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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수와 참나무
손기정 선수는 제11회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시상식에서 부상으로 묘목 한 그루를 받았다. 손기정은 국가(國歌)가 연주될 때 60cm 되는 묘목을 두 손으로 받들어 품에 안고 머리를 숙였다. 손기정은 그 나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돌아올 때 틈틈이 물을 주고 정성을 다했다.
손기정은 양정고보 생물 교사인 김교신(1901~1945) 선생님에게 우승할 때 받은 참나무 묘목을 전달하였다. 김교신 선생은 묘목을 집에 가져가 1년을 물을 주고 잘 성장시켜 1937년 양정고보에 옮겨 심었다. 손기정은 매년 나무를 방문했고 이 나무는 잘 자라서 어느새 28m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손기정 올림픽나무 (만리동 손기정 체육공원)
손기정 올림픽나무는 1982년 11월 18일 서울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양정학교는 1991년 목동으로 이사를 하였지만, 손기정 선수가 독일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는 서울 중구 손기정로 101 (만리동 2가) 손기정 체육공원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초기에 메달을 수여했는데, 베를린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머리에 월계관을 씌어 주었다. 그리스에서는 지중해 연안에서 잘 자라는 월계수(Laurel) 나무로 월계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어주는 전통이 있었다.
독일 로부르참나무잎 월계관(사진:손기정기념관)
월계수는 승리의 상징이다. 제1회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2등을 한 선수에게 월계관을 부상으로 수여한 사례가 있지만, 로부르참나무 월계관과 로부르참나무 묘목을 우승자에게 수여한 사례는 베를린 올림픽이 처음이었다. 1813년 빌헬름 3세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에게 참나무잎이 그려진 철십자 훈장을 수여하면서부터 승리와 영웅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에게 수여했던 월계관과 월계수는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월계수가 아니라, 독일에서 자생하는 로부르참나무(Quercus, robur)였다. 참나무 묘목을 올림픽 우승자의 부상으로 제공하자는 의견을 낸 사람은 베를린의 유명한 ‘헤르만 로테’ 정원사였다.
헤르만 로테는 유럽 신화와 국장에 등장하는 참나무가 신성하다고 보았다. 그는 월계관 1,800개의 주문을 받아 묘목도 함께 공급했다. 당시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독일의 힘과 환대를 보여주기 위하여 금메달 수상자 130명 모두에게 독일 로부르참나무로 만든 월계관과 묘목 화분을 선물하였다.
손기정기념관에 전시된 월계관은 독일 로부르참나무로 만든 월계수로 크기가 좌우 20cm, 앞뒤 25cm이다. 손기정 선수가 독일 베를린에서 받은 월계관과 월계수 묘목은 모두 독일의 대표 수종인 로부르참나무가 분명하다. 그러나 손기정 체육공원에 있는 나무를 확인한 결과 미국산 대왕참나무로 결론이 났다. 그 기막힌 사연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유럽산 로부르참나무 (사진: 위키백과)
독일인은 참나무를 신성시하며 독일서 발행하는 유로화 동전 1, 2, 5센트 뒷면에 독일산 참나무(robur) 잎을 새겨 넣을 정도로 게르만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히틀러가 올림픽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독일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산 로부르참나무잎으로 월계관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독일의 1950년대 동전에는 참나무가 등장한다.
독일 동전과 로부르참나무
우리가 자주 접하는 참나무는 매우 귀중한 목재를 제공하면서도 토양의 조건을 까다롭게 가리지 않는다. 습기를 오래 저장하지 못하는 평평한 땅과 강수량이 적은 지역에서도 잘 자란다. 그래도 참나무는 축축한 산성 토양에서 가장 잘 자라며, 억센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묵직하고 축축한 토양을 가장 좋아한다. 독일의 참나무는 전체 숲 면적의 약 10퍼센트에 차지한다. 이는 15퍼센트를 차지하는 너도밤나무에 이어 활엽수 중에서는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이다. 참나무의 용도는 와인, 브랜드, 위스키를 숙성하는 대형 통으로 제작되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2014년에 새로운 기획을 하였다. 신선한 발상 기획은 독일 나치 정권의 히틀러가 금메달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준 ‘올림픽 참나무’의 현재 성장 모습을 추적하고 보도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미국 육상 선수 조지 오언이 육상 4관왕을 차지하고 받은 묘목 중의 하나인 오하이오 로데즈 고등학교에 심은 참나무 거목을 보여주고, 높이뛰기에서 우승한 코르넬리우스 존슨이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 심은 로부르참나무 거목을 보여주었다.
한국전통문화대 이선 교수는 전공이 식물생태학으로 경향신문에 〈이선의 인물과 식물〉에서 나무에 대한 유익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그는 2020년 12월 한국조경학회지에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에 대한 소고 -히틀러 참나무의 진실」 논문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선 교수는 서울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된 손기정 체육공원의 나무가 여러 근거와 정황으로 살펴볼 때 시상식 때 받은 로부로참나무와 다르게 다른 종으로 나중에 교체되었다고 밝혔다. 현재 나무는 예상과 다르게 무슨 이유에선가 바뀌어 심어진 미국산 대왕참나무(Quercus palustris)로 주장했다.
논문에서 밝힌 이유는 나무의 형태 차이다. 로부르참나무는 우리나라의 흔한 신갈나무처럼 잎 가장자리가 둥글둥글한 모습이지만 대왕참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뾰족해 금방 한눈에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양정고 100년사》에 나오는 김연창 체육교사가 쓴 글을 주목했다. 글에는 “김교신 선생이 손기정 선수에게 묘목을 넘겨받아 식물원이 아닌 자택에서 로부르참나무를 돌보았는데, 이듬해 봄에 보니 월계수가 거의 말라 죽게 되어 살아있는 뿌리를 10cm가량 잘라 심어 보살폈더니 다시 살아났다.”는 기록이다. 이선 교수는 지금이라도 원래의 독일산 로부로참나무를 가져다 다시 심어서 키울 것과 이런 내용을 서울시 홈페이지 및 각종 기록에 고지하기를 제언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재질을 분석해 유명한 박상진(朴相珍) 경북대 임학과 명예교수는 “잎이 큰 참나무 묘목은 건조에 매우 취약하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손기정 선수의 귀국 길은 40여 일이나 걸렸고, 양정학교 교정에 심은 뒤에도 해방과 한국전쟁 등 격동기가 오래 이어져 독일에서 가져와 심은 로부르참나무가 어떻게 죽고, 누가 교체해서 심었는지 하는 것은 막연한 추측일 뿐 실상은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박상진 명예교수는 오랜 기간 궁궐, 사찰 등의 고목과 역사 유적지의 나무와 천연기념물 나무 조사를 하였고 고선박재, 고건축재의 목조재질 연구도 함께하여 많은 논문과 책을 발간하셨다.
나무학자들은 동북아 고유종인 떡갈나무는 영국에는 1830년이 되어 전파되었고, 기후가 맞지 않아 현재는 유럽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다. 정반대로 유럽산 로부르참나무는 건조하고 연교차가 큰 동아시아 기후에 맞지 않아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키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생활문화아카데미 궁인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