가슴을 캄캄하게 하는 실망의 구름장만 두터워 갈 뿐이었다. 나의 혼은 얼마나 이 크나큰 손실에 오열하였는지 신음하였는지! 마츰내 돛대가 꺾어진 배 모양으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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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대로 되어라! 위인이 다 무엇이랴! 인생이란 물거품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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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잠 한숨 아니 자고 머리 속에서 온갖 신기루를 쌓아 올리다가 그것이 싸늘한 현실에 무참히 깨어질 때 이런 자포자기하는 생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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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동안 끊었던 담배도 어느 결엔지 잇(續[속])게 되었다.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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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술을 찾기도 하였다. 술은 본래 못 먹음은 아니니, 어릴 적부터 맛도 모르면서 부친의 잡수실 술을 도적해서 한 모금 두 모금 홀짝홀짝 마셨다. 그래도 중간에 그것을 절금(切禁)하였으니 정말 공부에 심신을 바친 나는 그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담배와 술을 먹게 된 때는 집에 나온 지 한 일 년이나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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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는대도 요리점에서 버듬적하게 먹을 처지가 아니라 (그런 처지야 맨 들려면 맨들 수 있지만은 그까지는 아직 타락하지 않았었다.) 십 전 어치나 이십 전 어치나 받아다가 집에서 자작(自酌)할 뿐이었다. 거주소수수갱수(擧酒消愁愁更愁) 란 격으로 주기(酒氣)는 도리어 화증을 돋운다. 화 풀 곳은 없다. 어찌 되든 집을 휙 나오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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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기는 나왔지만, 발 들릴 곳이 없다. 서울서 학교에 다닌 일도 없고 또 교제를 싫어하는 나이라 어느 친구 하나 없다. 있대도 나의 화풀이 받을 벗은 아니다. 지향 없이 종로 네거리를 헤맬 따름이다. 남산공원에나 올라가서 저도 모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한껏 흥분하여 혼자 우는 것이 고작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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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내가 ○○사(社)에 들어가자 오늘처럼 사우(社友)의 초대를 받아 요리점에 간 일이 있다. 거기서 나는 기생이란 물건을 보았다. 여염집 여자에게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어여쁜 표정, 옷이 몸에 들어 붙은 듯한 아름다운 맵시, 교묘한 언사(言辭), 유혹적 웃음이 과연 그럴듯하였다. 묵묵히 보고만 있는 나에게도 위안을 주고 쾌락을 주는 것 같았다. 답답하던 가슴이 한결 풀리는 듯 싶었다. 싸늘하던 심장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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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에 기생이나 아는 것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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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히 덮쳐오는 환멸의 비애에 가슴을 물어뜯기도 하다가 흔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자(前者)에는 기생이라면 남의 피를 빨고 뼈를 긁어내는 요물이고 사갈(蛇蝎)이라 하였었다. 그런 데 드나드는 사람조차 사람으로 알지 않았었다. '부랑자’,'타락자’……말 못할 인간이라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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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위유망(有爲有望)한 꽃다운 청춘에 무슨 노릇을 못해서 화류계에서 세월을 보낸단 말입니까? 그들은 제 일평생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그 해독을 제 자손에게까지 끼치어 제 가족을 멸망시키고 제 민족을 멸망 시키는, 사회의 죄인이고 인류의 죄인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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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설회에서 얼굴을 붉혀 가며 이렇게까지 절규도 한 일이 있다. 그때의 나, 지금의 나, 변한들 어찌 이다지도 변하랴! 인제 길거리에 혹 기생들과 서로 지나치면 문득 가슴이 꿈틀함을 느끼었다. 나는 그 치마 뒷자락을 홀린 듯이 돌아보기도 하고 슬쩍 코에 앉히는 그 매력 있는 향기를 주린듯이 들여 마시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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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나는 마츰내 소위 토벌(討伐)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우(社友) C가 심심 파적(破寂)이란 구실 밑에 놀러를 가자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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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C란 이는 몸집이 작고 짧으며 머리가 곱슬곱슬한 사람인데 그 홍갈색으로 반질반질하는 얼굴은 무른 것 단단한 것에 다 달궈 보았다, 하는 듯 하였다. 나는 그 재사영롱(才思玲瓏)한 농담을 좋아하며 또 나보담 근 십년 맏이언만 조금도 연장자로 자처치 않는데 감복하였었다. 그리고 또 그의 여관이 우리 집 가까이 있는 때문에 우리는 자조로이 상종하게 되었다. 그도 몇 해 전 주머니가 넉넉할 때에는 화류계에 많이 놀았다 한다. 그의 말을 빌리건대, 그는 화류계리(花柳界裡)에 백전노장(百戰老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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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둠침침한 행랑 뒷골로 돌았다. 나는 어데가 어데인지 잘 알지도 못하였다. 다만 C의 뒤만 따른다. C의 번지(番地) 보는 성냥불이 몇 번 번쩍하였다. 그럴 적마다 나의 가슴에도 희망과 기대가 번쩍였다. 그래도, '나는 같이 아니 왔소.’ 라고 변명하는 듯이 늘 몇 걸음 물러서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번지는 자꾸 틀리었다. 어느 때는 속 깊이 들어갔던 골목을 도로 나오기도 하였다. 헛되이 성냥 개피만 허비하였다. 인제 희망은 커녕, '웬걸 거길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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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실망조차 할 지경이다. 그리고 C가 속히 그 집이 그 집 아닌 줄 알고 딴 데로 갔으면 하였다. 다리가 아프다. 찾던 집을 찾기는 찾았다. C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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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살그머니 열더니 그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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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웬일인지 나의 가슴은 닥쳐올 중대한 일을 기다리는 사람 모양으로 뛰놀았다. 펄떡 하고 행랑방 문 여는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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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퉁명스러운 말이 끝나자마자, 탁하고 성낸 듯이 문을 닫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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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잘못했구려, 고런 것, 나하고 오늘 저녁에 만나자 해 놓고 고만 이사를 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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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는 비위 좋게 거짓말을 뿌리고 웃으며 나왔다. 그 날 밤 원정은 실패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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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그 골목을 걸어나오며 나는 C를 원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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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보아야 멋인가? 이렇게 다니는 것이 운동도 되고 좋지. 우리가 어데 다니고 싶어 다니나, 하도 갑갑스러워서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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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의를 하면서도 어째 무엇을 잃은 듯이 섭섭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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