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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동명왕 ◈
◇ 정도(征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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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2월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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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도(征途)
 

1

 
3
엄체수를 건넌 주몽은 동으로 남으로 나아갔다. 동으로 가면 해 떠오르는 바다가 있고, 거기는 넓은 평지가 있어 사람 많이 사는 곳이 있다고 들은 까닭이었다. 강밖에 본 일이 없는 주몽은 바다를 무척 그리워하였다. 끝 간 데를 모르게 넓은 바다, 질펀하게 물결치는 푸른 바다, 이것은 평소에 보는 강 굽이를 표준으로 생각하는 것이어니와, 주몽의 젊고 기운찬 마음에 바다라는 것은 가장 어울리는 큰 물건이었다. 게다가 바다에는 물고기가 나고 소금이 난다. 이 두 가지는 대륙 속에서는 극히 얻기 어려운 귀물이었다. 주몽은 이러한 바다를 보고 싶었다.
 
4
주몽이 또 한가지 보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사로운 나라였다. 동으로 남으로 가느라면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은 조상적부터 전해 오는 말이요, 또 구하는 목표였다. 한 옛날 우리 조상은 얼마나 먼 북쪽에서 떠났는지 모르거니와, 추위에 쫓겨서 따사로운 데를 찾아서 동으로 흘러 내려 온 것이었다. 그동안 몇 백 대를 지나고 몇 천년이 흘렀는지 모른다. 이 뜻을 이어서 주몽은 동으로 바다 있고 기후 온화한 나라를 찾아 가는 것이었다.
 
5
그때 요하(遼河) 이동 송화강(松花江) 이남에는 여러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 북에는 말갈(靺鞨)이 웅거하고, 황해와 발해에 면한 쪽에는 한족이 침략하고 있었다. 이 두 강적 사이에 옥저(沃沮)·예(?)·맥(貊)·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백여 나라가 갈려 있었다. 이 여러 나라들은 본래는 부여를 뿌리로 하고 갈라진 단군의 족속이었으나 시대가 지남을 따라서 점점 서로 멀어져서 피차에 남의 집같이 되어 서로 싸우기까지 하게 되고, 그 종주국인 부여도 늙어서 국력이 쇠한 데다가 남북으로 갈린 뒤로는 더욱 위신이 떨어 져서 마치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의 주 나라나 다름 없이 되었다. 이 형세를 비겨 말하면, 어미닭 없는 병아리들이 독수리 앞에 있는 것과 같아서 당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심히 위태하였다.
 
6
알알이 흩어져서는 안되겠다, 뭉쳐서 큰 힘을 이루어 살겠다 하는 생각이 이때에 우리 민족 안에 나기 시작하였으니, 남에는 박 혁거세(朴赫居世)를 주장으로 하는 신라(新羅)의 건설이요, 북에는 주몽이 중심이 된 고구려의 궐기였다.
 
7
나라를 쫓겨 난 목표한 소년 망명가 주몽의 초췌한 행색, 오이·마리·합보 세 사람을 데리고 산길로 말을 몰아 가는 것이 큰 나라 고구려를 세우는 길이라고는 주몽 자신도 상상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미리 알았던 자가 누구인가.
 
8
아니다. 아무도 그것을 미리 알았던 자는 없다. 주몽의 생명이 그때그때 자라 가지 뻗고 잎이 피어서 봉오리 지고 꽃이 핀 것이지, 누구의 예정도 아닌 것이다. 예정이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민족의 요구와 거기 응하는 주몽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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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체수를 건너서 얼마 아니하여서부터 주몽은 말갈의 유적과 싸우기 시작하였다. 유적이란 것은 열 명 스무 명 떼를 지어 가지고 큰 부락으로 돌아 다니며 노략질을 하는 것이다. 물이 밀어 들어오듯이 우르르 말을 타고 밀려 들어 왔다가 할 일을 다하고는 물이 빠져 나가듯이 어디론지 가버린다 하여서 흐르는 도적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이 말갈의 유적들은 행인을 겁탈하고 동네에 들어 와서는 재물을 빼앗고 불도 지르거니와, 가장 질색할 것은 젊은 부녀를 잡아 가는 것이었다. 말갈이란 저 북쪽 추운 지방에 사는 백성이어서 무지하나, 기운이 있고 말을 잘 타고 죽기를 겁내지 아니하였다.
 
11
주몽은 어떤 동네에 들어 자다가 말갈의 습격을 당한 일이 여러 번 있었고, 그럴 때마다 활과 칼과 계교로 그들을 쳐 물리치기도 하고, 더러 사로잡기도 하였다. 어떤 말갈은 주몽의 재주에 탄복하여 신하되기를 청하고, 그러면 주몽은 목숨을 살려서 허락하였다. 꼭 죽을 줄 알았다가 용서를 받으면 그들은 더욱 감격하여서 주몽을 우러러 보고 주몽은 한번 용서하여서 부하를 만든 뒤에는 결코 의심하거나 차별 하는 일이 없었다. 혹 항복한 말갈과 한 자리에 자는 것을 위태하다고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주몽은,
 
12
『내가 저를 의심하면, 저도 나를 의심하지 않느냐. 제게 붙은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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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도무지 개의치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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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말갈과 싸워서 이겼다는 소문은 산을 넘어 강을 건너서 사방으로 퍼졌다. 말갈이라면 겁을 집어 먹고 떨던 백성들은 주몽이 저희들의 지방에 오기를 바라고 어떤 넉넉히 사는 큰 부락에서는 위에 사람을 보내어서 주몽을 청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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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의 무리도 주몽의 해와 달을 그린 기를 보면 두려워하여서 주몽이 들어 묵는 동네나 골짜기는 호랑이가 새끼친 골짜기 모양으로 도적이 얼씬을 못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큰 부락이나 주몽을 환영하고 크게 대접하며 가장 좋은 집을 주몽의 숙소로 비어 놓고 가장 좋은 옷과 음식으로 대접하여 제 딸을 바치고 예물을 드리는 자도 있었으나, 주몽은 일절 재물이나 여색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 주몽이 어떤 동네를 도적의 손에서 건져주고 떠날 때에는 오직 사흘 먹을 양식만을 받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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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주몽을 더욱 추앙하였다. 그래서 한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주몽을 따라서 그 부하가 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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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차차 동으로 남으로 내려 오매, 말갈의 유적은 줄었다. 그들의 근거지에서 멀어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 대신 한족의 도적이 많았다. 그들은 장사꾼 모양으로 배를 타 고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서 큰 저자와 마을을 습격하여 재물과 젊은 여자를 약탈하고 심하면 그 마을을 전부 제 것을 만들어 거기 들어 웅거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주몽이 이러한 한족의 도적과 만난 것은 모둔골(毛屯谷)에서였다.
 
 

 
 

3

 
19
모둔골이란 것은 산악 지대를 나와서 보술이라는 강가에 벌어진 평지에 북으로 잔작한 산을 등진 큰 거리였다. 보술강은 아리내라는 큰 강의 북쪽으로 뻗는 지류로서 그리 큰 물은 아니나 평지를 흐르기 때문에 물이 깊고 잔잔하여서 배질하기가 좋고 또 고기도 많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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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둔골은 파제란 강이 흘러 와서 보술강에 어우르는 곳에 있기 때문에 더욱 교통이 편하였고, 이 두 강이 산악 지대로 올라 가기까지와 여기서 아리내의 큰 강에 들어 가기까 지에 상당히 넓은 벌판이 있고 또 강가인지라 땅이 기름져서 농사가 잘 되었다. 인근 산악 지대에서 나오는 물건과 멀리 바다와 큰 강에서 배로 올라 오는 물건이 이곳에 모여서 흥정이 많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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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동으로 동으로 흘러 오는 한 나라 사람의 침입은 근래에 모둔골에도 미쳤다. 한족의 침략하는 순서가 그러한 모양으로, 처음에 십 수명의 한인이 배에 물건을 싣고 장사한다고 칭하고 모둔골에 왔다. 그들의 물건이란 화려한 비단, 아름다운 무늬 있는 칠기, 옥으로 깎은 귀걸이며 가락지·도자기, 각색 향, 약품, 멀리 남방과 서역에서 오는 물건 등이요, 그들이 우리 사람들에게서 사가는 것은 부여 활·부여 검·활·인삼·꿀·호피, 사슴의 뿔, 그리고 금·은 같은 것이었다. 그 중에도 특색 있는 것은 한인들이 우리네 여자들을 아름답다 하여 비싼 값을 주고 사는 것이었다. 이 지방은 졸본 부여라는 나라의 지경이나 심히 국력이 쇠약하여서 법이 잘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우리 사람 중에 힘센 자가 남의 처녀를 막 빼앗고 심지어는 세력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들이 핑계를 만들어서 백성의 딸들을 빼앗아 한나라 사람에게 파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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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한 나라 사람들은 평화로운 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 많은 데를 보면 군사를 끌고 와서 노략하고, 살기 좋은 땅을 보면 한 집 두 집 와서 끼어 살기 시작하다가 무슨 흔단이 생기면(흔단이 안 생기면 억지로 만들어서 라도) 또한 배에다가 군사를 싣고 와서 그곳을 점령하여 저의 것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리하여서 낙랑·임둔·현토·진번 같은 한 나라 식민지가 우리 땅에 생긴 것이었다. 주몽은 말갈 침략권을 지나 이제 한족 침략권 안에 들어 온 것이었다.
 
23
주몽이 모둔골 지경에 이른 것은 가섬벌을 떠나서 한 겨울을 지난 이듬해 봄이었다. 그동안 말갈과 싸우기도 수십차나 되고 말갈 아닌 같은 단군 자손으로도 세 부여의 국력이 쇠한 것을 기화로 군사를 모아 가지고 양민을 해하는 무리와 싸우기도 수십차였다. 그러나 백성들을 추호도 범치 않는 주몽은 줄곧 극히 가난한 사냥군의 생활을 하여 왔다.
 
24
그러고 지난 가을에는 산 속에 움집을 짓고 도토리·가얌·꿀 같은 것을 많이 모아 묻고 칡뿌리 마 둥굴레 같은 것도 많이 캐어서 겨울날 양식을 삼고 그리고는 사냥으로 노루 사 · 슴·돼지·꿩 같은 짐승들을 잡아서 수백명 부하를 먹여 살렸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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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눈이 녹아서 얼음 풀린 봄 강물이 붇고 뾰족뾰족 새로 돋는 갈순을 찾아서 기러기 떼가 강 언덕에 앉는다. 이 때가 겨우내 산골 사람들이 지난 늦가을부터 잡아서 모은 호피, 곰의 가죽이며 꿀·금·은·인삼 같은 물건들이 모둔골로 모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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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때면 한 나라 장삿배들이 눈석임물을 타고 기러기를 따라서 아리내를 거슬러 비류물 보술물 같은 내륙에 들어오는 강으로 찾아 오르는 것이다. 대개는 낙랑 배들이지마는 더 멀리 요동에서 오는 배도 있었고, 또 아리내 가에 새로 생긴 한 나라 사람의 부락을 근거로 하고 오는 무리도 있었다. 이로부터 앞으로 몇 백년 한족이 이 땅에서 쫓겨날 때까지 우리와 한 나라 사람과의 씨름이 벌어질 것이었다. 이 첫머리가, 모둔골에서 주몽과 낙랑왕 최 락과의 사이에 열리게 된 것이었다. 그 일은 이렇게 일어난 것이었다.
 
28
주몽은 삼백명이나 되는 말 탄 군사를 거느리고 보술물을 따라 모둔골로 향하고 있었다. 주몽의 목적은 겨울을 난 군사에게 갈아 입힐 옷을 구하는 것이었다. 지난 겨울 동안에 사냥하여 잡은 범의 가죽, 곰의 가죽, 여우 가죽이며, 또 가섬벌에서 데리고 떠난 칼바치, 활바치가 만든 칼·창·활·화살 등속을 상품으로 싣고 오니, 이것으로 군사들의 옷과 기타 필수품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29
모둔골에서 이틀 길쯤 떨어져서 보술물이라는 강이 마지막으로 산협으로 나오는 목이 있었다. 긴 산협을 추어 나오면 좌우가 깎아질린 절벽이 되어서 강가으로는 통로가 없고 부득이 산으로 올라서 초목이 무성한 큰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그 고개 이름은 개고개였다. 길이 그리 험하지는 아니하나 가도 또 고개요 또 고개여서 피곤한 행객을 괴롭게 하였다. 겨우 고개 마루턱에 올라 서서 사람과 말이 다 쉬이며 짐에 가지고 오던 포를 씹어 요기를 하고 있을 때에 문득 앞으로부터 차림차림이 이상한 사람 셋이 나타나서 눈으로 주몽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곧 알아 내어서 나무 뿌리에 걸터 앉은 주몽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며 소리를 나직이 하여,
 
30
『하늘 아래 이름이 높으시고 덕이 두터우신 주몽 대장군 마마. 저의 무리 세 사람 신하의 예로 아뢰오.』
 
31
하는 말에 주몽은 황망히 일어나 읍하여 답례하고 몸소 세 사람을 하나씩 손을 잡아 일으키며,
 
32
『세 분 높으신 어른은 누구시완대 나 같은 이름 없는 소년에게 그처럼 정중하시니 도리어 송구하오.』
 
33
하고, 어른대접으로 정중하게 물으니, 세 사람 중에 그 중 나이 많고 삼베옷 입은 사람이 나서 읍하며,
 
34
『소인의 이름 재사(再思)요. 소인이 어려서 경망하다하여서 무슨 일이나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반드시 한번 더 생각하려 하여 소인의 스승 우석 조의(于石?衣)께서 재사라고 이름을 주셨소.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사라 하옵거니와, 재사하온 덕으로 무슨 큰 공은 못 세웠사와도 경망한 실수는 아니하였사오니 모두 스승의 은혜요.』
 
35
하니, 주몽은 감동한 모양을 보이며 재사를 향하여 읍한다.
 
36
다음에는 노닥노닥한 누더기를 입은 사람이 주몽 앞에 읍 하며 말한다.
 
37
『소인의 이름은 무골(武骨)이요. 소인은 어려서 몸과 마음이 다 약하여 무엇에나 남에게 지므로 우석 조의께서 이렇게 지어 주셨소.』
 
 

 
 

5

 
39
무골의 말을 듣고 주몽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40
『그래 무골이라는 이름을 지은 뒤로는 남에게 지지 않게 되었소?』
 
41
『소인은 무골이라고 이름 지은 후에 옳은 일에는 져 본 일이 없고, 옳지 아니한 일에는 이겨 본 일이 없으니 스승의 덕인가 하오. 그는 그러하거니와 스스로 저를 이기기가 어려우니 스스로 제게 지지 아니하는 공부를 하고 있소.』
 
42
무골의 대답에 주몽의 웃던 얼굴은 엄숙한 낯빛으로 변하였다. 그러고 읍하여서 무골에게 절하였다. 무골은 키가 작고 약간 꼽추 같으나, 그 눈빛이 사람의 계간을 뚫는 것 같았다.
 
43
끝으로 마름 덩굴로 짠 옷을 입은 사람이 주몽의 앞에 읍 하며,
 
44
『소인의 이름은 묵거(?居)라 하오. 소인은 어려서 말이 많고 말만 앞선다 하여, 스승 우석 조의께옵서 늘 잠자코 있거라 하고 묵거라는 이름을 주셨소.』
 
45
묵거의 말에도 주몽은 감동하여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몽은 예백을 떠난 뒤에는 이렇게 덕 있는 사람들을 처음 대하였다. 세 어진 사람을 만나면 임금 될 운이 틴다던 점자의 말이 맞는 것인가 하였다.
 
46
그러나 주몽은 진중하고 겸손할 것을 잃지 아니하였다. 주몽의 마음은 왕이 되어서 권세를 잡고 호강을 하는데 있지 아니하고 백성의 괴로움을 덜고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데 있었다. 주몽은 가섬벌을 떠나서 천여 리를 오는 동안에 백성이 어떻게 괴로워하는 것을 잘 보았다. 혹은 짐승일래, 혹은 말갈일래, 혹은 힘있는 악한 자들일래, 혹은 의식이 없어서, 혹은 질병으로, 혹은 도로가 미비하여, 이 모양으로 여러 가지 백성이 잘 살지 못하는 원인을 보고 알았다. 이것을 볼 때에 주몽은 힘있는 나라를 만들어 의적의 침입과 내란과 도적을 막고 백성들이 제 집에 편안히 있어, 저마다 제 일을 즐겁게 하게 하고 싶은 마음 무럭무럭 치밀어 올랐다.
 
47
그러나 주몽은 나라를 세우는 방법이라는 것을 몰랐다. 오이(烏伊)는,
 
48
『사람을 사랑하는 자가 왕이 되오.』
 
49
하고, 마리(摩離)는,
 
50
『백성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자가 왕이 되오.』
 
51
하고, 합보 (陜父)는,
 
52
『사욕 없이 저를 잊고 백성을 배부르게 하는 자가 왕이 되오.』
 
53
하여서, 농업과 목축과 공업을 일으켜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54
주몽도 이들의 말이 다 이치가 있으나 이런 것만으로 나라가 세워질까 하고 의심이 없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주몽은 새로 만난 세 현인의 말로 일변 오랜 의심을 풀고 일변 제 운수를 점치려 하여, 세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물었다.
 
55
『내 보니 세 분은 어진 어른이시니, 어린 이 몸을 바로 가르쳐 주시오. 지금 천하가 어지러워 백성이 모두 괴로워하니, 어찌하면 이 어지러움을 진정하고 괴로움을 편안하게 하겠소? 이 몸이 비록 재주와 덕이 없으나 옳은 것을 알면 힘껏 행할 마음은 가졌으니 바로 일러 주시오.』
 
56
하고, 세 번 절하였다.
 
 

 
 

6

 
58
이렇게 정중하고 겸손하게 묻는 주몽의 말에 재사·무골·묵거, 세 사람은 대답하는 대신에 일어나 팔을 벌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59
『좋다, 좋다! 얼시구, 살아 있던 보람이 있구나. 찾아왔던 보람이 있구나. 만나자던 크신 어른을 만났구나. 지화자 좋을시구. 주몽아기 만만세라, 우리 임금 만만세라. 어화 좋다, 좋을시구, 만세 만세 만만세라.』
 
60
하고, 굿거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 심히 맑고 힘차서 산이 울리고 주몽을 따르던 사람들도 다 신이 나서 만세를 화하며 춤을 추었다.
 
61
봄산의 숲 속, 비낀 저녁빛에 벌어진 한바탕 춤과 노래, 그것은 세상에도 드문 광경이었다. 이 자리에서 한 나라가 이루고 한 큰 임금이 나타난 것이었다.
 
62
그러나,
 
63
『쉬이.』
 
64
하고 주몽은 손을 들어서 노래하고 춤추는 무리더러 그치라, 조용하라는 군호를 주니, 이 군호에 모두 잠잠하였다.
 
65
주몽은 칼을 빼어 한번 두르고,
 
66
『누구든지 다시 나를 임금이라 부르는 자는 용서 없이 벨 터이니 그리 알아라. 나는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괴롭게 하는 도적과 싸우는 사람이니, 임금도 장군도 아니요 오직 주몽, 도적과 싸우는 사람이라 하여라.』
 
67
하고 명령하였다.
 
68
주몽의 이 처분에 재사·무골·묵거 세 사람은 더욱 만족하는 빛을 보였다. 주몽도 세 사람을 존경하고 그들을 만난 것은 하늘이 복을 주심이라 하여 속으로 기뻐하였다. 주몽은 왕될 운이 가까운 줄을 짐작하였으나 아직도 두 가지 차지 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대개 왕이 되는 데는 네 가지 있어야 하는 것이 있으니, 하나는 왕의 짝이 될 어진 여자요, 둘은 백성이 왕으로 떠받들 만한 공업이요, 셋은 어진 세 사람이요, 넷은 뒤에 세 봉우리 산이 있고 앞에 큰 물이 흐르는 벌판의 서울터다. 이 네 가지가 갖고사 비로소 왕업이 서는 것이다. 그런데 주몽이 생각하기에 이미 갖춘 것은 어진 예랑과 오늘 만난 어진 세 사람뿐이요, 아직 백성을 위하여 쌓은 공도 넉넉지 못하고 또 나라 터도 잡지 못한 것이다. 주몽은 새로 얻은 세 사람에게 그 중 좋은 말을 주어 타게 하고 군사(軍師)로써 높이 대우하기로 오이·마리·합보에게 명하고 또 길을 떠나서 밤 지낼 곳을 찾아서 행진하였다. 이로부터는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재사·무골·묵거가 앞 길을 잡기로 하였다.
 
69
일행이 고개를 다 내려 가서 평지 길을 잡아들 무렵에 멀리 모둔골 쪽으로 석양에 먼지를 날리면서 말을 달려 오는 사람 셋이 있었다. 그들은 참으로 나는 듯이 달려 와서 주몽의 앞에서 말을 세우고,
 
70
『주몽아기 아니시온지?』
 
71
물었다. 그들의 말은 땀에 젖고 그들의 얼굴에는 황망한 빛이 있었다.
 
 

 
 

7

 
73
마리가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서서,
 
74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냐?』
 
75
하고, 세 사람의 길을 막았다.
 
76
세 사람은 말에서 뛰어 내려 땅에 무릎을 꿇어 절하면서 아뢰인다.
 
77
『저희는 모둔골 태수 을두시(乙豆智)마마의 명을 받들어 주몽아기마마께 청병을 왔소.』
 
78
『청병이라 하니 모둔골에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이냐. 우리 장군마마께오서는 강한 자를 꺾고 약한 자를 도우시거니와 결코 불의한 자를 돕지 아니하시니 어디 청병하는 연유를 바로 아뢰어 보아라. 태수가 학정을 하므로 백성이 반란을 일으켰단 말이냐?』
 
79
『그런 것이 아니요. 태수 을두지마마 비록 젊으시오나 대대 명문으로 백성을 자식같이 사랑하시니 부모같이 사모하옵거든 어찌 반란을 일으킬 일이 있사오리까. 그런 일이 아 니옵고 지금 한 나라 군사 수백명이 태수 아문을 에워 싸고 태수와 가속을 데리고 나와 항복하라, 아니하면 모둔골을 도륙한다고 위협하고 있소.』
 
80
『웬 소리냐. 모둔골 태수는 수백명 군사를 막아 낼 군사도 없단 말이냐?』
 
81
『모둔골에도 오백명이나 군사가 있사오나, 대장 고미(古未)가 태수마마께 원혐을 품사옵고, 낙랑 왕과 내통하여 거짓 한 나라 군사를 막는다하여 많은 군사를 밖으로 끌어 내어서 모둔골 안에는 우리 군사가 없게 하여 놓고 배 속에 숨겼던 한나라 군사를 어젯밤에 상륙시켜서 불의에 성을 에워 싸니 태수는 적군 중에 갇혀서 속수 무책이요. 듣사온 즉 장군 고미가 낙랑 왕 최낙(崔珞)에게 조시누(召西奴)마마가 천하 일색이란 말을 하여 낙랑 왕이 조시누마마에 탐이 나서 이렇게 군사를 끌고 멀리 쳐온 것이라 하오. 그러 하옵길래로 낙랑 왕이 사자를 성중에 보내어 만일 태수 부인을 낙랑 진중으로 보내면 성을 둘러 싼 군사를 풀겠다 하 였소. 들으셔도 아시다시피 조시누마마께오서는 우리 졸본 나라 공주시오. 얼굴이 아름다우심보다도 마음이 더욱 고우시고 착하시와서, 만일 당신이 적군에 잡혀 가심으로 남편되시는 태수도 무사하고 모둔골 백성도 도륙을 면한다면 가시겠노라고 눈물을 흘리시며 아마 마지막 작별을 아끼시는 것과 같이 두 아기를 안고 계신 양을 보고 떠났소. 주몽아기마마께 저희 태수마마, 공주마마께서 사뢰는 말씀이 이러 하오. 우리 두 목숨은 죽어도 아깝지 아니하오나 모둔골 백성과 어린 두 아이를 장군마마께 맡기오. 원하옵건댄 무도한 한병을 쳐 부시고 또 역적 고미의 목을 베어 천하에 징계를 삼아 주오. 이 말씀을 주몽아기마마께 아뢰려고 가까스로 저희 무리 셋이 모둔골 성을 벗어나 이리로 달려 왔소. 모둔골 향하고 주몽아기 행차가 옵신단 말만 듣삽고 어디서 뵈올지도 모르고 가는 길이옵더니 여기서 뵈오니 하늘이 지시하심인가 하오. 주몽아기마마. 일월대장군마마. 제발 저희 태수와 저희 골 백성을 살려 주오.』
 
82
하고, 세 사람은 무수히 머리를 조아린다.
【원문】정도(征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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