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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자(墮落者) ◈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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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1 ~3.
현진건
1
타락자
 
2
5
 
 
3
비 맞은 옷 모양으로 풀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기막힌 일이 나본 듯이 모자와 두루막을 되는 대로 휙 집어던지고는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호올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안해는 잠깐 눈썹을 찡그리고 웃옷과 모자를 걸었다.
 
4
"진지 좀 아니 잡수렵니까?"
 
5
이윽고 안해는 나에게 물었다.
 
6
"아까, 나 저녁 먹었는데……."
 
7
"어데 한 술이나 떴습니까…… 요사이는 도모지 진지를 못 잡수시니 무슨 까닭이야요? 살이 나리시고…… 신색이 그릇되시고…… 왜 기운 하나 없어 보입니까? 춘심인지 무엇인지 그로 하여 그럽니까?"
 
8
이런 말을 하며 안해는 근심스러운 가운데에도 비웃는 빛을 보이었다.
 
9
참말 술이 양에 넘친 탓인지 뜬 사랑에 멍든 탓인지 그 후부터 무슨 가시나 난 것 같이 혀가 깔끔깔끔하며 밥이 달지 않았다. 꿈자리조차 뒤숭숭하였다. 잠을 깨면 흔히 왼 요, 왼 이불이 축축하게 땀에 젖어 있었다. 물에 빠진 듯한 몸은 오한(惡寒)에 떨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도 하였다.
 
10
"내 말이 옳지요? 춘심이 때문이지요?"
 
11
하고 안해는 어서 그렇다 하라는 듯이 나를 들여다 보다가 웃음의 가는 물결이 그 까만 눈썹 언저리를 흔들더니 고만 자지러져 웃으며,
 
12
"그만 일에 진지를 못 잡술 게 무어야요? 탈기(脫氣)할 게 무어야요? 정 그러시거든 한번 가셔서 정을 풀면 그 뿐이지."
 
13
나도 웃으며,
 
14
"무슨 그것 때문에 그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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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런 게 다 무어야요?"
 
16
"그렇다면 어찌할 터이요?"
 
17
"그러기에 가시란 밖에."
 
18
"얻어도 샘을 아니 하겠소?"
 
19
나는 안해가 옛날 요조숙녀의 본을 받아 군자의 애물(愛物)을 투기치 않으리란 평일의 주장을 생각하며 한번 다져 보았다.
 
20
"그것은 당신께 달렸지, 양편을 다 좋게 하면 왜 샘을 하겠습니까?"
 
21
"그러면 샘을 아니 하겠다는 말이로군."
 
22
나는 또 한번 다지었다.
 
23
"샘이니 우물이니는 둘째 치고 제발 원을 풀고 진지를 많이 잡숫게 해요. 낙심천만한 모양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24
하고 실인(室人)은 다시금 실소하였다.
 
25
"가라면 못 갈까? 지금 당장 갈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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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당장은 커녕 그 이튿날도 나의 그림자는 다방골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생집에 이틀 밤을 연거푸 감이 무엇도 하거니와 그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 까닭이다. 그 날 밤 둘이 놀던 일을 생각하면 그는 확실히 나에게 쏠리었다. 그러나, 춘심은 홀린 척도 하고 홀리기도 함을 위업(爲業)하는 기생이다. 명월관 손님도 오라 하고 식도원 손님도 가자 하여야 되나니, 마치 그물을 여기도 치며 저기도 쳐서 고기의 걸리기만 기다리는 어부 모양으로 사나이를 낚는 것이 그의 장사일다. 그러면 나에게 준 뜻 많은 추파와 꽃다운 언약도 말끔 그의 맛난 미끼 일는지 모르리라. 몇 칸 집을 깝살리게 하고 몇 뙈기 논을 날릴 수단일는지 모르리라. 하느님 마옵소서!
 
27
그러나! 그러나!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못 견디리만큼 보고 싶다. 소루룩 코 안으로 기어들던 향긋한 실바람은 오히려 후각 어데인지 남아 있었다. 박하를 뿌린 듯한 나의 목은 문득문득 비단결 같은 팔을 느꼈다.
 
 
28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
29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30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31
시문독본(時文讀本)에서 읽은 이 시조를 이따금 이따금 목을 빼서 청청스럽게 읊조렸다. 또 붓을 들면 이 글을 적기도 하였다. 그리고 춘심이란 두 글자를 뚫을 듯이 들여다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 두 글자가 굼실굼실 움직여 엄청나게 굵고 크게 되어 시커멓게 눈을 가리기도 하였다. 봄 춘(春) 자의 '삐침’과 '파임’이 그의 가냘픈 팔이 되어 나의 허리에 감기도 하였다…….
【원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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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락자 [제목]
 
  현진건(玄鎭健) [저자]
 
  개벽(開闢) [출처]
 
  192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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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